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경제는 순탄치 않았다. 강도 높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앞길이 잘 안 보이는 기업들은 투자를 꺼렸다. 당연히 일자리가 늘지 않아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경제에 희망을 보여준 '새뚝이'들이 있었다. '하늘의 포르셰'라 칭송을 받은 국산 민간 비행기 개발자, 내로라하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첫 한국인 여성 지사장, 모래사막의 중동 땅에 세계 최고층 마천루를 짓는 건설 기술자, 휴대전화 히트작 디자이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코리아'를 세계에 각인한 인물들이었다.
대한민국 항공사 새로 쓰다 미국에 민간 비행기 첫 수출 항공우주연구원 안석민 박사
올 3월 미국 워싱턴DC 인근의 몽고메리 에어파크. 한국의 4인승 민간항공기 반디호(Firefly)가 최대 중량을 넘는 1.5t의 짐을 싣고 사뿐히 날아올랐다. 반디호는 곧 고도 6000m까지 오르며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다. 미국 비행기 장비업체인 프락시에이비에이션은 이 모습에 반해 반디호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민간비행기 사상 최초로 항공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 수출된 것이다.
대한민국 항공사를 새로 쓴 반디호의 영광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안석민(49.사진) 박사가 있었다. 그는 민항기 불모지인 한국에서 10년간 가시밭길 같았던 반디호 개발을 총지휘했다. 반디호는 꼬리날개가 앞에 달려 안정성을 높인 '선미익(先尾翼.canard)'항공기다. 당시 국내엔 이 기술이 없었지만 외국 비행기를 들여와 수백 번씩 뜯어보면서 이를 악물고 개발에 도전했다.
시험 조종사였던 동료 교수들이 후속 기종을 몰다 추락사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 이후 지구 한 바퀴인 4만여㎞를 시험비행할 때 안 박사는 늘 반디호와 함께했다. 성능에 자신이 생기자 지구촌 곳곳의 에어쇼를 찾아다니며 전시회를 여는 등 반디호의 이름을 알리는 일에도 힘썼다. 그리고 결국 올해 제작사인 신영중공업에서 상용화기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반디호 수출은 한국 항공산업에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선미익기를 보란 듯 내놓아 항공 종주국에 뒤지지 않는 기술을 과시했고,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물지 않고도 항공기술을 개발해 산업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제 반디호는 세계 곳곳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프락시와는 앞으로 총 60대를 수출한다는 계약을 곧 체결할 예정이다. 안 박사는 "반디호는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더 고급 비행기를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준술 기자
미국 상대로 '강단 있는' 무역 담판 김종훈 FTA 한국 수석대표
"힘들다고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협상 타결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총지휘하고 있는 김종훈(54.사진) 우리 측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 FTA 찬반 논란 속에서 올 한 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과의 밀고 당기는 협상 외에도 FTA 반대 여론 설득작업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해내느라 마음 고생도 심했다. 김 대표는 1974년 외교부(외시 8회)에 들어와 의전 분야 등에서 근무하다 94년부터 3년간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을 맡으며 통상 분야에 발을 들여놨다. 그 후 국제경제국 심의관.지역통상국장 등을 역임하며 외국산 담배와 자동차 시장 개방 협상, 중국과의 마늘 협상 등 굵직한 통상 협상에 참여했다. 2005년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실무를 담당한 고위관리회의 의장을 맡은 뒤 역량을 인정받아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로 임명됐다.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선 내내 '강단 있는' 자세를 보였다는 평가다.
홍병기 기자
'스킨십 경영'으로 노사화합 일궈 GM 아태 사장 닉 라일리
미국 GM의 닉 라일리(57.사진)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장은 기업의 해외 현지화 성공 사례를 한국에서 이룬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다.
7월 GM대우 사장에서 아태 지역을 총괄하는 사장으로 승진해 현재는 중국 상하이에서 근무한다. 2002년 GM대우 출범 뒤 만 4년간 수출을 크게 늘리고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특히 정리해고 직원 600여 명을 회사 경영이 호전되자 복직시키는 파격 결정으로 노사 화합의 기틀을 다졌다.
