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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Judges) 13장-21장[삼손 13장-16장, 사사시대의 혼란상 17장-21장]

영국신사77 2020. 4. 14. 18:25


제목차례

13장: 삼손의 출생

14장: 삼손이 블레셋 아내를 취함

15장: 삼손이 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임

16장: 삼손의 실패와 마지막 기도

17장: 미가의 우상숭배

18장: 단 지파의 우상숭배

19장: 기브아의 죄악

20장: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싸움

21장: 베냐민 지파의 회복


13장: 삼손의 출생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서부에서의 형편이었고 동부에서의 입다의 통치와 아마 시대적으로 중첩되었을 것이다. 10:7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셨다고 말했었다.

[2-5절]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단 지파의 마노아에게 아들을 주기를 뜻하셨다. 나실인에 관해서는 민수기 6장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쳐진 사람을 가리킨다.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치면, 그는 술을 멀리하고 포도나무 열매를 먹지 말아야 하며 그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말아야 하고 또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다(민 6:1-7). 그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고 거룩한 서원을 계속 기억하며 지켜야 했다.

[6-9절]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마노아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람을 그들에게 다시 임하게 하시고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셨다. 마노아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10-12절]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그 아이의 생활방식(미슈팟)과 그의 행위(마아세후)가 어떠하겠나이까?]

마노아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려 하였다.

[13-14절]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she)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마노아에게 주실 아들뿐 아니라, 그의 아내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나실인 서약의 규정에 준해 술을 멀리하고 깨끗지 못한 음식을 먹지 말고 하나님의 사자의 명하신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했다.

[15-16절]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염소고기 음식을 대접하기를 원하며 조금 머물러 주기를 청했다. 그것은 그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생각하였고 여호와의 사자인 줄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7-18절]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기묘’라는 원어8)는 ‘놀랍다, 오묘하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는 이사야 9장에서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리었다(사 9: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19-23절] 이에 마노아가 염소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이에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갔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를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과 동일하게 여겼다. 과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이었다.

[24-25절]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삼손은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40년간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주신 사사이었다.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마카네단) 즉 ‘단의 진영’(KJV, NASB 난외주)에서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의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정하신 때에 그의 종을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실 때가 되었을 때 그의 사자를 마노아에게 보내셨다. 인류의 구원은 우리가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일에 즐거이 동참하며 그에게 쓰임 받는 자가 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보내실 가정을 택하셨다. 그것은 마노아의 가정이었다. 그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한나처럼, 자녀가 없음이 그들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고 믿음과 기도로 살게 하였을 것이다. 마노아는 기도하며 응답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사자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하신 일을 이루시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자.

셋째로, 우리의 소망과 능력은 하나님밖에 없다.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에게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에게 소망은 하나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손을 보내주셨고 삼손도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사모하자.

14장: 삼손이 블레셋 아내를 취함

[1-4절]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이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중에서 결혼할 상대를 찾았다. 그것은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 함이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 알지 못했다. 삼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선한 소원이었다.

[5-7절]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8-10절]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14절] 무리가 삼손을 보고 30명을 데려다가 동무를 삼아 그와 함께하게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7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고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줄지니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3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베옷’이라는 원어(세디님)는 ‘세마포 보자기들’이라는 뜻이다(BDB, NASB). 그것은 밤에 겉옷처럼 걸치기도 했다고 한다. ‘겉옷’이라는 원어(칼리폿 베가딤)는 ‘갈아입는 옷들’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삼손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는 말의 뜻을 알아 맞추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3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15-17절] 제7일[제4일]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리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하여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삼손이 그에게 대답하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풀어 이르리요 하였으나 7일 잔치할 동안에 그 아내가 앞에서 울며 강박함을 인하여 제7일에는 그가 그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풀어 이르매 그 아내가 그것을 그 민족에게 고하였더라.

