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지하 76㎡(23평) 상가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했다. 그때부터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 인생이 교회고 목회가 내 인생이었다. 새에덴교회를 빼놓고는 내가 존재할 수 없고 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새에덴교회가 나였고 내가 새에덴교회였다.
개척을 시작해 교인들이 100명이 넘고 150명이 될 때였다. 나는 개척 이후 2년 동안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쳐 교인에게 꿈을 심어주고 헌신의 공동체를 함께 이뤘다.
그때쯤 집사람이 딸을 임신했다. 그때 나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다가 그만 집사람의 양수가 터져 버렸다. 2년 동안 사례비도 받지 않으니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집사람이 먹고 싶어하는 딸기, 설렁탕, 냉면 등을 한 번도 사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광주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생활비를 보내줘서 근근이 굶지 않고 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잘 먹지도 못하는 몸으로 온종일 의자 위에 올라가 천장에 은종이 꽃을 붙이다가 너무 무리해 출산예정일이 한 달 넘게 남았는데도 양수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때도 나는 크리스마스 준비 때문에 할 일이 남아 있고 심방과 전도 약속이 있어 집사람 혼자 병원에 가게 했다. “미안해. 내가 같이 가지 못한 것 다음에 꼭 갚아줄게.”
집사람은 혼자 눈물을 글썽이며 산부인과로 갔다. 평생 그때처럼 섭섭할 때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목회에 미쳐 너무 미련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꿈과 사명을 위해 집사람과 딸 소현이가 너무나 많은 희생을 한 것 같다.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오후 늦게야 병원에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와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다.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갔다.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 본 딸의 모습. 아, 예쁘고 사랑스럽게만 보일 딸의 모습은 얼굴도 등도 배도 다리도 온몸이 번데기처럼 쭈글쭈글했다. 얼굴도 등도 배도 다리도 다 80대 노인의 살결처럼 주름 잡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통통하고 울기도 잘하는데 유독 내 딸은 눈조차 뜰 힘이 없는지, 울 힘도 없는지 눈은 절반쯤 뜨고 울지도 않았다. 정말 영화 속 ET 같았다. 딸아이를 보니 죄책감이 어깨를 눌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빚이라도 내서 태중의 딸을 건강하게 키웠을 텐데. 얼마나 뱃속에서 배를 주렸으면 저렇게 됐을까. 세상에, 내가 그렇게 무심했다니….’
너무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아가야, 미안하다. 이 아빠를 용서해라. 나는 아빠 자격도 없다. 어쩌다가 이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니. 아빠는 이미 너에게 죄인이 되었구나.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너를 위해서라도 아빠는 정말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명의 길을 달려가련다. 부디 잘 자라다오. 그리고 여보, 정말 미안하구려. 정말 당신 얼굴을 볼 면목이 없소. 그러나 언젠가는 당신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니며 행복하게 해주리다. 정말 미안하오.”
그때 이런 형편을 알고 성도 몇 분이 딸의 분윳값을 대줬다. 덕분에 당시 가장 좋다는 분유를 먹이고 또 먹였다. 이따금 아이 분유를 먹일 때 딸의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불쌍하고 가련한 딸을 하나님이 키워 주옵소서.”
그 후에도 목회 일정은 정신없이 바빴다. 집사람이 중이염 수술을 할 때 집사람한테 가지 못하고 같은 시간대에 수술하는 교인에게 심방을 가서 기도를 해줬다. 그만큼 가정을 희생하면서 목양 연가를 불렀다. 성도를 향해 가슴 속에 순애보의 꽃을 피웠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고 애틋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슴 아프게 낳은 딸이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사위는 개척교회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아이를 눈도장 찍어놓았다가 맞았다. 경찰대를 남자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지금은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예쁘고 건강한 손녀, 손자도 낳아 잘 키우면서 얼마나 큰 기쁨을 선물해 주는지 모른다.
