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비혁명과 하스몬왕조/유다 마카비우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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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마카비우스(Judas Maccabeus)
맛다디아스가 죽은 후, 마카비우스라고 불리는 그의 아들 유다가 그를 계승했다. 모든 형제들은 아버지와 합세했던 사람들과 함께 그를 도와, 이스라엘의 전쟁을 기쁜 마음으로 치렀다. 그는 자기 민족의 영예를 널리 떨쳤다. 그는 장수처럼 갑옷을 입고, 온갖 무기를 허리에 차고 많은 전쟁에 임하여 칼을 휘둘러 자기 진영을 보호하였다.
그의 활약은 짐승을 앞에 놓고 으르렁대는 사자와 같았다. 그는 범법자들을 뒤쫓아가 잡아내고, 자기 민족을 괴롭한 자를 태워죽였다. 범법자들은 그의 앞에서 위압당하였고, 악을 일삼던 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는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을 배반한자를 찾아 몰살 시키고, 이스라엘이 받을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하였다. 그의 명성은 땅끝까지 퍼졌고, 그는 흩어진 민족을 다시 모아 놓았다.
아폴로니우스라는 사람이 이방인들과 사라리아인들을 모아 큰 군대를 조직하고 이스라엘에 전쟁을 걸어왔다. 이에 유다는 나아가서 그를 맞아 쳐부수고 죽여 버렸다. 적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나머지는 도망쳐 버렸다. 유대인들은 많은 전리품들을 얻게 되었는데, 아폴로니우스가 쓰던 칼은 유다가 차지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그 칼을 가지고 싸웠다.
시리아군 사령관 세론은, 유다가 충성스런 역전의 용사들을 많이 모아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내 명성을 떨칠 때가 왔다. 왕명을 무시한 유다와 그 졸개들을 무찌르고 이 나라에서 영광을 차지하자.”
그때에 하나님을 배반한 유대인들도 군대를 조직하고 그와 합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데 협력하였다. 그들이 벳호론 언덕 가까이 왔을 때, 유다가 얼마 안되는 부하를 거느리고 그를 맞아 싸우러 나갔다. 유다의 부하들은 자기들을 치러 나오는 적군을 보고 유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적은 수효를 가지고 저 많고 강한 군대와 어떻게 싸워낼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기진 맥진해 있습니다.”
유다가 대답했다. "작은 군대가 큰 군대를 쳐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하면, 군대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다수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려 주시는 힘에 달려 있다. 불손하고 무뢰한 놈들이 작당하여 우리와 우리 처자들을 없애 버리고 우리의 재산을 약탈하려고 덤벼들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율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원수들을 짓부수어 버리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조금도 저들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는 이말을 마치고 세론과 그의 군대를 급습하여 괴멸시켰다. 유다는 벳호론 언덕을 내리달려 평지까지 적군을 쫓아갔다. 적군은 800명이나 쓰러져 죽고, 나머지는 블레셋 땅으로 도망쳐 갔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주위의 이방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유다의 명성은 마침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의 전쟁 이야기는 모든 이방인들 사이에 자자하게 퍼졌다.
안티오커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노하여 사람들을 온 왕국으로 보내, 용사들을 모아 막강한 군대를 조직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국고를 열고 군인들에게 일년분의 봉급을 나누어 주며 모든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결과 국고에 돈이 다 떨어졌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각 지방의 풍속을 없애버린 데서 생긴 내란과 재앙으로, 여러 속국에서 들어오던 조공조차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왕은, 예물을 아낌없이 주는 등 지금까지의 어느 왕보다도 더 많은 경비를 써오다가, 지금 그럴 만한 돈이 없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페르시아로 가서 여러속국에게 조공을 빼앗아 들이고 많은 돈을 긁어오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왕족 중 탁월한 인물인 리시아스(Lysias)에게 왕의 직무를 맡겨, 유프라테스강에서부터 애굽 접경까지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왕자 안티오커스를 맡아 기르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 군대의 절반과 코끼리 부대를 주면서, 자기의 뜻을 따라 모든 일을 잘 처리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특히 유다지방과 예루살렘의 주민들에 대해서는,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 병력과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을 소탕하여 모두 없애버리고, 그 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기억조차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온 영토에 이방인들을 데려다가 살게 하고, 그들의 토지는 모두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왕은 B.C. 165년에 자기 군대의 나머지 절반을 이끌고, 수도 안티오키아를 출발하여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북쪽 지방의 여러 나라를 통과해서 진군하였다.
한편 리시아스는 도리메네스의 아들 프톨레미와 니카노르(Nicanor)와 고르시아스(Gorgias)를 뽑아 유다 땅으로 보냈다. 이들은 왕의 측근 중에서도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리시아스는 보병4만과 기병7천을 주면서, 왕의 명령대로 유다 땅을 쳐부수라고 하였다.
