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다니엘서

제 6장 위대한 노년-사자굴에 던지운 다니엘-

영국신사77 2006. 8. 17. 22:28
제 6장 위대한 노년 -사자굴에 던지운 다니엘-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시작하는말


인생의 노년


  늙음을 탄식하고 백발을 서러워하는 마음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다름이 없다. 사람은 예외없이 늙어가고 백발과 함께 삶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여기 늙음을 두려워하거나 탄식하는 대신, 늙음의 의미를 다르게 만든 위대한 노년(老年)이 있다.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타향에 포로로 잡혀온 18세 소년 다니엘은 85세의 노경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시들지 않는 인생 상록수(常綠樹)였으며, 늙음을 거부하는 불사조(不死鳥)였다. 그는 쇠퇴하는 노년에 가장 진취적인 일을 했으며, 모든 것에 소심해지는 노경에 가장 대담한 경험을 했다. 일출의 여명(黎明)보다 황혼의 낙조(落照)를 더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한 위대한 노년을 감상하자. 무엇이 노년을 이처럼 위대하게 만드는가?




  ▶ 역사적 배경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단 5:31).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하룻밤 사이에 마지막을 맞았다. 

그리고 불경스러운 왕 벨사살도 그날 밤 마지막을 맞았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샤의 국부(國父) 고레스는, 

외조부요 장인이기도 한 연합국 메대 왕을 추대하여, 

잠시 자신이 정복한 대제국의 명목상의 왕이 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62세에 왕이 된 다니엘서 6장의 메대 사람 다리오(Darius)일 수 있는데, 

다리오는 개인 이름이 아니라 보좌명(寶座明)이다. 

때는 기원전 538년이었다.


▶ 제일인자 다니엘


1.노경에 이르렀을 때의 다니엘의 신분이 어떻게 기록돼 있는가?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 6:1, 2).


[설명] 바벨론은 망하였으나 다니엘은 망하지 아니하였다. 

정복당한 바벨론을 다스리는 과도기에 왕이 된 메대 왕 다리오는 

정복한 바벨론을 다스리는 일에 노 정치인 다니엘을 다시 기용하여 

세 명의 총리 중 수석(首席) 총리로 임명했다. 

"그 중에 하나이라"는 표현은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났다"는 말에서와 같이 

실제로는 "그중에 첫째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니엘은 언제나 어디서나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85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마음이 민첩(敏捷)"하여 

정확한 기억력과 빠른 판단과 청렴(淸廉)한 인격을 유지하면서 

탁월한 업무 수행을 통하여 최고의 신임과 호감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2.이러한 다니엘의 신변에 어떤 심각한 일이 일어났는가?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설명]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성공하기 위하여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함과 동시에, 성공한 후에 그것을 유지하는 데도 못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혹독한 대가는 다른 사람들의 무서운 시기와 질투를 견뎌내는 것이다. 골짜기의 작은나무는 바람을 타지 않지만, 산등성이의 높은 나무는 거센 바람을 맞게 된다.다니엘은 이제 그 탁월함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동료들은 그의 출신과 신분을 못마땅히 여겨 그를 모함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나, 다니엘은 공직자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일체의 비리(非理)가 없는 사람이었음이 입증되었다.


   

3.적(敵)으로 바뀐 다니엘의 동료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를 모함하여 죽이려 했는가?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여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단 6:5~7).


  [설명] 적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결코 변치 않을 것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목숨을 바쳐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30일 동안 국왕 다리오 외에는 아무 신(神)에게도 기도드리는 일을 금하여 새로 취임한 왕에 대한 충성심을 확고하게 하고 왕권(王權)을 강화하는 특별한 캠페인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참으로 악한 본심을 선한 처신으로 위장한 무서운 모략이었다.


   

4.이 사실을 자신에 대한 충성으로 오해한 왕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다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단 6:8, 9).


  [설명] 자신의 입지(立地) 강화와 자기숭배의 함정에 빠진 왕은 즉시 신하들의 충성심에 감복되어 일단 제정되면 취소가 불가능한 메대와 페르샤의 법에 따라 조서에 어인을 찍었다. 다니엘의 목숨을 겨냥한 30일간의 왕권 강화와 기도 금지령이 전국에 선포되었다.


   

5.이 두려운 조서에 대한 다니엘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직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설명] 자신이 엄연히 나라의 총리인데도 인종과 신앙 때문에 철저히 따돌림을 당한 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법령이 자신도 모르게 제정되어 공포된 사실을 뒤늦게 알 게 된 다니엘은 얼마나 분개하고 초조했을까. 그러나 다니엘은 놀랍게도 태연자약하게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전에 하던 대로" 변함없이 처신하였다.

 

  동쪽에서 떠서 서족으로 지는 태양처럼, 언제나 제 궤도를 달리는 별처럼 다니엘은 온종일 국무에 충실했으며, 일과를 끝낸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늘 하던 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머물고 있는 고국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 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드리는 일을 계속했다. 다니엘은 당장 살기 위해 기도를 중지하지 않았으며, 몰래 기도하므로 고소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서 때문에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왔다는 인상조차도 남기기를 거절했다.


   

6.다니엘이 보여준 대로, 목숨을 내놓을 만큼 기도는 그렇게 중요한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 18).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그것은 영적 능력의 비결이다.

다른 어떤 은혜의 수단도 기도를 대신한 수 없으며 영혼의 건강을 보존할 수도 없다"(엘렌 G. 화잇). 

 


  [설명] 기도를 그치는 것은 호흡을 그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영적인 생명의 죽음을 의미한다. 잠시라도 숨을 안 쉬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항상 기도하지 않고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 힘든 일을 해야 할 때, 더 빨리 뛰어야 할 때 더 많이 호흡해야 하듯 자신과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이 걸린 이 싸움을 치르는 지금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왕에게 기도드리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그치는 일은 도무지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다니엘은기도드릴 수 없는 왕궁보다 기도드릴 수 있는 사자굴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7.다니엘의 확고한 결심을 확인한 고소자들은 왕에게 어떠한 요구를 했으며 의외로 왕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단 6:11, 13, 14).


  [설명] 충성스럽게 여겨졌던 신하들이 조서 위반 사실을 들어 다니엘을 고소하는 말을 듣는 순간, 왕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하들의 제안이 왕을 위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적(政敵)인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음모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으나, 왕이라할지라도 변경할 수 없는 메대와 페르샤 법은 그대로 집행하여야 했다. 왕은 분노와 근심에 싸여 기나긴 하루를 보냈다.


   

8.철칙인 페르샤 국법의 집행을 촉구하는 고소자들의 거듭되는 요청에 왕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단 6:16).


  [설명] 고대 메대와 페르샤 법은 변개나 취소가 불가한 철칙이었다. 왕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이 내린 법령에 따라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의 과거 행적(行績)을 알고 있는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당신의 신실한 종을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심을 다니엘에게 고백하는 한편, 고소자들이 사자굴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다니엘을 죽이지 못하도록 왕의 어인을 찍어 굴을 석고로 봉인(封印)했다. 다니엘을 던져 넣은 사자굴은 그 당시 왕이 즐기는 스포츠인 사자 사냥을 위해 궁중 근처의 정원에 사자를 가두어 둔 굴이었다.


