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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비혁명과 하스몬왕조/ 시몬(Simon) 6

영국신사77 2007. 5. 23. 23:23
              마카비혁명과 하스몬왕조/ 시몬(Simon) 6
 
 
출처 블로그 > oxhill4952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oxhill4952/110004943975
 
 
 

                                       시몬(Simon)  


   그러자 주변의 모든 이방인들이, “유다인들은 지도자를 잃었고 이제 그들을 도울 사람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을 쳐부술 가장 좋은 때이다.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아주 잊어버리게 하자.” 하면서 그들을 멸망시킬 궁리를 하였다.

 

  그 때 시몬은 트리폰이 유다의 땅을 침입하여 그 백성을 전멸시키려고 대군을 모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온 백성이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백성을 모아 놓고 그들을 격려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와 나의 형제들과 그리고 우리 가문이 율법과 성소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한 사실과, 우리가 치른 전쟁과 고통이 어떠하였는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위해 죽었고,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입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내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형제에 비해 조금도 나은 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내 목숨을 결코 아끼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 민족과 성소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의 처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을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지금 우리를 없애버리려고 증오심에 불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백성의 사기는 또다시 높아졌다. 그래서 백성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당신은 당신 동생 유다와, 요나단의 대를 이은 우리들의 지도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지휘자가 되어 싸워 주십시오. 당신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겠습니다.”

 

  시몬은 모든 전투원을 소집, 예루살렘 성의 수축을 급히 완성하고 예루살렘 둘레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그리고 압살롬의 아들 요나단에게 많은 군대를 주어 욥바로 파견하였다. 요나단은 욥바의 주민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 곳에 주둔하였다. 마침내 트리폰은 유다 땅을 침공하려고 대군을 이끌고 프톨레마이스를 출발하였다. 트리폰은 포로가 된 요나단을 데리고 갔다.  이에 맞서 시몬은 평야를 향하여 아디다에 진을 쳤다. 트리폰은 시몬이 그의 동생 요나단 대신 들고 일어나 자기와 전쟁을 하려 하는  것을 알고, 시몬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네 동생 요나단은 그 직책상 왕의 금고에 돈을 바쳐야 하는데, 그 돈 때문에 우리에게 붙잡혀 있다. 그러니 은전 백 달란트를 가져오라. 그리고 요나단이 석방되었을 때, 우리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그의 아들 둘을 인질로 보내라. 그러면 그를 석방시켜 주리라.”

 

  시몬은 그의 말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백성들에게 큰 원한을 살까 두려워서 돈과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는 자기가 돈과 아이들을 트리폰에게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요나단이 죽었다고 하는 원망을 듣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시몬은 아이들과 돈 백 달란트를 보냈다. 그러나 트리폰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요나단은 석방되지 않았다. 그 다음 트리폰은 유다 나라를 침공하여 없애버리려고 출격하였다. 그는 아도라라는 곳으로 해서 길을 돌아갔다.

 

  그러나 시몬과 그의 군대는 트리폰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서 침공을 막았다. 그런데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있는 자들이 트리폰에게, 사람을 보내어 광야를 거쳐 자기들에게 올 것과 식량을 보내 줄 것을 독촉했다. 트리폰은 자기의 전 기병대를 출동시키려고 준비했지만, 마침 그 날 밤 폭설이 내려 기병대는 출동할 수가 없었다. 트리폰은 그 곳을 떠나 길르앗 지방으로 갔다.

 

  그는 바스카마 가까이 이르러, 요나단을 죽여 그 땅에 묻고 군대를 돌려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시몬은 사람을 보내어 동생 요나단의 유골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조상들의 도시인 모딘에 묻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몹시 통곡하며, 그의 죽음을 여러 날 동안 슬퍼하였다. 시몬은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의 무덤 위에 앞뒤를 매끈하게 간 돌로 기념비를 높이 세워, 먼 데서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부모와 그의 형제 넷을 기념하는 피라밋 일곱 개를 만들어 쌍쌍이 마주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그 주위에 큰 기둥들을 세우고, 그 기둥 꼭대기에 영원한 기념물로 여러 가지 전리품을 장식하고, 그 전리품 곁에는 배를 조각하여 붙여 놓았다. 그래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모딘에 세운 이 묘소는 오늘나까지 남아 있다.

