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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Isaiah) 11장: 메시아 시대 - 20장: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영국신사77 2020. 4. 14. 18:43


제목차례

11장: 메시아 시대

12장: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

13장: 바벨론에 대한 경고

14장: 바벨론 왕의 멸망

15장: 모압에 대한 경고

16장: 모압의 멸망

17장: 다메섹에 대한 경고

18장: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

19장: 애굽에 대한 경고

20장: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11장: 메시아 시대

1-9절, 이새에게서 난 한 싹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8)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 말씀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자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평범한 가문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새는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다고 보인다. 다윗은 동료들에게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고 말했었다(삼상 18:23).

이 예언은 메시아의 인성(人性)과 그의 낮아지심을 보인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40일이 지나 결례(潔禮)를 행하는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하려 했는데(눅 2:24), 그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을 나타낸다. 출산한 여인은 보통 1년된 어린양으로 속죄제를 드렸으나 경제적으로 유여하지 못한 자는 비둘기를 드렸다(레 12:6-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집에서 출생하셨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2절] 여호와의 신[영] 곧 지혜와 총명의 신[영]이요 모략과 재능[권능]의 신[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여호와 경외의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신’이라는 원어(루아크)는 ‘영’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신’은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강림하다’는 원어(누아크)는 ‘머무르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메시아 위에 머무르실 것이다. 그는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며 모략과 권능의 영이시며 지식과 여호와 경외의 영이시다. ‘여호와 경외의 영’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성령께서는 그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 마태복음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러나 사실상 예수께서는 본래부터 신성(神性)을 가진 자로서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증거하였다(요 1:14).

본절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께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음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9는 “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말한다.

[3-5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라는 원어(와하리코 베이레앗 에호와)는 “그가[여호와의 영께서] 그를 여호와를 경외함 가운데서 지혜를 얻게 하실 것이며”(KJV)라는 뜻 같다. 또 메시아께서는 공의의 심판자로 일하실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으실 것이다. 즉 그는 사람을 외모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그가 공의로 보응하시는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들을 죽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6-9절]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의 결과로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 평안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며 그 세계를 묘사한다.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새 세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평안이다. 거기에는 악한 짐승들도 없을 것이다. 모든 짐승들은 성질이 온순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세상에 상함과 해됨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과 경외함이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만일 그것이 문자적인 의미라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만일 비유적, 영적 의미라면, 신약시대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장차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받고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신인양성(神人兩性) 일인격의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요 3:16).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다(딤전 1:15).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받고 그를 진심으로 믿고 확신하고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알자.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롬 2:6-8)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요 5:22).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하셨고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했다(행 17:30-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마다 모든 죄를 멀리하고 오직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평안의 새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평안의 새 세계는 영적으로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인들이 거룩한 의인들로 변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평안을 얻었고 또 이 복음은 온 세상에 널리 증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성화가 불완전하듯이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나 천국은 이 예언이 이루어진 평안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義)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벧후 3:13) 그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10-16절, 만민의 기호

[10-11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이사야가 두 번 말한 ‘그 날’은 분명히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라는 원문은 단순히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KJV, NASB, NIV). 1절에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본절에서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아께서는 이새의 자손인 한 사람으로 오실 것이지만, 실상 그는 이새의 뿌리, 아니 모든 사람의 뿌리이시다. 그는 이새의 자손인 동시에 이새의 뿌리이시다.

‘이새의 뿌리’라는 말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뿌리이시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도 예수께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셨다.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새의 뿌리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며 이방 나라들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만민의 기호’라는 말은 ‘만민이 그를 믿고 따를 자,’ 즉 온 세상의 주님과 구주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온 세상의 주님과 구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딤전 1:15).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돌아오고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원문은 ‘열방이 그를 찾으리라’는 뜻이다. 또 주께서는 그 날에 다시 손을 펴셔서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 곧 동서사방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 남은 백성’이라는 말은 ‘남은 자’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은혜로 선택하시고 불러 구원하실 자들을 가리킨다.

[12절]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니.

메시아 시대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뿔뿔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도 돌아올 것이다.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중 남은 자들의 회복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롬 11:25-26).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적 회개와 구원을 암시한다.

[13-16절]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이 서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메시아 시대에 분열된 교회의 단합이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즉 구약교회가 서로 질투하고 갈등하였었다. 그러나 메시아 시대에는 참된 교회는 단합하며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주께서 남기신 새 계명이며 또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 즉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라고 하신 내용이기도 하다. 참 교회들은 일치단합할 것이다.