   

9.식음을 전폐하고 뜬눈으로 밤을 보낸 다리오왕은 이른 새벽 어떤 일을 했는가?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단 6:19, 20). 

 


   

10.사자굴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 다니엘은 어떤 말로 왕의 문안에 대답 했는가?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단 6:21. 22).


   

11.다니엘의 생사를 확인한 왕은 잇달아 어떤 법적 조치를 취했는가?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단 6:23, 24).


  [설명] 법은 일단 집행되었으므로 자기숭배라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충성된 수석총리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 했던 간교한 신하들에 대한 왕의 분노는 폭발되었다. 왕은 다니엘이 방금 살아서 나온 그 사자굴에 다니엘을 모함한 참소자(讒訴者)들과 처자식들을 던져 넣게 하였으며 그들은 순식간에 밤새 다니엘에 의해 식욕이 자극된 굶주린 사자들의 아침밥이 되고 말았다.


    

12.이 엄청난 사실을 목도한 왕은 다니엘이 섬겨온 하나님을 높이고 어떠한 조서를 내렸는가?


    "이에 다리오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단 6:25~27)


   

13.메대 사람 다리오왕 원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어떤 심각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단 9:1~4).

 

[설명] 여기에 아주 심각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6장의 사건과 

9장의 사건은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즉,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고한 대로 (렘 29:10), 

다니엘은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의 포로 생활이 70년만에 마쳐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임박했음을 확신하고,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금식하며, 

하나님 백성의 사활(死活)이 달린 기도를 드리고 있던 때였다.

 

이처럼 중요한 기도를 드리지 못하도록 

사단은 사자굴로 위협하며 기도 금지령을 내리게 하였으나, 

다니엘은 기도할 수 있는 사자굴을 택한 것이다. 

목숨을 걸고 드린 다니엘의 기도 내용이 

바로 그처럼 중요한 9장의 내용이다. 

그 가운데는 죄 지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시간과 일생에 관한 일급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14.목숨을 걸고 드린 그처럼 중요한 다니엘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가?


[해답] 대제국의 총리가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그가 충성해온 하나님의 개입으로살아 나왔으며, 

그 대신 정적들과 그 가족들이 던져져 죽임을 당한 사건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음에 틀림없다.

 

기원전 538년 당시 62세였던 메대인 다리오왕은, 그 사건 얼마 후에 퇴위하였으며, 

뒤를 이어 즉위한 페르샤의 국부 고레스 대왕(Cyrus Ⅱ)은 

그의 통치 원년인 기원전 537년 다니엘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두려움에서 

제1차 유대인 석방령을 내림으로써, 

기원전 605년에 시작된 유대인의 포로 기간을 70년째가 되는 537년에 종결지었다.

 

이리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한사단의 계교가, 

오히려 그 일을 이루어지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아래의 말씀이 이러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단 6:28).


                                                 

▶ 마치는


다니엘의 노년은 참으로 위대했다. 

조상과 어른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망하고 

18세의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異域萬里)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시작한 다니엘의 일생은, 

사람이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살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 

나라는 망하고 왕들은 폐해졌으나, 

전천후(全天侯) 인간 다니엘의 일생은 연륜(年輪)이 더할수록 더욱 위대해졌다.

 

그리고 85세가 넘어 가장 고령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했다. 

참으로 위대한 노년이었다.

 

모든 일은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다. 

사람도 끝이 잘되어야 참으로 잘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다니엘과 같은 위대한 노년을 원한는 사람은, 

다니엘처럼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뜻을 정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해야 하며,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열심 있고 끊임없는 기도의 생애를 살아야 한다.


                                                                                                           출처 블로그 > 천성 가는 길목 쉼터
                                                                                     원본 http://blog.naver.com/kbs021/20013175228

 

 

 

 

                    다니엘서 제6장 위대한 노년
                    1.메대 제국의 역사적 배경과 다리오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 (단 5:31, 6:1).



  전장인 5장의 마지막 절(31절)은, 6장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출판된 히브리 성경에는 그것이 6장 1절로 되어 있다. 이러한 장절의 구분 여하에 관계 없이, 메대 제국의 다리오 왕은 페르샤 제국의 고레스 대왕과 함께 6장의 배경을 이루고 있어, 이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다니엘의 경험과 연관짓기 전에, 메대와 다리오 왕, 그리고 이들과 불가분한 페르샤의 초기 역사와, 고레스와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가.메대 제국과 페르샤의 초기 역사

 

  메대(the Medes)는 민족 이름이고, 메디아(Media)는 그들이 세운 나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메대는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야벳의 아들 마대(Madai)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로(창 10:2, 대상 1:5), 페르샤와 함께 인도-유럽족(Indo-European)에 속한다. 이들은 페르샤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사이에 놓인 이란고원(高原) 지대에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은 "아리아누"(Arianu) 즉 "귀족들"(nobles)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의 나라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어 "아리아나"(Ariana) 혹은 지금의 이란(Iran)으로 1935년부터 불려지고 있다.

 

  이들 메대 족속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9세기 중엽인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III세(859-824 BC) 때부터인데, 그후로는 계속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은 앗시리아의 여러 왕들에 의해 거듭거듭 정복되어 조공을 바쳤고, 북방 이스라엘이 망한 후, 포로된 백성들이 앗시리아에 의해 메대의 여러 도시들로 강제로 이주되기도 했다(왕하 17:6, 18:11).

 

  헤로도터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후 기원전 7세기 초에 데이코스(Deikos·혹은 c. 700 - c. 647 BC)가 일어나 메대 족속들을 통일하여 왕국을 세우고, 엑바타나(Ecbatana)를 수도로 정하였다.

 

  데이코스 다음에는 그의 아들 파라오르테스(Pharaortes)가 22 년간(c.647 - 625)다스렸는데, 이 때 그들 남쪽에 있던 페르샤족을 복종시켰다고 한다.

 

  그 후 파라오르테스의 아들인 시악사레스(Cyaxares I)가 즉위하여 약 40년간(c. 625 - c.585) 다스렸는데, 그는 앗시리아를 넘어뜨리기 위해 느브갓네살의 아버지인 바벨론의 나보포랏살과 동맹을 맺어, 기원전 612년 니느웨를 함락시켰다.

 

  정복한 앗시리아의 영토는 양분하여, 티그리스강 동쪽과 북쪽은 메대가 차지하고, 바벨론은 이 자연적인 경계선의 서쪽과 남쪽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실(王室)혼인이 이루어져, 시악사레스(1세)의 아들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딸 아미티스(Amytis)가 나보포랏살의 아들 느브갓네살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그 후 시악사레스는 소아시아의 스키디아(Scythians)족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병합하였으며, 기원전 585년에는 리디아와도 접전했으나, 그해 5월 28일 일식(日飾)이 일어나자 서로 전투를 중지하고 강화(講和)하였다.

