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강해
김효성 목사
2019년 12월 6일 수정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마 5:18; 요 10:35)와 사도 바울(갈 3:6; 딤후 3:16)의 증거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된 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야곱 벤 카임에 의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본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고 보인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차례
1장: 여호수아를 격려하심
2장: 라합의 붉은 줄
3-4장: 요단강을 건넘
5장: 세 가지 준비
6장: 여리고성을 정복함
7장: 아이성에서 실패함
8장: 아이성을 정복함
9장: 기브온 사람들
10장: 아모리 다섯 왕을 죽임
11장-12장: 하솔의 연합군을 멸함
13장: 레위 지파의 기업
14장: 갈렙의 온전한 순종
15-17장: 유다와 요셉의 기업
18-19장: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20장: 도피성
21장: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22장: 세 지파가 큰 단을 만듦
23장: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24장: 세겜에서 언약을 세움
서론
여호수아의 히브리어 명칭은 예호슈아이며 헬라어 70인역 명칭은 ‘예수’와 같은 단어인 예수스 !Ihsou'"이다. 여호수아의 연대는 대략 주전 1485-1375년이다.1)
본서의 저자는 여호수아이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본서를 기록하였다(딤후 3:16). 그러나 본서의 끝부분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그 후의 일들(24:29-31)이나 15장에 기록된 갈렙의 딸 악사와 옷니엘 이야기(15:13-17) 또 19장의 단 지파의 확장(19:47) 등에 대한 기록들은 아마 엘르아살이나 그의 아들 비느하스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1887년에 발굴된 텔 엘 아마르나 서신2)은 여호수아 군대의 가나안 침공에 대한 가나안인들의 증거이다. 예루살렘 왕 아브디 헤파는 이 서신에서 바로에게 ‘하비루’(히브리인)가 모든 땅을 점령했다고 보고하였다. 또 바벨론에서나 마리와 누지에서의 발견은 주전 2천년대 초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역사에 하비루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또 우가릿에서의 발견은 하비루가 애굽 기록에 나오는 하비루와 동일한 사람임을 확증했다. 학자들은 아마르나 서신의 하비루는 여호수아 군대의 히브리인과 동일시된다고 확신한다. 에드워드 메이어는 말하기를, “히브리인 혹은 이스라엘인과 아마르나 시대에 팔레스틴을 침공했던 아마르나 비문에 나오는 하비루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 . .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3)
여호수아의 주요 내용은 가나안 땅의 정복과 분배이다. 1-12장은 가나안 땅의 정복에 대해, 13-22장은 가나안 땅의 분배에 대해 증거하며,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이다.
또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21: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Faussett-Brown, A Commentary.
1장: 여호수아를 격려하심
[1-4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의 종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러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 거기서 죽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0년이 지난 때,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에 있었다. 모세의 사명은 끝나고 그를 섬기던 여호수아의 사명이 시작되려 한 때이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열 정탐꾼과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40년 방황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 했던 때이었다. 하나님의 종, 능력과 기적의 종 모세를 옆에서 섬기던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임무와 사명이 주어지는 그 중차대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백성을 이끌고 그가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다.
[5-9절]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세 가지의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 한번은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에 마음의 용기와 담력이 꼭 필요하였다. 그는 가나안 정복을 위해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전쟁을 치를 군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덕은 마음의 용기와 담력이다. 군인들이 용기와 담력이 없다면 전쟁에서 이미 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군인들이라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쟁과 같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 원수 마귀와 악령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우리의 성화는 영적 싸움의 과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의 풍조와 사탄의 시험과 끊임없이 싸운다.
전도나 봉사의 일도 마찬가지다. 마귀는 특히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과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을 가장 싫어한다. 전도와 교회 건립의 일은 마귀의 일차적 공격 목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많은 어려운 일들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매우 약하다. 사람은 작은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기 잘한다. 누구든지 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울함과 열등감과 패배감을 가지기 쉽다. 그것이 사람에게 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힘이 되신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고 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말했다(시 18:1, 29). 선지자 이사야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다(사 40:28-3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교훈했고(고전 16:13) 또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교훈하였다(엡 6:10).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 중 두 번째는 모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승리하는 길이 군사력이나 지도자의 능력이나 지도력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에서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 패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위의 이방 사람들의 종교와 문화와 생활 방식에 눈길을 돌리며 그것을 모방하는 데서 기인했다. 그것이 우상숭배와 세속화의 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말로 자유주의화, 포용주의화, 다원주의화의 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타락의 시작이다. 이것이 망하는 길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전도와 봉사의 일에서도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 중심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그것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그것이 불신앙과 불순종과 죄이며 실패의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의의 길이요 승리의 길인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해야 한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주야로 묵상하기를 원하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원하시는 것이다. 경건하고 의로운 삶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이요 복된 길이다. 시편 1편은 악인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말했다(시 1:1-3). 성도들의 용기와 담력도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생긴다. 죄인들은 담대함이 없다. 그러나 의인들은 사자같이 담대하다(잠 28:1).
