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역경의 열매] 대의그룹 회장 채의숭장로 (6)~(10)

영국신사77 2007. 1. 23. 19:55
업데이트 : 2007.01.08 17:13:17
[역경의 열매] 채의숭 (6) 재기 큰 도움 친구 소중함 체험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대륙을 바라보았다. 잃은 것은 유형의 자산뿐,정말 중요한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친구 김성중의 도움은 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절망에 처한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난해 그 친구와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년 전을 기억하는가? 자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걸세. 자네의 도움을 평생 잊을 수 없어.”

“옛날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가? 그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 자네가 성공한 모습을 보니 참 기쁘네.”

좋은 친구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업은 사람이다. 경영은 감동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최상의 경영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우리 직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역시 회사와 연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또 가능하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전화위복. 화가 변해서 복이 된다. 수재(水災)를 겪고 난 후,회사는 오히려 성장했다. 역경을 통해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해외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삶의 3대 목표 중 하나였다. “평생동안 100개의 교회를 건축한다.” 이것은 내 젊은 날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시간과 재물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목적이 이끄는 삶,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이었다. 나는 해외 오지에 교회를 건축하기 이전에 먼저 기도를 심었다. 교회건축을 놓고 아내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 마음 속에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됐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마음은 선교현장에 가 있었다. 아이들이 제비 주둥이처럼 입을 모으고 찬송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것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인가. 꿈과 비전과 목적을 분명히 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목적의 반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목적이 분명하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교회건축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동주금형 회장 부인의 고마운 뜻이 하나의 교회로 탄생했다. 그녀는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실의에 빠져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건축 헌금을 보내온 것이다.

“해외 오지에 교회를 하나 개척해주세요. 남편도 하늘나라에서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돈을 보태서 라오스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라오스 52km’라는 교회다.

작은 누이는 자녀들이 마련해준 회갑잔치 비용을 고스란히 헌금했다.

“잔치를 하면 뭣해. 그 비용을 모두 내게 다오. 그 돈으로 해외에 교회를 하나 세우겠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해야지.”

누이의 헌금으로 브루나이교회를 봉헌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장인의 도움으로 네팔에도 교회를 세웠다. 이런 아름다운 손길들이 모여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복음의 불모지에 찬양이 힘차게 울려퍼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09 15:26:50
[역경의 열매] 채의숭 (7) 불편한 몸으로 브루나이 선교 강행

1997년 8월. 그 찌는 듯한 여름을 생과 사의 길목에서 허우적거렸다. 모교 총동문회장을 맡은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한 후 이튿날 병원에 실려갔다.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과로에 의한 뇌출혈. 설령 완치가 된다 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반신불수? 마음이 심란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반신불수라니.

“걷지 못해도 괜찮네. 말을 못해도 괜찮네. 부디 살아서 우리 곁에만 있어주게.”

친구 이기원이 병실에 찾아와 눈물을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말도 못하고 걷지 못해도 괜찮다니…. 친구의 말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산삼을 가져온 사람,뇌졸중에 특효라는 약초를 가져온 사람,웅담을 넣은 보드카를 가져온 사람…. 병실에 수많은 약들이 쌓여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성이었다.

“하나님,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요. 이제 불편한 몸으로 여생을 보내야 하나요? 그러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선교는 계속될 것입니다.”

브루나이의 선교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단정읍파교회의 봉헌식이 예정돼 있었다.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선교사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병실에 누워 있어도 계속 교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브루나이로 가겠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나는 브루나이행을 선언했다.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현지에서 다시 한번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이요섭 목사님과 아내,그리고 큰딸 채린이 동행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여행에 나섰다.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공항에서 내려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린 후 다시 배로 갈아타고 십단정읍파교회로 향했다. 현지의 한국인이 우리와 동행하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채의숭 선생이 누구신가요?”

“난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가 갑자기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병장 하정남 인사 올립니다.”