 

  시악사레스 1세 다음에는 그의 아들 아스티아게스(Astyages)가 즉위하여 약 35년간(c. 585 - c. 550) 다스렸는데, 그가 바로 고레스의 외조부라고 전한다. 역사가 헤로도터스에 의하면, 아스티아게스는 꿈에 자기의 딸 만다네(Mandane)에게서 강물이 흘러나와 아시아 전역에 넘치는 것을 보고, 이를 경계하여 딸을 메대의 귀족에게 시집 보내지 않고, 안산(Anshan)에 있는 그의 페르샤의 봉신왕(封臣王)인 캄비세스 I세(Cambyses I c.600 - 559)에게 멀찍이 시집 보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결혼 관계를 통하여 태어난 것이 바로 페르샤의 국부(國父)인 고레스 대왕(Cyrus II 558-530 BC)인 것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가 12세 되었을 때,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는 딸과 외손자를 불러들였는데, 어머니가 귀국한 뒤에도 고레스는 메대에 남아서 외조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고레스의 비범한 재간과 통솔력은 그가 장차 위대한 통치자가 될 것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한 때 외조부에 의해 고레스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착수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고레스에 의하여 도전받게 되었다.

 

  기원전 553년 고레스는 종주국(宗主國)인 메대에 대해 반기를 들고 외조부 아스티아게스에 도전했다. 처음 두번은 패했지만, 세번 째 싸움에서 메대의 주장(主將) 하르파구스(Harpagus)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550년 고레스는 수도 엑바타나를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아스티아게스도 사로잡았으나 선대(善待)하여, 저 멀리 카스피해 남쪽의 히르카니아(Hyrcania)의 지방 장관으로 보낸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본래 메대와 페르샤는 종족도 같고, 두 왕가가 왕실 결혼으로 긴밀히 관련되어 한 나라 같았기 때문에 급격한 정변(政變)은 없었고, 한 왕가에서 다른 왕가로 정권이 교체된데 불과했다. 단지 페르샤의 귀족들이 정부 요직(要職)에 대거 진출한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역시 유능한 메대 사람들도 여전히 기용되었다.

 

  고레스는 메대 사람들에게 유화(宥和)정책을 써서,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를 즉위시켜, 메대의 상징적인 왕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대와 페르샤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침공하여,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고레스의 장군인 구바루(Gubaru), 혹은 희랍어로 고브리아스(Gobryas)가 바벨론에 진입(進入)했고, 고레스는 10월 29일에 입성했다.

 


                              나.다리오의 신원

 

  그렇다면 바벨론이 함락된 후,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62세]라 하였고(단 5:31), [자기의 심원(心願)대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다니엘을 총리로 기용한 그 다리오는 누구인가(단 6:1)?

 

  다리오의 신원에 관하여 그 동안 여러 가지 추론이 있어 왔다. 다음과 같은 윤곽을 기초로 그의 신분을 확인해 보자.

 



                                  1)성경상의 진술

 

  [아하수에로의 아들]이었다(단 9:1).

 

  벨사살이 죽던 밤에 나라를 "얻었"으며(단 5:31),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었"다(단 9:1).


  가계(家系)는 메대족이었다(단 5:31, 9:1, 11:1).


  바벨론이 멸망하던 기원전 539년에 그의 나이는 약 62세였다(단 5:31).


  그의 통치 첫 해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다(단 9:1, 2, 11:1).


  전국에 120명의 방백을 세우고 다니엘을 세 총리 중 수석총리로 임명했다.

 


                                 2)고대 역사의 기록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아래와 같이 썼다.

 

  [페르샤 왕 고레스와 메대 왕 다리오(Darius)는, 그(나보니더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다리오와 그의 친척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함락시켜 바벨론의 통치를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아들이었으며 희랍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희랍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메대에서는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시악사레스(2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고레스의 어머니 만다네와 남매 관계이기 때문에, 고레스에게는 숙부가 된다. 고레스는 어린 시절 외조부인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서 자랐기 때문에,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와는 친숙하였다.

 

  후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뒤, 그는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의 딸 카산다네(Kasandane)와 결혼하였으며, 장인은 결혼선물(dowry)로 나라(메대)를 사위에게 주었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레스는 자신이 메대를 복종시켰을지라도, 메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목상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를 메대 왕으로 세웠다.

 

  바벨론을 함락한 다음에는 그를 장인으로 삼아, 당시 나이가 약 40세 안팎인 자기에 비해 ,이미 노년에 접어든 62세의 장인을 잠시 바벨론의 명예 왕으로 앉힐 수 있었다.

 

 

                              3) E.G White 의 진술

 

 메대 사람 다리오의 조카였다(선지자와 왕, 500).


 고레스는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의 총 사령관이었다(상동).


 다리오는 메대의 군주였다(상동, 532).


 다리오는 바벨론이 함락된지 약 2년 이내에 죽고, 고레스가 계승했다(상동).

 

  이상에 비추어 볼 때, 5장 31절과 6장의 다리오는 시악사레스 2세 임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그의 이름을 다리오(Darius)라고 하였을까. 이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는, 다리오(Darius)는 그 자체가 고유명사인 이름이 아니라, 여러 왕들에 의해 채택된 통칭(通稱)인 보통 명사로 "정복자"(Subduer)를 뜻하는 말이요 보좌 명칭(Throne name)이라고 한다.또한 다리오를 아하수에로(Ahasuerus)의 아들이라고 했는데(9:1), 이 곳의 아들은 손자나 더 먼 자손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고레스의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가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음이 밝혀졌다.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를 종합해 볼 때 6장의 다리오는 고레스의 숙부요, 장인인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일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페르샤에 대하여는 7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다. 메대 사람 다리오 왕의 신원에 관한 견해들

 

  다니엘서 5장 31절, 9장 1절, 11장 1절에 나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누구인가에 대하여는 그 동안 많은 견해들이 있어 왔다. 물론 잘 알려진 페르샤의 세번 째 왕인 다리우스 1세(Darius I, 522-486 BC)와는 다른 사람이다. 언급된 이름들로는 고레스가 정복한 메대의 왕이요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이요 고레스의 숙부이며 장인이기도 한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 고레스(Cyrus) 자신,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Cambyses II), 고레스의 장군으로 그보다 두 주일 반 앞서 바벨론에 입성한 구바루(Gubaru, 혹은 Ugbaru, 헬라어 표기로 Gobryas로도 부름) 등이다.


