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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비혁명과 하스몬왕조/ 요나단(Jonadan) 5

영국신사77 2007. 5. 23. 23:21
             마카비혁명과 하스몬왕조/ 요나단(Jonadan) 5
 
 
출처 블로그 > oxhill4952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oxhill4952/110004943779
 
 

 

                                        요나단(Jonadan)

                                                             

   바키데스는 이 사실을 알고 요나단을 없애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 그리고 그의 모든 동지들은 그 계획을 알고 드고아 광야로 후퇴하여 아스팔 못가에 진을 쳤다. 바키데스는 그 날이 안식일인 것을 알고, 군대를 이끌고 요르단을 건넜다.  요나단은 민중을 맡아 다스리는 자기 형 요한을 동지인 나바테아 사람들에게 보내어, 유대인들의 짐을 맡아 보관해 달라고 청하게 했다. 

 

  그런데 메드바 지방의 얌브리 사람들이 나타나 요한을 잡아 죽이고, 그가 가지고 가던 물건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얌브리 사람들에게 큰 결혼식이 있었는데,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은 그들이 가나안의 한 귀족의 딸인 신부를 데리고 성대한 행렬을 지어 나다밧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의 형 요한의 죽음을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가 숨어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마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많은 짐을 지고가는 행렬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신랑과 그의 친구들과 그의 형제들이 악삳르과 가수들과 무장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신부 일행을 맞으러 나오고 있었다. 잠복해 있던 요나단 형제는 달려들어 그들을 죽여 버렸다. 적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살아 남은 자들은 산으로 도망쳐 버렸다. 거기에서 유대인들은 얌브리인의 물건을 모두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그 결혼식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들의 음악소리는 통곡소리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 형의 원수를 갚고 돌아와 요단강변의 습지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바키데스는 안식일을 골라 큰 군대를 거느리고 요단강가에 도착하였다. 그 때에 요나단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제 힘써 싸워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형편은 어제와 그제와는 같지 않다. 보아라.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 뒤에는 요단강이 가로막혔고 좌우에는 습지와 숲이 둘러 있으니 비켜 나갈 길이 없다. 원수의 손에서 구출해 달라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자.”

 

  전투가 시작되자, 요나단은 칼을 뽑아 들고 바키데스를 치려 했다. 그러나 바키데스는 물러서며 그의 칼을 피하였다. 그 때에 요나단과 그의 일행은 요단강을 헤엄쳐 건너편으로 갔다. 그러나 적군은 요단강을 건너서까지 그들을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그날에 바키데스 군에서 죽은 사람은 천 명에 달하였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바키데스는 여리고, 엠마오, 벳호론, 베델, 딤나다. 바라돈, 데폰등 유다 도시들을 요새화하여, 높은 성을 쌓고 대문을 만들어 세워 빗장으로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을 대항하여 싸울 수비병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그 자방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다가 예루살렘 요새안의 감옥에 감금해 놓았다.

 

  셀류크스 왕조 153년 이월에 알키무스는 성소 내전의 벽을 헐라고 명령하였다. 선지자들의 업적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벽을 헐기 시작했을 때에  알키무스가 갑자기 졸도하여 작업이 중단되었다. 그는 입이 마비되고 혀가 굳어져서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으며, 공사에 관해서도 한 마디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알키무스는 심한 고통끝에 마침내 죽었다. 

 

  알키무스의 이와 같은 죽음을 본 바키데스는 왕에게로 돌아가버렸다. 그 후 2년동안 유다 땅은 평온하였다.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모두 모여 모의를 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요나단과 그 일당이 태평 세월을 즐기고 있지 않소? 그러니 바키데스를 다시 모셔 옵시다. 그러면 하룻밤 사이에 저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 모의를 하고 그들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의논하였다.  바키데스는 대군을 이끌고 떠나면서 유다에 있는 자기의 모든 동맹원들에게 비밀편지를 보내어, 요나단과 그의 부하들을 잡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탄로 나 일은 실패로 끝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흉악한 음모의 주동자들이었던 유다 사람 약 오십 명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요나단과 시몬은 그 부하들과 함께 광야에 있는 벳바시로 물러나, 전에 파괴된 곳을 수축하고 그 곳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바키데스는 이것을 알고 유다 지방에 있는 자기 편에게 지원을 청하고는 전 군대를 소집, 진군하여 벳바시를 향해 진을 쳤다.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만들고 여러 날 성을 공격하였다.

