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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 21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 39장: 바벨론 사자의 방문

영국신사77 2020. 4. 14. 18:43

제목차례

21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22장: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23장: 두로에 대한 경고

24장: 땅을 심판하심

25장: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26장: 구원의 노래

27장: 이스라엘의 회복

28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29장: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

30장: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은혜

31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32장: 메시아의 통치

33장: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34장: 열국에 대한 심판

35장: 새 세계

36장: 산헤립의 침입

37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38장: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39장: 바벨론 사자의 방문


21장: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1-4절]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왔도다.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주께서 가라사대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내가 그것을 듣자 엎어졌고 그것을 보자 당황하였도다](MT, KJV).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네쉐프 키쉬키)[나의 즐거움의 새벽빛(혹은 저녁빛)](BDB)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본문은 바벨론에 대한 경고이다. ‘해변 광야’는 큰 강 유브라데를 품고 있는 바벨론 땅을 가리킨다. 9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그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바벨론을 침공할 적군들이 광야에서 회리바람같이 몰려올 것이다. 바벨론은 이전에 속이는 자요 약탈하는 자이었으나 이제는 엘람[파사]과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약탈을 당할 것이다. 메대와 파사의 연합군은 들어와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메대 나라와 파사 나라에게 ‘올라가서 바벨론을 치고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실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학대로 인한 모든 사람들의 탄식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대제국 바벨론의 멸망 소식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여인의 출산 고통 같은 큰 고통과 두려움과 떨림을 줄 것이다.

[5-9절]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숫군[파수꾼]을 세우고(차포 핫차피스)[자리를 펴고](BDB, NASB, NIV) 먹고 마시도다.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숫군[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떼와 약대떼를 보거든 자세히, 유심히 들으라 하셨더니 파숫군[파수꾼]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밤이 맟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그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바벨론 군대는 자신들의 군사력만 믿고 안일하게 식탁을 베풀고 먹고 마셨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침략자가 곧 들어올 것이니 그것을 막을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벨론은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메대 파사의 연합군은 전쟁에서 마병대와 나귀떼와 약대떼를 많이 사용하였다. 마침내 파수꾼이 마병대가 온다고 사자같이 부르짖었다. 바벨론 성은 확실히 함락될 것이다. 과거시제로 표현된 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벨론 나라의 멸망의 원인은 죄 때문이었다. 특히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조각한 신상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51:47, 52). 우상숭배의 죄는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다.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그 우상들이 헛된 것들임이 증명될 것이다.

[10절]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노라.

‘너 나의 타작한 것’ ‘나의 마당의 곡식’은 앞에서 예언한 바벨론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소식을 듣고 그의 섭리의 손길을 깨닫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아야 한다.

[11-12절]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숫군[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본문은 두마에 관한 경고이다. 두마는 에돔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에돔 사람들도 지금 밤, 곧 환난 중에, 고난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고난의 밤, 환난의 밤이 언제 지나갈지를 선지자에게 묻는다. 선지자는 아침 곧 환난의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밤도 오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또 다른 환난이 올 것이라는 뜻 같다. 그러나 선지자는 돌아오라고 중요한 말을 선포한다. 중요한 것은, 환난의 남은 기간이 얼마이며 그 끝이 언제인가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는가, 참으로 회개했는가이었다. 환난과 고난의 날은 에돔 백성이 범죄함으로 온다. 회개가 없으면 또 환난이 올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평안한 날을 주실 것이다.

[13-17절]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隊商)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데마 땅의 거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1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이다. 드단 대상(隊商)은 낙타 타고 떼지어 다니는 상인들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멸망할 때에 그들은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피해 수풀 속에 거하며 데마 거민들을 통해 겨우 물과 떡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 여유를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릴 것이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들 중 하나이다. 창세기 25:13-15,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게달 사람들은 양떼를 치는 유목민이었고 비교적 부유한 자들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들도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1년 내에 쇠약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들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강대한 바벨론 나라도 멸망할 것이다. 부요한 드단 대상들도, 게달의 영광도 쇠하여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나라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알지 못하는 세상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들임을 깨닫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엘람(파사)과 메대의 연합군을 불러와 바벨론을 쳐서 멸망케 하실 것이다. 그는 바벨론으로 인해 그에게 올라온 모든 탄식을 그치게 하실 자이시다. 그는 주 곧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주관자이시다. 사탄과 악령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세계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원인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9절). 에돔은 지금 닥친 고난을 모면하는 것보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침이 와도 곧 또 밤이 올 것이다. 인생의 참 행복은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데 있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며 평안과 형통의 길이다.

22장: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1-4절]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내 딸 백성, 유다, 예루살렘, 셉나, 엘리아김, 다윗의 집 등의 말은 본장이 예루살렘에 관한 것임을 보인다(8, 10, 15, 20, 22절). 예루살렘 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異像)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것이다. 그 거민들은 적군들의 침입을 확인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갈 것이다. 떠들며 즐거워하던 쾌락의 성에 멸망의 재앙이 임할 것이다. 성의 거민들과 관원들은 전쟁을 피해 도망쳤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인해 슬피 통곡할 것이며 위로받기를 원치 않는다.

[5-7절] 이상(異像)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엘람 사람은 전통(箭筒)을 졌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들어내었으니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예루살렘 성에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날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며 징벌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산악을 진동시킬 것이다. 선지자는 엘람 사람들과 기르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엘람과 기르는 앗수르 사람들이나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엘람은 티그리스강 하류 동쪽 지역이지만, 기르(왕하 16:9; 암 1:5; 9:7)는 그 위치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침략군의 병사들은 예루살렘의 골짜기에 가득할 것이다.

[8-11절]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덮였던 것’이란 방어 요새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했다(왕하 18:13; 사 36:1). ‘수풀 곳간의 병기’ 즉 ‘삼림의 궁궐의 병기’는 솔로몬이 지은 ‘레바논 삼림의 궁(왕상 7:2)에 있는 병기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삼림의 궁의 병기를 바라본다는 말은 그것들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의 무너진 곳들을 보수하고 저수지도 만드는 등 방어태세를 정비했다. 심지어 가옥들의 일부를 헐어 성벽을 견고케 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점은 성의 수비에만 힘쓰고 이 일을 옛적부터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배해야 한다.

[12-14절]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 앞에서 그들이 통회자복하기를 명하셨으나 그들은 오히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고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육신주의요 쾌락주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성도답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육신주의, 쾌락주의는 사함받지 못하는 큰 죄로 간주되었다.

[15-19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혹은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거기서 네 영광의 수레도 네 주의 집의 수치가 되리라’(MT, KJV)].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유다의 멸망은 왕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부패에도 기인하였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국고(國庫)를 맡고 왕궁을 다스리는 셉나를 책망하신다. 그는 교만하여 임금처럼 자기를 위해 바위에, 높은 곳에 자기의 묘실을 팠다. 그것은 합당치 않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관직에서 쫓아내시며 그의 지위를 낮추시고 그를 붙잡아 포로되게 하실 것이며, 이방 나라에서 죽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20-24절]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아김을 불러 셉나의 관직을 그에게 주고 유다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다. 그는 그의 직책을 견고케 하시며 그로 그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의 친척들이 그로 인해 영광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다. 그는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며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그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25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파쇄되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문은 지금 권세를 누리는 셉나가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아 부러져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짐같이 멸망하게 됨을 말한 것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굳게 믿자.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의 방어에만 급급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섬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자. 우리는 나라의 전쟁과 평안, 사람을 관직에 세움과 쫓아냄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모든 일을 작정하셨고 때가 되어 이루시는 자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알고 믿자.

둘째로, 우리는 육신주의와 쾌락주의를 경계하고 멀리하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선포하셨고 그들에게 통회자복하라고 명하셨으나,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통회자복하기커녕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우리는 이런 육신주의, 쾌락주의를 경계하고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통회자복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징책과 우리의 부족을 깨닫는 데 민감하여 깨닫는 즉시 통회자복해야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만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성경 읽고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고 또 주의 계명대로 의롭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가야 한다.

23장: 두로에 대한 경고

[1-3절]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니라.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운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었도다.

두로에 관한 경고이다.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 국경 너머 지중해 연안의 나라이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나 이탈리아 서쪽 사디니아섬일 것이라는 견해(아하로니)도 있으나, 소아시아 동남부 길리기아 다소로 보는 것이 성경 본문에 가장 맞는 것 같다(요세푸스, 매튜 풀). 그것은 두로와 무역하였던 한 중요 도시이었다. 옛 시대에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사람들이 들어갈 곳도 없기 때문에 그 소식을 깃딤 땅 곧 구브로 섬에서 들은 다시스의 뱃사람들은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두로와 시돈은 애굽의 풍부한 곡물이 거래된 열국의 시장이었다. 오늘날의 중국의 홍콩처럼 각 나라의 상품들이 그 곳에서 거래되었다. 지중해 연안 나라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 때문에 부요함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두로의 멸망은 그들로 할 말을 잃게 하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4-7절]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보장(保障)이 말하기를 나는 구로(劬勞)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 남자들을 양육하지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을 인하여 통도(痛悼)하리로다.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거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바다의 보장(保障)’은 바다에서 견고한 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이 견고한 성 두로가 자녀들을 출산치 못하고 양육지 못하는 자가 됨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두로의 멸망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애굽 사람들도 슬퍼할 것이다. 두로는 고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성이며 ‘희락의 성’ 곧 그 부요와 세력으로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던 성이며 먼 지방까지 세력을 떨쳤던 성이었으나, 이제 그 거민들은 다시스로 도피할 것이며, 또 그로 인해 유여함을 얻었던 지중해 연안의 거민들은 그의 멸망을 인해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8-12절]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商賈)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딸 다시스여, 나일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가라사대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두로를 ‘면류관을 씌우던 자’ 즉 다른 나라들을 부요하고 존귀하게 하였던 자이며 두로와 무역하던 자들이 각 나라의 방백과 귀족들이었음을 말하면서, 그 두로의 멸망이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멀리 떨어져 있던 다시스도 두로에게 속박을 당했었으나 이제 두로의 멸망으로 자유함을 누릴 것이다. 상인이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은 두로 지역을 염두에 둔 말씀이며 ‘그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켰다고 본다. 학대받는 시돈은 두로로 인해 다시는 희락을 누리지 못할 것이며 그 거민들은 깃딤 곧 구브로 섬으로 도피할지라도 거기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13-14절]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그 궁궐들을 헐었으며 그가 그것을 황무케 하셨느니라](원문).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너희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킨다. 13절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사용해 두로를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하지만(재미슨-포셋-브라운, 박윤선),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의 땅을 황폐케 하신 것처럼 두로도 황폐케 하실 것이라는 뜻 같다(매튜 풀).