메시아 시대에 회복된 이스라엘 즉 신약교회는 그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할 것이다. 그것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남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대로(大路)가 열릴 것이다. 과연 신약교회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였다. 온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말리시고 유브라데 강을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갈 수 있게 하실 것이며, 또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해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실 것이다. 이 예언은 온 세계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힘있게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15절의 ‘애굽 해고(海股)’라는 원어(레숀 얌-미츠라임)는 ‘애굽 바다의 혀’(KJV, NASB)9)라는 뜻으로서 홍해의 북서쪽 끝, 즉 오늘날 수에즈만을 가리킨다고 본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9). 그는 고난 당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었다(마 24:14). 이제 그 일이 거의 이루어졌다. 이미 신약시대의 초기에 하나님의 복음이 주의 사도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광대하고 효력 있는 전도의 문, 구원의 문이 에베소에서 열렸다고 간증하였었다(고전 16:9). 또 그는 골로새서에서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말하였다(골 1:2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증거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찬송하였다고 하였다(계 7:9). 세계복음화는 거의 성취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종말의 증표가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의 기호, 곧 온 세상의 구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창제 전에 택하신 모든 백성이 다 회개하고 그에게 나아와 그를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천하 만민을 위해 구원의 큰 길이 열려져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온 세상에 다니며 만민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막 16:15). 하나님의 참된 교회들과 성도들은 전도자들을 세우며 훈련시키며 파송해야 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전도 활동에 참여하고, 또 전도후원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동참해야 한다.

12장: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

[1절]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그 날’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사 11:10).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감사하다’는 원어(야다)는 ‘감사하다’(NASB) 혹은 ‘찬송하다’(KJV, NIV)라고 번역된다.10)

그 날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이유는 하나님의 노가 누그러졌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의 진노를 가라앉히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하였는데, ‘화목제물’이라는 원어(힐라스테리온)는 ‘유화제물’ 즉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또 그는 로마서 5:9에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증거하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의 그치심, 곧 진노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이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이다.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뢰한다. 우리는 이 세상도,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 죄 가운데 방황하던 시간들을 끝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주 여호와11)께서는 우리의 힘, 우리의 노래, 우리의 구원이시다. 죄는 하나님의 징벌로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왔으나, 죄사함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 힘과 기쁨과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는 구원을 우물에 비유한다. 우물은 물 저장고와 다르다. 물 저장고는 물이 줄어들지만, 우물은 계속 물이 나오는 곳이다. 우물은 물이 풍성하다. 그 물은 목마름을 해소시킬 만한 시원한 물이며 우리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다. 또 그 물은 물맛도 좋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생명이다.

주 예수께서는 구원을 생수에다 비유하셨다. 그는 수가성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3-14). 또 그는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요한은 이 생수의 강이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설명하였다(요 7:37-39).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는다. 성령께서는 영생수이시다.

성도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의 감사와 찬송이다. 성도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다. 성도는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한다. 스바냐는 그 기쁨의 노래를 예언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습 3:14-15).

[4-6절]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할 것이다. 찬송은 일종의 전도가 될 것이다.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지극히 아름다운 일을 찬송할 것이다.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원어(게우스)는 ‘뛰어나신 일들’(KJV, NASB) 뜻이다. 그것은 메시아로 말미암은 구원의 일을 가리킨다.

인류의 구원은 역사적으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하였다(고전 15:3-4). 복음의 내용은 놀랍고 엄위하신 일들이다. 그러나 구원은 개인적으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건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구원은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또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이다. 구원은 의롭다 하심 곧 칭의(稱義)(롬 3:21-24)와 거룩하여짐 곧 성화(聖化)(롬 6:19, 22)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딤전 1:1; 딛 1:3).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따라 몸의 죄성을 이기며 거룩한 삶을 조금씩 이루어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했고(빌 1:6) 또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했다(고전 3:7).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예언했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의 위로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힘이 되신다는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들의 구원의 기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일, 곧 인류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일, 또 우리 속에 주신 구원의 체험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의 과거의 많은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쳤고 우리는 죄사함의 구원을 얻었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다. 성령의 생명수는 우리의 심령에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만방에 전해야 한다.

13장: 바벨론에 대한 경고

[1-2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너희는 자산(赭山)[벌거숭이산, 민둥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이사야가 바벨론 나라에 대하여 받은 경고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에 내리시는 멸망의 날이 가깝다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벌거숭이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부르라고 말씀하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치게 하시려고 부르실 자들을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 바벨론 나라를 치게 하실 것이다.

[3절]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치게 하려고 부르실 자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자들이며 하나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 바벨론 나라를 심판하실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며 바벨론 나라를 향하신 그의 노를 풀게 하실 것이다.

[4-5절]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산에 모인 많은 무리들은 먼 나라에서, 하늘가에서 바벨론 나라를 치러 올 무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이며,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의 온 땅을 멸하기 위해 부르신 군대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령관처럼 그들을 검열하시며 지휘하실 것이다.

[6절]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바벨론 나라의 멸망의 날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표현된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날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에 그 나라 백성들은 이 두려운 사실을 듣고 애곡할 것이다.

[7-8절]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선지자는 그 날의 두려움을 묘사한다. 그 날에 사람들의 모든 손은 피곤하고 각 사람의 마음은 녹으며 그들은 다 놀라 괴로움과 슬픔에 잡히며 해산하는 여인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고 두렵고 당황하여 얼굴이 붉게 상기될 것이다. 그 날의 전쟁은 참혹할 것이다.