죄는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다. 죄는 재앙과 멸망을 초래한다. 그러나 의는 승리의 길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영적 전쟁터 같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밖에 없다. 능력과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세상에는 복잡한 일들이 많고 신앙생활의 여정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방해와 유혹들이 많지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즉 그의 말씀 순종으로 넉넉히 이긴다(롬 8:37).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의 세 번째 내용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형통함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하고 의롭게 살면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과 봉사의 생활에서 승리하고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진리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의 모세 율법에서 밝히 증거된 바이다. 잠언도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치료, 건강]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다(잠 3:7-10). 건강도 경제도 그러하다. 선지자 이사야의 증거대로,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57:21). 주께서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즉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뜻을 행하며 의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더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33).
[10절]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관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는 백성의 관리들에게 삼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명하였다.
[12-15절]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여호수아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모세의 명대로 너희가 먼저 무장하고 너희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 그들을 돕고 가나안 정복이 마치면 요단 동편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16-18절]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다짐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한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의 큰 위로이시며 큰 기쁨이시며 큰 힘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밤낮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의 교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온전히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바른 신앙생활과 열매 있는 봉사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義)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이다.
셋째로, 우리가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며 또 그렇게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통과 평안과 승리를 약속하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또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또 마귀와 악령들의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복 주시면 우리는 평안을 누리며 승리할 것이다. 또 우리의 봉사의 삶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과 승리를 항상 주실 것이다.
2장: 라합의 붉은 줄
[1-7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은밀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조나)[매춘녀, 창녀]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아마 줄기들 안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가나안 땅의 여리고 성에 은밀히 보냈다. 보냄을 받은 두 사람은 라합이라 하는 창녀의 집에 유숙하였다. 두 정탐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수상히 여긴 사람이 그들에 대하여 여리고 왕에게 보고했다.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이 맡은 일은 하나님의 선한 일이었고, 또 그들이 라합에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14절)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에게 믿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 날 밤에 큰 어려운 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라합을 통해 그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들은 그 여자가 자기들을 숨겨주리라고 생각지 못했겠지만, 그 여자는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 거기에 벌여놓은 아마 줄기들 안에 그들을 숨겨주었고 또 그들을 찾는 자들에게 거짓말까지 하였다. 라합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숨겨주었다. 그들은 기이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는 때때로 어려움이 있고 성도의 삶 속에도 때때로 환난과 고난이 있지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마 10:29) 환난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오며(사 45:5-7),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고난 중에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8-11절]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아무에게 아무 용기도 남지 않았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
정탐꾼들을 숨겨준 라합은 여리고 성의 창녀이었다. 라합은 천한 직업과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왜 그가 그런 직업을 가졌는지, 왜 그가 그런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는 너무 가난한 환경 때문에 혹은 그것이 쉽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혹은 실수로 그런 데 빠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젊음이나 미모는 한때뿐이며 꽃이 시들듯이 사람의 몸은 조만간 늙고 병들게 될 것이다. 또 그 전에라도 사람의 심령은 그런 비정상적인 삶 속에서 참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라합이 그런 생활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나 그는 그런 생활 속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로 나올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합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 당시에 세리와 죄인들과 창녀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라합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라합의 믿음은 그가 그 정탐꾼들에게 한 고백 속에 나타나 있다. 그는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으로 건넜다는 소문과 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를 정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라합은 또 가나안 땅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심히 두려워하고 낙담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용기를 잃었다고 말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은혜로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하늘 위에서와 땅 아래에서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하였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요 영생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오늘날 기독교 안팎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유행한다.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가 다 한 하나님을 추구하고 다 한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종교는 없다고 말한다. 한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예의 없고 편협하고 독선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원화 사회 속에서 모든 사상, 모든 종교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진리이지만, 다른 종교도 그 나름대로 진리이며 이런 태도가 오늘날 종교에 대한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주의는 구약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충만했던 배교의 시대의 모습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3).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라고 말하였다(렘 10:10-11). 시편 96:5는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고 증거하였다.
죄악된 가나안 땅에서, 죄악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던 라합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나타남이며 이방인 구원의 예표(豫表)이었다. 라합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1:5에서 메시아의 족보에도 언급되었다.
[12-14절]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善待)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라합은 그들에게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선대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정탐꾼들은 그의 요청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15-21절]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붉은 색 실의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집이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렸고 그들의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었다. 그 붉은 줄은 라합과 그의 가족들에게 생명줄이며 구원의 줄이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장자 재앙의 때에 심판의 천사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집의 대문 문 좌우 설주와 문 상하 인방에 발랐던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았다. 이것들은 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했다. 그 피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마지막 대심판의 진노를 피할 것이다.