[15-18절]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같이 70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라. 잊어버린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 70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取利)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두로의 멸망뿐 아니라,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아보실 것이다. 두로는 70년 동안 잊혀져 있다가 다시 회복되어 물질적 유여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물질적 유여는 하나님께 거룩히 드려질 것이며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들의 먹을 양식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초대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는 하나님의 교회가 두로에 세워졌고 그것의 많은 재물이 하나님께 바쳐졌고 전도사역의 후원을 위해 드려졌다는 사실을 증거했다(교회사, 10.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두로는 한때 열국의 시장으로 부요했고 또 ‘바다의 보장,’ ‘희락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견고하고 즐거움이 넘친 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황무케 하셔서 집도 없고 어린 자녀들도 없고 그 거민들이 부끄러워하고 멀리 도피케 하시고 주위의 나라 사람들도 놀라고 슬퍼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일시적이고 헛됨을 알고 그것들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전도서 1:2-3,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요한일서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둘째로, 우리는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8-9절,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두로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 개인의 생사화복도, 국가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 안에 참 평안이 있고 형통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셋째로, 우리는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신 까닭은 두로가 부요와 영광 속에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면 교만해지고 음란과 쾌락주의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자.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24장: 땅을 심판하심

[1-3절]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婢子)와 가모(家母)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꾸어주는] 자와 채용하는[꾸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땅이 온전히 황무해지고 그 거민이 흩어지고 사회의 조직이 다 무너짐으로 혼란해져 높은 자나 낮은 자, 존귀한 자나 비천한 자가 없고 사는 자나 파는 자, 꾸어주는 자나 꾸는 자, 이자를 받는 자나 이자를 내는 자, 다시 말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의 구별이 없어질 것이다. 온 세상이 혼란한 것이다.

[4-6절]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당하였도다. 그러므로](MT, KJV, NASB, NIV)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온 세상이 슬퍼하고 쇠잔해질 것이다. 세상에서 높은 자들도 쇠약해질 것이다. 온 땅은 그 거민들로 인해 더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다. ‘율법’ ‘율례’ ‘영원한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모세 율법과 십계명을 가리키지만,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어주신 양심을 가리킬 것이다. 로마서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그것은 사람에게 주신 행위언약의 반영이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될 것은 그 거민들의 죄악 때문이다. 사람들의 죄가 멸망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악인들은 저주를 받고 정죄를 당하며 멸망을 당할 것이다.

[7-13절]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마치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며 약탈을 당한(토후)[혼란한] 성읍이 훼파되고 집마다 닫히었고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듬[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세상이 황무할 때 사람의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기쁨으로 악기를 타며 노래 부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 부르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때에는 그런 기쁨과 즐거움, 그런 노래와 행복이 없을 것이다. 혼란한 성읍은 훼파되고 집들은 문이 닫혀 있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는 온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14-16절]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공의의 위엄과 영광을 찬송하는 소리가 온 세상에서 들릴 것이다.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공의로운 처분에 대해 영광을 돌리기 때문일 것이다.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송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대환난의 때이며 성도들에게 고난과 핍박도 있는 때이다. 선지자가 말한 ‘궤휼자’는 적그리스도들과 핍박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에 예언된 바와 일치한다. 주께서는 그가 재림주로 오기 직전 온 세상에 전쟁, 기근, 질병, 지진, 적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배교와 핍박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마태복음 24:6-14,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온역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17-20절]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오두막](KJV, NASB, NIV)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일어나지] 못하리라.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구원이 온 땅에 편만한 동시에 환난과 핍박도 많은 시대이다. 세상의 거민들에게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임할 것이며 땅의 기초가 흔들리고 땅이 깨어지고 갈라지고 술취한 자같이, 오두막같이 흔들릴 것이다. 대환난 시대의 한 특징은 지진이다.

[21-23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높은 군대, 즉 악한 천사들인 사탄과 악령들을 벌하실 것이며, 땅의 열국의 왕들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최종적 심판의 날까지 지옥에 갇혀 있다가 마지막 날에 공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또 그때에 해와 달이 빛을 잃을 것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예언과 일치한다(마 24:29; 계 8:12).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자. 온 우주에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며 죄악된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며 마침내 악한 영들과 악인들에게 공의로 형벌, 곧 영원한 지옥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자.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께 욕을 돌리며 그의 진노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죄를 버리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면, 우리는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며 그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거기에 인생의 참 행복이 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각오하자. 신약시대는 환난과 핍박이 있는 시대이다. 주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온 세상은 대환난을 경험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이다.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우리는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며 살자.

25장: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1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로부터 구원하신 일을 가리킬 것이다. 이사야는 그것이 옛날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바이었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말한다.

[2-3절]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

이스라엘 나라를 핍박하는 앗수르 나라나 바벨론 나라의 성읍들을 황폐케 하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무더기가 되게 하시고 황폐케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때 강한 민족들과 포학한 나라들이라도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4-5절]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保障)[방어물]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保障)[방어물]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보장(保障)’이라는 말은 ‘방어물’이라는 뜻이다. ‘빈궁한 자,’ ‘환난 당한 빈핍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폭풍이 성벽에 충돌하듯이 포학자의 기세가 몰려올 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는 폭풍 중의 피난처와 같고 폭양을 피하는 그늘과 같으시다. 낯선 이방 나라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들은 마른 땅에 폭양같이 위협적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그치게 하실 것이며, 뙤약볕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들의 떠드는 소리를 낮추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환경 여건들을 홀로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6-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宴會)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얼굴가리개]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宴會)를 베푸실 것이다. 이 말씀은 세계적인 구원과 회복을 암시한다. ‘이 산에서’라는 말은 ‘예루살렘 산에서’라는 뜻이며, 이것은 신약교회와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만민’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다 포함할 것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의 연회(宴會)는 예수님의 비유들에 자주 등장하는 천국 잔치이며(마 22:2; 눅 13:29; 14:16), 그 잔치는 영적 의미를 가지며 이미 신약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또 신약시대에는 얼굴 가리개와 덮인 휘장이 제거되듯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이 열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고린도후서 4:3-4, 6,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주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장차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복을 보인다. 천국은 만유의 회복이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계시록 21:4-5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말한다.

[9-12절]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거름더미] 속의 초개[지푸라기]의 밟힘같이 자기 처소에서(타크타우)[그 아래서](KJV, NIV)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만민을 위해 연회(宴會)를 베푸시는 그 날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즉 이 세상의 회복을 기다리며 기다렸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이루어졌고 그들은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압은 거름더미 속의 지푸라기같이 밟히게 될 것이다. 모압은 세상 나라의 한 예로 언급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들을 멸망시키시며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함을 파하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 사역을 찬송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각 나라, 각 민족, 각 방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이다. 세상의 나라들은 마침내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이제 신약 성도들은 이 세상의 나라들에서 지옥갈 죄인들로 살다가 구원받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온 것을(골 1:13; 벧전 2:9)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심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폭풍 중에 피난처이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시다(4절). 환난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와 그늘이 되신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굳게 믿고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감사하며 기뻐하자. 천국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같다(마 22:2). 신약교회는 이미 천국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미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시식(試食)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영광의 천국에서 영생과 충만한 기쁨의 복을 누릴 것이다.

26장: 구원의 노래

1-11절, 구원의 노래

[1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부를 노래를 소개한다. 그 내용은 7절까지 계속된다. 그것은 구원의 노래,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평안을 주시고 교만한 악인들을 낮추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 노래는 한 견고한 성읍,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곽처럼 보호하시는 성읍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킬 것이다. 스가랴 2:5도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견고하고 안전한 성읍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키실 것이다.

[2-3절]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를 평강[평안]에 평강[평안]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신’이라는 원어(에무님)는 ‘신실함’(faithfulness)(BDB)이라는 뜻이다. ‘심지’라는 원어(예체르)는 ‘마음가짐, 목적, 의도’라는 뜻이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라”는 원문은 영어성경들의 번역대로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도록 너희는 문들을 열라”는 뜻이다.

