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대장암 말기를 치료하신 하나님!!

영국신사77 2007. 8. 15. 22:37
                                                 대장암 말기를 치료하신 하나님!!
 
                                                                                                                            글쓴이: 갈보리          2006.06.15 12:33

                "주님! 제 모든 것 받으시옵소서."  

 

                                                       성남중앙교회      송 명철 청년

 

 



주님 모르고 죄 가운데 살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기쁨으로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 계속 기대고 의지하려 했다면 이미 고통 속에 죽어갔어야 할 병든 몸을
주님은 손 놓지 않으시고 나를 거듭나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지금부터 내가 만난 주님을 나를 치료하신 그 주님을 미흡한 글로 전하고자 한다.

얼마 전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내 삶은 누가 봐도 믿는 자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몸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할 뿐 내 맘은 고스란히 세상의 쾌락 속에
담겨 져있었다. 어리석게도 내 육체의 몸을 의지하고 그것이 전부인 냥 너무도
교만하게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난 요가 강사였다.

그 당시의 난 너무도 건강했으며 요가 강사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누가 봐도 건강함의 표상이었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과 유연성을 지니고 수강생들 앞에 나설 때면 항상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수강생 모두 나를 잘 따라주었고 난 마치 이교도의 교주가 된 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내가 강사교육을 받으며 배우고 또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초월할 수 있다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요가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하나님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의 유무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기에 너무도 쉽게 그런 교리에 빠졌던 것이다.

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귀의 종 이 되고 있었다.

  수원에서 강사 일을 하던 어느 날 구토증상과 함께 명치에 쓰린 통증이 찾아왔다.  원래 위가 별로 좋지않던 난 병원에서 위에 균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 자극적인 음식 피하고 푹 쉬면 좋아지겠지 하며 요가수업시간을 조금 줄이는 방법으로 증상의 호전을 기대했다. 이미 그때부터 뱃속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은 헬스트레이너였다. 정말 내가 왜 진작 이 일을 하지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헬스트레이너라는 직업은 큰 만족을 가져다주었다.
난 내 몸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게 너무도 좋았고 내 몸을 보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거운 역기를 들며 우람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몸을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들 욕심에 보충재를 사먹기까지 하며 비지땀을 흘렸다. 하지만 계속 되는 구토 증상으로 인해서 음식을 많이 먹을 수가 없게 됐다. 음식을 씹고 넘기려는 순간에 몸은 그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야하기 때문에 토하면서 까지도 먹고 또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중은 76kg에서 69kg으로 뚝 떨어져버렸다.
불과 일주일 만의 일이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체중변화를 크게 염두에 두지않았고 주변의 염려하는 소리도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오던 아랫배의 통증이 10분 내외로 장을 쥐고 짜듯 조이고 아파와 견딜 수가 없었다. 통증과 두려움 속에서 더이상 참지 못하고 병원을 찾게 됐다. 집근처의 작은 의원이었는데 별다른 검사도 하지 않고 ,신경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처방전을 내어 주었다.

 

 신경성이라는 말에 최대한 마음을 편히 가지려 애썼으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더 심해져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을 잘 때는 그 통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징계하심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대한의 배려였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통증은 어김없이 엄습해 괴롭혔다.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했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게 됐다.

 성남에 있는 C병원... 그 곳에서 X-ray 와 CT 검사 그리고 혈액검사를 마치고 장 내시경 검사만을 남기고 있었다. 장세척을 위해 코리트산이라는 4리터나 되는 약물을 새벽6시부터 검사가 있는 당일 오후2까지 모두 마셔야했다. 약물은 정말 너무도 역겨웠다.. 준비액을 먹는 동안에 엄청난 통증이 시작됐다. 전혀 변은 나오지 않고, 마신 약물은 노란 위액과 함께 거의 대부분 토해버렸다.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무 춥고 외로웠다. 옆에서 지켜보시는 어머니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아들을 보면서도 어찌해 야 할 바를 모르셨다. 그저 기도할 뿐...

