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차례
41장: 성소
42장: 제사장을 위한 방
43장: 번제단
44장: 제사장의 법들
45장: 왕을 위한 법들
46장: 예배의 방식
47장: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48장: 땅 분배
41장: 성소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아일)[기둥]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6척이요 저편 두께도 6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 그 문통(페사크)[문간]의 광(廣)이 10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5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5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40척이요 그 광이 20척이며.
성소의 길이는 40자 즉 약 20미터, 너비는 20자 즉 약 10미터이다.
[3-4절]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內殿)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2척이요 문통[문간의 높이]이 6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廣)이 각기 7척이며 그가 내전(內殿)을 척량하니 장(長)이 20척이요 광이 20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내전(內殿)의 길이는 20자 즉 약 10미터, 너비는 20자 즉 약 10미터이며, 이것이 지성소(至聖所)이었다.
[5-7절] 전의 벽[기둥]을 척량하니 두께가 6척이며 전 삼면(三面)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4척이며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30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워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랫층에서 중층으로 윗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골방 30개는 레위인들의 찬송과 기도의 방이었을 것이다. 역대상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8-11절]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6척인데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 벽 두께는 5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 전 골방 삼면에 광이 20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5척이더라.
전 삼면(三面)의 지대(地臺)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높이는 한 장대 곧 약 3미터이었다. 그 3미터는 안뜰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층계(겔 40:49)의 전체 높이가 된다. 그러면 그 층계는 한 계단이 30센티미터이면 열 개이며, 25센티미터이면 열두 개이었을 것이다.
[12-20절] 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70척이요 장이 90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5척이더라. 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100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100척이요 전 전면의 광이 100척이요 그 앞 동향(東向)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그가 뒷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100척이더라. 내전과 외전(外殿)과 그 뜰의 현관과 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문통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성소 서편 즉 뒷편 뜰 뒤에 있는 건물이 있고, 또 성전 안과 현관과 문간의 벽들을 널판으로 가리웠고 그 위에 그룹들과 종려나무 모양을 새겨 있었다.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상징할 것이다(계 7:9). 또 그룹 천사들의 두 얼굴도 상징적이다. 사람의 얼굴은 지혜를 상징하고 어린 사자의 얼굴은 용맹을 상징할 것이다. 그것은 천사들이 지혜롭게, 용맹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21-22절]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곧 나무 제단의 고가 3척이요 장이 2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이것은 분향단이라고 보이며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상징한다.
[23-26절]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14)도 그러하더라.
본문은 성소와 지성소의 접치는 두 문짝에 대해 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골방에서 찬송하며 기도하기를 힘쓰자. 성소와 지성소의 둘레에는 30개의 골방들이 있었다. 그것은 성전 봉사에 수종 드는 레위인들의 찬송과 기도의 골방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늘 찬송하며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에스겔의 환상에 의하면, 바깥세상에서 성전 뜰 즉 바깥뜰로 들어갈 때 일곱 층계가 있었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갈 때 여덟 층계가 있었으며, 안뜰에서 성소로 들어갈 때 열 개 내지 열두 개의 층계가 있었다(겔 40:49; 41:8). 우리는 천성을 바라보며 올라가자. 우리는 하나님 중심, 천국 중심, 내세(來世)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지혜와 용맹, 기쁨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문과 문간과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의 널판들에 새겨진 그룹 천사들은 사람과 어린 사자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지혜와 용맹을 상징할 것이다. 또 문과 문간과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의 널판들에 새겨진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용감한 전사들이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 때문에, 구원 때문에, 천국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확신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42장: 제사장을 위한 방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장(長)이 100척이요 광(廣)이 50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한 방에 이르렀다. ‘두 방’이라는 원어(리쉬카)는 ‘방’이라는 단수명사이다. 그 방은 ‘골방 앞뜰,’ 원문에는 ‘거룩한 곳’ 즉 안뜰 건너편과 북으로 향한 건물 건너편에 있었다.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100자, 즉 약 50미터이며 너비는 쉰 자, 즉 약 25미터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다.
[3-5절]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20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廣)이 10척이요 장(長)이 100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
그 방은 삼층으로 되었고 각층에 툇마루(아티크)[복도](KJV, NASB, NIV)가 있었다. 그 복도는 스무 자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또 박석 깔린 바깥뜰과도 마주 대하였다. 그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가 열 자, 즉 약 5미터이며 길이가 100자, 즉 약 50미터이었다. 문들은 북을 향했다.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았다. 그것은 복도 때문에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 줄어지기 때문이었다.