본문은 성도를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심지가 견고한 자’ ‘주를 의뢰하는 자’라고 묘사한다. 성도는 신실해야 하고,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를 행하는 자이어야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이 견고해야 하며, 하나님만 의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지식이며, 하나님을 믿고 의를 행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평안에 평안으로 지키실 것이다. ‘평안에 평안으로’(솰롬 솰롬)라는 원어는 ‘완전한 평안으로’(KJV, NASB, NIV)라는 뜻이라고 본다. 성경에서 ‘평안’이라는 말은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안 등을 다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평안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의 주님’이시다(살후 3:16).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계명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평안을 내려주신다(사 48:18).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 이후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正路)요 마땅한 일이다. 왜냐하면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라는 원어(야흐 예호와)는 ‘여호와, 여호와’이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히브리어 ‘이다’ ‘있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로서 ‘스스로 계신 자’(출 3:14), 즉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영원자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 곧 만세반석이 되신다. ‘반석’은 ‘보호자, 피난처’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와 피난처가 되시므로, 우리는 그를 영원히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5-6절]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와 ‘솟은 성’은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묘사하며 ‘빈궁한 자’와 ‘곤핍한 자’는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악인들은 교만하고 악한 나라들도 그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낮추시고 땅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며, 고난 당하는 그의 백성들이 그들을 발로 밟게 하실 것이다.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본문의 ‘정직함’이라는 원어(메솨림)는 ‘평탄함’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그것은 평안을 주신다는 3절의 말씀과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자기의 백성의 길을 평탄케 하신다. 그는 그들의 길에서 감당치 못할 시험과 환난을 제하시고 감당할 만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8-9절]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義)를 배움이니이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어 고난을 당하는 어두운 밤 같은 때에도 하나님을 기다렸고 주의 기념 이름을 사모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다. 성도는 하나님만 바라며 심지어 큰 징계를 받는 고난의 깊은 밤에라도 하나님을 이른 아침부터, 간절히, 부지런히 바란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의 심판 때에 온 세상은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10-11절]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때라도 의를 배우지 않으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심판의 손길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시고 불로 그들을 불사르시는 열심을 보면 그들은 부끄러워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성읍이시요 만세반석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이시다. 시편 90:1 -2,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품이시며 모든 사람들의 품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피한다면, 우리를 해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영원히 우리가 의지할 자시며 우리의 보호자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세반석 되신 하나님만 영원토록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하나님 안에는 완전한 평안이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을 평안에 평안으로 지키시며 평탄한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의 주님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때마다 일마다 평안을 주실 수 있고 또 주시는 분이시다(살후 3:16).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미움과 싸움, 속임과 슬픔이 있지만, 천국은 의와 평안과 기쁨의 세계이며(롬 14:17) 거기에는 완전한 평안이 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평안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다(빌 4:6-7).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뜻대로 의롭게만 살자. 하나님의 견고한 성에 들어가려면 ‘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이어야 하고, ‘심지가 견고한 자’이어야 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그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굳건한 마음으로 의를 행하면 풍성한 평안 가운데 거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계속 범죄해서는 안 된다(요일 3:9). 또 성도가 죄를 짓지 않고 힘써 의를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평안을 주시고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오직 의를 행해야 한다.

12-21절,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함

[12절]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평강[평안]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평안]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후 3:16). 우리가 하나님의 평안을 기대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그것을,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행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성화를 가리킨다.

[13-14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주 외에 다른 주들’이란 이방 나라들의 왕들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들의 왕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고백한다. 14절의 ‘그들’은 이방 나라들의 주들 곧 왕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의 왕들을 벌하실 것이며 그들은 다 죽을 것이며 세상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확실히 이스라엘 나라를 더 크게 하실 것이며 그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이스라엘인 신약교회가 온 세상에 확장될 것을 보인다.

[16절]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였을 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원어(차쿤 라카쉬)는 ‘속삭이는 기도를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서, 부자유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조용한 소리, 속삭이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쏟아 부었고 또 계속 그렇게 기도할 것이다.

[17-18절]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産期)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 중에 하나님께 갈급히 부르짖은 기도는 마치 잉태한 여인이 출산의 때가 다 되어 해산의 고통으로 부르짖음과 같았다. 그러나 그 산고의 부르짖음은 온 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였었다.

[19절]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

이사야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소망의 소식을 전한다. ‘주의 죽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미 죽은 자들도 있을 것이며 지금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같이 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는 원어(네벨라시 예쿠문)는 “그들은 나의 시체와 함께 일어나리이다”라는 뜻이라고 본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활과 회복을 믿고 거기에 자신의 부활도 포함시켰다고 보인다.

이사야는 또,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의 이 본문은 멸망했던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종말론적 부활을 예언한다고 본다. 다니엘 12:2도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다”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은 부활의 진리를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5:28- 29). 사도 바울도,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하였다(고전 15:51).

[20-21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지금 부활의 때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 세상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며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땅의 거민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다. 심판자께서는 땅 위에 흘려졌던 의인들의 피 흘림에 대해 철저히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환난 때에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의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어 있어야 한다. 밀실은, 세상과 분리된 곳이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곳이며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다(매튜 풀). 그때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무분별하게 교제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은 길어 보여도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비교하면 ‘잠깐’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곧 영광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과 또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평안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평안을 주실 수 있고 주시는 주님이시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고(살후 3:16) 우리 주 예수께서 주실 수 있고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자이시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영적 성숙 즉 성화(聖化)를 가리킨다.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나라 왕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하였고 하나님께 속삭이는 기도를 쏟아 부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그의 죽은 자들을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실 것이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복된 천국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고 또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한다(롬 12:12).

셋째로, 우리는 환난 시대에 밀실에 들어가 잠깐 숨자.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고 성경적 교제의 원리를 지키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밀실의 교제를 힘쓰자.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삶이며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다.

27장: 이스라엘의 회복

[1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 날’은 앞에서 말한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날, 곧 세상의 마지막 심판 날이다. ‘견고하다’는 원어(카쉐)는 ‘사납다’는 뜻이다. ‘리워야단’(리웨야산)은 ‘바다 괴물’을 가리킨다(BDB). ‘용’이라는 원어(탄닌)도 ‘큰 바다 동물’을 가리킨다. ‘날랜’이라는 원어(바리아크)는 ‘나는’(fleeing)이라는 말로서 ‘날듯이 빠른’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과 ‘바다에 있는 용’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간교한 뱀이며 요한계시록 12:9에 말씀한, 온 세상을 미혹하는 사탄을 가리킨다고 본다(재미슨-포셋-브라운). 그 옛 뱀 사탄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납고 강한 칼로 그를 죽이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은 마귀가 마지막 심판 때에 불과 유황 못 즉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라고 증거했다. 사탄과 악령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5절]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케메르)[포도주의](KJV, NASB)15)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리르가임)[매 순간](BDB, KJV, NASB)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질려와 형극[찔레와 가시들]이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그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였다. 포도원이 다시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되듯이, 황폐된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지기처럼 친히 이스라엘을 관리하시고 매 순간 물을 주듯이 성령의 감동과 힘을 주시고 밤낮 지키시고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노함이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혹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압하시고 진멸하실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그와 화목할 것이다.

[6절]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

‘후일에’라는 원어(핫바임)는 옛날 영어성경은 ‘오는 자들’ (KJV)이라고 번역했으나, 원어사전은 ‘오는 날들에, 후일에’라는 관용구로 본다(BDB, NASB, NIV). 장차 이스라엘 나라는 아름답게 회복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결실은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7-8절]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살륙을 당하였은들 백성을 도륙한 자의 살륙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적당하게’라는 원어(베삿세아)는 ‘그를 몰아내심으로써’라는 뜻이거나(BDB, NASB), ‘정확하게’(measure by measure)(게세니우스, 델리취, RSV) 혹은 ‘어느 정도, 적당하게’(in measure)(KJV, ASV)라는 뜻이라고 한다. 본문의 뜻은, 주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치셨듯이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치시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어느 정도, 적당하게 징벌하셨다는 뜻인 것 같다.

[9-11절] 야곱의 불의가 속(贖)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이 되어 광야와 같았은즉 송아지가 거기서 먹고 거기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자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어떻게 징벌하셨는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던 제단과 우상들을 다 부서뜨리시고, 견고한 성읍들을 적막하고 황무하게 만드실 것이며, 그 곳들에서 송아지들이 먹고 누울 것이다. 그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과 지식이 없으므로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징벌로 인해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긍휼로 구속(救贖)함을 얻을 것이다.

[12-13절]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같이 너희를 일일이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하수’(나하르)는 유브라테스 강을 가리킨다. ‘시내’라는 원어(나칼)는 ‘와디’라고 부르는 시내, 즉 비가 올 때만 흐르는 물이 있는 시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저 북쪽 유브라테스 강부터 남방 애굽 시내까지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일일이’ 곧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불러모으실 것이다. 그들은 돌아와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다. 참 신앙생활은 모든 헛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9-10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증거하기를,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참된 회개이며 구원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의 운명을 알자. 인류와 온 세상을 미혹했던 영인 사탄과 악령들은 마침내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 주께서는 지옥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41). 요한계시록 20:10은 세상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하였다(롬 16:20). 지금 사탄과 악령들은 활개치며 온 세상과 교회들을 시험하고 부패시키고 악화시키지만, 그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다 구원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어느 정도, 적당하게 징책하시지만, 그들의 모든 죄와 불의를 다 씻으실 것이며, 온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일일이 다 불러모으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주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요 6:39-4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임무를 완수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다 구원받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섬기자. 세계 각 곳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신 6:5).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전 12:13).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28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1-13절, 에브라임의 술취함과 교만

[1절]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선지자 이사야는 에브라임 곧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술 취한 자’라고 표현했다.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나라는 ‘영화로운 관같이’ 상당한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으나, 술 취한 자가 많았고 또 그들은 전체적으로 교만해 있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나라에 화가 있을 것이며 그 나라가 쇠해지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2절]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 나라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앗수르 나라는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이스라엘 땅에 덮칠 것이다. 주전 722년에 북방의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을 때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다. 열왕기하 17장은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의 사실을 기록했다. 앗수르 나라는 ‘주께 있는’ 자,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쓰일 수도 있고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3-4절]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북방 이스라엘 나라는 술취하고 교만한 면류관 같았으나, 그 면류관은 발에 밟힐 것이다. 그 나라는 기름진 골짜기의 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꽃이었으나,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를 사람들이 보고 얼른 따서 먹듯이 그 꽃은 떨어지고 쇠잔해질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할 것이다. 그 부귀와 권세와 영광은 곧 사라질 것이다.