[9-10절]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잔혹히 분내시며 맹렬히 노하시는 날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이며 죄인들을 멸하시기 위해 예비된 날이다. 그 날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빛을 잃을 것이다. 자연만물도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낼 것이다.

[11절]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세상의 악 때문에, 즉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악행들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악을 벌하려 하신다. 그는 이 세상의 악을 ‘교만’ ‘오만’ ‘강포’ ‘거만’이라고 표현하신다. 교만과 강포는 어느 시대에나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죄악들이다.

[12-14절]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이 세상은 사람을 위해 창조된 세상이지만, 사람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수효는 심히 적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맹렬히 진노하시는 날에 사람들은 쫓긴 노루같이,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놀라서 뿔뿔이 자기 고향으로 도망할 것이다. 바벨론 제국의 거민들도 그러할 것이다.

[15-16절] 만나는 자는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그 목전에 메어침을 입겠고 그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어느 전쟁이나 그러하겠지만, 바벨론 나라의 멸망 때에는 수많은 전사자(戰死者)들이 생길 것이며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앞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아내들이 욕을 당할 것이다.

[17-18절]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불쌍히] 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킬 나라를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진노의 도구로 쓰일 나라가 바로 ‘메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메대 사람들을 격동시켜 바벨론 사람들을 치게 하실 것이다. 메대 사람들의 무자비한 침공으로 바벨론 나라는 멸망할 것이다.

[19-22절]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그 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바벨론 나라는 황폐하여질 것이다. ‘영광’이라는 말(체비)은 ‘아름다움’이라는 뜻이고, ‘자랑하는 노리개’라는 원어(팁에레스 게온)는 ‘위엄의 영광’이라는 뜻이다(BDB). 바벨론은 열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했고 갈대아 사람들의 위엄의 영광이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제국이 멸망하여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며 그 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영영히 없을 것이다. 아라비아 사람들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그 가옥들에는 부르짖는 짐승이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그 궁성에는 이리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집에는 들개가 울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의 때가 가깝고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메대 사람들을 격동시켜 바벨론 나라를 쳐 멸망시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날 곧 그가 작정하신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실 것이다.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죄를 즉시, 철저히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가 컸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하고 교만하고 거만하고 강포하였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떤 죄를 깨달을 때 즉시,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의 안에만 거하자.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의 행위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으나 구주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신다. 그는 율법의 완성이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 거하며, 그의 의만 의지하면서 실제로 모든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버리고 오직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가야 한다.

14장: 바벨론 왕의 멸망

1-23절, 바벨론 왕의 멸망

[1-2절]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故土)에 두시리니 나그네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奴婢)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택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나그네된 자’ 곧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입하여 그들과 연합할 것이다. 즉 이방인들이 개종하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신약교회는 그들을 포함할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회복의 날에 힘과 세력을 얻어 이방인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군사적 정복이 아니고, 영적인 정복, 곧 복음 전파로 말미암은 회개와 구원이며, 그것은 신약교회가 복음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마 28:18-20).

[3-5절]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苦役)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12)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슬픔과 곤고와 수고의 고역에서 놓이고 안식을 얻는 날이 올 것이다. 파사 왕 고레스 때에 이 일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어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완전한 성취는 신약교회로 시작되어(마 11:28) 천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 날에 그들은 바벨론 왕에 대해 노래하기를, 학대하던 자가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폐하였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학대하고 압제하였던 바벨론 왕과 그 제국은 망하고 그 왕권은 폐하여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악인들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실 것이다.

[6-8절]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뜨리웠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작벌할 자 없다 하는도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과거 행적을 증거한다. 바벨론은 강한 세계적 제국이었고 그것을 제압할 세력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무너뜨리시므로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며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할 것이다.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그를 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이 나무들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 같다.

[9-11절] 아래의 음부(陰府)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바벨론 왕이 멸망할 때 지옥은 그를 맞이하기 위해 소동할 것이다. 영화롭고 강대한 나라, 비파 소리가 울려 퍼졌던 희락의 나라 바벨론이 멸망하다니, 지옥에 먼저 가 있던 열왕들이 다 놀라며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 영화를 누렸던 바벨론 왕은 죽어 구더기와 지렁이가 있는 누추한 곳으로 던지울 것이다.

[12-14절]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바벨론 제국이 세계적 위세를 드러내었을 때, 바벨론 왕은 교만하여 자신을 지극히 높은 자 하나님과 감히 견주려 하였다.

[15-17절]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驚動)시키며[놀라게 하며]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선지자는 바벨론 왕의 멸망을 말한다. 그는 이제 음부 곧 지옥의 맨 밑에 빠치울 것이다. 사람은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상급에 차등이 있듯이, 형벌에도 차등이 있을 것이다. 큰 죄를 범한 자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한 때 온 세계를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하며 파괴하며 정복하였던 바벨론 왕은 이제 지옥의 맨 밑에 던지워 고통과 형벌을 당할 것이다.

[18-20절]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 쫓겼으니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려 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네가 자기 땅을 망케 하였고 자기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일반으로 안장함을 얻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할지니라.