 

  트리폰은 어린 왕 안티오커스에게 반역하여, 끝내 그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대를 이어 스스로 왕이 되고, 아시아 왕의 왕관을 썼다. 그 후 온 나라를 크게 어지럽혔다.

 

  한편 시몬은 유다 나라의 여러 곳에 요새를 구축하고, 그 주위에 높은  탑과 큰 성벽을 쌓았으며, 성문을 달고 빗장으로 단단히 잠근 후 요새 안에 식량을 저축하였다. 시몬은 또한 사람을 뽑아 데메트리우스 왕에게 보내어, 트리폰이 온갖 약탈을 자행한 사실을 고하면서 세금을 면제해 달라고 탄원하였다. 데메트리우스 왕은 그 탄원에 답하여 시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써보냈다.

 

  "나 데메트리우스 왕이 대제사장이며 왕들의 친구인 시몬과 원로들과 유다의 국민 모두에게 인사합니다. 귀하가 보낸 황금관과 종려나무가지를 잘 받았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완전한 화평을 맺고, 또 여러분에게 세금을 면제하는 허가를 내리기 위해, 나의 관리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바입니다. 내가 전에 여러분에게 허가한 것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세운 요새는 다 여러분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까지 범한 어떠한 과실이나 범죄라도 나는 그것을 용서하며, 여러분들의 빚으로 남아 있는 왕관세도 모두 면제하고, 그 밖의 예루살렘에서 징수하던 다른 어떠한 세금도 이제부터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나의 친위대에 편입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입대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공문서와 계약서에, “유대인의 대제사장이며 사령관이며 지도자인 시몬 제 1년”이라고 쓰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시몬은 게셀 요새를 향하여 진을 치고 군대를 그 요새 주위에 배치,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만들어 요새 가까이 장치하였다. 그리고 요새의 탑 하나를 맹렬히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병사들은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타고 올라가 성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성 안은 일대 수라장이 되었다. 성 사람들은 모두 처자를 데리고 성벽 위로 올라가 옷을 찢으며 큰 소리로 시몬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우리가 저지른 악행을 벌하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시몬은 그들의 청을 들어주고 전투를 중지시켰다. 그리고는 주민들을 그 성에서 내쫓고, 우상을 모셨던 집을 깨끗이 한 다음, 찬미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입성했다. 그는 온갖 부정한 물건을 다 성밖으로 던져 버리고, 오직 율법을 지키는 자만을 그 곳에 살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성의 방위를 굳건히 하고, 자기가 살 집을 그 안에 지었다. 그 동안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있던 자들은, 시골을 왕래하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몹시 굶주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시몬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시몬은 그 요청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요새에서 추방하고, 요새의 온갖 더러운 것을 치워 깨끗이 했다.

 

  유대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 소리도 드높게 비파와 꽹과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춰 찬미와, 노래를 부르면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민족의 큰 적이 참패를 당하고, 이스라엘 땅 밖으로 쫓겨 간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시몬은 매년 이 날을 경축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요새 가까이 있는 성전 산의 방비를 더욱 굳히고, 부하들과 함께 그 안에 살았다. 시몬은 자기 아들 요한이 성인이 된 것을 보고, 그를 모든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요한은 게셀에 주둔하였다.

 

  데메트리우스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트리폰과 싸우려고 메대로 가서 원조를 청하였다. 페르시아와 메대의 왕 아르사케스는 데메트리우스가 자기 영토안에 들어온 것을 알고, 그를 생포하라고 장군 하나를 보냈다. 그 장군은 출격하여 데메트리우스의 군대를 무찌르고, 그를 붙잡아 아르사케스에게로 데리고 왔다. 아르사케스는 데메트리우스를 감금해 버렸다.