제4일에9) 그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 수수께끼를 알게 하지 않으면 그 아비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것은 옳지 않고 선하지 않았다. 우리는 악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18-20절] 제7일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30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 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딤나인들이 자기 아내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하고 그 수수께끼를 불법하게 알아낸 것에 대해 보복했고,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오랜 압제에 대한 보복의 시작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선한 소원을 따라 행하자. 삼손은 블레셋을 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소원이었다. 그것이 죄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마음의 선한 소원을 따라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싸우자. 삼손은 40년간의 블레셋의 압제에 대해 보복하기를 원하였고 또 딤나 사람들의 불법에 대해 분노하였다. 주께서는 주와 복음을 위해 집이나 가족을 버린 자에게 금세와 내세의 복을 약속하셨다(막 10:29-3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다(빌 2:22). 오늘날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를 위해 싸우며 일하겠는가!

셋째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자. 삼손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이었다. 주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에 대해 스룹바벨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슥 4:6).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할 때 오직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며 행하자.

15장: 삼손이 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임

[1-2절]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가로되 내가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가로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로 내가 생각한 고로 그를 네 동무에게 주었노라. 그 동생이 그보다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

삼손의 장인이 그 딸을 임의로 다른 이에게 준 것은 잘못이었다.

[3-5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삼손이 가서 여우 300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감람원’이라고 번역한 원어(케렘 자이스)는 ‘포도원과 감람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BDB, KJV, NIV, LXX, Vg, Targ). 삼손은 장인의 한 일에 대해 매우 분노했고 그 분노는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다.

[6절]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물질적 손실 때문에 삼손의 아내와 그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크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행위는 무지하고 악하였다.

[7-8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을 [다리와 허벅지를 치며] 크게 도륙[살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9-10절]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11-13절] 유다 사람 3천명이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유다 사람 3,000명은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말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었다.

[14-17절]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1천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1천명을 죽였도다.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 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임하였다’는 원문은 ‘여호와의 영이 힘있게 내려오셨다’는 뜻이다.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1천명을 죽였다. ‘라맛 레히’는 ‘턱뼈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레히’(레키)는 ‘턱뼈’라는 뜻이다.

[18-20절]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테슈아)[혹은 ‘승리’](BDB, NIV)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종이었다. 하나님께서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것은 그의 기적이며 삼손의 기도에 대한 그의 긍휼하신 응답이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다. 이 표현은 징벌의 기간과 삼손이 사사인 기간이 겹침을 암시하는 것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처럼 악을 행치 말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악을 행했고 삼손의 아내와 장인도 불살라 죽였다. 삼손이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은 공의의 보복이었다.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처럼 부당하게 이웃을 해치거나 죽이는 악을 행하지 말고 범사에 선한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인간은 존귀한 존재이지만, 범죄하고 징벌을 받아 죽어가는 사람은 그렇게 존귀하지 않다. 마지막 심판 때에 지옥에 던지우는 악인들은 그렇게 가치 있지 않다. 시편 49:20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말하며, 시편 119:119도,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신다’고 말했다. 사람의 존귀함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하는 데 있다.

셋째로,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만 의지하자. 삼손의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고백했다. 시편 62:11은,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신다(대하 16:9).

16장: 삼손의 실패와 마지막 기도

[1-3절]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기생’이라는 원어(잇솨 조나)는 ‘매춘녀’를 가리킨다. 삼손은 자신의 정욕을 통제하는 데 약하였다.

[4-6절]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1천 1백을 네게 주리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도 매춘녀이었던 것 같다. 그도 참 사랑보다 돈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은 1,100개가 은 1,100세겔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약 13kg에 해당하고, 1데나리온이 은 5g이므로 약 2,500데나리온의 가치이며 그것은 노동자의 약 7년치 수입에 해당한다.

[7-9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이미 사람을 내실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

‘푸른 칡’이라는 원어(예사림 라킴)는 ‘새 줄’(BDB, NASB, NIV)이나 ‘새로 잡은 짐승의 힘줄’(KB)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0-12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컨대 무엇으로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줄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들릴라가 새 줄을 취하고 그것으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같이 하였고 그때에도 사람이 내실에 매복하였었더라.

