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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우르파와 하란 1850년대까지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창세기였다.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가족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남쪽의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하란에 들렸다.따라서 지리적인 경로 상 우르는 당연히 하란 근처에 위치한 도시여야만 한다. 하지만 영국의 고고학자 테일러가 1850년대 이라크 남부 지역의 텔 엘-무카야르에서 우르라는 지명이 밝혀진 기록을 발견했고, 1920년대 울리가 그 곳을 발굴해서 대대적인 성과를 얻은 후 성서학자들의 관심은 북쪽의 우르에서부터 1500㎞ 떨어진 남쪽의 우르로 쏠리게 된다. 우르파: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 근처에서 우르를 찾으려는 학자들은 45㎞ 북쪽에 위치한 우르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이후 시리아의 우가릿, 알랄락크, 에블라 등에서 출토된 토판문서의 해독을 통해서 우르라는 도시가 여러개 있으며 모두가 하란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특이하게도 우르파의 이슬람 교도들은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과 아브라함의 기적과 관련된 연못을 성지로 보전해 왔다. 비록 우르파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은 없었지만 그 지리적 위치상 고대근동의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우르슈로 볼 수 있으며, 이미 서기전 20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전 300년경부터 우르파는 에데사로 불렸으며 비잔틴 시대에는 이 지역의 중심적인 기독교 도시로 발전했다. 족장들의 고향 밧단 아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늙은 종을 보냈다. 당연히 갈대아 우르로 가야겠지만 이 종은 아람 나하라임에 위치한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나홀의 성’에 가서 리브가를 데려왔다. 아람 나하라임은 한글성서에서는 그리스어 번역에 근거하여 메소포타미아로 잘못 번역됐으며(창 24:10), 다른 구절에서는 리브가의 고향을 밧단 아람이라고 밝히고 있다(창 25:20).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두 아내와 두 여종을 통해서 모두 열두 아들을 낳았고 이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됐다. 많은 학자들은 아카드어로 ‘파다누’가 ‘길’을 의미하기 때문에 밧단(파단) 아람은 하란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의 중심지 하란 하란은 원래 아카드어로는 ‘길’을 뜻이며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은 상업과 대상들의 중심지로 알려졌다(겔 27:23). 1959년에 실시된 지표조사와 간단한 발굴을 통해서 이곳에는 서기전 20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대 이후 터키의 고고학자들이 소규모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이 도시의 역사가 밝혀질 수 있게 됐다. 하란은 신(Sin)이라 불리는 달신 숭배의 중심지였다. 서기전 1200년경 아람 민족이 하란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창세기에 나타난 하란 지역의 다른 표현으로 알려진 ‘나하라임’이나 ‘밧단’이라는 지명에 아람이라는 민족명이 첨가됐다. 하란은 서기전 612년 잠시나마 몰락하는 앗시리아 왕국의 수도가 됐으며 바빌로니아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누지와 창세기 1925년부터 8년동안 지속된 이라크 북동부의 고대 유적지 누지(Nuzi)에 대한 발굴에서 모두 3500점에 달하는 토판문서들이 발견됐다. 이 문서의 내용을 통해서 아들 없는 부부가 특정인을 양자로 삼는 것(엘리에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부인이 여종을 통해서 대신 아들을 얻을 수 있고(이스마엘), 나중에 본 부인에게 아들이 생기면 장자권을 획득하는 것(이삭), 부인을 여동생으로 속이는 것(아브라함, 이삭), 여자의 경우 오빠가 중매를 서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며(리브가), 아버지가 나설 경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혼하는 것(라헬과 레아), 아내를 얻기 위해 데릴사위로 봉사하는 것(야곱), 임종시 상속에 관한 유언(이삭, 야곱), 상속권의 상징인 드라빔의 탈취(라헬) 등의 관습 등이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 누지의 주인공은 후리 민족이며 이들은 하란 지역에까지 퍼져있었다. 대부분 서기전 14세기에 기록된 이 문서를 근거로 한때 족장들의 전성기를 후기 청동기 시대(서기전 1550∼1200)로 낮추려는 경향도 있었지만 후대의 발굴을 통해 창세기 족장들의 사회적 관습은 특정한 시대에 관계없이 고대근동 지방 전역에 걸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들로 밝혀졌다. 갈대아 우르(우르 카스딤) 하란 지역에서 우르를 찾으려는 시도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갈대아 우르’라는 구절이다. 갈대아 민족은 서기전 900년경부터 독자적인 민족으로 역사에 등장하며 서기전 612년 이후 앗시리아를 점령하고 새로운 제국 바빌로니아를 건설했기 때문에 ‘갈대아 우르’는 바빌로니아의 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창세기의 여러 구절에서는 분명히 족장들의 고향이 밧단 아람, 즉 하란 지역으로 나타나는데 왜 갈대아 우르라는 지명이 생겨났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본격적으로 창세기를 편집할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세력은 바빌로니아, 즉 갈대아 민족이었으며, 이 지역에는 우르로 불리는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브라함 고향의 두 후보지인 이라크 남부의 우르와 터키 동부의 하란은 모두가 달신을 섬겼던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 때문에 당시의 기록자들이 하란과 우르를 혼동할리는 없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록하며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아브라함을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의 우르와 연관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로마 교황은 서기 2000년 대희년 성지순례의 여정에 당연히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거절했기 때문에 그의 우르행이 취소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속사정은 아직도 우르의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잘 모른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김 성 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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