 검사할 병원에 문의를 했지만 담당자는 구토를 할 수도 있다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엄청나게 부풀어버린 배를 움켜쥐고, 저걸 먹어야 설사를 하고 검사를 받고 그래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남은 약물을 먹었지만, 결국은 배변하지 못했고 약물은 거의 다 토해버린 상태였다. 극심한 공포... 내 눈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때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믿음이 없었기에...
이모의 차에 몸을 싣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사들은 콧줄이라는 걸 껴야한다고 했다. 코를 통해서 위를 지나 십이지장까지 관을 삽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변으로 배출하지 못한 이물들을 관을 통해 빼내는 것이다. 콧줄을 끼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긴 관이 모두 삽입되고 나니, 침 삼키는 일조차 너무도 힘이 들었다. 난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콧줄을 낀 채로 장내시경검사를 받게 됐다. 검사가 시작되었고 내시경이 항문을 통해 삽입되었는데, 직장을 지나자 내시경이 더이상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S결장이라는 곳에서 장이 완전히 막혀있었다.  그리고 큰병원이라 생각하고 갔던 C병원에서는 병명이 나오질 않으니, 소견서를 써주며 분당에 있는 D병원으로 가라고 보내주었다.

  검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콧줄도 다시 껴야했다. D병원에서 입원하고 얼마 안있어 막힌 S결장 부위를 넓히는 시술을 받게됐다.  X-ray 촬영대 위에 누운 채로 시술은 시작되었다.
항문을 통해 철사를 집어넣어 막힌 부위에 철망을 만들어 넓히는 시술이었는데 1시간 정도면 끝난다던 시술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부분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들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되지않는다는 표정으로 철사를 넣어다 뺐다를 반복했다. 난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하도 울부짖어서 목이 다 쉬어있었다. 3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너무나도 지쳤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빠져 들고 있었다.

  회진 시간에 의사들이 4명정도가 우르르 내 침대를 에워쌌다. 그리고는 cancer 인 것 같다는 말을 툭 던졌다. 내가 잘못들었겠지??!! 암... 암...암.... 내가 암이라니...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그저 멍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질 않았다. 내가 드라마의 비련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의사에게 수술하면 나을 수 있는 거냐고 차분히 물었다. 의사는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의사는 어머니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더니 무언 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 의사들은 어머니에게 아들의 사형선고 얘기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후로 어머니는 한번도 슬픈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난 그때까지만해도 수술하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저 세상 의학에 의지할 뿐, 한번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다. 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의 불신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다.

 우리 아들을 살려주시옵소서.. 깨닫고 주를 위해 일하게 하시옵소서...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주시옵소서... 그때부터 마음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들어옴을 느꼈다. 찬양하고 싶다는 생각.. 신앙이 없던 나에게 그 상황에 입술에서 찬양이 나온다는 건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 후 종양이 있는 부위를 잘라내고 다시 잇는 수술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병원에서 회복하며 입술로 끊임없이 주님을 찬양하기시작 했다.
하지만 곧 장유착이라는 고난이 내 또 찾아왔다. 수술부위가 옆에 장에 들러 붙어버린 것이었다. 장유착.... 난 그런 고통은 처음 느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그저 금식 하며 장유착이 풀리기만을 기다릴뿐.. 일주일간을 계속 고통 속에 신음하며 잠 한 숨 못잤다.

  침대위에서 몸부림치며 살려달라는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지만, 병원으로써는 진통제 만 놔줄 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진통제가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나중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위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서 난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입술에서 찬양이 끊기고 내 마음속에서 감사가 끊겼다. 그 고통은 마음까지도 병들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했다.

  그 후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또 다시 항암제로 인해 구토하며 괴로워해야했다. 7번째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에 있던 어느 날, 복음가수이신 외삼촌이 우리집에 찾아 오셨다. 그리고는 나와 어머니에게 강촌에 갈보리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없이 병고침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곳에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외삼촌 본인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기적같은 일들을 이야기하시며, 다음 주에 데려다 줄테니 꼭 가자고 당부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대장암 초기였으며, 수술도 잘 마쳤고 항암치료만 끝마치면 건강하게 될텐데, 내가 왜 기도원까지 가서 기도해야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바람이나 쐬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외삼촌의 차에 올랐고 2시간정도 걸려서 기도원 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기도원 앞마당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기도원은 그냥 공장 지대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목사님이 그 때 날 보고 계셨다. 측은한 눈빛으로... 무언가 알고 계신 듯한 눈빛이었다. 그때에 이미 이평해 목사님은 알고 계셨다. 산송장임을...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음을...