‘새 줄’이라는 원어(아보심 카다쉼)는 7절의 ‘푸른 칡 새 줄’과 원어는 다르나 뜻은 비슷하다.

[13-14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면 되리라.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직조틀의 바디와 위선을 다 빼어내니라.

‘위선’은 ‘베틀의 실’을 가리키고, ‘바디’는 베틀의 핀을 가리킨다.

[15-17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콜 립보)[그의 모든 마음]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모라)(razor, 면도칼)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삼손은 그에게 그의 모든 마음을 토하였다. 나실인이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은 율법에 규정된 바이었고(민 6:5),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의 모친에게 지시한 바이었다(삿 13:5).

[18-22절]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은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이 밀렸고 힘을 잃었다. 그는 잠을 깨며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고 했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그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눈이 뽑혔고 놋줄로 매여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22절에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23-27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가로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되 우리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송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3천명 가량이라.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였다. 또 백성들도 그들의 신을 찬송하며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감옥에서 삼손을 불러내어 그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였다.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했다.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도 남녀가 3천명 가량 있어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았다.

[28-31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지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말자. 사사 삼손은 말년에 가사의 매춘녀에게 들어갔었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였다. 그는 육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의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성령의 열매 중에는 ‘절제’의 열매가 있다(갈 5:23).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손처럼 실패자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잘 교훈하였다. 고린도전서 6:15-18,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서약을 잘 지키자. 삼손은 나실인 서약을 잘 지키지 못했다. 그는 그의 머리를 깎이지 않게 해야 했다. 삼손이 실패한 원인은 그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힘을 잃어버렸고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몇 가지 서약들이 있다. 첫째, 세례 서약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끝까지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결혼 서약이 있다. 결혼한 부부는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부부로서의 순결과 의무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셋째, 임직 서약이 있다. 목사나 장로는 그 직분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신구약성경과 우리 장로교회의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성경의 교훈대로 살며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며 섬기기를 서약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우리의 서약들을 성실히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자. 삼손은, 비록 범죄하고 실패하였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였고 응답을 얻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또 자신을 향해 행한 악에 대해 원수 갚기를 원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그가 기대어 있던 그 건물의 두 기둥을 붙들고 힘을 다해 몸을 굽혔고 함께 죽기를 구했다. 집이 무너졌고 블레셋 모든 방백과 모든 백성이 함께 죽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들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 삼손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을 드려 원수를 갚은 헌신과 희생의 행위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자. 우리는 늘 부족하고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구하면 이 세상을 승리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17장: 미가의 우상숭배

사사기 17-21장은 사사 시대에 두 가지 죄악의 예들을 증거한다. 그 하나는 우상숭배의 죄이며 다른 하나는 음행의 죄이다. 첫 번째 것은 미가의 집과 단 지파의 우상숭배의 예를 기록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의 음행의 예를 기록한 것이다. 우상숭배와 음행은 사사 시대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1-3절]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1천 1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가 은 1천 1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은 1,100개, 아마 1,100세겔은 삼손 때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준 금액으로서 매우 큰 액수이었다. 미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서 도둑질하였으나, 어머니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어머니께 사실을 고한 것 같다. 어머니의 돈을 훔친 것은 큰 죄이다(잠 28:24).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을 듣고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 여기에 도덕적 혼란이 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엄히 책망했어야 했다. 죄의 고백이 복 받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이미 저주를 선언한 후이었다. 그는 쉽게 저주하고 쉽게 축복하였다. 그것은 다 도덕적 결함이었다.

또 미가의 어머니의 경건도 순수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의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부어만들기를 원하였고 그 우상을 만들기 위해 그 은을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해 드렸다. 이것은 참으로 무지와 혼란일 뿐이다. 그것은 아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고 아들을 멸망케 하는 일이었다. 그가 아들을 참으로 위하려면 모든 우상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했다.

