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18-테라섬의 화산폭발과 출애굽의 열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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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그리스의 고고학자들은 에게해 한가운데 있는 테라섬의 한 유적지에서 고대 도시의 흔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화산재를 수십m 파헤치고 보물을 찾는 작업은 쉬운 게 아니었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한 아크로티리마을 주변에 자연적인 침식에 의해 지하 유적의 일부분이 드러나 있어서 고고학자들은 본격적인 발굴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발굴 결과 무엇보다도 고고학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잘게 부서져 바닥에 잔뜩 깔려 있는 채색벽화의 조각들이었다.전문가들의 오랜 작업 끝에 복원된 완성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돌고래와 각종 물고기가 뛰노는 바다 속의 풍경,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사슴들,백합꽃 위를 스칠 듯 날아가는 제비 등 자연의 생동감있는 모습 뿐아니라 권투하는 아이들,양손에 물고기를 들고 있는 어부,배를 타고 출전하는 용사들 등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돼 있었다.
당시 테라섬 주민들의 문화수준이 어느 정도이었기에 그 아득한 옛날인 3600년 전에 그토록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생산할 수 있었을까.
테라섬 발굴의 책임자는 미노아문명을 평생 연구했던 그리스의
마리나토스(S.Marinatos)였다.일찍이 그는 크레타의 여러 유적지들을 발굴하여 정리하던 중 기원전 16세기를 기점으로 지중해문명의 중심세력이 크레타의 미노아문명에서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문명으로 이동되는 데 주목했다.채색벽화가 아름다운 궁전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던 미노아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급작스럽게 쇠퇴했는데 마리나토스는 쇠퇴의 원인을 테라섬의 화산 폭발에서 찾고자 했다.
기원전 350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대화'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잃어버린 왕국 `아틀란티스'를 언급한 바 있다.그런데 이 전설은 원래 기원전 7세기 아테네의 정치가로서 이집트를 방문했던 솔론이 그곳의 제사장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었다.많은 섬을 거느렸던 아틀란티스 왕국에 주민들의 부도덕성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지진과 홍수가 발생해 사람들은 모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고 대륙 자체도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탐험가들이 해저탐사를 통해 잊혀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고자 했으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하지만 1967년부터 시작된 아크로티리 유적 발굴을 계기로 당시 고도로 발달했던 테라섬의 문명을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자신들과 해상무역을 하곤 했던 테라의 도시들이 기원전 1600년경 화산 폭발로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대재앙의 기록들이 이집트인들에게 전해졌고,아테네의 솔론을 통해 플라톤의 작품에 인용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를 위협했던 모세의 열가지 재앙들(출애굽기 7~11장)은 대부분 가뭄과 홍수,지진과 화산폭발의 결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자연 재난들이다.홍수의 결과 나일강은 흙탕물로 검붉게 변하고,넘쳤던 물이 빠진 후에는 개구리와 파리가 들끓게 된다.또 익사한 동물과 사람의 부패한 시신을 통해 가축과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한다.반대로 가뭄이 지속되면 메마른 아프리카대륙을 휩쓰는 메뚜기떼가 덮쳐 폐허만 남게 된다.특히 사흘동안 하늘이 캄캄해진 사건은 대규모의 화산 폭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몇달동안 지속된 한파로 이집트에 우박이 쏟아져 주민들을 두렵게 했을 것이다.
지중해지역과 이집트 역사연구에 있어서 테라섬의 화산 폭발을 암시하는 이집트인들의 기록은 연대추정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기원전 16세기 힉소스시대의 수학문제들을 담은 린드(Rhind) 수학 파피루스의 뒷면에는 누군가 며칠동안 몰아친 폭풍우에 관해 낙서해 놓은 것이 있다.또 기원전 1550년경 이민족 힉소스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 악흐모세가 카르낙의 신전에 세웠던 `폭풍우 석비'에도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몰아친 폭우에 관한 언급이 있다.악흐모세 제1년으로 명기된 이 석비의 내용이 테라섬의 화산 폭발의 영향을 적은 것이라면 이 재앙으로 파괴된 크레타섬의 여러 도시들의 유적연대도 비교적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왜 구약성서에는 테라섬의 화산폭발을 암시하는 언급이 없는가.
1867년 이 섬의 화산이 폭발했을 때 근처를 지나던 배에 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낮에는 연기가,밤에는 불길이 치솟았다'고 한다.저주받을 이집트인들에게는 열가지 재앙을,선택받은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열 가지 계명을 전해준 야훼는 그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했다(출애굽기 13:21~22)고 성서에 기록돼 있다.
〈테라섬 화산폭발의 역사적인 기록들〉
역사시대 최대 규모의 폭발로 기록되는 테라섬의 화산폭발 결과 높이 2백m에 달하는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지중해 연안을 덮쳤다.화산재가 태양빛을 가려 며칠간 흑암이 지속되고 폭풍우가 몰아쳤을 것이다.기상이변으로 한파가 지속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 기근이 들고 기존의 문명이 차례대로 붕괴됐다.
모두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테라섬은 1백만년전 화산폭발로 처음 형성될 당시에는 직경 15㎞ 규모의 둥근 섬이었다.그후 2만년 전의 폭발로 초생달 모습으로 변했고,기원전 1600년경의 폭발로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기원전 197년의 폭발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에 의해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바다로부터 불꽃이 솟아 나와 나흘동안 지속됐고 근처의 바닷물이 화염에 뒤덮여 끓어 올랐다'.
726년 폭발 결과 화산재가 터키의 해안을 뒤덮는 재앙이 발생,이를 당시 교황 레오3세가 시행했던 성상파괴의 대가라고 해석하기도 했다.특히 1573년의 폭발 결과 바다 한가운데 조그만 섬 하나가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1650년의 폭발음은 크레타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낮에는 연기,밤에는 불꽃이 보였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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