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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1>/“벽돌 한 장 되어 당신의 전을 짓고 싶습니다”

영국신사77 2020. 6. 12. 10:40

 

“벽돌 한 장 되어 당신의 전을 짓고 싶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21>

 

입력 : 2020-06-09 00:05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1996년 11월 경기도 성남 구미동 성전에서 입당예배를 드리고 있다.

 


분당에 간 지 몇 달 만에 출석 성도가 배로 부흥했다. 상가를 벗어나 성전을 건축해 입당한다면 몇 달도 안 돼 수천 명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나날이었다.

교회 건축을 위해 미관심사서류를 준비해 땅을 분양한 토지공사에 들렀을 때 기절초풍할 사실을 알게 됐다. 눈물겹게 마련한 종교부지 위에 34만5000V의 전기가 흘렀다. 국내 최고의 고압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 땅에는 교회 건축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장 철탑을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국영기업의 실수여서 교회가 합법적으로 요구하면 당장 옮겨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철탑을 옮기려면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며 6개월 이내에 다른 곳에 더 좋은 땅을 대신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땅을 옮겨 주는 데는 2년 3개월이 걸렸다. 긴 시간을 기다려 받은 땅에 종교부지 승인이 떨어졌다. 탄천이 보이는 곳으로 주변이 공원과 그린벨트였다. 부랴부랴 설계해서 미관심사를 받고 건축허가를 받았다.

드디어 1995년 9월 24일, 경기도 성남 분당구 구미동에서 사무치게 기다렸던 성전 건축 기공 예배를 드렸다. 이날 한 시간의 감사예배로 지난 모든 한숨과 고통이 다 씻기는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 굴착기가 와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덤프트럭 열 대가 굴착기가 퍼주는 흙을 열심히 날랐다.

하루하루가 감격에 들뜬 나날이였다. 그런데 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주민들이 교회 건축 공사를 당장 중지시키고 건축허가를 취소하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철탑 사건만 없었더라면 공사를 다 끝냈을 것이었다.

그들이 민원을 낸 동기를 이해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강경했고 일방적이었다. 아무리 민원을 제기해도 부지 선정 과정에서부터 건축허가까지 적법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어떤 관청에서도 공사 중지 명령은 내릴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감사원으로 민원을 제출했다. 감사원은 건축현장까지 감사를 나와서 건축현장에 문제점이 있다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나는 하나님께 더 무릎을 꿇고 하늘 보좌를 향해 울부짖었다. 온 성도가 일심으로 기도했다. 비상 금식기도와 릴레이 기도를 했다. 교회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노력했다. 그 결과 공사 중지 해지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걱정은 끝이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시공회사가 부도났다. 그래서 또 공사가 중단됐다.

‘개척자의 길은 왜 이리도 험한지…. 이제 민원문제도 해결됐고 교회에 대한 주민들의 오해도 풀렸는데 왜 하필 우리 교회 건축을 맡은 건설회사가 부도를 당했단 말인가.’ 상황이 이쯤 되자 힘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

 

 

 

구미동 성전 철골 공사장면. 구미동 성전은 용인 죽전 예배당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했다.

 


철골이 앙상한 뼈다귀처럼 연결돼 서 있는 성전을 보면서 눈물만 흘렸다. 어느 날 저녁 앙상하게 서 있는 철골 건물을 바라보며 이런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주여! 차라리 이 한 몸, 벽돌 한 장이 돼 당신의 전을 짓고 싶습니다. 주여, 제가 한 장의 벽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차라리 저를 죽게 하소서. 차라리 이 몸이 벽돌 되게 하소서.”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소 목사야, 아직도 문제는 너에게 있다. 끝까지 겸손하고 성결해라. 부디 땅의 종이 되지 말고 하늘의 종이 되거라. 나는 네가 자고할까 염려한단다. 네가 자고하고 심령이 부패하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란다.” “주님, 제가 더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며 이럴수록 절망하지 않고 더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며칠 후 건설회사에 추가공사비를 주기로 하고 공사를 재개했다. 현장에는 다시 레미콘 트럭이 들락거리고 발전기 소리가 요란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교회를 잘 짓고 준공검사를 마쳤다.

준공검사필증을 손에 쥐던 날, 그때의 감격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종이쪽지를 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너무 좋아서 교회 주위를 뛰어다녔다. 본당 안에 들어가 환호를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96년 11월 16일,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미동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이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자리를 꽉 메운 성도들의 찬송 소리는 감격으로 우렁찼고 기도와 설교의 구구절절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눈을 몇 번이고 비벼봤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 죽어도 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먹거리는 가슴으로 기도했다. “주님, 생명 다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겠사오니 부족한 종과 새에덴교회를 통해 더 큰 일을 행하시고 더 큰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 왜 ‘생명나무목회’인가
생명나무 선택해야 하늘 문 열어 주신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눈을 감으나 뜨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축복으로 만물의 영장이 돼 모든 창조세계를 다스렸다. 그 상태에서 아담이 생명나무를 선택하고 따 먹었더라면 얼마나 형통한 삶을 살았겠는가. 그런데 선악과를 선택해서 온갖 가시와 엉겅퀴와 찔레의 저주로만 가득한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온갖 축복과 기적과 형통의 법칙 속에서만 살아간다. 생명나무에는 형통의 원리와 축복의 법칙, 승승장구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다. 하지만 제2의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아담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의 법과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롬 8:2)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법과 정신, 생명과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면 항상 형통하고 승리하게 돼 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저주와 질병과 고통과 문제가 많은 곳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예수님 안에서 축복과 기적과 형통의 길이 활짝 열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왜냐면 이런 사람은 생명나무의 은혜와 축복의 법칙이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언서를 보면 소원이 이뤄지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 생명나무라고 말씀한다. 그것도 그냥 누구나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의인의 소원이다.(잠 11:30, 13:12)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모내기 철에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 놓으면 물이 도랑으로 흘러간다. 그러면 그 도랑으로 가는 물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논에 물꼬를 터놓는다. 그래야 그 물꼬를 통해 물이 논으로 들어오고 모내기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도랑에 물이 흘러가도 논에 물꼬가 닫혀 있으면 그 저수지 물은 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게 되면 모내기도 할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논의 물꼬를 반드시 터놔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복 받고 형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늘 문이 열려야 한다. 논에 물꼬가 터져야 하는 것처럼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주셔야 한다. 그 하늘 문을 통해 은혜와 축복, 형통과 기적의 물꼬가 터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축복과 형통,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늘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 하늘 문이 열린 사람만이 형통과 축복, 기적의 삶을 살아간다. 반대로 선악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똑똑해 보이고 바른말만 하는 것 같아도 축복과 형통과 기적의 물꼬가 닫혀 버린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은혜와 축복의 물꼬가 닫혀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하늘 보좌로부터 은혜와 축복, 형통의 물꼬가 활짝 열려 있다. 그래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패자부활전의 영웅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힘이 돼 주시고 기적의 원리와 축복의 법칙이 돼 주셔서 황홀한 기적과 영광, 축복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때문이다.

원망과 절망의 상황 속에 있는가.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찬양하라.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오히려 그 역설적 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반드시 하늘 보좌에서 기적 축복 형통의 물꼬를 터주신다.

새에덴교회는 성도들이 항상 생명나무를 선택하게 한다. 상식과 합리적 생각으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 축복과 형통과 기적의 세계를 경험하고 누리게 한다. 이것이 생명나무 목회다.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1603&code=2311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