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모세오경[강해]

★레위기(Leviticus) 1장: 번제 -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영국신사77 2020. 4. 14. 18:03


레위기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8일


머리말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와이크라 (또 그가 부르셨다)이다. 레위기(Leviticus)라는 말은 헬라어 70인역에서 왔다. 레위기의 주요 내용은 제사 제도와 거룩의 법이며, 특징적 진리는 거룩이다. 레위기 1-10장은 제사 제도에 대한 것이며, 11-27장은 거룩의 법들에 대한 것이다.

출애굽기에 성막과 여섯 가지 거룩한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나오듯이, 레위기에는 다섯 가지 제사들에 대한 규정, 깨끗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에 대한 규정, 속죄일에 대한 규정, 성 도덕에 관한 법, 10가지 절기들에 대한 규정, 복과 화에 대한 말씀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목 차례

1장: 번제

2장: 소제

3장: 화목제

4장: 속죄제

5장: 속건제(贖愆祭)

6장: 번제, 소제, 속죄제의 규례

7장: 속건제와 화목제의 규례

8장: 제사장 임직식

9장: 제사장 직무를 시작함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1장: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

12장: 자녀 출산 후 정결법

13장: 나병에 관한 법

14장: 나병환자의 정결법

15장: 유출병에 관한 법

16장: 속죄일

17장: 피를 먹지 말 것

18장: 성 도덕에 관한 법

19장: 여러 가지 법들

20장: 율법을 어긴 벌

21장: 제사장에 대한 법

22장: 합당한 제물

23장: 절기들

24장: 등대, 떡상, 하나님을 훼방하는 죄

25장: 안식년, 희년

26장: 복과 화

27장: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


서론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와이크라(또 그가 부르셨다)이다. 레위기(Leviticus)라는 말은 헬라어 70인역에서 왔다. 레위기의 주요 내용은 제사 제도와 거룩의 법이며, 특징적 진리는 거룩이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 제도에 대한 내용이며, 11장부터 27장까지는 거룩의 법들에 대한 내용이다. 출애굽기는 성막과 여섯 가지 거룩한 기구들의 크기와 구조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레위기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그 성막에서 행해야 할 다섯 가지 제사들에 대한 규례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열 가지 절기들에 대한 규례들, 깨끗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에 대한 규례, 성 도덕에 관한 법, 복과 화에 대한 말씀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레위기는 다섯 가지 제사들에 대한 규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 다섯 가지 제사들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 (1)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헌신과 속죄사역을 상징하고 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온전한 헌신도 교훈한다. (2)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상징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을 교훈한다고 본다. (3)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화목의 사역과 우리와 하나님의 화목과 교제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본다. (4)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상징한다. (5) 속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상징하며 특히 그것이 우리의 죗값을 보상하는 것임을 보인다.

레위기는 또 열 가지 절기들에 대한 규례들도 기록하고 있다. 그 열 가지 절기들도 영적 의미를 가진다. (1) 안식일은 우리의 육신의 안식의 필요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안식과 미래의 완전한 안식을 예표하며 또 하나님께 대한 공적 예배의 날이 필요함을 보인다. (2) 월삭(매월 첫째날; 초승달이 보일 때 선포함)은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3) 유월절과 무교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4) 보리 초실절[보리 추수; 무교절 주간에 안식일 다음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5) 맥추절(밀 초실절[밀 추수], 칠칠절, 오순절)은 성도의 중생을 상징한다. (6) 나팔절(7월 월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알리는 뜻이 있어 보인다. (7)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 사역을 상징한다. (8) 수장절(초막절; 곡식, 포도주와 기름, 열매들을 창고에 저장함)은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난 후 천국에 들어감을 상징한다. (9) 안식년은 성도의 완전한 안식을 상징한다. (10) 희년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만물의 회복을 상징한다.

