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 이방인 선교 (13:1-21:17)
이제 누가의 기사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땅끝까지 전파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전도자들의 전도 사역은 예루살렘,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복음 전도자들의 시야는 땅끝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미 두 명의 집사들(빌립, 스데반)이 이 길을 준비해왔다. 스데반은 순교와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와 이방인 내시 전도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이방인 선교는 두 가지 사건에 의해 미리 예고되었다. 첫째 사건은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 될 사울의 회심이고, 둘째 사건은 이방인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후에 무명의 전도자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 곳에 있는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직 그들의 사역 범위가 팔레스타인과 수리아 본토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해외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비젼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해외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전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울과 바나바였다.
(행 13:1-21:17)에는 3차에 걸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차 선교 여행과 제 2차 여행 사이에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종교 회의가 소개되고 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제1차 선교여행(행 13:3-14:28) B. 예루살렘 종교회의(행 15:1-39) C. 제2차 선교여행(행15:40-18:22) D. 제3차 선교여행(행18:23-21:17)
1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 종교회의 |
2차 선교 여행 |
3차 선교 여행 |
(행 13:3-14:28) |
(행 15:1-35) |
(행15:36-18:22) |
(행18:23-21:17) |
이방인 선교 (13:1-21:17) |
2. 제 2차 선교 여행 (15:36-18:22) (사도바울의 1-2차 선교 여행 지도보기)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여정에는 다음과 같은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행 17장)을 통해서 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에서의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행 18장)을 통해서 제 2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고린도 지역 선교와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다.
2-1. 수리아와 길리기아 (15:36-41) 2-2. 갈라디아 (16:1-5) 2-3. 빌립보 (16:11-40) 2-4. 데살로니가 (17:1-9) 2-5. 베뢰아 (17:10-15) 2-6. 아덴(17:16-34) 2-7. 고린도 (18:1-18(상) 2-8. 안디옥으로 귀환 (18:18(하)-23):에베소-예루살렘-안디옥(18:18-23)
수리아 길리기아 |
갈라디아 |
빌립보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
고린도 |
귀환 |
15:36-41 |
16:1-5 |
16:11-40 |
17:1-9 |
17:10-15 |
17:16-34 |
18:1-18(상) |
18:18-23 |
2차 선교 여행(15:36-18:22) |
2-5. 고린도에서의 바울(18:1-18(상)) 가.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지냄(18:2-6)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1),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2),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3)."
아덴을 떠난 바울은 고린도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고린도는 고대 헬라의 상업의 중심지이었고 매우 음란했던 도시이었다. 후에 로마시대에 그 도시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바울은 그곳에서 아굴라라 하는 소아시아 북부 본도 지방 출신인 유대인 하나를 만났다. 그는 그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에 살다가 로마 총독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 최근에 고린도로 온 자이었다. 그들의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어서 바울은 그들에게 가서 함께 거하며 일하였다. 사람이 자신이나 가족의 식생활을 위해 기술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바울은 자신의 식생활을 위해 손수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는 남의 도움이나 받으며 게으르게 놀고 먹거나 아니면 돈벌이에 얽매여서 일평생 아무 선한 일도 못하는 그런 자가 아니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4).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5),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6).."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거기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강론하고 권면하였다. '강론하다'는 원어는 논리적으로 변론하고 증거한다는 뜻이고, '권면하다'는 원어는 설득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는 말은 전통 사본에는 '성령에 붙잡혀'라고 되어 있다. 그는 성령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하였다. '밝히 증거하다'는 원어는 '열심히 증거한다'는 뜻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전하는 말씀을 가급적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또 성령에 붙잡힌 바 되어 열심을 다해 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의 전도 사역에는 항상 대적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하였고 훼방하였다. 사탄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며 하나님의 일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하며 방해한다. 그러나 바울의 대처는 단호하였다. 바울은 옷을 떨므로써 그 대적자들과의 단절을 분명히 하였다. 또 그는 그들의 피가 그들 머리로 돌아갈 것이며 자기는 깨끗하다고 말함으로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였다. 또 그는 이 후에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 후에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었다(마 10:14).
나. 바울이 이방 사람들에게로 감(18:7-11)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7).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8)."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그의 말을 믿는 자들도 있었다. 바울은 회당에서 나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을 집회 장소로 정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원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라는 뜻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전도 사역을 위해 집회 장소를 주셨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님을 믿었다. 사도행전은 고넬료, 루디아, 빌립보 간수 등 온 가정이 주를 믿는 일들을 종종 기록했다. 또 수다한 고린도인들도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듣고 믿었으며 세례를 받았다. 바울의 대적자들도 있었지만, 바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많이 있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항상 상반된 반응을 가져온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도 그러하였다면, 하물며 오늘날 우리들의 사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대적자들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9).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10).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11)."
