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내용 목차
1장: 요나의 불순종과 고난
2장: 요나의 기도
3장: 니느웨의 회개
3장: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대답
서론
요나서의 저작 연대는 여로보암 2세(793-753년) 때인 주전 760년경이라고 본다(왕하 14:25). 요나서의 내용이 우화가 아니고 참된 것인가에 대해, 불신앙적인 비평가들은 요나가 앗수르 왕을 니느웨 왕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사마리아 왕’(왕상 21:1), ‘다메섹 왕’(대하 24:23)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니느웨가 큰 성이었다(3:3 원문)는 표현은 니느웨 성이 전부터 큰 성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성의 크기를 ‘3일 길’이라고 말한 것(3:3)도 전도하면서 그 성을 통과하는 데 사흘이 걸린다는 뜻일 것이다. 보통 남자는 3일에 100km를 걸으며 인류 역사상 직경이 100km인 도시는 없었다. 예수께서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일과 니느웨 백성이 회개한 일을 말씀하심으로 요나서의 진실함을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12:40-41,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본서의 주요 내용은 이방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다. 또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의 주권(1:4, 17; 2:9, 10; 3:10; 4:6-8)과 하나님의 긍휼(2:2; 3:10; 4:11)이다.
1장: 요나의 불순종과 고난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船價)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께서는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의 매우 악함을 보시고 요나를 불러 그 성을 쳐서 외치게 하셨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았다. 그는 이방인들의 성읍이 회개하여 멸망하지 않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4:2).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내려갔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알부라잇)나 이탈리아 서쪽 사디니아(Sardinia)섬(아하로니)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으나, 아마 소아시아 동남부 길리기아 다소(요세푸스, 매튜 풀)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앞길에는 하나님의 내리신 징벌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4-6절] 여호와께서 대풍(大風)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크게 일어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여호와께서는 큰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셨고 바다 가운데 폭풍이 크게 일어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풍랑도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우주의 크고 작은 모든 일, 좋고 나쁜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 예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하나님께서 큰바람을 내리신 것은 요나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었고 그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려는 뜻이 있었다.
뱃사공들은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들의 신을 불렀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의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며 또 종교적 존재이다. 환난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다. 이론적 무신론자는 있어도 실제적 무신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큰 폭풍과 풍랑으로 인해 파선의 위험이 있었던 그때에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사람은 범죄할 때에 심령이 어두워지고 무디어진다. 선장은 나아가서 그를 깨웠다. 이런 위험한 때에 잠만 자고 있다니 선장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선장은 일어나 그의 신에게 구원을 간구하라고 그에게 요청하였다.
[7-10절]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알기 어렵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제비뽑기는 그것을 판단하는 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신기한 방법이었다. 그 이방인들이 사용한 제비뽑기는 신기하게도 요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요나는 제비에 뽑혔다. 요나가 그 풍랑의 원인이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이라고 그들에게 고하자 무리는 알고 심히 두려워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는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찾아내셨다. 그는 큰바람을 보내셨고 선장으로 하여금 잠자는 요나를 깨우게 하셨고 제비가 그에게 뽑히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다.
[11-16절]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요나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였으나 바다는 점점 더 거칠게 일어났다. 죄는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 요나는 그 위험한 상황이 자신의 불순종 때문인 줄을 알았으므로 그는 그들에게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들은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였으나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거칠게 일어나므로 할 수 없었고 부득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성난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풍랑까지도 주관하심이 증거되었다. 그 선장과 선원들은 두려워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또 서원을 하였다.
[17절]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三日) 삼야(三夜)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창 22:14). 그는 예비하신 그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시며 큰바람도 물고기도 다스리신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건지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종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냥 죽게 하지 않으셨다. 요나는 삼일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그 후에 요나는 거기에서 살아 나왔다(2:10).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가 되었다(마 12:39-40). 요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같았다. 그는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셈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그의 낯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피하여 도망가는 요나를 찾아내셨다. 그는 바다에 큰바람과 풍랑을 내리셨고 제비가 요나에게 뽑히게 하셨고 그를 바다에 던지게 하셨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삼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사람은 그의 낯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그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불순종에 대해 큰바람과 풍랑으로 징벌하셨고 요나는 그 재앙이 자기 때문인 것을 깨달았으나,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 전까지는 그 바람과 풍랑이 잔잔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대속(代贖)으로 죄씻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징계가 있으면 그것을 달게 받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요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그를 삼키게 하셨다. 그렇지 않으셨다면, 요나는 물에서 죽었을 것이고 물고기 밥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는 하시지만,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긍휼 가운데 그의 종 요나를 건져주셨고 다시 사명을 주셨고 그의 뜻을 다 이루셨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있다.
2장: 요나의 기도
[1-3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스올의 뱃속’은 ‘깊은 바다 속’을 가리켰다. 그는 깊은 바다 속에 던지웠고 큰 물이 그를 둘렀었고 파도와 큰 물결이 그의 위에 넘쳤었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깊은 바다 가운데 던지셨다고 말하며, 또 파도도 ‘주의 파도’라고 말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고백한 것이다.
