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차례
요한계시록 12장 (51 - 54)
강해 51 : 해 입은 여자와 해산한 아들(계12:1-2)
강해 52 : 보좌 앞으로 올려간 아들(계12:3-5)
강해 53 : 하늘의 전쟁(계12:6-12)
강해 54 : 교회의 핍박과 예비처(계12:13-17)
요한계시록 13장 (55 - 60)
강해 55 : 바다에서 나온 짐승(계13:1-2)
강해 56 : 적그리스도의 등장모습(계13:3-4)
강해 57 : 적그리스도가 받은 권세(계13:3-5)
강해 58 : 성도를 이긴 짐승의 권세(계13:6-10)
강해 59 : 거짓 선지자의 등장(계13:11-15)
강해 60 : 666 짐승의 표(계13:16-18)
요한계시록 14장 (61 - 71)
강해 61 : 시온산에 선 144000(계14:1-3)
강해 62 : 14400의 첫 번째 자격(계14:4-5)
강해 63 : 어린양만 따르는 자(계14:4-5)
강해 64 :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계14:4-5)
강해 65 : 첫째부활의 시기와 마지막 부활(계14:4-5)
강해 66 : 공중휴거의 시기와 모습(계14:4-5)
강해 67 : 진실하고 흠이 없는 자(계14:4-5)
강해 68 :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계14:6-10)
강해 69 : 세 번째 천사의 메시지(계14:9-12)
강해 70 :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계14:12-13)
강해 71 : 마지막 추수(계14:14-20)
요한계시록 15장 (72 - 73)
강해 72 : 공중휴거자의 모습(계15:1-4)
강해 73 : 마지막 심판준비(계15:3-8)
요한계시록 16장 (74 - 78)
강해 74 : 첫째와 둘째 대접심판(계16:1-3)
강해 75 :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심판(계16:4-11)
강해 76 : 여섯째 대접과 주의 재림(계16:12-18)
강해 77 : 일곱째 대접과 공중휴거(계16:17-21)
강해 78 : 일곱째 대접과 지구의 파멸(계1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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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2장 (51 - 54)
◆ 밤중소리 11-06 | VIEW : 3,041
강해 51 : 해 입은 여자와 해산한 아들(계12:1-2)
강해 52 : 보좌 앞으로 올려간 아들(계12:3-5)
강해 53 : 하늘의 전쟁(계12:6-12)
강해 54 : 교회의 핍박과 예비처(계12:13-17)
강해 51 : 해 입은 여자와 해산한 아들
(계12:1-2)
우리는 아직까지의 전개된 계시의 흐름으로 볼 때, 7년 환난 중, 전3년 반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통과하게 됩니다. 물론 교회도 이 기간을 통과하는 일에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3년 반의 고비인 1260일에 이르렀을 때에 두 증인의 부활 승천과 함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처로 옮겨지는 일로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요한계시록12장은 이 같은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예비처로 옮겨지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는가를 보여 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1. 해 입은 여자에 대한 올바른 해석
계시록12장의 해석은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 잘못된 해석이 12장에 나오는 몇 가지 문제로 인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1절에 나오는 ‘해를 입은 한 여자’의 경우, 이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12장 전체의 해석의 방향이 설정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이 여자를 ‘유대인’이라고 해석합니다. 세대주의적 해석으로는 교회는 이미 7년 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었으며 그 휴거는 계4:1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12장에 나오는 해 입은 여자를 유대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2) 이런 세대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개혁주의를 따르는 신학적 입장은 해를 입은 여자를 구약적 교회로 해석하고 그가 해산한 아이를 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다른 또 한 가지의 해석은 해 입은 여자를 마리아로, 그가 해산한 아이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는데 그 아이가 아들이며 철장권세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연결시킵니다.
2. 해를 입은 여자와 아이
요한계시록에는 여자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본문에 등장하는 ‘해를 입은 여자’요 다른 하나는 ‘음녀’로 나오는 여자입니다.
1절에 이 여자의 영적 모습이 나옵니다. 해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 발아래는 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열 두별의 면류관을 썼습니다. 해는 빛 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 발아래 있는 달은 이런 교회의 신부 준비를 갖춘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 쓴 열 두 별의 면류관은 승리를 말합니다. 이 교회는 열 두 별로 상징된 진리의 신앙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들은 환난 날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로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여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이들은 두 증인과 함께 적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두 증인들이 하늘로 부활 승천할 때,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옮겨진 슬기로운 그리스도의 신부들로 모여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해로 옷 입은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 아이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종말에 이루어질 계시에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는 예수님의 잉태와 해산의 모습이 이곳에 등장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인류의 종말에 해 입은 여자로 비유된 촛대 교회에서 해산할 사명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계11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예언의 사역을 감당할 두 증인들입니다.
남자아이는 ‘해 입은 여자’가 해산했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촛대교회, 진리에 굳게 서서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피나는 영적투쟁을 하는 교회에서 이 종말의 사명자들이 나옵니다. 물론 이 교회는 이들 종말적인 사명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라오디게아와 같은 물량적인 교회에서는 이런 사명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사데 교회와 같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교회에서도 나올 수 없습니다. 이세벨을 용납하고 다원주의의 사랑으로 이방종교를 형제로 영접하는 두아디라 교회와 같은 교회에서도 나올 수 없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해산하게 되매’란 표현은 해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해산이란 두 증인의 사역과 그들의 순교를 말합니다. 이 때 교회는 아파서 애써 부르짖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기에 교회가 받을 큰 고통과 그에 따른 교회의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이 고통이 13절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교회가 받는 이런 고통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로부터 받는 첫째 화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들에 대하여 5절에서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실 상급을 약속하실 때,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보좌 앞으로 올려 갔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들을 죽이는 일에 일시적으로 승리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나 부활 승천함으로 삼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결론 : 여러분! 얼마 안 가 지상의 교회는 ‘음녀’와 ‘해를 입은 여자’로 갈라질 것입니다. 음녀교회는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촛대교회만이 마25:10절에서 말씀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속한 교회를 음녀교회로서가 아니라 촛대교회의 모습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이 예언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읽고 듣고 지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해 52 : 보좌 앞으로 올려간 아들
(계12:3-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건들은 하나하나 모두 단순한 사건들입니다. 엉뚱한 사건이 생겨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맥으로 연결되어야 할 사건들이 적당한 곳에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가운데 종말에 일어날 환난의 드라마로 통일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 붉은 용의 공격
3절 말씀에 ‘붉은 용’이 등장합니다. 이 붉은 용은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붉은 용은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자신의 화신化身과도 같은 적그리스도를 세상에 내 보냅니다. 그래서 이 짐승에 대하여 계17:3절에서 ‘붉은 빛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자에게 마흔 두 달간 일할 권세를 주면서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넘겨줍니다. 이처럼 붉은 용인 사탄은 그가 가진 모든 계책과 모략과 권세와 능력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투쟁을 전개하는데 특히 하늘의 전쟁에서 미가엘에게 쫓겨난 후, 지상에 내려와서는 ‘해를 옷 입은 여자’와 그 여자가 낳은 아들과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1) 이 붉은 용에 대하여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곱 머리는 적그리스도 때까지의 역대의 하나님의 대적자들로 사탄이 부려먹던 인물들을 말합니다. 계17:10절에는 이 자들의 비밀을 밝혀 주고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망했다는 다섯 나라는 ‘애굽·앗수르·바벨론·메데바사·헬라’를 가리키고 지금 있다는 나라는 ‘로마’를 말하며 장차 나타나 잠깐 동안 계속될 나라는 적그리스도와 그가 거느릴 짐승의 제국을 가리킵니다.
(2) 그런데 사도 요한을 놀라게 한 일은 이 자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진 일입니다. 4절에서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붉은 용의 꼬리는 사탄의 거짓된 간교, 교활, 속임수를 말합니다. 붉은 용의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 것은 별로 상징된 하나님의 종들을 타락시켜 샘물로 상징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흐리게 하여 영적 생명을 죽이는 일을 말합니다. 이 때 살후2:3절에서 예언해 주시는 배도 세력인 음녀가 등장합니다.
2. 여자가 낳은 아들
붉은 용은 여자가 낳은 아들과 싸우고 여자는 용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가고 용은 광야에 도망간 여자를 공격하고 쫓기고 쫓는 일련의 긴박한 게임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1) 4절에서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와 두 증인과의 전쟁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계11:7절에서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예언의 사명을 받아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뽑혀 활동하는 두 증인들은 이처럼 용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로 계시된 두 증인들은 삼키고자 하는 용의 공격을 받아 잠정적으로 죽임을 당하지만 삼킴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두 증인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생기를 받아 부활하게 되며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왜 여기서 이미 계11장에서 이야기가 끝난 두 증인의 순교와 부활에 관한 사건을 다시 계시해 주는 것입니까? 두 증인은 7년 환난 초반인 전3년 반 초기에서 시작하여 1260일간 다시 예언하는 복음사역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들 두 증인들의 예언의 사역이 마쳐지는 일은 후3년 반에 들어서자 곧 일어나는 둘째 화는 물론, 해를 옷 입은 여자로 상징된 교회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계11:13절에서는 둘째 화가 일어나는 유브라데 전쟁의 시기를 말씀해 주고 계12:6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예비처로 피난 갈 그 시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로 표현된 두 증인이 붉은 용에 의해 삼킴을 당할 뻔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 우리는 6절에 나오는 말씀을 잘 음미해야 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말씀해 줍니다. 아들이 하늘로 승천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이 아들을 낳은 여자는 광야로 도망가는데 이 도망은 후3년 반기간인 1260일 동안 이 여자를 양육하기 위한 예비처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옮겨지는 모습이 계7:9-17절에 걸쳐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두 곳 계시는 예비처에 대한 같은 계시입니다.
이처럼 1260일간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의 끝나는 일과 그들의 순교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는 징조가 되는데 하나는 이 후에 곧 둘째 화인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이런 일이 있기 직전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처로 옮겨진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 요한계시록 12장은 종말에 살아가면서 주의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에게 굉장한 소망을 줍니다. 대 환난 중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앞으로 어떤 환난이 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전3년 반의 과정은 심판의 시기인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는 회개의 기간으로 은혜의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를 깨달을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쁨으로 힘껏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강해 53 : 하늘의 전쟁
(계12:6-12)
인류의 종말에 이 지상에서는 참으로 두렵고 처참한 몇 차례의 전쟁이 치러집니다. 한 번은 인류의 삼분의 일의 생명을 앗아가는 핵전쟁이 일어납니다. 성경에서는 이 전쟁을 ‘유브라데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그의 군대와 더불어 지상에 있는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우는 최후 결전이 될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전쟁이 일어날 진원지가 아마겟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이 있는데 이 전쟁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늘의 전쟁’입니다.
1. 하나님이 예비하신 여자의 양육처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해로 옷 입은 여자’가 그가 해산한 아들을 하늘 보좌로 올려 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계12장에 나오는 이 같은 표현은 ‘해로 옷 입은 여자’로 상징된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두 증인들을 하늘 보좌로 올려 보내는 모습으로 보여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시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이 여자는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일에 소망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장차 올 두려운 대 환난의 재앙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일은 어떤 기발한 착상이나 색다른 방법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 시 진실한 회개로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한 신부의 세마포로 단장하는 일로 준비는 끝나는 것입니다.