  내가 숙소에 있는 동안에, 어머니는 목사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셨다. 이미 병원에서는 손 쓸 도리가 없으며, 우리아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고... 목사님은 본인이 알도록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설교와 안수기도를 통해서 목사님은 나에게 4기 아니 말기라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기도하고 온전히 주님께 맡기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밥보다 물을 많이 마시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으셨다. 특별히 목사님께서는 "이 물은 먹는 유황물로 특별히 환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적의 물이니 먹고

목욕 할때마다 베데스다 연못을 기억하며 간구하라" 고 당부 하셨다

  난 초기인데 왜 자꾸만 저렇게 말씀하실까하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있는 3일동안은 기도하지 않았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릴 뿐, 마음은 건강해지면 무얼할까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향해있었다.

 기도원 생활이 너무나도 지루한 나머지 내일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날 조용히 부르셨다. "명철아, 너에게 해줄 말이 있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어두워진 밤이었다. 난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고 직감적으로 안좋은 얘기임을 느꼈다. "사실 지금 네 몸이 아주 나쁜 상태야." 난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어머니께 어떻게 나쁘다는 건지 조용히 물었다. "사실 넌 초기가 아니야." 그 말씀을 하시고 어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으셨다. 난 앞이 하얗게 변함을 느꼈다. 순간 현기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말씀을 계속 이어졌다.

  병원에서 1년정도 남았다고 얘기했고, 네가 받고 있는 항암치료는 그저 형식일 뿐이라고...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드시며,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리라고 하셨다. 이 병을 낫게 해주시면 주님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고...

  그 다음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벽기도에 나가게 되었다. 기도하는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한번도 부르짖으며 기도해본 적이 없는 내가, 두 팔 을 높이 들어 “주님 저 만나주세요..손잡아 주세요...제가 어리석었습니다...저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나요. 용서해주세요.. 전 주님 만나야합니다.. 제발 저 만나주세 요.. 어루만져주세요...” 울부짖었다.

  주님을 향해 용서함을 바라고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고백한 순간, 난 마음이 너무도 평안해짐을 느꼈다. 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 결코 세상이 내게 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마귀의 종이었던 내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마귀가 가만둘 리가 없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자는 동안에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주님께서 날 버리시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내게 주신 평안함을 통하여서 고침 받을 거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에 말이다.

  남은 5차례의 항암치료를 과감히 포기하고, 온전히 주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어서 너무도 죄송하니 내게 기회를 주시라고 기도했다. 남은 생 주를 위해 바치겠으니 저를 이 환난가운데서 건저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 이후 난 마음 뿐 아니라 몸도 너무 가벼워짐을 느꼈다.

 하루종일 틈만나면 물을 먹으며 기도했다.
식욕이 너무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고, 안 좋던 변 모양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이평해 목사님께서 안수기도 해주실 때마다 내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열심히 유황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담근지 2주정도 지났을까...

  어머니께서 CT를 다시 찍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셨다. 혈색도 좋아지고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음이 눈에 띄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 CT촬영을 예약하고 떨리는 맘으로 촬영할 날만 기다렸다. 촬영을 약속한 날이 돌아왔고 설레임을 안고 촬영을 끝마쳤다.

  일주일후 어머니 혼자 검사 결과를 들으시러 병원에 가셨다. 오후 3시쯤 어머니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 CT 결과상 너무 깨끗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놀라고 있으며 이제 희망적으로 얘기한다는 것이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죄인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주의 자녀삼아 주심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서 난 감사 기도를 올리며 기쁨을 눈물을 흘렸다.

  기도원으로 돌아와 원장 목사님과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나와 함께 너무나도 기뻐해주시던 그 모습들이 눈에 너무 선하다^^  목사님께서는 내게 " 치료받은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에 감사하며, 변함없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며 귀한 말씀을 남겨 주셨다.
나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위해서라도,  평생 기도원에서 내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앞에 드럼으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꾼이 될것을 서원하며 봉사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갈보리 기도원을 통해, 그리고 이평해 원장목사님 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수인 유황온천수를 통하여 건강이 회복되고, 죽음에서 생명을 건짐받는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

  우리 주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주님은 항상 팔을 벌리고 죄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난 찬양사역을 통하여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 주님의 피흘리심의 은혜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 시간에도 우리 주님은 살아 역사하심을...우리를 사랑하심을...  나를 위해 기도해준 수많은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름을 모두 얘기하고 싶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적지 못하는 이름이 있을까봐 그 냥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게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나의 남은 삶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한다

내년에는 신학을 공부하여 찬양사역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기기를 서원하며, 이 간증을 통하여 수많은 환자들이 기적의 동산에 올라와서, 내가 만난 주님을 만나기를 여러분들도 만나기를 기도하며, 마무리를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