[6-9절] 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長)이 50척이니 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50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100척이며 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그 방은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기 때문에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졌다. 그 방의 바깥 담 곧 바깥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가 50자, 즉 약 25미터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의 길이는 100자, 즉 약 50미터이었고, 그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었다.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이었다.
[10-12절] 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長廣)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
10-11절의 원문은 “동쪽으로 향한 뜰 맞은편과 건물 맞은편에도 방들이 있는데 그 방들 앞에 길이 있고 그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라고 번역해야 맞을 것이다(KJV, NASB, BDB).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처럼, 1-9절은 북편 뜰의 방에 대해, 또 10-12절은 남편 뜰의 방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번역한 성경도 있다(LXX, NIV).
[13-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至聖物)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 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좌우 골방 뜰’이라는 원문(기즈라)은 ‘구별된 곳’ 즉 구별된 뜰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본문은 앞절에서 말한 북편 방들과 남편 방들의 용도에 대해 말한다. 그 방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제물들을 먹는 곳이며 또 소제물과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두는 곳이다. 그 방들은 거룩한 곳이다. 또한 그 방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을 두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15-20절] 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5백척이라.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5백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천사는 안에 있는 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에스겔을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측량하였다. 그는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며 그 장대로 북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었다. 그가 그 장대로 남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며 그 장대로 서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었다.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와 너비가 500자씩, 즉 약 250미터씩이었다.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본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제물을 먹는 제사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은 예수님 믿는 신자를 제사장이라고 말한다(벧전 2:5, 9).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는 제사장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옷을 항상 깨끗하게 빨고(계 7:14), 또 거룩한 제물을 먹는 제사장처럼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속죄사역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자.
둘째로, 신약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바깥뜰의 사면 담은 길이와 너비가 250미터씩이었다. 그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경건과 도덕성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세속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게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43장: 번제단
[1-5절]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異像)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겔 5장)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겔 1장)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6-9절]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음란, 곧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하나님께서 성전을 멀리 떠나시게 했다. 신약교회도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이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버리실 것이며 그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계 2:5). 신약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밀접히 연합하는 복을 계속 누리려면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거룩해야 한다.
[10-12절]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형상’이라는 원어(토크니스)는 ‘도면’ 즉 성전 구조에 대한 도면이라는 뜻이라고 본다(NASB, NIV).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전한 성전예배와 율법 순종을 요구하셨다.
[13-17절]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16)의 고가 1척이요 그 사면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그 가으로 둘린 턱의 광이 한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랫층[아랫울타리]의 고가 2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이 아랫층 면에서 이층[윗울타리]의 고가 4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그 번제단 윗층[번제단 화로]의 고가 4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번제단 화로]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번제단 화로]의 장이 12척이요 광이 12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아랫층의 장이 14척이요 광이 14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광이 반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을 향하게 할지니라.
14절 이하에서 ‘아랫층’ ‘윗층’의 ‘층’이라는 원어(아자라)는 ‘울타리’ (enclosure, ledge)라는 뜻이다(BDB, KB, NASB, NIV). 또 ‘번제단 윗층’(하르엘)과 ‘번제하는 바닥’(아리엘)이라는 원어는 ‘번제단 화로’라는 뜻이다(BDB, NASB, NIV).
번제단의 밑받침, 낮은 울타리, 높은 울타리, 화로, 뿔을 다 포함하면, 번제단의 전체 높이는 열두 자, 즉 약 6미터이며, 밑받침의 길이와 너비는 열여덟 자 즉 약 9미터이다.17) 이전에 솔론몬 성전의 놋단의 높이는 10규빗, 1규빗을 약 45센티미터로 보면 약 4.5미터이었고 길이와 너비는 20규빗, 약 9미터이었다(대하 4:1).
[18-2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 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네가 그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과 아랫층 네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 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하나님께서는 속죄제물과 피 뿌리는 규례를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이루실 일들이라고 본다.