[5-6절]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그 날에’는 앞에서 말한 이스라엘의 멸망의 날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자유로이 동원하시는 전능하신 섭리자이심을 증거한다. ‘그 남은 백성’은 남쪽 유다 백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남쪽 유다 나라는 약 136년 동안이나 더 지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석에 앉은 자들에게 ‘판결하는 신’(루아크 미쉬파트) 즉 ‘공의의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들, 즉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위하여 변론하는 자들에게 힘이 되실 것이다. 유대 사회에는 경건과 도덕성이 지속 혹은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특히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 때를 가리킨 것 같다.

[7-8절] [그러나](KJV)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그들’(7절)은 ‘그 남은 백성’ 곧 유다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남쪽 유다 나라는 상당한 기간 하나님을 믿고 섬길 것이지만, 그들도 마침내 부패될 것을 보이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세상 사랑을 인해 부패할 것이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그러하고 이스라엘 온 땅에 죄악들이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북방이나 남방이나 다 부패하여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9-10절]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유다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주는 초보적인 말씀이라고 무시하고 조롱했고, 그가 반복된 교훈을 한다고 멸시하며 비방했다. 그러나 그들 속에 하나님의 참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들은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할 것이며, 또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야 할 것이다.

[11절] 그러므로 [그가] 생소한(라아그)[더듬거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른 방언하는 자들 가운데 거할 것이다.

[12절]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전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안식과 그것을 받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 참 안식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수고롭고 곤고한 삶을 살고 있다.

[13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비방한 말을 하나님께서 되받아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된 교훈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고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될 것이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어떤 좋은 말씀도 믿지 않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술 취하거나 교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술 취하며 교만했다. 하나님께서는 술 취하고 교만한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셨다. 이스라엘의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은 쇠잔해가는 꽃같이 되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강하고 힘있는 앗수르 나라를 불러 갑자기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우리는 술 취하지 말자.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또 우리는 패망의 선봉인 교만을 버리자(잠 16:1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자. 여호와께서는 그 남은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안식과 상쾌함이 되는 좋은 말씀인 줄 알자.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29절,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14-15절]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輕慢)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자들, 곧 유다 지도자들을 ‘너희 경만한 자’라고 부른다. ‘경만(輕慢)한’이라는 원어(라촌)는 ‘비웃는, 조롱하는’이라는 뜻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교만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악이다. 또 교만한 그들은 자신들이 사망과 언약을 맺고 음부와 맹약했으므로 넘치는 재앙이 와도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하며 자기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부’는 무덤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자신을 감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헛된 말을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1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귀한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주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한 돌을 시온에 두실 것이다. 그 돌은 ‘시험하는 돌’(에벤 보칸)이라고 불린다(BDB). 또 그 돌은 ‘귀한 모퉁잇돌’(핀낫 이크랏)과 ‘견고한 기초’(무사드 무싸드)라고 표현된다. 시편 118:22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한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 돌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귀한 모퉁잇돌이시며 견고한 기초이시다. 그는 자신을 ‘건축자들의 버린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표현하셨다(마 21:42-44).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 공회 앞에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담대히 증거했다(행 4:11). 또 그를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급절한다’는 원어(야키쉬)는 ‘급히 도망치다(BDB), 당황하다(NASB, NIV)’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재앙의 날에 당황치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피할 곳이 있다.

[17-18절]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의 거짓과 불의에 대해 공의롭게,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은밀하게 숨은 곳들도 다 찾아내실 것이다.

[19-21절] 그것이 유행할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주야로 유행한즉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功)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

‘공’(功)이라는 원어(아보다)는 ‘일, 행위’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그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침대가 짧아 몸을 다 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불이 짧아 몸을 다 덮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또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일어나 진노하실 것이다. 브라심 산과 기브온 골짜기는 다윗 시대의 승전 사건들을 가리킨 것 같다(대상 14:11, 14-16).

[22절]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輕慢)한 자[비웃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尤甚)할까[더 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다면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며 그들의 결박은 더욱 견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멸망하실 일을 작정하셨다. 그는 전에도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신 적이 있었다. 그는 옛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었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비로 심판하셨었다. 그는 불경건한 이방 나라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악을 행하면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벧후 3:6-7).

[23-29절]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시라]을 뿌리며 대회향[커민]을 뿌리며 소맥[밀]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보리]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호밀]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시라]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커민]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시라]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커민]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타작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그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고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한 방편이며 그의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일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세 전에 세우신 그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실 것이다. 이사야 46:9-10,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요한복음 6:39-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모략이 기묘하며 그의 지혜가 광대하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기초석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였다. 그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는 다 구원을 얻는다. 그를 믿는 자는 장차 임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었고 보배로우신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왔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 하여 거룩한 집으로 지어져 가야 한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의 믿음은 성경말씀과 성령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통 속에서 견고해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경만(輕慢)한 자들 곧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다.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경만한 자, 즉 교만하여 비웃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악에 대해 공의로,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 멸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움으로 그 말씀을 받고 믿고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의 모든 계명들과 교훈들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의 마땅한 일이다.

29장: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

[1-2절]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연부년[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으뜸 되는 도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 도시는 다윗 왕이 진 치고 수도로 삼은 성이었다. 해마다 절기들이 되면 그 성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성을 괴롭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네가 내게 아리엘같이 되리라’는 말씀에서 ‘아리엘’은 ‘번제단 화로’라는 말(아리엘)을 연상시킨다. 두 단어의 발음은 비슷하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이 제물의 피가 쏟아지고 불이 항상 붙는 번제단 화로같이 될 것을 암시한다. 예루살렘 성은 살륙 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피가 거기에서 흘려지고 불같은 환난이 거기에 쏟아질 것이다.

[3-4절]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포위하며] 대(臺)[진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예루살렘 성은 군대들의 포위 공격으로 심히 낮아져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목소리가 땅에서 나듯이 조용하게 날 것이다. 전에 교만했던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 환난의 때에 낮아지고 비천해질 것이다.

[5절] 그럴지라도[그러나](NASB, NIV)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룰 것이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내리실 징벌도 선언하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히스기야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치러 올라왔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군대를 치시므로 하룻밤에 군사 18만 5천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6-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회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너를](원문) 징벌하실 것인즉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保障)[요새들]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든 자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같이 시온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천둥과 지진과 폭풍으로 그 침략자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꿈에 음식을 먹을지라도 여전히 속히 비고 물을 마실지라도 깨면 여전히 목마른 것같이 쇠약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치는 앗수르 나라의 왕과 그 군사들의 계획은 헛될 것이다.

[9-10절]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영]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너희의 눈 곧 선지자들과 너희 지도자들을 감기셨고 그가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유대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실 것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선지자들의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바른 말씀으로 교훈하지 못한 것도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어두움을 주신 것이었다.

[11-12절]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은혜 주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시면 성경은 성도들에게 봉한 책이 될 것이다. 유식한 자들은 성경책이 인봉되어 있어서 깨닫지 못할 것이고, 무식한 자들은 무식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교훈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며 하나님의 바른 말씀 곧 성경의 바른 교훈은 사라져서 바른 말씀의 기근과 기갈의 때가 올 것이다.

[13절]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영적으로 잠든 유대 백성은 외식의 죄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그것이 외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입술의 고백이나 말이 아니고, 우리의 진실한 마음과 계명 순종이다.

[14절]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가리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들에게서 지혜와 총명을 없이하시는 것이다. 유대 나라에는 영적 어두움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혜자가 없어지고 명철자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심판이다.

[15-16절]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의 은밀한 악은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을 다 아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들과 다르시다. 우리를 만드신 그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들과 몸의 행위들을 다 아신다.

[17절] 미구에[잠시 후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기름진 밭이 삼림으로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언어라고 보인다. 울창한 삼림의 레바논 산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듯이, 기름진 밭이 울창한 삼림의 산이 되듯이, 구원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현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 슬픔과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며, 지금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자들은 곤고해지며 패망할 것이다.

