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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17> / “귀신 쫓아달라”… 무당이 보낸 여인 위해 기도

영국신사77 2020. 5. 13. 00:21

“귀신 쫓아달라”… 무당이 보낸 여인 위해 기도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17>

입력 : 2020-05-12 00:07
1983년 7월 백암교회에서 열린 여름성경학교.

전남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는 몇 회를 써도 다 하기 힘들 정도다. 그때는 정말 앞으로 나아갈 수도, 후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도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기도 지친다. 그럴 때는 뒷동산에 올라가 막대기를 마이크처럼 손에 잡았다. 그리고 빽빽한 나무를 교인이라고 상상하면서 설교와 찬양을 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꿈이 생기며 기쁨이 솟아났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기적처럼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짓게 되리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 후 백암리 2구에 사는 최모 여인이 찾아왔다. 두 딸이 먼저 죽었는데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 ‘엄마가 점상을 받으면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점쟁이가 될 것’이라하며 괴롭힌다고 했다. 게다가 저녁마다 온몸이 쑤셔 잠도 못 이루고 있었다.

“제 눈에 다른 사람의 과거와 미래의 운명이 보여요. 괴로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점상을 받고 무당이 되려고 유명한 무당을 다 찾아다녔지만 영발이 부족했는지 신이 내리지도 않았어요.”

그녀는 앞서 나를 쫓아내기 위해 마을에서 초청한 용한 무당을 찾아갔다. 새끼 무당을 많이 배출해 꽤 알려진 무당이었다. 그런데 그 무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너를 아주 능력 있는 무당으로 만들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아주 영특한 무당이 된다 할지라도 네 병은 안 낫는다. 그러니 병도 고치고 무당도 안 되려면 교회로 가거라. 저 윗동네에 교회가 있으니 거기 가서 고침을 받아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이가 어리고 귀신 쫓는 일도 해보지 않아 통 자신이 없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이 나한테 대들지 않을까, 내 약점이나 들춰내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도 하나님의 종에겐 하나님이 일하셨다.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그 여인이 십자가처럼 쫙 누워서 노란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즉시 귀신이 떠나갔다. 그 여인은 동네방네 다니면서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누구든지 교회와 주의 종을 핍박하는 사람은 3대를 빌어먹을 것이오.”

그러자 교회를 핍박하던 이상한 법이 다 사라져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전도하고 다니면서 많이 데려올 때는 한 번에 14명까지 새신자를 데려왔다. 교회를 반대하던 분위기가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땅을 팔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기적처럼 땅을 사서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1981년 전남 화순 백암교회를 천막교회로 짓고 성도들과 함께했다.

첫 삽질을 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지하실 공사를 할 때는 그 속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울었다. 기둥이 올라가면 기둥을 끌어안고 울었다. 저녁이 되면 가마니를 깔아놓고 밤을 새워 기도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격동하면 까끌까끌한 시멘트 벽돌에 입술을 대고 울고 또 울었다.

내 목회 인생에서 그때만큼 큰 기쁨을 누렸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3만3000㎡(1만평)가 넘는 예배당을 지었지만, 내게는 오히려 그때가 더 감격스럽고 행복했던 것 같다. 1984년 12월 헌당식을 할 때 그렇게 나를 핍박하던 마을 이장과 동네 유지들이 왔다. 교단 총회장이 오셔서 설교를 해 주셨고 철수 명령까지 내렸던 노회장님이 감사패를 주셨다.

곧바로 자립해 시찰에서 상납금을 많이 내는 교회가 됐다. 그러나 안주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 했기에 훌륭한 분이 오셔서 교회를 부흥시키도록 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은퇴비 없이 빈 몸으로 성도들과 작별했다.

소강석 목사가 1984년 12월 백암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고 교단 노회장에게 받은 감사패.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소 전도사님,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누가 이 마을에 와서 예배당을 짓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도사님은 꼭 복 받고 위대한 목사님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영혼이 아리는 것을 느꼈다. 오토바이를 타고 광주까지 오는데 눈물이 흘러내려 몇 번이나 서서 눈물을 닦았다. 광주에 와서 지금의 장모님이신 정금성 권사님을 붙들고 울며 고백했다.