[22-24절]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따르는 자가 돌아가도록 사흘을 거기 유하매 따르는 자가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만나지 못하니라.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그 당한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정탐군들은 산에서 3일간 숨었다가 진으로 돌아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 간담이 녹더이다”라고 믿음 있는 보고를 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창녀 라합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라합은 천한 직업과 신분의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믿었고 구원을 요청했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죄인도 구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둘째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일과 광야에서의 일들을 듣고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다. 오늘도 구주 예수에 대한 소식인 성경을 읽고 듣고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셋째로, 라합이 창문에 맨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우리의 과거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지금 하나님께 나아와 구주 예수의 속죄의 피를 마음의 문에 바르고 붉은 줄을 마음의 창에 매는 자, 즉 구주 예수님을 믿는 속죄신앙을 가진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3장: 요단강을 건넘
[1-6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3일 후에[3일 끝에](NASB)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相距)가 2천 규빗[약 900미터]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奇事)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통과해야 하였다. 그 많은 회중이 강을 건너야 하는 일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기를 뜻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4)이 하나님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면 그 뒤를 좇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가 2,000규빗쯤, 약 900미터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아야 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을 성결케 해야 했다.
[7-1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요단 안에 서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12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고 그 안에 서야 하였다. 여호수아는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고 말하였다.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을 “온 땅의 주”라고 두 번이나 표현하였다(11, 13절). 온 세상의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으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설 것이라고 말하였다.
[14-17절]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5)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모맥 즉 보리를 거두는 시기가 되었다. 유대 땅에는 겨울이 우기(雨期)이며 보리를 거두는 초봄에는 요단강 물이 항상 언덕에 넘쳤다. 그러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곧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서 일어나 쌓였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졌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요단강 물이 그치고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넌 이 사건은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사건과 같았다.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었다(출 14:21-22).
후에 선지자 엘리야 때에도,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와 함께 요단으로 갈 때 엘리야는 겉옷을 말아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넌 일이 있었다(왕하 2:8).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이라는 어려운 난관 앞에 선 이스라엘 회중을 이와 같이 기적으로 인도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일이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온 땅의 주이시다. 그는 요단강까지도 주장하신다. 그가 원하시면 그 강물의 흐름을 그치게 하실 수 있다. 그는 40년 전에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고 이제 요단강에도 그렇게 하셨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따를 때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결함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온 땅의 주인이신 그는 우리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심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주의 명령이라면 요단강에라도 발을 내딛어야 했다. 하나님의 제사장된 우리는 그가 명하시는 모든 말씀 곧 모든 성경에 계시하시고 교훈하신 바를 다 믿고 다 순종해야 한다.
4장: 기념하는 열두 돌을 세움
[1-7절]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게 하셨고 그들이 요단강 가운데 곧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여 그들이 유숙할 곳에 두게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강 물이 끊어진 역사적 사건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8-9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였다. 그들은 요단 가운데 하나님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어깨에 메어 가져와 그 날 밤 그들이 유숙할 곳에 두었다. 또 그들은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도 돌 열 둘을 세웠다(히브리어 원문, KJV, 한글개역). 그 돌들은 ‘오늘까지’ 즉 20여 년 후 여호수아가 이 성경을 쓸 때까지에도 거기 있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그 날 열두 개씩의 돌을 두 군데 세웠다고 보인다. 하나는 그들이 그 밤에 유숙하였던 길갈에 세웠고(4:8, 20), 또 하나는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세웠다(4:9). 요단강 가운데 세운 돌들은 아마 더 큰 것들이었을 것이고 열두 개를 세운 것이 물 위로 나왔든지 혹시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요단강 물이 줄어들 때 보였을 것이다.
요단강의 기적이 역사적 사건인가? 그렇다, 그 증거는 열두 돌들이었다. 하나는 길갈에 세워져 있고, 하나는 요단강 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열두 돌들은 하나의 ‘표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들에 대한 증언들을 듣고도 믿지 않는, 심령이 어둡고 완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증거들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기적들을 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10-14절]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4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궤를 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건너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들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건넜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소속 군사 4만명 가량은 무장하고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렀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눈 앞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고, 백성들은 그의 사는 날 동안 모세를 두려워하였듯이 그를 두려워하였다.
[15-1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자 요단 물은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이전처럼 언덕에 넘쳤다.
[19-24절] 정월 10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는 그 열두 개의 돌을 그들이 유숙한 길갈에 세웠다. 그는 또, 후일에 그들의 후손들이 그 돌의 의미를 물으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마르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그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셨음을 말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 그를 영원히 경외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게 하신 목적은 첫째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게 하시기 위함, 즉 그를 바로 알고 경외하며 믿고 섬기며 순종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은 역사적 사실들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거짓 증거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이다. 또 우리는 이런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더 굳게 믿게 된다.
