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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바보들의 행진

영국신사77 2006. 12. 26. 12:50
                   [분수대] 바보들의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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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가 바버라 터치먼은 나라를 망치는 악정(惡政)의 종류를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폭정(暴政) 또는 압정(壓政)이다. 로마의 네로황제와 소련의 스탈린을 비롯해 수도 없는 폭군과 압제자들이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둘째는 지나친 야심이다. 자칭 우수민족에 의한 세계 지배를 꿈꾼 히틀러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제국의 패망은 무모한 야심의 말로를 보여준다.

 

  셋째는 무능과 타락이다. 로마제국 말기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말기가 좋은 예다.

 

  마지막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유력한 방법은 통치자의 독선과 아집이다.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무장한 고대 트로이의 지배자들은 수상한 그리스의 목마를 굳이 성 안으로 끌어들여 화를 자초했고, 신비주의와 미신에 사로잡힌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는 인구 500만 명의 나라를 불과 600명의 병사뿐인 코르테스에게 통째로 내줬다. 수많은 반대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선에 빠진 지도자는 최악의 선택만을 고집한 끝에 파멸하고 만다.

터치먼은 이 가운데 독선과 아집에 의한 악정에 주목했다. 조금의 상식과 지혜만 있어도 뻔한 정답을 두고, 어쩌면 그렇게 잘못된 길만 골라 갈 수 있는지. 독선과 아집은 개인의 타고난 성격에 좌우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게 바로 독선적 지도자의 첫 번째 특징이다.

터치먼은 독선적 통치의 원천을 자기 기만과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이런 지도자는 편견이 가득 찬 고정관념을 품은 채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반하는 징후는 무조건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본래의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도 진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무적함대로 영국을 공격했다가 국고를 거덜낸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독선적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도 그 정책이 본질적으로 탁월하다는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다."-'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

                                                                                  김종수 논설위원

 
200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