  이 여러 후보 가운데 성경의 기사를 모두 충족시키는 역사적 인물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시악사레스 2세와 구바루로 압축되어 왔었다. 실제로 기원전 539년 10월 바벨론을 함락시킨 고레스의 장군인 구바루가 유망하여 윌리암 쉐이(William H. Shea)나 맥스웰(C. Mervyn Maxwell)은 그 가능성을 택했다.그러나 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가 출판된 이후 다시 연구된 대영 박물관의 쐐기문자 본문에 의하면 당시 고레스와 그의 아들 캄비세스의 섭정 연대 해석에 차질이 있음과 함께 구바루의 사망 날짜도 잘못 이해되었음이 발견되어 윌리암 쉐이 자신이 자신의 견해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 가지 새로운 이해를 곁들여 그는 다니엘서의 "메대 사람 다리오"를 다름 아닌 고레스 자신이라 하고 "다리오"는 물려진 "보좌 명"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동 가운데서 본서는 이 문제에 관한 크세노폰의 기술에 몇 가지 미흡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악사레스 2세가 다리오의 신원에 보다 적합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리오가 이들 가운데 누구인가 하는 것은 다니엘서의 신빙성이나 중요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계속하여 더 확실한 사실이 밝혀지리라는 기대이다.

 

 


                                2. 위대한 원로 정치가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단 6:3)


                                      가.제일인자 다니엘

  다니엘서 6장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연로한 선지자와 정치가인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지웠다가 하나님에 위해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건이다. 이러한 사자굴의 시련이 노년의 다니엘에게 이른 것은 그가 새로 수립된 메대 정권의 수석 총리로 발탁된 까닭이었다.다니엘은 참으로 어떤 환경에서나 누구에 의해서나 언제나 넘버 원 맨(Number-one-man)이었다. 하나님에 의해서도(단 9:23), 왕들에 의해서도(단4:9, 5:11, 6:3), 동료 선지자에 의해서도(겔 14:20), 심지어는 원수들에 의해서도(단 6:4), 그는 언제나 제일인자(第一人者)로 인정을 받았다. 6장은 처음부터 제일인자로서의 다니엘을 돋보이고 있다. [ 그 중에 다니엘이 첫째(first)였더라](6: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처음에는 인물에나 인품에서 단연히 첫째였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불레셋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연소한 다윗을 위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삼상 18:7)고 노래 부른 여인들의 노래를 들은 날부터 사울은 마음에서 불타오르는 시기심에 의하여 그의 제일인자의 자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옛날의 위대했던 사울이 아니었다. 다윗도 그랬다. 그가 왕궁의 옥상에서 목욕하는 미모의 여인 우리아의 아내를 보기까지 그는 참으로 하나님 앞과 백성들 앞에 나무랄 데 없는 넘버-원-맨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의 다윗은 얼마나 엄청난 경멸과 고통의 생애를 보냈던가.


  다니엘은 참으로 처음부터 첫째였으며 끝까지 첫째였다. 다니엘은 이국 땅에서, 그것도 포로의 몸으로 청장년의 한창 때가 아닌 팔순(八旬) 노인으로 여전히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게 된 것이다.



  [바벨론과 메대 페르샤 제국의 정치가로서의 다니엘의 경험은 사업가란 반드시 야심이 있는 책략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인다. 다니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나라들의 총리였음과 동시에 하늘의 영감(靈感)의 빛을 받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영감의 기록은 다니엘이 우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지만 과오가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원수들의 면밀한 점검(點檢)에 붙여졌을 때 그의 업무 관계에는 하나의 흠도 없음이 발견되었다. 그 마음이 변화되고 성화 되었을 때, 그 동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울 때에, 모든 사업가들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다니엘은 하나의 모본이 되었다] (선지자와 왕, 523).



                                    나.마음이 민첩한 사람

 

  다니엘로 이토록 불후(不朽)의 제일인자가 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것을 그의 마음이 민첩(敏捷)한 까닭이라 했다. 이 민첩한 마음, 혹은 탁월한 영이란 이미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지적되었고(4:8), 태후에 의해서도 확인된(5:11) 특성이다. 이는 은밀한 일을 밝히 나타내는 신령한 은사 뿐만 아니라(5:12), 빈 틈 없는 청렴(scrupulousness)과 요지부동의 신실성(unwavering faithfulness), 그리고 의무에 충실성(loyalty to duty)에 나타난 다니엘의 인격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오묘를 파헤치는 선지자적 기능 외에도 정확하고 빠른 판단력과 경우에 맞고 설득력 있는 언어 구사(驅使), 침착하고 위엄이 넘치는 처신과 환한 표정의 호감 있는 인품, 신중하고 투시적(透視的)인 그의 시선과 거룩함이 서린 그의 체취(體臭)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탁월한 영]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 특성은 메대의 새로운 왕에게도 확신되어 방금 정복한 바벨론을 무난히 다스림에 있어서 일찌기 느브갓네살의 치세 동안 그토록 훌륭하게 국사(國事)를 처리하고 자주자주 곤경에 처했던 왕을 최선껏 보좌한 그 다니엘을 다시 기용(起用)했음은 현명한 처사였다. 다니엘을 이토록 최상급의 불사조(不死鳥) 인간으로 만든 바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끝까지 참되게 남아 있으려는 확고한 결심대로 살아간 결과였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선에 대하여 욕망 이상의 것을 소유했다. 그들은 기꺼이 의(義)를 선택했고 적극적으로 악을 피했다(SC, 48).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다. 인간의 재능이나 지혜는 진정한 성공의 보증이 될 수 없다(CD, 154).영성(靈性)과 도덕성을 무디게 하고 체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종류의 부절제와 방종을 피하고 건강의 법칙에 온전히 일치하게 산 결과였다.

 

  끊임없는 기도의 생활과 부단한 성경 연구는 그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신앙은 물론 그의 직무를 위해서도 [탁월한 영]을 가지게 했다(SL, 20, 단 9:2).


  [하늘의 요구들에 대한 엄격한 순종은 영적 축복과 꼭 같이 현세적인 축복도 가져온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의 확고부동함과 자신을 지배하는 일에 굴하지 아니한 다니엘은 그의 고상한 품격과 변함 없는 성실로 아직 청년이었던 때 그는 그를 감독하는 이방 관원의 은혜와 궁휼을 얻었다. 동일한 특징이 그의 후년의 생애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신속히 바벨론 제국의 총리의 지위에 올랐다. 뒤따른 군주들의 통치로 그 나라가 몰락하고 다른 세계적인 제국이 세워졌으나 그의 지혜와 정치적 수완이 재주와 외모와 그의 마음이 진정한 선과 원칙에 대한 성실성처럼 완전하였기 때문에 그의 원수들까지도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됨'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선지자와 왕, 522).



                                   다.위대한 노년

 

  다니엘이 이토록 민첩한 마음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때의 나이는 얼마였는가. 그가 사로잡혀 온 기원전 605년에 18세였으므로, 다리오 원년인 538년에는 85세 가량이 된다. 85세라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인생의 만년(晩年)이요 고령이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이런 나이에는 살아 온 과거에 집착되어 현실을 비관하면서 하는 일 없이 서성거리기가 일쑤이나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미래 지향적(未來 指向的)이었으며 언제나 낙천적(樂天的)이었으며 활력과 의욕에 넘쳐 있었다.