[18-19절]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귀머거리와 소경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달아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지상 생활에서 이루어졌고 또 영적으로 신약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고난 중에 있고 환난을 당하는 자들은 그 날에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20-21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輕慢)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그들은 말로 사람을 범죄자가 되게 하며](KJV, NASB)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

그 날에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강포한 자들과 경만(輕慢)한 자들 곧 조롱하는 자들, 또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들과 의인을 악인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제거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22-24절]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救贖)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失色)하지[창백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자손은 나의 손으로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 볼 때에[그가 나의 손으로 지은 그들의 자녀들을 볼 때](KJV, NASB)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자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변화된 회복의 모습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고 거룩하게 할 것이며, 둘째,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셋째, 그들이 더 이상 영적으로 어둡고 혼미하지 않고 참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바른 교훈을 받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예루살렘의 형식적 종교의식은 헛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같은 예루살렘 성이라도 번제단 화로같이 피흘림과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모든 교만은 낮춰질 것이다. 죄를 품고 드리는 예배, 찬송, 기도, 헌금은 헛될 것이다. 우리는 죄를 버리고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어두웠고 외식의 죄에 빠져 있었다. 지도자들은 영적 소경들이었다. 백성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우리는 모든 외식의 죄를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신령[심령]과 진정[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요 4:23-24).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완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마침내 회복시키실 것이다. 무지하고 무감각했던 그들은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기의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된 자들이고 전적으로 무능력한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의 죄를 제하셨고 그의 긍휼의 섭리와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친히 구원하셨고 의와 거룩의 열매 맺는 길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30장: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은혜

1-17절, 이스라엘의 패역

[1-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소르림)[완고한, 반역적인]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맛세카)(LXX, NASB, NIV)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의 감동 가운데 환난에 대처할 방법을 의논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때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패역한 자들, 완고하고 반역적인 자들이었고 하나님 없이 행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을 의지하고 그 그늘에 피하려고 했다. 그들은 인간적인 방책만을 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의 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었다.

[3-5절]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무지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었다. 그들이 의지한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은 그들에게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수치만 줄 것이다. 소안은 애굽의 옛날 수도 라암셋을 가리킨다(출 12:37).

[6-7절]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바다짐승]이라 일컬었느니라.

‘남방’은 애굽을 가리킨다(단 11장).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은 어린 나귀 등에 많은 보물을 싣고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애굽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이다.

[8절]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성경이 기록되어 사람들로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9절]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반역적이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부패성이다.

[10-11절]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正路)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신 선지자들과 선견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정직한 말을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 즉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을 하고 또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선지자들에게 정로(正路) 즉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기 싫어했던 것이다.

[12-14절]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날로즈)[간교함](BDB, NASB)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도리어 압박과 간교함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높은 담이 갑자기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과 같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숨과 같을 것이다. 그 깨진 조각 중에 재를 취하거나 물을 뜰 만한 조각도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할 것이다.

[15절]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조용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구원을 얻고 또 잠잠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거절하였고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16-17절] [그들이]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에 전쟁이 나면 말 타고 도망칠 계획이나 세웠다. 과연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침략자들 때문에 말 타고 도망치게 되었고 빠른 짐승을 타고 도망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꾸짖으면 천 사람이 도망치겠고 다섯 사람이 꾸짖으면 모두 다 도망칠 것이며 그들의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발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멸망하는 그 나라에 조금 남겨두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 바로와 그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들은 애굽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신들을 보내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일이었다.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은금도 의지하지 말자. 그것들은 우리에게 완전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헛되게 하시면 그것들은 언제나 헛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무슨 일을 의논하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였고 선지자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정로를 버리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패역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법을 좋아하고 바른 말씀, 곧 인생의 정로를 걷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며 그의 말씀인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세상에 만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어도 늘 회개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만 붙들고 행하면,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이다.

18-33절, 하나님의 긍휼하심

[18-19절] 그러나(라켄)[그러므로](KJV, NASB)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미쉬파트)[혹은 ‘심판’(KJV)]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이는 백성이 시온에, 예루살렘에 거할 것임이니라](MT, KJV),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경고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시행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애 3:33).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시온에서 추방되었던 그 백성이 다시 시온에 거하게 되고 통곡하던 백성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 중에 회개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20-22절]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는 두 가지로 증거되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된 스승들, 곧 참 선지자들을 끝까지 주실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이 정로(正路) 곧 바른 길, 바른 노선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금은(金銀) 우상들을 버리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복은 경건의 회복 곧 모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다. 순수한 경건의 회복은 구원의 본질이다.

[23-26절]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베릴 카미츠)[소금으로 간을 한 여물]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高山), 각 준령(峻嶺)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7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사야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비를 주셔서 그들에게 추수할 곡식과 양식이 풍성케 하실 것이다. 밭 가는 소와 나귀까지도 겨를 까부른 곡식을 먹을 것이다. 또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가 멸망하는 날, 곧 그 망대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들과 언덕들에도 시냇물들이 흘러 땅들이 비옥해질 것이다. 또 회복된 이스라엘 땅은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은 빛이 될 것이다.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은 그러할 것이다(계 21:23).

[27-29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같으며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재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본문은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 즉 파사 나라로부터 올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실 것이다.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차셨고 그 혀는 태워 삼키는 불같으실 것이다. 그는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하며 피리를 불 것이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다.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쁨과 구원과 해방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탄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될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노래할 것이다.

[30-33절]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장엄한 목소리, 혁혁한 진노, 그의 팔의 치심, 맹렬한, 태워 삼키는 불, 폭풍과 폭우와 우박 등으로 묘사된다. 33절의 ‘도벳’은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자기의 아들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가증한 곳이었다. 그 곳은 지옥을 상징한다.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다. 지옥은 사탄과 악령들과 악인들을 위해 만세 전에 작정된 곳이다. 그 곳은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그 곳은 깊고 넓은 곳이다. 지옥은 깊고 넓은 장소이다. 거기는 불과 많은 나무들이 있고 여호와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그것을 사를 것이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43-48,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전통본문).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전통본문)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전통본문).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의](전통본문)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지옥은 두려운 곳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오직 정로(正路)로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바른 길로만 가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구약교회에서 가장 큰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구원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그를 섬기는 것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돈과 육신의 쾌락과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돈과 육신의 쾌락과 자기라는 우상을 다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외적 여건, 곧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여건을 염려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우리에게 선한 목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늘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안을 염려치 말자.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과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자체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지옥 형벌은 남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31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1-3절]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 나라의 침공을 예상하였을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마땅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모해야 했으나 하나님을 사모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며 그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사신들을 파송하였다. 그것은 큰 불신앙이며 큰 죄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정하신 바를 실패치 않고 다 이루시는 지혜로운 섭리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의 불경건과 불신앙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경고하신 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 자의 집과 그를 돕는 자의 집을 치실 것이다. 그는 애굽이 사람이며 신이 아니고 그 말들이 육체이며 영이 아님을 나타내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그 손을 드시면, 즉 그가 심판을 행하시면, 돕는 애굽도, 도움을 받는 이스라엘도 다 엎드러지며 함께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4-5절] [이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것임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산과 그 영(嶺) 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짐승들 중 가장 용맹스런 큰 사자나 젊은 사자에 비유하셨다. 그것이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 그것을 치려고 불려온 여러 목자들은 이방 나라의 왕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만군의 하나님, 곧 천군 천사들을 자유로이 사용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시온산과 그 언덕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그는 어미새가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건지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6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전한 주요 내용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가 ‘하나님을 심히 거역한 역사’이었음을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많은 사랑을 받았었지만 하나님을 심히 거역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을 세 마디로 요약했었는데, 그것은 첫째로 목이 곧고, 둘째로 항상 거역하고, 셋째로 하나님을 속히 떠난 것이라고 했었다. 그것이 인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거역하던 자들에게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직 기회를 주신다. 그는 그가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의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며 그의 뜻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7절]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 금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며.

회개는 죄를 청산하는 것이며 인간의 죄 중에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실 때, 즉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그들은 자기의 손으로 만들었던, 그리고 그것 때문에 크게 범죄하였던 은우상과 금우상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우상의 청산이 구원의 시작이며 구원받은 증표이다. 현대인의 우상들 중 첫 번째는 돈이며, 많은 교인들도 이런 세상적 가치관과 풍조에 물들어 있다고 보인다. 돈 사랑은 일만 악의 뿌리이며 그것을 버리고 극복함이 없이는 구원에 들어갈 수 없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그것을 버리고 청산해야 구원받은 표를 가질 것이다.

[8절] 앗수르는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칼을 피하지 못할 것이요](NASB)16)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앗수르 나라도 치실 것이다. 그 나라는 사람들의 칼에 엎드러지고 삼키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칼에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국의 칼을 사용하실 것이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일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일 것이다. 또 앗수르 군사들은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할 것이다.

[9절]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그의 반석’은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다. ‘물러간다’는 원어(아바르)는 여기서는 ‘멸망하다’는 뜻이다(BDB). 앗수르 왕과 그의 방백들은 놀라 물러나며 패망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의 불은 시온에 있고 그의 풀무불은 예루살렘 성에 있을 것이다. 앗수르 왕과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침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고 거기로부터 열국을 불로 사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로부터 지키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 대신 세상의 것들을 의지한 데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재앙을 내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둘째로,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참된 회개와 믿음이며 거기에 참된 구원이 있다. 하나님 없이 살며 죄 가운데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은 헛된 우상들을 다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그에게만 예배드리고 기도 드려야 한다.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율법의 기본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복, 즉 육신적, 물질적, 사회적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경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그는 절대적 주권자이시다. 신명기 32:39는,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가정에게도, 교회에게도, 국가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우리의 교회와 사회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딤전 2:1-2). 우리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만 기도하며 의탁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고 그를 바로 섬기며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을 힘써 순종해야 한다.


32장: 메시아의 통치

[1-4절]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政事)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장차 의로 통치하실 왕에 대한 본문의 말씀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본다. 이사야 9:6-7에 말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었다.