[22-26절]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물을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케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케 함과 같이 하고 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숫양 하나를 드리되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7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숫양 하나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이와 같이 7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며 봉헌할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물은 ‘흠 없는’ 것들이어야 했다(22, 23, 23, 25절).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물 되심을 예표했다. 제물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무슨 뜻이 있는가? 소금은 음식물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쓰는 재료이다. 그러므로 소제물에 소금을 치는 것이나(레 2:13) 번제물들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과 영속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표현하였다(민 18:19; 대하 13:5). 또 7일 동안 번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는 것은 완전한 속죄제사를 예표하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고(히 10:12)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27절]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8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더라.
‘감사제’라는 원어(솰메켐)는 ‘화목제물들’이라는 뜻이다. 번제물이나 화목제물도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의미가 있으나 또한 각각 성도들의 헌신과 순종과, 교제와 감사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사역을 늘 기억하자. 번제단은 흠 없는 짐승 제물로 7일 동안 정결케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을 예표했다. 히브리서 9:12,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둘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란을 버림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음란 곧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고 그가 그들을 멀리 떠나시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 안에 거하며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을 힘써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지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성전의 도면을 보이시며 그 모든 규례와 법도와 율례를 알게 하시고 지켜 행하게 하셨다(11절).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모든 교훈을 지켜 온전케 되기를 원하신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하며 교제하며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에게 항상 감사의 찬송을 올려야 한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삶이다.
44장: 제사장의 법들
[1-3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東向)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의 동쪽으로 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다. 그것은 안뜰의 동문일 것이다. 3절의 원문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 “왕은 왕으로서 그 안에 앉아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을 것이니라. 그는 그 문 현관길로 들어올 것이며 같은 길로 나갈 것이니라”(NASB)인 것 같다.
[4-6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너는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7-9절] 대저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케 하는 것이 되었으며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성전 안에 데려옴으로 성전을 더럽혔었다. 그러나 이제 회복된 시대에는 그들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할례, 특별히 ‘마음과 몸의 할례’는 분명히 심령의 새로움, 즉 중생(重生)을 가리킬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교회의 참 교인이 될 수 없다.
[10-14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 들어 전문(殿門)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 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 들게 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 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이전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부패하여 하나님과 멀어졌으나 이제 그들이 새로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새롭게 하여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실 것이다.
[15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독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으로서 다윗 왕 때에 압살롬의 반란 때에는 다윗에게 충성하였고(삼하 15장), 아도니야의 반란 때에는 솔로몬에게 충성하였다(왕상 1장).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끝까지 충성한 인물이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들을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장들로 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자들에게 자자손손의 복을 내리실 것이다.
[16-20절]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 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 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 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케 할까 함이니라.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이 지킬 규례들을 말씀하셨다.
첫째로, 그들은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였다. 그들은 성전 봉사 때에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고 또 가는 베로 만든 관을 쓰고 가는 베 바지를 입어야 했다. 그 옷은 성전 봉사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바깥뜰로 나갈 때는 다른 옷, 즉 평상적인 옷을 입어야 했다.
둘째로, 그들은 머리털을 밀지도 말고 그것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것을 적당하게 깎기만 해야 했다. 그것은 단정한 모양이다.
[21-24절]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
셋째로, 그들은 안뜰에 들어갈 때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은 취하여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넷째로, 그들은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어야 했다. 그것은 결혼에서도 제사장 직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함었다고 본다.
다섯째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해야 했다.
여섯째로, 그들은 백성의 분쟁의 일들을 재판하되 하나님의 규례대로 재판해야 했다. 그들은 공의의 판단자가 되어야 했다.
일곱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정한 절기들에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하며 하나님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했다.
[25-27절] 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7일을 더 지낼 것이요 성소에 수종 들려 하여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덟째로, 그들은 시체를 가까이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 단지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않은 자매를 위해서는 그런 일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자신을 정결케 한 후 7일을 더 지낸 후에 성소에 수종 들 것이며 그때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것은 제사장의 특별한 정결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본다.
[28-31절]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소유]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소유]이 됨이니라.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레쉬스 תי������א������)[처음 것]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
제사장이 지킬 규례들을 말씀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기업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산업(분깃, 소유) 즉 농사할 토지나 양이나 소를 기를 농장을 얻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시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들을 그들의 소유로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득의 십일조는 레위인들에게 주게 하셨고 레위인들의 소득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에게 주게 하셨다(민 18장). 그것은 ‘처음 것’ (KJV, NASB)이었다. 민수기 18:28-32는 그 십일조들을 ‘아름다운 것’ (켈렙)[가장 좋은 것](KJV, NASB, NIV)이라고 표현하였다.