집사람도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모든 행동을 이해해주고 위로해 준다. “목사님이 그만큼 희생의 눈물을 뿌렸기에 교회도 부흥했고 자녀들도 이렇게 복을 받았네요.”
그러나 지금도 딸을 보면 아버지로서 죄책감이 든다. 더 사랑해 주지 못한 것,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더 아껴주고 잘 먹여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어느새 눈시울이 젖어 든다. 집사람을 향해서도 생각날 때마다 젊은 날의 잘못을 속죄한다.
그러나 이런 나의 삶과 성도를 향한 순애보적 사랑에 교인들이 감동하고 헌신해 교회는 지하실에서 나와 396㎡(120평) 공간으로 확장 이전하게 됐다. 교회는 나날이 부흥을 거듭해 1994년 분당신도시에 땅을 사서 이사했다. 교회가 분당으로 가게 된 것은 내 목회에서 최고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였다.
▒ 왜 ‘생명나무목회’인가
교회 직분자라도 선악과 선택하면 생명의 불빛 꺼져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제2의 생명나무로 오셔서 생명의 빛이 돼 주셨고 생명의 음료가 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 돼주셨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항상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생명나무의 은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럴 때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에서 생명의 능력이 철철 흘러넘치게 된다.
만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를 선택했다면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나 모든 생명을 빼앗기고 하나님과 단절돼 버렸다.
오늘날도 우리가 생명나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상, 생명을 선택하고 추구하면 우리 안에서 생명이 철철 흘러넘친다. 장마 후 댐의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생명이 철철 흘러넘친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교회 직분자라 할지라도 선악과를 선택하면 생명의 불빛이 꺼져간다. 마치 가뭄 때 저수지가 말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우리 안에 생명이 샘처럼 솟아오르고 생명의 강이 창일하게 흐르게 된다. 누가 건들기만 해도 생명이 철철 넘치게 된다.
육신의 생명에도 두 종류가 있지 않은가. 먼저, 꺼져가는 생명이 있다. 병원 중환자실에 가보면 산소호흡기를 꽂고 곡물 주스로 연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 흔한 산소를 들이마실 수 없어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공급받으며 겨우겨우 숨을 쉰다. 어찌 이런 생명을 풍성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풍성한 생명이 있다. 건강하고 씩씩한 젊은이들을 보면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열심히 뛰어도 지치지 않는다. 잠깐 쉬고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다시 힘과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그런데 선악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마치 애찬의 암초와 같다.(유 1:12) 옛날에 꽁보리밥만 먹다가 햅쌀밥을 먹을 때를 기억하는가. 얼마나 감칠맛이 나고 맛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게 먹다가 어금니로 돌을 씹을 때가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서너 번을 씹으면 얼마나 화가 나고 성질이 나겠는가. 그래서 밥하는 아내와 밥상을 엎어버리도록 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애찬의 암초다.
교회에도 애찬의 암초와 같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규명하겠다면서 끝까지 자기 소리를 낸다. 교회 안에서 박 터지게 싸우다 공멸의 길을 가고 만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그저 감사요 감격이요 은혜다. 내면에서 생명이 철철 흘러넘친다. 그 안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생명이 풍성하기에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선악의 눈으로만 보면 교회도 부정적으로만 보이고 삐딱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선택하면 내 안에 생명이 흘러넘칠 뿐만 아니라 기쁨과 감격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생명의 안경을 끼게 되고 모든 것을 생명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 성도들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성도가 모인 교회는 생명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교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갖고 다투지도, 기득권 싸움이나 내부 파워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선한 경쟁은 할지언정 ‘사일로 효과’(Silo Effect), 즉 부서 이기주의나 기관 충돌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생명나무 목회를 한 새에덴교회는 중직자나 기관장들이 부서 이기주의를 넘어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서로 격려하며 처치 플랜팅을 하려 한다. 교회의 모든 힘을 모아 한국교회의 공익을 위해 공적 사역을 감당한다. 그래서 목회가 늘 재미있고 신이 나고 행복하다.
소강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