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모세오경[강해]

민수기(Numbers) 22장: 모압 왕이 발람을 청함 - 36장: 여자 상속자의 결혼 문제

영국신사77 2020. 4. 14. 18:07


제목 차례

22장: 모압 왕이 발람을 청함

23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함

24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세 번째 축복함

25장: 모압 여자들과 음행함

26장: 두 번째 인구조사

27장: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움

28장: 각종 절기의 예물 (1)

29장: 각종 절기의 예물 (2)

30장: 서원에 대한 법

31장: 미디안에 대한 보복

32장: 세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얻음

33장: 광야 노정

34장: 가나안 땅의 경계

35장: 도피성

36장: 여자 상속자의 결혼 문제


22장: 모압 왕이 발람을 청함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요단 건너편’이라는 원어(메에베르 레야르덴)는 ‘요단 이편’ 혹은 ‘요단 저편’이라고 번역될 수 있고, 본절에서는 ‘요단 이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민수기 32:19,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가 쓴 책이며 민수기는 그가 요단 동편 모압 광야에 있었을 때 기록한 책이다.

[2-4절]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모압의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인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고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다고 심히 두려워하였다.

[5-6절]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모압 왕 발락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였다. 민수기 23:7에 보면, 발람은 자신이 아람에서, 동편 산에서 왔다고 말한다. 신명기 23:4는 발람을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이라고 말한다. 발람은 모압 땅에서 보면 먼 북동쪽의 유브라데 강 상류의 한 강변에 살고 있었다고 보인다. 학자들은 발람의 고향인 브돌을 유브라데 강 상류인 하란 혹은 그 부근이라고 본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들로서 이스라엘과는 친척관계가 되었다. 물론, 인류는 다 한 부모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발람을 청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하였다. 이웃을 저주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율법의 기본 정신이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초청해 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다.

[7-14절]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하니라.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 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고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은 손에 복술(卜術)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임하셔서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귀족들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였다.

성경이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 석 장에 걸쳐서 발람 선지자의 일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발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어느 정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이방인들 중에서도 약간의 선지 사역을 허락하신 것 같다. 욥이 대표적인 예이며 또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이스라엘의 천부장 제도를 제안하였다(출 18장). 또 심지어 그랄 왕 아비멜렉이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도 꿈을 통한 계시를 주셨다(창 20:3; 41:25; 단 2:45).

발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9, 12, 20, 31, 35절). 그러나 그는 사술(邪術)을 사용하는 법도 알았다(민 24:1). 발람에게는, 선지자가 은금을 좋아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전해야 한다는 바른 마음도 있었다(22:18, 38; 24:12-13). 그러나 그에게 욕심도 있었고(22:19) 또 잘못된 조언도 했다(31:16). 후에 발람이 죽임 당한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압 왕에게 이스라엘을 음행의 죄로 유혹하도록 조언했기 때문이었다(31:16).

[15-20절]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컨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발락은 다시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었다. 그는 발람에게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말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발락의 제안은 발람의 관심을 끌 만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였다.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러나 발람의 마음에는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물질과 세상 권세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발락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즐거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가보려면 가보라”는 뜻이었다고 보인다.

[21-27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타고 그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였다. 그가 행함을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셨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았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갔고 포도원 사이 좁은 길의 좌우의 담에 발람의 발을 비비어 상하게 했고 마침내 발람 밑에 엎드렸다. 발람은 노하여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다.

[28-30절]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나귀 입을 여셔서 발람에게 말하게 하셨다. 나귀가 말을 한 것은 이 경우 외에는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그것은 선지자 발람을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 사건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는다.

[31-33절]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여호와께서는 발람의 눈을 밝히셨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았고, 그러자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에게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고”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고 말씀하셨다.

[34-35절]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은 회개하며 “내가 범죄하였다”고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그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고 말했다. 발람은 그 귀족들과 함께 갔다.

[36-41절] 발락이 발람의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발락이 우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한 귀족을 대접하였더라.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발람에게는 분명히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세상과 타협하는 마음도 있었다. 발락은 발람과 그와 함께한 귀족을 잘 대접했다.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과 함께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올랐다.

민수기 22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압 왕 발락처럼 이웃을 저주하지 말자. 모압과 이스라엘은 먼 친척관계이다. 실상 인류는 다 먼 친척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심지어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눅 6:27-28).

둘째로, 우리는 세상적 욕심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서는 안 되며 발락이 보낸 귀족들을 따라 모압으로 가서도 안 되었다. 그러나 발람에게는 세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는 두 번째 찾아온 자들에게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했다(19절). 사도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바른 길을 떠나 발람의 길을 좇으며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고 증거하였다(벧후 2:15-16).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이 세상의 염려와 돈 사랑과 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설명하셨다(눅 8:14).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였고(딤전 6:9-10), 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3:2). 많은 믿는 자들이 욕심 때문에 실패한다. 우리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23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함

[1-6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하매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숫양] 하나를 드리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갈지라.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사태난 산[벌거숭이 산언덕]에 이른즉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고하되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숫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 모든 귀족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7-9절]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발람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바른 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누가 저주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저주할 수 없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홀로 처할 민족이며 그를 세상의 여러 민족들 중의 하나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민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 자손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10절]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11-12절]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13-17절]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단을 쌓고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숫양] 하나를 드리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발람이 와서 본즉 발락이 번제물 곁에 섰고 모압 귀족들이 함께 있더라.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18-24절]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자(人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邪術)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卜術)이 없도다. 이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발람의 대언(代言)은 몇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며 거짓 증거를 정죄하신다. 거짓은 마귀의 일이다(요 8:44). 둘째, 하나님께서는 후회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바를 행하실 능력이 있으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않으신다. 본문 21절은 번역상에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한글번역의 견해이다(KJV). 다른 하나는 “그는 야곱의 고난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불행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라는 번역이다(NASB, NIV, LXX). 어느 쪽을 택해도 괜찮아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그 고난, 그 불행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신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다. 그것이 성막과 성전의 의미이었다. 다섯째, 왕을 부르는 소리 혹은 왕의 소리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왕으로 거하심을 뜻한다고 본다. ‘왕의 소리’(테루앗 멜렉)는 왕이 호령하는 소리이든지 혹은 백성이 환호하는 소리일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그 힘은 들소와 같다. 일곱째, 이스라엘을 해할 사술(邪術)이나 복술(卜術)이 없다. 이것들은 이방의 선지자 발람의 입을 통해 증거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놀라운 증언들이다.

[25-26절]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방 선지자 발람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 증거하셨다.

[27-30절]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숫양] 하나를 드리니라.

선지자 발람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홀로 처할 것이며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을 해할 사술이나 복술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방의 선지자 발람의 입을 통해 증거된 이스라엘에 대한 놀라운 증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온 세계에서 선택하셨고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고 그들을 복주셨다. 그들을 해할 아무런 사술이나 복술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약 성도들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복을 얻은 자들이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멸망치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다. 로마서 8:1, 31, 3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그 무엇도 우리를 이 은혜에서 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님만 믿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여 그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24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세 번째 축복함

[1-4절]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거하는 것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그가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쉐숨 하아인)[눈이 열린(BDB, Syr, LXX, KJV, NASB, NIV), 눈을 감았던(KB- Langenscheidt, Vg)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전과 같이 사술(邪術)들을 쓰지 않았다”는 말은 발람이 전에 종종 사술들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가 아니었음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께서 그 위에 임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세 번째 임하신 것이었다(23:4, 16과 함께). 그는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 선지자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23:7, 18; 24:3).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자의 이상(異像)을 본다고 말한다. 성경은 이 사실을 인정하며 기록했다. 발람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이상(異像)을 본 선지자이었다.