동방박사들에게 계시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으로 오셨다(마 2:2).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고(롬 10:4) 또 장차 의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계 22:10-12). 메시아께서는 땅 위에서 자기 백성에게 ‘광풍과 폭우를 피할 곳’이 되신다. 광풍과 폭우는 세상에서 당하는 이런 저런 환난들과 악인들의 학대와 핍박을 가리킨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신다. 또 메시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릴 것이며 하나님과 메시아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며, 또 그들의 조급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의 어눌한 혀는 민첩해져 분명한 말을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그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5절]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正大)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존귀하다’는 원어(나디브)는 ‘고상하다’는 뜻이다. ‘궤휼한 자’라는 원어(킬라이)는 ‘악당’이라는 뜻이며(BDB), ‘정대하다’는 원어(쇼아)는 ‘고상하다’(BDB), ‘너그럽다’(KJV, NASB)는 뜻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자를 고상하다고 말한다거나 악당을 너그럽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6-7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奸邪)(코네프)[불경건](NASB)를 행하며 패역한 말(토아)[잘못된 말](KJV, NASB)로 여호와를 거스리며[거스르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궤휼한 자는 그 그릇(켈라이)[‘그의 무기들’(NASB), ‘그의 기구들’]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고 마음에 불의를 품고 불경건한 일을 행하고 잘못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굶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하며, 그의 무기들은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죽인다.

[8절] 고명한(나디브)[고상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고상한 자라는 말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가리킨다. 참된 성도들은 고상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별하며 의와 선을 택하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9-11절]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1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안일한 부녀들’(2번)이나 ‘염려 없는 딸들’(3번)이라는 표현은 죄에 대한 무감각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사용하였다.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지 않아서 큰 곤란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포도 수확이 없을 것이며 열매를 거두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옷을 찢어 몸을 드러낼 것이며 베로 허리를 동이며 슬퍼하고 탄식할 것이다.

[12-14절] 좋은 밭을 위하며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형극[가시들]과 질려[찔레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산과 망대가 영영히 굴혈이 되며 들 나귀의 즐겨하는 곳과 양떼의 풀 먹는 곳이 될 것임이어니와.

사람들은 좋은 밭의 곡식을 얻지 못하고 열매가 많던 포도나무의 수확도 얻지 못하므로 가슴을 치며 슬퍼할 것이다. 전에 기쁨이 넘쳤던 성읍들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고 가시덤불과 찔레나 나고 들나귀가 뛰놀며 양떼가 풀을 먹는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15절]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며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될 때까지 그러하리라](KJV, NASB, NIV).

황폐한 이스라엘 땅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회복될 것이다. 광야가 아름다움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은 삼림같이 될 것이다. 특히 메시아께서 오실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도 “내 신[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예언하였다(겔 36:27).

[16-20절]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성령께서 오시는 메시아 시대는 의의 시대요 평안과 안전함이 있는 시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와 평안이 되셨다. 고린도전서 1:30,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다 나라도,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은 후에, 메시아의 강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하자. 본장에 예언된 의로 통치하실 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시다. 우리는 그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하자.

둘째로,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고 고상한 삶을 살자. 세상은 선악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또 어리석고 불경건하고 악하고 거짓된 일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과 악을 날카롭게 분별하고 의와 선을 택하여 고상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안일함을 버리고 늘 깨어 근신하자. 우리는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범죄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장차 올 마지막 대환난을 피하고 주 앞에 서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와 평안을 누리자. 하나님께서는 신약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받았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의를 행함으로 풍성한 평안을 누리자.


33장: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1-16절, 하나님의 심판

[1절]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이것은 앗수르 나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학대하였고 속였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앗수르 나라에 대해 벌하실 것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그 나라는 다른 나라에 의해 학대를 당할 것이며 속임을 당할 것이다.

[2절]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한다. 인생의 참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환난 때에 아침마다 구원의 팔이 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세상의 환난들과 원수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3-4절] 진동 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황충의 모임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

하나님께서 앗수르 침략군들을 징벌하기 위해 일어나실 때 그들은 도망하며 흩어질 것이다. ‘민족들’과 ‘열방’은 앗수르 군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사람들은 메뚜기 떼처럼 그들을 노략할 것이다.

[5-6절]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그는 너희 시대의 안정이시며 구원들과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시니](원문, NASB, NIV)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홀로 지극히 높으신 통치자이시다. 그는 공평과 의로 특히 시온을 통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백성은 복되다. 온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평안과 안정이시며 구원과 지혜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리의 보배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이며, 그 지혜는 잠언 3:13-18의 말씀대로 참으로 복되며 가장 귀한 보배이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는 정금과 진주보다 낫고 그 좌우에 장수와 부귀가 있고 그 길에 기쁨과 평강이 있으며 마침내 영생에 이른다.

[7-9절]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끊이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

이스라엘 나라의 용사들과 사신들은 앗수르 군대의 침공으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할 것이며 기대했던 애굽 나라의 도움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앗수르 군대의 침략으로 황폐케 될 것이다. 사론은 이스라엘 나라 북부에 있는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 지역인데, 그 곳이 변하여 사막과 같이 황폐케 될 것이다. 바산과 갈멜의 나무들도 그 잎들을 떨어뜨릴 것이다. 비옥한 땅들이 황폐케 될 것이다.

[1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니.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는 말(앗타)을 세 번이나 반복해 사용하셨다. 그것은 그의 심판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그가 잠잠하실 때는 악한 자들이 활개쳤으나, 이제 그가 일어나실 것이다. 그는 일어나 이방인들을 벌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그의 심판으로 악인들이 벌을 받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날 것이다.

[11-13절]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앗수르 나라의 침략 계획은 헛될 것이다. 또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을 삼키려고 숨을 내쉬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그들을 삼키는 불이 될 것이다. 그들의 유다 침공은 도리어 자기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가 한 밤에 군사 18만 5천명이 죽었고 자신이 고국으로 돌아가 아들들의 칼에 죽임을 당한 일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사 36-37장).

[14절]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유다 땅에도 의인들과 악인들이 있었다. 그 날에 ‘시온의 죄인들’은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을 목격하고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에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죄를 멀리해야 했었다.

[15-16절]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保障)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끊이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계신 높은 곳에 거할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그들은 의롭게 행하는 자이며 정직히 말하는 자이다. 그들은 강탈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이며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않는 자이다. 그들은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 자이며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신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인들에게 평안과 안전을 주시고 또 일용할 양식의 공급함을 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온 세상을 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자. 앗수르 사람들은 온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나라들을 학대하고 속였다. 그러나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판단하시고 일어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같이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며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요 보배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대 진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더 깊이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자. 선지자는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고 그의 은혜와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시며 의로우신 통치자이시며 하나님 안에 평안과 안정이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심령의 평안과 환경적 평안을 누릴 것이며 양식과 물의 부족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높은 곳에 안전하게 거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견고한 바위와 보호자가 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사람들은 결국 의인과 악인으로 나뉜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며 그의 뜻을 거역하고 악을 행하며 남을 학대하고 속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며 불같이 그들을 사르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섬기며 사랑하고 그의 뜻과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17-24절, 영광의 왕의 땅

[17절]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그 영광 중에 계신 왕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본다(22절). 지혜와 능력, 공의와 선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우시다. 그는 불경건하고 악한 열국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또 광활한 땅은 지경이 넓은 땅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인다. 신약교회는 온 세계 만국으로 확장되는 세계적 교회가 될 것이다. 온 세계의 각 나라, 각 민족에서 만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받을 것이다.

[18절]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저울로 달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두려워하던 것’이란 앗수르의 침공 같은 이방 나라들의 침공을 말할 것이다. 전에 그들은 이방 나라들의 침공으로 인해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계산하던 자’라는 말은 ‘쓰는 자’라는 뜻인데, 백성들에게 세금이나 벌금을 부과하고 그 내용을 종이에 쓰는 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칭량하던 자’라는 말은 ‘저울에 달던 자’라는 뜻인데, 백성이 세금을 내면 그것을 저울에 달고 받는 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망대를 계수하던 자’라는 말은 점령군이 망대 수를 세어서 그의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 때에 경험할 것들이다.

[19절]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강포한 백성’ ‘방언이 어려워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앗수르 나라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 이방 나라는 물러갈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영광이 땅 위에서 나타날 것이다.

[20절]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메시아 시대에 회복될 이스라엘의 모습은 평화로운 예루살렘으로 묘사된다. ‘예루살렘’이라는 말뜻은 ‘평화의 성’이다. 전에 절기 지키던 시온성은 장차 황폐케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성은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 즉 ‘평화로운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다시 장막을 거두듯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막의 말뚝을 뽑지 않듯이, 장막을 친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않듯이, 새 예루살렘 성은 영원한 평화의 성이 될 것이며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21절]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거기에서 엄위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넓은 강들과 시내들의 장소가 되시며 거기에는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것이라](원문).

‘노질하는 배’와 ‘큰 배’는 앗수르의 전함(戰艦)들을 가리킬 것이다. 옛날의 전함들은 노질하는 큰 배이었다. 엄위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도우시고 지키실 것이다.

[22절] 대저[이는]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셨고 그 율법대로 인류를 심판하시는 왕이시다. 또 그는 자기 백성을 온갖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하신다. 특히 그는 모든 원수들을 멸하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도우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23절]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풀리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못하고] 돛을 달지 못하였었느니라[못하느니라]. 때가 되면[그때에]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여기에 ‘너’는 앗수르를 가리켰다고 본다. 옛 시대의 큰 군함은 돛을 단 배이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패전할 것이며 그들의 배들은 돛대 줄이 풀리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고 돛도 달지 못할 것이다. 유다 백성은 앗수르 군대의 많은 재물을 취할 것이며 그것들을 동료들과 나눌 것이다. 심지어 발을 저는 자들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다.