또 요단강 기적은,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고 그들이 그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거주민들을 멸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고 보인다. 가나안 족속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으나 그들은 힘있는 족속들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상대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기적을 체험할 때 가나안 정복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요단강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또 오늘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한다. 성경의 많은 기적들은 하나님을 증거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며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 우리들을 위해 요단강 기적을 포함하여 많은 기적들을 주셨다. 우리는 그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영원히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에 증거된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그를 섬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요단강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과 영생을 약속하셨고 이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성경의 교훈대로 선하게 살고 참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힘쓰게 하셨다. 우리 앞에는 장애물들이 많고 우리는 힘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 되신다.
5장: 세 가지 준비
[1절]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 땅 왕들은 요단강 기적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았다.
[2-3절]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백성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다. 할례는 남자의 포피(생식기 귀두부를 싼 가죽)를 잘라버리는 의식이다. ‘할례산’이라는 원어는 ‘포피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4-9절]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40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범죄함으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광야에서 다 죽었고,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지금 40세 미만인 자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성이 할례를 받고 진중 각 처소에서 낫기를 기다릴 때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곳을 길갈이라고 불렀다. 길갈이라는 원어(ל������������������)는 ‘바퀴’ 혹은 ‘굴러감’이라는 뜻이다.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이 무엇일까?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복된 표시이었고 애굽인들과 같은 할례 없는 자들은 그 언약과 복이 없는 자들이며 수치스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할례를 받지 못했던 자들은 애굽인들과 같았었는데, 이제 할례를 받음으로 그런 수치스런 상태를 면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할례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다, 할례는 그렇게 중요하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언약의 표이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이므로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3-14절).
할례는 불결의 제거, 죄의 제거, 곧 죄씻음과 성결을 상징하였다. 죄가 인류의 불행의 근본 원인이요, 죄씻음이 그 해결책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모든 사람은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세례로 표현된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세례는 주의 명령이다. 사람은 죄를 가진 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그 결과는 지옥 형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사함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듯이, 신약시대에 모든 사람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된다.
[10-12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14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받지 못했던 자녀들에게 길갈에서 할례를 베푼 후에 그 달 14일 저녁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기억케 하는 절기이다. 애굽 왕 바로는, 430년 동안 애굽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열 번째의 재앙 곧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당한 후 바로는 비로소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었다. 그 죽음의 재앙이 있었던 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의 좌우 설주와 상하 인방에 발랐고 심판의 천사는 그 집을 넘어갔다.
유월절은 할례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백성과 구별하신 표이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은 후에만 유월절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출 12:14).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고 확실히 큰 유익이 있었을 것이다.
구약시대의 유월절 규례는 신약시대의 성찬식으로 이어진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성찬은 주의 명령이요 신약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속죄의 사역을 상징한다.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모든 자들은 주께서 제정하신 이 의식을 지켜야 한다. 세례받은 모든 신자는 이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하늘로부터 내려진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으나 그들이 유월절을 지킨 다음 날 그들은 그 땅에서 얻은 곡식으로 만든 무교병 즉 누룩 넣지 않은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고 그 땅에서 얻은 곡식을 먹은 다음 날 만나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만나를 얻지 못했고 그 해부터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광야 생활을 위해 주셨던 하나님의 비상 식량인 만나는 가나안 땅에서는 계속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믿으나 기적주의는 아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계시 시대에 주셨던 비상한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방식은 성경말씀을 통한 신앙생활이다.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증거된 하나님의 진리들을 다 믿고 그 말씀의 교훈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참된 기독교이다.
[13-15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신비한 인물이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엎드려 절함 즉 경배를 받았고, 여호수아는 그를 ‘나의 주여’라고 불렀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사실은 그가 신적 존재임을 나타낸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떤 천사였다면, 그는 여호수아에게 경배받기를 거절했을 것이다(계 19:10). 또 그가 여호수아의 선 곳이 거룩하다고 말한 것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아니면 감히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신적인 존재이신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구약시대에 종종 나타나셨던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로 불리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본다.
그가 이때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를 위로 격려하시고 그가 그와 함께하심을 기억시키고 그가 친히 이스라엘 군대를 도우실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군대’는 이스라엘 회중을 가리킨다고 본다. 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 곧 교회의 우두머리이시다. 그는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과 함께 싸우시며 그들을 진두지휘하시며 원수들을 멸하실 것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거룩함과 경외함과 복종을 요구하시는 뜻이라고 본다. 주의 일을 하려는 자는 일상적인 마음가짐을 버리고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주께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는 일이 필요했듯이,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성도가 되어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세례는 주의 명령이며 모든 믿는 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의식이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과 복종을 고백하는 표이다.