[5-9절]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알로에]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장막과 거처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며 또 이스라엘 나라가 진흥하리라고 말한다. ‘진흥하다’는 원어(웨신낫세)는 ‘높아진다’는 뜻이다(KJV, NASB, NIV). 발람은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사건을 언급한다. 발람은 특히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창세기 12:3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10-13절]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자들에게 내가 고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가령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 임의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발락은 확실히 세상의 부귀 영광밖에 모르는 자이었다. 그는 발람이 존귀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람의 말은 정당하였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전하는 자이어야 한다. 발람 속에는 이만큼은 바른 생각이 있었다. 

[14-19절]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을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눈이 열린]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발람은 이스라엘에게서 한 별, 한 홀이 나타나서 모압의 온 땅을 치며 에돔까지 굴복시킬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하였다. ‘소동하는’이라는 원어(쉣 ת������)는, 영어성경들이 ‘셋’이라는 고유명사로 번역하기도 하였지만(KJV, NASB, NIV), ‘소동하는’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BDB, 게세니우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다윗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사무엘하 8:2, 14는 그가 모압과 에돔을 굴복시켰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메시아와 그의 세계복음화를 가리켰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나오신 한 별, 한 홀, 즉 왕이시며 온 세상의 구주이시다.

[20-25절]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또 가인 족속(케니)[겐 족속]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그러나 가인이 쇠미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또 노래를 지어 가로되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하리라마는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발람은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말했고,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말했다. 깃딤 해변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가리키며, 에벨은 히브리인을 가리킬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세력들이 없지 않을 것이나, 마침내 그들이 다 메시아 앞에 굴복함을 보이는 것 같다.

민수기 2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발람은 이스라엘에게서 한 별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 발람의 예언은 참 놀랍다. 그가 말한 그 한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한 큰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던 것처럼(마 2: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예언된 별이시다. 하늘의 천사들은 구주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에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증거하였다(눅 2:11).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었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그의 뜻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심지어 이방 선지자의 입으로 증거된 이스라엘의 그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바로 복된 나라임을 알자.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9절)라는 발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복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증거한다(벧전 2:9; 계 1:6). 발람의 입으로 증거된 이 복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적용된 복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바로 그 복된 나라임을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영광의 헛됨을 알고 하나님과 천국을 보화로 삼자. 발락은 여호와가 발람을 위한 부귀 영광의 기회를 가로막았다고 말했다(11절). 세상의 부귀 영화는 영원하지 않고 다 헛되다.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만 소망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눅 14:33). 바울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증거하였다(고후 4:18). 또 그는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그의 십자가 의만을 가장 귀한 보화로 알았다(빌 3:7-9). 우리도 오직 하나님과 천국만을 보화로 삼고 살자.


25장: 모압 여자들과 음행함

[1-2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지나고 

요단 동쪽에 있는 모압 평지의 싯딤에 머물러 있었을 때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 

그 여자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할 때 백성을 청하자 

그들이 먹고 모압 사람들의 신들에게 절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범한 것이다.


[3-5절]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지도자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브올에게 가담[부속]되었다. 

‘부속되었다’는 원어(차메드)는 ‘연합되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잡아 대낮에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고 명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연합된 사람들을 죽이라”고 말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바알브올에게 연합된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다.


[6-9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명이었더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말씀과 백성들의 회개의 눈물이 있었던 바로 그때에 

한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악을 행하였다. 그는 현행범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악한 일을 보면서도 

나서서 막거나 책망하거나 징계를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그 광경을 보고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악을 가만히 방관하거나 관용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장막에 들어갔다. 

그는 창으로 그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그 두 사람을 죽였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과 열심으로 

그 완악한 악인을 즉결처단한 것이었다. 

본문 8절은, 이 일이 있자마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고 증거한다. 

또 본문은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명이었더라”고 말한다. 

그것은 간음하다가 죽은 자들 2만 3천명(고전 10:8)과 

죽임을 당한 백성의 지도자들과 

바알 브올에게 연합된 자들의 수를 다 합한 수일 것이다.


[10-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분노의 행동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다. 

그는 만일 비느하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그들을 치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으셨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약속하셨다.


[14-15절]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며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


[16-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차로르)[대적하며] 그들을 치라[죽이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미디안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아들 미디안의 자손들이다(창 25:2, 4). 

그들은 요단 동쪽 모압, 에돔, 그리고 그 남쪽 등지에 퍼져 살았다. 

그들은 때로는 이스마엘 족속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37:28, 36). 

모압 왕 발락은 미디안 장로들에게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의논했었다(민 22:4). 

그들은 모압 땅에도 살고 있었다. 

본장은 모압 여자들과 미디안 여자들을 같은 부류로 여긴다(1, 6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에게 징벌을 선언하셨다고 보인다. 

이 징벌은 후에 민수기 31장에서 반복되었고 

미디안인들을 다 죽임으로 이루어졌다. 

모압 경내에서 살고 있었던 발람도 죽임을 당하였다(민 31:8).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들에게 절한 사건을 전한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음행 사건이며 

십계명의 제1, 2계명과 제7계명을 범한 범죄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크게 노하셨다. 

그 결과, 죽은 자들이 2만 4천명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물질주의적, 황금만능주의적 풍조를 배격하고 

또 쾌락주의적이고 음란한 풍조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생활방식을 항상 성경의 교훈에 비추어 반성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어른이나 젊은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성도는 T.V.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유입되는 

온갖 물질주의적, 황금만능주의적 풍조와 

쾌락주의적 음란 풍조를 멀리하고 옷차림도 단정히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신앙사상적으로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서 탈선하는 모든 것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도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이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더 신뢰하고 

성경을 비평하고 성경의 기본교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그것은 인간숭배이며 불신앙이다. 

또 우리는 천주교회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회는 마리아를 신적 존재로 만들었고 은혜의 복음을 변질시켰다. 

또 우리는 은사주의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교리와 윤리 교훈이 

최종적이며 충분함을 부정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교회들이 성수주일을 폐기하고 세상적 음악과 예배방식을 도입했고 

여자 목사와 장로들이 등장하였고, 낙태를 용납하고 동성애 목사까지 등장했다. 

이것들은 영적 음행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협의회들은 이런 오류들을 포용하는 입장들을 취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도 포용하고 있다. 

또 세계복음주의연맹(WEA)도 은사주의적이며 포용적이다. 

그들의 일부는 심지어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관용적이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까지도 여자 목사들을 용납하는 추세에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보수적인 교회들은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자유주의와 교회연합운동과 

은사주의의 탈선을 단호히 거절하고 책망해야 한다.


셋째로, 오늘날도 비느하스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상숭배와 음행의 풍조 속에서 

또 신앙사상적으로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상황 속에서 

모두들 관망만 하고 침묵하지 말고 일어나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필요하다. 

창을 들고 나아가 현행범을 처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그에게 헌신하고 

그를 위하여 충성하고자 하는 불붙는 마음이 있는 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비느하스 같은 인물이 많이 요청된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에 충성하는 목사들과 장로들과 제직들과 성도들이 요구된다.


26장: 두 번째 인구조사

[1-4절]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 조상의 집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무릇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그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나온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대로 너희는 20세 이상된 자를 계수하라 하니라.

본장은 두 번째 인구조사에 대해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염병 재앙을 받은 후,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무릇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고 명하셨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다.

[5-51절] 이스라엘의 장자는 르우벤이라. 르우벤 자손은 하녹에게서 난 하녹 가족과 발루에게서 난 발루 가족과 헤스론에게서 난 헤스론 가족과 갈미에게서 난 갈미 가족이니 이는 르우벤 가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43,730명이요 발루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엘리압의 아들은 느무엘과 다단과 아비람이라.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러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250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시므온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느무엘에게서 난 느무엘 가족과 야민에게서 난 야민 가족과 야긴에게서 난 야긴 가족과 세라에게서 난 세라 가족과 사울에게서 난 사울 가족이라. 이는 시므온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22,200명이었더라.