바벨론 왕은 죽은 후 무덤에 정상적으로 안장(安葬)되지도 못할 것이다. 악한 자들의 마지막은 항상 비참할 것이다.

[21-23절] 너희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 자손 도륙하기(마트베아크)[살육할 장소](BDB)를 예비하여 그들로 일어나 땅을 취하여 세상에 성읍을 충만케 하지 못하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은 그 선조들의 죄악 때문에 그 자손들이 살육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온 세상에 성읍을 충만하게 건립하지 못할 것이다. 바벨론은 멸망할 것이며 그 땅은 황폐할 것이다. 그 땅은 ‘고슴도치의 굴’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비로 소제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내가” “내가” 즉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는 일어나 그들과 그 자손들을 바벨론에서 끊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자. 바벨론 왕의 멸망의 이유는 강포와 교만 때문이었다. 그는 교만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견주려 했고 또 남을 압제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광과 희락은 다 없어질 것이다. 그는 지옥 맨밑에 떨어질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바벨론 왕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안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항상 의지하고 감사하자.

24-32절, 앗수르 나라와 블레셋 나라의 멸망

[2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그들을 자유로이 동원하시는 하나님 곧 모든 일들을 힘있게 행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가 확실함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지만, 그가 맹세하시며 선포하시는 말씀은 더욱 확실한 진리이다. ‘나의 생각한 것’과 ‘나의 경영한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작정하신 바를 다 이루신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의 성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 135:6은,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말했다.

[25-27절]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 아래 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나의 땅’ ‘나의 산’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킨다. 앗수르 나라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지배하였고 북쪽 이스라엘도 정복하였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파하시며 이스라엘 산에서 발 아래 밟으실 것이다. 그때에 앗수르의 멍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떠나갈 것이며 앗수르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의 날은 이스라엘에게 자유와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앗수르 나라가 당시 세계를 지배한 대제국이었으므로, 앗수르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은 곧 온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이었다. 실상,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열국들의 흥망성쇠는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주권적 작정과 섭리이며 그 작정과 섭리를 대항하거나 좌절시킬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신 일들을 폐할 자는 없다.

[28-29절]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 받은 경고라.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이사야는 또한 블레셋의 멸망도 예언하였다. ‘너를 치던 막대기’는 블레셋을 치던 남쪽 유다 나라의 세력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역대하 26장에 보면, 유다의 웃시야 왕은,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쳤었다(대하 26:6-7).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는 말은 블레셋을 지배했던 유다의 왕권이 쇠약해졌음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 일 때문에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 이유로서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독사’와 ‘불뱀’은 쇠약해진 유다 왕국에서 일어날 강한 왕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일지도 모르나, 역사적으로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열왕기하 18:8에 보면, 히스기야 왕은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다.

[30절]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너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너의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가난한 자,’ ‘빈핍한 자’는 유다 나라를 가리켰다고 본다.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지금은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그들이 배부르게 먹고 평안히 눕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뿌리가 될 자들을 기근으로 죽이실 것이며 그들의 남은 자들이 칼로 살육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31절]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게 되었도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 없느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블레셋 사람들이 다 소멸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블레셋 나라는 북방으로부터 오는 군대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북방에서 오는 연기’ 곧 ‘북방으로부터 오는 군대’는 바벨론 군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라는 말은 ‘대열에서 낙오한 자’라는 뜻이다. 그런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를 그 곳에도 보내셔서 블레셋을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32절]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이사야는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블레셋 나라가 멸망할 것이지만, 그 사건이 시온의 재건(再建) 곧 유다 나라를 재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이방 나라 사신들에게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고 대답하라고 전한다. 유다 나라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장차 하나님의 뜻 가운데 회복될 것이며, 지금 곤고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을 재건하실 때 그 시온 성 안으로 피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바벨론 나라도 멸망시키실 것이며 바벨론 왕이 멸망할 때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성취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앗수르 나라와 블레셋 나라의 멸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고, 선지자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세상의 만물과 만사를 그의 뜻 가운데 다 작정하셨고, 그 작정은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섭리의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편 115:3은,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말했고, 시편 135:6은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데서 다 행하셨도다”라고 말했다. 또 다니엘은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라고 증거하였다(단 4:35). 우리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자.

둘째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목표는 교회이다. 앗수르 나라와 블레셋 나라의 멸망은 시온의 재건을 위한 것이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다시 세우시고 곤고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로 피난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만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 예수 그리스도께 주셔서 그가 그들을 위해 대속 사역을 이루게 하신 자들, 즉 교회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우리를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셨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救贖)하셨고 또 성령을 통해 중생(重生)시켜 교회로 이끄시고 교회를 세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우리를 의(義)로 훈련시키신다. 성경은 성도들을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지상 생활은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며, 그것은 훈련과 징계를 통해 성화를 이루게 하시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 ‘선’은 무엇보다 우리의 성화를 가리킨다.