  젊은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언뜻 구분이 드러나지 않지만, 노년에는 그것이 분명하다. 고상함과 초췌함, 원기 왕성함과 의욕 상실, 안정과 불안, 희망과 절망 등은 현저한 대조로 드러난다. 훌륭한 설교자로 존경받는 로버트 리(Robert G. Lee)박사는 1970년 11월로 84회 생신을 맞이하는 날, '84세 이후에도 설교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주변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때에, 마음 상한 심령들이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때에,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서 당초에 그들에게 주셨던 자산을 우매의 궁전에 던져버리고 육욕의 장터에 쏟아 놓는 때, 항거해야 할 악이 그렇게도 많은 때에, 그토록 많은 노인들이 고독한 황혼 길을 가고 있는 때, 1910년 안수 받을 때 나는 죽음이 우리를 나누기까지 설교와 결혼하였다. 그럴진대 85년째의 생애에 어찌 설교하기를 계속하지 않겠는가?]


  다음에 제시된 통계적 자료와 실례는 비록 노년이라 할지라도 생애를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은 나이에 무관하게 더욱 위대하게 살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뉴만 다르랜드(Newman Darland)라는 인정받는 학자는 역사에서 손꼽히는 400명의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세계의 위대한 인물들의 거의 80%가 그들의 활동적인 생애를 58세와 80세 사이에 마쳤다. 즉 25%는 70세가 넘기까지 활동적인 생애를 살았고, 22.5%는 80세가 넘어서까지, 그리고 5%는 85세가 넘기까지 그랬다.80세가 넘어선 사람들에 의해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경건한 그리스도인인 글래드스톤(Gladstone)은 83세에 네번째로 대영제국의 수상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89세에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한 폭의 그림인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요한 웨슬레는 그 당시 가장 뛰어난 경력으로 그 뛰어난 생애를 마치는 88세에 거의 감퇴되지 않은 웅변으로 설교했는데 전기도, 증기기관도 알려지지 않은 때 25만 마일을 여행하며, 4,000번의 설교를 했고 수많은 책을 썼다. 에디슨은 90세에도 아직 연구를 계속했고, 라이트(Wright)는 90세에도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로 알려졌다. 쇼우(Shaw)는 90세에도 희곡을 쓰고 있었으며 그랜드마 모세(Grandma Moses)는 79세에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 페니(J. C. Penny)는 95세에도 열정적으로 그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젊음과 장년의 때를 존절히 살아 온 사람들은 모세처럼 장수한 후에도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는 위대한 노년을 보낼 수가 있어 오히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게 되는 것이다(욥 12:12).

 



                                         라.탁월함의 대가

 

   사람이 하나님에 의하여 혹은 이 세상에서라도 위대하게 되고 탁월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성공 그 자체가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위대한 학자,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운동가, 더욱이나 위대한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는 남모르는 부단한 결심과 노력과 자아 극복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우연히 모세가 되고, 다니엘이 되고, 사도 바울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또한 성공하고 위대하게 된 사람은 이에 상당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전문인은 그의 명성과 신분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기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인(賢人)은 오히려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 12:12)고 술회하고 있다.


  탁월하게 되기 위하여 치러야 하는 또 하나의 값비싼 대가는 시기(猜忌)와 모멸(侮蔑)과 선망(羨望)의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더 유능하고 더 역량이 있고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더 큰 반응과 인기와 결과를 거두는 동료에 대한 시기심은 때로 끌 수 없는 지옥불처럼 사람의 인격과 영성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다.참으로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는 것이어서(아 8:6), 마침내 다니엘도 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바로 메대의 다른 두 총리가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한 이유였다. 골짜기의 이름 없는 풀 나무는 바람을 맞지 않아도 산등성이의 거목은 거센 바람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3. 사자 굴의 시련


                                           가.시련의 속성과 실제


                                              1)시련의 속성

 

  욥기의 주제처럼 세상에 까닭 없는 시련이 없지만 실상은 까닭 없는 시련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엄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욥이 그 끔찍한 시련을 당한 것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에 대한 사단의 투덜거림에 대하여,[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지켰느니라](욥 2:3)는 하나님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구태여 욥이 시련을 당한데 대한 까닭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었다(1:3, 8). 다니엘이 사자굴의 시련에 처하게 된 것은 전혀 일방적인 것으로 오히려 다니엘에게는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이르러 온 것이기도 했다(6:4). 이 세상에서 의인이 왜 더 많은 시련을 당해야 하는 지의 이유가 밝혀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이며(골 1:24),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함께 당하는 고난인 것이다(벧전 5:9, 고후 1:5).



                                         2 .시련의 실제

 

  욥이 당한 고난의 배후에는 욥이 의를 시샘하는 사단의 분노가 있었듯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풀무불의 시련의 경우에도, 그리고 다니엘의 사자굴의 시련에도 동일한 실제가 작용했다. 그것이 곧 마지막 때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는 이유인 것이다(계 12:17).


  몇 차례의 엄밀한 국정감사(國政監査)를 통해서도 다니엘을 고소할 만한 여지를 찾지 못한 그의 적수들은 이제 다니엘을 정치적 신분에서가 아니라, 종교적 신분에 의거하여 공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곧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concerning the law of his God) 그를 결부시켜 넘어뜨리기로 하였는데 이 일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첫째로 고발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철석같은 충성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비롯한 다니엘의 신앙생활이 언제나 공개적이었음을 나타낸다. 특히 이 곳에서 [율법]이라고 번역된 낱말은 "다트"(dat)인데 이 말은 왕의 "명령"이란 뜻으로 쓰이거나(2:13, 15) 하나님의 "법"을 뜻하는데 쓰였다(단 7:25, 라 7:12, 14, 21, 26). 즉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행하는 일을 규칙적으로 행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둘째로는 다니엘이 비록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공개적인 종교적 행사를 방해받으면 죽음이나 형벌이 가해지더라도 그의 신앙적 관습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고발자들은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은 평소에도 그의 직무나 지위 때문에 그가 언제나 수행해 온 여러 신앙적인 행사들 즉 안식일 준수, 기도드리는 일, 음식에 관한 관습등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거나 숨어서 하지 않고, 언제나 드러내놓고 떳떳하게 수행했음이 분명하다. 참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언제나 어디에서나 실행한 긍지에 넘친 신앙인이었음을 기억하자. 고발자들의 예상은 적중(的中)하여 과연 다니엘은 그들의 기대처럼 처신했다. 그의 신앙은 원수들까지도 실망시키지 아니한 것이다.