선지자 에스겔이 본 내용들은 일차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신약 성도들이 누리는 복을 나타내지만, 또한 신약 성도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성전에는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마음과 몸의 할례는 중생을 가리킨다고 본다. 신약교회의 참된 교인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다(요 3:5; 딛 3:4-5). 우리는 중생한 자들, 곧 참 회개와 믿음을 소유한 자들로 교회를 세워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충성된 사독의 자손이 되어야 한다. 맡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셋째로,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은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성별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해야 했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결혼에도 품위를 지키고 성속(聖俗)과 정결, 부정결을 구별해야 했다. 그들은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고 시체로라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거룩함과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신약 성도들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 .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기업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시편 73편의 저자처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해야 한다(시 73:25-26). 히브리서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45장: 왕을 위한 법들
[1-2절]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장(長)은 2만 5천척[약 12.5킬로미터]이요 광(廣)은 1만척[약 5킬로미터]이라.18)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장이 5백척[약 250미터]이요 광이 5백척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 외에 사면 50척[약 25미터]으로 뜰이 되게 하되.
[3-6절] 이 척량한 중에서 장 2만 5천척과 광 1만척을 척량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그 땅의 거룩한 구역이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서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에게 돌려 그 집을 위하여 있는 곳이 되게 하며 성소를 위하여 있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 또 장 2만 5천척과 광 1만척을 척량하여 전에서 수종 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산업을 삼아 촌 20을 세우게 하고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광 5천척과 장 2만 5천척을 척량하여 성읍의 기지를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길이 25,000자, 약 12.5킬로미터, 너비 10,000자, 약 5킬로미터의 땅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위해 길이 500자, 약 250미터, 너비 500자, 약 250미터의 정사각형 땅을 구별하여 지극히 거룩한 땅을 삼고, 그 나머지는 제사장들의 거주지로 삼게 하였다. 또 그만큼의 땅, 즉 길이 25,000자, 너비 10,000자의 땅을 레위인들에게 주고, 또 너비 5,000자, 약 2.5킬로미터의 땅을 구별하여 이스라엘 온 족속을 위한 성읍(아마 수도인 새 예루살렘 성)을 삼게 하였다.
[7-8절] 드린 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바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하여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하여 동편 국경까지니 그 장이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이 땅으로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중에 기업을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줄지니라.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구역(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해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해 동편 국경까지 돌릴 것이며, 그 길이(남북의 길이)는 구역 하나와 서로 같았다. 그 나머지 땅--이렇게 구별된 땅들의 북쪽과 남쪽의 땅들--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주게 했다.
[9-12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히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호멜 10분지 1을 담게 하고 에바도 호멜 10분지 1을 담게 할 것이며 세겔은 20게라니 20세겔과 25세겔과 15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치리자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의 요점을 말씀하셨다. 그는 권력자들이 행하기 쉬운 강포와 겁탈과 토색(강제로 빼앗는 것)을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라고 강조하셨다. 저울은 무게를 다는 용도에 쓰였고, 에바와 밧은 부피를 재는 단위이었다. 밀가루는 에바로, 기름은 밧으로 재었는데, 에바와 밧은 부피가 같고, 1에바는 약 22리터이었다. 세겔은 무게의 단위로서 약 10그램이었다. 한 세겔은 20게라이었고, 한 마네는 60세겔이었다.
[13-15절] 너희의 마땅히 드릴 예물이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6분지 1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6분지 1을 드리며 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10분지 1을 드릴지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10밧 곧 한 호멜이며 (10밧은 한 호멜이라.) 또 이스라엘 윤택한 초장의 떼 2백 마리에서는 한 어린양을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을 삼을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곡식(밀과 보리)은 60분의 1을, 기름은 100분의 1을, 그리고 양은 200분의 1을 예물로 드려야 하였고, 그들은 이것들로 하나님께 소제와 번제와 화목제 등을 드려야 하였다.
[16-17절] 이 땅 모든 백성은 이 예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지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화목제물]을 갖출지니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예물은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그 예물들을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들에 번제와 소제와 전제와 속죄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였다.
[18-2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정월 초 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殿) 문설주와 제단 아랫층[윗울타리]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 그 달 7일에도 모든 그릇 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를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전(殿)을 속죄할지니라.