15장: 모압에 대한 경고

[1절]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모압은 사해의 동쪽 지역이었다. 모압은 롯의 큰 딸이 나은 아들 모압의 자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족속에 대해서 자세한 관심을 가지셨고, 모압의 패망을 경고하셨다. 모압의 패망은 하룻밤에 찾아올 것이다. ‘알’은 모압 중부의 성이며, ‘길’은 길하레셋이라는 성으로서 모압 남부의 중심도시인 큰 성이었다. 길은 북부의 디본과 함께 모압의 쌍둥이 수도이었다. 모압 알이 하룻밤에 망하여 황폐해지고 모압의 수도 길까지도 하룻밤에 망하여 황폐해질 것이다.

[2-5절]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털을 없이하였고 수염을 깎았으며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으며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으니.

모압이 멸망할 때 그 거민들은 그들이 섬기던 산당들에 올라가서 자기들의 멸망을 인해 통곡할 것이다. 사람들은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지붕과 넓은 곳에서 애통하며 심히 울 것이다.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북방 국경의 성이며 야하스는 중부의 동쪽 끝의 성이었다. 북방의 국경지역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중부의 동쪽 국경에까지 들릴 것이다. 그 멸망의 날에 용감한 군인들도 크게 부르짖을 것이며 사람들의 혼이 떨리는 큰 두려움이 닥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멸망하는 모압을 생각하며 놀람과 고통 속에 또한 아마 긍휼의 심령으로 부르짖는다. ‘그 귀인들’이라는 원어(베리케하)는 ‘그 피난민들’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소알은 모압의 서남쪽 끝, 즉 사해 남단에 있는 성이었다. ‘에글랏 슬리시야’는 ‘3년된 어린 암소’(KJV)라는 말로 ‘3년된 어린 암소같이 급하게’라는 뜻 같다. 그것은 모압이 멸망할 때에 급한 피난 행렬이 있을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6-9절]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이는 곡성(哭聲)이 모압 사방(게불)[국경]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13)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그 피난하는 때에는 푸른 채소 같은 먹을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을 것이다. 피난민들은 자기 소유물들을 챙겨 짊어지고 버드나무 시내, 즉 모압의 맨 남쪽에 있는 시내인 세렛 시내를 건널 것이다. 그 시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사해로 들어가는 시내이다. 곡성(哭聲)이 모압 사방 끝까지, 국경 지역까지 가득할 것이다. 살육이 가득함으로 디몬 물에 피가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고 말씀하신다. 모압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과 징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에게와 도피한 자들에게도 사자들을 보내셔서 그들로 죽게 하실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모압 지역은 황폐해 있다고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살피시고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본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모압의 16개 지명들을 열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고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자세한 관심을 가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에 세계복음화의 대명령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살피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둘째로, 우리는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깨어 있자. 본장은 하룻밤에 모압의 성들인 ‘알’과 ‘길’이 망할 것을 예언한다. 하룻밤에 멸망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깨어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42-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는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정상적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안일함은 금물이다. 우리는 안일하고 해이한 마음을 버리고 오늘이라는 날에 날마다 항상 깨어 진지한 마음으로 정상적 신앙생활을 힘쓰자.

셋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죄는 멸망을 가져온다. 그것은 심한 통곡과 두려움, 급한 피난 행렬,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의 궁핍, 살육의 가득함 등을 포함하는 무서운 멸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압을 심판하시되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만복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악인들을 공의로 엄하게 벌하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미움과 음란과 거짓 등의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그의 교훈과 명령에만 순종하자.


16장: 모압의 멸망

[1-2절]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산으로 보낼지니라.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이 땅 치리자’는 유다 왕을 가리킨 것 같다. 유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셀라’는 모압 남쪽 에돔의 보스라 부근 도시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모압 땅의 한 지역을 가리켰을 것이다. 선지자는 모압이 유다 왕에게 조공을 드리며 그를 섬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유다 왕에게 복종하라는 말이다. 그 말은 유다 왕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라는 뜻을 포함한다. 아르논은 모압의 북부 국경으로서 동서로 가로질러 사해로 흐르는 강이다. 모압이 멸망할 때 모압의 여자들은 보금자리를 떠난 새들처럼 방황할 것이다.

