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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교회사] (121)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집

영국신사77 2008. 7. 25. 13:37
국민일보

                            [이야기교회사] (121)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집

                                                                                                     2005-06-29 15:49
 
  평양은 한국 개신교 최초로 토머스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다. 이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다. 토머스가 순교한지 수십년이 지난 19세기말, 미국 선교사들이 평양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도 결코 평양은 쉬운 지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기생과 환락의 도시 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교지로 평가를 받았다.
 
 한번 복음이 평양에 전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곳에 순교의 피가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머스를 죽였던 박춘권은 그후 그가 준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어 영주교회의 영수가 되었다.
 
 그후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는 박춘권이 준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 평양 숭실대학에서 공부하고,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의 조사가 되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3분의 2를 번역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박춘권에 앞서 대동강변에서 토머스로부터 한문성경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최치량이다. 그는 토머스로부터 성경 세 권을 받았는데, 그것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평양의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건네주었다.
 
 박영식은 한문성경을 보고 종이의 질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도배지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으로 자기집 벽은 물론, 방바닥과 천장까지 완벽하게 도배하였다. 아마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말씀의 집일 것이다. 그후 그는 벽에 도배된 성경말씀을 읽고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고, 그의 집에 자주 놀러왔던 최치량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흥미있는 사실은 바로 이 집이 뒤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널다리교회가 후에 장대현교회가 되었고, 여기에서 1907년 1월 한국 교회 사상 가장 빛나는 사건인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장대현교회에서는 지역의 모든 교회가 모여서 사경회를 열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후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며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다. 토머스의 순교가 열매를 맺은 것이다.

                                                                                         박명수 교수 <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