 

  시몬이 다스리는 동안, 유다나라에는 하루도 평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가 마음 쓴 것은 자기 민족의 행복뿐이었고, 날마다 백성들은 그의 권위와 영광을 환영하고 기뻐하였다. 그는 욥바를 취하여 자기 항구로 만들었고, 여러 섬에 이르는 해로를 터놓아 그 영광이 더욱 빛났다. 그는 나라의 영토를 넓혔고 온 나라를 안전하게 다스렸다.

 

  많은 포로들을 붙잡아 왔고, 게셀과 벳술과 예루살렘 요새를 지배하고, 그곳에서 불결한 모든 것을 치워버렸다.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없었다. 백성은 평화롭게 자기 땅을 가꾸었고, 땅은 많은 곡식을 내었으며, 평지의 나무들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 노인들은 거리에 나와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태평 세월을 구가하였고 젊은 이들은 화려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시몬은 여러 도시에 평화를 가져왔고, 이스라엘에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사람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괴롭힐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원수들이 그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시대의 모든 왕들도 멸망되었다. 시몬은 백성들 가운데 어려운 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고, 스스로는 율법을 엄수하면서 율법을 저버린 자들과 악한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고 기물들을 많이 갖추어 놓았다.

 

  한편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로마와 스파르타에 전하여지자, 그 곳사람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그들은 요나단의 형 시몬이 자기 동생 대신 대제사장이 되어 자기 나라와 여러 도시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동생인 유다, 요나단과 맺었던 우호동맹을 갱신하고자 계약문을 놋쇠 판에 새겨 보냈다.

 

  그 때 시리아는 다시 내분이 일어났다. 데메트리우스 2세를 지지하는 파와 트리폰을 지지하는 파가 세력을 다투게 되자, 시몬은 트리폰을 배격하고 데메트리우스를 지지하였다. 이에 대하여 데메트리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완전히 면제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이는 유다의 완전한 독립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평화가 정착되는 것을 보면서, 레위 지파가 아니고 아론의 후손이 아닌 시몬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하시딤의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시딤의 주장은, 오니아스 가문이 아론의 정식 후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니아스 가문은 마카비 혁명 때 애굽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제사장직을 수임할 권리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이에 이스라엘 지도자 회의는, 지혜로운 시몬을, 신실한 지도자가 일어나기까지는 영원히 지도자이며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결의로 말미암아 하스몬 왕조가 합법화되었다. 하스몬은 마카비가의 어떤 조상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억지 이론에 끝까지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다시 분리되어 나가 엣세네파가 되었다.

 

  그후 시몬은 로마 사람들과의 동맹을 굳히기 위해서, 누메니우스에게 카다란 황금 방패를 들려 로마로 보냈다. 유다 백성은 이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시몬과 그의 아들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의 형제들과 일가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적과 싸워 그들을 격퇴시키고 자유를 쟁취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놋쇠판에 계약문을 여러 개 새겨 그것을 시온산에 있는 여러 기념비에 붙여 놓았는데,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념비에 새겨진 비문

  

  대제사장 시몬이 다스린 지 제3년 엘룰월 십팔일, 아사라멜에서 제관들과 백성들과 나라의 원로들이 성대하게 모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공포되었다.

 

  이 나라에 전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요야립 가문의 한 제사장 맛다디아스의 아들 시몬과 그 형제들은 성전과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의 원수들과 대항하여 이 나라에 큰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요나단은 백성들을 일치단결 시키고 백성의 대제사장이 되었다가, 마침내 죽어 자기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원수들이 이 나라를 침공하여 성소에 손을 대려고  했을 때, 시몬은 결연히 일어나서 나라를 위하여 싸웠으며, 자기의 막대한 재산을 다 바쳐 이 나라의 군대를 무장시키고 그들에게 봉급을 주었다. 또 유다 나라의 여러 도시들과 국역에 있는 벳술의 방비를 견고히 하였다. 벳술은 전부터 적군의 무기고가 있던 곳이다. 그는 여기에 유대인 수비대를 배치시켰다. 그는 또한 해안 도시 욥바와 전부터 살고 있던 아소토에 인접한 게셀시를 요새화하였다. 그리고는 그 곳에 유대인 수비대를 배치시켰다.  그는 또한 해안 도시 욥바와 전부터 적이 살고 있던 아소토에 인접한 게셀시를 요새화하였다. 그리고은 그 곳에 유대인들을 정주시켰고 그 모든 도시를 부흥시키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다.