[3-4절]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본문은, 모압이 시온의 통치자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Amplified Bible, NASB, NIV), 선지자가 모압에게 계속 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한글개역, KJV, Poole, 박윤선). 그렇다면, 선지자는 모압에게,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단하여 유다 피난민들을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그 쫓겨난 자들로 그와 함께 있게 하고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의 피할 곳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선지자가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을 토색하는 자가 망하고 멸절하는 자가 그치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토색하는 자’ ‘멸절하는 자’ ‘압제하는 자’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망하였고’ ‘그쳤고’ ‘멸절하였으며’라고 과거형으로 표현된 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5절]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位)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본문은 다윗 왕국의 회복을 예언한다. 그 왕국은 인자함과, 충실함 혹은 진실함과, 공평과 의로 굳게 설 것이다. 이 세상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굳게 설 것이다. 다윗 왕국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신약교회 안에서 시작되었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천국, 즉 의와 평안이 충만한 천국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6절]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모압의 문제는 교만이었다. 모압은 심히 교만하고 거만하며 자신을 헛되이, 과장되이 자랑하였다. ‘그 과장이 헛되도다’라는 원어(로 켄 밧다우)는 ‘그의 헛된 말들은 옳지 않도다’라는 뜻이다. 모압의 자랑하는 말들은 다 헛되고 옳지 않았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높이는 태도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의 계명치 않는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7-8절]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모압은 이방 나라들의 침입으로 인한 성읍들의 파괴와 멸망과 밭의 곡물들과 열매들의 없음을 인하여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다. 길하레셋은 모압의 수도이다. ‘건포도 떡’이라는 원어(아쉬쉐)는 ‘건포도 떡’(BDB, NASB)이라는 뜻이든지, 혹은 ‘기초들’(KJV), ‘파괴로 드러난 기초들’(Gesenius)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9-10절]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실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나팔)[소멸됨이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선지자 이사야는 모압의 멸망을 동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모압은 이전에 풍성한 포도와 그 외의 여름실과의 수확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던 그 즐거움과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포도즙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그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시고 그것을 빼앗기도 하신다.

[11-12절]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선지자 이사야는 모압을 인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퍼한다. 모압 사람들은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그들의 신 그모스를 섬겼고 기도하였지만, 그들의 모든 종교적 행위와 기도가 헛되었다. 종교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며, 신이라고 다 괜찮은 것이 아니며, 경건하다고 다 선한 것이 아니다. 바른 경건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은 참 신을 섬겨야 하고 참 종교를 가져야 한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생활법칙으로 주신 십계명을 행해야 한다.

[13-14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3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소용이 없이 된다’는 원어(로 캅비르)는 ‘힘이 있지 않다’ 혹은 ‘수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BDB). 모압의 멸망은 일찍 예언된 바이었지만, 이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 것이며 그 남은 수는 심히 적고 그 국가는 미약하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모압은 헛된 우상숭배를 하며 심히 교만하다가 멸망했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경건해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여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떨어진다. 또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며 멸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은 모든 경건생활의 시작이다.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은 성경책에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지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교훈하시는 대로 절대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라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에 대해서는 쓴다.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는 우리가 그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그를 섬기는 것이며(신 10:12-13), 또 그의 명령하시고 교훈하신 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17장: 다메섹에 대한 경고

[1-3절]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메섹은 아람 나라의 수도이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는 아람 나라에 대한 경고이다. 그 내용은 다메섹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유다 왕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메섹을 쳤고 아람 나라를 멸망시켰다(왕하 16:9). 고고학적 기록물에 의하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내가 목베어 죽인 자들의 수효는 다 셀 수 없고 르신의 아버지 벤하닷의 왕국의 500개 성읍들을 훼파하여 무더기를 만들었다”고 말하였다(박윤선, 173쪽).

아로엘은 요단강 동남편 모압 국경 가까이의 이스라엘 성읍인데, 아로엘의 성읍들은 그 주위의 성읍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사람들 대신에 양들이 평온하게 눕는 곳이 될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다메섹에 관한 예언의 말씀에서 이스라엘 나라의 성읍들이 함께 언급되었다.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는 함께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은 ‘소멸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4-6절]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2, 3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4, 5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는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도 전한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해 마치 추수꾼이 추수하듯이 그것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나라를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지만 그들 중에 조금 남겨두실 것이다. 그 남겨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선택된 자들이다. 신약교회는 바로 그 남겨진 자들을 포함하며 그 남겨진 자들로 시작되었다.

[7-8절]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은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참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쳐다보며 바라보며 믿고 의지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섬길 것이다.

[9-11절]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移種)하고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절망적]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한다. 원문에는 ‘옛적에’라는 말이 없으나,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는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했던 가나안 족속들의 처소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범죄한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은,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했던 옛날 가나안 족속들의 성읍들이 황폐해졌던 것처럼, 황폐해질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는 까닭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장 큰 죄악이며 거기에서 그 외의 모든 죄악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의 이방 나라 종교와 그 풍습을 수입하여 본받고 섬겼으므로 ‘근심과 절망적 슬픔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멸망할 것이다. ‘없어지리라’는 원어(네드)는 ‘[황폐한] 무더기’라는 뜻이다(KJV, NASB).

[12-14절]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의 뛰노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물의 몰려옴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핍박자들과 노략자들도 멸망할 것이다. 많은 민족의 소동과 충돌은, 유다 나라를 침공했던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의 연합 동맹군을 가리키든지, 혹은 이스라엘 나라를 침공했고 또 유다 나라를 침공하려는 앗수르 나라와 그와 동맹한 연합군들의 소동과 충돌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실 때, 즉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그들은 바람 앞에 겨같이,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같이 될 것이다. 저녁까지 두려움이 되었던 그들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기 전에 멸망당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예루살렘 성을 공격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에 죽임을 당한 사건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노략한 자들의 분깃이며 보응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섬겨야 한다. 7-8절,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우리는 멸망한 이스라엘 나라처럼 사람들이 만든 헛된 우상들을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창조자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며 섬겨야 한다. 시편 96:5, 8-9,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레미야 10:14-16,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둘째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자. 9-10절,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시편 103: 2-3,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긍휼의 하나님을 의지하자. 4-6절,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2, 3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4, 5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면서도 은혜로 조금 남겨두셨다. 오늘날도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딤후 1:9). 우리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만 의지하자.