                                     3)자기 숭배의 함정

 

  이리하여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의 머리를 짜낸 탁월한 모의(謀議)는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성공할 것이 분명한 탁견(卓見)을 왕 앞에 급히 펼쳐놓았는데 [그것은 곧 이제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6:7)이었다.즉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30일 신(god for a month)이 되라는 제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한다. 면장은 군수가 되고 싶고, 군수는 도지사가 되고 싶어한다. 도지사는 장관이 되고 싶고, 장관은 총리가, 그리고 총리는 대통령 되는 것이 싫지 않은 것이다. 왕이나 대통령은 어떠한가.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마침내는 자신이 신(神)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루스벨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하늘에서의 반역 이후(사 14:13), "하나님과 같이"되라는 속삭임이 최초의 인간을 타락시킨 유혹이었으며(창 3:15), 역사적으로는 황제 예배와 영웅 숭배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사실은 각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 숭배의 보좌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숭배의 함정에 빠진 왕은 지체없이 [메대와 바사(페르샤)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다(6:9). 그러나 왕은 이 법령이 왕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함이 아니요, 충성된 다니엘을 제거하여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하는 조신(朝臣)들의 사악한 계교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 숭배는 진정한 자기 향상(向上)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함정에 빠진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였]으나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메대와 페르샤의 법은 일단 반포되면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자기 숭배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어리석음이다.



                                  나.위대한 신앙인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1)변함없는 신앙

 

  자신이 엄연히 나라의 총리인데도, 신앙과 민족적 이질성(異質性)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저의가 분명한 법령을 통과시켜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살벌한 현실에 처해진 다니엘의 느낌과 처신은 어떠했는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초조했는가. 자기 연민(憐憫]이나 비하감(卑下感)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이, 더더구나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변함 없이 행동한 것이다.


  원수들이 자신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감시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온종일 국무(國務)에 충실했으며, 여전히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으며, 두려워하는 대신 여전히 감사로 가득찬 일과를 보냈다. 세상이 보든 말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는 항성(恒星)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구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봉우리처럼, 다니엘은 인간 세상의 기상(氣象)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전천후(全天候) 인간이었다.


  서기 155년 2월 23일 안식일, 사도 요한의 제자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Polycarp)이 86세의 고령으로 개회 중인 서머나의 경기장에 끌려 나와 화형(火刑)으로 위협받으며, 총독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얼마나 분명한 대답을 했었는가. [나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는데, 그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한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어떻게 나의 구주이시요, 주님이신 나의 왕,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오] 참으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3, 4).



  [.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5-8).



  느브갓네살 앞에서도, 벨사살 앞에서도, 곧바르게 섰던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찾는 원수 앞에서도, 그리고 종래에는 사자굴에 던지워진 후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꼿꼿이 섰다. 리비에르가 그린 그림 가운데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팔을 뒤로 묶이운 채, 여전히 꼿꼿이 서서 늠름한 자세로 사자들의 포효(咆哮)를 압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명 깊다. 하늘이 무너져도 굳게 서야 하는 마지막 성도의 귀감(龜鑑)이 아닌가.



                                          2)값 비싼 기도

 

  다니엘에게 이른 치명적인 도전은 바로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30일 간은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니엘은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30일 간 만 기도하는 일을 중지한다고 큰 일이 있겠는가. 아니면 기도하는 자세를 바꾸어 무릎을 꿇고 드러나게 하는 대신 명상으로 대신하거나, 침상에서 은밀히 기도드릴 수도 있지 않는가. 위험스러운 기도를 드리다가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기도를 중지하고서라도 사는 것이, 포로 중에 있는 동족들을 위해서도 더욱 큰 유익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형식을 고집하는 것은 과잉(過剩) 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다니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다니엘은 금령을 만드는 그들의 악의에 찬 의도를 재빨리 알았으나 그의 행동을 조금도 바꾸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기도가 가장 필요되는 때인 지금에 왜 그가 기도하기를 멈출 것인가. 차라리 그는 생명 그 자체를 버릴지언정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의 소망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방백들의 수령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고 기도의 시간에는 그의 방에 들어가 평상시의 습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요하지 아니하였다. 그를 멸하려고 음모하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는 하늘과 자기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나타내는 것 까지라도 허락하고자 하지 않았다](선지자와 왕, 517).


  다니엘이 받은 도전은 기도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 32:26)는 모세의 요구처럼, 그리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깊은 뜻이 드러나 있다. 다니엘은 공공연한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한 것이다 (롬 10:10).



  [이와 같이 선지자는 담대하나 침착하고 겸손하게,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우상숭배자들에게 둘러싸인 다니엘은 이 진리에 대한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다. 의에 대한 다니엘의 굴하지 않는 집착은 그 이교의 궁정의 도덕적 흑암 가운데 빛나는 밝은 빛이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의 담대함과 성실함의 값 있는 모본으로 오늘날 세상 앞에 서 있다](선지자와 왕,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7, 18).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것은 영적 능력의 비결이다. 다른 어떤 은혜의 수단도 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영혼의 건강을 보존할 수도 없다](GW, 254).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에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정로의 계단, 76).


 


  죄짓는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칠 것이며, 기도드리는 사람은 죄짓기를 그칠 것이다. 다니엘은 이제 자신의 생명과 바꾸게 될 값 비싼 기도, 그러나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신앙에서의 기도의 효능(效能)과 중요성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다니엘에게 기도가 그토록 시급하고 중요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가.



                                         3)승리의 비결

 

  참으로 메대와 페르샤의 변경할 수 없는 법에 의해 헤어날 길 없는 궁지에 빠진 다니엘은 어떻게 활로를 찾았는가. 그것은 다음의 여건을 구비한 기도였다.



                           기도의 장소(A Place of Prayer)

 

  다니엘은 기도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기도드렸다. 근동지방의 집들은 지붕이 평평하였는데, 아마도 다니엘은 그의 집에 기도하는 방을 마련했음에 틀림 없다. 베드로도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갔으며 (행 10:9), 사도 바울도 유럽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 이르러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하여 찾아나섰고, 거기서 기도처를 찾아나온 두아디라성의 자주옷 장사 루디아를 만났다 (행 16:13, 14). 야곱은 그가 하나님과 교통한 곳에 돌베개를 세우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했다(창 28:18).[기도를 습관적으로 늘 하는 곳으로 가서 하도록 기회를 찾으라.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들은 기도회에 참석할 것이요, 또 저희의 의무를 신실히 행하며, 저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얻으려고 열심으로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정로의 계단, 79).


  [우리는 가정 안에서 기도할 것이요,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 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 놓을 것이다] (정로의 계단, 80).



                          기도의 시간 (A Time of Prayer)

 

  다윗 왕은 하루 세번씩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드렸다(시 55:17). 후기 유대인의 전통에서도 하루 세번씩, 제 3 시, 제 6 시, 제 9 시에 기도드렸는데, 제 3 시와 제 9 시는 성전에서 아침과 저녁 희생을 드리는 제사 시간과 일치되었다. 베드로도 제 6 시에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하루 세번씩 기도드린 기록이 나온다.



