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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16- 예수시대의 배와 해저고고학

영국신사77 2008. 8. 20. 00:13

 

           성지를 찾아서 16- 예수시대의 배와 해저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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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blog.naver.com/plusgen/50006432115

김성 교수(협성대학 성서고고학)



  예수의 복음전파는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로 나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비록 그들이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랐지만 그들의 배는 때로는 설교의 연단으로,때로는 선교 여행의 교통 수단으로 이용됐다.

  특히 호수의 둘레가 60㎞나 되고 당나귀를 타고 다녀야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예수께서는 심한 풍랑으로 흔들거리는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기도 했다(마가복음 4장38절).사방으로 둘러싼 산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파도가 칠 때는 2백명 이상 타는 현대식 유람선도 운항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고고학자들이 그토록 찾길 원했던 예수시대의 배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됐다.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1986년 1월, 이스라엘은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우기인 겨울철에 비가 제대로 내려야 밀과 보리농사가 잘되는데, 높아지기는커녕 점점 낮아지는 갈릴리 호수의 수위가 온 국민을 걱정스럽게 했다.

  당시 노프 기노싸르 키부츠에 살고 있던 루판 형제는, 1백년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수백m나 드러난 개펄 위를 산책하고 있었다.며칠전 발견된 로마시대의 동전들 때문에 그들은 혹시 다른 종류의 유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바닥을 유심히 살피던 중, 진흙펄에 완전히 묻힌 타원형 배의 윤곽을 발견했다.2천년동안이나 물속에 잠겨 있던 신약시대의 배가, 최초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항해중 난파되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배의 잔해를 파헤치는 해저 고고학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달됐다.지상의 발굴과는 달리, 수중발굴은 강력한 모터가 달린 진공흡입식 파이프를 이용하여 배 주위의 모래를 빨아들임으로써 유물이 드러나도록 한다.지금까지 발견된 것들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의 흔적은, 터키의 울루 부룬(Ulu Burun) 앞 바다에서 발견된 3천5백년전의 무역선이다.배에 실렸던 금속 토기 보석 등의 상품들과 일상생활용품이 한 자리에서 고스란히 발견되기 때문에, 난파선은 고고학자들에게 있어서 일생에 한 번쯤 찾고 싶은 보물선이다.

  이스라엘에서 해저 고고학이 잘 적용돼 발굴된 유적은, 바로 헤롯 왕이 건설했던 가이사랴 항구였다.특히 물에 잠긴 방파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 당시에도 나무로 짠 틀에 방수 콘크리트를 채우는 고도로 발달된 공법이 사용됐음을 알게 됐다.

  배를 발굴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우선 갈릴리 배의 연대를 추정해야 했다.이스라엘의 유명한 해저 고고학자인 쉘리 박스만(Shelley Wachsmann)은 뱃전의 나무토막들을 잇는 방식을 유심히 살폈다.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들을 이을 때 한쪽은 튀어나오게 다듬고 다른 한쪽은 이에 꼭 맞는 네모진 구멍을 파서 끼워 맞추는 소위 `모르티스-테논(mortise-tenon)' 방식이,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사용된 일반적인 선박제조술이었다.개펄에 묻힌 배에는 못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그렇다면 이 배는 적어도 1천3백년전의 것이어서 충분히 발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 물이 점점 차오르는 개펄에서 발굴작업을 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임시로 제방을 쌓고 밤에도 횃불을 밝히는 하루 24시간의 연속작업 덕분에, 발굴을 시작한 지 열흘만인 2월26일에 드디어 배가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문제는 이 배를 보관장소까지 어떻게 안전하게 운반하느냐는 것이었다.

  함부로 끌어올릴 경우, 배 전체가 산산이 부서질 우려가 있었다.발굴팀은 묘수를 생각해냈다.배를 다시 물에 띄우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이었다.물론 그 자체로는 뜰 수 없었고,폴리우레탄과 유리섬유로 배 전체를 감싼 다음, 300m 떨어진 키부츠의 임시 저장소까지 운하를 파고 배를 띄운 것이다.2천년만에 다시 항해하는 신약시대의 배를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돛대가 있는 이 배는 길이 8.2m,폭 2.3m로 네 명의 사공들이 노를 젓는 중간 크기의 배인 것으로 밝혀졌다.10년 이상 걸리는 목재의 보존처리를 위해 이 배는 노프 기노싸르 키부츠의 저수조로 옮겨져, 나무의 섬유질 세포마다 스며있는 물기를 화학물질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쳤다.선박제조술,출토된 토기와 등잔,나뭇조각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로, 이 배의 연대는 기원전 120년에서 기원후 40년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대인 역사가로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신약시대의 여러 사건들을 생동감있게 증언해 주는 요세푸스는, 기원후 67년 로마군에 대항하는 갈릴리 사람들이 막달라 항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당시 막달라 주민들은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도망쳤고, 로마군은 급조한 대형 뗏목을 타고 이들을 추격해 섬멸했다.이 전투에서 6천7백명이나 전사했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이에 고고학자들은 이 배를 당시 전투중에 침몰된 것들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하지만,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러한 종류의 배를 타고 다니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