둘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켰듯이, 오늘 우리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세례처럼 성찬도 주께서 제정하시고 명하신 규례이다. 그것은 우리의 속죄 신앙의 고백이다.
셋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한다. 우리의 개인적 신앙생활이나 복음 전도나 참 교회의 건립의 일은 영적 전쟁과 같다. 마귀는 그런 일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장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만 의지하고 힘과 위로를 얻고 싸워야 한다.
6장: 여리고 성을 정복함
[1-7절]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본장은 요단강 서쪽 가나안 땅 정복에서 첫 전쟁인 여리고 성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에게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번씩 돌고 제7일에는 일곱 번 돌라고 명하셨고 또 제사장들 중 일곱 사람은 각각 양각나팔[양이나 소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또 몇 명은 언약궤를 메고 모든 군사들 앞에서 행하라고 명하셨다. 행진 대열에는 순서가 있었다. 무장한 자들이 맨 앞에 선다. 원문에는 ‘무장한 자’라고 단수로 되어 있지만(7, 9, 13절), 아마 한 명이 아니고 몇 명이었을 것이다(NASB). 그 다음에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이 서고, 그 다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야 했다. 언약궤는 보통 때는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들이 메지만(민 4:15) 요단강을 건널 때(수 3:6)와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메어야 했다. 그런 후 그들을 따라 모든 군사들이 행진하여야 했다.
[8-14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 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그 제2일에도 성을 한 번 돌고 진에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외치거나 음성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고 단지 일곱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그들은 6일 동안 매일 그렇게 했고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았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그 당시 여리고 성은 둘레가 약 600미터이고 면적이 약 28,300평방미터, 약 7,000평 정도의 작은 성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 시대의 성은 주로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용도이었고 평소의 생활은 성안에서 뿐만 아니라 성밖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정도 크기의 성이라면 제7일에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15-21절] 제7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老幼)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일곱 째 날 그들은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았고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들을 길게 울려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그 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정복의 방식에는 몇 가지 뜻이 있어 보인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여야 했다. 가나안 땅 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셨다(창 12:7; 13:15; 15:18-21 등). 그는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약속을 계속하셨다(창 26:3; 28:13).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어야 했다. 그들의 행렬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고 본다.
또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들고 행진 중 나팔을 분 것은 하나님께 아뢰는 뜻이 있었다고 본다(민 10:10). 제사장들이 나팔을 분 것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같다. “오 하나님, 주의 약속만 의지합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이 시간 이곳까지 왔사오니 이 전쟁을 도와 주시옵소서. 주의 대적들을 주의 종들의 손에 붙여 주시옵소서.”
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행진은 한마디로 순종의 과정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식대로 이루어졌고 인간 편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리고 성의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체험한 전쟁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한 전쟁이었으나, 가나안 사람들 편에서는 처참하고 불행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었다(2절).
하나님께서 그런 처참한 심판을 행하신 까닭은 가나안 거주민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이었다. 그것들은 사람의 대표적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특히 우상숭배와 음란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다. 홍수 심판도, 소돔 성의 불심판도, 최종적 지옥 형벌도 참으로 무섭다.
[22-25절]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 하매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여호수아는 정탐군들을 라합의 집에 보내어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구출케 하였다. 그 외의 모든 집들은 불태웠고 사람들은 죽였고 금은동철 기구들은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 여호수아는 정탐군들이 라합에게 한 맹세의 약속을 지켰다. 라합은 그 멸망의 성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는 비록 큰 죄인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26-27절]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막내아들]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여호수아는 훗날에 여리고 성을 중건하는 자에 대해 저주를 선언하였다. 이 저주는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 말째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여리고 성이 그렇게 멸망한 것과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들이 다 멸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우상들을 숭배했고 음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것은 육신적 죽음과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도 그러하였고, 가나안 땅의 멸망도 그러했다. 최종적으로 지옥 불못이 그러할 것이다(계 21:8).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이미 지은 모든 죄들을 회개하고 그것들을 떠나야 한다.
둘째로, 사람이 멸망의 세상 속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라합은 멸망하는 성에 살았던 천한 직업과 신분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와 그의 모든 가족들이 구원을 얻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라합처럼 큰 죄인일지라도, 또 우리가 사는 사회가 여리고 성처럼 심히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와 우리 가족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행 16:31).
