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2.29 23:16
-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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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쿄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한국, 일본, 중국 및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모인 세미나가 있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발표가 끝난 후 토론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왜 이렇게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지에 모아졌다. 과도한 정부 규제, 독점적 노조, 획일적 교육 등 좌파로 기우는 경제시스템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이때 조용히 듣고 있던 영국 교수가 한마디 던지기를 “You know, Thatcher is alive.(대처가 아직 살아있는 것 아시죠)”
한바탕 웃음 속에 사회자가 ‘영국병’과 비슷한 ‘한국병’이 빨리 치유되기를 기원한다는 코멘트로 토론은 끝났다. 대처는 누구이며 ‘영국병’은 무엇인가? ‘영국 역사상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 ‘철의 여인’ 등이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그러나 81세의 대처가 아직 기억되는 까닭은 좌파 사고에 기반한 경제 운용으로 망가진 영국 경제를 자유시장을 기조로 하는 시스템 전환을 통하여 일거에 회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영국 경제는 독점 노조의 횡포 및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정부 제도들로 인하여 병들어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OECD 평균보다 두 배가 높았고 실업률은 7%로 OECD 평균보다 2.5%포인트나 높았다. 영국 정부는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임금과 물가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나 코퍼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을 전제로 한 이 정책은 독점 노조를 더 키우는 결과만 가져 왔을 뿐 실패하고 말았다. 거듭되는 노조의 실력 행사로 정부는 사회주의적 정책을 확대하였고 방만한 지출에 비해 턱없이 낮은 세수로 재정 적자는 심화되었다. 대처는 집권 초기 강력한 통화 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각종 정부 기능을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규제를 철폐하여 시장 기능이 다시 작동하게 하였다.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였다. 노동 분야 개혁은 점진적으로 그러나 일관되게 이루어졌다. 동조 파업을 금지하였으며,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지도록 하였다. 인플레이션은 급속히 낮아졌고 실업률은 1980년대 후반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한국 경제는 병에 걸렸는가? 지난 수년 동안 우리의 성장잠재력은 형편없이 약화되었다. 현 정부 들어 경제성장률은 어느 한 해도 세계의 평균 성장률에 못 미치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로 인해 이 땅에서 경제하려는 의지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집권층의 코퍼라티즘 사고로 인하여 독점 노조의 발언권은 점점 세지고 각종 정치 파업으로 한국은 투자 기피처가 되고 있다. 임금은 오르고 청년 일자리는 절대수가 감소하고 있다. 정부 규제는 더욱 심해져 이젠 직접적 가격 통제가 서슴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정부 재정은 팽창을 거듭하여 정부 지출의 대국민소득 비중이 불과 3년 만에 12%대에서 14%대로 급증하였다.
현재 한국은 사회주의적 사조, 독점적 정치 노조, 시장을 무시하는 정부 등 1970년대의 영국과 흡사하다. 그래서 대처가 필요하다. 시장 중심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고 독점 노조의 철폐가 필요하며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또 대처의 개혁을 가능하게 했던 정부 교체도 필요하다. 시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실질적 복지라는 컨센서스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일 필요한 것은 대처의 리더십이다. 대처리즘이 갖는 아이디어와 정책들은 이젠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와 정책을 실천하여 시스템을 바꾸는 리더십이다. 올바른 제도에 대한 굳은 믿음, 거대한 이익 집단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력, 그리고 복잡한 것들 속에서 핵심을 골라내는 지적 명석함 등이 대처 리더십이다. 아이디어와 리더십에 관한 대처의 다음 발언은 상징적이다.
“여러 가지 소리로 울기만 하는 닭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알을 낳는 닭이다.” 그렇다. 새해에 우리는 소리만 지르는 리더십 보다는 실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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