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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상길] 느헤미야의 리더십

영국신사77 2007. 1. 23. 17:41
               [세상만사―김상길] 느헤미야의 리더십
출처 블로그 > starxeon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starxeon/60033515864
 
 
BC 440년 경 이스라엘 공동체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했다. 유대인들이 강대국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환할 때였다. 특히 예루살렘 성이 불탄 채 파괴됐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다. 민족의 정체성,꿈의 붕괴였다. 그것은 환난을 당한 이스라엘 민족의 자화상이었다. 일찍이 학개 선지자도 붕괴된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고 백성 앞에서 절규한 바 있다. 솔로몬 왕 때 지어진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사회생활의 중심지였다. 그야말로 ‘선민(選民)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다.

이런 때 민족을 구할 지도자가 나타난다. 그가 신흥 강대국 바사(페르시아)에서 고위 관직에 있었던 유대인 포로 출신 느헤미야였다. 느헤미야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위로해 주셨다’이다. 그 이름대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민족,미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당시 아닥사스다 왕의 승낙을 받고 귀국,기어이 52일 만에 불탄 성벽을 재건한다.

그는 지혜와 용기,사명과 헌신의 지도자였다. 포로로서 제국의 일급 참모가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창조주의 은총이었다. 그는 능력과 헌신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그는 고국의 성전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한 후 제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 자신을 보내달라고 호소한다. 인간적으로 보면 위험한 결행이었다. 일찍이 아닥사스다 왕이 ‘결집된 쿠데타 음모가 있으니 성전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는 적(敵)의 상소문을 받아들여 성전 재건을 중지시킨 바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 느헤미야의 비장한 호소가 제왕의 마음,제국의 정책을 바꾼 것이다.

그는 성벽을 재건하기 전 백성 앞에서,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이상 가는 역사적인 메시지를 증거한다. 그것이 ‘골짜기 문을 통한 설교’다. 그는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자,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는 수치를 받지 말자”고 호소한다. 성을 재건하는 도중에 대적(對敵)들의 연합 공세와 방해,유화정책이 있었으나 이 때도 “내가 이제 큰 역사(役事)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지금 우리의 현실,정황은 어떠한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벽이 불탄 채 열려 있는 것처럼 정신 체계가 무너졌으며 도덕과 문화의 성벽,행복과 꿈의 성벽이 불탄 채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의 황폐함도 보고 있는 바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현대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근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식,생명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수치,국가적인 수치,사회적인 수치를 무수히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수치스러운 1위’는 얼마나 많은가. 느헤미야의 외침대로 다시는 수치를 받지 말아야 한다. 최근 발생한 지진을 시대의 경고로 받아 들이고 행적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황금 돼지의 해라며 들떠 흥청거릴 때가 아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듯 삶의 근본,경건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앞에 대적들의 연합 공세도 있을 것이다. 분열을 노리는 모함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 지리멸렬할 것이 아니라 의지를 다지고 하나되어야 한다. 한반도와 이 사회,일터와 가정의 미래는 사명자들의 꿈과 믿음에 달렸다. 느헤미야는 말했다.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방해 공작에 물러날 수 없다. 이 역사를 포기하고 어찌 멸망하겠느냐?”고. 황금 돼지 해보다 더 위대한 ‘기독교 부흥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상길 펣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