그들은 리시아스에게서 받은 온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여, 낮은 지대에 있는 엠마오 동네 가까이 이르러 진을 쳤다. 에돔과 블레셋에서 온 한 부대도 이들과 합세했다. 그 지방 상인들은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사려고 많은 금은과 수갑을 가지고 그들의 진영을 찾아갔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영토안에 적군이 진을 치고 사태가 험악하게 된 것을 알았다. 그뿐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몰살시켜 버리라는 왕명이 내려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쓰러져 가는 우리 민족과 성전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자.” 고 말하고, 다 함께 모여 전쟁을 준비하고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빌었다.
예루살렘은 집 한 채 없는 황야와 같이 되었고
드나드는 주민도 볼 수가 없구나
성소는 원수의 발에 짓밟히고
외인들이 그 요새를 점령하여 이방인의 거처가 되었도다
야곱의 기쁨은 간 데 없고
퉁소와 비파소리도 들리지 않는구나.
유대인들은 같이 모여 예루살렘 맞은편에 있는 미스바라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소가 있었다. 그들은 그날 금식하고, 베옷을 몸에 두르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다. 이방인들은 앞 일을 우상에게 물어 보았지만, 이 사람들은 율법서를 펴서 앞 일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제복과 첫 수확물과 십분의 일세를 가지고 왔다. 또 그들은 맹세한 기간을 마친 나시르인들을 데려다 놓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디로 데리고 가면 좋겠습니까?
당신의 성소는 짓밟히고 더러워졌으며 모욕을 당하고
슬품에 잠겨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우리를 몰살하려고 한데 모여 있습니다.
우리를 없애려는 그들의 계략을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당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나팔을 불고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 후 유다는 민중속에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을 임명하여 백성을 지휘하게 했다. 그 당시 집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나 약혼한 남자들이나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를 심고 있던 사람들이나 겁쟁이들은, 율법이 보장한대로 각각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공포했다. 그리고 나서 군대는 진군하여 엠마오 남쪽에 진을 쳤다.
그때에 유다가 말하였다.
"이방인들은 우리와 우리의 성소를 짓부수려고 집결하고 있다. 내일 그들과 싸워야 하니 무장을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라, 우리 민족과 우리 성소가 망하는 것을 보느니 보다는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다. 하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고르기아스는 보병 오천과 정예 기병 일천을 거느리고, 야음을 타서 밤중에 출발하여 유대인의 진지를 기습하려 했다. 몇사람이 요새에서 나와 고르기아스를 안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는 친히 자기 병사들을 거느리고 엠마오에 있던 왕군을 치려고 나갔다. 그때에 적군들은 아직도 진지를 떠나서 흩어져 있었다. 고르기아스는 밤중에 유다의 진지에 도달하여 그 곳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 이 놈들이 우리를 피해 도망쳤구나.” 하고 말하며 산 속으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날이 샐 무렵 유다는 군사 삼천을 거느리고 평야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이 갖춘 갑옷과 칼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들이 본 이방 군대는 단단히 무장을 갖춘 강력한 군대였을 뿐 아니라 기병대의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역전의 용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을 본 유다는 자기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적군의 수효를 두려워 말고, 그들의 공격을 무서워하지 마라라. 애굽왕 바로가 군대를 몰고 우리 조상들을 추격했을 때, 우리 조상들이 홍해에서 어떻게 구출되었던가를 생각해 보아라.
이제 우리는 하늘에 호소하자. 그러면 하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고, 우리들과 맺은 계약을 상기하실 것이며, 우리 앞에 있는 저 적군을 오늘 무찔러 주실 것이다. 이제 모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살려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적군은 자기네 쪽으로 진격해 오는 유다 군을 멀리서 보고, 교전하려고 진지에서 나왔다. 한편 유다의 부하들도 나팔을 불고 교전하였다. 그 결과 이방인들이 패배를 당하여 평야 쪽으로 도망쳐 갔다. 적의 후위 부대는 전부 칼에 맞아 쓰러지고, 유다 군은 게셀과 에돔의 아소토와 얌니아까지 추격하여 적군 3,000명을 죽였다. 유다는 군대를 이끌고 적을 추격하다가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일렀다.
“전리품을 탐내지 마시오. 우리는 앞으로 더 싸워야 합니다. 고르기아스와 그의 군대가 바로 우리 가까이 저 산속에 있습니다. 적을 경계하여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무찌르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 마음대로 전리품을 차지하시오.”