“어머니, 한 6개월이라도 더 있다 올 걸 그랬습니다. 우는 성도들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왜 그렇게 서울에서 개척을 준비하라고 종용하셨습니까.”

눈물은 3일이 가고 일주일이 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후임자를 생각한다면, 정을 떼야 했기에 그곳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할 준비를 했다. ‘이제는 회한과 슬픔의 눈물을 꽃씨로 바꾸리라. 지금의 서글픔을 서울의 개척 열정으로 승화하리라.’

서울 남산타워에 올라갔다.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하나님, 제가 갈 곳이 어디입니까. 저는 백암교회보다 더 강퍅한 곳이라도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겠습니다.” 그때 눈물이 희망이 되고 그 꿈이 꽃씨가 돼 오늘의 새에덴교회가 됐다.

▒ 왜 ‘생명나무목회’인가
누에가 집 짓듯, 불평·원망의 집 지어서야

어린 시절 나는 시골에서 누에를 키우며 자랐다. 비 오는 날은 정말 뽕 따러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뽕을 따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날벼락을 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뽕을 따러 가야 했다.

비 오는 날 뽕을 따오면 비 맞은 뽕잎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야 했다. 비 맞은 뽕을 먹으면 누에가 설사하고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누에는 왜 그렇게 뽕을 빨리 먹어 치우는지, 금세 또 뽕을 따러 가야 했다. 누에는 뽕잎을 먹으면서 한잠을 자고 두 잠을 자고 석 잠을 자고 넉 잠을 잔다.

넉 잠을 잔 후에는 뽕을 먹지 않는다. 뽕잎을 줘도 고개를 흔들며 난리다. 그때는 누에가 누렇게 익어 뽕잎을 줘도 전혀 먹지 않는다. 이런 누에는 새끼로 만든 섶에다 옮겨놓아야 한다. 아침에 보면 누에가 꼬치를 하얗게 지어 놓는다. 한 시도 쉬지 않고 고개를 흔들더니 일주일만 되면 꼬치를 땅콩 겉모습처럼 단단하게 지어 놓는다. 땅콩처럼 생긴 꼬치는 세워 놓고 발로 밟아도 깨어지지 않는다. 2주일쯤 된 꼬치를 손에 들고 흔들면 번데기가 된 누에가 속에서 따그닥 소리를 낸다.

목사가 돼 그 시절을 회상해 보니 교회 안에도 이런 번데기 같은 성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생활하면서 마음대로 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자기 멋대로 말하거나 마음에 안 든다며 선악 판단부터 한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불평과 원망의 집을 짓는 것이다. 그 집은 불통과 재앙과 저주의 집으로 변한다. 그런 집 안에 갇혀 번데기와 같이 움츠린 삶을 산다. 그런다고 지옥 가고 영원히 멸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 형통의 축복, 승승장구한 축복을 누릴 수 없다.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역전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고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아야 하는데 번데기처럼 항상 쭈글쭈글한 주름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인생, 연습할 수 없는 인생인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불쌍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복음이 뭔지를 모르고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모르며 계속 선악과를 따 먹는 사람이다.

이들은 선악의 지식을 추구하면서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헐어낸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도 언제나 아쉬운 마음뿐이지 않은가. 도대체 어쩌자고 선악과를 선택해 원망과 불평만 일삼는다는 말인가. 그러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다니며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됐단 말인가. 교회는 선악과를 선택하는 곳이 아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곳이다.

나는 개척교회 때부터 교회는 선악과를 선택하는 곳이 아니라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곳이라 가르쳤다. 생명나무 신앙훈련을 했고 생명나무학교까지 운영했다. 그래서 성도들에겐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항간에 불필요한 극기 훈련과 극단적 영성훈련이 문제가 되고 있다. 생명나무 목회를 하면 축복의 골짜기를 이루고 생명과 사랑으로 덕을 세우게 된다. 고통스럽고 극단적인 훈련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희망을 붙잡는 축복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소강석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7153&code=23111211&sid1=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