갓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스본에게서 난 스본 가족과 학기에게서 난 학기 가족과 수니에게서 난 수니 가족과 오스니에게서 난 오스니 가족과 에리에게서 난 에리 가족과 아롯에게서 난 아롯 가족과 아렐리에게서 난 아렐리 가족이라. 이는 갓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40,500명이었더라.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이라. 이 에르와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유다의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셀라에게서 난 셀라 가족과 베레스에게서 난 베레스 가족과 세라에게서 난 세라 가족이며 또 베레스 자손은 이러하니 헤스론에게서 난 헤스론 가족과 하물에게서 난 하물 가족이라. 이는 유다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76,500명이었더라.

잇사갈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돌라에게서 난 돌라 가족과 부와에게서 난 부니 가족과 야숩에게서 난 야숩 가족과 시므론에게서 난 시므론 가족이라. 이는 잇사갈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64,300명이었더라.

스불론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세렛에게서 난 세렛 가족과 엘론에게서 난 엘론 가족과 얄르엘에게서 난 얄르엘 가족이라. 이는 스불론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60,500명이었더라.

요셉의 아들들은 그 종족대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므낫세의 자손 중 마길에게서 난 것은 마길 가족이라. 마길이 길르앗을 낳았고 길르앗에게서 난 것은 길르앗 가족이라. 길르앗 자손은 이러하니 이에셀에게서 난 이에셀 가족과 헬렉에게서 난 헬렉 가족과 아스리엘에게서 난 아스리엘 가족과 세겜에게서 난 세겜 가족과 스미다에게서 난 스미다 가족과 헤벨에게서 난 헤벨 가족이며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이는 므낫세의 종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52,700명이었더라.

에브라임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수델라에게서 난 수델라 가족과 베겔에게서 난 베겔 가족과 다한에게서 난 다한 가족이며 수델라 자손은 이러하니 에란에게서 난 에란 가족이라. 이는 에브라임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32,500명이라. 이상은 그 종족을 따른 요셉 자손이었더라.

베냐민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벨라에게서 난 벨라 가족과 아스벨에게서 난 아스벨 가족과 아히람에게서 난 아히람 가족과 스부밤에게서 난 스부밤 가족과 후밤에게서 난 후밤 가족이며 벨라의 아들은 아릇과 나아만이라 아릇에게서 아릇 가족과 나아만에게서 나아만 가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베냐민 자손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45,600명이었더라.

단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라 수함에게서 수함 가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단 가족들이라. 수함 모든 가족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64,400명이었더라.

아셀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임나에게서 난 임나 가족과 이스위에게서 난 이스위 가족과 브리아에게서 난 브리아 가족이며 브리아의 자손 중 헤벨에게서 난 헤벨 가족과 말기엘에게서 난 말기엘 가족이며 아셀의 딸의 이름은 세라라. 이는 아셀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53,400명이었더라.

납달리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야셀에게서 난 야셀 가족과 구니에게서 난 구니 가족과 예셀에게서 난 예셀 가족과 실렘에게서 난 실렘 가족이라. 이는 그 종족을 따른 납달리 가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45,400명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601,730명이었더라.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20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이 계수되었고 그 수효가 열두 지파 별로 기록되었다.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는 601,730명이었다. 첫 번째 인구조사에서 20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의 총수가 603,550명이었으니, 1,820명이 부족할 뿐, 첫 번째의 인구와 비슷하였다.

[52-5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의 계수함을 입은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57-62절] 레위인의 계수함을 입은 자는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게르손에게서 난 게르손 가족과 고핫에게서 난 고핫 가족과 므라리에게서 난 므라리 가족이며 레위 종족들은 이러하니 립니 가족과 헤브론 가족과 말리 가족과 무시 가족과 고라 가족이라. 고핫은 아므람을 낳았으며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아론에게서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났더니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레위인의 1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모든 남자가 23,000명이었더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준 기업이 없음이었더라.

그 총수에서 제외되었던 레위인들은 1개월 이상인 자들이 23,000명이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 달리 기업을 얻지는 못하였다.

[63-65절]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의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조사한 이스라엘 자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다.

그러면 두 번째 인구조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가나안 땅 진입을 위한 준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전열(戰列)을 가다듬어야 하였다. 오늘날도 교회는 그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교인 명부를 항상 정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그것은 이스라엘 군대의 세대교체의 의미가 있었다.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왔던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멸망했고 이 세대교체는 특히 악인들의 멸망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본장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9-10절). 또 제사장 아론의 네 아들들 중 처음 둘인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서도 증거한다(61절). 첫 번째 인구조사에 포함되었던 20세 이상의 남자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다(63-65절). 악인들의 가치는 없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악인들을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실 때 우리는 악인들의 존재 가치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불변적 성취를 보인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결코 실패치 않으셨다. 처음 인구조사 때의 총수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은 약 60만명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심이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9). 로마서 8:30,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민수기 26장의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신약교회는 영적 전투를 위하여 항상 전열(戰列)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교회는 교인 명부, 직분자 명부를 항상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성도들은 사탄과 악령들과 싸울 전투태세를 갖춘 군대와 같이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악한 자들이 반드시 멸망할 것을 알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 물론 악한 자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하는 악인들에게 속하지 말고, 오직 교만과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불변적 성취를 깨닫고 위로를 얻고 분발하자.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며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구주이시다. 그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고 다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이나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여 믿음으로 살고 말씀 순종으로 살자.

27장: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움

[1-5절]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아뢰니라].

[6-1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

이것은 기업 상속자에 대한 규례이다. 이것은 사람의 기업이 아들에게 상속되지만,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딸이 없으면 형제에게, 형제도 없으면 그 아버지의 형제에게, 또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상속되어야 한다는 규례이다.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는 많은 고난으로 단련된 온유한 사람이었다(민 12:3). 또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 자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동안 백성이 송아지 형상을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했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다 죽이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하나님께 아뢰기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방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가로막았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거두셨다(출 32:7-14).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들을 보낸 때에도 여호와께서 불신앙적인 회중을 전염병으로 쳐서 멸하고 모세를 통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그러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구원의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셨다고 비난할 것이라며 그 백성 용서하시기를 간구하였다(민 14:11-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신광야 가데스 므리바 물에서 실수한 일 때문에 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은 참으로 두렵고 엄위하였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엄위한 징벌을 가져온다.

[15-17절]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하루코스 ת������וּר������)[영들]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16:22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라고 말했다. 영은 생명 원리이다. 영, 영혼, 생명은 거의 동의어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기도 하시고 연장시키기도 하시며 거두어가기도 하신다. 시편 104:29는,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 바다 생물들의 생명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생명은 더욱 그러하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단 5:23). 모든 육체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그가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대로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모세는 이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기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제 끝날 것이지만, 단지 한 사람을 이스라엘 회중 위에 세우셔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셔서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게 하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충성된 목사들이 가지는 소원일 것이다.

[18-2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神)에 감동된 자(이쉬 아셀 루아크 보)[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게 해주시기를 청한 모세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이었다.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라는 말은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 대해 사용했던 말이다(창 41:38). 여호수아는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이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안수하게 하셨다. 안수는 직무와 존귀를 위탁하는 뜻이 있었다. 안수를 통하여 모세의 직무와 존귀를 이어받는 여호수아에게 온 회중은 복종해야 했다.