2. 하늘의 전쟁
본문 7절부터 하늘의 전쟁 모습이 나옵니다. 이 전쟁은 물론 영적 전쟁이지만 종말에 있을 지상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사건입니다. 이 전쟁 시기는 7년 환난 시기의 전 후가 될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붉은 용이 패하여 하늘에서 내어쫓기게 됩니다. 하늘의 전쟁에서 하나님 편에서 싸우는 영적인 군사는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사자들로 나타난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한편 이들과 싸우는 상대편은 하늘에 보좌를 펴고 공중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어두움의 세계를 지배해 온 붉은 용, 마귀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영적 전쟁을 통해서 이 자를 하늘에서 내어 쫓는 것입니까? 이 자는 공중에서 두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참소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대한 지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탄에게 이런 권세를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그 보좌에서 내어 쫓는 것입니다. 이 자는 지상으로 내어 쫓긴 후, 지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함께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통치체계가 6. 6. 6. 통치체제이며 이 통치 아래서 짐승의 표를 주는 대 환난 기간인 후3년 반이 진행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이처럼 미가엘 천사와 그의 사자들에 의해 내어 쫓기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이 그 음성입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세 가지로 구분된 내용으로 사도 요한에게 들려 왔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사탄의 추방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이뤄져 곧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임을 기뻐하여 외치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음성에 대해서 11절에서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런 하늘의 함성은 환난 날에 이 자로 인하여 핍박과 고난을 당해야 했던 순교자들의 승리의 함성입니다. 사탄과의 투쟁에는 어린양의 피를 제외하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터무니없는 참소를 해도 어린양의 피로 용서 받은 우리의 죄는 정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하늘의 음성은 1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자의 축출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로 인하여 이 땅에는 심판과 재앙이 임하므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로 인하여 일어나는 화 중에 교회가 입을 화는 첫째 화로 곧 황충이 환난이 됩니다. 그리고 이 자가 주도하는 통치로 인하여 지상에는 재앙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결론 : ‘해로 옷 입은 여자’는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두 증인이 나오고 또 후3년 반 기간 동안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에서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럽고 소망스러운 교회입니다. 종말에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촛대를 밝혀 해로 옷 입은 여자로 그 면모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이 교회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이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리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며 소망 중에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강해 54 : 교회의 핍박과 예비처
(계12:13-17)
오늘 나오는 계12:13-17절에 나오는 계시만 보아도 ‘용’이 나오고 ‘여자’가 나오며 ‘남자를 낳은 여자’가 나오고 ‘여자의 남은 자손’이 나옵니다. 이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계시에서 우리는 대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예비처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핍박을 받는 여자
우리는 지난 시간 계12:7절에서 미가엘의 군사와 붉은 용의 군사와의 하늘에서의 전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용이 패하여 용과 그의 사자들이 하늘에 있을 곳을 잃어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됩니다.
(1) 13절에서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용은 이 전쟁에서 공중과 지상의 어두움을 지배했던 모든 권세를 잃었습니다. 하늘 전쟁에서 패자가 된 용은 하나님께 대한 증오가 더욱 불일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하나님의 교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첫째 화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이 용의 공격시기입니다. 4절에서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이 나오는데 이 고통은 교회가 적그리스도로부터 당하는 영적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 후에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고자 하는데 이 아이는 두 증인들로 이들에 대한 공격의 시기는 1260일간의 예언 사역이 끝나고 순교할 당시를 말합니다.
2. 광야로 피하는 하나님의 교회
13절에 나오는 말씀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 쫓긴 용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을 받는 모습을 짧은 계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런데 14절에는 이 같은 사탄의 핍박에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조치가 내려집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1)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받았다는 ‘큰 독수리’란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날개에 그의 백성들을 얹혀 광야 자기 곳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 옮기실 그의 백성들의 수효가 계7:9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날개를 ‘큰 독수리의 두 날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24:4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2) 교회의 피난을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도망이란 말은 위험지역에서의 긴급탈출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곧 이어 있을 유브라데 전쟁의 재앙에서 긴급히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날아간다는 말은 예비처로 옮겨지는 일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순간적으로 이뤄질 것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은 그 곳에서 교회를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6절에 나와 있는 1260일간을 의미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후3년 반을 가리킵니다.
(4) 15절에서 용은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을 강 같이 토한다는 말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예비처가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여자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적그리스도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모습으로 결국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비처의 공격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5) 용은 분노했습니다. 17절에서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을 핍박하는 새로운 싸움을 시도할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용은 여자를 공격하는 일에 실패하여 분노하여 돌이켰지만 그는 다른 공격 대상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입니다. 이들은 예비처의 무리 중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입니다. 이들은 후3년 반에 남게 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결국 대환난 중에 떨어져 ‘둘째 화’ 중에서 회개하게 되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여자’에 대한 공격에 실패한 분풀이를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하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다고 했습니다. 바다 모래 위란 전 세계에 걸쳐 널려 있는 그의 공격 대상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론 : 성도들을 위해 종말적인 환난 날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처가 있을 것이란 약속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가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25:13절에서 예수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일곱 교회에 주시는 권면의 말씀에서 ‘이기는 자’의 생활을 통해서 이 같은 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으로 옮겨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5 - 60)
◆ 밤중소리 02-02 | VIEW : 808
강해 55 : 바다에서 나온 짐승(계13:1-2)
강해 56 : 적그리스도의 등장모습(계13:3-4)
강해 57 : 적그리스도가 받은 권세(계13:3-5)
강해 58 : 성도를 이긴 짐승의 권세(계13:6-10)
강해 59 : 거짓 선지자의 등장(계13:11-15)
강해 60 : 666 짐승의 표(계13:16-18)
강해 55 : 바다에서 나온 짐승
(계13:1-2)
요한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란 말이나 표현이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짐승’이란 이름으로 계시되어 나옵니다. 이 자의 이름이 계17:3절에서는 ‘붉은 빛 짐승’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짐승이란 말은 원래 다니엘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단7:2절 말씀에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이 자의 등장이 7장과 9장에 나오고 요한계시록에는 13장과 17장에 나옵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나 이 자는 같은 시대에 활동할 동일 인물로 다니엘서에 나타난 것은 종말에 유대인들이 이 자에 의해 종교적 핍박을 받게 될 것을 계시하신 것이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것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여 교회 뿐 아니라 인류의 지배자로 등장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계13장에서 이 자에 대한 자세한 모습을 찾아보면서 이 자가 세상 종말에 등장하여 과연 어떻게 활동하며 어떤 방법으로 짐승의 표를 주는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
1절에서 이 짐승의 등장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완관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1) 짐승이 나왔다는 바다란 단7:2절에서 네 짐승이 나온 ‘큰 바다’를 말해 줍니다. 그러면 이 바다란 무엇을 상징해 주는 표현입니까?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중동과 유럽지역을 포용하고 있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의미는 바다란 혼란한 세상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이 큰 바다로부터 나온다고 단7: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 바람은 종말에 전쟁을 일으킬 4대 세력을 의미합니다.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이들 네 바람을 잠시 동안 불지 못하게 하신 후,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시게 됩니다.
1절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왔다’는 말은 단7:2절에서 말하는 네 짐승 중에 하나인 마지막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등장만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비록 역사적으로 맨 뒤에 나온 짐승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짐승과 달라서 세상의 모든 군왕들을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열국列國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 짐승의 권세에 대하여 2절에서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멸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2) 적그리스도인 이 짐승의 머리엔 뿔이 열이 있다고 했습니다. 뿔은 권세를 말합니다. 열 개의 뿔은 열 명의 권세자를 의미하며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수족처럼 활동하는 열 명의 왕을 가리킵니다. 한 짐승의 등장으로 보여 주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지중해 지역인 유럽이라면 이들 열 뿔 역시 적그리스도와 동일 지역인 유럽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건 유럽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경제적 유익을 추구하려는 유럽지역 안의 국가 간의 연합은 그 의미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이들 회원국들은 모두 지난날 로마의 판도 아래서 대 로마를 형성했던 나라들이며 이 기구를 지배하는 자야말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란 추론은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3) 이 자의 머리가 일곱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시는 적그리스도가 소속한 네 번째 나라가 인류의 역사상 일곱 번째 제국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17:9-10절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으로 나왔으며 그 일곱 머리에 대한 해석을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고 한 것입니다.
(4) 그리고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해 주는 열 면류관은 적그리스도를 도와줄 열 왕들이 쓸 왕관을 의미합니다.
2. 짐승의 모습
이처럼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짐승은 아무라도 그를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자의 모습이 표범과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의 막강한 권세와 무자비한 정책과 그를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존재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에게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용이란 사탄인데 이 자가 하늘 전쟁에서 패하고 지상으로 내어 쫓긴 후, 적그리스도에게 막강한 자기 권세를 넘겨주므로 자신의 계획을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 쫓긴 붉은 용인 사탄은 이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일에 짐승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이처럼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짐승은 반드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적인 예언의 말씀을 잘 연구하고 살펴서 이 짐승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강해 56 : 적그리스도의 등장모습
(계13:3-4)
성경에는 적그리스도의 인물이나 그의 영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일어나 온 인류를 미혹하고 멸망의 표식인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사망으로 인도할 적그리스도는 오직 인격적인 한 명의 실존 인물이란 사실을 알고 그 자의 정체와 등장 모습에 대하여 성경적인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적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 고찰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하나의 상징적 인물이나 역사상에 이미 등장했던 여러 명의 중복적인 인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1)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실제적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에는 이 적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그 언급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적그리스도란 명칭의 개념으로 보여 주는 적그리스도란 이름이 있습니다. 요일2:22절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개념상의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상에는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와 유사한 종류의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일곱 머리로 나오는 역사상 일곱 제국의 왕들도 이런 존재들이었습니다. 일본의 도조도 독일의 히틀러도 이태리의 뭇소리니도 이런 유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닮은 유형의 많은 하나님 대적자를 의미합니다.
(2) 그런데 같은 바울의 서신이면서도 종말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살후2:3절 말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바울은 인류의 종말에 주님의 재림이 있기 직전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배도는 음녀교회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 자가 적그리스도의 실존 인물인 것입니다. 이 자는 요일2:22절에 나오는 많은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단일 인물인 것입니다.
2.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
우리가 만약 적그리스도가 어떤 모양으로 등장하느냐에 대한 계시를 모른다면 적그리스도가 등장해도 그 자에 대하여 아무런 경계심도 갖지 아니 할 것입니다.
(1) 먼저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등장 시기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재림의 날에 대하여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는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살후2:1-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주의 재림직전에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적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징조로 보여 주시는 말씀이 계13:3절에 나옵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말씀처럼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고 하는 예언적인 징조에서 이 자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그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 상처에 대하여 계13:14절에서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머리에 입은 상처는 칼로 피격을 당한 상처를 말합니다. 이 사건으로 온 세계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피격을 받아 죽는 일은 당장에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겠지만 그보다는 죽었던 이 자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으로 더욱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3절 끝에서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자는 전 세계 인류로부터 놀랍게 여김을 받으며 그를 따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이 자에게 눈을 돌려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인류의 메시아도 아니며 인류를 전쟁과 기근의 재앙에서 건져낼 지도자도 아닙니다.
이 자가 등장하면서 기독교 안에는 배도하는 일이 급격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 자가 유럽지역의 열 나라를 규합하여 열 뿔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열 뿔을 이끌고 세계 정치의 중앙무대에 우뚝 서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거룩한 곳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여 자존自尊할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지금 인류의 역사는 주의 재림의 날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려는 사탄의 음모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처럼 예언해 주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날 이런 자가 계시된 말씀대로 우리의 눈앞에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는 주의 재림이 더 이상 지체되지 않을 것입니다.