 

  요나단은 자기 형 시몬을 성에 남겨 놓고, 얼마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 시골로 떠났다.  그는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오도메라와 그 형제들, 그리고 바시론 가문의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그들도 요나단의 군대에 합세하여 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편 시몬과 그의 군대는 성에서 나와 성을 공략하는 적군의 기구를 불살라 버렸다. 이렇게 양면에서 바키데스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전과 공격은 수포로 돌아가 바키데스는 대패하여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키데스는 유다 사람들을 치자고 권유했던 악한들에게 크게 화를 내어, 그들을 많이 죽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요나단은 사신을 보내어 바키데스에게 화평을 맺고 포로를 돌려보내달라고 했다. 바키데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요나단에게 절대로 해악을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전에 유다 땅에서 잡아 온 포로들을 놓아주었다.  그 후에 바키데스는 자기 땅으로 돌아가, 다시는 유대인들의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이후 전쟁이 없었으며, 요나단은 믹마스에 자리를 잡고 백성을 다스리며, 이스라엘 민족 반역자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셀류커스 왕조 160년에 안티오커스의 아들 알렉산더 에피파네스가 데메트리우스의 영토 프톨레마이스에 와서, 그 도시를 점령해 버렸다.  그 곳 주민들이 자기를 환영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왕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데메트리우스 왕은 큰 군대를 모아 그를 쳐부수려고 출전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이 알렉산더와 결탁하여 우리를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요나단과 그 형제들과 그 동포들에게 저지른 온갖 악행을 요나단이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에게 자기 군대를 모집하여 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동맹으로 삼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잡아 두었던 인질을 돌려보내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이런 제의를  받은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와서 온 주민과 예루살렘 요새의 군대들이 들을 수 있도록 데메트리우스의 편지를 읽었다.  그들은 데메트리우스왕이 요나단에게 군대를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몹시 무서워하였다. 요새를 지키던 군대들은 인질을 요나단에게 주었고, 요나단은 그들을 부모들에게 돌려보냈다.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주둔하면서 그 도시를 수축하고 건설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도시의 방어를 위해 성벽을 쌓고, 네모진 돌로 시온산을 둘러쌓도록 일꾼들에게 명령하였다.  모든 일이 명령대로 잘 된행되었다. 바키데스가 세운 요새 안에 살던 이방인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도망쳤다.


  그들은 저마다 살던 곳을 버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벳술은 피난처였기 때문에, 율법과 계명을 저버린 자들 몇몇이 그 곳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왕은 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리고 요나단과 그 형제들의 전쟁 이야기와 그들의 빛나는 공적과 그들이 겪는 노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왕은, “그와  같은 인물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그를 친구로 삼고 우리의 동맹자로 삼아야 할 때이다.” 하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요나단에게 써 보냈다.

 

  “알렉산더 왕이 요나단 형제에게 인사드립니다. 나는 당신이 용감한 사람이며 우리의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당신을 귀국의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왕의 친구라는 칭호를 주는 바입니다.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알렉산더는 이 편지와 함께 진홍색 제사장 의복과 황금관을 요나단에게 보냈다. 이렇게 하여 요나단은 셀류크스 왕조 160년 칠월 초막절을 기하여 거룩한 제사장의 의복을 입었다. 그리고 군대를 모집하여 충분한 무기를 준비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데메트리우스  왕은 몹시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말하였다. 

 

  "알렉산더가 우리보다 먼저 유대인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자기 지위를 굳히고 있으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도 유다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높은 지위와 선물을 약속하여 그들의 도움을 청해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 데메트리우스 왕이 유다 국민에게 인사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우리와의 협약을 지키고 우호관계를 계속하여, 우리의  적과 동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우리와의 신의를 지켜주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호의에 대해서는 후히 사례하겠습니다. 당신들에게 여러 가지를 면제해 줄 것이며, 여러 가지 선물을 내릴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당신들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조공과, 소금세와 왕관세를 면제해 주고 또 나에게 바치는 공물의 삼분의 일세와, 과일의 이분의 일세를 오늘부터 면제해 주는 바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시작하여, 언제까지라도 유다 나라와 사마리아, 갈릴리, 그리고 유다에 편입된 세 지역에서 지금 말한 세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그 지역은 신성한 장소로 인정하고, 십분의 일세와 그밖의 다른 조세를 면제하는 바입니다. 나는 또한 예루살렘 요새의 지배권을 포기하고, 대제사장에게 그것을 양도합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이 요새를 수비하기 위하여 자기가 뽑은 군대를 거기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유다 땅에서 나의 왕국 각처로 끌려 온 유다인 포로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조건 자유석방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인에게서 가축세를 받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유다인의 모든 축제일과 안식일과 초하루 축제와 그 밖의 축일로 정해진 날은 물론, 이 축제일들의 전 삼일, 후 삼일 간을 온 왕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날로 선포합니다.