주께서는 밤에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물론 그는 인성으로 천국에 계시지만, 신성으로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처럼 사도시대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환상은 사도시대에 하나님의 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충족히 기록되고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필요성이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환상 중에 나타나신 주께서는 바울에게 두려워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후시대의 모든 전도자들에게 교훈이 된다. 오늘날 말씀의 봉사자들은 인간적으로 두렵고 낙심될 때가 있을지라도 두려워말고 잠잠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엄숙히 명했다(딤후 4:2).
주께서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주께서 바울과 함께하시므로 아무도 그를 대적하여 해롭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었다(마 28:20).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모든 전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우리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은 오직 주의 손 안에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성에 주의 백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전도자는 구원 운동의 도구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전도자들을 통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전도자는 낙심치 말고 담대히 말씀을 전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은 후 더욱 힘을 내어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쳤다.
다. 바울의 정당함이 로마법에 의해 입증됨(18:12-17)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12),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13)..."
주후 51년 혹은 52년경, 갈리오가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그를 데리고 재판 자리로 갔다. 바울의 전도 사역에는 이렇게 항상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를 고소하기를 그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율법에 예언된 분이요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친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다(마 5:17).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그를 미워하였고 그를 믿는 제자들을 핍박하였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14),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15)),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16),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17)."
바울이 자신을 변명하고자 할 때 총독 갈리오는 유대인들에게 그 일이 도덕적 사건이 아니고 단지 종교적 사건이라는 이유로 그 고소를 기각하고 그들을 재판 자리에서 내쫓았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신다는 표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전도 사역을 막으려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이렇게 갈리오를 통해 막으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순교의 잔을 마실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전도할 때 힘써 증거해야 한다. 물론 인간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열심히 증거하며 사람들을 설득한 것처럼, 전도자는 성령에 붙잡혀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전도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며 우리를 통해 택한 백성이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일학교 교사들과 구역 권찰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말씀의 봉사자들은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있는 자들이다. 말씀 증거의 사역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고 대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인간적 두려움과 염려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또한 오늘날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우리를 통해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말씀을 전하자.
2-6. 안디옥으로의 귀환(18:18-23): 에베소 - 예루살렘 - 안디옥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18)."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었고(11절) 유대인들의 소요가 있은 후에도 여러 날 거기 머물렀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났다. 그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그와 함께하였다. 아굴라는 남편이고 브리스길라는 아내인데, 성경에서 그 부부의 이름이 언급될 때 두 번 더(롬 16:3; 딤후 4:19) 본절처럼 아내의 이름이 남편보다 앞에 나온다. 그것은 주 안에서는 영적 특권에 있어서 남녀의 차등이 없음을 보이며(갈 3:28) 또 아마 그 아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보다 더 지혜와 지식이 있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 부부는 바울에게 좋은 동역자가 되었다. 로마서 16:3-4에서 바울은 증거하기를,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다.
바울은 일찍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서원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약속하는 기도이다. 바울은 아마 고난과 위험 중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 같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그는 거기에서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깎는 것은 서원 기간이 마칠 때 하는 것으로서 서원의 목표가 이루어진 후 그 서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그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서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간섭과 역사를 구하는 것이었다. 서원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고 사모할 때 한다. 서원을 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믿음의 행위이다. 옛날 이스라엘 왕 사울은 쉽게 맹세하고 쉽게 그 맹세를 깨뜨렸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한나와 입다와 다윗 같은 이들은 하나님께 서원했을 때 그 서원을 지켰다. 시편 15:4,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는]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19),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20),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21),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22).."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에베소는 애게 해 건너편에 있는 도시로서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이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에게는 분명히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고 복음 전도에 대한 불 붙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때에는 에베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했으나 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과 작별하였다. 전통사본에 보면,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다가오는 이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꼭 지켜야 하겠노라.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했다. 그가 말한 절기는 유월절 혹은 오순절일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씀은 바울이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움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며 언제나 그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야고보서 4:13-16,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바울은 가이사랴에 상륙하였다. 가이사랴는 팔레스틴의 항구이다. '올라가'라는 표현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네 번째 올라간 일일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문안했을 것이다. 그런 후 안디옥으로 내려갔다.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으로서 그를 선교사로 파송했던 교회가 있는 곳이다. 이로써 그의 2차 전도여행은 끝났다. 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과 특히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었다(행 14:27). 그러나 이 번에는 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복음이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 심겨졌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중요한 도시들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이었다. 안디옥 교회의 선교에 대한 깨달음과 열정과 순종, 전도자 파송과 기도와 후원이 하나님의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각 곳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구원얻는 영혼들이 생겨났고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과 교회 설립의 일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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