유다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산봉우리에서 적군 몇 명이 이 쪽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적군은 자기네 진지에서 여전히 솟아오르고 있는 연기를 보고, 자기네 진지가 불타 버렸으며 자기편들은 도망쳐 버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새파랗게 질렸다. 게다가 유다의 군대가 평야에서 공격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고는 블레셋 땅으로 모두 도망쳤다. 유다는 다시 돌아가서 적진을 약탈하여, 많은 금과 은과 보라색 천과 주홍색 천과 보물들을 거두었다. 유대인들은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면서 하늘을 향하여 찬미 부르며,“하나님은 선하시고 그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하고 찬양하였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살아 도망간 적군들은 리시아스에게 돌아가서 그 동안의 일을 보고했다.
리시아스는 이스라엘에서 자기가 계획한 여러 가지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왕명을 받들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 충격을 받아 낙담하였다. 그 다음해에 리시아스는 정예부대 육만과 기병 오천을 모아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려 했다. 리시아스의 군대는 에돔으로 들어와서 뱃술에 진을 쳤다. 이에 대항하여 유다는 군대 일만을 거느리고 맞섰다. 적군이 강대한 것을 보고 유다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주님,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종 다윗의 손을 빌어 거인의 공격을 물리치셨으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시종의 손에
블레셋 군대를 넘겨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저 적군을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손 안에 넘기시고,
그 보병과 기병에게 치욕을 안겨 주소서.
저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으시고
스스로 강하다고 믿고 있는 저들의 콧대를 꺾으시고
파멸을 당하여 떨게 해 주소서.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한칼로 저들을 쳐부수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을 아는 모든 이로 하여금 당신을 찬미하여
노래 부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유다는 적과 교전하여 백병전을 벌린 끝에, 리시아스군을 오천명이나 죽였다. 리시아스의 군대는 무너지고, 생사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울 태세를 갖춘 유다 군의 사기는 점점 올라갔다. 이것을 본 리시아스는 안티오키아로 퇴각, 전보다 더 큰 군대를 조직하여 유다를 다시 치려고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이제 적을 다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여 다시 봉헌합시다.”하고 말했다. 그리하여 전군이 집합하여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성소는 황폐해 있고 제단은 더럽혀졌으며, 성전 문들은 타 버렸고, 성전 뜰에는 마치 숲이나 산같이 잡초가 우거져 있었으며, 제사장들의 방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들은 옷을 찢고 머리 위에 재를 뿌리고 크게 통곡하며 땅에 엎드렸다. 그리고 나팔 소리를 신호로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부르짖었다.
한편 유다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요새 안에 있는 적군을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성소를 정화하였다. 유다는 율법에 충실하고 흠이 없는 사제를 뽑아, 그들에게 성소를 정화하게 하고, 더럽혀진 돌들을 부정한 곳으로 치우게 했다. 그들은 더럽혀진 번제 제단을 어떻게 할까 의논한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방인들에게 더럽혀진 제단이 자기들의 치욕거리로 남지 않도록 헐어 버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제단을 헐어 버리고, 그 돌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그 처리 방법을 지시할 때까지 성전 산 적당한 곳에 쌓아두었다.
그 다음 그들은 율법대로, 자연석을 가져다가 전의 제단과 같은 제단을 새로 쌓았다. 그들은 성소와 성전의 내부를 수리하고 성전 뜰을 정화했다. 새로 거룩한 기물을 만들고, 등경과 분향제단과 상을 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그리고 나서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등경의 등에 불을 붙였다. 등불이 성소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또 상에 빵을 얹어 놓고 휘장을 쳤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성소 꾸미는 일을 모두 끝마쳤다.
B.C.165년 기슬레월, 즉 구월 이십오일 이른 아침에,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율법대로 새로 만든 번제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쳤다. 이방인들이 그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 날과 그 때에, 그들은 노래와 비파와 퉁소와 꽹과리로 연주를 하며 그 제단을 다시 바쳤다. 모든 백성은 땅에 엎드려,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하늘을 경배하며 찬양하였다. 제단 봉헌 축제는 팔 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구원의 제물과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그들은 성전의 정면을 금으로 만든 왕관과 방패로 장식하고, 제사장들의 방을 수리하여 문을 달았다. 이방인들이 주고 간 치욕의 흔적이 가셔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들은, 매년 기슬레월 이십오일부터 팔일 간 기쁜 마음으로 제단 봉헌 축일을 지키기로 정하였다. 그 때 그들은 시온산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고 든든한 망대를 세워, 이방인들이 전에 한 것처럼 그 거룩한 산을 짓밟지 못하게 하였다.