 

  이런 날에는 어느 누구도 유대인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어떠한 부담도 줄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삼만 명까지 왕의 군대에 편입될 수 있고, 그들은 왕의 모든 군대와 똑같이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러 곳에 있는 왕의 큰 요새에 배치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왕국의 요직을 맡아 왕의 신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지휘할 사람들은 유대인 중에서 나올 것이며, 유대 민족의 율법에 따라서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 땅에서 왕명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방에서 유다로 편입된 세 지역은 완전히 유다 땅이 되고 한 사람의 영주밑에 속하게 될 것이며, 대제사장은 이외의 아무런 권위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성소에 핖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나는 프톨레마이스와 그 인접지역을 예루살렘 성소의 소유로 줍니다.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받아들이는 세입 중, 해마다 은 만오천 세겔을 성전에 바치겠습니다.  전에 성전 금고에 들어오지 않았던 보조금을 징수하여 성전에 바쳐, 앞으로 성전을 위하여 쓰도록 하겠습니다.

 

  또 해마다 성전 수입에서, 나라에 바치던 세금은 은 오천 세겔도 면제합니다. 이 돈은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그 경내에 피난해 들어오는 사람은, 비록 왕에게 빚을 졌거나 다른 어떤 빚을 진 자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안전이 보장되고, 그가 나의 왕국 안에서 가지고 있는 소유물도 안전이 보장됩니다. 성전을 건축하거나 수축하는 모든 비용은 나의금고에서 지불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벽의 건축과 그 주위를 강화하는 비용과 유다 전역에 성을 쌓는 모든 비용도 역시 왕의 금고에서 지불 될 것입니다.“ 

 

  요나단과 그 백성은 이 말을 듣고 믿어지지 않아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데메트리우스가 이스라엘에서 저지른 엄청난 악행과 자기들을 몹시 괴롭혔던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에게 먼저 호의를 표시한 알렉산더를 더 좋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렉산더와 꾸준히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그때 알렉산더 왕은 대군을 모집하여 데메트리우스를 치려고 진을 쳤다. 두 왕이 교전한 끝에 데메트리우스의 군대가 도망쳤고, 알렉산더는 데메트리우스를 추격하여 무찔렀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분전하였고, 데메트리우스는 그 날 전사하였다. 그 후 알렉산더는 애굽 왕 프톨레미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였다.

 

  "내가 이제 내 나라에 돌아와서,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왕좌에 오르고 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데메트리우스를 쳐부숨으로 모든 영토의 영도권을 잡았습니다.  나는 데메트리우스와  교전하여 그와 그의 군대를 무찔렀고 그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서로 우호 관계를 맺고 당신의 딸을 내 아내로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사위가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마음에 들 만큼 당신과 당신의 딸에게 예물을 보내겠습니다.”

 

  프톨레미 왕은 이 제안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와 그 왕좌를 계승한 그 날이야말로 복된 날입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에 써 있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만나볼 필요가 있으니, 프톨레마이스에서 나를 맞아 주십시오. 당신의 원대로 내가 당신의 장인이 되겠습니다.”

