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Opinion銘言

한국의 '버블 시리즈'

영국신사77 2006. 12. 21. 00:44
                        한국의 '버블 시리즈' 
 2006-12-20 17:40:11

  서점에는 부동산 관련 서적들이 넘치고 부자들뿐 아니라 내 집을 찾는 실수요자층도 앞으로 가격이 뛸 지역을 찾느라 집값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중략) 집값 폭등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을 양산해 격차(사회적 양극화)를 더 벌리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서점의 부동산 코너와 군중의 부풀려진 꿈도 터질 듯하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서울특파원이 16일 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다. 한국의 부동산 얘기는 이제 국제적 관심사가 돼 버렸다. 이곳 일본에서도 연말 송년회 자리마다 단골 메뉴는 한국의 부동산 이야기다. 한국 주재원들과의 자리는 물론이고 한국을 좀 안다는 일본인들도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의 '부동산 버블'에 관해 말한다. 버블이 어디 이뿐이랴.

얼마 전 딸이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했다며 서울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딸은 오전 6시30분에 집을 나가 학교 보충수업이 끝나는 것이 오후 10시. 바로 학원으로 이동해 오전 1시까지 과외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오전 2시"라고 한다. 월급의 거의 절반이 교육비로 들어간단다. "유별난 게 아니냐"고 묻자 "다들 그러니 따라 하지 않으면 못 쫓아가고 낙오된다"고 한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이냐고 한마디 더 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핀잔만 들었다.

기러기 생활하며 해외에 있는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열심히 송금하는 아빠들의 신세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일전에 도쿄에서 만난 한국의 한 부품.소재 제조업 사장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일본의 저명한 화학 부품.소재 기업과 투자유치를 맺고 기술 이전을 받으려다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1년 전만 해도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넘었지만 이제 800원도 안 되는 만큼 그냥 완제품을 수입하는 게 남는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간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 격차 해소 같은 장기적이고 거창한 명분 따윈 안중에 없단다.

'부동산 버블' '교육 버블' '환율 버블'…. 한국에는 웬 버블이 이리 많은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큰 악성 버블이 있다. 어찌 보면 모든 버블이 이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바로 한국 국민의 '의식 버블'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1만7000달러. 그러나 3만7000달러의 일본보다 국민의 눈높이는 몇 배는 높아 보인다. 일본의 몇 배는 작은 땅에 살면서 사는 집들은 몇 배는 크다. 노른자위 동네의 평당 집값도 한국이 역전승한 지 오래다. 일본의 사립학교들도 공부 많이 시키기로 소문났지만 '대치동 학원' 이야기를 들려주면 혀를 내두른다. 더구나 자식의 영어실력보다 가족의 중요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통 일본인들에게는 '기러기 가족'이란 단어조차 어리둥절할 뿐이다.

기업들은 또 어떤가.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51년간 양국 간 무역수지에서 흑자 규모가 250배나 늘었지만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에 밀리고 있다"며 엄살이다. '잃어버린 10년'의 터널을 뚫고 경기가 크게 회복해도 "또다시 버블이 올 수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렇다면 1만 달러 시대를 사는 한국의 현주소는 맞는 것일까. 물론 국민소득이 적다고 현상에 만족해서야 곤란하다. 더 큰 뜻을 품어야 발전의 길도 열린다. 하지만 국민의 사고와 판단기준 자체가 1만7000달러가 아닌 3만~4만 달러 수준에 맞춰진 것은 아닐까. 웬만해서는 성에 차지 않는 '의식 버블'이야말로 한국민의 고질병이 아닐까. 요즘 환율이 유리해졌다고 해서 도쿄의 명품 가게에 몰려 와 고가의 상품들을 무더기로 사가는 한국의 관광객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의식개혁이 없는 한 '버블 시리즈'의 속편은 계속 등장할 것 같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