유다는 또 시온산을 지키기 위해 그 곳에 수비대를 배치하고, 백성들을 에돔 쪽으로부터 지키는 요새를 마련해 주기 위해, 벳술 진지를 강화하였다. 그 주변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제단을 다시 쌓고 성소를 복구하여 전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자기네들과 함께 살고 있던 야곱의 후손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유대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던 에서의 자손들을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고 굴복시킨 다음 많은 전리품을 빼앗았다. 한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온 이스라엘과 모든 이방인들 사이에, 그들의 이름이 알려진 곳 어디에서나 큰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찬양하면서 그들에게 몰려 들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나아가 남쪽 땅에 사는 에서의 자손들을 공격하여, 헤브론과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요새들을 부수며 주위의 망대들을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블레셋 땅으로 진격하여 마리사를 지났다. 그 때에 명성을 얻으려고 무모하게 싸우러 나갔던 사제 몇 사람이 전사했다. 유다는 블레셋 땅 아소토로 향하였다. 거기에서 유다는 그들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그들이 섬기는 조각 우상들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여러 도시에서 재물을 약탈해 가지고 유다 땅으로 돌아왔다.
안티오커스는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의 엘리마이스라는 도시가 금과 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도시의 신전에는 재물이 무척 많았고, 특히 마케도니아 왕 필립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째 왕이 되었던 알렉산더 대왕이, 이 도시에 남겨 놓은 투구와 갑옷과 무기들이 그 성전 안에 있었다. 안티오커스는 그 도시로 가서 그 곳을 점령하고 재물을 약탈하려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도시 사람들이 그의 계획을 미리 알고 그와 맞서 싸워 왕을 쫓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왕은 비통에 잠겨 그 곳을 떠나 바벨론으로 도망쳐 갔다.
안티오커스가 페르시아에 있는 동안, 전령이 와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즉 유다 나라에 진격했던 군대가 패배하였으며, 대군을 이끌고 먼저 진격했던 리시아스가 유대인들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것, 유대인들은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포로와 많은 전리품으로 강력하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유대인들은 안티오커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가증스런 우상을 부수어 버리고, 그 대신 그 성전 주위에 전과 같이 높은 성벽을 둘러쌓았으며, 왕이 세웠던 도시 벳술에도 높은 성곽을 쌓았다는 것이었다. 안티오커스 왕은 이 보고를 듣자 매우 놀라 큰 충격을 받고, 속이 상한 끝에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겹치고 겹친 슬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측근과 친구들을 곁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사라져 갔으며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 권좌에 있을 때에 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다. 나에게 이렇게 큰 고통과 슬픔이 닥치다니 어찌 된일이냐?’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예루살렘에서 몹쓸 짓을 했구나. 거기에 있는 금은 기물을 모두 빼앗았고, 까닭도 없이 유다의 주민들을 몰살하려고 군대를 보냈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재난을 당하는 구나. 아! 나는 큰 슬픔을 안고 이국 땅에서 죽어간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인 필립을 옆에 불러, 그에게 온 왕국의 통치를 맡겼다. 자기의 왕관과 옷과 반지를 그에게 주고, 왕자 안티오커스를 맡기며 잘 교육하고 잘 길러 왕이 되도록 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B.C.164년에 안티오커스 왕은 그 땅에서 죽었다. 리시아스는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렸을 때부터 길러 온 왕자 안티오커스를 왕위에 앉히고, 그 이름을 유파톨이라 불렀다.
한편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있던 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성소 주위에 몰아넣고 기회만 있으면 그들에게 해를 끼쳐 못살게 굴며 이방인들의 세력을 돋구어 주었다. 유다는 이들을 전멸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온 백성을 불러 모아 공격할 채비를 하였다. 이렇게 집합하여 예루살렘 요새를 포위한 것은 B.C.163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투석대와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성에 갇혔던 자들의 일부가 포위망을 뚫고 나가, 이스라엘의 다른 반역자들과 합류하여 왕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언제 정의의 칼을 뽑아 우리 형제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페하의 부왕을 섬겨 왔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였고 그 분의 칙령에 복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족의 원수까지 되었고, 그들은 우리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고 우리 재산을 강탈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뻗쳤을 뿐아니라 전 영토를 짓밟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오늘도 그들은 예루살렘 요새를 점령하려고 진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라 성소와 벳술을 요새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 서둘러 그들을 먼저 치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말씀드린 것보다 더 흉악한 짓을 할 것이며, 그 때에는 폐하께서도 그들을 당해 낼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몹시 노하여, 자기 친구인 보병 사령관들과 기병 대장들을 보두 불러 모았다. 다른 나라와 섬나라에서도 용병들을 모집해 왔다. 그 군대는 보병 십만, 기병 이만, 전쟁 훈련을 받은 코끼리가 32마리였다. 그들은 에돔을 지나서 벳술에 진을 치고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어 여러날 동안 싸웠다.