 

  그후 프톨레미는 딸 클레오파트라를 데리고 애굽을 출발하여, 162년에 프톨레마이스에 도착하였다. 알렉산더 왕은 그를 영접하였고 ,프톨레미는 딸 클레오파트라를 알렉산더의 아내로 주어, 프톨레마이스에서 왕의 결혼식답게 굉장히 호화로운 예식을 올렸다.  그 때에 알렉산더 왕은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위풍을 떨치며 프토레마이스에 이르러 두 왕을 만났다. 요나단은 두 왕과 그 친구들에게 은과 금과 그 밖의 많은 예물을 바치고 환심을 샀다. 몇몇 율법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악당들이 몰려와서 그를 고소했지만, 왕은 그들의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왕은 오히려 요나단의 옷을 벗기도, 그 대신 진홍의 제사장의 의복을 입히도록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 명령을 받고 그대로 하였다. 그뿐아니라 왕은 요나단을 자기 옆에 앉히고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분과 함께 시내로 들어가서, 무슨 구실로라도 이 분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조금도 그를 괴롭히지 말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라!” 요나단이 왕의 명령으로 영광을 차지하고 진홍색 제사장의 의복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비난하던 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이렇게 왕은 그를 영광스럽게 하였고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로 삼아 그 지방의 군사 및 행정 책임자로 세웠다. 요나단은 매우 기뻐하며 평화스럽게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165년에 데메트리우스 왕의 아들 데메트리우스는 그레데 섬을 떠나 선조들의 땅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왕은 몹시 걱정이 되어,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데메트리우스 왕은 코엘레수리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아폴로니우스는 대군을 모집하여 얌니아에 진을 치고,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우리에게  반항하는 자는 그대 뿐이다. 그대 때문에 나는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 산 속에서 세도를 부리며 우리에게 대항하고 있는가? 만일 그대에게 그대의 군대를 가지고 우리와 싸울 자신이 있거든,  우리가 있는 평지로 내려 오라. 여기서 한번 겨루어 보자. 여러 도시의 군대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  그대는 내가 누구이며, 또 우리를 돕고 있는 사람이 누구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의 조상들이 그들의 땅에서 싸우다가 두 번이나 패주했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고, 따라서 우리와 도저히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곳은 돌 한개, 자갈 하나 없는 곳이며 숨을 곳도 없는 평지이다. 이런 곳에서 그대는 이토록 많은 나의 기병과 보병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아폴로니우스의 말을 들은 요나단은 몹시 분개하였다. 그리하여 병력 일만을 뽑아 예루살렘을 떠났다. 형인 시몬도 그를 돕기 위해 합세하였다. 요나단은 욥바 성을 향해 진을 쳤다. 그 성에는 아폴로니우스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성 사람들은 성문을 잠그고 요나단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요나단의 군대는 그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성 사람들은 무서워서 성문을 열어 주었고, 이렇게 하여 요나단은 욥바성을 점령하였다.

 

  아폴로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기병 삼천과 큰 군대를 정비하여 아소토를 향해 진군하여 욥바성을 지나가는 체하면서 평야로 진군하였다.  그는 자기의 막강한 기병대를 믿고 이런 일을 했던 것이다. 요나단은 아폴로니우스를 추격하여 아소토까지 가서 맞붙어 싸웠다. 아폴로니우스는 기병 천명을 미리 유다 군 후방에 숨겨 놓았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복병이 자기 후방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군은 요나단의 군대를 포위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을 쏘아댔다. 요나단 군은 요나단의 명령대로 그 곳을 잘 방어하였다. 적군의 말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렇게 적의 기병대가 지쳐 있을 때에, 시몬이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적의 주력부대와 맞서 싸웠다. 적은 시몬에게 대패하여 도망갔고, 기병대도 평지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적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소토로 건너가서, 그들의 우상 다곤을 모신 신전으로 들어갔다. 그 때에 요나단은 사소토와 그 주위의 여러 도시를 불사르고 약탈하였으며, 다곤 신전과 그 속으로 도피한 적군들을 불살라 버렸다. 이렇게 하여 칼에 쓰러진 자와 타 죽은 자의 수는 팔 천에 이르렀다. 요나단은 계속 진군하여 아스칼론성을 향해 진을 쳤다. 성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그를 성대하게 맞아들였다. 요나단과 그의 군대는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알렉산더 왕은 이와 같은 보고를 받고, 요나단에게 더욱 큰 영예를 주었다 그뿐 아니라, 관습에 의해 왕의 친족에게만 주게 되어 있는 황금띠를 그에게 보내고, 에크론과 거기에 딸린 지역의 영도권을 주었다. 그 때 애굽 왕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군대와 선박을 모아 놓고, 속임수를 써서 알렉산더의 왕국을 정복하여 자기 영토로 삼으려는 계획을 꾸몄다. 그는 평화를 내세우며 시리아로 갔다. 시리아의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문을 활짝 열고 그를 맞아 들였다. 프톨레미가 알렉산더 왕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그를 잘 영접하라는 명령이 사람들에게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톨레미는 가는 곳 마다 성에 들어가서는, 수비대라는 명목으로 자기 군대를 주둔시켰다. 프톨레미가 아소토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은 다 타버린 다곤 신전과 폐허가 된 아소토성과 그 주변의 도시들을 그에게 보여 주었고, 사방에 버려진 시체들과 전쟁 때에 요나단이 불살라 죽인 시체들을 보여 주었다.  그 시체들은 왕이 지나가는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소토 사람들은 요나단을 비난하기 위하여 요나단이 한 일을 왕에게 고해 바쳤다. 그러나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나단은 욥바에서 왕을 성대하게 맞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요나단은 왕과 함께 엘류데로스강까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프톨레미 왕은 바닷가에 있는 셀류기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안도시를 장악하고, 알렉산더 왕에게 대한 흉계를 꾸며 나갔다. 그리고는 데메트리우스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와 계약을 맺읍시다. 알렉산더가 차지한 나의 딸을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당신 부왕의 왕국을 다스리게 하겠소. 알렉산더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나는 내 딸을 그 자에게 준 것을 후회하고 있소.”