셋째로, 하나님의 일들은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명령과 지시대로 일곱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앞서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그들을 따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뒤를 따라 하루 한 번씩 여리고 성을 돌았고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돈 후에 큰 소리로 외치니 성벽이 무너졌고 그 성에 들어가 다 멸하였다. 여리고 성 정복과 같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일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도의 일과 참된 교회의 건립을 명하셨고 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바르고 선한 삶을 살라고 교훈하셨다. 우리는 믿고 기도하며 그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
7장: 아이 성에서 실패함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리고 성 정복 때에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 아간은 바친 물건을 취함으로 범죄하였다. 본장에는 ‘바친 물건’ 혹은 ‘바친 것’이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나온다(1절[2번], 11절, 12절[2번], 13절[2번], 15절). ‘바친 물건’이라는 원어(케렘)는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저주받은 것, 멸망 받아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27:28-29는,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했다.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심히 더러워졌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멸망 받아야 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씀하셨었다(수 6:18). 그러나 아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다.
[2-5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2, 3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3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36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아이 성은 여리고 성에 비해 작은 성이므로 그들은 3천명만 올라가도 이길 것 같아서 3천명쯤 올라갔는데, 그들은 그 전쟁에서 패전하여 오히려 36명쯤 죽임을 당했고 백성의 마음은 물같이 녹았다.
[6-9절]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했으나 패전함으로 크게 낙망하여 여호와의 궤 앞에 저물도록 땅에 엎드렸고 마음은 한없이 약해지고 두려움마저 엄습해왔다. 그 전쟁뿐 아니라, 앞으로 남은 가나안 정복의 모든 전쟁들이 염려되었다.
[10-15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아침에 너희는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가족은 각 남자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그 전쟁에서의 패전의 원인이 범죄함에 있었다는 것을 일러주셨다. 아이 성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한 사람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죄는 이렇게 이스라엘 전체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죄가 패배의 원인이었다. 그 당시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다. 죄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세상도 망한다. 죄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므로 그 범죄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총회를 모을 것과 그 범죄자를 찾아내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해주셨다.
[16-21절]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중(重)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을 지파대로와 가족대로 모으고 그 범죄자를 찾아내었다. 아간이 뽑혔고 그에게서 그 죄를 자백받았다. 그는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무게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취하였었다. 시날산 즉 바벨론산의 아름다운 외투는 오늘날 값비싼 외국산 밍크 코트 같은 것일 것이다. 은 200세겔은 은 약 2.3킬로그램인데, 후에 은 1데나리온이 은 5그램이니 은 200세겔은 약 460데나리온 정도이며, 신약시대에 일꾼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10만원만 쳐도 200세겔은 약 4,600만원의 가치가 된다. 50세겔의 금덩이는 약 600그램, 즉 약 160돈으로 오늘날 3,000만원 이상의 가치가 될 것이다.
탐심은 신앙생활에 큰 방해거리이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골 3:5). 예수께서는 탐심을 가진 자를 가시밭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3:22).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9-10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였다(딤전 6:9-10). 탐심은 우리가 극히 경계해야 할 죄악이다.
[22-26절]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여호수아는 아간의 자백대로 그의 장막에서 그 물건들을 확인했다. 그는 그 물건들과 아간과 그 처자들과 가축들을 다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죽이고 불사르었다. ‘아골’이라는 말(아코르)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이었다. 아간의 죄의 결과는 그 골짜기에서의 그 가족들의 고통의 부르짖음과 죽음이었다.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고통스런 부르짖음 가운데 죽임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가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에 성공하려면 악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이 범죄한다면 가나안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시편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실패의 원인이다. 개인이 죄를 지으면, 그 자신이 실패한다. 우상숭배나 이단이나 교만뿐 아니라, 미움이나 음란이나 거짓말 등 십계명을 어기는 죄는 무엇이든지, 죄는 실패의 원인이다. 아간의 죄 같은 물질적 탐심의 죄도 불행과 실패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모든 죄를 다 철저히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둘째로, 부모가 죄를 지으면, 그 자녀들에게 불행과 화가 있다. 아간은 범죄함으로 온 가족이 다 징벌을 받았다. 부모의 죄는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정말 자녀의 행복을 원한다면 우리는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부모인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징벌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교회도 주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하며 간직하려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악을 포용해서는 안 되고 악을 버려야 하고 진지하게 주님을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특히 직분자 한 사람의 생활이 중요하다. 교회의 중직 한 사람이 범죄하면 확실히 교회에 큰 해가 될 것이다. 또 교회가 힘있게 일하려면, 교회는 성경의 교훈대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직분자를 바르게 세우고 교인들을 바르게 관리하고 교회 안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바르게 다루고 필요하면 권징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개인이나 교회나 죄악을 포용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영적 전쟁에 승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바르고 힘있게 수행할 수 없다.
8장: 아이 성을 정복함
[1-2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아이 성을 정복하라고 명하시며 그 성을 그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 전쟁은 승리할 것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주장하신다(시 135:6).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악을 제거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람의 죄는 기도 응답을 가로막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막는다(사 59:1-2; 렘 5:25).
