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깔보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의 금융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금융 시스템은 일본을 추월했다, 금융이 앞서면 나머지도 시간 문제다"는 자신감을 나타낸 인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도덕적 측면이나 그렇게 믿고 싶은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면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지난해 對日 무역적자는 253억 3,100만 달러. 2005년 대비 3.9% 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對日 교역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적자를 낸 한국이 어떤 근거에서 자신감을 갖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법도 합니다.
韓流로 일본의 아줌마 부대들이 몰려오는 현실에서 생소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對日 서비스 수지도 지난 2005년 이후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성능이면 가격이 저렴한, 그리고 같은 가격이면 품질과 서비스가 좋은 상품에, 아니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찾기 마련입니다.
반도체, 휴대전화, LCD를 많이 수출한다고 만족하지만 기초 기술,부품·소재 분야에서 일본과의 기술 격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보입니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을 일본이 챙긴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적절한 비유입니다.
반면 對日 적자를 상쇄시켜 온, 만만한 시장 중국에선 미세한 흐름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지난해 對中 무역흑자는 209억 6,700만 달러. 여전히 가장 흑자를 많이 내는 시장이지만 흑자 규모는 전년 대비 9.9% 줄면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습니다. 철강, 선박, 석유화학 등 기초 산업 분야에 대한 중국의 대대적인 투자를 감안하면 언제까지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줄이면서 새로운 시장, 새로운 제품 개발에 진력해야 한다"는 조언은 너무도 상투적입니다. 이처럼 말은 쉬운데 실천이 어려운 말이 또 있을까요? 국내 최대 그룹의 수장을 짓누르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여전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인 한반도'인 까닭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catch- up 전략의 한계가 분명하다면 일본이 안 했든, 또 못 했든 시장 개척, 또는 시장 개방에 승부수를 띄우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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