강해 57 : 적그리스도가 받은 권세
(계13:3-5)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의 활동은 종말론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제쳐놓고는 인류의 종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이 자의 등장으로 종말의 모든 계시가 실제로 전개되며 이 자의 출현을 전제하지 않고는 주님의 재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는 이 자에 대한 등장으로부터 활동상과 그의 최종적인 운명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짐승의 등장과 인류의 환호
적그리스도는 역사적 사건으로 정해진 시기에 뚜렷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는 일로 적그리스도로서의 그의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1) 우리가 가장 주목할 바로는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란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존재나 그의 등장에 관한 일에 있어서 완전히 비밀에 부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을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는 말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중에 공개적으로 죽었다가 공개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활동하는 일은 유사이래 이 적그리스도의 경우가 초유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증거 이상, 더 명확하고 분명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서 이 자에게 대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을 ‘놀랍게 여기면서 이 자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용이 이 자에게 자신의 권세까지 주므로 용과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경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계를 영적으로 정복하고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일에 무력을 사용치 않아도 됩니다.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이처럼 사탄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며 온 인류의 신망을 두텁게 받고 있기 때문에 이에 능히 그에게 반항하거나 도전할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이 짐승에 대하여 4절에서 말씀해 주는 대로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찬양하면서 이 짐승에 대하여 열광적인 갈채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으로부터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마흔 두 달이란 기간은 혹은 1260일, 혹은 한때와 두 때와 반 때 등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실제적 기간이냐 아니면 상징적 기간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실제적으로 계산되는 날 수인 것이 분명한 것은 ‘마흔 두 달’이나 ‘1260일’이나 ‘한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 중 어느 한 가지만을 택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기간으로 중복되어 계시하셨다는 사실에서 이 기간이 실제적인 기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구약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가하는 종교적 핍박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 와서도 이런 기간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11:2절에 나오는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한 사건과 동일 사건입니다. 특히 이 기간에 대해서 계12장에는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기간으로 ‘1260일간’이 나옵니다. 이 기간은 적그리스도가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는 마흔 두 달간과 동일한 기간입니다. 12:14절에 나오는 ‘한때와 두 때와 반 때’ 역시 후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를 받는 기간으로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받은 마흔 두 달과 같은 기간인 것입니다. 이 시기는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끝난 후부터 계산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의 교회가 예비처로 옮겨진 후부터 계산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는 7년 환난 중, 절반이 지난 후부터 계산됩니다.
결론 : 5절에서 짐승이 ‘큰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은 후, 자신을 하나님으로 지칭하여 자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처럼 인류의 종말에 개선장군 모양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여 전 인류들로부터 경이로움과 숭배함을 받으며 신적권세로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세상 사람들이 이 자를 향하여 미칠 듯이 환호하게 되는 위대한 인물이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할 것입니다. 이 인물의 특징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움직일 수 없는 징조로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 자를 주목하시고 경계하십시오. 이 자에게 결코 신적 경배를 드리지 말며 온 세상이 이 자를 향하여 ‘호산나’를 외쳐 대도 우리는 이 자에게 동조하거나 추종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강해 58 : 성도를 이긴 짐승의 권세
(계13:6-10)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7년 환난의 시발점인 한 이레의 언약의 체결에서 그의 정체가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그의 등장은 그 훨씬 이전에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나 한 이레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인가 어느 유력한 유럽의 한 나라의 수상이 흉기에 의한 저격으로 죽임을 당하는 놀라운 사건의 소식을 매스컴을 통하여 긴급 뉴스로 접하게 될 것입니다. 온 세계가 경악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충격적인 일은 죽었던 그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속보인 것입니다. 이 때 온 세상은 이런 일을 놀랍게 여기면서 이 자를 따르고 이 자에게 신적 경배를 드리게 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환호할 것입니다.
아마 이런 경이로운 사건은 전3년 반 초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자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 첫째 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게 되며 두 증인들과의 싸움에서 예언의 사명자를 죽이게 되고 후3년 반 동안의 통치 아래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의 싸움을 벌려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줄 것입니다.
1.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적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왜 인류의 종말에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시키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이유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이 내보내고 사탄이 권세를 주므로 활동하지만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로 실인즉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 그 재림을 통해서 온 인류를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에서 건져내야 할 그의 백성들과 심판 받아야 할 심판의 대상자들을 구별시켜야 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별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짐승의 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만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자로 삼아 심판의 불을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표는 아무에게나 주는 표가 아닙니다. 하나의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등장시켜 이 자가 사탄으로부터 큰 권세와 능력과 보좌를 받게 하여 온 인류들로 그들의 메시아로 신적경배를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인 짐승에게 이런 경배를 하는 자들의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찍어 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1) 6절에서 이 자는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는 사탄의 대리자로 인류들에게 군림하여 사탄의 권세로 활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입을 벌려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능력과 이적과 온 세상의 이단자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음녀교회에 속한 거짓된 주의 종들과 많은 신학자들과 학계의 유명 인사들과 세상의 정치가들을 총동원하여 이러한 일을 감행할 것이기 때문에 온 인류는 ‘호산나’를 외치며 적그리스도를 환호하고 짐승의 표를 즐거이 받으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입니다.
이 자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하는지 계13:8절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그의 심판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이 같은 비밀을 잘 깨닫고 이 자에게 경배하는 일이나 짐승의 표를 받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 이 자는 ‘하나님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자들이란 천국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적자이기 때문에 하나님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도 자신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3)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이긴다고 한 말은 후3년의 통치기간에 있을 일을 말합니다. 계12:17절에서 후3년 반에 떨어진 여자의 후손들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선 짐승은 여자의 후손들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이런 모습을 10절에서 이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짐승에게 옥에 갇히는 일도 생기고 죽임을 당할 일도 생기지만 인내와 믿음으로만 짐승의 이런 박해를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이 자는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권세는 5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권세로 ‘마흔 두 달 동안’의 제한된 기간의 권세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만료되면 자신의 최종적인 운명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다스릴 권세는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짐승에게 경배할 자는 누군가?
짐승에게 경배하므로 받는 ‘짐승의 표’는 멸망의 표입니다. 8절에서는 짐승에게 경배하여 ‘짐승의 표’를 받을 대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서 경종해 주는 바는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명심하고 후3년 반에 떨어져 짐승의 무서운 박해를 받는 성도들일지라도 짐승을 따르거나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짐승에게 사로잡힘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인내와 믿음으로 자기 신앙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이 짐승이라고 하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짐승의 표’를 준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과 싸우려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와의 투쟁을 각오하고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강해 59 : 거짓 선지자의 등장
(계13:11-15)
짐승인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등장할 때에 이르게 되면 적그리스도를 보좌해 주고 그에게 경배를 시키기 위해 사탄의 권세를 받은 다른 또 하나의 동반자인 파트너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에 대하여 본문 11절에서 ‘또 다른 짐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짐승과 구별시키기 위해 또 다른 짐승이라고 구분 짓고 있습니다. 짐승은 1절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왔다’고 한대로 바다에서 나왔지만 이 또 다른 짐승은 바다가 아니라 땅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이 자의 이름이 철저하게 숨겨져 있지만 계19:20절에서 이 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다’는 말로 이 자의 정체가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자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 거짓 선지자가 하는 일
종말에 적그리스도와 함께 활동할 거짓 선지자는 어떤 존재인가? 이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 자의 등장에 대하여 11절에서 ‘또 다른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 역시 짐승이기는 하지만 적그리스도와는 명백하게 구분된 짐승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바다에서 나왔지만 이 자는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위치가 거짓 선지자보다 얼마나 높은가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도와주는 보좌역만을 담당하며 적그리스도를 높이고 그에게 신적 경배를 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활동하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에게는 거짓 선지자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 뿔’은 이 자에게 주어진 사탄의 권세와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말하지만 ‘새끼 양’은 거짓 선지자임을 숨기고 자신을 선한 목자로 위장한 모습입니다. 다음에 이 자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대해서 ‘용처럼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의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용의 말을 뱉는 것입니다. 용이란 사탄을 일컫는 마귀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의 종과 사탄의 종과의 구별은 학식이나 인물이나 사랑으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와 능력으로 갖가지 이적을 행하여 자신을 진짜 선지자로 보일 것이며 음녀교회를 통할하고 세상의 모든 종교 세력을 단일화시켜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게 하는 일을 주도 할 것입니다. 이 시기는 적그리스도가 죽었다가 살아난 후가 되고 한 이레의 언약까지 맺는 놀라운 업적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의 활동은 세상에서 큰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3) 이 자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한다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는 그들의 자리만 다를 뿐 실상인즉 한 뿌리에서 나온 한 동류들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이 거짓 선지자에게 자신의 권세를 주므로 그 자로 그 권세를 가지고 활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짐승의 우상을 만들라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할 말씀이 14절에 있습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주使嗾와 강권으로 7년 환난 중에 세워지는 것이 바로 ‘짐승의 동상(우상)’입니다. 이 자는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명합니다.
이 자는 놀라운 이적을 행합니다. 13절 말씀에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란 말은 많은 이적 중에 더욱 놀라운 이적이란 뜻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가 명하는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는 명령은 즉각적으로 시행될 것입니다. 우상偶像이란 동상銅像의 형태로, 이 때 적그리스도의 거대한 신상神像을 세계 곳곳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세우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 적그리스도의 우상에 사탄의 생기가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두 증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생기를 넣으니 그 우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사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래도 아직 적그리스도에게 신적인 경배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핍박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 얼마 안 가 이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그런 일이 세상에 일어나기 전부터 경계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이 같은 일로 인하여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모든 인류가 그 자를 따른다 해도 여러분은 오늘의 이 말씀을 명심하여 진리를 견고히 붙들고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해 60 : 666 짐승의 표
(계13:16-18)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사탄의 사자로 쓰임 받을 자로 이 세상에 머리를 쳐들고 올라오는 두 짐승의 모습을 계13장에서 보았습니다. 한 명은 1절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으로 이 자를 붉은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보통 적그리스도로 불립니다. 다른 또 한 명은 11절에서 땅에서 올라오는 다른 짐승인데 이 짐승을 ‘다른 짐승’이라고 한 것은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구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짐승은 새끼 양처럼 생긴 짐승인데 이 자가 계19:20절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불리는 인물입니다.
1.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방법
세상은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적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집니다. 왜냐 하면 이 거짓 선지자는 실로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행하면서 온 인류로 짐승을 인류의 메시아로 섬기게 하며 그 앞에 경배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사탄이 거짓 선지자를 등장시키는 것은 짐승에게 신적 경배를 시킴으로 모든 인류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일을 거짓 선지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짐승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이루는 것입니다.
(2) 거짓 선지자는 이 일을 사탄의 방법을 따라 그가 받은 능력과 권세로 이룹니다. 이 일을 위해 거짓 선지자는 사탄으로부터 새로운 권세를 받게 됩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우상이 말하는 일은 아마 인류의 역사상 초유의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해 깨어 있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말씀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때는 이미 짐승의 명성과 위세가 전 세계에 미치고 있을 그런 시기일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우상의 여파는 굉장할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에 찾아와 그 우상 앞에 신적인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아마 이 같은 짐승의 우상이 세워질 시기는 전3년 반 중간쯤 시기가 될 것입니다.
2. ‘6 6 6’ 에 나타난 짐승의 표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로 모두 이 표를 받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종말에는 인류들을 ‘알곡’과 ‘쭉정이’로 가르십니다. 사람은 보통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되어 있지만 주님이 오실 때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 간에는 어떤 구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별이 ‘짐승의 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에 짐승은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 하나의 방법이 ‘물건 매매의 금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모든 물건의 매매가 금지된 상태에서의 생존이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할 일은 이 짐승의 표는 물건 매매에 있어서 하나의 특권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표는 원하는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데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신적인 경배를 드리고 적그리스도의 우상 앞에 경배하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 받아 드리는 확실한 신앙고백이 따라야 이 표를 주기 때문에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이런 경제 체제 아래서 살아갈 길이 막연할 것입니다.