 

  유다 백성은 시몬의 애국심과 나라의 영광을 빛내려는 갸륵한 마음을 보고 그를 자기들의 영도자로, 그리고 대제사장으로 모셨다. 그들은 시몬이 자기들을 공정하게 다스렸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으며, 나라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전심전력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 나라를 침략하였고, 심지어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도 공략하여 그 곳에 요새를 구축하고 그 요새에서 나와 성소 주위를 더럽히며 성역을 몹시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데 시몬은 그의 생시에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이런 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방인들이 쫓겨 난 그 요새 안에다 시몬은 유대인 군인들을 배치하고 유다지방과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예루살렘의 성벽을 더욱 높이 쌓아 올렸다.

 

  그 결과 데메트리우스 왕은 그를 대제사장으로 인준하고 자기 친구의 한사람으로 삼았으며 그에게 최고 영예를 주었다. 왕은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친구, 동맹자, 형제라고 부른 사실과 시몬의 사신들을  후하게 환대했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국민과 제사장은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진정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시몬을 영구적인 영도자. 대제사장으로 삼는다. 시몬은 유다 국민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어, 성전을 관리하고 온 국민의 활동을 감독하며 나라와 무기와 요새를 장악할 것이다. 

 

  온 국민은 시몬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나라의 모든 문서는 시몬의 이름으로 체결되어야 한다. 시몬은 자색 왕복을 입고 황금 장식물로 단장할 권한이 있다. 국민이나 제사장들 중 어느누구도 이 결정의 어느 하나 무효로 만들 수 없으며, 시몬의 동의 없이 나라에서 어떠한 회의도 소집할 수 없고 자색 왕복을 입을 수도 없다.

 

  이러한 규정 중 하나라도 어기거나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 결정을 집행할 권한을 시몬에게 부여하는 데 찬성하였으며, 시몬은 대제사장이 될 것을수락하였고, 유다 국민과 제사장들의 통치자이며, 수령으로서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만백성을 다스릴 것에 동의하였다.


  이 비문을 놋쇠판에 새겨 성전 경내에서도 돋보이는 곳에 붙여두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사본을 만들어서 시몬과 그의 아들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성전 금고속에 보관하였다.

 

  국민들과 시몬의 관계가 이렇게 돈독해지자  데메트리우스 왕의 아들 안티오커스가 해외에서 유다의대제사장이며 수령(首領)인 시몬과 온 유다 국민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안티오커스 왕은 유대인의 대제사장이며 수령인 시몬과 유다 국민에게 인사드립니다. 내 조상들의 물려준 왕국이 몇몇 악질분자의 손에 넘어갔으므로, 나는 나라를 되찾아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용병을 모집하였고 군함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제 내 나라를 망치고 나라 안의 많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는 그 나라에 상륙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왕들이 당신에게 베풀어 준 모든 면세 조치를 그대로 인정하며 또 당신에게 준 그 외의 모든 특권들고 그대로 인정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자국의 화폐를 만들어서 당신 나라 안에서 쓰는 것을 허락합니다.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대하여서는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미련한 모든 무기와 당신이 세워 장악하고 있는 모든 요새는 다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왕에게 바칠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의무금들은 영원히 면제헤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되찾으면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국민과 성전에는 큰 영예를 드리겠고, 당신들은 온 땅 위에서 명예를 떨치게 될 것입니다.”

 

  안티오커스는 그의 선조의 땅으로 쳐들어갔다. 그 때 트리폰 쪽에 붙은 병사는 거의 없었고, 모든 군대가 안티오커스 왕을 따랐다. 트리폰은 안디오커스의 추격을 받아 바닷가의 도르로 도망쳤다. 트리폰은 많은 시련을 겪는 중에 자기를 따르는 군인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티오커스는 도르를 행해 보병 12만 명과 기병 8천을 거느리고 진을 쳤다. 그는 도르시를 포위하고 그의 군함들을 연안을 따라 정박시켜 둠으로써,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해륙으로 그 도시를 봉쇄해 버렸다.