[24절]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회복된 시대의 백성은 영육으로 복될 것이다. 그들은 육신적으로 건강하며 질병이 없을 것이다. 또 그들은 영적으로도 죄 씻음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근본적 문제인 죄 문제의 해결이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원수들은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 중에 이방 나라 통치자들에게 온갖 통제와 학대를 당하였으나 이제 그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전함들의 돛대 줄은 풀리고 돛을 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 교회의 원수들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자.

둘째로, 새 예루살렘은 평온하고 안정된 성이 될 것이다. 17절, “너의 눈은 . . .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20절,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영적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장차 영광의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롬 14:17) 나라가 될 것이다.

셋째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17절, “너의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움 중에서 보며.” 21절, “엄위하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넓은 강들과 시내들의 장소가 되시리라.” 22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재판장이시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왕, 곧 주권적 통치자이시다. 우리는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34장: 열국에 대한 심판

[1-2절]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모든 군대들]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케 하셨은즉.

선지자 이사야는 온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그 군대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멸하시고 죽이실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다.

[3-4절] 그 살륙 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 그 사체(死體)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하늘의 만상(萬象)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하나님의 대심판 때에 죽임을 당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온 땅에 죽은 자들의 시체들이 많고 그것들의 썩는 냄새가 솟아오를 것이다.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다. 이 말은 산들이 피에 젖을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때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며 만물이 포도나무 잎이나 무화과나무 잎같이 마를 것이다.

[5-7절]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숫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돔의 수도)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심이라.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하늘에서 사탄과 악령들을 치신 여호와의 칼이 에돔에게 임할 것이다.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세상 나라를 한 대표적인 예로 표현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이 있을 것이다.

[8절]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報讐)할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실[원통함을 풀어주실] 해라.

이 날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날이며 그 백성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를 갚으시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해쳤던 원수들을 갚아주실 것이며 그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실 것이다.

[9-10절]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 심판이다. 역청과 유황에 불이 붙어 타듯이, 온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옛 세상은 물로 멸망을 당했으나 마지막 날에는 불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 불은 끊임없이 타오를 것이며 에돔 땅은 영원히 황폐하게 될 것이다.

[11-15절] 당아[사다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억새]이 자라서 시랑[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수염소[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에돔 땅을 혼란하게, 공허하고 황폐하게 만드실 것이다. 에돔은 세상 나라를 대표한 한 예로 언급된 것이라고 보인다. 그 땅은 황폐해져서 사다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다. 그 땅은 혼란해질 것이다. 국가를 이어갈 만한 인물들이 없게 될 것이다.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억새가 자라고 승냥이의 굴이 되고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다.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와 부엉이가 거기에서 처소를 만들고 알을 낳고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일 것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는, 에돔이 황폐케 되었듯이 온 세상이 황폐케 될 것이다.

[16-17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親手)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에돔의 황폐함, 즉 들짐승들과 새들의 거처가 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자세히 예언하신 바이다. 하나님의 열국 심판과 땅의 황폐함은 하나님의 작정된 바이다. 그 예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도 빠짐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 너무 큰 애착을 두지 말자. 성경은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예언한다. 이 세상은 결국 멸망할 장망성(將亡城)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만, 이 세상에 너무 큰 애착을 두지 말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고 순종하자. 세상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이다(2, 6, 8절).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하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온 세상의 섭리자, 통치자이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열국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대로,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책이다. 우리는 성경책을 사랑하고 자세히 읽고 연구하여 온전한 믿음과 인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35장: 새 세계

[1-2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실 때 온 세상이 광야와 메마른 땅같이 황폐하게 될 것이지만, 회복될 새 세계는 사막에서 백합화가 무성하게 피고 레바논의 수목이 우거짐같이 되고 비옥한 갈멜과 사론의 밭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 세계의 회복은 메시아의 강림으로 시작될 것이다. 죄로 인해 멸망할 세상은 메시아의 대속 사역으로 새로워질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증거하였다(요 1:14).

[3-4절]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報讐)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회복될 새 세계는 하나님의 열국 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이방인들에 의해 손이 약해졌고 무릎이 떨리며 겁을 내고 있으나, 심판자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원수들을 공의로 벌하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고 겁을 내지 말고 굳센 마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5-6절]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새 세계에는 건강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질병들은 큰 슬픔과 불행을 가져왔었다. 불치의 병들의 대표적 예는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뚝발이와 벙어리 등이다. 그러나 그 날에는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절뚝발이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할 것이다. 신적 구주 예수께서는 오셔서 이런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것은 천국에서 누릴 복을 미리 조금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에서는 병자들이 없을 것이다. 거기는 병원도, 약국도 없을 것이다. 또 광야에는 물이 솟고 사막에는 시내가 흐를 것이다.

[7-10절]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고메 )[등심초, 골풀] (rush, papyrus)이 날 것이며 거기 대로(大路)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救贖)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救贖)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새 세계는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골풀이 날 것이다. 더 이상 황량한 광야는 없을 것이다. 또 새 세계는 거룩한 땅 즉 거룩한 자들의 땅이 될 것이다. 그리로 가는 길은 거룩한 길이라고 불릴 것이다. 죄 가운데 더럽혀진 자들은 그리로 지나가지 못할 것이며, 땅에서 구속(救贖)함을 얻은 성도들만 그 길을 걸을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은 그 길을 걷지 못할 것이다. 사자같이 사납고 난폭한 짐승들은 그리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메시아의 대속 사역으로 완성될 천국은 거룩한 성이며 거룩하고 의로운 자들만 거기 거할 것이며 악한 자들은 있지 못할 것이다(계 22:15).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인 천국은 거룩한 자들의 세계이다. 또 새 세계는 기쁨의 땅이다. 거기에 거할 백성은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인데, 그들은 노래하면서 그 성에 이를 것이며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며 슬픔과 탄식은 달아날 것이다(롬 14:17; 계 21:1-4).

비옥한 땅, 건강한 몸, 거룩한 땅, 기쁨의 땅은 새 세계의 특징들이다. 그것은 자연 환경적 변화, 신체적 변화, 도덕적 변화, 심리적 변화이다. 또 이 모든 변화는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구원사역의 결과이다. 본장에 예언된 새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신약교회는 이미 거룩함을 얻은 자들 곧 성도들의 모임이며 또 그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평안을 누리는 은혜를 이미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언된 새 세계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세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전 6:9-11).

둘째로, 신약교회는 거룩한 교회이며 또 거룩한 교회이어야 한다. 그 곳에는 죄와 불결과 사나움이 없어야 한다. 신약교회는 거룩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우리는 천국에서 완전한 교회를 볼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교회의 구성원된 우리 자신이 그러해야 한다. 죄악되고 사납고 불결한 자들은 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때마다 일마다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누리자.


36장: 산헤립의 침입

[1-3절]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세탁업자의 터의 대로(大路) 윗못 수도구 곁에 서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히스기야 왕은 분열왕국 시대에 남방 유다 역사에서 가장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29년의 통치기간 중 제14년에 크게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앗수르의 침략이고 둘째는 죽을병에 걸린 것이었다(사 38:1).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들을 쳐서 취하였다. 앗수르 왕은 라기스에서부터 군대장군 랍사게로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의 히스기야에게 가게 하였다. 랍사게가 세탁업자의 터의 큰 길 윗못 수도구 곁에 서자, 유다 나라에서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史官) 요아가 그에게로 나아갔다.

[4-6절]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의뢰하니 무엇을 의뢰하느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모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느냐?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글을 통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 백성을 두렵게 하고 낙망시키려 하였다. 그는 그를 맞는 유다의 고위관리들에게 히스기야가 싸울 전략과 용맹이 없다고 말하며 그와 유다 백성을 두렵게 하고 힘을 빼며 낙망케 하려 하였다. 유다 관리들 중에는 친애굽파가 있었을 것인데, 앗수르 왕은 그들도 낙망시키려 하였다. 그는 애굽이 상한 갈대지팡이이며 그들이 애굽을 의지하면 그 상한 갈대지팡이가 그들의 손에 찔려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7절]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 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앗수르 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히스기야가 그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여 버리고 예루살렘의 제단에서만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말했다고 비난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했다.

[8-12절]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나는 네게 말 2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장관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의뢰하여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컨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 데서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랍사게가 가로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랍사게는 또 히스기야 왕의 군대의 장군들과 그 군사력을 조롱하였다. 그가 말 2천 필을 주어도 그것들을 탈 자가 없을 것이며 앗수르 왕의 극히 작은 장관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그가 올라와 이 땅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라고 말하였다.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랍사게에게 유다 방언 말고 아람 방언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랍사게는 유다 백성이 듣도록 유다 방언으로 말하며 유다 백성을 모욕하였다.

[13-17절]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는 것을 받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붙임이 되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를 청종치 말라. 앗수르 왕이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랍사게는 또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치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이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말인 것처럼 선전하며 유다 왕을 모독했고 유다 백성의 힘을 빼고 무력화(無力化)시키려는 심리 전술도 사용했다.

[18-20절]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꾀임을 받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그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앗수르 왕은 더욱이 하나님을 자기와 비교하며 그의 이름과 권위와 능력을 발로 밟고 그를 모욕하고 모독하였다. 앗수르 왕의 말은 마귀의 말과 같았다. 마귀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며 성도를 절망시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성도에게 무슨 절망이 있는가? 마귀는 성도에게 두려움, 의심, 불신을 조장하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한다. 또 마귀는 교회들과 목사들을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모독한다. 그는 항상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려 한다.

