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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의 일생'-별이 되고 싶었던 여인 / 최종국 지움 책숲

영국신사77 2020. 5. 11. 19:26

에스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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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7. 11:18




 

구약성경 에스더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 속에 포함시키지 말아야한다는 학자들도 있다고한다. 과연 그럴까? 성경 본문에 특정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빼어 버린다면 없어져야 할 책이나 가치가 없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이름없이 믿음으로 살아갔던 역사적 인물 에스더를 제대로 공부해 간다면 에스더서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백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세계 최대 제국 페르시아 국가의 왕비였던 에스더는 본인이 이스라엘 민족임을 철저히 감춰야했다. 만약 국가의 최고 권력자 아내인 왕비가 포로로 잡혀 온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임이 공공연하게 밝혀지게 된다면 페르시아인들은 탄핵 또는 사사건건 약점으로 잡아 트집잡았을 것이다.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시킬 사명이 있었다. 페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들이 필요했다. 왕의 결재 없이는 불가능했다.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말없이 이름없이 에스더(왕비)가 해 냈다.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애쓸 지도자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발탁하여 총독(관리)으로 발령날 수 있도록 뒷작업을 한 이도 바로 왕비 에스더였다.

 

지배해야 할 땅 유대지역의 수도 예루살렘을 다스릴 총독을 포로 민족으로 끌려왔던 유대인 중에서 발탁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사였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가게 된 것은 분명 에스더의 영향력이었을 것이다 .

 

성전 개혁을 주도한 에스라도 에스더의 후원 하에 있는 페르시아지역 서기관 학교의 뛰어난 학생이었다.

에스더와 숙부 모르드개에 앞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 큰 영향력을 끼친 유대인이었다. 다니엘을 통해 세워진 서기관 학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인재들을 키워 내는 인재양성소였다. 그곳에서 수 많은 인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어 질 수 있었다.

 

다니엘의 영향력으로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의 왕비로 간택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폐위된 왕비 에스디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조로아스터교(아후라마즈다)와 현 왕비인 에스더를 중심으로 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아하수에로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주전 464년 4월 13일 아닥사스다 왕(롱기마누스)였다. 아닥사스다 왕은 왕비로 에스더의 유일한 핏줄인 다마스피아와 결혼했다. 다마스피아는 어머니 에스더에 이어 제국의 왕비가 되었다.

롱기마누스는 폐위된 와스디의 아들이었다. 에스더는 소주한 자신의 딸을 와스디의 아들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더의 딸 다마스피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특별한 일을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다마스피아는 어머니 에스더와 같이 어머니의 고향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유대 역사와 페르시아 역사에서 에스더만큼 위대한 족적을 남긴 여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는 역사의 기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선교의 완전한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에 비교할 수 없지만 에스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선교사였다.

스가랴서에 그려진 에스더의 모습은 그녀의 삶과 아주 잘 어울린다.

에스더는 저녁별이었지만 머지않아 새벽별로서 메시아의 오심을 인도할 것이다.

- 에스더의 일생,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