(2) 그런데 이 짐승의 표에 대하여 ‘오른손에나 이마’에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는 세계 주민들의 신상기록이 담겨진 증명서나 현금카드를 반드시 지참하게 할 것인데 분실이나 위조나 허위기재를 못하도록 오른손이나 이마에 전자인식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채택할 것입니다.
(3) 그런데 이 짐승의 표에 대하여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 6 6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6 6 6’이란 수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6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수효입니다. 6은 7과 대조되는 수입니다. 7은 하나님의 수요 안식의 수입니다. 6은 멸망의 수로 믿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7에 미칠 수 없는 수입니다. 그러나 7은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안식세계의 숫자입니다. 6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요 7은 하나님의 구원의 수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말씀은 6에서 7의 자리로 옮겨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6이란 수는 결론적으로 사탄의 삼위를 가리킵니다. 처음 6은 사탄인 붉은 용을 상징하고 두 번째 6은 붉은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세 번째 6은 새끼 양으로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를 상징합니다. 7년 환난기간은 이들 삼위三位에 의해 이 세상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인류의 종말에 반드시 있습니다. 후3년 반에는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기 위해 이 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물건의 매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 엄격하게 시행될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해 이때까지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적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신앙고백과 함께 그에게 신적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61 - 71)
◆ 밤중소리 02-02 | VIEW : 614
강해 61 : 시온산에 선 144000(계14:1-3)
강해 62 : 14400의 첫 번째 자격(계14:4-5)
강해 63 : 어린양만 따르는 자(계14:4-5)
강해 64 :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계14:4-5)
강해 65 : 첫째부활의 시기와 마지막 부활(계14:4-5)
강해 66 : 공중휴거의 시기와 모습(계14:4-5)
강해 67 : 진실하고 흠이 없는 자(계14:4-5)
강해 68 :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계14:6-10)
강해 69 : 세 번째 천사의 메시지(계14:9-12)
강해 70 :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계14:12-13)
강해 71 : 마지막 추수(계14:14-20)
강해 61 : 시온산에 선 144000
(계14:1-3)
요한계시록에서 144000에 관한 문제만큼 그 해석이 구구하며 해석하기가 난해한 구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석이 잘못되면 종말계시의 전체의 방향이 잘못되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석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이미 7장에서 언급되었었는데 14장에 왜 다시 나타났느냐는 문제를 알아보고 그들의 자격이 자세히 나와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144000명이 보여주는 더 깊은 계시의 뜻을 배워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시온산에 나타난 144000명
계시록 7장과 14장은 144000의 계시적인 맥을 이어주는 장입니다. 7장에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라고 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뽑아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는 계시가 나타나 14장에서는 이마에 인침을 받은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이 나오는 것입니다.
(1) 먼저 이들은 일반적인 성도들과는 구별된 자들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총 수효라고 해석할 때, 14장에 나오는 144000명도 같은 해석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이하에 나오는 이들의 자격은 일반 성도들과는 거리가 먼 요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자격요건이 다섯 가지로 나오는데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씻은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생활의 행위로 말미암은 자격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7장에서 그 이마에 인 맞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왜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후3년 반의 대 환난에 떨어지지 않도록 회개시켜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두 증인을 통해서 1260일간의 기간 동안 예언의 사역으로 이루게 하십니다. 이들이 그 예언을 마칠 때,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되며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반 만에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첫째부활자로 살아나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듣고 올라간 곳이 바로 계14:1절에 나오는 하늘의 시온산입니다.
2.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144000명
요한은 하늘에서 두 가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이 시온산에서 들은 음성은 이들 144000의 하나님의 종들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부르는 새 노래였습니다. 요한은 이런 노래를 들어본 일이 없었으며 3절에서 ‘땅에서 속량함을 얻은 144000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을 왜 ‘땅에서 속량함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1) 속량이란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속량이 있습니다. 이 속량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죄 사함과 구원에 연결되는 말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속량은 죄악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속량에 관해 다른 또 하나의 의미를 주는 속량이란 말이 있습니다. 롬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속량은 분명 영적 구속, 우리의 죄 사함으로 오는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소망으로 기다리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2) 그러므로 이들 144000명에게 적용시킨 속량은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144000은 이미 부활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부활한 성도들 외에는 새 노래를 배울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첫째부활 자들입니다. 이들 첫째부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순교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바로 두 증인이 이에 해당합니다. 두 증인들은 계11:7절에서 1260일간의 예언을 마친 후,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했으며 3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부활승천하게 됩니다. 이들이 승천한 후 올라간 곳이 바로 하늘의 시온산입니다.
결론 : 이들은 하늘에 올려 간 후, 하늘 보좌가 있는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양도 그 곳에 서 계십니다. 이제 얼마 후에 주의 재림을 알리는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들려 올 때,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여섯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을 때, 이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의 흰 말을 타고 이 땅에 내려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오실 때 휴거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복된 성도의 반열에 서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강해 62 : 14400의 첫 번째 자격
(계14:4-5)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144000명이 누구인가?
그들은 인류의 종말에 어떤 사역을 하는 자들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 144000명의 정체를 알려면
먼저 그들의 자격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계시록7장에서 나온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관한 난제가
여기서 다시 한번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들로 144000명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配慮에서 나온 것입니다.
1. 144000명의 다섯 가지 자격
4절과 5절에 나오는 자격 조건은 144000명에 관한 것입니다.
4절에서 ‘이 사람들은’이란 말에서
144000명이 가지고 있는 자격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들의 자격을 분류하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
②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③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
④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
⑤ 흠이 없는 자.
이처럼 나타난 이들 144000명의 자격 조건을 볼 때,
이들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7장에서 인친 이들 144000명이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선발된 사람들이지만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12지파를 가리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선발 자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같은 자격을 볼 때,
이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 수효가 아니란 사실임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요건은
종말의 사명자로서 가져야 할 실천적인 의로운 생활의 요건들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높을수록
그들의 믿음의 차원이 높아야 하고
이런 믿음의 사람은 그들의 신앙생활에 나타나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예언의 사명자로 쓰임을 받을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격의 기준이
없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곳에 나와 있는 144000명의 자격 조건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영적 자격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나타난 신앙적인 결실에서 얻은 자격인 것입니다.
2.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
144000명의 자격 중에 그 첫째번 자격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여자’란
영적 의미의 여자로 ‘음녀’를 말합니다.
음녀란 진리에서 떠나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로 ‘음녀교회’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회를 여자로 비유해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음녀라고 하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다른 또 하나의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에 대해서 계12:1절에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관을 썼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해를 입은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가 종말에 진리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며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싸우는 진실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의 반열에 들어가려면
이들 음녀의 무리와 타협하거나 교회에서 그들을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순결한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모든 면에서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으로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여자 이세벨이 종말에 세상에 등장하여
음행의 포도주로 세상을 미혹할 음녀인 것입니다.
신앙이 순결한 하나님의 종들은
현실에 안주安住하지 않기 위해 힘씁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고 힘씁니다.
주의 재림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참습니다.
그의 목회의 표어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교인들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진리의 말씀만을 먹이며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예언의 복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놀라운 상급을 바라봅니다.
종말의 종들이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교가 첫째부활의 영광에 속한 부활이며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할 축복임을 믿고
이 상급에 큰 기대를 가지고
그의 남은 목회에 자신의 생애를 바칩니다.
결론 : 144000명의 자격은 그 첫째 조건이 순결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 신앙의 순결성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진리에 선 우리의 신앙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배도세력이 교권을 장악하고 강단을 점령하며
하나님의 교회로 음행의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할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예언의 사명자로서의 소명을 받고
음녀와 동조하거나 그들의 유혹에 마음의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목회자들이 이런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강해 63 : 어린양만 따르는 자
(계14:4-5)
우리는 144000명의 존재가 종말론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들의 자격에 대하여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144000명이 가지고 있는 자격을 통해서 이들의 정체가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예언의 사역자로 선출된 두 증인들임을 알 수 있으며 이처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진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어린양이 인도하는 길
하나님께서 종말에 예언의 사명자로 쓰시는 종의 첫째 자격은 신앙의 순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자격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그의 음성으로 그의 양 무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요10:4-5절에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 대해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을 이끌어 나갈 하나님의 종들은 특히 우리의 목자장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음녀는 이 음성을 외면하고 타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음녀란 진리를 저버린 목자를 말하고 다른 음성이란 적그리스도의 사상을 말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5:43절에서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다른 사람이란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말하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영광의 메시아의 가면을 쓴 적그리스도가 그들 앞에 나타날 때는 그를 영접할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2)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면 그의 말씀인 진리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말은 곧 그의 말씀을 따르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가 가는 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비록 어린양을 따라간다고 해도 사실인즉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이단자들이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2. 어린양만 따라가는 자
계17:14절에는 144000명의 자격에 대하여 다른 형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주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하늘군대를 말하는데 이 하늘군대는 바로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순교하여 첫째부활자로 하늘로 승천한 순교성도들로 144000명을 의미합니다.
(1)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은 하늘로 승천한 후, 하늘의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고 그 중에서 종말의 종으로 빼내심을 얻은 자들로 이들을 ‘진실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그 부르심에 순복한 종들입니다.
순교자의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종들은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절대로 거역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순교의 길임을 알고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 길에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2) 이 같은 주의 부르심을 듣고도 핑계를 대는 자는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얽매이기 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단연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어린양만 따라가려면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 될 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눅14:26-27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가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가가 되지 못하리라”
종말의 예언의 사명자로 활약할 주의 종들에게는 수도 없이 많은 환난과 핍박과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먹으니 입에는 달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한 말씀처럼 쓴잔을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쓴잔이 바로 이들이 걸어갈 순교의 전 과정인 것입니다.
결론 : 언제나 하나님의 종들은 어린양만을 따라야 하겠지만 종말에 살아가는 종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양 무리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는 종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종들만이 144000명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 144000명은 찾기 힘들 것 같지만 하나님에 의해 예비하신 이 같은 사명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강해 64 :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계14:4-5)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특별한 자격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자격의 기준을 본문 4절과 5절에서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자격 기준이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3절에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144000인’이란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속량함을 받았다’는 말씀과 ‘처음 익은 열매’란 말씀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았다.
