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 공동서신 · 계시록 강해-1

요한 3서 1장 / ◆ 밤중소리

영국신사77 2020. 4. 16. 12:58


요한3서 1장

◆ 밤중소리 02-02 | VIEW : 511

(1) 진리의 증거(요한3서 1:1-8)

(2) 선한 것을 본 받으라(요한3서 1:9-15)


(1) 진리의 증거

(요한3서 1:1-8)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영접함과 내쫓음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요한은 본문 서두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장로란 말은 그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그 해석도 다양합니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의 어른들을 가리켰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자기 지파에서의 높은 위치를 나타냈습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 여러 곳에서 사도들에 대하여 장로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에서는 장로란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치리만을 담당하는 높은 직분자를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치리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는 목사를 또한 장로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사도이기 때문에 아마 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1. 가이오에 대한 축도

요한 사도는 가이오를 향하여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란 표현으로 요한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이오에게 요한이 이런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증거를 형제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 말씀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증거를 교회 형제들이 와서 요한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가이오는 나그네 된 형제들에게 신실한 대접을 해 준 일에 대하여 요한에게 이미 보고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7절에서 복음의 일꾼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영접하는 일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일꾼들을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일에는 상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마10:40절 이하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가이오에게 준 요한의 축도

요한은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했습니다. 그 내용이 2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구원의 삼박자라고 해서 기복적 신앙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이 축원 기도는 분명히 영육간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축원 기도의 서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고 전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먼저 그 영혼이 잘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영혼이 잘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풍성히 받는 일을 말합니다. 가이오는 그의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가이오의 신앙을 인정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가이오는 이런 모범적이며 자랑할 만한 성도였으므로 요한은 그에게 이런 축원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요한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기이오가 경영하는 사업이 번창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뤄질 것을 원했습니다. 이 같은 바람은 양 무리들의 목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범사에 잘된다는 말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될 것을 기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이오를 위한 요한 사도의 기도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고난의 잔을 마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위해 환난의 생애를 걸어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마지막에 나타나는 결실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요한의 간구는 가이오의 육신의 건강을 위해 기원했습니다. ‘강건하기를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요한은 사랑스러운 가이오를 생각하면서 그의 범사에 뿐 아니라 건강에도 강건하기를 위해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병도 모두 나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병도 있습니다.

바울은 가시라고 불리우는 괴로운 병이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응답을 받았을 뿐 병의 고침은 없었습니다. 그 병이 바울에게 유익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결론 : 이 가이오에 대한 간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적용 될 수 있는 기원도 아닙니다. 신앙의 공식인 양 생각하여 영혼이 잘 되면 반드시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해야 되는 것처럼 공식화시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이오처럼 사도 요한으로부터 참으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 축복,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한 요한의 축원 기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요한3서 1:9-15)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끝 인사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사도 요한이 보낸 이 서신을 받는 교회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란 자가 그 교회의 높은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잘못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도의 지시와 권면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교회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우려 할 만한 악행을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요한은 격분하고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자의 악한 것을 본받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디오드레베의 악행

디오드레베란 인물이 교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바 없습니다. 다만 본문에 나온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자기가 가진 교회의 직위를 선한 일에 쓰지 않고 교회를 독단으로 지배하고 악한 방향으로 이끄는 일을 자행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9절에서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사도 요한이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보낸 복음의 일꾼들을 말합니다. 10절에서 이르기를 ‘형제를 접대하지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 도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 복음 사역의 형제들을 그곳에 보내면서 특별히 그 교회의 중진인 디오드레베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잘 접대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이 디오드레베는 접대하는 일조차 거부하고 접대하려는 교인들까지 교회에서 내어쫓는 횡포를 부린 것입니다. 디오드레베의 이런 일은 사도의 권위를 가진 요한을 무시한 행위요 진리를 대적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자의 악한 행동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를 접대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폄론한다는 말은 헬라어의 어의로 허튼 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디오드레베는 사도들의 권위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도 사도 요한이나 아니면 다른 사도에 의해 그 교회에 직분을 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는 이 자에게 동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2.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사도 요한은 11절에서 교회 성도들에게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이란 바로 이 같은 디오드레베와 같은 망령된 행실을 가리킨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의 말과 행실에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본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디오드레베의 이 같은 악한 행실을 본받는 일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이며 파당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12절에서 데메드리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데메드리오가 누구인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데메드리오의 준말로 나타나는 ‘데마’일 것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데마드리오에 대해 그는 뭇 사람에게 증거를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거 받았다는 뜻입니다. 디오드레베와는 달리 사도들을 극진히 영접하고 복음을 전하는 형제들을 대접하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든 성도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증거를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다음에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진리에 증거를 받았다는 말은 그의 한 옳은 행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디오드레베의 악한 행실은 뭇 사람에게도 그리고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악하고 교만함이 그로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독단적인 판단으로 운영하며 자기 임의대로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증거는 우리도 증거 한다고 한 사도 요한의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라고 부르고 있는 대상은 사도들을 가리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한 행실은 사도들에게까지도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행실은 권장할 만한 선행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자신의 신앙 생활의 기준을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에 두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적으로 눈으로 보면서 살아가는 모본의 대상자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같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본받되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자를 본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서신에서 이처럼 디오드레베를 공격하고 그를 악한 자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이 서신을 받는 가이오와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를 받는 믿음의 사람, 데메드리오가 교회의 실권을 쥐고 휘두르는 디오드레베의 핍박이나 공격에 결코 굴복하지 말고 진리를 위해 굳게 싸워야 한다는 격려를 주기 위해 이 서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이토록 급박한 교회 사정을 감안할 때에 그곳에 가서 사도의 권위로 디오드레베를 권징하고 교회의 지도자를 새로 선임하며 바른 지도 체제를 세울 것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13절에서는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평강의 축도로 이 서신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