그러나 유다의 군대 역시 성을 나와 기구들을 불사르며 용감하게 싸웠다. 유다는 그 요새를 떠나 벳즈가리야에 진을 치고 왕의 군대와 맞섰다. 왕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군대를 이끌고 급히 벳즈가리야를 향해 돌진했다. 거기에서 그의 군대는 전투 테세를 갖추고 나팔을 불었다. 그들은 코끼리를 잘 싸우게 하려고 포도즙과 오디의 붉은 즙을 눈 앞에 보여 자극시켜 가지고 네모꼴 진지 사이에 배치 하였다. 그리고 쇠사슬 갑옷에 구리 투구를 쓴 보병 천 명과 정예 기병 오백명이 매 코끼리마다 배치되었다. 코끼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 기병들이 미리 거기에 가 있었고, 코끼리가 움직이면 함께 따라 움직여서 코끼리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코끼리 등에는 방비책으로 단단한 나무 탑을 얹고, 그것을 띠로 코끼리 배에다 묶어 놓았다. 그 탑속에는 코끼리를 모는 사람 이외에, 코끼리를 타고 싸움을 하는 병사가 셋씩 타고 있었다.
왕은 나머지 기병들을 자기 군대의 양측면에 배치하여 네모꼴 진지들을 보호하게 하는 한편,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였다. 마침 태양이 금과 구리로 만든 방패들을 비추어, 그 번쩍이는 빛으로 주위의 산들이 마치 불타오르는 횃불과 같아 보였다. 왕의 군대 일부는 산등성이에, 또 일부는 얕은 평지에 배치되어 보무당당하고 질서 있게 전진하였다. 수많은 군사들의 고함소리와 행진하는 소리, 그리고 무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군대는 실로 막강했다.
그러나 유다는 군대를 거느리고 이들을 맞아 싸워, 왕의 군대 육백명을 쓰러뜨렸다. 아와란이라고 불리던 엘르아잘은 적의 코끼리 중에서 월등히 큰 코끼리를 보았다. 그런데 그 코끼리의 무장이 굉장하였으므로, 틀림없이 코끼리에 왕이 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포를 구하고 용맹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는 적의 네모꼴 진지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그 코끼리에게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좌충우돌 적병을 치자, 적병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물러섰다. 엘르아잘은 그 코끼리 밑으로 뛰어 들어가서 칼로 배를 찔러 죽였다. 그러나 코끼리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도 깔려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왕의 군대 일부는 유대인들을 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왕 자신은 유다 지방과 시온산을 향해 진을 쳤다.
한편 벳술 사람들은 마침 그 해가 그 고장의 안식년이어서 농사를 짓지 못했으므로, 양식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 도시를 버리고 물러 나왔다. 왕은 벳술 사람들에게 화평을 제의했다. 왕은 벳술을 점령하고, 그 도시를 지키기 위하여 수비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성소를 포위하여 투석대와 성을 공략하는 여러 가지 기구를 장치하고, 분화기와 투석기, 그리고 활과 돌을 투사하는 기계로 공격했다. 유대인들도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어, 그들을 대항하여 오랫동안 싸웠다. 그런데 그 해는 안식년인데다가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다가 유다로 돌아온 동포들이 남은 식량을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졌다. 그 기근을 참을 길이 없어, 모두가 자기 집으로 흩어져갔고 성소에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때 안티오커스 왕 임종 때 왕으로부터 왕자 안티오커스를 잘 길러 왕으로 세워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필립이, 왕과 함께 원정 갔던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와 메대로부터 돌아와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는 말이 리시아스의 귀에 들어갔다. 리시아스는 다급해져서 철군하기로 결심하고, 왕고 군대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식량마저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맞서고 있는 적은 대단히 강합니다. 한편 우리에게는 본국의 사태를 수습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군과 악수하고, 적군뿐만 아니라 그들의 온 민족과 화목하게 지냅시다. 저들에게 자유를 주어서 전과 같이 자기네 율법을 따라서 살 수 있게 해 줍시다. 우리가 그들의 율법을 폐지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노여움을 샀고, 따라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제안은 왕과 지휘관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왕은 유대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화평을 제의했고 유대인들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조건을 두고 임시정부격인 의회는, 하시딤계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에 하시딤의 목표인 종교의 자유가 눈앞에 보이자 쉽게 회해에 응하고 말았다. 마카비는 이에 대하여 반대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강화조약이 체결되자, 알키무스(Alcimus)가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였고 뒤이어 알키무스는 수많은 하시딤을 처형하였다. 왕과 지휘관들이 강화조약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으므로, 유대인들은 그 요새를 비우고 나왔다. 그러나 왕은 시온산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견고한 요새를 보고는, 자기가 맹세한 약속을 깨뜨리고 그 시온산 성을 무찌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급히 그곳을 떠나 안티오키아로 돌아 왔다. 그는 필립이 그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와 싸워 실력으로 그 도시를 점령했다.