[21-23절]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제사장의 판결 흉패 안에는 ‘우림’[빛]과 ‘둠밈’ [완전함]이라는 물건을 넣어두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 제비뽑기에 쓰인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민수기 2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모세는 온유한 자이었고 하나님의 뜻과 명예를 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 자이었으나 가데스에서 혈기를 부린 그의 실수 때문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못들어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엄한 벌을 내리셨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가 목자 없는 양들의 모임같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자. 교회에는 바르고 좋은 목사가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항상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모세의 간절한 소원에 대해 응답하셨다. 그는 성령의 사람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지시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바른 목자는 성령이 충만한 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그의 마음으로 충만한 것이다. 이단자들은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이다(유 19).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바르고 좋은 목사가 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교훈과 모범을 늘 가지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자.

셋째로, 교회는 목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고(살전 5:12-13), 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했다(딤전 5:17). 또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28장: 각종 절기의 예물 (1)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食物) 되는 화제(火祭),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그것을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화제’(원문),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의 예물’이라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정성으로 드리는 헌금이나 헌물과 같다.

‘나의 식물’이라는 말은 그 제물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뜻이 있음을 보인다. 우리는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대접할 가장 귀한 대상이시다.

‘나의 화제’라는 말은 죄와 불결을 불태우며 제거하는 뜻이 있다. 그것은 죄의 형벌을 내포할 것이다.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는 원어(레아크 니코키)는 ‘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향기’라는 말로서(BDB, NASB) 사람의 죄와 허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향기라는 뜻이라고 본다.

[3-8절]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숫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常燔祭)(a continual burnt offering)로 드리되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에 빻아낸 기름 힌 4분지 1[약 1리터]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또 그 전제(奠祭)(a drink offering)는 어린양 하나에 힌 4분지 1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드릴 것이며 해 질 때에는 그 한 어린양을 드리되 그 소제와 전제를 아침것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常燔祭) 즉 계속적인 번제를 드려야 하였다. 또 그 번제에는 소제(素祭) 곧 곡물제사가 첨가되었고 또 포도주를 붓는 전제(奠祭)로 마무리되어야 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와 성도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고 본다. 또 소제의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부정과 희생, 그리고 성도의 온전한 순종을 상징할 것이다. 또 전제(奠祭)의 포도주(14절; 출 29:40)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즉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믿고 의지하며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다짐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9-10절] 안식일에는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숫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2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매 안식일의 번제라.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전제(奠祭) 외에(아마 소제(素祭)도 포함될 것임)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2에 기름 섞은 소제(素祭)와 그 전제(奠祭)[힌 3분지 1]를 드려야 했다. 이것이 매 안식일의 번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규례를 통해 참된 평안이 없는 죄인인 인생들에게 참된 안식이 있음을 암시하셨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음을 증거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린다(마 11:28; 요 14:27).

[11-15절] 월삭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숫양] 하나와 1년 되고 흠 없는 수양[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3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수양[숫양] 하나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2에 기름 섞은 소제와 매 어린양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수양[숫양] 하나에 3분지 1 힌이요 어린양 하나에 4분지 1 힌이니 이는 1년 중 매 월삭의 번제며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수염소[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월삭[매달 첫째 날]에는 특별한 번제와 거기에 따른 소제와 전제 외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월삭은 달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의 백성이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셨다. 또 그는 특히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고 의지하며 온전한 헌신과 온전한 순종의 심령으로 그를 섬겨야 할 것을 제사 규례의 상징을 통해 교훈하셨다.

[16-25절]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며 또 그 달 15일부터는 절일이니 7일 동안 무교병[누룩 넣지 않은 떡]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수양[숫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숫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수양[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를 드리고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수염소[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되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너희는 이 순서대로 7일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식물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제7일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해 명하셨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1월 14일 저녁이며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7일간이다. 그 첫날인 1월 15일과 제7일인 1월 21일은 성회로 모이는 안식일로 지켜야 하였다. 즉 주간 안식일인 제7일 안식일 외에 두 개의 안식일이 더 있는 것이다(1년의 절기들 전체로 보면, 주간 안식일 외에 일곱 개의 안식일이 더 있다--무교절에 2개, 맥추절 1개, 나팔절 1개, 속죄일 1개, 초막절에 2개).

유월절은 출애굽 때의 장자재앙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시던 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재앙을 피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도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 재앙을 피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되는 것을 예표하였다.

무교절에는 특별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7일 동안 매일 드려야 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드리라는 뜻이 있다. 또 7일간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은 성도가 죄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보인다.

[26-31절]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밀 초실절)(출 23:16; 34:22)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수양[숫양] 하나와 1년된 수양[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수양[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수염소[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칠칠절[맥추절 혹은 오순절]은 성도의 중생(重生)과 구원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 그 절기에도 특별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하였다. 우리의 중생(重生)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온전한 순종을 결심해야 한다.

민수기 2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본장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 자세히 증거한다.

첫째, 우리는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둘째, 우리는 공경하고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의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잠언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셋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번제와 속죄제와 전제는 그것을 상징했다. 죄인은 하나님을 진노케 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다. 히브리서 10:19-20,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넷째, 우리는 온전한 헌신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다섯째, 우리는 누룩 없는 삶 즉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여섯째, 우리는 때때로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섬겨야 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와 같이, 본장은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해 교훈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안식이 없는 인생들에게 안식을 주신다. 그는 주간 안식일 외에 무교절에 2일, 맥추절에 1일 안식일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참된 안식이 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히브리서 4:9-10,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하자.

29장: 각종 절기의 예물 (2)

[1-6절] 7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너희는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로[유화의 향기로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숫양에는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되 월삭의 번제와 그 소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그 규례를 따라 향기로운[유화의 향기로] 화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7월 1일 월삭은 나팔절이다. 이 날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이다. 이 날은 나팔을 부는 날이다.

이 날에도 물론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를 드리고, 또 월삭마다 드리는 번제와 그 소제를 드려야 한다(물론, 전제와 속죄제도 포함될 것이다). 이런 제사들 외에, 나팔절은 추가로 제사를 드려야 하였다. 그것은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여호와께 유화(속죄)의 향기로 번제를 드리며,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에바 10분지 3, 숫양에는 에바 10분지 2,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로 숫염소 하나를 드리는 것이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다.

나팔절은 속죄일을 예고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전도를 예표하였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2-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고 하나님께 우리를 온전히 드리며 감사함으로 이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7-11절] 7월 10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너희는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 된 숫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의 향기로]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릴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죄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7월 10일은 속죄일이다. 이 날은 성회로 모이고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였다. ‘마음을 괴롭게 한다’는 표현은 금식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날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두 종류의 특별한 제사를 더 드려야 했다. 하나는 속죄일에 드리는 속죄제이다. 그것은 본문 11절에 “이는 [속죄를 위한] 속죄제와”라고만 말했지만, 레위기 16:1-22에는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대제사장은 1년 중에 그 날 단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날 아마 세 번 지성소에 들어간다고 본다. 대제사장은 먼저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고, 그 다음 자기를 위한 속죄제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 들어가고, 끝으로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인 숫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 들어간다(12, 14, 15절).

다른 하나는 속죄일의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다.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된 숫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유화의 향기로 번제를 드리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이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사역을 예표한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택자들을 위한 속죄사역을 이루셨다. 히브리서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브리서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2-40절] 7월 15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7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너희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의 향기로]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열 셋과 숫양 둘과 1년된 숫양 열 넷을 다 흠 없는 것으로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 셋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3이요 숫양 둘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열 넷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1을 드릴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둘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 둘과 숫양 둘과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셋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 하나와 숫양 둘과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넷째 날에는 수송아지 열과 숫양 둘과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다섯째 날에는 수송아지 아홉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숫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여섯째 날에는 수송아지 여덟과 숫양 둘과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일곱째 날에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둘과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여덟째 날에는 거룩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번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의 향기로] 화제를 드리되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드릴 것이며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너희가 이 절기를 당하거든 여호와께 이같이 드릴지니 이는 너희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를 드릴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로 명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라.

