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2.24 22:40 / 수정 : 2006.12.24 23:27
- ▲이인열 뉴델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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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그’에게 “비하르(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주(州)를 일본에 6개월만 빌려 주면 도쿄처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러자 ‘그’는 “도쿄를 나에게 2주일만 맡겨 주면 비하르처럼 만들 수 있다”고 응수했다.
인도에서 유행했던 유머다. 여기서 그는 누굴까. 바로 인도 비하르 주지사를 거쳐 지금은 철도장관인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Lalu Prasad Yadav)다. 인도에서 좋든 싫든 랄루 장관만큼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은 드물다. 앞서 소개한 유머는 ‘최불암 시리즈’와 유사한 ‘랄루 시리즈’의 한 편이다. 그의 이름을 딴 ‘담배(랄루 카이니)’ ‘초콜릿(랄루 카 카자나)’ ‘인형(랄루지 돌)’에 심지어 다트(Dart)까지 등장했다.
그가 누구기에 이렇게 유명한가.
그는 소위 기득권 계층 출신이 아니다.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최하층 카스트인 수드라에 속한다. 그의 아버지는 관공서 사환이었다. 엘리트는 영어를 하는 인도지만 그는 지금도 영어를 못한다.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에다 주지사, 이제 장관까지 하고 있다. 비하르의 파트나 대학에 다닐 때 학생운동에 뛰어든 게 계기다. 대중연설의 달인(達人)인 그는 1977년 29세 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90년 비하르주의 주지사가 된다. 주지사 당선의 비결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었다. 비하르 주민의 40%가 자신과 같은 최하층 계급이다. 그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겠다고 했다. 당선 후 철저히 지지자를 위한 정치에 골몰했다. 도로나 공장 건설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대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빈민들의 집을 찾아가 서민음식인 사투(Sattu)를 함께 먹었다. 빈민들에겐 어려운 정책보다 친구가 돼 주는 그가 더 친숙했고, 이게 그의 장기 집권(8년)을 보장했다.
그러는 동안 비하르는 점점 살기 힘든 지역으로 바뀌었다. 앞서 소개한 ‘고이즈미 유머’ 역시 무능한 랄루라면 도쿄도 2주일이면 망칠 수 있다는 풍자가 가미된 얘기다. 그런데 그가 2004년 장관이 되면서 확 달라졌다. 입각 당시 만성적자로 파산선고 직전이던 인도 철도청을 3년 만에 흑자로 변모시켰다. 그의 철도청 개혁은 ‘글로벌 이슈’가 될 정도다. 인도경영대학원(IIM)은 물론 지난 20일엔 하버드대와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학생들이 찾아와 그를 만나 ‘랄루 현상’을 취재했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그가 스스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관이 되자 인기영합주의는 멀리 던져버렸다. 지각한 직원 500명의 월급을 깎아버렸고, 심야에 사무실을 방문, 직원들의 기강을 세웠다. 또 200여 명의 관리자급 직원을 해외로 보내 선진 철도 서비스를 배우게 했다. 우수인재를 뽑고 그들에게 모든 걸 맡겼다. 주지사 시절엔 하층 카스트만 경찰로 뽑는 등 지지기반만 챙긴다는 비판을 받던 그였다. 인도 경제신문 이코노믹타임스의 마유르 기자는 “주지사일 때는 연임이 절대 목표였다면 장관이 되어선 훌륭한 업적이 최고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랄루. 그는 여전히 인도 지식인들로부터 부패 정치인, 구시대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논란을 뛰어넘어 그는 ‘성공한 정치인’에서 ‘성공하는 장관’의 길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인도인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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