 

  프톨레미는 알렉산더 왕국을 탐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그를 중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딸을 데려다가 데메트리우스에게 주었다. 이렇게 되어  그와 알렉산더 사이는 멀어졌고, 서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프톨레미는 안디옥으로 들어가, 아시아 지방의 왕으로서 왕관을 썼다. 이렇게 하여 그는 애굽과 아시아 두 왕국의 왕관을 썼다. 그 무렵 길리기아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그 지방에 가 있던 알렉산더 왕은, 이 소식을 듣고 프톨레미와 싸우려고 진군해 왔다. 프톨레미는 강대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알렉산더를 패주시켰다. 알렉산더는 아라비아로 피신해 도망갔고, 프톨레미 왕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아라비아의 삽디엘이라는 사람이 알렉산더의 목을 베어 프톨레미에게 보냈다. 그러나 삼일 후 프톨레미 왕도 죽었고, 그가 여러 요새에 배치했던 수비병들은 그 주민들의 손에 죽었다. 그래서 데메트리우스는 167년에 왕이 되었다.

 

  그 무렵에 요나단은 예루살렘의 요새를 공격하려고 유대인들을 모았다. 그들은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많이 만들어 세워 놓았다. 그런데 율법을 저버리고 자기 민족을 미워하는 일부 유다 사람들이, 데메트이우스 왕에게로 가서 요나단이 요새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밀고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크게 노하였다. 그는 정보를 듣자마자 출진하여 프톨레마이스에 와서 자기와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요나단은 계속 포위할 것을 명령하고, 이스라엘의 원로와 사제 중에서 몇 사람을 골라 그들을 데리고 몸소 위험을 무릅쓰고 프톨레마이스로 향하였다. 그는 은과 금과 옷가지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많은 선물을 가지고 프톨레마이스로 가서 왕을 만나 그의 환심을 샀다. 율법을 저버린 유대인 몇이 왕에게 요나단을 참소했지만 ,왕은 전의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요나단을 잘 대접하고, 자기의 모든 신하들 앞에서 그를 높이 올려 주었다. 그리고 그의 대제사장직과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모든 명예직을 인정해 주고, 왕의 가장 친한 친구의 한 사람으로 삼았다. 요나단은 유다 땅은 물론, 사마리아에 속하는 세 지방에서 거두어 가는 조공을 면제해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그 대신 돈을 삼백 달란트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왕은 그 청을 받아들이고,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요나단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써 주었다.