18장: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

[1-3절]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빠른]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구스는 애굽 나라의 남쪽, 곧 나일강 상류지역의 나라이었고 오늘날 수단이라는 나라의 동북부이다. 구스는 고대에 매우 강대한 나라이었고, 비록 한때 애굽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나, 애굽을 지배하기도 했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구스는 함의 맏아들이었으며 그 형제는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었다. 미스라임은 애굽의 시조이다.

선지자는 구스를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고 표현한다. 본문의 ‘구스의 강’은 나일강 상류이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총길이가 6,695킬로미터이다.14)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는 표현은 ‘날개 그늘 아래 있는 땅’(KJV) 즉 비교적 평안한 땅이라는 뜻이든지, 혹은 ‘날개 치는 땅’(NASB, NIV) 즉 무역이 활발한 땅이라는 뜻일 것이다. 구스(Cush)는 주전 2,000년에 이미 존재했던 나라로 고대에 지중해와 근동과 아프리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진 중심지의 역할을 했고, 구스인들은 농업, 예술, 정치, 종교, 금속 공업 등의 지식을 나누었고 또 무역의 중심지이었다고 한다(월드북 대백과사전). 나일강은 애굽 뿐만 아니라, 구스 사람들에게로 연결하는 수로(水路) 즉 주요 통로이었다. 나일강 하류에 자생하는 파피러스 나무들은 배를 만드는 좋은 재목이었다고 한다.

선지자는 구스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표현한다. 구스는 나일강의 큰 두 지류가 합치는 곳이다. 오늘날 그 두 지류를 백나일강과 청나일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오늘날 수단이라는 나라에 있다. 선지자는 또 구스를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구스는 고대에 일찍부터 힘이 있고 번성한 나라이었다. 구스의 멸망에 대한 소식은 그 당시에 온 세계의 모든 거민들에게 알려질 만한 뉴스거리이었다. 빠른 사자를 보내어 구스에게 멸망의 소식을 전하라는 말은 구스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뜻이 있고, 또 아울러 유다 사람들이 구스를 부러워하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다고 본다.

[4-6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혹은 ‘그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過夏)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過冬)하리라 하셨음이니라.

이사야는 심판자 하나님을 자기 처소인 하늘에서 죄인들을 조용히 감찰하시는 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쬐이는 햇볕같이 또 가을 더위에 이슬을 머금은 구름처럼 그들의 행위를 주목하시며 그들에게 언제라도 징벌을 내리실 수 있다. 그는 마침내 갑자기 추수 직전에 꽃이 떨어지듯이, 포도가 익어갈 즈음에 낫으로 그 가지를 베어버리듯이, 그래서 산의 독수리들이나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그것들이 여름을 나고 겨울을 나게 하시듯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때에 갑작스럽게 온다.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7절]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서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

이사야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인 구스가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다시 말하며 이 강대하고 역사 깊은 나라가 멸망할 때 그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산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구스 땅에도 임할 것이라는 것을 보인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 나라의 세력을 의지하지 말자. 아무리 강대한 나라 구스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파하실 것이다. 다니엘 4: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들의 권세를 크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나라의 세력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 나라의 권세자들을 의지하지 말자. 권세자라 하더라도 사람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

둘째로,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만 바라보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처소 하늘에서 온 세상을 감찰하신다. 그는 잠잠하신 듯하나 다 보고 감찰하시고 그의 정하신 때에 갑자기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시고 징벌하신다. 이 세상에서 그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를 힘써 섬기자. 구스는 패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며 그를 섬기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모든 사람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만 경외하고 오직 그의 계명들을 힘써 지켜야 한다.

19장: 애굽에 대한 경고

[1-4절]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그가[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 나라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신다. 그는 심판자로 빠른 구름을 타고 그 곳에 임하실 것이다. 그때 애굽의 우상들은 그 앞에서 떨 것이며 애굽 사람들의 마음은 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란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정신이 쇠약해지고 마술적 우상숭배에 더욱 빠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실 것이다. 그는 주전 670년에 애굽을 통일했다고 알려진 심히 포학했던 군주 프싸메티쿠스든지, 그의 아들 느고(주전 616-597년에 통치)이었다고 보인다.

[5-10절]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 시냇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달과 갈[갈대들과 골풀들]이 시들겠으며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은 탄식하며 무릇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는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백목[흰 천]을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애굽의 기둥이 부숴지고[부서지고] 품군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

‘기둥’이라는 원어(솨소세하)는 ‘귀족들’(BDB, NASB) 혹은 ‘직조공들’(KB, NIV)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을 마르게 하시며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며 갈대들과 골풀들도 시들 것이며, 그 주위 밭들에서 농사하는 농부들과 나일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이 탄식할 것이다. 애굽 땅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없어지고 입을 옷과 일할 직장도 없어질 것이다.