내 기억이 3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 갔다. 1996년 나는 소대장으로 근무했고 그는 병장이었다. 그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이곳에 체류,현재 브루나이 한인교회 남선교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동안 선배님의 이름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이 크게 성공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마침내오늘 하나님께서 오늘 만나뵙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정말 놀랍군. 자네가 이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어서 감사하네.”

감격적인 해후였다. 우리는 아주 은혜로운 간증을 나누면서 선교여행을 계속했다. 교회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물살이 워낙 급해서 배가 자꾸 흔들렸다. 동행한 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버지,교회를 100개 세우겠다고 하셨지요? 제게는 제발 그런 부담을 주지 마세요. 아버지가 그 목표를 채워주세요. 선교여행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오죽했으면 그런 고백을 했을까. 우리가 여유로운 해외여행을 즐길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오지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항상 위험과 시련이 따른다. 하나님은 병든 몸으로 선교지를 방문한 내게 크고 비밀한 것을 예비해놓으셨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좋은 선물을….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10 15:11:51
[역경의 열매] 채의숭 (8) 귀국하자 큰딸 회개·병 완치 기적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비밀한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십단정읍파교회 봉헌식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한 내게 상상하지 못할 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큰딸의 변화에 감사했다. 교회 건축의 부담을 주지 말라던 딸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아버지,정말 회개합니다. 그때는 선교여행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이보다 보람찬 일이 어디 있나 싶었어요. 이제는 고생이 되더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갈 것입니다.”

아,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던가. 나는 딸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은혜였다.

나는 치료를 담당한 경희대 김진규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나의 선교여행을 극구 만류했었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나를 아주 면밀하게 진찰했다. 그리고 놀라운 선언을 했다.

“채 회장의 병을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요. 그 어떤 후유증도 없을 것입니다. 아주 완벽해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섭리는 어찌 이리도 오묘하신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어찌 이리도 크신지요. 남은 삶을 통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환자의 치료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의사의 성숙한 인격에 또 감동했다. 김 박사는 지금 장로가 되어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날 이후부터 14년 동안 먹어오던 혈압약을 완전히 끊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목숨을 걸고 선교여행을 다녀온 내게 하나님은 큰 선물로 화답하셨다. 그 은혜가 내게 차고 넘쳤다.

그후 네팔에 다시 카투완 교회를 건축했다. 카트만두에서 1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서너 시간쯤 가야하는 오지에 세워진 교회였다. 우리 일행은 카트만두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공항 사무실에서 출발 여부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활주로를 보니 몇몇 사람들이 비행기 바퀴를 철사로 꿰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외국인들은 기겁을 했다. 저렇게 위험한 비행기를 어떻게 탈 수 있을까. 몇 사람이 탑승을 거절했다. 우리 일행은 대합실에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줄 믿습니다. 설령 사고가 나서 숨지면 그것은 순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곁에 앉게 되겠지요.”

기도를 마치자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무사히 카투완 교회에 도착해 감격적인 봉헌예배를 드렸다. 이런 체험들이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씩 성장시켜 주었다. 선교여행에서 겪은 숱한 역경과 시련들이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나는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위험을 만나면 회피하지 않는다. 위기를 만나면 오히려 투지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다. 두려운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물 흐르는 대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나는 젊은이들에게 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살라고 충고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지금까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11 16:03:00
[역경의 열매] 채의숭 (9) 피지 상공 위기일발 순간 “주님”

선교는 순교다. 오지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숱한 위험을 동반한다. 지난해 ‘피지에서 생긴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우리 일행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를 출발해 피지로 향했다. 아름다운 섬나라 피지에 교회를 하나 세울 생각이었다. 피지는 감리교 국가로서 복음화율은 높지만 중생한 크리스천은 그리 많지 않다. MJ 840편은 피지의 난디공항에 착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철커덕,끼익…”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행기의 바퀴에 문제가 발생할 때 생기는 소리였다. 이것은 오랜 탑승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강하던 비행기가 다시 상승했다. 착륙 실패. 비행기는 다시 상공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착륙을을 시도했다. 다시 들려오는 굉음.