7월 15일부터 8일 동안은 초막절이다. 첫째 날은 성회로 모이는 날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이며, 8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하였다. 주간 안식일(제7일 안식일) 외에, 절기들에 쉬는 안식일이 1년에 모두 일곱 번이었다(무교절에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에 2번).

초막절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 외에, 모든 절기 중에 가장 풍성한 제물을 7일 동안 드려야 했다.

첫째 날은 번제로 수송아지 열 셋과 숫양 둘과 일년된 숫양 열 넷을 다 흠 없는 것으로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며,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 셋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3, 숫양 둘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2, 어린양 열 넷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속죄제로는 숫염소 하나를 드려야 하였다.

둘째 날은 수송아지 열 둘과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셋째 날은 수송아지 열 하나와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넷째 날은 수송아지 열과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다섯째 날은 수송아지 아홉과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여섯째 날은 수송아지 여덟과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일곱째 날은 수송아지 일곱과 나머지는 첫째 날과 같이 드려야 했다. 여덟째 날은 거룩한 대회로 모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안식일로 지켜야 하였다. 그 날에는 번제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여호와께 유화의 향기로 화제를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이것들은 물론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 외에 추가로 드리는 제물들이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선조들이 옛날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천막 생활을 했던 일을 기념하는 뜻이 있다. 또 이 절기는 곡식이나 기름과 열매와 포도주 등의 추수를 다 마치고 그것들을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이며 그래서 이 날을 또한 수장절(收藏節)이라고 부른다(출 23:16).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천국에 들어감을 예표하였다. 이 날 모든 백성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확신하며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다짐하고 또 감사의 예물을 드린다. 초막절은 모든 절기들 중에 가장 즐거운 절기이다. 레위기 23: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민수기 28장과 29장에 규정된 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들을 지켜야 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들은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번제, 소제, 전제(奠祭),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였다. 이것들은 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바이었다.

민수기 2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사역을 믿자.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뿐 아니라, 절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예표한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씻어주셨음을 예표하였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나팔절에 나팔을 불듯이,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만방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다.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고린도전서 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절기들에 수많은 번제물과 소제물을 드리게 규정하셨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며 소제는 온전한 순종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고린도후서 5:14-15,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30장: 서원에 대한 법

[1-2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맹세]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맹세하였으면 그 약속을 어기지 말고 그가 말한 대로 다 행해야 하였다. 서원이나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며 진술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고 말하는 것이 맹세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은 참되어야 하고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가 된다.

[3-5절]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맹세]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맹세]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맹세]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서원이 비록 하나님 앞에서 하는 행위지만, 하나님께서는 서원에 있어서도 가정의 질서를 중시하셨다. 결혼하기 전의 어린 자녀들은 아직 부모의 관리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가정의 질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6-8절]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맹세]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맹세]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결혼한 아내의 경우, 아내가 무슨 일을 서원할 때 남편이 그것을 듣고 아무 말도 없으면 허락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은 무효가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하는 서원에 있어서도 남편과 아내의 바른 관계,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일이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9절]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경우는, 남편에게 매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모든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10-16절] 부녀가 혹시 그 남편의 집에 있어 서원을 하였다든지 마음을 제어하려고 서약[맹세]을 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고 금함이 없으면 그 서원은 무릇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맹세]은 무릇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케 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일에 대하여 입술에서 낸 것을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하나니 그 남편이 그것을 무효케 하였은즉 여호와께서 그 부녀를 사하시느니라. 무릇 서원과 무릇 마음을 괴롭게 하려는 서약[맹세]은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케도 할 수 있나니 그 남편이 일향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제어하려는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례니 남편이 아내에게, 아비가 자기 집에 있는 유년 여자에게 대한 것이니라.

이것은 결혼한 아내의 경우에 대한 규례를 다시 반복한 것이라고 본다. 아내의 서원이나 맹세는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가 되게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남편의 권한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들은 지 얼마 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다.

민수기 3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잘 지켜야 한다. 서원은 하나님과 약속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마다 그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명기 23:21-23,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지키고 그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잘 지키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공경과 순종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미혼의 자녀가 자기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살 수 있지만, 단지 부모의 허락 속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서원의 경우에서도 그러하다. 이만큼 가정의 질서가 중요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중요하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부부의 관계도 잘 지켜야 한다. 아내가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경우도 남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지키게도 하고 무효케도 할 수 있었다. 이만큼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의 몸처럼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주셨다. 남녀평등의 사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부부간에 질서를 주셨다. 신약성경도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하고, 남편들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해야 한다고 교훈하였다(엡 5:22-25).

31장: 미디안에 대한 보복

[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싸움에 나갈 준비를 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서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각 지파에서 1천인씩을 싸움에 보낼지니라 하매 매 지파에서 1천인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1만 2천인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모세가 매 지파에 1천인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 가축과 양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그 거처하는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을 다 취하니라. 그들이 사로잡은 자와 노략한 것과 탈취한 것을 가지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에 이르러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로 나아오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명하였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은 그들로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짓게 한 일이었다. 민수기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연합]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본장 16절은 그 일이 발람의 꾀에서 나온 것임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 지파에서 1천명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12,000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켰다. 모세는 매 지파에 1천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들을 다 죽였고 죽인 자들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들, 즉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를 죽였고, 또 브올의 아들 선지자 발람을 칼로 죽였다. 그들은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 가축과 양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그 성읍들을 다 불사르고, 탈취한 것을 다 취하였다.

[13-18절]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이 다 진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모세가 군대의 장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핫타프 반나쉼)[소녀들](NASB)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19-24절] 너희는 7일 동안 진 밖에 주둔하라. 무릇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시체를 만진 자나 제3일과 제7일에 몸을 깨끗케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의복과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과 무릇 염소털로 만든 것과 무릇 나무로 만든 것을 다 깨끗케 할지니라.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법률이니라. 금, 은, 동, 철과 상납(tin, 주석)과 납의 무릇 불에 견딜 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오히려 정결케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너희는 제7일에 옷을 빨아서 깨끗케 한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

전쟁에 나갔던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3일과 제7일에 정결 의식을 행해야 했고 노획한 물건들도 불과 물로 정결케 해야 했다.

[25-3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로 더불어 이 탈취한 사람과 짐승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半分)하여 그 절반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의 500분지 1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되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취하여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얻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나 각종 짐승을 50분지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32-41절]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 양이 675,000이요 소가 72,000이요 나귀가 61,000이요 사람은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32,000이니, 그 절반 곧 싸움에 나갔던 자들의 소유가 양이 337,500이라,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양이 675요; 소가 36,000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것이 72두(頭)요; 나귀가 30,500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것이 61이요; 사람이 16,000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리운 자가 32명이니; 여호와께 거제(擧祭)의 세(稅)로 드린 것을 모세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42-47절] 모세가 싸움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취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절반 곧 회중의 얻은 절반은 양이 337,500이요 소가 36,000이요 나귀가 30,500이요 사람이 16,000이라. 이스라엘 자손의 그 절반에서 모세가 사람이나 짐승의 50분지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48-54절] 군대의 장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고하되 당신의 종들의 영솔한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우리 각 사람의 얻은 바 금 패물 곧 발목고리, 손목고리, 인장반지, 귀고리, 팔고리들을 여호와의 예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한즉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16,750세겔이니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니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들여서 여호와 앞에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더라.

군대의 장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은 그들이 영솔한 군인들이 한 사람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얻은 전쟁 노획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기 위해 가져왔다. 그것은 자원하는 예물이었다.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16,750세겔(약 168킬로그램)이었다.