 

  한편 누메니우스와 그의 일행은, 여러 왕들과 여러 나라로 보내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가지고 로마를 떠났다.

 

  “로마의 집정관인 나 루기오가 프톨레미왕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친구이며 동맹자인 유대인들의 사신 몇이 이턴의 우호 동맹을 갱신하겠다고 우리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인 시몬과 유다 국민들이 보낸 사람들로서, 무게가 1천 므나 되는 황금 방패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우리는 여러 왕들과 여러 나라에 편지를 써, 유대인들을 해치지 말것, 유대인들이나 그들의 도시나 지방과 싸움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유대인들과 싸우는 자들을 돕지 말 것을 당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또 그들이 가져온 방패를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유다 나라에서 악질 분자 노릇을 하던 자들이 당신 나라에 피신하거든, 대제사장인 시몬에게 넘겨 그가 자기네 법대로 그들을 벌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정관 루기오는 이와 같은 편지를 데메트리우스 왕, 아탈루스 왕, 아리아라데스 왕, 아르사케스 왕에게 보내었고, 또 삼프사메스, 스파르타, 델로스, 민도스, 시시오, 카리아, 밤필리아, 리키아, 하리카르나소스, 로도스, 바셀리스, 고스, 사데, 고르티나, 크니도스, 키프로스, 키레네 등 여러 나라에도 같은 편지를 보냈다. 또 그 편지의 사본을 시몬에게도 보냈다. 도르를 행해 진을 치고 있던 안티오커스 왕은, 군대를 완전히 포위해서 한 사람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시몬은 정예병 이만과 금은과 많은 장비를 보내어 안티오커스를 도우려했다. 그러나 안티오커스는 시몬의 원조를 받기를 거절했다. 그뿐 아니라 안티오커스는 그의 친구 아테노비우스를 시몬에게 보내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는 지금 욥바와 게셀과 예루살렘의 요새를 점령하고 있는 데, 그것은 모두 내 왕국에 속한 도시들이오. 그대들은 그 여러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나라에 큰 해를 끼쳤으며 내 왕국의 여러 지방을 빼앗았소 그러므로 그대들이 빼앗은 여러 도시를 내놓을 것이며, 또 유다 땅을 제외하고 그대들이 빼앗은 여러 지방에서 거둔 세금을 내놓시오. 그것이 싫거든 그대들이 끼친 파괴의 댓가로 은전 500달란트를 더 지불하시오. 이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대들을 쳐부수러 가겠소”

 

  안티오커스의 친구 아테노비우스는 예루살렘에 와서 시몬의 화려한 생활과 진열장에 가득찬 금은 기물과 수많은 시종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서 안티오커스 왕의 전갈을 들은 시몬은, 안티오커스의 편지에 대한 답신을 써서 보냈다.

 

  “우리는 외국땅을 한 치도 빼앗은 적이 없소 우리가 차지한 것은 외국인의 재산이 아니고, 우리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오. 다만 우리의 적들이 한 때 그것을 부당하게 차지했을 따름이오. 이제 때가 되어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것을 지키게 되었소. 당신은 욥바와 게셀을 요구하는데,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백성과 우리 땅에 큰 해를 끼친 바 있으니, 우리는 기꺼이 이러한 도시들의 대가로 백 달란트를 지불할 용의가 있소”

 

  아테노비우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노해서 안티오커스 왕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시몬의 대답을 전하고, 시몬의 화려한 생활과 그가 본 모든 것을 보고하자, 왕은 화가 치솟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트리폰은 배를 타고 오르토시아로 도망쳤다. 안티오커스 왕은 켄데베우스를 해안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보병과 기병을 주었다. 왕은 켄데베우스에게 명령을 내려서 유다를 향해 진을 치게 하고, 케드론을 요새로 만들어서 그 성문을 굳게 방비하게 하였다. 안티오커스왕은 그렇게 해서 유다 국민을 공격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왕은 트리폰을 추격했다.

