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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신의 손’ 정샘물 “어릴적 결핍이 나를 키웠다”

영국신사77 2020. 7. 2. 17:25

메이크업 ‘신의 손’ 정샘물 “어릴적 결핍이 나를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2020.07.02 00:03

본인만의 색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정샘물 메이크업 아티스트. 메이크업 색조표를 앞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0대 후반 시작됐던 결핍이 몇십 년 동안 나를 끌어당겼다.”
 

매일 빚쟁이 찾아와 문 두드려
식당·백화점·옷감 공장 알바 전전

얼굴의 고유함 살리는 기법 개발
김태희·이효리 등 스타 메이크업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50)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1년 배우 이승연으로 시작해 고소영·김태희·이효리·보아 등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담당해 이름을 알렸고, 뷰티 살롱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붙인 화장품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결핍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고백했다. 최근 낸 책  나는 오늘도 나를 믿는다에서 달동네에 살던 어린 시절, 수업료를 못 내 불려 다니던 중학생 시절을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지난달 30일 만난 정샘물은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나를 붙잡았다”고 했다.
 
정샘물은 “내 쓰임이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옛날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20·30대 친구들을 멘토링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했을 때 이 친구들도 고민을 이야기하더라.”
 
정샘물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운 10대 후반부터 어렵게 생활했다.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에서 일해보고, 백화점에서 옷도 팔았다. 아이를 돌봐주고, 옷감 공장에서도 일했다. “다섯 남매가 있는 집의 소녀 가장이었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달려가고, 빚쟁이들은 툭하면 집 대문을 두드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샘물이 계속했던 일은 ‘스크랩’이다. 멋진 여성, 아름다운 집, 행복한 가족이 나오는 신문과 잡지를 무조건 오려서 스크랩북에 붙였다. 그는 이 스크랩북을 ‘가난한 동네 아이의 환상의 성’으로 부른다. 스크랩북을 만든 건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게 뭔지 알아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뭘 봤을 때 설레는지 찾아내야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들었던 한 마디를 기억한다며 이렇게 돌이켰다. “외국인 선교사가 바닐라 쿠키를 구워주며 말했다. ‘너는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존재’라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 말을 증명해야 했다.” 이후 자신만의 고유한 점을 찾는 일이 시작됐다.
 
사실상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키워낸 건 스크랩북이었다. 남들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본다는 점을 알아냈고, 모든 사람이 다른 이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얼굴의 단점에 덧칠하는 대신 고유함을 살리는 메이크업 기법이 이렇게 나왔다.
 
그도 한때는 “단점에 덕지덕지 칠을 하던” 사람이었다. “내 눈 작은 거, 키 작은 게 싫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눈을 세 배로 키우는 메이크업을 하고 다녔다.” 그때 어머니의 한 마디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샘물아, 진짜 고수는 어떻게 했는지를 궁금하게 만든단다. 저 화장 어떻게 했지 하고 궁금하게 만들고 싶지 않니.” 정샘물은 눈에 붙이던 쌍꺼풀 테이프를 떼고 눈화장을 줄였다. 지금 정샘물의 트레이드 마크는 안경과 짙은 립스틱뿐이다.
 
콤플렉스를 극복해본 그는 “모든 사람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어디에서든 메이크업 강의가 끝나면 수많은 이가 나를 따로 만나고 싶어한다. ‘눈이 짝짝이인데’ ‘코가 너무 뭉툭한데’ 같은 수많은 콤플렉스를 털어놓는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나만이 가진 것을 집중해 관찰하고 그 고유함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정샘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예쁜 데가 없는 연예인들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며 “메이크업을 하면서 자신이 가진 고유의 선·색·결에 집중하게 만들어 끝날 때쯤엔 콤플렉스를 잊게 한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메이크업 현장으로 나선, 소녀가장 정샘물의 인생을 바꾼 장면은 여럿이지만, 결정적인 건 배우 이승연과의 만남이다. “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이승연을 담당한 후 드라마와 함께 일이 끝났다. 이듬해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나온 이승연의 얼굴을 TV에서 보고 바로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하필 청계천이었던 건 외국 잡지와 서적을 싼값에 사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이승연에게 제안할 만한 메이크업 사진을 골라 붙이고 당대에 겨룰만한 국내 배우들까지 나열해 ‘이승연 스타일 제안’을 했다. 그걸 본 이승연이 “너도 참 대단하다”며 전속 아티스트로 고용했고 고소영·김희선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라”며 연결해줬다.
 
일이 잘되던 2006년 그는 돌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AAU(Academy of Art University)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렘브란트의 인물화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림을 꼭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순수 회화의 기본을 배웠고, 사람의 몸을 샅샅이 해부해 뼈를 그리는 법을 배우며 메이크업에 연결할 수 있었다. “뼈를 알지 못하면 그 위의 근육, 그리고 주름까지 이해할 수 없다. 기본을 배우고 나니 메이크업의 기본을 세울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말렸던 유학 이후 그는 “두렵고 무서울 때마다 내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도전한다”고 했다. “나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본인의 능력을 스스로 알고 더 많이 쓰도록 돕는 것이 내가 가진 사명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메이크업 ‘신의 손’ 정샘물 “어릴적 결핍이 나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