BC 162년에 셀류크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가, 얼마 안되는 군대와 함께 로마를 벗어나 해안 지방에 있는 어떤 도시에 상륙하여, 그 곳에서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했다. 그가 자기 조상들의 왕궁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의 군대가 안티오크스와 리시아스를 체포하여 그에게로 끌고 오려고 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이 사실을 보고 받고,“그들의 얼굴은 보기도 싫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의 군대는 그 두 사람을 죽여 버렸다. 이렇게 하여 데메트리우스는 그 나라의 왕좌에 올랐다.
그 때에 자기 민족을 반역하고 율법을 어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키무스라는 자와 함께 그를 찾아왔다. 알키무스는 그들의 수령으로서 대제사장직을 노리던 자였다. 알키무스는 데메트리우스 왕에게 자기 민족을 고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폐하의친구들을 몰살시켰고, 우리들을 고향에서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가장 믿으시는 분을 한 분 그리로 보내시어, 유다가 우리들을 살육하고 임금님의 영토를 짓밟은 그 참상을 보게 하시고, 그 분으로 하여금 그 원수들과 동조자들을 모두 벌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왕은 자기 친구 중에서 바키데스를 뽑았다. 바키데스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영주로서, 온 왕국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으며 왕의 충신이었다. 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반자 알키무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바키데스와 함께 보내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대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유다 땅에 도착하였다.
바키데스는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평화의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적이 대군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평화제안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율법학자단은 알키무스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쪽에서 처음으로 화평을 제의한 사람은 하시딤이라고 하는 경건파(하시딤)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론의 후예 한 사람이 사제로 군대와 함께 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과연 알키무스는 대표단에게 평화를 보장하며, “우리는 당신들에게나 또 당신들의 친구들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맹세하였다. 이렇게 그들을 믿게 한 후에, 알키무스는 그들 중에서 육십 명을 체포하여 그 날로 죽여 버렸다.
이 사건을 예언한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있다.“당신 성도들의 살이 사방에 흩어지고 그 피가 예루살렘 주변에 물처럼 흘러도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은 공포에 싸여 떨며 서로 말하였다. “저 자들에게는 진실도 정의도 없다. 제 입으로 한 맹세도 협약도 다 깨뜨려 버렸다.”
바키데스는 예루살렘에서 철수하여 벳자잇으로 가서 진을 쳤다. 거기에서 그는 군대를 시켜 자기에세 귀순해 온 탈주병들과 이스라엘 백성 여럿을 잡아 죽여 깊은 우물에 넣었다. 바키데스는 그 지방을 알키무스에게 맡긴 다음 그를 보호하기 위한 군대를 남겨 놓고 왕에게로 돌아갔다. 알키무스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위신을 지키느라고 안간힘을 썼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모두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유다 땅을 지배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다.
알키무스와 그 일당이, 이방인들 이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보고, 유다는 유다 땅을 두루 다니면서 이탈자들에게 보복하고 그들이 지방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알키무스는 유다와 그의 군대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고, 도저히 그들에게 맞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에게로 돌아가서, 유다와 그 부하들이 흉악한 자들이라고 고발하였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명성 높은 장군 가운데 한사람인 니카노르를 유다 땅으로 보내며, 그 민족을 없애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니카노르는 이스라엘을 미워할 뿐아니라 적대시해 오던 사람이었다. 니카노르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거짓 평화 사절을 본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전쟁을 하지 맙시다. 나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당신과 만나기 위해 부하 몇 사람만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니카노르는 유다가 있는 곳에 갔고, 그들은 서로 평화롭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적군은 유다를 납치해 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유다는 니카노르가 딴 생각을 품고 자기에게 왔다는 정보를 듣고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니카노르는 자기의 계획이 탄로난 것을 알고 카파르살라마 부근으로 진군하여 유다와 맞서 싸웠다. 니카노르 군은 약 오백 명이 죽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다윗의 도시로 도망쳐 갔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니카노르는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와 백성의 원로들과 함께 그를 환영하고, 왕을 위한 제물이라고 하면서 번제물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니카노르는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거만한 말을 지껄이면서 그들에게 침을 뱉고, 분노를 떠뜨리며 맹세하였다. “만일 유다와 그 군대를 당장 내 손에 넘겨주지 않으면 내가 승리하고 돌아온 후에 이 건물을 불살라 버리리라.“ 말을 마치고 그는 화를 내며 떠났다.
제사장들은 성전으로 들어가 제단과 성소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 이 집은 당신께서 세워주신 집입니다. 이 집은 당신 백성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며, 당신께 기도 드리고 간구하는 곳입니다. 저 자와 저 자의 군대에게 원수를 갚아 주시고, 한 칼로 저들을 죽여주십시오. 저들이 범한 여러 모독을 잊지 마시고 절대로 살려 두지 마십시오.”