그들은 정월 초하룻날 성소를 위해 속죄함으로 정결케 해야 했다. 제사장은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해 성전 문설주와 제단 윗울타리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르며 그 달 7일에도 부지중에 범죄한 모든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그렇게 하여 성전을 속죄해야 했다.
[21-25절] 정월 14일에는 유월절 곧 7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또 절기 7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갖추되 곧 7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약 4리터)씩이며 7월 15일 절기 7일 동안에도 이대로 행하여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7일간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해 송아지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며 또 절기 7일 동안 여호와를 위해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번제를 드리며 또 매일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소제로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 밀가루 한 에바에 기름 한 힌씩을 드려야 했다. 또 그는 7월 15일에도 7일 동안 하나님께 속죄제와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분배를 지시하실 때 먼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을 구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세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둘째로, 우리는 교회 가까이에 거하며 복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왕은 구별된 땅 동서쪽에 거해야 했다. 성전 가까이에 거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오늘날도 교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말씀의 교훈을 받는 것은 복이다. 시편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셋째로, 우리는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왕은 강포와 겁탈과 토색을 버리고 공의를 행해야 했다. 우리는 성경에 교훈된 대로 바르고 선하게 살고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왕과 백성은 절기와 제사의 법을 지켜야 했다. 구약의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다(골 2:16-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속죄사역을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에 근거하여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며 그를 섬기며 그와 늘 교제해야 한다.
46장: 예배의 방식
[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6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매월 초하루)에도 열고 왕은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벽(메주자)[문기둥](gate-post)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미프탄)[아마 ‘문 복도’](threshold)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페사크)[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양 여섯과 흠 없는 숫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약 4리터]씩이니라.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과 숫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왕이 올 때에는 이 문(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왕은 안식일과 월삭에 성전의 안뜰 동쪽 문 복도에서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또 백성들은 그 문 입구에서 경배해야 했다고 보인다.
[9-11절]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모든 정한 절기에 백성은 북문으로 들어와 남문을 나가거나 남문으로 들어와 북문으로 나가야 했고 들어온 문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다. 왕도 무리 가운데 있어서 함께 들어오고 나가야 하였다. 이 법은 질서 있게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를 명하신 것 같다(고전 14:33, 40).
[12-15절] 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6분지 1과 기름 힌 3분지 1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이와 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갖추어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을지니라.
왕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릴 때는 안식일 때와 같이 했다. 또 왕은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하나로 번제와 거기에 따른 소제를 여호와께 드려야 하였다. 왕은 매일 아침마다 번제와 소제로 하나님을 섬기므로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에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16-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왕이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왕이 만일 그 기업으로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왕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니라.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왕의 기업은 아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이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주면, 그것은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 즉 자유의 해(원문)까지 이르고 그 후에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또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해 그 주인을 그 소유지에서 쫓아내서는 안 되며 자기 소유지에서만 자기 아들에게 기업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왕의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이 그 소유지를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하였다.
[19-20절]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곁 통행구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북향한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편에 한 처소가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에스겔은 이끌림을 받아 문곁 통행구로 말미암아 안뜰의 제사장들의 북향한 거룩한 방(겔 42:1-14)에 들어갔는데, 그 방 뒤 서편에 한 곳이 있었다. 이 방은 제사장들을 위한 방이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속건제와 속죄제 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굽는 곳이었다.
[21-24절]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로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뜰 네 구석에 있는 그 뜰에 담이 둘렸으니 뜰의 장이 40척[약 20미터]이요 광이 30척[약 15미터]이라. 구석의 네 뜰이 한 척수며 그 작은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전에 수종 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
바깥뜰 네 구석에는 작은 뜰들이 있고 그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성전에 수종 드는 자들이 백성들의 제물을 삶는 부엌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절기들에 대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대해 보인다. 골로새서 2:16-17,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또 구약의 절기들은 부수적으로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 안에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로, 제사들에 대한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성도의 삶을 예표한다. 번제는 속죄와 온전한 헌신을 교훈하는 뜻이 있고, 소제는 온전한 순종의 뜻이 있다고 본다. 기름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7장: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이것은 역사상 문자적으로 성취될 일이 아니고 신약교회를 상징하는 예언이라고 본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메시아 시대 전반에 대한 내용이 그러하다. 그러면 여기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복음 운동, 즉 구원 운동을 가리킨다고 본다(요 4:14; 7:37-38). 복음운동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다(눅 24:47).
