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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3>/통일시대 지도자 우리 교회가 기르자… ‘프라미스 콤플렉스’ 건축

영국신사77 2020. 6. 25. 22:11

통일시대 지도자 우리 교회가 기르자… ‘프라미스 콤플렉스’ 건축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3>

입력 2020-06-23 00:05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2001년 평양 봉수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2001년 3월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한 후 북한의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특별히 평양에 있는 창광유치원을 방문하면서 통일한국 시대의 꿈을 꿨다.

나는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면서 가까운 미래에 주의 은혜로 반드시 통일의 역사가 있을 것을 확신했다. 그러므로 그때를 위해 통일한국 시대를 이끌어갈 민족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뼈아픈 눈물을 닦아주고 섬겨주는 그런 지도자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은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창광유치원을 비롯해 많은 유치원에서부터 기르고 있었다. 나 역시 통일한국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우리 교회에서 길러야겠다고 결심하며 기도했다. 교회에 돌아와 눈물로 외쳤다. 우리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해 통일한국 시대를 짊어지고 갈 지도자로 배출시키자고 말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민족의 제단에, 한국교회의 제단에, 하나님과 민족을 섬기는 위대한 지도자로 바쳐드리자고 말이다.

마침 그때 새 예배당을 지을 땅을 물색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할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저들을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훈련할 교육관과 지도자로 양육할 문화관, 체육관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해서 온 성도들의 열정적 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 ‘프라미스 콤플렉스’(Promise Complex)라는 지금의 예배당 건축이었다. 신도시에선 공간 확보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비전의 땅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은 것이다.

소강석 목사가 당시 평양 창광유치원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함께한 장면.


가장 먼저 본질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꾸준히 성도들을 훈련하고 은혜의 지배 아래서 모든 것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매달렸다. 동시에 예방 사역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시험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먼저 심방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며 특별히 돌봤다. 확실한 비전을 계속 제시하면서 기도 운동을 펼쳤다.

특히 본당 중심이 아니라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 공간 중심으로 지을 것이라고 건축의 개요와 방법까지 설명했다. 본당은 4500석으로만 짓겠다고 했다. 내가 그린 어설픈 도면을 보여주면서 꿈을 설명했고 주보 칼럼을 통해 왜 새 예배당을 지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2001년 12월 마침내 죽전 신도시에 땅을 계약하게 됐다. 성도들의 자발적인 건축헌금으로 두 달 반 만에 땅값을 다 지급할 수 있었다. 당장 설계를 하고 교회 건축에 들어갔다. 분당에 예배당을 지은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온 성도가 스스로 감동해 앞다퉈 헌금했다. 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입을 것, 먹을 것, 쓸 것을 쓰지 않고 아낌없이 눈물로 헌금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울먹거려 기도를 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저들과 저들의 자녀들이 민족을 섬기는 지도자로 축복받는 모습을 꿈꾸다가 감격해 울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나부터 가장 먼저 희생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헌신의 모습을 보였다.

한번은 교회 장로 한 분이 사업을 하다가 피치 못할 상황으로 검찰에서 조사받고 수감된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밤잠을 설치다가 담당 검사를 찾아가 무작정 사정을 했다. “이 사람은 제가 담임하는 교회의 교인입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담당 검사의 반응은 무심했다. 그래서 담당 검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구두를 붙잡고 빌었다. “검사님, 교인이 이렇게 된 것은 담임목사인 저의 책임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지도할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검사님,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목사가 무릎을 꿇어버리니까 검사가 오히려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장로는 이튿날 약식기소 처분을 받고 벌금을 낸 뒤 풀려났다. 그때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

이 사건 이전에 개척 초기부터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긴 장로님이 난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병원을 찾아가서 장로님을 부둥켜안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눈물로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이런 기도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주여, 장로님의 암을 제 몸에 옮겨 주소서.”

그러자 기도를 듣고 있던 장로님이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눈물이 범벅되도록 함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장로님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새 예배당 건축에 큰 헌신을 했다.

정말 여러 가지 기적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이었던 2003년 7월 연건평 1만평이 넘는 기적 같은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하나님이 마무리 짓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왜 ‘생명나무 목회’인가
에덴동산에서의 유혹은 오늘도 계속된다


사탄이 선악과를 따 먹도록 하와를 유혹했던 사건은 한 번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의 활동은 동일하게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덴동산에서의 유혹은 그때나 오늘이나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고후 11:2~3) 그런데도 미련하고 우매한 우리는, 그 똑같은 사탄의 수법과 유혹 작전에 늘 속고 넘어지고 있다. 마귀의 유혹 작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사탄은 잘못된 장소, 잘못된 환경으로 유인을 한다. 사탄은 하와를 잘못된 접촉으로 유도한다. 그래서 거기서 잘못된 소리, 엉뚱한 정보를 얻게 한다.(창 3:1)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와가 잠시 혼자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혼자 있는 하와였기에 하와를 무너뜨리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하와는 왜 선악과나무 아래 혼자 있었을까.

사탄이 하와의 마음을 간교하게 유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실을 ‘실낙원’의 저자인 존 밀턴은 그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 날도 아담과 하와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갑자기 하와가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보, 오늘은 우리가 따로 떨어져서 일해 봐요. 지금까지는 꼭 붙어서 다녔는데, 오늘 하루만 조금 떨어져 있어 봐요.”

이 말을 들은 아담이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혼자 있으면 안 돼. 여자는 약해서 유혹을 받을 위험이 있으니까,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돼.” 남편의 말을 들은 하와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여보, 나를 뭐로 보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 나를 못 믿어도 보통 못 믿는 게 아니로군요.” “여보, 오늘만 따로 있어 봐요. 우리가 따로 일하면, 참 도움이 될 게 많을 거예요.”

오늘날도 사탄은 우리를 잘못된 접촉으로 유인해 선악과나무 아래로 끌고 가려 한다. 거기서 시험에 든 사람을 만나 괜히 선악 판단의 소리를 듣게 한다. 시험에 들 만한 소리를 듣게 하고 같은 사건도 부정적이고 삐딱하게 보는 말을 듣게 한다. 나아가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소리를 듣게 하고 의심하는 소리를 듣게 한다. 믿음이 병들게 하고 절망과 원망과 불신의 병이 전염되게 한다. 그렇게 신앙이 순수하고 올곧았던 사람도 이런 잘못된 접촉과 만남으로 인해, 거의 백발백중 시험에 들고 믿음이 병들어 버리고 만다.

그처럼 하나님밖에 모르고 교회밖에 모르며 목사님밖에 몰랐던 사람도, 어느 날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선악 판단의 소리를 듣고 엉뚱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안에서 마이너리그가 되고 안티 그룹에 끼게 되는 경우를 본다.

그러므로 항상 잘못된 접촉을 피해야 한다. 잘못된 장소, 잘못된 만남, 잘못된 환경을 피해야 한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 듣지 말아야 할 소리,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가리며 조심해야 한다.

이런 잘못된 접촉으로 유인하는 사탄의 유혹을 경계하고 그런 상황이 되면 먼저 도망가 버려야 한다. 요셉 역시 보디발의 아내가 아예 대놓고 동침하자고 유혹했을 때 눈길도 주지 않고 상대조차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피했다.(창 39:8~10) 나중에는 자신의 정욕의 폭탄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도망을 나오고 만 것이다.(창 39:11~12) 요셉은 피하고 도망쳐서 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선악과나무를 멀리하고 보디발 아내와 같은 유혹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의 생명의 열매, 은혜의 열매, 사명의 열매를 따 먹게 하는 것이다.

 


소강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