[4-5절]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2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우상숭배는 미가의 어머니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미가의 집에는 신당이 있었고 그는 에봇과 드라빔도 만들었다. 에봇은 제사장의 옷들 중 하나이다. 또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우상이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신상인 드라빔을 훔쳐 자기 약대의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서 그것을 숨긴 일이 있었다. 미가는 우상숭배자이었다. 그는 또 자기 아들들 중 하나를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만 될 수 있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미가는 에브라임 지파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그가 후에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을 보면 그는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아들들 중의 하나를 임의로 세워 제사장을 삼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악이었다.

[6절]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본문은 사사 시대를 잘 묘사한다(삿 21:25도).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주관주의와 인본주의의 넓은 길을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통일된 하나님의 지식이 없었다. 진리 안에서의 다양성은 좋은 것이지만, 진리에 대한 다양한 견해, 그것도 서로 모순되는 견해를 용납하는 것은 혼란일 뿐이다. 사사 시대가 바로 그런 종교적 포용주의 혹은 다원주의의 시대이었다. 그것은 결국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바른 길은 인간의 주관적 사상들을 버리고 성경에 계시된 진리의 바른 사상을 받아들이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7-9절]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유다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구별하는 표현이다(사사기 17장과 19장 및 룻기 1장 등에 나옴). 그는 레위인으로 거기 우거했다. 그는 거할 곳을 찾으려고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역에서 그들의 거처할 성읍으로 여섯 개의 도피성을 포함하여 48개의 성읍들을 얻었었다(수 21:1-4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음으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레위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찾아 방황한 것 같다. 그 레위인도 그러하였던 것 같다.

[10-11절]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레위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 단지, 그들 중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가는 그 레위 소년을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초청했다. 그 레위 소년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진 터이므로 그 집에 들어가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을 것이다.

[12-13절]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종교적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복을 사모했으나,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보다 오히려 그의 징벌을 받기에 적합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에게 하나님 대신에 절대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의 절대적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뿐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종적, 절대적 의미이시며 가치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우상숭배의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참된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의 지식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성경에 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신구약 66권에 충분하게 다 계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책에 정통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여러 사상과 주장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를 기울이며 그 교리와 생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건전하게 해석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죄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경건과 도덕성의 회복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온전한 인격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다(시 119:10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딤후 3:16-17). 우리는 모든 성경말씀을 다 믿고 그 모든 교훈을 다 행해야 한다. 우리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온전해야 한다.

18장: 단 지파의 우상숭배

[1절]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단 지파는 여호수아 때에 소라와 에스다올과 아얄론과 에그론 등의 성읍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 기업으로 얻었으나(수 19:40-46), 사사기 1:34에 보면, 아모리 사람이 그들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했고 그래서 그들은 다른 곳에서 기업의 땅을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2-6절]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단 자손들이 땅을 탐지하려 보낸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은 미가의 우상숭배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레위 소년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 소년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있으리라고 말했다.

[7-10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 다섯 사람은 라이스에 한가하고 평안한 사람들이 있으니 올라가 그들을 쳐서 기업을 삼자고 그 형제들에게 보고하였다.

[11-16절] 단 지파 가족 중 6백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단의 진영]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단 자손 6백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단 지파의 용사 600명은 라이스로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이전에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들에게 그 집에 레위 사람 제사장이 있음을 말하자 그들은 그 집 앞에 섰다.

[17-20절]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6백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땅을 탐지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은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했다. 그것은 명백히 강도짓이었다. 그들은 그 제사장에게 그들과 함께 가서 그들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고 제안하였다. 그 제사장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갔다. 그 레위 사람도 의와 진리 안에서 신실하게 행하지 않았다.

[21-26절]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단 자손들은 미가의 우상들을 강탈하였고 그들을 따라온 사람들을 죽음으로 위협하였다. 우상숭배는 부도덕한 일들과 친구이다. 참 경건만이 정직과 선함과 겸손과 진실을 동반한다.

