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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박정태] 적전분열

영국신사77 2007. 1. 24. 16:21
                  [한마당―박정태] 적전분열


  고구려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는 내분이다. 당나라 대군의 침략을 여러 차례 막아낸 연개소문 사후(死後),그 아들 삼형제의 권력다툼이 고구려 몰락의 지름길이 됐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행정과 군사권을 가진 최고 관직 대막리지에 오른 장남 남생과 동생 남건·남산 간에 벌어진 골육상쟁이 그것이다.

서기 666년,남생이 대막리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순시에 나선 것을 틈타 두 동생이 내란을 일으켜 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쓰라린 패배를 맛본 남생은 적국인 당나라에 투항한다. 고구려의 최고 실권자가 제발로 걸어왔으니 당나라로선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다. 고구려의 군사기밀 등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게 된 당나라는 고구려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결국 2년 뒤인 668년 9월 고구려는 수도 평양성이 당나라 장수 이적의 대군에 함락되면서 종말을 고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대하사극 ‘대조영’은 이런 내용을 각색해 발해 건국 이전의 고구려 몰락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고구려 패망을 불러온 내분 사례가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전략을 담은 대외비 문건 유출과 관련해 인용될 정도니 FTA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분열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엊그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남생을 예로 들면서 “한·미 FTA 협상에서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문건 유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물론 필요시 형사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정부가 지난 13일 국회에 제시했던 대외비 문건이 감쪽같이 증발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측 협상카드를 그대로 노출한 셈이니 이거야말로 매국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국 측 대표가 ‘꼼꼼히 잘 봤다’고 한다. 치욕적이다.

고의 유출로 ‘적’을 이롭게 한 ‘남생’을 반드시 잡아내 응분의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이 파문이 정부와 국회 간 책임공방으로까지 번지고 있으니 차제에 정부의 문건 관리에도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