요나는 그런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었다. 그는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큰 고난을 주신 목적은 요나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신 것이었다. 요나는 회개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셨다. 요나는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요나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부르짖는 그의 자녀들의 기도를 잘 들으신다. 그는 시편 50:15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4-7절]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요나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라고 말한다. 그는 큰 고난 중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고 느꼈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에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만, 하나님에게서 쫓겨나면 슬픔과 곤고함을 맛볼 것이다. 요나는 물이 그의 영혼까지 둘렀으며 깊음이 그를 에웠고 바다풀이 그의 머리를 쌌다고 말한다. 또 그는 산의 뿌리에까지 내려갔고 땅이 그 빗장으로 그를 오래도록 막았고 자신이 구덩이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을 생각했다. 그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 그의 긍휼과 속죄가 있다. 요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또 그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믿음이요 생명의 줄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으로 한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므로 요나는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를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주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회개하는 기도를 잘 들으신다.
[8-9절]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우상숭배자를 가리킨다. 오늘날 그것은 사람을 높이고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중시하는 자를 포함할 것이다. 요나는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다”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라는 원어(카스담)는 ‘그들의 자비’라는 말인데,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를 가리키든지, 혹은 ‘그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가지는 자비’를 뜻할 것이다.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자비를 감사치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은혜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이다(시 50:14). 또 요나는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바다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면서 하나님과 무슨 약속을 한 것 같다. 아마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각오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그 서원을 하나님께 갚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요나는 또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는 원어(라호와)는 ‘여호와께 속한다’는 뜻이다(BDB).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자를 고난에서 건지실 수 있고 건지실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10절]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아마르)[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물고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무엇에게든지 말씀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는 주권자이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실 때에 빛이 생겼다(창 1:3).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권한과 능력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했고(창 18:14), 욥은 하나님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능치 못하심이 없사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하였다(욥 41:2). 가브리엘 천사도 주의 모친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하였다(눅 1:37).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많은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심지어 죽은 자들도 살려주셨다(마 4:23-24; 8:3, 13 등).
하나님의 명령에 그 물고기가 순종하였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친히 다스리신다. 그는 필요하시다면 자연만물에게 무엇을 명령하실 수 있다. 물고기가 순종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인다. 모든 것이 순종할 것이다. 물고기가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얼마나 더 순종해야 하겠는가?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고난 중에 우리가 할 일은 기도뿐이다. 요나는 죽음의 깊은 바다 속에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을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았고 그의 영혼이 피곤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였다.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라도, 설령 우리의 부족 때문에 온 고난 중에라도 회개하고 간구해야 한다.
둘째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9절,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여호와께 속하나이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직면한 고난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이는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우리의 구원과 소망과 참된 위로는 오직 긍휼과 능력의 하나님께 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연만물을 다스리신다. 그는 큰 바람과 풍랑을 일으키셨고(1:4),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1:17),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셨다(2:10).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주권적 통치자이시다. 자연만물도 그 앞에 복종한다. 우리의 생명과 소망과 평안은 하나님께만 있다.
3장: 니느웨 성의 회개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도베르)[명하는]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특별한 계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비인격체나 무인격체가 아니시다. 그는 사람에게 말씀으로 소통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향과 결심을 말씀으로 표현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셨다. 그는 불완전하게 보이는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셔서 그의 완전하고 영원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나타내셨고 전달하셨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한번 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첫 번째 기회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었다. 그러나 징계의 고난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한번 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는 오늘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반복해 말씀하시고 여러 번 기회를 주신다. 그는 오래 참으시며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는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들보다 더 권위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과 의논함이 없이 가감 없이, 권위 있게 선포해야 할 말씀이다.
