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神學 · 敎理· 교회사

제7장-2 계시(啓示)와 성서(聖書)

영국신사77 2007. 3. 29. 00:13
                        계시(啓示)와 성서(聖書)
 
 
출처 블로그 > 쉴만한물가
원본 http://blog.naver.com/mokpojsk/130003811041
 
 
 
 
  특별계시란 말은 한가지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메시지전달과 이적적 사실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 전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이따금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오래 전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왔다. 현재 이 메시지들이 성서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것이 성서 전체의 구성요소가 된 것은 아니다.
성서에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계시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연구와 전에 받은 영감의 결과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특별계시란 말은 진정한 역사적 기반을 가진 구속적 진리와 구속적 사실의 총체인 성경전체를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구속적 진리와 구속적 사실들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이며 이 성서가 성령에 의하여 무오(無誤)하게 영감되었다는 사실이 구속진리의 신적 보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모든 성서만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서를 근거하여 지금도 생명과 광명과 거룩함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영감성에 대한 성서적 증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靈感)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며 믿음과 행위의 절대 표준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서의 영감교리를 간혹 부인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영감교리는 인간의 창작적 산물이 아니라 성서에 근거한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많은 성서의 증거를 갖지만, 여기서는 그중 몇 구절만 지적하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시는 것을 기록하도록 거듭거듭 지시를 받아 왔다.
출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사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1후세에 영영히 있게하라
렘25:13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30: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렘 36:4 바룩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합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 백히 새기되....
구약 선지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의식했으므로 "이와 같이 주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또는 " 주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셨느니라" 의 형태로 여호와의 메시지를 소개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성령이 가르치신 말씀이라 했고(고전13:3)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고(고후13:3)주장했으며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표현했다.(살전2:13)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메시지를 인용할 때 하나님 말씀 또는 성령의 말씀이라 전제하면서 인용했다.(히1;5, 3:7, 4:3, 5:6 7;21)
성서의 영감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구절은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이다.
영감의 성질
영감설에는 특별히 피해야 할 극단적인 두가지 그릇된 견해 곧 기계적 영감설과 동력적(動力的) 영감설이 있다.
1)기계적 영감설(Mechanical Inspiration)
이 학설은 하나님께서 성서의 저자인 인간으로 하여금 성서의 글자 하나하나를 받아 쓰게 하셨다는 학설이다.
즉, 저자인 인간을 저술까의 손에 쥐여진 펜처럼 수동적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이 학설에 의하면, 저자들의 마음이 그들 저서의 내용과 형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학설은 그릇된 설이다.
성서의 인간 저자들은 실제 저자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받은 명령에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수집하기도하고
왕상11:41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무릇 저의 행한 일과 그 지혜는 솔로몬의 행장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29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대상29:29다윗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의 글에 다 기록되고
눅1:1~4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시편 여러곳을 살펴보면 그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저서를 자신의 독특한 문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사야 문체는 예레미야 문체와 다르며 요한의 문체는 바울의 문체와 같지 않다.
2)동력적 영감설(Dynamic Inspiration)
 이 학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영감과정에 있어서 저자들을 감동시켰지만 그들 저서를 기록하는데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심적, 영적생활이 감동을 받아 최 절정에 달하므로 사물을 보다 분명히 관찰하고 그들의 바른 영적 가치에 대한 보다 심오한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은 성서의 저서들이 기록될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는 저자들의 영구한 특성이므로 그들 저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저자들에게 주신 영감은 일반 모든 신자들에게 주는 영적 조명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학설은 영감에 대한 성서적인 견해가 못 된다.
3) 유기적인 영감설(Organic Inspiration)
영감에 대한 성서적 견해는 성령께서 성서의 저자들을 유기적(有機的)인 방법으로 감동시켜 그들의 내적 인간성 곧 저자들의 성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용어와 문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저자들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기억을 새롭게하여 기록하도록 고취시키셨고, 기록함에 있어 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장하셨으며, 그의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 심지어 용어 선택까지도 지도하셨던 것이다. 성령께서는 한 순간이라도 저자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내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조사의 결과를 쓸 수 있었고, 그들 자신의 경험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문체나 용어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감의 범위
성서의 영감범위에 관한 문제에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부분적인 영감설(Partial Inspiration)
합리주의 영향을 받아, 어떤 학자들은 성서전체의 영감을 부인하거나 부분만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구약의 영감성을 부인하면서도 신약의 영감성은 인정한다.
또 어떤학자는 성서의 도덕적 교훈이나 종교적 교훈은 영감되었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많은 연대적 고고학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산상보훈만이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견해를 택한 학자들은 이미 그들의 성서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런 견해의 상당한 차이는 성서의 어느부분이 영감되었고 어느 부분이 영감되지 않았는가를 아무도 확실히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성서의 사상만은 영감되었지만 용어의 선택은 저자의 인간적 지혜에 완전히 의존한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상이 용어와 분리될 수 없으며 실상 용어없는 정확한 사상이란 불가능하다는 의문을 남기게 된다.
2)완전 영감(plenary Inspiration): 완전축자영감
성서자체의 증명을 따르면 성서의 모든 부분이 영감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 성서(scripture) " 또는 " 성서들(the scriptures)" 이라 하면서 구약성서를 자주 인용했다. 그와 같은 호소는 곧 하나님에 대한 호소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인용한 구약의 책들 중에 어떤 책은 역사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말씀인 구약 구절을 계속 인용한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간을 구약의 문서들과 동일한 위치에 두었고(벧후3:16) 바울은 모든 성경은 영감된 것이라고 말하였다.(딤후3:16)
우리는 보다 깊은 단계에 들어가 성서의 영감이 사용된 낱말에까지 확장된다고 말 할 수 있다. 성서가 축자적(逐字的)으로(Verbally) 영감되었다고 해서 기게적으로 영감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축자적 영감교리는 완전히 성서에 근거한 교리이다.
주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기록할 것을 실제로 일러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을 자기들의 입술에 두시고(렘1:9)그의 말슴을 백성에게 전하도록 지도하신다고 한다.(겔3:4,10,11)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성령이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표현했고(고전2:13)바울과 예수님은 한 개의 낱말을 가지고 이론을 펴셨음을 볼 수 있다. (마22:43~45, 요10:35, 갈3:16)
성서의 완전성
1)개혁주의 학자들은 로마카톨릭과 일부 신교 종파와 반대되는 성서 영감론을 택한다. 로마카롤릭은 성서의 권위를 교회에 두었는데 반하여 개혁주의는 성서의 권위가 영감된 하나님 말씀 자체에 있다고 주정한다.
2)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성서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치 않는다는 로마카톨릭의 주장에 반대하며 하나님 백성 마음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 조명이나 성령의 말씀을 성서보다 높이는 개혁파 일부 종파들의 견해에도 반대하여 은혜의 신적 방편으로서의 성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3)또 그들은 로마카톨릭과는 반대로 성서의 명백성을 옹호한다.
   