[27-31절]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모세’라는 말은 히브리어 전통본문에는 ‘므낫세’라고 되어 있다.10) 이 구절은 정통유대교 서기관들인 마소라 학자들이 구약성경에서 글자의 진실성을 의심하여 글자를 정상적인 줄 위에 쓴 네 곳 중의 한 곳이다. 즉 마소라 학자들은 이 구절을 므낫세보다 모세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 모세라는 본문은 그가 레위 소년이라는 뜻에도 맞다. 그러나 므낫세라고 하면 어려움이 있다. 성경에는 레위 자손 중에 므낫세라는 이름의 아들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로잡히는 날까지’라는 표현은 사무엘이나 사울 때에 블레셋에게 패배한 때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때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 미가가 만든 새긴 신상이 단 자손들에게 있었다.

본장은 사사 시대의 한 예로서, 단 지파의 다섯 명의 정탐꾼이나 선발된 600명의 병사들이나 단 지파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음을 증거한다. 사사 시대에는 거짓된 신들, 거짓된 제사장들, 거짓된 예배들이 유행하였다. 오늘날에도 교회들과 교인들 가운에 여러 가지 혼란한 일들이 많다. 자유주의 신학, 교회연합운동, 은사주의, 세상적 음악, 돈 사랑 등의 풍조가 많다. 더 이상 경건하고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지 못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신구약성경에 계시되고 교훈된 대로만 믿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삼위일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또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고 그의 재림만 소망해야 한다. 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올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19장: 기브아의 죄악

본장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읍의 동성애와 집단 강간의 악행의 부끄러운 일을 그대로 증거한다. 이것은 인간의 극악한 부패성과 구약교회의 심각한 부패상을 증거한다.

[1-3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경건해야 할 이 레위인은 육신의 감정에 있어서 연약했고 절제심이 적었고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첩을 두었고 게다가 그의 첩은 음행을 했다. 음행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重罪)이다. 이 첩은 행실이 단정치 못했을 뿐 아니라 아내의 의무에 성실치 않은 자이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그 일에 대해 너그러운 용서심을 가진 자이었다.

[4-15절] 그 첩 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나흘만에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 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찌기[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 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일찍이]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첩의 장인은 그를 삼일 동안 머물게 하였고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였고, 나흘째 날에도 그를 머물게 하였고 다섯째 날에도 그렇게 하려 하였으나, 그 레위인은 해가 기울어가는 때에 일어나 떠났고, 해가 지려 하는 때에 여부스 곧 예루살렘 맞은편에 이르렀다. 그들은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려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다. 경건과 선행은 같이 간다. 악한 자는 불경건할 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없어서 이웃에게 불친절하고 나그네를 대접할 줄도 모른다.

[16-21절]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에브라임 출신으로 거기 우거하던 노인은 선하고 인정이 있었다.

[22-26절]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

‘상관한다’는 원어는 ‘안다’는 뜻으로 ‘성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 불량배들은 노인에 대한 공경심과 나그네에 대한 친절이나 예절이 없었고 폭력적이고 음란했다. 그들은 동성애의 음란 행위를 원하였다. 그것은 마치 소돔 고모라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였다(창 19:5). ‘망령된 일’(니발라)이란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악행’이라는 뜻이다. 그 노인은 두 번 “이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고 말했다. 두 번째의 원어는 강한 금지를 나타낸다.11) 노인은 경건하고 도덕성이 있었다. 그의 딸이 ‘처녀’이었던 것도 그 사실을 증거한다. 그 불량배들은 그 첩을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며 새벽 미명에 그를 놓아 보내었다. 집단 강간을 한 것이다. 동틀 때에 그 여인은 그 주인의 우거한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누웠고 마침내 죽었다.