*주간 안식일이 외에 연중 절기 안식일들은 무교절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 2번, 모두 합하여 7번이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1장: 번제

[1-2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여호와께서는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회막(會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이었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셨고 오늘날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물과 제사에 대해 명령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생축 곧 소나 양 같은 가축으로 예물(코르반)을 삼아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었다. 제사 혹은 예물은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하나님을 정성으로 섬기는 뜻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기본적 도리이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기본적이듯이, 피조물이 조물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3절] 그 예물이 소의 번제(燔祭 burnt offering; 올라)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받아지도록]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번제에 대해 명하셨다. 번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사이다. 아담의 아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번제이었을 것이다(창 4:4). 또 노아는 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창 8:20).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셨다(엡 5:2).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의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사 드리는 자는 흠 없는 수소를 회막 문에서 드려야 하였다. ‘흠 없는 수컷’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분이시다(고후 5:21; 히 4:15). 죄인은 자기의 죗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남을 위한 대속 제물이 될 수 없다. 오직 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4절]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책(罪責)의 전가(轉嫁) 즉 죄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을 상징한다. 죽어야 할 자는 제물이 아니고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제물은 그 사람의 죄를 지고 그를 대신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속죄의 원리이다. 이와 같이, 번제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구약시대 제사들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레위기에는 ‘속죄’라는 원어(킵페르)가 47회나 사용되었다. 속죄의 개념은 대리적 형벌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다. 죄인은 죄 문제의 해결인 속죄를 통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요한복음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물론, 번제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고 교훈하기도 한다(롬 12:1).

[5절]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제사 드리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죽이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하였다. 본장에서 ‘그는’(4, 5, 6, 9절)은 제사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한글개역 9절에서 ‘그는’이 생략됨).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드릴 제물을 직접 죽여야 했다. 제사 드리는 자는, 이 일을 통하여, 죗값은 죽음이며 짐승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번제물의 피를 회막 문앞에 있는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피는 곧 생명이며 피 흘림은 죽음을 상징한다. 죗값은 죽음이며 제물의 피 흘림은 속죄를 상징하였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해 흘려졌다(마 26:28).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려져야 했다. ‘단 사면에’라는 원어(알 함미즈베아크 사비브)는 ‘번제단 위 사방에’라는 뜻일 것이다(KJV). ‘뿌린다’는 원어(자라크)는 ‘듬뿍, 풍부하게 뿌린다’는 뜻이다. 헬라어 70인역은 ‘붓는다’는 말(프로스케오 proscevw)로 번역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양손과 양발, 머리와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셨다. 성막의 기구들은, 위에서 본다면, 십자가 모양이며 그것의 밑부분은 번제단이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십자가 밑에, 곧 번제단 위 사방에 듬뿍 뿌려질 것이다.

[6절]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내어야 했다. ‘각을 뜬다’는 말은 여러 토막들로 자르는 것을 말한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겉옷과 속옷까지 벗김 받으실 것을 예표한 것 같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옷 벗김을 당한 채 수치스런 죽음을 죽으셨고 또 온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받으셨다.

[7-8절]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불은 지옥 형벌을 상징할 것이다. 죗값은 죽음이요 지옥의 형벌을 포함한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으나,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 대신, 속죄제물이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대한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다. 그것은 단지 육체의 고난과 죽음 정도가 아니고, 죄인을 대신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그것은 지옥 형벌의 잔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일반 순교자에게 베푸신 은혜와 위로조차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의 불을 쏟으셨다. 예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여섯 시간의 고통은 택자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당하신 지옥 형벌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9절]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이 번제의 특징이다. 다른 제사들은 제물의 일부분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먹기도 하지만, 번제는 제물 전부를 불태워 드려야 했다. 그것은 온전한 헌신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리셨다. 그의 죽음은 번제이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과, 물과 피와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죄와 구원이 되었다. 여기에 기독교의 중심이 있다. 죄인을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救贖)과 의와 거룩과 생명이 되셨다.

번제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향기로운 냄새’라는 원어(레아크 니코아크)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냄새’(a soothing aroma)(NASB)라는 뜻을 가진다(BDB, KB). 주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헌신과 죽음으로 이루신 속죄사역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며 그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충성되고 향기로운 사역이었다. 성도의 온전한 헌신도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10-13절]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본문은 양이나 염소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말씀이다. 규정은 소의 번제와 같다. 단지, 짐승을 잡는 곳이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라고 표현되었다. 그것은 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14-17절]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火祭)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본문은 새의 번제, 즉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말씀이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한 규정이다(레 5:7; 12:8). 새의 번제물은, 제사장이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려야 했다. 멱통은 멀떠구니[먹이 주머니]를, ‘그 더러운 것’은 아마 ‘그 깃털들’을 가리킨다.1)

레위기 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번제는 온전한 헌신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자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피 흘리신 죽음은 우리에게 속죄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번제의 특징은 제물 전체를 단 위에 불살라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자. 로마서 12:1,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삶을 살자.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 에베소서 5:2,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의 헌신의 삶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빌립보서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온전한 헌신과 선한 봉사의 삶을 살자.