  [생애의 분주한 활동이 그대로 하여금 기도가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때, 기도를 소홀히하게 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업무에 지나치게 골몰함으로써 영혼으로부터 경건을 몰아낼 위험이 있다. 그대가 사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능력과 하늘의 지혜를 영혼으로부터 박탈하는 것은 큰 악이다. 그대에게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빛이 필요하다](5T, 560).


  [기도는 그대의 능력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성급한 기도를 드린 뒤 소홀히 여겨지거나 잊혀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사물을 돌보러 급히 달려 나가는 일꾼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그는 다만 급하게 하나님을 조금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는 육신적, 영적 능력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는 곧 지쳐버린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고상하게 하고 고무시키는 감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참신한 생명에 의하여 기력을 얻지 못한다. 그의 지친 몸과 피곤한 머리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위로함을 받지 못한다] (7T, 243).



  기도의 자세(A Posture of Prayer) 다니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그것은 복종과 겸손을 나타내는 자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윗처럼 앉아서 기도드릴 수 있고(삼하 7:18), 엘리에셀(창 24:26)이나 엘리야처럼(왕상 18:42) 엎드리어, 혹은 한나처럼 선 채로(삼상 1:26), 기도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자세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눅 22:41), 에스라(스 9:5), 스데반이 그랬으며(행 7:6, 59, 60), 사도 바울이(행 20:36) 그렇게 기도드렸다.




           무릎 꿇는 낙타


날이 저물면 낙타는 모래 벌판에

무릎을 꿇는다.

온종일 지고다닌 무거운 짐을 내리게 하여

휴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아, 해가 지고 한 날이 저물 때

너도 무릎을 꿇으려므나.

그래야 네 주인께서도 네 짐을 들어 내리시고

네게 휴식을 주실 수가 있으시니까.


만약 그대가 짐을 진 채로

밤을 지샜다면,

어떻게 할 일이 태산 같은 내일을

내일로 맞이할 수가 있을까.


날이 새면 낙타는 다시 무릎을 꿇어

그의 주인으로 다시 짐을 지우게 한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사막 길을 힘차게 달린다.


나의 영혼아, 먼동이 트거든 너도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서 네게 일과를 주시게 하라.

분은 네가 지기에 너무 큰 짐을

결코 지우지 아니하실 줄 확신하여라.


-Anna Temple-


 

  예루살렘을 향하여(Toward Jerusalem) 다니엘은 신앙과 인생의 방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온 종일의 분주한 일과에 골몰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때때로 외교(外交)문제와 인사(人事) 행정에 몰두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내 문제와 국가 산업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하루 세번씩 기도드리는 시간이 되면 그의 방향 감각은 정위치(正位置)에 되돌아왔다. 폭풍을 만나 요동하는 배가 이리저리 선체를 가누어도 나침판의 바늘이 정남북(正南北)을 가리키듯, 다니엘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곳 예루살렘을 향하였다. 떠나온지 70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은 황무한 채 적막만이 드리웠을 예루살렘이 다니엘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립고 소중한 약속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두고 맺어진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때문이었다. 성전이 낙성되었을 때, 솔로몬이 드린 봉헌(奉獻)의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요 언약이기도 했다.



  [솔로몬이...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돌아와서...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대하 6:12-14, 24, 36-39, 25).



  바로 이 일을 다니엘이 하였고, 이를 위한 기도를 다니엘이 드린 것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선지자로 예언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이미 기록된 성경의 허락을 자신이 성취시키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중에 하나님에 대한 더욱 명랑하고 분명한 견해를 가지게 되고, 바라봄으로 우리는 변화된다. 선함과 우리 동포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꾸밈 없는 본성이 된다] (실물교훈, 368, 369).

 

 

 


 

                  기도하는 다니엘 

 

 

페르샤제국이 그의 현명한 통치에 허리를 굽히고,

일백도 넘는 행정구역이

날마다 그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으며,

정원들이 들어찬 여왕 같은 도성이

그를 향해 화사하게 미소했지만,

그의 마음은 멀리 멀리에 있었네.

 

위엄과 권세를 뒷전에 제쳐두고,

'하루에 세 번씩' 외 딴 방을 찾아가

거기서 그의 위로를 구했네.

서편으로 열려진 창문을 통하여,

저 멀리 멀리에 두고 온 예루살렘 향하여,

그의 기도를 띄워 보냈네.


아침과 한 낮, 그리고 저녁이 어느 새 지나갈 때,

저로 하여금 세상의 헛된 쾌락과

첩첩이 쌓인 근심 걱정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게 하시고

여가를 찾게 하여 주소서.

저기 보이는 저 수평선을 지나

멀리에 감추어진 그 복된 도성,

하늘의 보화를 향해

영혼의 창문들을 활짝 열게 하소서.


                                       -Richard Wilson-

 

 



                                    다.위대한 승리

 


                                1)철저한 집행- 완벽한 구원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더라](단 6:16, 17).


  고발자들의 모함을 뒤늦게 알아 차린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렀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6:14). 집행을 촉구하는 고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침내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고 입구는 돌을 굴려다가 막았으며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으로 봉해졌다. 이러한 사자굴은 고대 페르샤 왕들이 스포츠로 즐기던 사냥을 위해 사자들을 가두어 둔 장소로 여겨진다. 또한 사자굴을 인봉(印封)한 방법은 고고학에서 발굴된 다른 경우로 미루어 보아, 입구를 평석(平石)의 둥근 돌을 굴려 막은 뒤 가장자리를 석회 반죽을 떡 시루 붙이듯 봉하고, 젖은 석회 위에 원통형 인장을 누르면서 굴리면 부조(浮彫)를 남기게 되어 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은 다니엘이 사자들에 의해 해를 받지 않을 경우 고발자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보안조치를 취한 셈이었다. 반면에 고발자들은 왕이 그의 충실한 종을 구출하기 위해 저희도 모르게 다른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의 인(印)도 쳤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원수들이 그를 사자굴에 던져 넣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악한 천사들과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거기까지 이루도록 허락하셨으니, 이는 그 분의 종의 구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진리와 의의 원수들의 패배를 더욱 완전하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진실로 사람의 노(怒)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시편 기자는 증언하였다] (선지자왕, 519).



  이리하여 그 날 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은 그의 적수들은 참으로 통쾌한 밤을 보냈고, 다리오 왕은 슬픔에 잠긴 길고도 괴로운 밤을 뜬 눈으로 지샜지만,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가장 안전하고 누구보다도 평화로운 밤을 보냈다. 다리오의 아침 문안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그가 [항상 섬기는 ]그의 하나님에 의하여 최선의 보호를 받은 것이다.