4)또 그들은 성서에는 인간이 이해하기에 너무 심오한 신비로운 진리를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성서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방법으로 전달된 것이므로 구원을 열망하는 자라면 누구나 교회나 성직자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 구원에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5)끝으로 개혁주의자들은 또한 성서의 충족성을 옹호했으므로 로마카톨릭의 유전의 필요성과 재 침례파의 내적 조명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계시(啓示)와 성서(聖書)
 
 
특별계시란 말은 한가지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메시지전달과 이적적 사실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 전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이따금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오래 전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왔다. 현재 이 메시지들이 성서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것이 성서 전체의 구성요소가 된 것은 아니다.
성서에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계시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연구와 전에 받은 영감의 결과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특별계시란 말은 진정한 역사적 기반을 가진 구속적 진리와 구속적 사실의 총체인 성경전체를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구속적 진리와 구속적 사실들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이며 이 성서가 성령에 의하여 무오(無誤)하게 영감되었다는 사실이 구속진리의 신적 보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모든 성서만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서를 근거하여 지금도 생명과 광명과 거룩함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영감성에 대한 성서적 증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靈感)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며 믿음과 행위의 절대 표준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서의 영감교리를 간혹 부인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영감교리는 인간의 창작적 산물이 아니라 성서에 근거한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많은 성서의 증거를 갖지만, 여기서는 그중 몇 구절만 지적하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시는 것을 기록하도록 거듭거듭 지시를 받아 왔다.
출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사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1후세에 영영히 있게하라
렘25:13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30: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렘 36:4 바룩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합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 백히 새기되....
 
구약 선지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의식했으므로 "이와 같이 주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또는 " 주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셨느니라" 의 형태로 여호와의 메시지를 소개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성령이 가르치신 말씀이라 했고(고전13:3)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고(고후13:3)주장했으며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표현했다.(살전2:13)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메시지를 인용할 때 하나님 말씀 또는 성령의 말씀이라 전제하면서 인용했다.(히1;5, 3:7, 4:3, 5:6 7;21)
 
성서의 영감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구절은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이다.
 
영감의 성질
 
영감설에는 특별히 피해야 할 극단적인 두가지 그릇된 견해 곧 기계적 영감설과 동력적(動力的) 영감설이 있다.
 
1)기계적 영감설(Mechanical Inspiration)
이 학설은 하나님께서 성서의 저자인 인간으로 하여금 성서의 글자 하나하나를 받아 쓰게 하셨다는 학설이다.
즉, 저자인 인간을 저술까의 손에 쥐여진 펜처럼 수동적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이 학설에 의하면, 저자들의 마음이 그들 저서의 내용과 형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학설은 그릇된 설이다.
성서의 인간 저자들은 실제 저자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받은 명령에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수집하기도하고
왕상11:41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무릇 저의 행한 일과 그 지혜는 솔로몬의 행장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29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대상29:29다윗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의 글에 다 기록되고
눅1:1~4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시편 여러곳을 살펴보면 그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저서를 자신의 독특한 문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사야 문체는 예레미야 문체와 다르며 요한의 문체는 바울의 문체와 같지 않다.
 