 

  "나 데메트리우스 왕은 나의 동지 요나단과 유다의 국민에게 인사합니다. 내가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라스데내스에게 여러분에 관하여 써 보낸 편지의 사본을 여러분에게도 보내어 그 내용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데메트리우스 왕은 아버지로 모시는 라스데내스에게 인사드립니다. 나의 친구이며 나에게 모든 의무를 다하는 유다 국민이, 나에게 표시한 호의를 고맙게 생각하여 그들을 잘 대해 주려고 작정했습니다. 나는 유다의 영토는 물론 아파이레마, 리따, 라마다임 세 지방을 그들의 영토로 인정합니다. 이 세 지방은 그 주위의 모든 지역과 사마라아로부터 유다로 편입된 땅으로서, 전에는 왕이 거기에서 나는 곡식과 과일에 대해 매년 세를 부과하였던 곳입니다.  이 땅을 예루살렘에서 희생제사를 지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바쳐야 할 십분의 일세와 그 밖에 염전세와 왕관세들을 모두 면제해 주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로부터 영원히 그 어느 하나도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편지의 사본을 요나단에게 주어, 거룩한 산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도록 하십시오. 꼭 부탁합니다.“

 

  데메트리우스 왕은 온 나라가 자기의 통치 하에서 평온해지고 반항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방인의 여러 성에서부터 고용해 온 외인부대만 남겨 놓고, 그밖의 군대를 모두 해산시켜 각각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의 선왕 시대부터 봉사해 오던 군인들은 모두 그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 때 알렉산더의 옛 부하였던 트리폰은, 모든 군대가 데메트리우스에게 불평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알렉산더의 어린 아들 안티오커스를 기르고 있는 아라비아 사람 이말코에게 갔다. 그는 데메트리우스가 지금까지 한 일과, 그의 군대가 데메트리우스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말코에게 말하고, 어린 왕자 안티오커스를 그의 아버지의 대를 이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넘겨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날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때에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스라엘 사람을 대적하여 전쟁을 하고 있던 예루살렘 요새 안의 군대와 그 밖의 다른 요새의 군대들을 철수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귀하와 귀하의 국민의 요청대로 나의 군대를 철수시킬 뿐 아니라,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귀하와 귀하의 국민에게 최상의 영예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나의 모든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위해 싸워 줄 군대를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나단은 정예 병력 삼천을 안디옥에 있는 데메트리우스에게 보냈고, 왕은 자기에게 온 병력을 보고 기뻐했다. 마침 안디옥 사람들이 도시 중앙에 집합하여 왕을 죽이려 하고 있었는데 그 수는 십 이만 명이나 되었다. 

 

  왕은 궁전 안으로 도망쳤고 시민들은 그 도시의 주요 도로를 점령, 전투를 개시했다. 왕은 유다 군에게 원조를 청하였다. 유다의 군사들은 모두 왕에게로 집합하였다가, 거리로 흩어져 나가 그날로 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고 거리를 불질렀으며, 많은 노획품을 거두고 왕을 구출하였다. 안디옥의 시민들은 유대인들이 손쉽게 성을 점령하는 것을 보고 사기를 잃고 왕에게 호소하며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저희들과 화해하고 유대인이 우리와 이 성을 더 이상 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왕과 화해했다. 이렇게 하여 유대인은 왕과 그나라의 모든 국민 앞에서 영예를 얻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데메트리우스 왕은 왕좌에 다시 앉게 되었고, 온 나라는 그의 통치하에서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왕은 약속한 것을 모두 어기고, 요나단과  멀어졌다. 그는 요나단이 자기에게 베풀어 준 호의에 보답하는 대신, 오히려 그를 몹시 괴롭혔다. 

 

  이 일이 있은 후 트리폰은 어린 왕자 안티오커스를 데리고 돌아왔다. 거기서 안티오커스는 왕이 되어 왕관을 썼다. 데메트리우스에게서 떨어져 나갔던 모든 군대가 안티오커스에게로 모여들어 데메트리우스를 대항하여 싸웠다. 데메트리우스는 패배하여 도망쳤다. 트리폰은 코끼리 부대를 장악하고 안디옥을 지배하였다. 어린 안티오커스는 요나단에게 편지를 써 보내어, 요나단의 대제사장직을 인정하고 그를 네 지방의 영주로 임명하는 동시에, 왕의 친구 중의 한 사람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요나단에게 금 그릇과 식기들을 선물로 보내고 황금 잔으로 마실수 있는 권리와 진홍색 제사장 의복을 입을 수 있는 권리와 황금 띠를 착용할 권리를 주었다. 그리고 왕은 요나단의 형 시몬을, 두로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지방에서 애굽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온 지역의 영주로 임명하였다. 