니카노르는예루살렘을 떠나 벳호론에서 진을 쳤고, 거기에 시리아에서 온 원조 부대가 합세했다. 유다는 유다대로 군사 삼천 명으로 아다사에 진을 쳤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올렸다.
"옛날 앗시리아 왕이 보낸 자들이 당신을 모독했을 때에, 당신의 천사가 나타나서 적군 십팔만오천명을 죽였습니다. 오늘도 니카노르가 당신의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했음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의 군대를 무찔러 주십시오. 그 저지른 행실대로 저 악한 자를 다스려 주십시오.”
아달월 십삼일에 양쪽 군대는 교전하였는데, 니카노르 군이 참패를 당하고 니카노르 자신은 전투에서 제일 먼저 죽었다. 그의 군대는 니카노르가 죽은 것을 보고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유다의 군대는 신호의 나팔을 불어대면서 그들을 뒤따라 아다사에서부터 게셀까지 온종일 추격하였다. 게다가 부근의 모든 유다 마을로부터 사람들이 나와 패잔병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은 되돌아 설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고 모두 칼에 맞아 죽었다. 유다의 군대는 많은 물자를 탈취하고 전리품을 거둔 다음, 니카노르의 머리와 그가 거만하게 내저었던 오른 팔을 잘라가지고 돌아와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보는 곳에 걸어 놓았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그 날을 큰 명절과 같이 경축하였다. 그날을 기념하여 매년 아달월 십삼일을 경축일로 정하였다. 유다 땅은 그 때부터 얼마 동안 평화로웠다.
그런데 유다는 로마인들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즉, 로마군대는 대단히 강한데, 동맹을 맺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호의를 베풀고, 그들과 손잡은 사람들에게는 우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로마 군대는 과연 강하였다. 그는 로마군대가 갈리아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고울 사람들을 정복하고 속국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스페인 지방에 있는 금광과 은광을 빼앗기 위하여 싸운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은 영토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빈틈없는 계획과 굴하지 않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전 영토를 잘 다스렸다. 대부분의 왕들은 매년 조공을 바쳤고, 변방에서 자기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왕들이 있으면 그들을 쳐부수고 큰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기띰왕 빌리보와 페르시우스, 그리고 자기들에게 반항하여 군대를 일으킨 자들을 모두 무력으로 분쇄하고 정복하였다.
그뿐 아니라 코끼리 백이십 마리와 기병, 전차 그리고 강력한 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걸어 온 아시아 왕 안티오커스 대제를 분쇄하고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안티오커스와 그 후계자들에게 많은 조공과 인질을 바칠 것을 명령하고, 인도 지방과 메대 지방과 라디아 지방, 그리고 그들의 영토 중에서 가장 좋은 땅을 바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로마 군대는 그 땅을 안티오커스에게서 빼앗아 자기들의 왕 유미네스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이 로마사람들을 쳐서 말망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에, 로마인들은 이것을 알고 장군 하나를 보내어 그들과 싸우게 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아녀자들은 포로로 잡혀갔으며 재산을 약탈당하고 그 땅은 정복되어, 요새는 다 부서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 밖에도 로마인들에게 맞서는 나라나 섬들은 모두 분쇄되었고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친한 나라나 그들에게 의뢰하는 사람들과는 우호관계를 굳게 맺었다.
이렇게 먼 나라와 가까운 나라의 왕들을 모두 정복하였기 때문에, 로마군의 이름만 들어도 모두들 무서워하였다. 로마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그를 도와 왕을 시킬 수가 있었고, 자기들이 싫으면 왕위에서 끌어 내렸다. 이렇게 그들의 세도는 하늘까지 뻗쳤다. 그러나 그들 중의 아무도 왕관이나 진홍색 용포를 두르고 거만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원로원을 설치하고, 320명 원로원 의원들이 매일같이 모여 쉬지 않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방도를 논의하였다. 원로들은 해마다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권한과 온 제국의 통치를 맡겼다. 백성은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잘 복종하고 어느 누구도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다는 아코스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인 유폴레모스와, 엘르아잘의 아들 애손을 뽑아서 로마로 보내어 로마인들과 우호조약을 맺게 하였다. 유다는 그리스인들이 다스리는 시리아 왕국이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으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심산이었다. 사절들은 아주 긴 여행 끝에 로마에 도착하여 원로원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우리는 마카비우스라고 하는 유다와 그 형제들과 유다 나라의 온 백성이 보내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동맹을 맺고 우호조약을 맺으려고 하는 바입니다. 우리를 여러분의 동맹 우호국의 하나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
이 제의는 원로원 의원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유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어, 유다인들로 하여금 우호 동맹 관계를 맺은 문서를 남기게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로마인과 유대인 두 민족이, 바다와 육지에서 영원히 번영하기를 빈다. 두 민족에게는 전쟁이 없고 원수로서의 침략이 없을 것이다. 만일 로마나 그 영토에 있는 동맹국 중의 어느 하나에게라도 먼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유대민족은 이쪽의 요청이 있으면 동맹국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참전해야 하며, 적국에게 식량이나 무기나 돈이나 선박등을 주거나 보급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로마의 결정이다. 유대 민족은 아무런 보상을 생각하지 말고 이 협정을 지켜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유대 민족에게 먼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로마인들은 그쪽의 요청이 있으면 동맹국으로서 기꺼이 참전해야 한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유대 민족을 공격하는 적국에게 식량이나 무기나 돈이나 선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로마의 결정이다. 로마인들은 이 협정을 지킬 것이며 이 협약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로마인과 유대 민족 사이에 맺은 조약문이다. 만일 이 조약이 발효한 후, 양쪽이 여기에 무엇을 첨가하거나 삭제하려 할 때에는 양쪽의 합의 하에 그렇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첨가하거나 삭제한 것도 조약의 효력을 갖는다.“
로마인들은 이 조약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시리아 왕데메트리우스가 당신들에게 가했다는 악행에 대해서 우리들은 벌써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 어찌하여 그대는 우리의 우방이며 동맹국인 유대인들에게 가혹한 속박을 가했는가? 만일 유대인들이 그대의 잘못을 또다시 고발해 온다면, 우리는 단연코 그들의 권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그대와 싸울 것이다."
