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당수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의 대통령직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건국 초기부터 그랬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을 회고하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화려한 불행’으로 묘사했으며,앤드류 잭슨은 ‘위엄있는 노예생활’로 비하했다. 또 제임스 폴크는 “결코 장미꽃 침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20세기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백악관을 백옥관(白獄館·the great white jail)이라 불렀다(대통령과 권력/로버트 윌슨 편,허용범 역).
워낙 힘들어서일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곧 존립·발전의 최고 책임자이다. 일국의 운명을 시시각각 결정해야 하고,국리민복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도중에 그만두겠다고 한 대통령은 아직 없었다고 한다.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무한권력이 보장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미국의 수많은 주 지사와 상원의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같은 대통제 국가인 우리나라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8명의 전직 대통령 중 1명은 암살당했고,3명은 임기중에 밀려났다. 또 2명은 퇴임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맹렬히 뛰고 있으니 조금은 이상하다 할 것이다.
중앙일간지 신년호에 대선 예비후보로 보도된 인사는 줄잡아 20명에 이른다. 야권에선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씨 등 이른바 빅3에 원희룡씨가 가세했다. 이회창씨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민주노동당에서도 후보를 낼 계획이라고 한다. 여권에선 고건씨가 정계개편을 전제로 열심히 뛰고 있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씨를 비롯한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출정채비를 서두르고 있으며,정운찬씨 등 비정치권 인사들도 후보군에 올라 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뛰는 것은 정치적 기본권에 속한다. 하지만 60년 헌정사에서 성공한 대통령을 찾아보기 힘든 대한민국이기에 국민들은 대통령 예비후보들을 상대로 일찌감치 검증에 나서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기필코 ‘괜찮은 지도자’를 선택해야겠기에 해보는 말이다.
미국의 저명 언론인 내이슨 밀러가 쓴 대통령학 연구서 ‘최악의 미국 대통령 10인’(김형곤 역)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답이 나온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대통령의 조건은 대략 이렇다. 첫째,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최소한 시대착오적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다. 둘째,용기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우유부단은 금물이란 얘기다. 셋째,독단과 아집의 정치인은 안 된다. 상생의 정치를 이끌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리라. 넷째,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사생활이 깨끗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외 건강,근면성,언변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임은 불문가지다. 예비후보들 중에는 이런 조건을 대부분 갖춘 인사가 있다고 본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아직 물밑에 있는 경우도 상정 가능하다. 국민들은 지금부터 두 눈 부릅뜨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평점을 매겨 나가야 한다. 능력있는 잠룡을 발굴하는 작업도 병행해야겠다. 과거 선거에서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서는 절대 안 된다.
이와 함께 예비후보들은 제각기 가슴에 손을 얹고 대통령으로서의 자격 조건을 갖췄는지 자문해 볼 때다. 자격 미달이라 생각되면 당장 꿈을 접기 바란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예의다.
성기철 펗csung@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