민수기 3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케 한 미디안의 죄를 갚게 하셨다.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과 다섯 왕들과 선지자 발람과 또 남자들과 함께 동침한 여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였다. 죄는 반드시 보응을 받아야 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가 아니면, 아무도 죄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들을 ‘여호와의 원수’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악령들이며 그들의 종들이다(엡 6:12). 그들은 교회들 안에 이단사상들과 세상 풍조들을 침투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후 11:4; 유 3).

셋째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과 원수가 된 것은 그들로 범죄케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미디안 여자들의 유혹으로 우상숭배하고 음행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무서운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었다(민 25장). 오늘날도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현대인의 우상은 돈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우리는 돈 사랑을 버려야 한다. 또 우리는 음란한 세상과 싸워야 한다. 우리는 말과 행위, 보는 것, 듣는 것, 복장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음란 풍조를 용납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각종 음란물을 멀리해야 한다. 죄는 씻음받고 다시 범죄치 않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평강과 형통을 체험할 수 있다.

32장: 세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얻음

[1-5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인지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족장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가로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여 그 땅을 정복해야 할 시점에, 그들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야 할 그때에,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잠시라도 자기들의 평안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짧았고 잘못되었다. 그들의 잘못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6-15절]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너희 열조도 내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내었을 때에 그리하였었나니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20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40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 보라, 너희는 너희의 열조를 계대하여 일어난 죄인의 종류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모세는 그들의 요청이 다른 지파들 자손들을 낙심케 만드는 생각임을 지적하였다. 전쟁을 앞두고 일치 단합하고 협력하여야 할 때에, 전우애를 발휘해야 할 때에,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헌신하고 지도자 모세에게 순종해야 할 그때에, 그들은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였고 잘못된 요청을 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들의 잘못이 그들의 열조들이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잘못한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정탐꾼들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회중을 낙심케 하였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또 그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의 진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다 멸망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요청도 하나님의 노를 일으킬 만한 잘못임을 지적하였다. 그들의 요청은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고 이스라엘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고 낙심시키는 말이었다.

[16-19절]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가로되 우리가 이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 거민의 연고로 우리 유아들로 그 견고한 성읍에 거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모세의 지적과 책망을 듣고 즉시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반성하고 그 요청을 철회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수정하였다. 그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우리가 이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한 후에,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각오와 결심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지적과 책망을 달게 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처음의 요청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고친 것이었다. 그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인격을 형성한다. 회개는 일차적으로 자기 중심적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적 생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을 고쳤다.

[20-27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만일 이 일을 행하여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서 싸우되 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복종케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앞에서나 무죄히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산업이 되리라마는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너희는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 입에서 낸 대로 행하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주의 명대로 종들이 행할 것이라. 우리의 어린 자와 아내와 양떼와 모든 가축은 이곳 길르앗 성읍들에 두고 우리 주의 말씀대로 종들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

모세는 그들의 수정된 요청을 조건부로 허락하였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다시 다짐하며 모세에게 대답하였다.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 앞에서 자신들을 ‘종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훈련되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적어도 지도자 모세 앞에서 그리고 후에 여호수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로 변화된 것 같다.

[28-32절] 이에 모세가 그들에게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명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기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거든 길르앗 땅을 그들에게 산업으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그들이 만일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거든 가나안 땅에서 너희 중에 산업을 줄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편으로 우리의 산업이 되게 하리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명하였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다시 다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수정된 요청을 성심으로 행함으로 요단 이편의 땅을 자기들의 기업으로 얻겠다고 공적으로 다짐한 것이다.

[33-42절]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곧 그 나라와 그 경내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면 땅을 그들에게 주매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벧니므라와 벧하란들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또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으며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고쳤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취하고 거기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매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매 그가 거기 거하였고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취하고 하봇야일이라 칭하였으며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향촌을 취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칭하였더라.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곧 그 나라와 그 경내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면 땅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래서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또 므낫세의 아들들(마길, 야일, 노바)는 요단 동쪽에서 성읍을 건축하였다.

민수기 32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고 본다. 첫째로, 우리는 형제를 낙심케 말아야 한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지 말아야 했다. 형제를 낙심케 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불신앙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형제를 범죄케 하는 것은 작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교우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덕’이라는 말은 남을 유익케 하고 남의 믿음을 세운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9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쓴다”고 말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14에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했다. 우리는 형제를 낙심케 말고 위로 격려하고 덕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합심하여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함께 가나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였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모세의 지적과 책망을 들은 후 뒤늦게라도 생각을 고쳤고 합심하여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교회에 예배, 영적 성장, 전도의 임무를 주셨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말씀을 배우고 봉사하고 교제함으로써 성화를 이루고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성경에 밝히 교훈된 이 삼대 임무에 다 합심하여 동참해야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23-25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교훈하였다.

33장: 광야 노정

[1-2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 하에 그 항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의 노정이 이러하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 진행한 대로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

본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 하에 그 항오(치브오삼)[그들의 군대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노정(路程)을 기록한다. 모세는, 그들이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그들이 진행한 노정은 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 시대 이전에 이미 책을 쓰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모세는 책들을 썼다. 또 모세는 그 당시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책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애굽의 궁중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성경은 그가 책들을 썼다고 증거한다.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노정을 기록하였다고 증거한다. 또 출애굽기 24:4, 7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고 그 언약서를 백성에게 낭독하였다고 증거한다. 또 신명기 31:24는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재강론한 후에도 그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썼다고 증거한다. 여호수아서의 초두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항상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수 1:7-8).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선지자들로 하여금 구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우리는 구약성경 처음 다섯 권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 내용의 신빙성을 믿고 그것의 교훈적 권위도 믿어야 한다.

[3-4절] 그들이 정월 15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라암셋에서 출발했던 때는 애굽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들의 장자(長子)를 인해 애곡하는 때이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의 신(神)들에게도 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들은 애굽 사람들의 신들에게 내린 벌과 같았다. 애굽 왕 바로는 열 번째 재앙인 장자가 죽는 재앙을 통해 마침내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게 해주었다.

[5-14절]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 쳤고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고 하히롯[비하히롯](KJV, NIV)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3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 쳤고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 둘과 종려 70주가 있으므로 거기 진 쳤고 엘림에서 발행하여 홍해 가에 진 쳤고 홍해 가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에 진 쳤고 신 광야에서 발행하여 돕가에 진 쳤고 돕가에서 발행하여 알루스에 진 쳤고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에 진 쳤고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에담에서 출발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다. 거기에서 그들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고 홍해에 몰살될 위험에 처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으나 애굽의 군대들은 홍해 물에 몰살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엘림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샘물 열 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그들에게 시시때때로 먹을것과 마실 것을 주셨다.

[15-37절] 르비딤에서 발행하여 시내 광야에 진 쳤고 시내 광야에서 발행하여 기브롯핫다아와에 진 쳤고 기브롯핫다아와에서 발행하여 하세롯에 진 쳤고 하세롯에서 발행하여 릿마에 진 쳤고 릿마에서 발행하여 림몬베레스에 진 쳤고 림몬베레스에서 발행하여 립나에 진 쳤고 립나에서 발행하여 릿사에 진 쳤고 릿사에서 발행하여 그헬라다에 진 쳤고 그헬라다에서 발행하여 세벨산에 진 쳤고 세벨산에서 발행하여 하라다에 진 쳤고 하라다에서 발행하여 막헬롯에 진 쳤고 막헬롯에서 발행하여 다핫에 진 쳤고 다핫에서 발행하여 데라에 진 쳤고 데라에서 발행하여 밋가에 진 쳤고 밋가에서 발행하여 하스모나에 진 쳤고 하스모나에서 발행하여 모세롯에 진 쳤고 모세롯에서 발행하여 브네야아간에 진 쳤고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홀하깃갓에 진 쳤고 홀하깃갓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진 쳤고 욧바다에서 발행하여 아브로나에 진 쳤고 아브로나에서 발행하여 에시온게벨에 진 쳤고 에시온게벨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 쳤고 가데스에서 발행하여 에돔 국경 호르산에 진 쳤더라.