이 사람들 즉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1) 속량이란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로 구분해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시간에도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144000’이란 구절에서 잠깐 언급한 일이 있었지만 속량이란 말의 한 가지 뜻은 구원에 적용시키는 말입니다. 골1:14절을 보면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속량이란 말은 이처럼 우리의 영적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성경에서 이 속량이란 낱말이 구원에만 국한하여 사용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8:23). 이곳에 나오는 속량은 영적 속량, 우리의 죄 사함에서 오는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란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영적 속량인 구원을 의미하지만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하는 속량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으로 기다리는 다른 또 하나의 속량으로 ‘부활’을 의미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속량’이란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적 속량을 의미하는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이 우리들의 속량(구속)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5:16절 이하에서 부활의 의미에 대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우리의 영적 속량인 구원은 우리의 육적 속량인 부활과 이처럼 직결되기 때문에 부활 역시 하나님의 속량의 사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처음 익은 열매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격으로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라고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속량(부활)을 받은 이들 144000명과 ‘처음 익은 열매’ 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처음 익은 열매’란 말은 첫째부활로 살아난 이들 144000인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고전15:22-27절까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의 순서가 나옵니다. 이 순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로 꼽았고 다음에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두 번째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란 말씀에서 세 번째의 부활의 순서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연구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은 여기 나오는 부활의 순서 중에는 불신자의 부활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22절에서 이 부활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부활)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있을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계20:4-6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부활자’가 있고 이들 첫째부활자가 아닌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첫째부활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부활 자들은 순교자들입니다. 교회에는 순교자들 뿐 아니라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아니한 성도들도 있는 것입니다. 괄호 안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바로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잘못된 신학적 편견으로 알고 믿고 있었던 첫째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전체적 부활이 아닙니다. 특수한 성도들의 부활인데 이들에 대하여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명시된 것처럼 첫째부활자는 순교자들의 부활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보다 시기적으로 천 년간 앞서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죽음에 대한 상급으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 일반 성도들보다 천 년간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군대로 지상에 내려올 것이며 그 후에 부활한 영화로운 몸으로 왕권을 가지고 천년왕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는 지상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 있었던 모든 성도들이 ‘살아 있는 몸’(변화 받은 몸은 아니지만 죄에서 벗어난 몸)으로 들어가 회복된 에덴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은 결코 부활체나 변화체로 이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에 백보좌 심판대를 거칠 때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고 천년왕국에서 살아 있는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20:5절에서 순교자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에 대하여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교자를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 종류의 순교자에 대해서 ‘예수의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있습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등장하는 사람들이 왜 부활한 성도들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계6:9-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제단 이래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은 순교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 값을 신원해 달라는 간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20:4절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순교 성도들과 같은 순교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기를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다른 또 한 종류의 순교자의 무리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환난 중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할 성도들인데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이 두 증인의 사역을 마치고 적그리스도에 의해 피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란 이 순교의 대상자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헬라어나 영어 성경이나 일본어 성경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순된 부활의 지식을 새롭게 정리해서 성경에 계시된 대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결론 :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처럼 순교적인 사명을 이루어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들 144000명은
이처럼 첫째부활자로 이미 순교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종말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은
이들처럼 순교의 사명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강해 65 : 첫째부활의 시기와 마지막 부활
(계14:4-5)
부활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 때문에 이 소망에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승리적인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문제 중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바로 ‘첫째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1. 첫째부활과 마지막 부활
‘첫째부활’이 순교자들의 부활이라면 또 있을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에 관한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부활에 관한 언급은 전 성경에서 유독 요한계시록20장에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석은 계20장에서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급된 첫째부활자가 순교자들이란 사실을 다음 세 가지 사실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는 첫째부활이라’는 말씀이 보여 주고 있는 뜻입니다.
다음에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살아나서’란 의미가 됩니다.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상태는 아직 부활한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들에 대한 부활이 ‘살아서’란 말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서’란 말은 순교자들의 영혼들과 아울러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함께 포함되어 ‘살아났다’는 의미로, 두 경우 모두 순교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20:5절에 나오는 괄호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씀에서 순교자들 외에 다른 성도들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점으로 보아 첫째부활자가 누군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2) 부활에는 ‘마지막 부활’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활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둘째부활’이 아닙니다. 첫째부활을 전체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비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둘째부활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부활은 생명의 부활이지만 둘째부활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3) 우리는 부활의 순서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고전15:22-26절까지의 말씀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①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②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③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④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⑤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⑥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우리는 위의 말씀에서 부활의 확실한 시기와 그 순서를 알 수 있습니다.
①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 온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죄 값인 사망을 선고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것같이’란 말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던 것처럼’이란 뜻입니다.
②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사망은 아담으로 왔지만 모든 사람의 삶(부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①의 경우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②의 경우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③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 ‘그러나’ 라고 표현한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부활이 있지만 그러나 그 부활에 순서가 있어서 순서대로 부활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④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 부활의 순서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⑤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 ‘다음에는’ 이란 말은 ‘먼저’ 첫 열매로 이뤄진 그리스도의 부활 다음에 이뤄질 부활의 순서란 뜻입니다. ⑥ 그 후에는 나중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그 후에는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란 말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의 부활이 지난 후에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서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포함해서 ‘세 번째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그 후의 부활이 계20:5절에 나오는 부활에 해당됩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그 후에 이뤄질 마지막 부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천년왕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부활이어야 한다.
부활에 관한 논의는 천년왕국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양상에 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무천년설의 경우, 부활문제는 주의 재림으로 끝나기 때문에 둘째부활이니 마지막 부활이니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없고 필요도 없지만 전천년설의 경우는 주의 재림이 있은 후에도 인류의 역사가 천 년간 계속되기 때문에 그 후에 있을 부활문제와 변화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부활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순교자의 상급부활로 나타나는 첫째부활입니다. 이들은 모든 시대의 순교자들로 천년왕국 이전에 부활하여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후의 부활은 마지막 부활로 천년왕국이 지난 후, 주님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그 때에 모든 성도들의 ‘생명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때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강해 66 : 공중휴거의 시기와 모습
(계14:4-5)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첫째부활에 관한 성경적인 많은 증거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재림 시, 이 땅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과정으로 천년왕국에 참여하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자연히 성도들의 공중휴거 문제와 연결됩니다.
1. 공중휴거란 무엇인가?
‘공중휴거’란 낱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살전4:17절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신다’는 말씀에서 공중휴거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공중휴거의 시기에 대해서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7년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합니다. ‘환난 중간 휴거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 후 휴거설’이 있습니다.
2. 공중휴거의 전모
그러면 여기서 공중휴거의 전모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공중휴거에 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는 장소가 공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주님을 왜 지상에서 영접하지 않고 공중에서 영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나와 있습니다(계16:17-20).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이 심판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이 지구상에 내리시는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지구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지구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구의 대 폭발이 일어납니다. 온 지구가 활화산이 되어 지구 자체가 불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그의 택한 백성들을 이 같은 최종적인 심판 가운데서 건져내시는데 그 방법이 공중휴거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에는 살아남아 있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중으로 끌어 올려 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공중휴거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피하게 하시려고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특별하신 은혜의 역사입니다.
(2) 공중휴거 시 성도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 될 때 ‘홀연히 변화’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전4장에 나오는 공중휴거는 분명히 주의 재림 시의 사건입니다. 16절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시리니’란 말씀으로 주의 재림의 시기에 있을 사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전15장에 나오는 홀연한 변화와 부활사건은 주의 재림의 시기가 아닙니다. 50절에서 그 시기를 명시해 주고 있는데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살아 있는 생존 성도들의 육체를 가리킨 것이요, ‘썩는 것’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처럼 혈과 육을 가진 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으며 또 죽어서 썩은 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여기 나와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해 주는 ‘유업으로 얻을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형태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두 가지로 추려집니다. 하나는 ‘천년왕국’의 경우요, 다른 하나는 ‘천국’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인들이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년왕국은 이 나라에 가기까지 잠깐(천년 동안) 거쳐 가는 이 땅위의 회복된 에덴에서의 생활을 이루는 나라입니다.
천년왕국은 영으로 살아갈 곳도 아니며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살아가는 곳도 아닙니다. 지상이 새롭게 변화되어 죄와 저주가 없는 나라가 이뤄져 새로운 동산을 이루게 되는 나라가 천년왕국입니다. 이 나라는 회복된 에덴동산에 불과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변화 받지 않은 몸으로 공중으로 휴거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 같은 의문은 하나님의 말씀도 권능도 모르는데서 나온 오해입니다. 미국의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우주인 암스트롱을 태우고 달세계를 왕복했습니다. 인간의 과학의 능력으로도 벌써 50여 년 전에 달나라를 왕복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몸 그대로를 가지고 공중으로 휴거 시키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 것입니까? 행8:39-40절 말씀을 보면 빌립 집사는 에치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 ‘아소도’로 옮겼지만 빌립은 변화 받지 않았습니다.
결론 : 만약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변화 받은 몸으로 이뤄진다면 성경에 있는 천년왕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부활한 몸, 변화 받은 몸이 살아갈 곳은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천국(새 예루살렘)이지 천년왕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은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리며 살아가는 곳이요 가정을 가지고 자손이 번성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또 한 차례의 죽음의 과정과 심판의 과정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년왕국에서 죄로 오염 받기 이전의 새로운 몸(죄와 저주에서 벗어난 회복된 몸)을 가지고 새로운 땅, 천년왕국에서 천 년간 살아갈 것입니다.
강해 67 : 진실하고 흠이 없는 자
(계14:4-5)
원래가 144000명은 7장에서 대두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14장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격을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14장은 바로 이 같은 맥을 이루는 144000명의 해결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에서는 144000명의 다섯 가지 자격을 보여 주는데 이 자격으로 볼 때 이들이 유대인도 아니요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 수효도 아니며 종말에 순교의 사명을 가지고 펴 놓인 두루마리 책의 예언을 전달하는 예언의 사명자로 일할 ‘우리 하나님의 종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종
종말에 하나님께서 예언의 사명자로 쓰실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그의 사역자로 쓰십니다. 환난 날에 증거될 하나님의 말씀은 ‘펴 놓인 두루마리’로 주의 재림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짐승의 우상과 그의 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이 펴 놓인 작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진실한 종을 종말의 사역자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이 거짓말하는 일은 하나님께 용납 받을 수 없습니다.
(2) 진실한 종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거짓말을 첨가하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거짓말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진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기반이 약해지거나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3) 누가 거짓말하는 종이냐는 분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기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인류의 종말에 이를수록 사탄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 미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거짓 것을 믿게 하는 일에 기적은 최상의 방법입니다. 살후2:9절과 10절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을 때,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의 사역에 대해서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마24:45절 이하에서 진실한 종들과 거짓된 종들의 구분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과 ‘악한 종들’과의 구분에서 이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혜 있고 충성된 종들은 그의 입에 거짓말이 없습니다. ‘지혜 있고 충성된 종’이란 말 자체가 거짓과는 거리가 먼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한 종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들의 메시지에는 주의 재림의 소망이나 경종이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이나 활동에 관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주의 재림과 함께 이 땅위에 세워질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지도 못합니다.
2. 흠이 없는 종들
마지막으로 144000명의 예언의 사역자들에 대한 자격으로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종말에 예언의 사역자로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은 ‘흠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흠欠이란 하자瑕疵란 말로 인격적인 결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도덕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적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먼저 마음의 정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과 계명을 지키는 생활에 철저하고 늘 회개하므로 죄나 죄의 유혹의 요소가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흠이 없으려면 열매를 맺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 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벧전5:2-4절에서 주의 사역자들에게 이처럼 권면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우리 주님은 양 무리의 본이 되는 목자를 기뻐하십니다.
결론 : 이들 144000명은 하나님의 교회 중에서 목자장 되신 주님에 의해 종말의 예언의 사역자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주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신부의 단장을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겠지만 또한 이 같은 순교자의 반열에서 종말적인 사명을 이룰 하나님의 종들을 해산하기 위한 기도도 끊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양 무리는 이 같은 종들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의 신부로서의 단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강해 68 :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
(계14:6-10)
요한계시록14장은 영원한 복음과 연결된 내용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종말에 계11장에 나타난 두 증인의 종말적 예언을 감당할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을 다섯 가지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부터 11절까지는 그들이 계11장에서 1260일간 예언했던 복음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곳에서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영원한 복음
(1) 우리는 먼저 공중에 날아가며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천사들에 대해 문자 그대로 천사로 오인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옛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을 하시게 했습니다. 노아 당시, 전 세계 인류를 심판하시는 홍수심판 시에도 노아를 통해서 심판의 경종을 주셨지 천사들에게 그 사역을 맡기지 아니하셨습니다. 롯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종말에도 이스라엘이 패역했을 때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종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의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이 천사들이 복음을 전한 대상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전 세계 인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은 계10:11절에서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두 증인이 1260일간 예언한 그 예언 사역의 대상이나 구역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천사로 표현된 영원한 복음의 전달자는 천사들이 아니라 두 증인으로 등장하여 초인적인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 때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불사신의 몸으로 펴 놓인 작은 책의 예언의 말씀을 세계적으로 전파할 것입니다. 이들의 사역의 활동이 마치 천사와 방불할 것입니다.