데메드리우스 왕은 니카노르가 전장에서 죽고 그 군대는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키데스와 알카무스를 다시 유대 땅으로 보내어 오른쪽 진영을 담당한 정병을 인솔하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리로 통하는 길로 진군하여, 아르벨라 지방의 메살롯을 향해 진을 쳤다. 그리고 그 지방을 점령한 후 많은 사람을 살육하였다.
셀류크스 왕조152년 정월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진을 쳤다가, 보병 이만과 기병 이천을 거느리고 그 곳을 출발하여 베레아로 향하였다. 그때 벌써 유다는 정예 병력 삼천을 데리고 엘라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적군의 수효가 많은 것을 보고 몹시 무서워하여 많은 자들이 진영을 탈출, 남은 병력은 불과 팔백 명 뿐이었다. 싸움이 임박한 마당에 많은 병사들이 탈출한 것을 안 유다는, 병력을 다시 모을 만한 시간이 없었으므로 기가 죽었다. 유다는 몹시 낙담되었으나, “용기를 내어라. 혹시 우리가 그들과 맞서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적을 향해 돌진하자.” 하고 남은 자들을 격려하였다. 그래도 유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적군을 보고 도망가다니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면 우리 동포를 위해 용감하게 죽자. 우리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일은 조금도 남기지 말자.”
그때에 적군은 진지를 떠나 유다의 군대와 맞서 싸우려고 진격해 왔다. 그들의 기병대는 두 부대로 나뉘었고, 투석 부대와 활 쏘는 부대와 특전대들이 모두 다투어 선봉을 섰다. 바키데스는 군대 오른쪽에 있었고, 주력부대는 나팔을 불면서 군대 양측면에서 진격해 나왔다. 유다가 인솔하는 군대도 나팔을 불었다. 양쪽에서 터진 고함소리로 온 땅이 진동하였고, 전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유다는 바키데스와 그 군대의 주력이 진영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 주위에 몰려든 용감한 군사들과 함께 적군의 오른쪽을 분쇄하여 아조토산까지 그들을 추격해 갔다. 왼쪽 진영에 있던 적군은 자기 진영의 오른쪽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공격 방향을 바꾸어 유다와 그 군대의 배후를 찔렀다. 전투는 격렬하게 되어 양군이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에서 유다가 전사하였고, 그의 부하들은 도망쳤다. 유다의 형제 요나단과 시몬은 유다의 시체를 거두어 모딘에 있는 선조들의 묘지에 묻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몹시 울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통곡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한 영웅이 죽다니 웬일인가.”하고 울부짖었다.
유다의 행적과 그가 치른 전쟁과 그의 빛나는 공적과 위대한 명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유다가 죽은 후 이스라엘 전 영토에서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고, 악을 일삼는 자들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마침 큰 기근이 있어 온 나라가 수중에 다스리게 하였다. 그들은 유다의 편이었던 사람을 찾아내어, 바키데스에게 데리고 갔다. 바키데스는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보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이 자취를 감춘 후, 처음 맛보는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다의 동지들이 모두 모여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형 유다가 죽은 후로, 유다처럼 바키데스나 우리 민족을 증오하는 자들 같은 원수들을 대항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전쟁을 완수하기 위해, 유다 대신 당신을 뽑아 우리를 영도하는 지도자로 삼았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유대 민족의 영도권을 잡고 형 유다의 후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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