“철커덕,끼익…”

비행기가 급상승했다. 그 과정에서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적재함과 바닥의 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비행기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울부짖는 사람,몸을 심하게 떠는 사람,통곡을 하는 사람,비명을 지르는 사람…. 극단적인 위험 앞에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노출됐다. 점잖아 보이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죽음. 그때 떠오른 단어였다.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담대한 믿음이 존경스러웠다. 나 역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감사했다. 여기에서 죽으면 순교 아닌가. 하나님 곁에 갈 텐데 무엇이 두려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제발 진정하십시오. 비행기가 갑자기 돌풍을 만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장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점 더 공포심만 가중시켰다. 다시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

“제발 진정하세요. 이 비행기는 급유를 위해 다시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갈 것입니다.”

기장의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급유를 위해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승객들은 이미 바퀴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이었다.

“하나님,우리의 삶이 이렇게 마감되는 것인가요. 소돔성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멸망했잖아요. 제 아내를 보세요. 비록 의인은 아닐지라도 평생 의인처럼 살려고 노력했잖아요. 하나님,삶의 목적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데려가지 않는다면서요. 저는 100개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적이 저를 이곳까지 데려왔잖아요.”

비행기는 세번째 착륙을 시도했다. 난디공항에는 소방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조치였다. 기체는 엄청난 굉음과 불꽃을 발하며 착륙에 성공했다. 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때 바로 옆에 앉은 한 외국인이 우리 부부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그리 평안한 모습이었는가. 두렵지 않았는가.”

“우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 죽으면 영원한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 우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행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14 16:09:51
[역경의 열매] 채의숭 (10) 사업 축복은 선교사명 다 하라는 뜻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적이 없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은 선교의 현장에 한번 가 보라.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내도 급한데,해외선교가 과연 필요하냐고? 선교현장을 가 보면 내 소유를 모두 털어주고 싶은 생각이 솟구친다. 내가 왜 사업을 하는가? 그 해답을 선교현장에서 얻는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시키기 위해 사업의 복을 주셨다. 내가 준비하고 추진하는 사업들이 대부분 성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IMF 때도 수출이 줄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다.

기도의 지원병을 많이 가진 것도 남들이 갖지 못한 자산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 열심히 기도한다. 기도하는 아내를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좋은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1967년 결혼했다. 그때부터 40년 동안 단 한번도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실이다. 싸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묻는다.

“40년 동안 부부싸움을 한번도 안했다고요?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부부싸움을 안한 것이 오히려 문제 아닌가요?”

나는 아내를 하나님의 지체로 생각한다. 한번도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금실의 해법은 골로새서 3장 23절에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부부화합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부부가 서로 주께 하듯 하면 왜 싸우겠는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주께 하듯 하면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성경은 삶의 지혜를 담은 보고(寶庫)다.

우리 부부의 결혼도 아주 극적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이성교제를 해보지 못했다. 인생의 3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화여대 약학대를 졸업한 아내와 첫선을 보게 됐다.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장인은 교회를 개척하고 사회사업에 열정을 쏟으신 신실한 장로였다. 장모는 기도하는 권사였다.

우리는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양가가 모두 신앙의 가정이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기도지원을 받았지만,결혼한 후에는 처가의 기도지원까지 받으니 만사가 어찌 순조롭지 않겠는가. 사업이 번창한 것도 바로 이런 기도 덕분이다. 또 가정이 평안하기 때문에 사업도 잘 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어머니와 장모님의 새벽기도가 우리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결혼방법까지 닮는 것일까. 큰딸이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하더니,아들도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금실좋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항상 사랑이 넘친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자신이 먼저 희생한다. 그러나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매사에 부정적이다. 또 이기적이다.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줄 의무가 있다.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키고,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