[3-5절]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1천척(약 500킬로미터)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1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1,000자씩 네 번(약 2,000킬로미터)이나 측량하고 마침내 건널 수 없는 강이 된 것은 복음 운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지리적으로 점점 확장되다가 마침내 온 세상에 충만해질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의 일이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사 11:9). 다니엘 2:34-35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채석된 돌이 금 신상을 부숨으로 그것이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예언하였다. 이것은 다 신약교회 시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6-12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 물은 강을 이루어 사해로 흘러 들어갔다. 엔게디와 에네글라임은 사해 중부 서해안에 있다.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았다. 그 나무들은 달마다 새 실과를 맺고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될 것이다. 또 그 강물이 사해에 들어가서 그 죽음의 바다를 회복시킴으로써 사해에 고기들이 심히 많을 것이다. 강 좌우편의 나무들이나 사해의 고기들은 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신약시대에 구원받을 자들의 수는 심히 많을 것이다. 또 그들은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일 것이다. 복음 운동은 소금의 바다, 즉 죽음의 바다와 같은 멸망할 세상에 생명의 변화를 줄 것이다.
그러나 회복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진펄과 개펄은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형식적으로만 접촉하고 참으로 그 은혜를 받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신약교회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가라지, 쭉정이, 쓴 뿌리라고 부른다.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가 그러했고,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러했고,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 이단들이 그러했다. 믿음에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딤전 1:20), 바울을 배신한 부겔로와 허모게네(딤후 1:15), 이단을 전파했던 후메내오와 빌레도(딤후 2:17), 바울을 심히 대적했던 구리장색 알렉산더(딤후 4:14), 교회 안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주의 종들을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대접하려는 자를 금하고 교회에서 내쫓았던 디오드레베(요삼 9) 같은 이들이 그러하다. 히브리서 12:15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교훈하였다.
[13-2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 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 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고 요셉에게는 두 분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북쪽은 대해 즉 지중해에서 다메섹 경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이며 그 경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경계에 미쳤다. 동쪽은 북쪽으로는 하우란과 다메섹으로부터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며 북편 경계에서부터 동해 즉 사해까지이다. 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 즉 지중해에 이른다. 서쪽은 대해 즉 지중해이다. 이것이 동서남북의 경계이다.
[21-23절]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 가운데서 함께 기업을 얻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암시한다. 신약시대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온 세상에 충만히 전파될 것이다. 누가복음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결과이며 그 도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해야 한다.
둘째로, 구원 운동은 갈수록 충만케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 1:23). 이것은 개인적으로, 지리적으로, 시대적으로 그러하다(엡 4:13; 롬 11:25-26).
셋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 기대된다. 그들은 좋은 물고기와 좋은 나무의 열매처럼,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신약 성도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넷째로, 그러나 우리는 진펄과 개펄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중생치 못한 형식적 교인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48장: 땅 분배
[1-7절]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 같을지니라. 극북(極北)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다시 땅 분배를 받을 것이다. 땅의 경계는 47:15-20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맨 북쪽에서부터 단과 아셀과 납달리와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르우벤과 유다의 순으로 일곱 지파는 땅을 획일적으로 분배받을 것이다. 그 순서나 크기는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정복 후 분배받은 것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때와 같이 이번에도 그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땅을 분배받을 것이다(47:22; 48:29).
[8-12절]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2만 5천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1만척이라.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편으로 장이 2만 5천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1만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1만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2만 5천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
유다 지파의 땅 다음으로 동서 전체와 남쪽으로 25,000자, 약 12.5킬로미터의 땅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해 드릴 땅이다. 그 땅은 그 중앙에 성소가 있을 거룩한 땅이다. 8절,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10절,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그 거룩한 땅은 동서로도 25,000자, 약 12.5킬로미터이었고, 남북으로도 25,000자, 약 12.5킬로미터인 네모 반듯한 땅이다(48:20).
그 땅은 남북 방향으로 셋으로 구분되는데, 중간은 제사장 사독에게 돌려진 땅이며, 북쪽의 것은 레위인들의 땅이며, 남쪽의 것은 성이 중앙에 있을 땅이라고 보인다. 그 셋은 동서의 길이는 25,000자, 약 12.5킬로미터로 동일하지만, 남북의 길이는 제사장의 땅은 10,000자, 약 5킬로미터이며, 레위인의 땅도 10,000자, 약 5킬로미터이며, 성의 땅은 5,000자, 약 2.5킬로미터이다.