15-37절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기 전후로부터 모압 평지에 도달하기까지 약 40년간의 노정을 기록하였다. 18절의 “하사롯에서 출발하여 릿마에 진 친” 때가 그들이 바란 광야에 도착한 때이며(민 12:16) 거기서 그들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거기에서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40일 정탐 기간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유리(流離)하는 벌을 내리셨다. 그 후 그들은 40년간 광야에서 유리하였다. 그러나 그런 징벌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주셨고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주셨고 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셨고 시시때때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발이 부릍지 않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38-40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 1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던 때에 나이 1백 23세이었더라.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이 이스라엘의 옴을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 1일 제사장 아론은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다.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던 때에 그의 나이는 123세이었다.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은 이스라엘의 온다는 소문을 들었다(민 21:1).

[41-49절] 그들이 호르산에서 발행하여 살모나에 진 쳤고 살모나에서 발행하여 부논에 진 쳤고 부논에서 발행하여 오봇에 진 쳤고 오봇에서 발행하여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에 진 쳤고 이임에서 발행하여 디본갓에 진 쳤고 디본갓에서 발행하여 알몬디블라다임에 진 쳤고 알몬디블라다임에서 발행하여 느보 앞 아바림산에 진 쳤고 아바림산에서 발행하여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미쳤었더라.

41-49절까지는 호르산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의 노정을 기록한다. 그 기간에 몇 가지 일들이 민수기 20-25장에 기록되어 있다.

[50-56절]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 거민을 다 몰아내고 그들의 우상들을 다 부수고 그 땅을 제비 뽑아 분배하라고 하셨고, 또 만일 그들이 그 땅 거민을 그들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민수기 33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에서의 인생의 삶은 광야 생활과 같은 고난의 삶이다. 인생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들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하였다(대상 29:15).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한된 수명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간다. 또 사람의 이 세상의 삶은 고생과 수고의 삶이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시 90:10).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오직 하나님과 천국에 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징벌하시면서도 그의 긍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식량으로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 우리의 부족 때문에 때때로 징책도 하시지만, 그의 크신 긍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공급하신다. 그는 오늘날도 우리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다(시 23:1). 그는 우리 속에 시작하신 선한 일인 구원을 끝까지 이루신다(빌 1:6). 그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시고(요 14:16) 우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신다(롬 8:14). 그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롬 8:28).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인도하심을 감사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명하신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은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와 그것을 따랐던 회중들의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했다(민 14장; 32:12). 죄와 불순종에는 고난이 따르고 믿음과 순종에는 평안이 따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혹시 범죄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 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평, 원망했던 이스라엘 자손을 본받지 말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34장: 가나안 땅의 경계

[1-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너희 남방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 남편 경계는 동편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편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방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서편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편 경계니라. 북편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산까지 긋고 호르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미치고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미치나니 이는 너희 북편 경계니라. 너희의 동편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편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편 해변에 미치고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미치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라고 명하셨나니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종족대로 그 기업을 받았고 므낫세의 반 지파도 기업을 받았음이라. 이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편에서 그 기업을 받았느니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 서쪽에 들어가서 얻을 가나안 땅, 곧 그가 그들에게 주시는 기업의 사방 경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남쪽 경계는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이었다.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 곧 지중해까지 이르렀다. 서쪽 경계는 대해(大海) 곧 지중해가 경계가 되었다. 북쪽 경계는 대해에서부터 호르산6)을 지나 하맛 어귀와 하살에난에 미쳤다.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긴네렛 곧 갈릴리 호수 동쪽 해변에 미치고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미쳤다. 이것이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외에 아홉 지파와 반 지파로 하여금 제비 뽑아 얻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이었다.

[16-29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이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매 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시므온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요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단 자손 지파의 족장 요글리의 아들 북기요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자손 지파의 족장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에브라임 자손 지파의 족장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요 스불론 자손 지파의 족장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잇사갈 자손 지파의 족장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요 아셀 자손 지파의 족장 슬로미의 아들 아히훗이요 납달리 자손 지파의 족장 암미훗의 아들 브다헬이니라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명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나누게 하신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16-29절은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로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지목하셨음과 또 열 지파의 대표자로 지정하신 족장의 이름을 기록한다. 두 지파는 요단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얻었고 므낫세 지파는 양쪽에 다 관련되었다.

본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들어갈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를 증거한다. 민수기 3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신약교회의 경계는 온 세계이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고(마 28:19),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막 16:15). 신약교회는 온 세계의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구별하지 않아야 하고 도시에도 두메산골에도 어촌이나 섬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아직 문명이 들어가지 않은 밀림지역에도 글자가 없는 족속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구 공산권이나 이슬람 지역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둘째로, 그러나 신약교회의 엄격한 경계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8-39).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이 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救贖)하신 양들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지만, 온 세계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려 한다. 우리가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고 구원으로 초청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그 초청에 참으로 응답하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것이다.

셋째로, 신약교회의 참 회원은 바른 신앙고백과 거룩한 인격과 삶을 통해 증거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다 죽여야 했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 때문에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모임이다. 교회는 불경건하고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은 장차 멸망할 성과 같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 장차 영생에 이를 사람들, 장차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자들의 모임이다. 사도 바울은 구주 예수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셨다”고 말했다(엡 5:26-27).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윤리적 흠과 점이 없는 교회, 즉 경건과 도덕성을 구비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35장: 도피성

[1-8절]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 사면의 들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으로는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들로는 그들의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면 2천 규빗[천 규빗](원문)이라.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편으로 2천 규빗, 남편으로 2천 규빗, 서편으로 2천 규빗, 북편으로 2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42성읍이라.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48성읍을 주고 그 들도 함께 주되 이스라엘 자손의 산업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얻은 자에게서는 많이 취하여 주고 적게 얻은 자에게서는 적게 취하여 줄 것이라. 각기 얻은 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처럼 요단 강 동편의 땅에서나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레위인들을 위한 성읍들과 그 들을 주게 하였다. 성읍들은 레위인들의 거처할 집을 지을 곳이며 그 들들은 소나 양 등의 가축들을 둘 곳이다. 히브리어 원문 4절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이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면 천 규빗이라고 말한다(MT, KJV, NASB, NIV). 매튜 풀은 그것을 “천 규빗부터”라고 보았다. 5절은 레위인들의 성읍들의 들이 전체적으로 동서남북으로 2천 규빗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들은 소나 양 등의 가축들을 두는 곳과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 들판일 것이다. 1규빗은 약 46센티미터이며, 천 규빗은 약 460미터이다.

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은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기업의 규모에 따라 성읍들을 주되 그들에게 모두 48성읍을 주게 하였다. 레위인들의 48성읍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널리 흩어져 있었다. 그 성읍들은 여호수아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실수로 살인한 자가 피할 수 있는 성인 도피성 여섯 성읍이 포함되어 있다.