[21-22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때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유다 백성은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않았다. 왜냐하면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귀의 장난과 위협과 모독적 말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때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는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한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말했다. 주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성도가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둘째로,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전쟁의 승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과 징벌로 주시는 전쟁이 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할 것이다. 유다 멸망 시 바벨론의 침공 같은 전쟁이 그러했다.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면대로, 적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이나 정당한 전쟁, 정당방위적인 전쟁이 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이다. 그는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실 것이다.

셋째로, 성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만 바라며 믿음과 의를 지켜야 한다. 불경건과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가져온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비로 멸망을 당했다(창 18:32). 후에 예루살렘 성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했다(렘 5:1).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의를 행하자.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고 의를 지키자.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고난의 현실도 능히 이길 수 있다.


37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1-4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한다. 또 왕은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어 현실을 그대로 알리며 기도를 부탁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합심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고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5-7절]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그들에게 “너희의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모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風聲)을 듣고 그 고토(故土)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8-13절] 랍사게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돌아가다가 그 왕이 립나 치는 것을 만나니라. 그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대하여 들은즉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가로되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너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건짐을 얻겠느냐? 나의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거하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 신들이 건졌더냐?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하라 하였더라.

랍사게는 앗수르 왕이 유다 서남부에 있는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돌아가다가 그 왕이 립나 치는 것을 만났다. 그때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그와 싸우려 한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너는 너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건짐을 얻겠느냐?”고 위협하였다.

[14-20절]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자로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 땅을 황폐케 하였고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이들은 참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으로 주만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앗수르 왕이 보낸 글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그에게 기도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자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확고히 믿었고, 또 열국의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일 뿐이며 참 신이 아님을 확신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눈을 떠서 유다 백성이 모욕당함을 보고 계시며 귀를 기울여 듣고 계심을 확신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고 여호와께서만 온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해주시기를 간구했다.

[21-25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니라. 네가 네 종으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한계 되는 높은 곳에 들어가며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밟아 말리리라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비방하고 모욕했으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고 하셨다. 앗수르에 대한 징벌을 암시하신 것이다.

[26-29절] 네가 어찌 듣지 못하였겠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같이, 푸른 나물같이, 지붕의 풀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았었느니라.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나를 거스려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네가 나를 거스려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들이 열국들을 멸한 것과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들의 풀같이, 푸른 나물같이, 지붕의 풀같이 패망하고 수치를 당한 것이 그가 태초에 정한 바를 이루신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앗수르 왕의 교만과 오만을 징벌하실 것이며 그를 자기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0-32절]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2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3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를 돌보시는 한 징조로 전쟁으로 인해 두 해 동안 농사짓기 어려울 것이지만 제3년에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유다 족속 중에 ‘남는 자’ 혹은 ‘피하는 자’를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인류는 부패하여 다 멸망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이다. 남북의 나라가 결국은 우상숭배로 다 멸망할 것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다 족속 중에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자들이며 장차 회복될 새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33-3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가라사대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지켜주시고 앗수르 왕이 오던 길로 돌아가 그 성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6-38절]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묘[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 고로 그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유다 왕 히스기야와 선지자 이사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왔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18만 5천명을 쳤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온 진영에 시체뿐이었다.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수도 니느웨로 돌아가 거했다. 또 그가 자기 신 니스록의 전에서 경배할 때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했고 그래서 그 아들 에살핫돈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울 때 기도하자. 유다 왕 히스기야는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기도로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였고 해결함을 얻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은 기도뿐이다(시 50:13; 빌 4:6-7; 약 5:13).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성전이나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가자.

둘째로,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바로 믿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평소에 알고 믿고 확신했었다. 믿음과 기도는 정비례한다. 주께서는 기도에 대해 교훈하시며 그의 재림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다(눅 18:8). 우리는 평소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자.

셋째로,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자. 히스기야는 위기의 현실에서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고 그의 인도하심을 기대했고, 마침내 그의 도우심을 체험했다. 앗수르 왕은 군사 18만 5천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당황하여 자기 나라로 물러갔고, 그 나라에서 자기 아들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우리도 위기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자.


38장: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1-3절]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그 즈음’ 즉 앗수르의 침공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때 즈음,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다스렸는데, 앗수르의 침공은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제14년 때의 일이었고, 그 즈음에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었다. 죄가 그의 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17절). 질병은 죄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선지자 이사야는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전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히스기야는 비록 나이가 젊었지만 평소에 경건하고 선하게 살았음이 분명하다. 소년 다윗처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지식과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때 우리는 믿음의 담력을 얻는다(요일 3:21). 또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눈물의 기도는 진심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이다.

[4-6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壽限)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는 즉시 하나님의 응답을 얻었다. 여호와께서는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자가 하나님이시라고 말했다(단 5:23). 주께서는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오늘밤이라도 우리 영혼을 부르실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눅 12:20).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뿐 아니라, 또한 예루살렘 성의 보호도 약속하셨다.

[7-8절]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10도를 물러가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는 10도 물러갔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自轉)을 거꾸로 돌리신 사건이었다. 그것은 여호수아 때 태양을 멈추게 하셨던 사건(수 10:12-13)과 함께 역사상 하나님께서 천체의 움직임을 직접 간섭하신 2대 사건이다.

[9-12절]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무덤]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나의 거처(도르)[‘수명’(KJV), ‘거처’(BDB, NASB)]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命)[생명]이 조석(朝夕)간에 마치리이다.

9-20절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 기록한 글이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죽을 때가 가깝다고 느꼈다.

[13-14절]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나의 명(命)[생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사자같이 자신의 모든 뼈를 꺾으셨다고 말한다. 즉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그가 주신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또 그는 제비같이, 학같이, 비둘기같이 슬피 운다고 표현한다.

[15절]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각근히 행한다’는 원어(엣닷데)는 ‘천천히 행하다, 신중히 행하다’(BDB), ‘겸손히 행하다’(NIV)는 뜻이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갔다오면 좀더 신중해지고 겸손해질 것이다.

[16절]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이에’와 ‘거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그의 긍휼과 능력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에 달려 있다.

[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그는 그의 질병이 자신의 죄 때문에 왔음을 시인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하셨고 그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다고 증거하며, 또 그가 큰 고통의 질병으로 고생했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평안을 주셨다고 간증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죄씻음과 평안을 주셨다.

[18-20절]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히스기야는 이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기를 결심한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한다. 산 자만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마다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엡 1장).

[21-22절] 이사야는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었고 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 하였었더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하자.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였다. 물론 그의 질병은 그의 어떤 죄 때문에 온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멀리하기를 결심하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며 담대하게 또 간절하게 기도하자.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며 자기 백성의 눈물의 기도를 잘 들으시는 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죽을병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을 15년간 더 연장해주셨다.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다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자. 물론 우리는 늘 죽음을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히스기야는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후에 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되었다. 그는 종신토록 신중하게 행하기를 결심하였고(15-16절) 또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그의 노래를 노래하겠다고 말했다(20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중히 행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리자. 찬송은 죄와 마귀의 권세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히 행할 바이다.


39장: 바벨론 사자의 방문

본장의 내용은 열왕기하 20:12-19에도 기록되어 있다.

[1절]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은 유다 나라의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내었다. 그 당시 아직 앗수르의 한 영토였던 바벨론은 므로닥발라단 때부터 독립국가로 나타나 앗수르와 힘을 겨루려 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므로닥발라단은 유다 나라와 애굽 나라 등과 연대하여 앗수르 나라를 압박하려 했던 것 같다.

[2절]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 나라의 사자의 방문을 기쁘게 맞았다.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신흥 바벨론 나라 사자의 방문은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유력한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자를 환대하며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다. 궁중의 보물과 국내의 모든 보물을 다 보여주었다.

그가 앗수르 왕을 물리친 일과 죽을병에서 나은 일이나 아하스의 일영표의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간 일 등은 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은혜를 증거했어야 했으나, 그 대신 나라의 보물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훌륭한 점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자랑하고 증거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교훈했고(고전 3:21-23), 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고백하였다(갈 6:14).

[3-4절]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누가 왕을 방문했고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히스기야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왔다는 것과 궁전에 있는 그의 보물을 다 보여주었다고 대답했다. 히스기야는 확실히 잘못 행하였다. 그는 장차 유다의 원수가 될 바벨론 나라 사자에게 유다의 재정적, 군사적 상태를 다 보여준 것이다.

[5-7절]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유다 나라는 장차 바벨론 나라로 인해 멸망할 것이다. 히스기야는 그런 바벨론 나라의 사자에게 나라의 중심부를 자랑하듯이 다 드러내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행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교만 때문이었다고 본다(대하 32:24-25). 사람이 교만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대신에 자신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히스기야의 실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대하 32:31).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심령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죄악성 때문에 교만하고 실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 사모해야 한다.

[8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장차 있을 유다 나라의 비극적인 멸망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선언을 겸손하게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자.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기보다 자신의 왕국을 자랑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그의 은혜만 증거하자.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고전 3:21- 23)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자.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고백하자(갈 6:14).

둘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며 의지하자.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지와 교만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우리도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 하나님의 귀한 사람 다윗이나 경건했던 히스기야가 실수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해야 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고 또 오직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을 따라 행할 때 몸의 죄성을 이길 수 있다(갈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