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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19-금송아지

영국신사77 2008. 8. 20. 00:17

                    성지를 찾아서 19-금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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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blog.naver.com/plusgen/50006471409
 김성(협성대교수·성서고고학)

 

성서시대의 대표적인 우상으로 손꼽히는 금송아지는 출애굽 당시 시내산기슭에서 아론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출애굽기 32장1~6절).나아가 기원전 920년경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도 새로 건국한 나라의 종교적 상징으로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왕국의 북쪽 경계도시인 단에,다른 하나는 남쪽 경계도시인 벧엘에 각각 설치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예루살렘의 야훼 성전에 가지 못하게 했다.

예언자 호세아에 의하면 사마리아와 벧아웬에도 금송아지가 있었으며,특히 사마리아에는 은송아지도 있었다고 한다(호세아 8장4~5절).시내산의 것을 제외한 구약시대의 모든 금송아지가 북이스라엘 왕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숭배되는 것을 볼 때 이 제의를 예루살렘의 야훼에 대항하는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종교전통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서에서 금송아지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출애굽기 32장4절) 또는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열왕기상 12장28절) 등으로 묘사되는 만큼 금송아지숭배는 이집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따라서 4백년동안의 이집트생활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또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솔로몬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에 망명했었다는 사실(열왕기상 11장40절)을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힘이 세면서도 온순하고,밭갈이에 필수적인 동시에 고기맛도 뛰어난 황소는 고대 근동지방에서 일찍부터 `힘과 다산'을 상징하는 신으로 숭배됐다.대부분 지역에서는 황소상을 만들어 상징적으로 숭배했지만,이집트에는 살아있는 황소를 별도의 신전에 모셔놓고 숭배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었다.`아피스(Apis)'라 불리는 이집트의 황소는 일단 제사장들에 의해 간택되면 멤피스의 신전에서 죽을 때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신으로 숭배됐다.천둥번개가 칠 때 수태된다는 아피스의 어미소도 특별히 `이세움'이라 불리는 신전에 모셔졌다.아피스는 검은 수소들중에서 뽑히는데 특히 이마에 마름모꼴의 무늬가 있는 황소를 선호했다.아피스 황소가 죽으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미라로 만들어 지하묘지에 안장했다.후대에는 그리스 신들과 혼합된 `세라피스(Serapis)' 황소 제의가 유행했다.

1851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마리에뜨는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로 유명한 싸카라에서 아피스-세라피스 황소들이 매장된 `세라페움(Serapeum)'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기원전 14세기부터 그리스시대까지 1천년 이상 계속 사용된 이 지하묘지에서는 황소신의 미라가 안치됐던 24개의 거대한 석관들이 발견됐다.하지만 말린 소고기격인 아피스 황소신들의 미라를 대부분 약탈당해 황소미라는 오직 한 군데에서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스라엘 금송아지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했을까? 여러 고고학자들이 성서에서 금송아지가 언급된 장소,즉 시내산을 비롯해 단과 사마리아,벧아웬,벧엘 등지를 발굴해 그 증거를 찾길 원했지만 아직까지 발견된 게 없다.하지만 이스라엘 다른 도시들의 발굴을 통해 청동제 황소상이 몇 개 발견됐다.1954년 하솔 발굴 당시,기원전 13세기에 건설된 한 신전의 지성소에서 청동제 황소상이 출토됐고 1978년 사마리아 산악지대인 도탄에서 동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천의 제사 지내는 장소에서 기원전 12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제 송아지상이 발견됐다.1990년 미국 하버드대학의 아쉬켈론 발굴에서는 기원전 16세기에 건설된 한 신전터에서 은송아지가 발견됐다.원래 청동으로 만들어져 그 위에 은박을 씌운 흔적이 있는 이 은송아지상은 그 성소로 사용된 곳에서 네모진 입구가 있는 50㎝ 높이의 전용 항아리와 함께 발견됐다.벧산의 1991년 발굴에서도 기원전 12세기경의 주거층에서 청동제 송아지상이 출토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이스라엘의 송아지상들은 10~17㎝ 길이에 무게가 3백~6백g 정도여서 실제 송아지 크기를 상상했던 일반인들을 실망시켰다.하지만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송아지 크기의 금송아지는 고사하고 청동제의 송아지를 한 마리 만드는 것도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당시 대규모의 틀을 이용한 청동주물 제작기술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나무를 깎아 상을 만든 다음 금박을 입힌 금송아지를 제작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구약성서에서 금송아지가 등장하는 구절은 대부분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에 의해 기록됐다.이들은 아론계열의 제사장들과 항상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이에 따라 야훼가 가장 싫어한 금송아지의 원조가 바로 아론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히브리어로 금송아지는 `에겔 자하브'인데 이를 정확히 번역하면 `금 수송아지'다.성전의 제물중에서 수송아지를 강조하는 구절은 모두 아론의 자손과 관련이 있다(레위기 1장5절).

이스라엘 황소상들의 연대가 이방지역이었던 아쉬켈론(기원전 16세기)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원전 13~12세기인데 이는 우연하게도 출애굽,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시기와 일치한다.



〈인류종교사〉

인류 종교사에 있어서 구약 종교의 가장 위대한 점은 바로 야훼라는 유일신 개념이다.야훼는 아무런 형상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인격적인 존재로 부각됐다.십계명의 첫 두계명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야훼의 독특성 때문에 오랜 세월 이스라엘민족은 주변의 다신론적 환경으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았다.가나안에 정착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이스라엘도 비를 내려주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수밖에 없었다.우기가 한창인 12~2월 지중해의 먹구름과 함께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로 상징되는 바알은 뾰족한 모자를 쓴 모습으로 조각됐다.하지만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출토된 신상들은 대부분 아세라와 관련이 있는 여신들이 많다.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으로 착각할 정도로 진흙으로 빚은 작은 여신상들은 농사와 목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신상들은 신전의 지성소에 마련된 벤치에 주로 놓여졌는데 개인이 만들거나 구입해서 신전에 바치는 일종의 봉헌물이었다.따라서 신전을 발굴하면 여러 종류의 다양한 신상들과 함께 분향단 제단 등의 유물들이 발견된다.솔로몬은 유일신 야훼를 위해 성전을 건설했지만,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자기나라 종교를 고집하는 왕비들을 위한 시돈의 아스다롯,암몬의 밀곰과 몰록,모압의 그모스를 위한 산당이 있었기 때문에(열왕기상 11장5~8절) 이스라엘은 쉽게 주변의 이방신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지금까지 예루살렘에서 가장 많은 신상들이 출토된 것도 이러한 성서의 구절을 입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