영국의 대학 재학 시절 럭비를 즐긴 그는 직원들과 운동으로 몸을 부대끼고 얼굴을 대면해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스킨십 경영'에 힘썼다. TV 광고에 나와 한국말로 "우리의 열정으로…"라고 외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상하이에서 살지만 서울국제경제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그는 지난달 한국국제경영학회가 선정한 글로벌 CEO 대상을 받았다.
김승현 기자
"LCD 모니터 정체성을 확립했다" '한편의 시'같은 디자인 LG전자 박세라 책임연구원
올해 '디자인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 LG전자가 임원급 '수퍼 디자이너'로 선정한 박세라(36.사진) 책임연구원. 'LG전자 LCD 모니터의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평을 듣는다. 전원 스위치를 독수리 눈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한 '이글 아이' 디자인이 그것으로 LG전자 모니터 전 제품에 적용됐다.
1997년 입사 후 10년째 모니터 디자인에 몰두해온 그는 지난해 40시리즈 모니터를 디자인했다. 직선 위주에서 탈피해 곡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이 제품은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행을 선도하는 유럽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미국의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유럽의 양대 산업디자인 상인 iF와 레드닷을 휩쓸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주지아르가 이 모니터를 보고 "한 편의 시(詩)"라고 감탄해 모니터 뒷면에 "E'UNA POESIA(한 편의 시)"라는 사인을 남겼을 정도다.
4월 런던예술대의 디자인 전문대학인 세인트마틴의 초빙교수로 위촉된 김철호 전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심포지엄에서 이 제품을 '한국의 대표적 디자인 개발 성공사례'의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올해 박 연구원이 디자인한 판타지 모니터는 최근 'iF 2007'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초콜릿폰을 디자인한 차강희 책임연구원과 함께 수퍼 디자이너 1호로 선정된 데 대해 "아직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다"며 "프로답게 성과로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세계의 마천루를 들어올리다 삼성건설 김경준 상무
삼성건설 김경준(51.사진) 상무는 세계 고층 빌딩사를 다시 쓰고 있는 인물이다. 1993년부터 해외 초고층 건축 현장을 누비며 현재 세계 최고층인 말레이시아 KLCC타워(88층.452m) 현장소장을 지냈다. 지금은 2년 뒤 1위 자리를 차지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신축 빌딩인 버즈 두바이(160층.700m 이상) 현장소장이다. 남산 높이(262m)의 3배에 가까운 버즈 두바이에는 호텔.아파트.사무실.전망대 등이 들어선다. 연면적이 여의도공원(6만6000평)의 2배가 넘는 15만 평이고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인 10만 명이 살게 된다. 현재 350m 정도인 100층 가까이 올라갔고 하루 3개층씩 높아진다. 핵심 기술분야를 맡고 있는 18명의 한국인 기술인력과 함께 최다 6000명에 달하는 '다국적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30도가 넘는 찌는 듯한 더위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인력 간의 의사소통이 힘들지만 이번 공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기술력을 확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페덱스코리아 첫 한국인 여성 지사장 설립 17년 만에 … 채은미 사장
미국계 항공특송업체 페덱스코리아에는 설립 17년 만인 올해 첫 한국인 지사장이 부임했다. 채은미(44.사진)씨로 페덱스 한국지사의 여성 사장은 처음이다. 그는 28세에 이 회사 최연소 부장 기록도 세웠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나온 그는 대한항공 등을 거쳐 1990년 페덱스코리아에 입사했다. 2004년부터 한국.일본 등지를 총괄하는 북태평양 인사 담당 상무로 일하다 사장으로 승진했다. 페덱스코리아의 수도권 육상 운송을 책임지는 지상 운영부 이사 시절(2000~2003년)에는 222명 배송 담당 직원의 이름과 특징을 모두 외웠다고 한다. 그는 "이런 마음이 직원들에게 전해졌는지 고객 서비스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객 불만율은 뚝 떨어져 그는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 미 본사가 주는 '파이브 스타' 상을 받았다. 전 세계 페덱스 직원 25만여 명 가운데 한 해 40명 정도가 받는 상이다.
채 사장은 "앞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자상함을 곁들인 리더십, '따뜻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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