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요지경 건축판
차학봉 부동산팀장 hbcha@chosun.com
입력 : 2007.01.28 22:34
- 차학봉 부동산팀장
- 3~4년 전 아파트 분양으로 ‘대박 행진’을 벌였던 A 사장은 어느 날 홀연히 한국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중국 지방도시에서 초대형 아파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눈부신 급성장을 거듭해온 B 업체도 해외 서너 곳에서 조 단위의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중소업체 C 사장은 베트남에 머물며 차기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그 좋다는 건설족의 나라 한국’을 떠난 이유는 뭘까.
한국에서는 땅 확보부터가 난관의 연속이다. 조직폭력배 등이 미리 땅을 사 놓는 ‘알박기’를 통해 정상가의 10배를 요구하기도 한다. 칼이 꽂힌 탁자에서 조폭과의 담판도 불사해야 한다. ‘간 작은 업자’들은 이 단계에서 도태된다. 은행권을 전전하다 결국 고리의 이자에다 ‘수익금 배분 각서’까지 쓰고 사채를 끌어다 쓰는 일도 다반사다.
이 단계를 넘으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인허가’가 기다리고 있다. 교통·환경·도시계획 등 각 부서의 실무자 한 사람이라도 제동을 거는 날이면 사업은 올 스톱. 고금리의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주택업체 한 간부는 “실무부서끼리 이리저리 서류를 돌리는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무선을 통과해도 기초자치단체장, 상급자치단체 등 행정기관과 기초의회·광역의회·국회의원·시민단체가 차례차례 버티고 있다. 법에도 없는 각종 명목을 붙여 ‘도로를 내 달라’,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지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어느 한쪽에라도 찍히면 인허가는 하염없이 지연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채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300~400가구짜리 아파트의 땅 구입에서 인허가까지 최소 2~3년은 걸린다. 그 사이 주택 관련 법령은 수도 없이 바뀌고 시장 상황도 돌변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중단돼 신용 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거나 교도소로 간 주택업자들도 숱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택사업’보다는 ‘주택 로비’에 대한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정치 후원금은 기본이고 선거 운동원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주택업체 간부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지정하는 업체에 하도급공사를 시키거나 자재를 구매해주는 방법으로 뇌물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검찰·국세청 인맥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점잖은 대형 건설업체들은 토지구입과 인허가를 작은 주택업자(시행사)에 맡기고 자신들은 하도급공사만 맡는다. 대기업들은 브랜드 가치와 대출보증을 내세워 터무니없이 높은 공사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유명업체의 이름으로 지어진 숱한 아파트들이 시행사의 작업을 거친 작품이다. 그래서 아파트의 분양가는 토지비와 건축비가 전부가 아니다. ‘알박기 해결 비용’, ‘사채 이자’, ‘인허가 로비 비용’, ‘시행사 이윤’, ‘대형 업체 브랜드 비용’, ‘대출보증 비용’, ‘정치인 관리 비용’이 포함돼 있다.
교도소 담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사업을 하던 주택업체 사장들이 외국에 나가면 180도 다른 세상을 만난다. 한국에서는 만나기도 어려운 고위 관료가 공항까지 나와 레드 카펫을 깔아 주며 국빈 접대를 해 준다. 대통령까지 나서 “인허가는 내가 책임진다”며 부탁을 한다. 분양가 폭리의 주범으로 비난을 받고 관료들의 ‘돌림방 인허가’에 시달리던 주택업체에는 천국이 따로 없다. 로비를 구조화하는 불투명한 인허가 시스템과 규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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