[13-14절]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1만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각기 1만척이라.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이 레위인들의 땅은 제사장들의 땅보다 북쪽에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의 땅에 있는 성소가 그 구별된 전체 땅의 중앙에 있다고 표현되기 때문이다(8, 10절). 레위인들은 이 땅을 팔거나 바꾸지 말고 또 그 땅의 첫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말아야 했다.
[15-20절] 이 2만 5천척 다음으로 광 5천척은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그 척수는 북편도 4천 5백척이요 남편도 4천 5백척이요 동편도 4천 5백척이요 서편도 4천 5백척이며 그 성의 들은 북으로 2백 5십척이요 남으로 2백 5십척이요 동으로 2백 5십척이요 서으로 2백 5십척이며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장이 동으로 1만척이요 서으로 1만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그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는 그 땅을 기경할지니라.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도합은 장도 2만 5천척이요 광도 2만 5천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이 땅은 제사장들의 땅의 남쪽에 있고 남북으로 5,000자, 약 2.5킬로미터 길이의 땅일 것이다. 그것은 위의 두 땅과 비교하여 세속적인 땅이다. 거기에는 성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마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릴 성이다. 그 크기는 동서남북의 길이가 각각 4,500자, 약 2.25킬로미터이며, 성밖에 동서남북의 들이 각각 250자, 약 125미터이다. 그러면 예물로 드리는 땅 전체는 길이와 너비가 25,000자씩이다.
[21-22절]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2만 5천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2만 5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그런즉 왕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거룩히 구별할 땅 즉 제사장들의 땅과 레위인들의 땅과,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 것이다. 그것은 동쪽으로 남북의 길이 25,000자, 약 12.5킬로미터로 요단강까지이며, 또 서쪽으로 역시 남북의 길이 25,000자, 약 12.5킬로미터로 대해(大海), 즉 지중해까지이다. 거룩히 구별된 땅의 동서로 두 개의 땅이 왕에게 돌려지는 땅이다.
[23-29절]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 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분깃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나머지의 땅, 즉 거룩히 구별된 땅과 왕의 땅의 남쪽에 남은 땅은 베냐민과 시므온과 잇사갈과 스불론과 갓 지파의 순으로 나머지 다섯 지파에게 분배될 것이다. 그것들은 다 제비뽑아 분배될 것이다.
[30-35절]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4천 5백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편의 광이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편의 광이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편도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그 사면의 도합이 1만 8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본문은 성읍에 대해 언급한다.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릴 그 성의 출입구는 동서남북에 각각 셋씩 있으며, 그 문 이름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따를 것이다. 그 성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동서남북의 길이가 4,500자, 약 2.25킬로미터로 동일하다. 본문은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고 말한다. ‘여호와 삼마’라는 원어(예호와 솸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 함께 계실 것이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 나라는 모든 지파가 골고루 땅을 분배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것은 장차 신약교회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의 기업을 동일하게 이어받을 것이다. 요한복음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베드로전서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천국은 우리 모두의 기업이다.
둘째로, 땅 분배가 성소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회복될 새 세계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것을 보인다. 또 그런 삶에 참 평안이 있다. 성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성경 읽고 기도하며 살고 하나님 중심, 성경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르고 복된 삶이며, 거기에 참된 평안이 있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늘 그를 찬송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독 자손 제사장들을 인정하셨다. 사독 자손 제사장들은 그 직분을 지켰으며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그들은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다. 제사장 사독은 다윗 왕을 위해 끝까지 충성한 인물이었다(삼하 15:24-29; 왕상 1:7-9).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충성한 자와 그 자손들을 복 주실 것이다. 충성된 종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칭찬과 상을 받을 것이다(마 25:14-23). 우리가 주를 위해 수고하는 일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고전 15:58).
넷째로, 회복될 새 예루살렘 성은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이 성은 신약교회와 장차 임할 영광의 천국을 상징한다. 물론, 요한계시록 21-22장에 예언된 새 예루살렘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1만 2천 스다디온, 약 2,210킬로미터나 되는 성으로 본문의 성보다 1,000배나 더 크고 높은 빌딩 같은 성으로 묘사되었다. 신약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여호와 삼마’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과 새 예루살렘 성에서 우리는 더 영광스럽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복을 누리는 영생의 삶을 살 것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죄가 없고 따라서 눈물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미주
1) 제롬은 유다 왕 요시야가 율법을 발견하고 개혁을 일으킨 해(주전 622년경)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칼빈은 유다의 마지막 희년으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카일은 갈대아 나라의 설립 때(아마 주전 625년경)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헹스텐버그는 단순히 그의 나이로 보았다.