2)동력적 영감설(Dynamic Inspiration)
 이 학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영감과정에 있어서 저자들을 감동시켰지만 그들 저서를 기록하는데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심적, 영적생활이 감동을 받아 최 절정에 달하므로 사물을 보다 분명히 관찰하고 그들의 바른 영적 가치에 대한 보다 심오한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은 성서의 저서들이 기록될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는 저자들의 영구한 특성이므로 그들 저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저자들에게 주신 영감은 일반 모든 신자들에게 주는 영적 조명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학설은 영감에 대한 성서적인 견해가 못 된다.
 
3) 유기적인 영감설(Organic Inspiration)
영감에 대한 성서적 견해는 성령께서 성서의 저자들을 유기적(有機的)인 방법으로 감동시켜 그들의 내적 인간성 곧 저자들의 성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용어와 문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저자들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기억을 새롭게하여 기록하도록 고취시키셨고, 기록함에 있어 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장하셨으며, 그의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 심지어 용어 선택까지도 지도하셨던 것이다. 성령께서는 한 순간이라도 저자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내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조사의 결과를 쓸 수 있었고, 그들 자신의 경험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문체나 용어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감의 범위
 
성서의 영감범위에 관한 문제에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1)부분적인 영감설(Partial Inspiration)
합리주의 영향을 받아, 어떤 학자들은 성서전체의 영감을 부인하거나 부분만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구약의 영감성을 부인하면서도 신약의 영감성은 인정한다.
또 어떤학자는 성서의 도덕적 교훈이나 종교적 교훈은 영감되었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많은 연대적 고고학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산상보훈만이 영감되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견해를 택한 학자들은 이미 그들의 성서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런 견해의 상당한 차이는 성서의 어느부분이 영감되었고 어느 부분이 영감되지 않았는가를 아무도 확실히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성서의 사상만은 영감되었지만 용어의 선택은 저자의 인간적 지혜에 완전히 의존한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상이 용어와 분리될 수 없으며 실상 용어없는 정확한 사상이란 불가능하다는 의문을 남기게 된다.
 
2)완전 영감(plenary Inspiration): 완전축자영감
성서자체의 증명을 따르면 성서의 모든 부분이 영감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 성서(scripture) " 또는 " 성서들(the scriptures)" 이라 하면서 구약성서를 자주 인용했다. 그와 같은 호소는 곧 하나님에 대한 호소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인용한 구약의 책들 중에 어떤 책은 역사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말씀인 구약 구절을 계속 인용한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간을 구약의 문서들과 동일한 위치에 두었고(벧후3:16) 바울은 모든 성경은 영감된 것이라고 말하였다.(딤후3:16)
 
우리는 보다 깊은 단계에 들어가 성서의 영감이 사용된 낱말에까지 확장된다고 말 할 수 있다. 성서가 축자적(逐字的)으로(Verbally) 영감되었다고 해서 기게적으로 영감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축자적 영감교리는 완전히 성서에 근거한 교리이다.
주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기록할 것을 실제로 일러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을 자기들의 입술에 두시고(렘1:9)그의 말슴을 백성에게 전하도록 지도하신다고 한다.(겔3:4,10,11)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성령이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표현했고(고전2:13)바울과 예수님은 한 개의 낱말을 가지고 이론을 펴셨음을 볼 수 있다. (마22:43~45, 요10:35, 갈3:16)
 
성서의 완전성
 
1)개혁주의 학자들은 로마카톨릭과 일부 신교 종파와 반대되는 성서 영감론을 택한다. 로마카롤릭은 성서의 권위를 교회에 두었는데 반하여 개혁주의는 성서의 권위가 영감된 하나님 말씀 자체에 있다고 주정한다.
 
2)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성서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치 않는다는 로마카톨릭의 주장에 반대하며 하나님 백성 마음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내적 조명이나 성령의 말씀을 성서보다 높이는 개혁파 일부 종파들의 견해에도 반대하여 은혜의 신적 방편으로서의 성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3)또 그들은 로마카톨릭과는 반대로 성서의 명백성을 옹호한다.
   
4)또 그들은 성서에는 인간이 이해하기에 너무 심오한 신비로운 진리를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성서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방법으로 전달된 것이므로 구원을 열망하는 자라면 누구나 교회나 성직자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 구원에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5)끝으로 개혁주의자들은 또한 성서의 충족성을 옹호했으므로 로마카톨릭의 유전의 필요성과 재 침례파의 내적 조명의 필요성을 부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