[27-30절]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사사시대의 두드러진 두 가지 죄악은 우상숭배와 음란이었다. 작은 죄악의 포용은 한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부패시키고 한 부패된 마을의 포용은 한 지파 전체의 분위기를 부패시킨다. 작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그러므로 작은 죄 하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피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탐욕과 음행은 큰 죄이다.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했다(골 3:5). 또 히브리서 13:4는, 혼인은 모두에게 귀하며 잠자리는 더럽지 않은 것이지만,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또 인간편에서도 우리는 거룩하게 살려는 굳은 결심과 성실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부부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권징을 충실히 시행함으로써 경건과 도덕성의 해이와 부패를 막아야 한다. 교리적 도덕적 오류를 품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권면하며 책망하고 그와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20장: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싸움

[1-3절]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40만이었으며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본장에 ‘일제히’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두 번은 ‘일제히’라고 번역되었고(1, 8절) 한 번은 ‘하나같이’라고 번역되었다(11절). ‘일제히’ 혹은 ‘하나같이’라는 원어(케이쉬 에카드)는 ‘한 사람같이’라는 뜻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합심하여, 연합하여’라는 말(카베림)이 함께 쓰였다. 비록 기브아와 베냐민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의 단합은 깨어졌지만, 그 나머지 지파들은 일치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한 사람같이 모였다.

[4-7절]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음행’이라는 원어(짐마)는 ‘악행, 음탕함’이라는 뜻이며, ‘망령된 일’이라는 원어(네발라)는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이다. 기브아인들의 집단 강간은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8-11절]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연합하여 그 성읍을 치려 하였다.

[12-14절]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그들은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붙여 죽이게 하라고 말했으나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않았고 도리어 각 성에서 기브아에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였다.

[15-18절] 그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2만 6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7백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7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40만명이니 다 전사라.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그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용사의 수는 26,000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 700명은 다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왼손잡이 전사들이었다. 이스라엘 사람의 용사들의 수는 40만명이었다.

[19-23절]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만 2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과 싸웠으나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사람 22,000명을 땅에 엎드러뜨렸다.

[24-28절]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만 8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그 이튿날에도 베냐민 자손이 다시 이스라엘 자손 18,000명을 땅에 엎드러뜨렸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틀 동안 40.000명이 전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이틀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까닭이 무엇일까? 우상숭배와 음행은 단 지파나 기브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 전반의 문제이었던 것 같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어느 정도 징벌하셨다고 보인다. 또 기브아의 음란한 소문은 일찍 이스라엘의 다른 곳들에 알려졌을 것이나 그들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것을 권징하지 않았던 잘못도 컸다고 보인다. 작은 누룩은 마침내 베냐민 지파 전체에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29-32절]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제3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이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였다.

[33-37절]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1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2만 5천 1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간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초장’이라는 원어(마아레)는 ‘빈 들판’이라는 뜻이다(BDB).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베냐민 자손을 쳐서 파하게 하셨으므로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죽였다.

[38-42절]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쳐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연기 구름이 기둥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43-48절]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1만 8천이니 다 용사더라.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5천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2천명을 죽였으니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2만 5천이니 다 용사더라. 베냐민 6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쉬는 곳’이라는 원어(메누카)는 ‘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地名)인 것 같다(BDB). 이스라엘 사람은 베냐민의 땅의 온 성읍을 불살랐고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을 다 죽였다. 도망한 6백명 외에는, 한 지파가 거의 다 멸절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거룩을 잘 지켜야 한다. 교회는 법적으로 이미 거룩하지만 실제적으로도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었다(엡 5:26-27). 그러므로 교회는 음행을 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에 권징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권징이 없는 교회는 사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해이해진다. 우리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해야 하고(딛 3:10) 또 교인들 중에 음행하거나 탐욕적이거나 우상숭배하거나 남을 욕하거나 술취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와 교제를 끊고 그를 교회에서 내어쫓아야 한다(고전 5:11-1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말씀만 믿고 성경 교훈대로 모든 죄를 버리고 겸손히 의와 선만 실행해야 하고 또 교회는 성경의 교훈대로 권징을 충실히 시행해야 한다.


21장: 베냐민 지파의 회복

[1-4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번제는 속죄와 헌신을 상징하며 화목제는 속죄와 교제를 상징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속죄의 은혜를 구하며 헌신을 다짐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구한 것이라고 보인다.