[3-9절]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3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 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아이 성 정복은 복병술을 사용함으로 이루어졌다. 아이 성 정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지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람이 할 몫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믿는 성도는 소극적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성취에는 사람이 해야 할 몫이 있다. 아이 성 전투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복병술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10-17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그를 좇은 군사가 다 올라가서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편에 진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그가 5천 명 가량을 택하여 성읍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매복시키니 이와 같이 성읍 북편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편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서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병 전술을 설명했고 군사들 중 처음에는 3만명을, 그리고 후에 추가로 5천명을, 아이 성의 서쪽 곧 뒤편에 매복시켰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 성을 공격했고 아이 성의 왕과 군사들은 급히 대처했다. 그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거짓 패하여 아이 성 군사들을 유인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 성 왕과 모든 군사들은, 패하여 도망가는 듯한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성문을 열어 놓은 채 경솔하게 그들을 따라갔다.
[18-2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왔더라.
[24-29절]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1만 2천이라.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수아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높이 들었다. ‘단창(短槍)’이라는 원어(키돈)는 ‘던질 수 있는 창’(dart, javelin)을 가리킨다. 여호수아가 창을 높이 든 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이스라엘의 복병들은 여호수아의 신호에 따라 숨었던 곳에서 나와 성을 점령했고 그 성에 불을 놓았다. 아이 성 왕과 군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경솔함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이제 양쪽으로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었고 그 날 그 전쟁에서 아이 성의 남녀 모든 사람들 12,000명이 다 죽임을 당하였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불사르고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다. 그 전쟁은 처참했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심히 더러워진 가나안 땅의 한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었다.
[30-35절]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아바님 쉘레모스)[온전한 돌들, 깍지 않은 돌들]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자국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위해 에발산에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한 단을 쌓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여호수아는 그 돌들 위에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기록했다. 그런 후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자국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대로였다(신 27:12-13).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재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복과 저주의 두 길을 주시고 그들로 선택하게 하셨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그들은 복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면 그들은 죄를 짓는 것이요 저주와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 복과 저주의 이 두 길은 세상에서도 그러하고 궁극적으로 내세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 결코 복을 얻지 못하고 평안과 형통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나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순종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평안과 형통을 누리며 장차 확실히 영생의 나라인 영광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아이 성 정복 즉 아이 성의 두 번째 전투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만세 전에 작정하셨고,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그의 작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온 세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굳게 믿어야 한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이 성의 정복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이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복병 전술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은 소극적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의무들을 성실히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 성의 첫 번째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는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 죄는 실패의 원인, 불행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이제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순종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결코 복과 평안과 형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도 복과 평안과 형통을 풍성하게 누리다가 장차 복된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된 삶, 평안과 형통의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죄 짓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9장: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맺음
[1-2절]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멸망의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왕들은 합심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려고 하였다.
[3-13절]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히위 족속이었던(7절)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연합적 행동에서 이탈하였고 자신들을 위해 꾀를 내어 살길을 찾았다. 그들은 사신들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게 하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게 하였다. 그 사신들은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원방에서 왔으니 자기들과 약조하자고 말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고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일들도 들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새로 한 떡이 곰팡이가 났으며 새 포도주 가죽부대도 찢어졌고 옷과 신도 낡아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14-15절]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은 큰 실수를 하였다. 그들은 기브온 사신들의 꾀와 거짓말과 위장(僞裝)에 속아넘어갔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다.
[16-21절]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3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가까이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3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었더라[그들을 살리고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로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게 하라 하였더라].
그들이 그 사신들과 언약을 맺은 후 3일이 지나자, 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성읍에 도착했고 그 사신들이 그 성읍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족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신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그들을 치지 못하였다. 성급한 결정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삼하 2:1; 5:19, 23). 그러나 실수로 한 맹세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회중의 족장들이 하나님께 맹세했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22-27절]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기브온의 장로들은 다른 성읍들의 장로들과 달랐다.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과 또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고 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 행한 일들도 들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고 그것을 멸하라고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즉 기브온 장로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하였다면 그들은 그런 꾀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굴복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거짓을 말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멸망의 위기 앞에서 그들 속에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인정함과 두려워함이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멸망당할 상황에서 살아 남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했고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를 삼았다. 그들에게는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는 것이 큰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죽임을 당할 처지이었기 때문에 그런 신분이라도 감사했을 것이다. 그들은 멸망당할 직전에 하나님의 긍휼로 기이하게 구원을 받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급하게 행하거나 경솔히 맹세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둘째로, 오늘날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임박한 멸망을 깨닫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멸망당할 죄인,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갈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그 일이 어떤 보잘것없고 힘든 일이든지 간에, 바쳐지는 종이 되어야 한다.
10장: 아모리 다섯 왕을 죽임
[1-5절]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왕도 같은 큰 성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을 불러 함께 기브온을 공격하려 했다.