[3-5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3일 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을 들은 요나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갔다. 큰 고난 후에라도 순종하였으니 다행이었다.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요 3일 길이라고 본문에 표현되었다. 발굴된 니느웨 성은 둘레가 15킬로미터 정도이지만[그러면 직경은 5킬로미터 정도이지만], 그 후 발굴들에 의하면, 니느웨 성에는 많은 외곽지역들이 있었다. 주후 1세기의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니느웨가 그 둘레가 약 96킬로미터인 사각형 도시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삼일 길’이라는 표현은 전도하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어림잡아 말한 표현일 것이다. 요나는 하룻길을 행하면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기의 일 곧 전도하는 일을 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의 선포하는 그 선포 내용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금식을 선포했고, 어른들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굵은 베를 입었다. 바다에 던지웠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요나의 체험은 그들의 회개와 믿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였다. 금식은 비상한 기도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설교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게 하셨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믿었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6-9절]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하나님께](원문)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비록 회개 운동이 백성들 가운데서 시작되었으나, 니느웨 왕은 그 소문을 듣고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다. 정치 지도자들의 불경건과 불의는 나라를 멸망케 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경건과 의는 나라를 평안케 할 것이다. 니느웨 왕과 대신들은 바로 깨닫고 회개하였다. 또 왕은 그 대신과 함께 조서를 내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말하였다. 이방 나라의 왕이지만, 회개를 잘 했고 바른 조서를 잘 내렸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멸망을 피하는 길은 오직 회개하며 죄를 버리는 것뿐이다. 왕의 조서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셔서 그들로 멸망치 않게 하실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세상 나라들은 장망성(將亡城) 즉 멸망할 성과 같다. 정치인들이나 백성이나 간에, 진정한 나라 사랑은 무엇인가? 경제 부흥인가? 교육 개혁인가? 문화 진흥인가?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도덕적 각성이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절]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났다. 비록 그들의 회개가 불완전했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악하고 거짓된 생활에서 떠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선하고 진실한 생활을 구하는 길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교만하고 악한 자들을 미워하시고 재앙을 내리시지만, 회개하며 통회하는 자들을 감찰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그는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하였고(시 51:17), 하나님께서는,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사 66:2).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보셨고 기도를 들으셨고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하리라고 선언되었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라”고 말했다(애 3:33).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세상을 심판하고 죄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함이셨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17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멸망을 선언하라고 명령을 하셨듯이, 그는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사도행전 17:30,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회개와 믿음은 사도 바울의 전도 내용의 요점이었다(행 20:21).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거나 가감(加減)하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하룻길을 행하며 40일 후 니느웨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외쳤다. 모세는 율법을 가감하지 말라고 강조하였다(신 4:3). 신약성경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로 끝난다(계 22:18-1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믿고 전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는 길은 회개밖에 없다. 니느웨 성의 왕과 백성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는 길은 회개밖에 없다.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4장: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대답
[1-4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한 징벌의 뜻을 변하셨기 때문에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 그는 성낸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불평하고 항의하는 기도이었다. 요나는 고국에 있을 때 그들이 혹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리라는 것을 예측하였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로 도망하였었다. 그는 이방 도시 니느웨의 구원을 원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시고 이방 나라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편협한 선민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나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두 번째로 십계명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갔을 때 여호와께서는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그와 함께 거기 서셔서 자신의 이름을 반포하셨다. 그는 모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기를,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仁慈)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仁慈)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34:1-7).
요나는 하나님께 말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그는 죽기를 소원할 정도로 자기 생각이 너무 강했다. 여호와께서는 요나에게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다(사 55:9). 사람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스럽게 대항하며 말하는 것을 옳지 않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거대한 배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겸손히 순종했고 묵묵히 인내하며 그 배를 완성하였다. 그의 아내도, 세 아들들도 그의 순종의 행위에 불평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였다고 보인다. 창세기 6:22는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증거하였다.
아브라함도 그의 나이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겠지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겸손히 순종하였다고 보인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함께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3일 길을 갔고 그곳에서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창 22:1-10).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의 순종 행위에 묵묵히 순응하였다고 보인다.
[5-9절]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쉴 곳]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키카욘)[아주까리 즉 피마자유 나무(castor oil plant) 혹은 호리병박(bottle gourd) 혹은 덩굴 식물(vine)(NIV)](BDB)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昏困)하여(알라프)[몹시 쇠약하여, 기절하여](BDB, NASB, NIV)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요나는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쉴 곳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성을 용서하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 등을 준비하셨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요나에게 교훈을 주셨다. 그는 박 넝쿨 교훈을 주신 것이다. 자연만물과 우리의 현실의 환경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는 도구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성냄이 합당치 않음을 깨우치고 교훈하기를 원하셨다.
[10-1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는 박 넝쿨이 벌레에 물려 죽은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화를 내었지만, 그 박 넝쿨은 요나가 심은 것도 아니고 기른 것도 아니었다. 또 그것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은 식물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니느웨 성의 백성들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기르신 자들이다. 더욱이, 그 성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12만여 명이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많은 육축들도 언급하셨다. 그는 가축들도 아끼셨다. 그러므로 요나가 박 넝쿨을 아꼈다면,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아끼신 것은 더욱 합당한 일이었다.
요나서는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는 하나님의 추궁적 질문으로 끝났다. 요나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합당하나이다”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니느웨 성 용서는 합당하였다. 요나의 불평과 성냄은 정당하지 않았다. 요나는 고난 후 하나님의 명령에는 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요나는 그 생각도 고쳐야 했다. 그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대한 그의 뜻을 변경하심에 대해 심히 싫어하며 노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언제나 더 낫고 더 지혜롭고 의롭고 선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불평하지 말고,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우리 자신을 항상 겸손히, 즐거이 복종시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항상 인정해야 한다. 그는 박 넝굴을 준비하셨고 벌레를 준비하셨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가 하시는 일들에 대해 묵묵히 인정하고 순복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를 향하신 또 우리를 향하신 긍휼과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방인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셨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놀라운 암시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범죄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해를 악인과 의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마 5:45). 우리는 전도 대상을 제한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전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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