(2) 그런데 1260일간 두 증인들이 전할 예언을 왜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까? 이 같은 표현은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에 따라 그 머리에 부쳐진 이름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어떤 때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도 했습니다(막1:14). 구원의 복음(엡1:13), 평안의 복음(엡6:15), 화평의 복음(행10:3), 영광의 복음(딤전1:11) 등 다양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부른 것은 그 내용을 주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2. 천사가 전한 영원한 복음의 내용
영원한 복음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입니다. 두 번째는 음녀의 심판에 관한 경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 대한 심판의 경종입니다.
(1) 이들이 전한 첫 번째 메시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는 7년 환난 초기에 전할 두 증인의 예언사역의 메시지의 내용 중 하나로 ‘인류의 역사가 이미 종말에 이르렀고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하실 때가 매우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경종입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세상에 깊이 졸며 잠자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깨우는 ‘밤중의 소리’로 교회에 메아리칠 것입니다. 이 같은 경종의 소리는 주의 재림직전에 하나님의 교회에 들려주어 잠자는 성도들로 잠에서 깨우는 경종의 나팔로 들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들이 전한 두 번째의 메시지는 큰 성 바벨론으로 비유된 음녀의 심판에 대한 경종입니다. 8절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란 낱말은 두 가지 의미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불로 소멸될 이 세상을 ‘바벨론’ 혹은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바벨론은 음녀의 세력(집단)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이란 말은 원래가 하나님에 의해 무너져 멸망 받을 도성을 의미하는데 인류의 종말에 이 세계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 바벨론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음녀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음행의 포도주로 세상을 취하게 하여 세상으로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고 그의 표를 받게 만든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종말에 순교적인 사명을 가진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전 세계를 향하여 펴 놓인 두루마리 책의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음은 교회에 주시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노아의 외침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회개한 무리가 노아까지 포함해서 고작 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시에는 하나님께서 이 두 증인을 등장시켜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3년 반 기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미리 바라보고 슬기 있는 처녀들처럼 그 날을 대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해 69 : 세 번째 천사의 메시지
(계14:9-12)
공중에 나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들이 사실인즉 성령의 큰 권세를 가지고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하는 두 증인의 모습인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천사로 비유해서 그 메시지의 내용을 영원한 복음으로 이곳에 계시된 것은 두 증인들이 가진 큰 권세와 능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이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들이 전하는 예언의 메시지를 세 가지로 구분해서 계시해 주셨는데 세 번째 메시지가 오늘 전하려고 하는 내용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엄중히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짐승과 그의 우상
두 증인이 전하는 예언의 사역 중 세 번째 메시지의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종입니다. 이 경종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1) 짐승이란 종말에 등장할 실제적 인물인 대적하는 자, 바로 그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내신 분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가 사탄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로 등장하지만 이런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허락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런 자들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게 하고 그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과 최종적인 구분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짐승을 그들의 메시아로 영접하게 되며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에게 신적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로 그렇게 하도록 유혹하는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미 진리의 사랑을 스스로 거역한 자들이며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기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의 마지막 예언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짐승에게 미혹 받지 않도록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경종을 피나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 외침을 들은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음을 찢는 진실한 회개를 이루게 되고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흰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7:9절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 같은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유혹에 미혹되어 그를 따르다가 후3년 반의 무서운 재앙 속에 빠지게 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2.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일
짐승인 적그리스도가 인류의 종말에 세상에 머리를 쳐들고 등장한 이유는 그가 사탄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모든 인류들의 이마와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1) 종말에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는 신적존재로 위장하여 엄위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이 자는 하나님을 대적했던 나라의 일곱 번째 왕으로 등장합니다. 유럽지역의 국력과 무역이 왕성한 어느 한 나라의 지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계17:10).
이 자의 혈통은 전통적인 유럽계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는데 이 자에 의해 중동평화를 이루는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어 일촉즉발의 위기에 있었던 이 세상에 잠정적인 세계 평화가 이루어집니다(요5:43;단9:27). 이 자는 이 일로 인하여 평화의 왕, 세계 인류의 메시아로 환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적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 경배케 하는 일입니다(살후2:4).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신상을 만들게 하여 그 신상 앞에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음녀에게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계13:14). 그리고 모든 자들, 곧 작은 자(일반시민)나 큰 자(고위층)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두 증인은 죽음을 초월한 불사신의 몸으로 1260일간 이 같은 내용의 영원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같은 두 증인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음녀의 세력에서 돌이키지 않고 짐승을 따르며 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 앞에 경배하여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 자는 누구이든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하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강해 70 :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
(계14:12-13)
우리는 지난 시간, 7절로 11절에 이르기까지 천사로 비유된 두 증인들이 1260일간 증거하는 예언의 말씀의 대요大要를 들었습니다. 영원한 복음으로 불리는 이 메시지는 이 세상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랑의 권고요 심판의 경종이 될 것입니다. 이 같은 경종을 들려주신 후, 후3년 반에 남은 여자의 후손 중 혹 짐승에 대한 경배를 거부하고 짐승의 표 받기를 거역하는 성도들이 짐승의 무리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이들의 영혼이 하늘의 안식을 누린다는 위로를 주시면서 인내와 믿음으로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격려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계14:12-13).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 중 많은 성도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는 일이나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을 거부하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13:10절에서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3년 반에서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순교자의 수효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44000으로 이미 순교자의 수효는 채워졌으며 또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의 죽음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으로 순교의 영광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비록 후3년 반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대 환난을 당한다 해도 그들은 구원 받고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멸망 받지 않고 그들의 죽음에도 천국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후3년 반의 혹독한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야 할 것을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1.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11절로 영원한 복음의 전파는 끝났습니다. 12절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나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인내는 후3년 반 중에 있을 성도들의 환난에 대한 승리의 비결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1) 교회는 모든 종말적인 환난을 다 통과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교회의 연단과 이 연단으로 맺어야 할 회개를 위해 통과해야 할 환난이 있습니다. 이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나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를 위한 ‘믿음의 시련’으로 주시는 값진 환난입니다. 교회는 이 환난을 통해서 지난날의 세속적인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 받게 될 것입니다.
(2) 환난을 만난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없는 사람은 환난을 만났을 때에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이겨야 할 환난이란 7년 환난 중, 전3년 반 마지막 시기에 있을 ‘첫째 화’를 말합니다. 이 첫째 화를 요한계시록에서는 ‘황충이 화’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화가 성도들을 괴롭힐 기간은 다섯 달 동안입니다. 그러나 이 첫째 화의 시련에 떨어진 성도들은 더 심한 연단을 위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데 후3년 반에 겪어야 하는 환난입니다.
(3) 그런데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시련은 하나님께서 결과적으로 이기게 해 주시지만 12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만이 인내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
13절에 나오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모든 성도들이 들어야할 복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시련과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었으며 육신이 후패하고 나이가 들어 세상에 속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천국생활에 대한 소망을 주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1) 지금 이후란 말은 ‘지금부터’란 뜻으로 전 신약시대 기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한 축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요한이 이곳에서 특별히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비록 이 글을 읽고 듣는 성도들이 혹 종말적인 환난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생애 중에 찾아오는 시련이나 환난을 인내로 이긴다면 이 같은 축복을 받을 것임을 격려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주 재림의 시기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소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들이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된다면 그 이상 복된 죽음이 없는 것이며 복 있는 생애를 마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언제 죽든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속에 살아가거나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지키는 생애를 살아가야 하며 인내로 결실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에 대하여 성령이 증거하시는 증거는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고를 그치고 이제부터 쉬는 축복을 얻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수고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이 짐을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우리들 스스로 이 짐을 더 무겁게 하여 짊어져 왔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경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처음 것들입니다. 우리의 죽음이란 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영원히 풀어놓고 쉬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쉰다는 말은 우리가 누릴 새로운 영적생활을 의미합니다. 쉰다는 말은 우리의 육신이 죽어 땅에 묻혀 있는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2) 이런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그들의 하는 일이 따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하는 일이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주 안에서 살아온 우리들 생애의 모든 열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땅에서 행한 신앙생활의 열매의 상급이 반드시 따릅니다. 이 상급이 어떤 경우에는 이 세상에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상급은 하늘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성령이 사도 요한에게 들려주신 이 하늘의 음성을 이 말씀 안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우리의 생애 중에 주의 오심을 보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생활에는 큰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시는 가운데 그 나라에 가서 행한 일에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해 71 : 마지막 추수
(계14:14-20)
본문에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두 가지 추수의 계시가 나옵니다. 하나는 익은 곡식의 추수요 다른 하나는 들 포도의 추수입니다. 이 공중휴거와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이 지구가 폭발하여 소멸할 때 그 가운데서 멸절을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신 것입니다. 곡식 추수는 성도들의 마지막 구원의 역사로 성취되는 공중휴거이며 들 포도 추수는 짐승의 표를 받은 온 인류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1. 익은 곡식의 추수
두 가지 추수를 집행하는 집행자가 제각기 다른 존재로 나타나 있습니다. 알곡추수는 인자 같은 이가 친히 낫을 휘둘러 거두시고 들 포도 추수는 낫을 가진 천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1) 본문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알곡추수를 하는 분은 ‘구름 위에 앉으신 분’으로 나와 있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추수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흰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 신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으며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고 했습니다. 이 곡식은 알곡입니다. 왜냐 하면 17절 이하에 나오는 다른 또 하나의 추수가 심판의 추수이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쭉정이 추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이들 곡식은 세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이미 하나님의 예비처에 들어가 후3년 반의 보호를 받아 온 흰옷 입은 무리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무리는 비록 예비처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후3년 반의 대환난 중에 회개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계11:13), 후3년 반의 짐승의 치하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계12:17).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의 대상은 주의 재림 시에 최종적으로 회개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슥12:10;13:8-9,롬11:25-27). 이들은 모두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3) 이처럼 익은 곡식의 추수는 곧 성도들의 공중휴거를 가리킵니다. 성도들의 공중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마24:30절과 31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 들 포도 추수
다음 17절 이하에 이 들 포도 추수에 대한 계시가 나옵니다. 곡식 추수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에서 주님이 친히 하시지만 심판의 대상이 되는 이들 들 포도들에 대한 추수는 다른 천사의 손에 의해 집행하게 하십니다. 이 심판의 두려움과 철저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다’고 했습니다.