2) 2:5, 6, 7, 8; 3:9, 26, 27; 12:2, 2, 3, 9, 25; 17:12; 24:3; 44:6.
3) 에스겔서에는 ‘안다’는 말(야다)이 98회나 나오며 본장에도 ‘나를 여호와인 줄 안다’는 말이 4번 나온다(7, 10, 13, 14절).
4) 쓰여진 원문(K) 로 바흐는 ‘그 일에 대해 그에게’(NASB)라는 뜻이며 제안된 원문(Q) 로 바는 ‘오는 그에게’(KJV)라는 뜻이다.
5)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라는 원문은 “나에 관해 그에게 묻고자 하여”(KJV)라는 뜻일 것이다.
6) 에스겔서에만 16번이나 나온다. 5:11; 14:16, 18, 20; 16:48; 17:16, 19; 18:3; 20:3, 31, 33; 33:11, 27; 34:8; 35:6, 11.
7) ‘두려워한다’는 원어(와이르에)는 ‘본다, 관찰한다, 생각한다’는 뜻이다(KJV, NASB, NIV). 고대 헬라어 70인역이나 어떤 옛 라틴어역, 및 라틴어 벌겟역 등은 와이라(두려워한다)라고 읽는다.
8) ‘궁실들’이라는 번역은 아람어 탈굼역을 따른 것이다(BH, BDB).
9) 에스겔서에는 그 사로잡힌 때로부터의 연도가 13번 나온다. 1:2; 8:1; 20:1; 24:1; 26:1; 29:1, 17; 30:20; 31:1; 32:1, 17; 33:21; 40:1.
10)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바트 아슈림(‘앗수르 사람들의 딸’[KJV])이라고 되어 있지만, 고대의 주요 역본들(Vg, Targ.)은 비트아슈림 ‘회양목으로’)이라고 읽는다(Gesenius, BDB, NASB).
11) 엘 이나 알 이라는 전치사가 사용되었다. 엘 이 9번 사용되었고(13:8; 21:3; 26:3; 29:10; 30:22; 34:10; 35:3; 38:3; 39:1), 알이 4번 사용되었다(5:8; 26:3; 28:22; 29:3). 영어로는 보통 against라고 번역되었다.
12) 탄닌이 정자(正字)이지만, 두 말이 통용하여 쓰인 것 같음.
13) 마소라 학자들은 원문을 ‘나의 두려움’(킷티시)이라고 읽기를 제안하지만(KJV), ‘그의 두려움’(킷티소)이라고 쓰여진 대로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BDB, NASB, NIV).
14) ‘디딤판’(아브)이라는 원어는 건축용어일 것이나 그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다(BDB, KB). 그것은 영어번역에서는 ‘두꺼운 널판’(KJV), ‘문지방’(NASB), ‘돌출부분’(NIV) 등으로 번역되었다.
15) 이 단어의 뜻은 ‘도면(plan)’(NASB, NIV, Langenscheidt 사전) 외에도, 'proportion, measurement'(BDB), '(perfect) example'(KB), 'pattern'(KJV) 등이 제안되었다.
16) 가브는 'higher place'(KJV), 'height'(NIV)로도 번역되지만, 그것보다 ‘밑받침’(basement--BDB, base--NASB)이라는 뜻이 더 나은 것 같다.
17) 에스겔 성전과 그 구조와 기구들에 관해서는, James Hastings, ed. A Dictionary of the Bible, IV, pp. 703-710을 참고하라.
18) 원문에는 ‘자’라는 말이 없지만, 근래의 영어성경들은 그 단위를 ‘자’ (cubit)라고 이해하고 삽입하여 번역하였다(NASB, NIV). 그러나 옛날 영어성경(KJV)은 ‘장대’라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에스겔 40:5에 나온 대로 6자 즉 약 3미터의 장대다. 그 경우에는 길이 2만 5천은 약 75킬로미터가 된다. 유대 땅의 요단강 서쪽의 동서의 길이는 약 90킬로미터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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