[9-15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비쉐가가 ה������������������������)[실수로, 부지중에]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報讎)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도피성은 실수로 즉 고의성이 없이 살인한 자가 도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 성으로 우선 피신하고 회중 앞에서 정식 재판을 받아 고의성 여부를 판단받게 된다. 레위인들의 48성읍들 중 여섯 성읍이 도피성으로 구별되었고 그것은 요단강 동편에 세 성읍과 요단강 서편에 세 성읍이었다. 또 이 규례는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타국인이나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살인과 실수로 인한 살인을 엄격하게 구별하셨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 세속사회의 법에도 적용되어 있다. 법적으로 살인죄는 고의로 남을 죽인 죄를 가리키고, 비고의적 살인은 과실치사죄라고 불러 그 둘을 구별한다. 살인죄와 과실치사죄는 그 죄의 성격과 그것에 대한 형벌의 양이 크게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속죄의 제사 제도도 일차적으로 실수로 범한 죄에 대한 사죄의 규례이었다. 레위기 4장과 5장의 속죄제와 속건제의 규례는 반복하여 ‘그릇, 부지중에’(비쉐가가) 즉 실수로 범한 죄에 대해 언급한다(레 4:2, 13, 22, 27 등). 또 민수기 15장에서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22-29절). 율법은 실수로 범한 죄와 구별하여 고의적 죄에 대해서는 엄격히 다루었다. 출애굽기 21:12, 14,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민수기 15: 30-31,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끊어지리라].”

[16-21절]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고살하였음이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죄와 구별하여 고의적인 살인죄의 예를 여섯 가지 드셨다. 철 연장으로 죽인 경우, 죽일 만한 돌로 죽인 경우, 나무 연장으로 죽인 경우, 밀쳐 죽인 경우, 무엇을 던져 죽인 경우, 손으로 쳐죽인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으로 벌해야 하였다.

[22-25절]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도 예를 드셨다. 그것들은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인 경우 등이다. 고의성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사형으로 처벌되어서는 안 되고 원한을 품은 자에게 내어주어서도 안 되었다. 그런 자는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였다.

[26-29절]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이는 너희 대대로 거하는 곳에서 판단하는 율례라.

하나님께서는 실수로 살인하고 도피성에 피신한 자의 거주 제한을 강조하셨다. 도피성으로 피한 그 살인자가 규례를 어기고 도피성 밖에 나갔다가 보복을 당한 경우, 그를 보복한 자는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실수로 한 살인이라도 살인한 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긍휼 가운데 그에게 도피할 방법을 주셨던 것이고 그가 그 방법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27, 28절)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거하다가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유함을 얻었다. 그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죄와 그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얻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30-32절]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또 도피성에 피한 자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살인자는 속전(贖錢)을 받고 풀어주지 말고 반드시 사형시킬 것이나 한 사람의 증거를 따라 하지 말고 두 사람 이상의 증거를 따라 하라고 말씀하셨다.

[33-34절]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땅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땅이므로, 그들은 범죄함으로 그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 특히 살인은 사형으로 다스려야 했다.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은 땅을 더럽히는 것이다.

민수기 3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가 전임사역자들에게 주택과 생활비를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주께서도 “일꾼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고(마 10:10), 사도 바울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복음사역자들의 생활비의 정당함을 가르쳤다(고전 9:9). 교회를 위해 일하는 전임사역자들의 주택과 생활비 제공은 성경적이라고 본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도피성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은 택함 받은 모든 죄인들에게 거룩함과 의로움이 되었다(고전 1:30).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있다. 시편 46:1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하시다. 그는 우리의 도피성 곧 피난처이시며 환난 중에 큰 도움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고의적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범하는 죄들 중에는 실수로 범하는 죄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가 있다. 이 두 죄는 명확히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죄는 엄하게 벌하신다. 히브리서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하였다(요일 5:16-17). 우리는 실수로 범하는 죄도 짓지 말아야 하지만, 특히 고의적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36장: 여자 상속자의 결혼 문제

[1-4절] 요셉 자손의 가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지도자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된 족장들 앞에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기업의 땅을 제비 뽑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으로 그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 남자들에게 시집가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감삭되고[빠지고] 그들의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더해지리니] 그러면 우리 제비 뽑은 기업에서 감삭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감삭되리이다.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민 27:1)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는, 슬로브핫이 기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으므로 딸들에게 기업을 주게 한 경우이었다. 그들에 대한 규례는 민수기 27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민 27:8-11).

문제는, 그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 결혼하면, 그들의 기업은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 남기 어려워지고 특히 제50년 희년이 되어 각 사람이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갈 때에도 그들이 받은 기업은 그 다른 지파의 것으로 확정될 것이다. 레위기 25:10은, “제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니라”고 말하였다. 그 딸들의 기업은 희년이 되어도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 환원되지 못하므로 므낫세 지파의 기업은 감소될 것이다.

[5-9절]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물려받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 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이 문제에 대해,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들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하였다(딤후 3:16).

신약성경도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기록한 책이요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해진 내용]을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한 지파의 딸이 다른 지파로 시집갈 수 있으나, 기업을 물려받은 딸의 경우 각 지파의 기업의 보존을 위하여 같은 지파 안에서만 시집가도록 결혼 대상을 제한하셨다. 이것은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규례이었다. 이것은 각 지파의 기업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었다.

[10-13절]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

민수기 3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은 같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해야 했다.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점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같은 종교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하셨다(신 7장). 사도 바울은 아내가 남편과 사별한 후 재혼할 때 주 안에서만 하라고 교훈하였다(고전 7:39). 성도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결혼해야 한다(고후 6:14-16).

둘째로, 우리는 같은 교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우리는 장로교회 신앙이 바르다고 믿는다. 교리적 신념의 차이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교리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파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롬 14:22). 에베소서 4:13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우리는 동일한 교파적 신앙 안에서 결혼하고, 결혼한 후에도 동일한 교파적 신앙의 유산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장로교 신앙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같은 보수신앙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 포용적, 타협적 복음주의, 은사주의, 심지어 종교다원주의 등 다양한 신앙사상들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직 한 믿음, 즉 성경적인 옛신앙만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바른 신앙을 보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딤후 1:13-14; 유 3). 오늘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교회들 내의 이질적 사상들을 분별하고 성경적인 옛신앙 안에서 결혼하고 그 신앙과 그 교회의 유산을 잘 지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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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머리’라는 뜻 외에, ‘총수’(sum)라는 뜻도 있다(BDB).

2) 두 번째 인구조사는 모세와 엘르아살의 책임 하에 행해졌다(민 26:1).

3) 레위인들의 합계의 수를 볼 때(29, 46절 참조), 레위 자손들의 총수가 22,000명인 것을 생각할 때(39, 46절), 고핫 자손들의 수는 아마 8,300이었을 것이며 필사상의 실수로 8,600명으로 표기된 것으로 추측된다(카일, 박윤선). 히브리어로 300은 쉘로쉬 메오스이며, 600은 쉐쉬 메오스 인데, 필사자가 쉘로쉬에서 라멛(ל)을 빠뜨렸을 수 있다.

4) 본문에는 ‘자기 몸을 구별하는’이라고 번역된 명사(니즈로)가 열두 번, 또 ‘구별한다’는 동사(나자르)가 다섯 번 나온다.

5) 롬 1:7; 16:24; 고전 1:3; 16:23; 고후 1:2; 13:13; 갈 1:3; 6:18; 엡 1:2; 6:24; 빌 1:2; 4:23; 골 1:2; 4:18; 살전 1:1; 5:28; 살후 1:2; 3:18; 딤전 1:2; 6:21; 딤후 1:2; 4:22; 딛 1:4; 3:15; 몬 3, 25; 히 13:25; 벧전 1:2; 벧후 1:2; 3:18; 요이 3; 유 2; 계 1:4-5; 22:21. 야고보서와 요한일서와 요한삼서를 빼고는 모든 서신들에 나온다. 히브리서는 시작에 없고 베드로전서와 요한삼서에는 끝에 ‘평강’의 기원만 있다.

6) 유대 땅의 북쪽 지중해 연안의 갈멜산에서 북쪽으로 200km쯤 되는 곳이며 다메섹보다 더 북쪽이다. 다메섹은 가나안 땅의 경계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