(1) 이 들 포도 추수는 바로 ‘일곱 번째 대접심판’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심판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들 포도란 짐승과 그 우상 앞에 경배하여 그 표를 받은 모든 인류들을 가리킵니다. 18절에서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말씀은 계16:16절에서 일곱째 천사를 향하여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라’는 명령과 같은 뜻입니다. 이 명령과 함께 이 땅에는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지진은 사상 미증유의 대지진이라고 했습니다. 계16:18절에서 이 지진에 대하여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지진은 바로 이 지구의 폭발을 의미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2) 큰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1천 6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이 지구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큰 포도주 틀이 되는 것입니다. 이 1천 6백 스다디온이란 숫자에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땅의 수인 4를 제곱하여 (4 × 4) 다시 100으로 곱한 수로 이 수는 온 세상의 심판을 의미해 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을 준비하시기 위해 이 땅위에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시고 그로 온 인류의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서 천년왕국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심판 받을 자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별의 역사로 ‘짐승의 표’가 등장하여 이 표를 받는 자들을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몰살시키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이 두 가지 추수는 이 세상에 반드시 임합니다. 곡식추수로 그의 백성들을 공중 안전한 곳으로 옮기신 후, 이 땅에 들 포도를 추수하는 최종적인 마지막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같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이처럼 소망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할렐루야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15장 (72 - 73)
◆ 밤중소리 02-02 | VIEW : 554
강해 72 : 공중휴거자의 모습(계15:1-4)
강해 73 : 마지막 심판준비(계15:3-8)
강해 72 : 공중휴거자의 모습
(계15:1-4)
공중휴거는 우리에게 큰 흥미를 주면서도 많은 의문점을 던져 주는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공중으로 휴거한다는 말 자체가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과학적 이론으로는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중휴거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중휴거가 없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짐승의 표를 받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인 일곱째 대접심판과 함께 멸망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 사건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1.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공중휴거 자들
2절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유리 바다란 티 없이 맑은 바다를 말합니다. 이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와는 다릅니다(계4:6).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란 바다와 같이 넓은 실제적 바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좌 앞에 그런 바다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이 장소를 하나님의 보좌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장면은 요한이 하늘에 있는 이적으로 본 계시입니다. 이곳은 하늘에 있는 어떤 장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벗어나 이곳에 올라와 있는 살아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장소는 하늘에 있는 어느 장소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천사들에 의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아 휴거로 공중으로 올리우심을 받은 공중휴거 자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휴거장소에 대해서 그 곳이 공중이라고만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밖에는 전혀 모릅니다. 공중이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궁창에는 수많은 별의 군상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광경은 이들이 공중에 있는 어떤 장소(별 중의 하나)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해 줍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라고 했습니다. 그 바다에 불이 섞였다는 말은 지구가 마지막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활화산이 되어 지구전체가 불에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유리처럼 맑은 그 바다에 반사된 것을 표현한 말로 보입니다.
2. 무천년설과 세대주의 종말론의 공중휴거설
공중휴거의 성경적 근거는 살전4:16절과 17절에 있습니다. 공중휴거는 이처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이유로도 상징적으로나 비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그런 방식의 해석을 허락할 수 없는 말씀으로 명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휴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주의자無千年主義者들입니다. 천년왕국을 부인하게 되면 공중휴거가 필요치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중휴거를 지상의 성도들을 하늘의 흰 보좌 심판대로 옮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공중휴거의 시기를 잘못 해석하므로 공중휴거를 오도하고 있는 무리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7년 환난 시대를 교회시대와 구분하고 있습니다. 7년 환난 시대는 교회시대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복기간이라고 말합니다.
7년 환난 전 휴거설에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종말의 징조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모든 사건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7년 환난 전에 휴거 된다면 이 같은 계시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계시를 왜 보여 주셨으며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까?
그뿐 아니라 만약 그들의 주장을 추종한다면 우리는 계시록에 계시된 내용과 같은 사건이 우리 앞에 전개되어도 그 사건을 종말적인 사건으로 인정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휴거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무천년주의 자들의 주장이나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의 7년 환난 전 휴거설에 결코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 두 종류의 주장을 따르면 종말의 계시 자체가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공중휴거의 대상자들은 그 때까지 지상에 살아남아 있는 모든 성도들,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모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 공중휴거가 주님이 재림하실 그 때에 있으며, 그 대상이 택하신 모든 성도들임을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중 휴거의 장소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란 말씀에서 이 지상에서의 도피를 의미해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이 모든 신비스러운 사건들이 하나하나 우리들 눈앞에서 전개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여러분의 생애의 소망을 두시고 그 날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강해 73 : 마지막 심판준비
(계15:3-8)
우리는 요한계시록 14장 끝에서 두 가지 추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알곡추수로서 이 추수는 주 재림과 함께 있을 성도들의 공중휴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추수는 들 포도송이 추수로 이 들 포도송이를 하나님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는 심판인데 이 심판으로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장에 와서 알곡 추수로 수확된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되어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우리는 지난 시간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계시에서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곳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유리 바닷가란 유리 바다의 해변을 말하는데 그 곳에 서서 지구가 불타는 모습이 그 바다 면에 비취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감격은 어떠했으며 그들의 감사는 또 어떠했을 것입니까? 그 곳에 여러분이 서서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합창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노래란 홍해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이 땅에서 모두 공중으로 옮기신 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자들에게 멸망의 불로 멸절시키는 광경을 하늘에 있는 휴거장소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이처럼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엔 모세가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어 홍해를 건넜기 때문에 모세의 노래라고 불렀지만 그 날에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린양의 노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으로 볼 때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넜던 일은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그의 백성들을 공중으로 휴거시키는 일의 하나의 예표였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0:1-10).
(1)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십니다. 그 규모가 감히 우주적이며 인간의 힘으로 능히 미칠 수 없는 크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또한 기이하십니다.
(2) ‘주의 일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의롭다는 말씀은 불의가 전혀 없으시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그의 최종적인 심판도 의롭게 행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그 곳에서 빼내시어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신 일도 의로우신 일인 것입니다.
(3)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이 두렵다는 말은 그의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낸 말입니다.
(4)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는 가사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가 끝나고 있습니다.
2. 마지막 심판 준비
사도 요한은 5절에서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2절에서 4절까지의 계시를 본 후 요한은 또 다른 계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계시에서 요한은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1) ‘증거 장막의 성전’이란 하나님 보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증거 장막이란 말은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하늘의 지성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지성소가 두 번 열리는 것으로 보여 주십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그의 사명을 다 이루시고 ‘다 이뤘다’는 말씀과 함께 지상의 지성소의 장막인 성소 휘장이 찢어지므로 하늘로 옮겨진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 새롭고 산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로 계15장에서 열려지는데 이제는 그 길이 닫히고 일곱 대접심판을 내리는 진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습니다. 일곱 재앙이란 일곱 대접을 쏟을 때에 이 땅에 내려지는 최종적인 심판의 재앙입니다. 이 재앙이 담긴 대접을 차례로 쏟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데 그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성도들이 모두 하늘로 휴거된 즉시 이 땅위에 내려질 것입니다.
(3) 이들 천사들이 네 생물 중 하나로부터 금 대접 일곱을 전달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생물은 네 생물 중 하나인데 이들 네 생물은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권세 있는 영적 피조물들입니다. 이 생물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이 같은 계시를 두려움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진노의 금 대접으로 인해 이제 인류의 심판이 개시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취소할 수도 없습니다. 막다른 최종적인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에 가득 찬 이 연기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해 주는 하나님의 분노 그것입니다. 이 때 대속자의 기도도 끊어지며 그 누구도 새롭고 산길로 열려져 있었던 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74 - 78)
◆ 밤중소리 02-02 | VIEW : 519
강해 74 : 첫째와 둘째 대접심판(계16:1-3)
강해 75 :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심판(계16:4-11)
강해 76 : 여섯째 대접과 주의 재림(계16:12-18)
강해 77 : 일곱째 대접과 공중휴거(계16:17-21)
강해 78 : 일곱째 대접과 지구의 파멸(계16:17-21)
강해 74 : 첫째와 둘째 대접심판
(계16:1-3)
1절 말씀을 보면 하늘의 성전에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계15:5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이 성전으로부터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들 일곱 천사들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계16:1절에 와서 성전으로부터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작되는 것입니다.
1. 첫째대접 심판
하나님의 진노의 금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인 첫째 천사가 이 명령을 따라 그 대접을 땅에 쏟았습니다. 일곱 대접심판은 셋째 화로 인류 역사의 맨 마지막에 이 세상에 최종적으로 쏟아 붓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의 시기는 후3년 반 마지막 시점이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이 자에 의해 마흔 두 달 동안의 후3년 반 통치를 통해서 인류의 분류가 거의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자에 의해 짐승의 표가 전 세계 인류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표는 알곡과 가라지의 분류를 위한 표식으로 이 표를 받은 대상자는 가라지들에게 국한됩니다. 후3년 반 기간이 마감 될 때가 되면 짐승의 표를 받을 사람이 더는 없게 됩니다.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셋째 화인 일곱 대접 심판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1) 첫째 대접을 가진 천사가 ‘그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을 받고 땅에 쏟았습니다. 여기서 땅이란 이 지구의 지면을 말합니다. 그러면 첫째 천사가 땅에 쏟아 부은 첫째대접으로 인하여 이 땅에는 어떤 재앙이 임한 것입니까?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했습니다. 악한 헌데란 사람들이 견뎌내기 힘든 악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대적한 무리에게 일곱 대접 중 첫 번째로 내리시는 심판의 재앙이 이처럼 악하고 독한 헌데입니다.
(2) 이 재앙을 받을 대상이 명시되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그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온 문체를 보면 두 부문의 사람들로 나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대상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받은 짐승의 표의 자리로부터 이 악창이 돋아나 온 몸에 번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악창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만 난다고 했습니다.
2. 둘째대접 심판
둘째 천사가 둘째대접을 바다에 쏟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일곱째 대접 중에 두 번째 대접을 바다에 쏟은 것입니다. 이 지구가 멸망의 심판을 당할 때, 바다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그 두 번째 대접을 바다에 쏟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면 국가 간의 무역이나 수출입 업도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바다를 이용해서 움직였던 모든 일이 일시에 올 스톱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는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으로 그 같은 생명체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은 이미 스바냐에 의해 예언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습1:2-3). ‘바다의 고기’를 인간들과 함께 진멸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인류의 종말에는 이처럼 끔찍스러운 재앙들이 연속 일어납니다.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아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멸망하고 소멸될 때까지 하나님의 손길은 결코 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심판의 표적이 되어 이런 재앙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 후3년 반에 있을 무서운 심판의 재앙에서 벗어나 안전한 보호를 받게 하시려고 1260일간의 회개 기간을 주십니다. 그리고 충성되고 진실한 종들로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어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신부의 단장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어떻게 나타나 그들을 보호하실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처럼 계시된 종말의 심판의 두려움을 바라보고 이 재앙에서 유월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강해 75 :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심판
(계16:4-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 대접 심판 중, 첫째와 둘째 대접 심판에 관한 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일곱째 나팔 사건의 진행이며 이것들은 셋째 화로 이 땅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중에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나팔 사건이 8장에 계시되었고 다섯째, 여섯째 나팔 사건이 9장에, 그리고 일곱째 나팔 사건이 16장에 계시되었는데 이 ‘일곱 째 나팔사건’을 ‘일곱 대접심판’ 또는 ‘셋째 화’로도 불리는 것입니다.
1. 물이 피가 되는 셋째 대접심판
셋째 천사가 명령을 받고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상의 모든 물이 갑자기 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1) 강과 물 근원이란 바닷물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물과 담수淡水를 말합니다. 강은 담수가 바다로 흐르는 마지막 물줄기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물, 바닷물이나 강물이나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두 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2) 아파트 옥상에 설치해 놓은 물탱크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게 되고 정수기를 사용하는 꼭지에서도 피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던 아내가 기겁을 하며 놀랄 것입니다.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우유를 끓이려고 물을 받으려던 엄마가 이게 웬일이냐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이 같은 물의 심판에 대하여 물을 차지한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고 외쳤습니다.
2. 해의 뜨거움으로 태우는 넷째 대접심판
(1) 명령을 받은 네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해가 뜨거운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는 태양에서 평균 1억4.960만Km 떨어져 있는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태양의 크기는 그 직경이 139만Km이며 지구의 부피에 비해 130만 배가량 되는 거대한 물체입니다. 그 태양의 표면 온도가 섭씨 6.000도쯤 된다고 하니 이 거대한 물체의 위력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그 거대한 물체 전체에서 섭씨 6.000도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기가 아니면 지구 안에 있는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한 여름철이 되면 인도 같은 무더운 지방에서는 한 해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의 인명이 무더위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넷째대접을 해에 쏟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이 전부 파괴되어 태양의 직사광선이 그대로 지구로 쏟아질 것입니다. 이 때 생기는 피해도 엄청나게 클 것이란 사실입니다.