 

  요나단은 유다 지방을 떠나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지역과 그 밖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였다. 그 때에 시리아의 온 군대가 요나단에게 모여들어 그의 편이 되었다. 요나단이 아스굴론에 갔을 때 그 곳 사람들은 그를 성대하게 한영하였다.

 

  그러나 그 곳을 떠나 가자로 갔을 때, 가자의 시민들은 성문을 잠그고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나단은 그 성을 포위하고 주변 도시들을 불태우고 약탈하였다. 이것을 보고 가자의 시민들이 요나단에게 탄원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들과 화해를 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 지방을 통과하여 다마스커스까지 갔다. 

 

  그 때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 군의 장군들이 자기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갈릴리의 가데스에 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나단은 형 시몬을 본국에 남겨 두고, 그들을 맞아 싸우러 나갔다. 시몬은 벳술을 향하여 진을 치고 여러 날 동안 공격을 계속하여 그 도시를 봉쇄하였다. 적군이 화평을 탄원해 왔기 때문에, 시몬은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 버리고 그 도시를 점령한 다음, 그 곳에 수비대를 배치하였다. 요나단과 그의 군대는 게네사렛 호수가에 진을 치고, 아침 일찍 하솔 평원으로 진군하였다.

 

  적군의 군대는 요나단을 평원에서맞아 싸웠는데, 요나단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한편 그를 기습하기 위해 산중에 복병을 배치해 두었다. 복병들이 잠복 장소에서 뛰쳐나와 전투에 가담하였다. 요나단의 군대는 모두 도망치고, 압살롬의 아들 맛다디아스와 갈피의 아들 유다 외에는 아무도 남은 자가 없었다. 그들은 요나단의 군대 지휘관들이었다. 그래서 요나단은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뿌리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적군을 무찌르고 패주시켰다. 도망갔던 요나단의 병사들이 이를 보고, 요나단에게로 다시 돌아와 함께 적군을 가데스까지 추격하여 그 곳에 진을 쳤다. 그 날의 적군은 삼천이 죽었고, 요나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 요나단은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보고, 로마인과의 우호 관계를 굳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사신을 뽑아 로마로 보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스파르타와 그 밖의 다른 곳에도 편지를 보냈다. 로마에 간 사신들은 원로원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제사장 요나단과 유다 국민은 여러분과 맺은 우호 관계와 동맹을 전과 같이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여기에 보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 사신들이 안전하게 유다 땅에 돌아가도록 주선해 주라는 내용의 편지를 각 지방 장관에게 써서 그들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요나단은 스파르타 사람들에게도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제사장인 나 요나단과 나라의 원로들과 제사장들과 그 밖의 유다 온 국민이 스파르타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여러분의 왕이었던 아레오스가 전에 우리의 전에 우리의 대제사장 오니아스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을 여기 동봉합니다. 그 편지를 보면 여러분들을 우리의 형제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니아스는 귀국의 사신을 성대하게 환영하였고 동맹과 우호 관계를 맺는다는 선언을 기록한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 되는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분과 동맹 또는 우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지만, 우리와 여러분과의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형제 관계를 맺고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가 이 편지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여러분의 편지를 받은지도 퍽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제일이나, 그밖의 다른 적당한 날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잊지 않습니다. 형제를 생각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영광은 곧 우리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국 왕들이 우리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전쟁 때문에 여러분이나 그 밖의 다른 동맹국들이나 또는 친구들에게 누를 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수들의 수중에서 구출되었고 원수들은 굴복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는 안티오커스의 아들 누메니오스와 야손의 아들 안티파텔을 뽑아, 전에 로마인들과 맺었던 우호관계와 동맹을 계속 유지하려고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분 나라에도 가서 인사를 드리고 여러분과 우리와의 형제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여러분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한 회신을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아레오스가 오니아스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입니다. ‘ 스파르타의 왕 나 아레오스가 유다의 대제사장인 오니아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듯이 스파르타인과 유다인은 서로 형제이고 두 민족이 다 아브라함의 후예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서로 알고 있는 터이니 귀국이 얼마나 번영했는지에 관하여 나에게 편지로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가축과 재산이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것이 모두 여러분의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실을 귀하에게 전하라고 나의 사신에게 명령했습니다."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의 장군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치려고 되돌아 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진군하여, 하맛 지방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렇게 하여 요나단은 적군이 자기 나라에 침입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요나단이 적진에 보냈던 정찰병들이 돌아와, 적군이 그 날 밤 유다인들을 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이 보고를 들은 요나단은 해가 진 뒤에, 무장을 단단히 갖추고 전투태세로 깨어 있으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진영 주위에 전초병을 배치하였다. 적군은 요나단과 그의 병사들이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사기가 떨어졌다. 그래서 자기 진영에 불을 피워 놓고는 달아났다.