[11-15절] 소안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모략은 우준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고할 것이니라.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지파들의 모퉁이 돌이어늘 애굽으로 그릇가게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사특한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 있었고(시 78:43)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발했던 라암셋과 동일하다고 생각된다(출 12:37). 소안의 방백들, 즉 애굽 왕실의 방백들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들의 계획은 미련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대해 정하신 뜻 곧 그가 애굽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애굽의 지혜자들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소안과 놉의 방백들 가운데 ‘사특한’(이웨임)[뒤틀린, 일그러진] 마음을 섞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였다. 통치자의 참모들이 좋은 조언을 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바르게 발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다 섭리하신다.

[16-17절]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그 위에 흔들림을 인하여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인함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애굽 사람들은 두려워 떨 것이다. 그들의 두려워함은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손을 흔드시기 때문이다. 애굽 사람들은 유다 땅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애굽 나라의 현재와 미래도 그러할 것이다.

[18-22절]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라브 ב������)[우두머리, 대장]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 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애굽 안에 다섯 성읍이나 하나님을 알게 되며 그 중 하나는 ‘장망성’(이르 하헤레스 )이라 불릴 것이다. 이 도시는 고대의 중요한 도시인 ‘헬리오폴리스’(혹은 ‘온’)의 뜻인 ‘태양성’(이르 하케레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인다. 즉, ‘태양성’이 멸망하는 도시가 되고,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을 암시하였다고 본다.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섬기는 단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표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압박하는 자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 즉 신적 구주를 보내셔서 그들을 건져주실 것이다. 애굽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시대에 애굽의 알렉산드리아가 기독교 세계의 한 중요한 도시가 되었을 때 성취되었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실 것이며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며 그에게 서원하고 그대로 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심판자이시지만, 또한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구원자이시다. 애굽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25절]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쉘리쉬야)[세 번째가 되고](KJV, NASB, NIV)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세계에 생명 얻는 회개와 구원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애굽을 포함한 이방 나라들에도 전해질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모임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섭리자시며 심판자이시다. 애굽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그를 참으로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도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애굽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이 있으며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힘써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이시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만 즐거이 순종하자. 그것이 사람의 정로이며 그것이 평안과 행복과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20장: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1절]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본장의 말씀을 주신 때가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아스돗을 쳐서 취했던 해이었다고 말한다. 앗수르 왕 사르곤은 사르곤 2세로서 주전 722년부터 705년까지 통치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그는, 주전 722년 이스라엘 나라를 침공하여 멸망시켰던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의 왕위를 빼앗고 그를 이어 왕이 된 자이었다.

그는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그것을 쳐서 취하였다. 본문에 ‘군대장관’이라는 말(타르탄)은 ‘앗수르의 야전사령관 직함’이라고 한다(BDB). 아스돗은,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이어지는 고대의 중심도로인 해안 도로(Via Maris)에서 블레셋의 첫 주요 도시이었다. 주전 713년 아스돗이 앗수르를 배반했고 다른 도시들도 동참하였으며, 애굽은 그들에게 도움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주전 711년 앗수르는 아스돗을 점령하였다. 그것은 앗수르의 애굽 침공이 임박하였음을 의미하였다. 발굴된 조각문에 의하면, 사르곤은 “내가 아스돗으로 나아가 포위하고 정복하였다”고 기록하였다(Annals 224).

아스돗이 앗수르 왕에게 점령된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특별한 사건 때에 자신의 뜻을 알리셨다. 오늘날 그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주신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한 규범이다.

[2-4절]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아스돗이 앗수르에게 점령된 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겉옷을 벗고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부끄러운 내용의 이상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즉시 순종했다. 그는 그 명령대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는,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애굽 사람들과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포로로 잡혀 끌려갈 것을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3년 동안’이라는 말은 3년간의 계속적인 경고와 교훈의 뜻으로 보인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는 것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에게 또 유대인들에게 확실한 교훈이 될 것이다.

[5-6절]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본문의 ‘그들’과 ‘이 해변 거민’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유대인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애굽 나라와 구스 나라를 바라고 의지하며 자랑하였다. 그들은 애굽 나라를 믿었고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애굽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하나님 대신에 애굽 나라와 구스 나라를 의지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이제 애굽 나라와 구스 나라가 앗수르 나라에게 패망할 때 그들은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며 피할 곳을 몰라 당황해 할 것이다. 그들은 늦게나마 애굽 나라와 구스 나라가 참으로 사람들이 의지하고 자랑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사람이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노여워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이나 구스를 의지하지 말아야 하였다. 우리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노여워하시고, 우리는 어느 날 그것들 때문에 크게 낙망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을 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 의지하는 세상의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신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우리에게 큰 충격과 낙망이 되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았어야 하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의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였다. 자기 백성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그 의지하는 것들을 없어지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만 바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고 사람들이 본래부터 가져야 했던 진리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었다. 이제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은 인생의 정로(正路)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허무한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