(2) 그 누구도 이 같은 태양의 뜨거움 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지상의 모든 물은 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피를 가지고는 수력이건 화력이건 원자력이건 발전소의 기계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거리에는 뜨거운 열기로 사람이 다닐 수 없을 것입니다. 콘크리트 담으로 두텁게 쌓여진 건물 안은 모든 전기시설이 완전히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뜨거운 공기와 열기가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밤에는 온 세상이 캄캄합니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불이 없는 것입니다.
3. 세상에 어두움을 가져 온 다섯째 대접심판
다섯째 천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대접을 가진 천사가 명령에 따라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았습니다.
(1) 짐승의 보좌는 곧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계적인 본부를 말합니다. 우리는 짐승의 보좌가 어느 나라에 펼쳐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단11:45절 말씀을 보면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보좌에 대해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라’고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곳이라면 아마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지중해 어느 지역이 될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 짐승의 보좌가 있는 그 곳에 다섯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나라가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2) 이 같은 재앙은 세상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 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며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대단히 두렵습니다. 인정사정없이 쏟아 퍼부으십니다. 오직 죄인에 대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 그리스도를 떠난 무리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미련한 처녀들로 비유된 성도들도 제때에 회개치 못하면 다섯째 대접 심판까지의 무서운 환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의 말씀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이런 재앙들을 피하고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축복의 메시지로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강해 76 : 여섯째 대접과 주의 재림
(계16:12-18)
오늘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여섯째 대접 심판에 대한 계시를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 대접 심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의 장도 얼마 남지 아니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여섯째 대접심판이 끝나면 이어 곧 일곱째 대접심판이 오며 그것으로 모든 심판이 끝나고 곧 이 땅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유브라데에 쏟는 여섯째 대접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그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되었습니다.
(1) 인류의 역사의 기원도 유브라데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인류의 종말의 역사에도 유브라데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브라데강은 인류의 최종 시대의 결전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것입니다. 유브라데강은 서부 아시아에 있는 가장 긴 강입니다. 그 길이가 무려 2,800Km나 되며 그 발원지는 지금 터키에 있는 알메니아 산맥을 근원지로 하여 도중에 다그라스강과 합류하여 페르샤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곳이 요한계시록에서 왜 두 번의 대 결전장으로 등장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계시록9장에서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는 명령과 함께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이 둘째 화로 불리는 세계의 마지막 핵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2) 우리는 ‘유브라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을 동일한 사건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왜냐 하면 이 전쟁의 발생지가 같은 유브라데 지역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전쟁은 전혀 별개의 전쟁입니다. 전쟁의 발발 시기가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전3년 반기간이 지나고 후3년 반에 들어선 시점에서 일어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후3년 반 마지막 시점에서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두 전쟁은 계시의 진행이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여섯째 나팔에 속한 사건이요 ‘아마겟돈 전쟁’은 일곱째 나팔에 속한 사건입니다. 일곱째 나팔은 일곱 대접을 의미하며 ‘아마겟돈 전쟁’은 이 일곱 대접 가운데 여섯 번째 대접으로 전개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화禍의 순서에서도 ‘유브라데 전쟁’은 둘째 화로 나타난 사건이요 ‘아마겟돈 전쟁’은 셋째 화에 속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두 전쟁은 싸우는 상대가 제각기 틀립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명령과 함께 터지는 세계대전입니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수님과 그의 군대들과 동방에서 모여든 적그리스도의 군사들과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 결과가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그 전쟁의 결과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습니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그 결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전쟁 현장에서 생포되어 산채로 둘째사망에 던져지고 남은 군사들은 모두 죽임을 받아 ‘하나님의 큰 잔치’에 참여하는 새들의 밥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전쟁’은 전쟁 후에도 인류의 역사가 얼마간 계속되어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수중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곧 이어 일곱째 대접이 공기 가운데 쏟아지게 되며 이 대접심판으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3) 이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고 했습니다. 동방의 왕들이란 동양에서 이 전쟁에 참여하는 왕들이 아닙니다. 아마 그 때 유브라데강 유역은 이들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아마겟돈으로 집결하는 일에 중요한 군사 요충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유브라데 강물이 장애가 되어 건너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 계시에서 보여 주는 의미는 아마겟돈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을 것입니다.
(4) 13절에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에 관한 계시가 나옵니다. 이 영은 악령이 부리는 영을 말합니다. 이 영은 이적을 행하는 사탄의 영입니다. 이런 영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2. 주의 재림
이제 모든 요건들이 갖추어졌습니다. 14절에 있는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해 주님의 재림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때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그의 하늘 군대들로 더불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슥14:4).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주동이 되어 열 왕의 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아마겟돈에 나타나시어 그들 군대들과 일전을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생포되어 산채로 둘째 사망에 던져지고 남은 군사들의 시체는 ‘하나님의 큰 잔치’에 초대받은 새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결론 :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때 도적 같이 오십니다. 오늘 저녁에 도적 같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이때까지 깨어 있어 신부의 단장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강해 77 : 일곱째 대접과 공중휴거
(계16:17-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섯 번째 대접심판으로 아마겟돈에 집결한 적그리스도의 군사들과 재림하시는 주님과의 전쟁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은 다시 19장으로 옮겨져 상세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이곳에는 적그리스도가 ‘큰 날의 전쟁’을 위해 자신의 군사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으는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일곱째 대접심판이 내려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긴급조치가 취해지는 놀라운 사건의 모습을 먼저 보고 지나가야 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교회의 공중휴거입니다.
1. 교회의 휴거는 이때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교회의 휴거가 언제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휴거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공중휴거가 7년 환난 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나온 잘못된 신학적 견해입니다.
교회는 전3년 반기간은 통과하지만 후3년 반의 대환난 기간은 거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가 후3년 반의 무서운 재앙에서 어떻게 건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계12:13-1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는 ‘1260일 동안’은 같은 3년 반 기간으로 후3년 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하나님의 교회가 공중에서가 아니라 지상 어느 곳에선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에서 양육(보호)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이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진멸하시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생포하여 둘째 사망에 던져 넣는 심판이 있게 되며 곧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이 지상이 불의 심판으로 초토화焦土化되기 직전, 온 세상에 생존해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한 명의 누락자도 없이 일제히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입니다.
이 공중휴거는 일종의 지상에서의 최종적인 탈출 사건입니다. 만약 이 같은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날에 예수님은 이 같은 교회의 공중휴거를 위해 그의 천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마24:31).
2. 공중휴거 되는 몸은 어떤 몸인가?
우리는 흔히들 공중휴거는 믿지만 그 휴거될 성도들의 몸의 형체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대로의 몸이 아니라 ‘변환된 몸’으로 휴거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은 살전4:17절의 공중 휴거와 고전15:51절의 ‘홀연한 변화’를 서로 같은 사건으로 연결시킨 데서 나온 신학적 착각현상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체가 변화 받은 후, 공중으로 휴거 된다면 공중휴거의 의미가 전혀 없어집니다. 변화란 말은 일종의 부활의 형태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바뀌는 것이 변화입니다. 이 같은 일은 최종적인 부활의 날에 동시에 있게 됩니다. 부활체나 변화체는 이미 구원이 완성된 몸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상 생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영주할 곳은 천년왕국인 것이 아니라 천국인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1) 살전4:17절에 나오는 공중휴거에는 ‘성도들의 변화’란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고전15:51-52절에 나타난 성도들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전혀 별도의 사건입니다. 살전4장에 나오는 휴거는 주의 재림 시에 있을 성도들의 들림 사건이고 고전15장에 나오는 ‘홀연한 변화’는 천년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 우리가 백보좌 심판대로 옮겨질 때, 성도들의 전체적인 부활사건을 언급해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 : 우리의 육체가 변화 받지 않고서도 하나님은 능히 우리의 이 몸을 이대로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암스트롱이란 사람은 벌써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타고 달을 왕복했습니다. 그 우주인들이 변화 받은 후 갔다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주선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변화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의 과학의 힘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우주를 왕복하고 공중궤도를 빙빙 돌고 있거늘 하물며 인류의 최후의 심판의 날, 이 지구가 폭발하여 파멸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수 없다고 여긴다면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다고 할 것입니까?
강해 78 : 일곱째 대접과 지구의 파멸
(계16:17-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째 대접이 공기 가운데 쏟아지는 최종적인 인류의 심판이 임하기 바로 직전에 여섯째 대접심판으로 표현된 아마겟돈 전쟁과 주의 재림의 계시를 보았으며 거의 이와 동시에 교회의 휴거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온전히 안전한 장소로 모두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음 놓고 쏟으실 차례가 되셨습니다. 천사들을 향하여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계14:18).
1. 큰 지진으로 나타난 일곱째 대접
본문에 나오는 ‘큰 지진’은 전대미문의 대 지진을 의미합니다. 지구가 존속해 온 이래 아직까지 없었던 지진입니다.
(1) 이 지진은 ‘이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진이라’고 했습니다. 큰 성이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 거대한 지구가 이 지진으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벧후3:1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6-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한 두 가지 심판을 위해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을 위해서는 물을 예비하시고 인류의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을 위해서는 불을 준비하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 역사의 둘째 날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물을 나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홍수 심판 시에 모두 비로 땅에 쏟으셨습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고 했습니다(창7:11-12). 그런데 벧후3:7절 말씀에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로 심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미 불로 심판하실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2)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결과 ‘만국의 성들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만국의 성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도성都城을 의미합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도, 미국의 워싱턴도, 영국의 런던도, 일본의 도쿄도, 한국의 서울도 모두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도시들,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든 도읍들이 그 날에 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3) ‘각 섬도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섬이란 세계 지도상에 표기된 섬들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바다 위에 돌출된 대륙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 지구 표면의 78%가 바다입니다. 대륙이라고 하는 지면地面은 모두 합해 봐야 22%에 불과한 도서島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각 섬이 없어진다고 한 말씀은 큰 지진으로 이 지구상의 모든 지면이 땅속으로 들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세기에 나오는 지구의 모습처럼 이 땅은 바다 물로 덮여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천년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사65:17).
(4) ‘산악도 간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산악이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산들을 의미합니다.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산이란 땅위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이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면 그 산 역시 지구 표면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2. 하늘에서 내리는 박재
이처럼 땅에서는 사상 초유의 큰 지진으로 지구 자체가 폭발하면서
지구 위의 모든 존재들을 불태우므로 소멸시키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역사상 최대의 우박이 내려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중수가 한 달란트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아마 이 같은 현상은 거의 동시적인 사건으로 진핼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의 무게는 대략 100근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우박 한 개의 무게가 백근 정도라면
그 우박은 하나의 폭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2) 그러나 이 같은 두려운 최종적인 심판 중에도
이 땅위에서 이 심판을 당하며 죽어 가는 인류들은
조금도 회개치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죄악으로 강퍅해진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 심하면 심할수록
회개는 고사하고 오히려 원망과 대적과 훼방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죄로 연단된 악한 마음 때문에 회개할 줄 모르고
재앙의 날에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될까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 이 심판이 이 세상에서 회개하지 못한 죄인들이 겪는 마지막 재앙입니다.
이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인류들은
완전히 파멸되었습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진멸되었습니다. ‘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사람들이 멸절되었습니다.
하늘로 휴거된 성도들 외에는
이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날에 우리 주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그 날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신약[新約]강해 > ◆ 공동서신 · 계시록 강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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