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기독교 체질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께 꽉 찍힌 건가?’
참으로 희한한 현상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갔다온 그날, 그러니까 1997년 9월11일부터 내 맘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풍이긴 했지만, 나 자신이 충분히 감지할 정도는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오산리기도원을 갔다온 그날 일이 다음 날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따르릉∼” 아침 일찍 전화가 걸려왔다. 직감적으로 양인평 장로님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이번엔 김용운 장로님이었다.
“저 김용운 장로입니다. 오늘 별일 없으면 점심식사나 같이 하시죠.”
“아,예. 좋습니다. 교회에서 만납시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김 장로님의 제안에 응했다. 그리고 만날 장소를 식당이 아닌 교회로 정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교회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변화가 내게 일어나고 있는 증거였다.
그랬다. 나는 변화됐다. 그때부터는 누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누가 전화를 하지 않아도 매주 주일이면 스스로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달려갔다.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교회로 발길을 향했다. 찬양이나 예배도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해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조용기 목사님과 여러 장로님이 무척 좋아했다. 그런 차에 조 목사님께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그 일대는, 내가 불교 성지를 만들려고 조성한 곳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을 세우고,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만들어, 불교인들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성지로 꾸미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춘천 길목의 경치 좋은 곳에 3만여평의 땅을 구입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조 목사님이 찾겠다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근처에 일이 있어 가는 길에 방문하겠다”고 하셨지만, 내 느낌으로는 일부러 오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워낙 영적인 혜안을 가진 데다 명민한 분이라서 뭔가 짚이는 게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11월24일 조 목사님은 몇몇 목사, 장로님들과 함께 오셨다. 오자마자 기도를 한 다음 조 목사님은 준비해온 성경책을 주셨다. 그리곤 “이 회장님, 이곳을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쓰실 것입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분은 필시 내가 주님의 종이 되고, 그 땅도 하나님의 성지로 바뀔 것이라는 걸 예감하신 것이었다.
나는 조 목사님께 받은 그 성경책을 지금도 애지중지하고 있다. 워낙 오래 사용해 너덜너덜해졌지만, 책상머리에 꽂아놓고 소중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잠깐 성경책 이야기를 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찌감치 예정돼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조 목사님께 받은 그 성경책은 내가 24번째로 선물받은 성경책이다. 다른 종교 지도자까지 지낸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성경책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춘천교도소 교화위원장으로 지내면서 목사님들과 가끔 의견을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꼭 나에게 성경책을 선물했다. 그렇게 받은 성경이 20권을 넘겼고, 양인평 장로님에게서 22번째,김용운 장로님에게서 23번째 선물을 받은 데 이어 조 목사님께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