  다니엘이 보호를 받은 사실은 다니엘 자신의 기도의 응답 뿐만이 아니라, 밤새 금식하며 기도한 다리우스 왕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왕은 기쁨에 넘쳐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리게 했는데, 이것이 변경치 못하는 메대와 페르샤법에 위배가 되지 않았음은 금령의 내용이 범법자를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는 것이었지 죽이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밤을 보내면서도 다니엘에게 상처하나 내지 아니한 사자들의 식욕과 능력은, 곧 이어 "왕이 명령을 내려 참소한 사람들을. .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림으로써 입증되었다(6:24).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전 10:8)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그 이 후 페르샤 시대에 또 다시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르드개를 죽이려 하만이 스스로 빠진 함정이기도 했다 (에 7:9, 10). 사자굴의 하룻 밤을 보내며 다니엘이 드린 기도는, 아마도 일찌기 다윗이 드렸던 아래와 같은 기도였을 것이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시 57:4, 7).



  기도 드리는 다니엘을 사자들도 삼킬 수 없었고, 오히려 "사자의 입을 막"았듯이(히11:13), 동일한 권면을 우리도 아래와 같이 받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 9).



                                      2)드높여진 하나님

 

  다니엘의 극적인 구원은 왕을 비롯한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자초지종 목도한 다리우스왕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마침내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나온 뒤 느브갓네살이 바벨론 전국에 선포했던 조서(3:28, 29)와, 느브갓네살 자신이 정신병에서 회복된 후 반포했던 또 다른 신앙 간증의 조서에 이어(4장), 세번째로 메대왕 다리우스에 의한 참 하나님을 알리는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었다


  (6:24-27). 다니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세계의 만민들이 영원히 사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구원의 기별을 듣게 된 것이다.

 

 


                                 4.교훈과 의의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단 6:28).


                            가.다리우스 원년의 사건

 

  6장의 메대 왕 다리우스는 바벨론이 멸망당하고(539 BC) 왕 위에 오르던 때 약 62세였고(5:31), 성경에는 그의 원년 만이 기록돼 있다(9:1, 11:1). 그런데 6장의 사자굴 사건도 다리우스 원년 즉 바벨론이 멸망당한 이듬 해인 기원전 538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6장에서 사자굴에 생명을 내어 던지기까지 필사적으로 드린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그 대답이 9장에 나타나 있으며, 이 사실은 그 후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11:1).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기간이 거의 마쳐지려는 때(렘 25:12, 29:10),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이 하룻 밤 사이에 멸망당하자(45:1-3, 13, 44:28), 용기백배한 다니엘은 포로의 회복에 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다음 구절을 명백히 기억하였음에 틀림없다.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0-13).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그 예언의 성취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해진 때, 이 예언의 성취가 백성의 철저한 회개와 순종을 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은 다니엘은(렘18:7-10), 그의 백성의 회개하지 않음이 이 예언의 성취를 지연시킬가 심히 염려되었다. 이리하여 이 역사적인 순간에 다니엘은 민족을 대신하여 자신이 그 모든 조건을 채우기 위해,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9:3), 열렬한 탄원으로 일찌기 드려진 가장 위대한 중재(仲裁)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에 드린 역사적인 기도였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 위에 기초를 세운 다니엘은 이 약속들의 신속한 성취를 위하여 믿음으로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그는 그의 탄원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고,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자복하였다. . .하늘은 선지자의 열렬한 기도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선지자와 왕, 530, 532).



  사단이 시기심에 불타는 적대자들을 충동하여 사자굴로 위협하며 다니엘의 기도를 중단시키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이처럼 중차대한 중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듣기를 그토록 기뻐하시는 하늘의 총아(寵兒) 다니엘에 의하여 하늘에 상달되는 것을 사단은 결코 좌시(坐視)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이 일개 청소년으로 바벨론에 포로되어 온 이래, 거의 70년 동안 그의 확고한 신앙 때문에 그토록 철저히 연패(連敗)당한 사단은 이제 85세 고령의 다니엘을 사자굴로 위협하면서 그의 기도를 중지시키려 했으나 또 다시 패배당한 것이다.



  [사단은 그의 힘 있는 적대자가 탄원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능력과 위엄 앞에서 두려워 떨기 때문이다. 열렬한 기도 소리에 사단의 전군(全軍)이 떤다](1T, 346).



                              나.다니엘과 고레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구원받은 놀라운 사실은 말할 것도 없이 이미 메대와 페르샤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고레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재위 2년이 못 되어 죽은 후, 유일한 군주로 메대, 페르샤를 통치하게 된 고레스 대왕이 그의 통치 원년 즉 유대의 민력(民曆)으로 기원전 537년 가을에 제일차 포로 석방령을 내렸다(대하 36:22, 스 1:1, 5:13). 그리고 그 다음 해 즉 536년 봄에는 실제로 유대의 포로들이 귀환길에 오르게 되었으니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정확히 70년 간의 포로생활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고레스 대왕으로 하여금 537년 이러한 석방령을 내리게 한 배후 사건으로 538년의 사자굴 사건이 앞서 있었으며, 배후 인물이 다니엘이었다는 사실은 주목되어야 한다.



  [다니엘이 사자굴로부터 구출된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대왕의 마음에 호감을 주는 인상이 조성되도록 하셨다. 선견지명의 능력을 가진 정치가로서의 하나님의 사람의 훌륭한 특성들은, 페르샤의 통치자로 하여금 그에게 현저한 존경을 나타내고 그의 판단을 높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당신의 성전이 재건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대리자로서 고레스를 감동시키셔서, 다니엘 자신도 익숙해 있었던 고레스 자신에 관한 예언들을 그로 깨닫게 하셔셔 유대 백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하게 하신 것이다] (선지자와 왕, 532, 533).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짐으로써 그의 역사적인 기도를 중지시키려 했던 사단은, 오히려 그 기도를 가장 신속히 응답되게 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그리고 목숨을 내걸고 사자굴에 뛰어든 고령의 다니엘의 장한 믿음으로 동족 이스라엘은 70년 만에 해방의 종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니엘


다니엘은 경건한 사람이었네.

날마다 날마다 감사하는 사람이었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한번도 게으르지 않았네.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였네.


그가 당한 시련은 너무도 많았고

그가 겪은 시험은 너무도 쓰라렸네.

그러나 거룩한 두루마기 언제나 그를 둘렀고,

그 의로움으로 그는 구원을 받았네.


하나님 주신 지혜로

왕의 꿈들을 해석했네.

그의 일생이 보여준대로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네.


불붙는 풀무 속에 친구들이 던져지고

그도 사자굴 속에 들어갔었지만,

그들이 분해되기 전에

불꽃이 멎고 사자의 턱이 굳어져 버렸네.


하나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는 승리하고 또 승리했네.

위험이 휘몰려 올때,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들을 위험에서 지키셨네.


폭풍우 세찬 인생길을 가노라면

시험도 겪어야 하고 시련도 치뤄야 하지만,

하나님, 다니엘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찬양으로 넘쳤던 그의 생애를 인하여. . .


저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

당신의 사랑과 보살피심에 합당하도록. . .

주님께서 저를 꿰뚫어 모두 아실 줄을

저는 압니다.

 


                               -Ruth Ricklefs-

 

 

 

 

 

                                                                                                            출처 블로그 > 새하늘
                                                                                   원본 http://blog.naver.com/im1155/40015828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