 

  밤새도록 불이 타오르고 있었으므로 요나단은 적군이 도망친 것을 아침까지 모르고 있었다. 요나단은 도망친 적군을추격해 보았지만, 적군은 벌써 엘류데로스강을 건넌 후였기 때문에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요나단은 공격의 대상을 바꾸어, 아라비아인들에게로 진격하여 그들을 쳐부수고 물건을 노획했다. 그리고는 진영을 거두어 다마스커스로 가서 그 부근의 온 지방을 두루 다녔다.

 

  한편 시몬은 시몬대로 자기의 진지를 떠나 아스글론와 그 주위에 있는 요새까지 진군하였다. 그리고는 방향을 바꾸어 욥바로 진격, 그 도시를 재빨리 점령하였다. 왜냐하면 그 도시 사람들이 욥바 요새를 데메트리우스군에게 주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도시를 점령한 후 시몬은 수비대를 배치하여 그 곳을 지키게 하였다.

 

  요나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백성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의논한 끝에, 유다 땅 여러 곳에 요새를 세울 것과, 예루살렘 성벽을 더 높이 쌓을 것, 그리고 예루살렘 요새와 예루살렘 시내와의 사이에 아주 높은 장벽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장벽을 쌓는 목적은, 요새와 도시를 갈라놓아 요새 안에 군인들을 고립시킴으로써, 시내 사람들과 사고 파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루살렘 동쪽 계곡의 성벽이 일부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요나단은 가페나다라고 하는 구역의 성도 수축하였다. 시몬도 평원 지대의 아디다라는 도시를 재건하고, 성문을 달아 빗장으로 잠그고 요새로 만들었다.

 

  그  때 트리폰이 안티오커스 왕의 왕관을 빼앗아 쓰고 아시아의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다. 그러나 요나단이 자기를 내버려두지 않고 전쟁까지라도 서슴치 않을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으므로, 트리폰은 요나단을 잡아 죽이려 하였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벳산으로 진군하였다. 요나단도 이 소식을 듣고 전열을 갖추어 정예병 4만을 데리고 트리폰과 맞서 싸우기 위해 벳산으로 갔다. 그런데 트리폰은 요나단이 대군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그와 맞서 싸우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트리폰은 요나단을 성대하게 환영하면서, 그를 자기의 모든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선물을 주고 자기 친구와 군대들에게는 자기에게 복종하듯 그에게도 복종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요나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전쟁상태에 있지도 않은데, 어찌하여 귀관은 이 모든 군대들을 데리고 와서 괴롭히는 것입니까?  그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부하 몇 사람만 뽑아서 귀관을 호위하게 하여 나와 함께 프톨레마이스로 갑시다. 나는 그 도시는 물론 그 밖의 모든 요새와 주둔군과 그리고 모든 관리들을 귀관에게 넘겨주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겠습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그의 말을 곧이 듣고 자기의 군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군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 버렸고 요나단의 곁에는 삼천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또 이천 명을 갈릴리로 보내어, 결국 요나단과 함께 간 군인들은 천 명밖에 안되었다.

 

  요나단이 프톨레마이스에 들어가자, 프톨레마이스 사람들은 성문을 잠근 다음, 요나단을 체포하고 그와 함께 갔던 병사들을 칼로 쳐죽여버렸다. 트리폰은 요나단의 군대를 전멸시키려고 보병과 기병을 갈릴리와 대평원 지대로 출동시켰다. 요나단의 군대는 적군이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는, 요나단이 잡히고 그와 함께 있던 부하들이 모두 적군의 손에 죽었음을 알고, 서로 격려하면서 일치 단결하여 전투준비를 갖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추격하던 적군은 요나단의 군대가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싸우려는 태세를 보이자, 돌아서 가버렸다. 그래서 요나단의 군대는 무사히 유다 땅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요나단과 그의 부하들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는 한편, 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온 이스라엘 국민들이 그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