[6-11절]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하셨고] (여호수아가)(원문에는 여호와께서 계속 주어로 보임)(KJV, NASB)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치셨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추격하셨고]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이르러 치셨더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빠른 도움을 요청했고 여호수아는 그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즉시 길갈에서 떠나 기브온으로 밤새도록 올라갔고, 기브온 성을 향해 진을 친 아모리 다섯 왕들의 군대들을 갑자기 쳤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말씀하시며 격려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치셨고 패하게 하셨고, 또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내리셨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우박에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다 멸하였다.
[12-15절]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이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 아뢰며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고 명령하듯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셔서 그들이 그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태양이 머물었고 그 사실은 야살의 책에도 기록되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이스라엘 역사에, 아니 인류 역사에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6)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를 위해 싸우셨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셨다고 거듭하여 증거한다(14, 42절).
[16-21절] 그 다섯 왕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혹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가로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의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다섯 왕은 도망하여 막게다 굴에 숨었다. 여호수아는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지키게 하였고 대적자들을 거의 다 멸했다. 본장은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성들의 왕들과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붙여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8, 19, 30, 32절).
[22-27절] 때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 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수아는 그 다섯 왕을 굴에서 끌어내어 죽이고 다섯 나무들에 매어 달았고 해가 진 후에 그 시체들을 굴에 던져 넣었다.
[28-39절]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였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그 성읍을 취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요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 등의 성들도 다 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여주셨다. 이것은 가나안 땅의 남부 전쟁에서의 승리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40-43절]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는 온 땅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다 멸하였고 그 땅을 단번에 취하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남부를 점령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 구원하며 구원받은 자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즉 전도와 성화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온전히 구원하실 것이다.
둘째로, 가나안 전쟁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듯이, 전도와 성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어떤 자들을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의 속죄를 이루셨고 때가 되어 그들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또 그들의 성화를 온전히 이루신다. 우리는 가나안 전쟁 같은 전도와 성화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감당해야 한다.
11-12장: 하솔의 연합군을 멸함
[11:1-5]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솔의 연합군이라는 거대한 대적자들을 만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중부로 진입해서 여리고 성을 비롯하여 그 주위를 진멸하고 그 다음 남부를 진멸하였을 때,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 북부의 성들은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 한 것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갈릴리 바다 서북쪽에 위치한 하솔이라는 성이었다. 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돈 왕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들과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었고 그들은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쳤다. 이것은 가나안 땅의 북부 전쟁이었다. 그 군사들의 수는 해변의 많은 모래같이 많았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가나안 땅 북부의 연합군은 거대한 세력이었다. 전쟁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가나안 땅의 이 북부 전쟁이 그러하였다.
[6-9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북부 전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운 대적자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인해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승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갑자기 그들을 습격했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을 격파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서 죽였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멸하시려고 뜻하셨기 때문에 또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솔의 거대한 연합군을 이길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 전쟁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그의 지시와 명령대로 행하였다. 9절은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고 기록한다.
[10-15절]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완전히 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들은 하나도 남기지 아니했고 또 하솔만 불로 살랐으며 또 그 왕들의 모든 성읍들과 그 모든 왕들을 칼날로 쳐서 다 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다. 그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했다. 15절,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16-20절]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 바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가나안 전쟁은 두렵고 힘든 전쟁이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모세의 명령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승리하였다. 기브온 거민 외에는 이스라엘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었다.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 나온 것도, 또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나 이스라엘의 호의를 받지 못한 것도, 또 그들이 결국 처참히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것도 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1-23절] 그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본래 가나안 땅에는 아낙 자손들이 있었다. 아낙 자손은 거인이었다(민 13:33).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거인들과 싸워야 하였고 그것은 심히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했고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다. 23절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기록한다.
[12:1-6]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강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 12장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성들의 왕들을 열거하는데, 우선 요단강 동편에 있었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그들의 땅을 언급한다. 그들의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
[7-24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31왕이었더라.
요단강 서편에서는 여리고 왕과 아이 왕을 비롯하여 31명의 왕이 언급되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또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가나안 전쟁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임을 당했던 왕들이었고 그 땅들과 성들이었다.
여호수아 11-12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가나안 족속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가 가득했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았다. 그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지옥불에 던지울 세상을 예표하였다. 세상은 우상숭배의 죄와 음란의 죄가 가득하다. 세상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다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도의 의무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 영적으로 성장하여 죄 짓지 말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위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들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힘써야 할 의무이다. 개인의 신앙생활과 개인이나 교회의 전도 활동은 영적 전쟁이다.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죄악된 풍조와 우리 자신의 남은 죄성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또 마귀와 세상은 개인이나 교회의 전도 활동과 참된 교회의 건립을 방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죄를 버리고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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