[5-7절]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이스라엘 자손은 열두 지파 중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된 상홍을 안타까워하며 베냐민 지파의 회복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8-12절]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치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회중이 큰 용사 1만 2천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하였더니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4백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이스라엘 회중은 큰 용사 12,000명을 야베스 길르앗으로 보내어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고 길르앗 거민 중 젊은 처녀 400명을 얻었고 그들을 실로의 진으로 끌어왔다.

[13-15절]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그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으나 오히려 부족하므로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온 회중은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케 했고 야베스 길르앗 처녀들을 그들에게 주었다.

[16-18절]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회중의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의 회복을 위해 생각하였고 배려하였다. 그들은 잘못했던 형제들에 대해 너그러운 사랑을 가졌다.

[19-21절]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그들은 한 방책을 생각해내었다. 실로에서 해마다 여호와을 위한 절기가 있는데,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기를 포도원에 숨었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면 그들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한 맹세를 어기지 않고 베냐민 지파를 회복시킬 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22절]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콘누누 오삼)[우리를 위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라](BDB, KJV).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25절]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왕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를 추종하지 않고, 왕이 없는 자들처럼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한 맹세를 꼭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맹세한 대로 야베스 길르앗을 징벌하였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 맹세한 대로 베냐민 자손에게 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한 맹세를 지켰다.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된다. 신명기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전도서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시편 15:4, “[하나님의 장막에 유할 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우리는 하나님께 한 맹세를 기억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꼭 지키자.

둘째로, 우리는 형제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졌다. 비록 베냐민 지파가 잘못하여 징벌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거의 멸절된 그 지파를 긍휼히 여기며 그 지파가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며 그 방책을 모색하였다.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5,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로마서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형제를 책망하거나 징벌할 때에도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셋째로, 우리는 사사 시대의 혼란을 본받지 말자. 25절,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시고 또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는 그를 왕으로 모시고 그가 주신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우리의 생활의 지침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미주

1) MT, BDB; Vg, Targ, KJV, NASB.

2) ‘여선지’라는 원어(잇솨 네비아)는 ‘여자 선지자’라는 말로서 ‘여자’(잇솨)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3) ‘극히 약하다’는 원어(핫달)는 ‘가장 약하다’는 뜻이요, ‘제일 작은 자’라는 원어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자’라는 뜻이다.

4) ‘반드시’라고 원어(키)는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KJV, NASB), 아마 단지 직접화법을 도입하는 접속사일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번역할 것이 없다(NIV, BDB).

5) Lange, NIV.

6) Matthew Poole, A. R. Fausset, NBC.

7) ‘너와’라는 원어(알레카)는 ‘너 때문에’ 혹은 ‘너뿐 아니라’라는 뜻이라고 본다.

8) 히브리어 성경에는 필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케팁), 마소라 학자들은 펠리라고 읽으라고 제안하였다(케레).

9)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제7일’이라고 되어 있으나 어떤 영어성경들은 고대의 역본들(LXX, Syr, It)을 따라 ‘제4일’이라고 본문을 고쳤다(NASB, NIV). 그것은 문맥적으로 타당해보인다.

10) 어떤 영어성경들(KJV, NASB)은 히브리어 전통본문대로 ‘므낫세’라고 읽지만, 고대 헬라어 70인역(LXX), 옛 라틴어역,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모세’라고 읽었다. ‘게르손’은 원문에 ‘게르솜’이라고 되어 있다.

11) 첫 번째의 ‘행치 말라’는 원어는 알 타아수이지만 두 번째의 ‘행치 말라’는 원어는 로 타아수이다. 로라는 단어는 강한 금지를 표시할 때만 쓰인다.

12)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과 옛 수리아어역은 “그 여자가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고, 어떤 영어역이 그것을 채택했다(KJV, NASB). 그러나 히브리어 전통본문은 “그 남자[보아스]가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다(MT,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