 

  켄데베우스는 암니아로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유다로 진입하여 사람들을 사로잡고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켄데베우스는 왕이 명령한 대로 케드론을 요새로 만들고 그 곳에 기병과 보병을 배치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요새에서 나와 유다로 통하는 여러 길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시몬의 아들 요한은 게셀로부터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켄데베우스가 한 일을 알렸다. 그러자 시몬은 두 아들 유다와 요한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와 나의 현제들과 우리 집안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을 위해서 많이 싸워 왔고, 우리는 여러 번 승리하여 이스라엘을 구했다. 나는 이제 늙었지만,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어서 성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와 나의 형제들의 자리를 이어받아, 나가서 윌 거래를 위하여 싸워라. 하늘이 너희를 도와주시기를 빈다.”

 

  요한은 이 말을 듣고 나라에서 병사 2만 명과 기병을 뽑았다. 그리고는 켄데베우스를 치러 출발하여 그 날 밤은 모딘에서 묵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평야로 진군해 갔다. 거기에는 수많은 적의 보병과 기병이 그들과 대치하여 있었고, 양군 사이에는 시내가 하나 가로놓여 있었다.

 

  요한과 그의 부하들은 적을 행해 진을 쳤다. 자기 부하들이 그 시내를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요한은 앞장서서 시내를 건넜다. 이것을 보고 요한의 부하들도 모두 따라서 시내를 건넜다. 요한은 그의 보병을 두 부대로 나누고, 그 사이에 기병을 배치하였다. 적의 기병수가 대단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자 켄데베우스와 그의 군대는 패주하였고 그중 많은 적병이 부상을 당해 쓰러지고 나머지는 요새로 도망쳐 들어갔다. 바로 그때에 요한의 형 유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요한은 추격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켄데베우스는 자기가 만든 요새 케드론까지 쫓겨갔다. 적의 일부는 아소토 평야에 있는 여러 탑 속에 숨었으나, 요한은 그 탑에 불을 질러 적병 약 2천명을 죽였다.

그 후 요한은 유다에게로 안전하게 돌아 갔다. 

 

  아브보스의 아들 프톨레미는 그동안 여리고 평야의 사령관으로 임명받고, 많은 금과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의 사위였던 것이다. 프톨레미는 야심을 품고 나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했다. 그는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없애버릴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시몬은 민정을 살피면서 유다의 여러 도시를 순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몬과 그의 아들 맛다디아스와 유다는 여리고로 내려 갔다.


  아브보스의 아들은, 자기가 세운 도크라는 요새로 시몬 일행을 유인하여, 자기 부하들을 몰래 숨겨 둔 방으로 맞아들이고 주연을 베풀어 주었다. 시몬과 그의 아들들이 술에 취했을 때, 프톨레미와 그의 부하들이 무기를 들고 벌떡 일어나서 연회장에 있는 시몬에게 달려 들어 그를 죽이고, 시몬의 두 아들들과 그의 하인 몇사람도 죽였다.

 

  이와 같은 큰 반역을 감행함으로써, 프톨레미는 악으로 선을 갚았던 것이다. 그 후 프톨레미는 이 사실을 적어서 안티오커스 왕에게 보내며 자기에게 응원병을 보내 줄 것과, 유다 나라와 도시들을 자기에게 넘겨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또 시몬의 아들 요한을 없애라고 다른 사람들을 게셀로 보냈다. 그리고 천부장들에게 편지를 띄워 자기에게 오면 은과 금과 그 외의 선물들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또 예루살렘과 성전의 산을 빼앗으려고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게셀에 있는 요한에게 앞질러 가서, 그의 부친과 형제들이 피살되었다는 것과 프톨레미가 그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요한은 크게 놀랐다. 자기를 죽이려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나단이 죽고 시몬이 대제사장이 되었을 때는, 시몬도 고령의 노인이었다. 시몬은 짧은 기간 통치했지만,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었다. 그가 죽고나자, 요한이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려 갔다.

 

  시몬이 죽은 후, 요한의 역사와 그가 싸운 전쟁과 그의 용감한 행적, 그리고 성벽을 재건한 일이며 그 외의 여러 업적들은,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이 된 때부터의 실록 속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