2장: 소제

[1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 2장은 소제(素祭 grain offering; 민카)에 대한 규정이다. ‘소’(素)라는 말은 ‘채식’이라는 뜻이 있다. ‘소제’는 ‘곡식제사’라는 뜻이다. ‘고운 가루’(솔렛 fine flour)는 자신을 부정하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기름은 성경에서 빈번히 사용된 대로 하나님의 영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셨다.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기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冤)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했다(사 6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나사렛 회당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 성경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날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소제의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향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과 온전한 순종의 사역의 향기를 나타낸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였다. 소제는 그것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뒤에 레위기 5: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운 가루로 속죄제물을 삼게 하실 때 그 위에 기름과 유향을 두지 않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물이 대리 형벌과 저주의 죽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아름다운 인격과 삶을 상징하며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제에 기름과 유향을 두어 좋은 냄새를 내게 하셨다고 본다.

[2-3절]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 2절을 다시 번역하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그는[그 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MT, KJV, NASB). 소제물은, 번제물과 달리, 제물의 일부인 기름 섞은 고운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만 취해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랐다. 그것은, 번제물과 같이, ‘향기로운 냄새’이다. ‘향기로운 냄새’라는 원어(레아크 니코아크)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냄새’(soothing aroma)(NASB)라는 뜻을 가진다(BDB, KB). 소제물의 남은 것은 제사장들에게 돌렸다.

[4-7절]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燔鐵)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마르케쉣)[삶는 솥(BDB, Langenscheid) 혹은 프라이팬(KJV)]에 삶은[혹은 구운]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사람은 화덕에 구운 것으로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누룩을 넣지 않고 얇게 만든 떡)으로 드리는 것이다. 또 사람은 번철(燔鐵)에 부친 것으로 소제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또 사람은 솥에 삶은 것 혹은 프라이팬에 구운 것으로 소제를 드릴 수 있다.

[8-10절]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8-9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그가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올 때, 그는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원문; KJV, NASB도 비슷함).

[11-12절]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못하게 하셨고 또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하게 하셨다. 누룩이나 꿀은 처음 익은 열매로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제단에 올리지 말아야 했다. 누룩은 성경에서 죄와 부패성을 상징한다. 또 꿀은 육신적 쾌락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고 육신적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셨다. 그는 거룩한 생애를 사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삶을 본받아야 한다.

[13절]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금은 맛과 부패방지를 상징한다고 본다. 음식에는 적당히 소금을 쳐야 맛이 난다. 소금은 또 썩는 것을 막는다. 소금이 뿌려질 때 소제는 온전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擧祭, 드는 제물)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應食)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생애와 속죄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소제물과 같았다. 오늘날 예수님 믿는 우리도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

[14-16절]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첫 이삭의 소제는 볶아서 찧는 것 외에는 다른 소제 규례와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거룩한 인격이셨다. 그는 세상에 계셨을 때 온유하고 겸손하셨으며 육신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셨다. 그의 온전한 순종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셨다. 그것은 우리의 많은 죄로 인해 크셨던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다. 그는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와 생명이 되었다. 로마서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교만과 죄와 세상 사랑과 육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골로새서 3:1-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 .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요한일서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온전히 순종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그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6-18,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3장: 화목제

[1-2절]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위기 3장은 화목제(和睦祭; 제바크 쉘라밈)에 대한 규정이다.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린다. 먼저, 사람이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그것을 죽이며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하였다.

번제와 달리, 화목제에서는 제물을 수컷이나 암컷을 다 쓸 수 있었다. 그것은, 화목제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인 동시에, 화목의 효력에 제사 드리는 남녀 모두가 참여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전가(轉嫁)하는 뜻이 있고 그 제물을 죽이고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는 것은 속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속죄는 대리적 형벌, 즉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벌을 짐승이 받는 것을 뜻한다. 화목제도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한다. 속죄의 성경적 의미는 화목을 포함한다.

[3-5절]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사 드리는 자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해야 했고,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살라 여호와께 화제(火祭)로 드려야 했다. 이 화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다.

기름은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교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사람의 복부 속에 좌우에 두 개가 있는 콩팥(신장)은 길이 10센티미터, 너비 5세티미터의 완두콩 모양의 작은 기관인데 그 속에는 각각 100만개의 작은 신장단위가 있어 피 속의 노폐물을 걸러주어 피를 깨끗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 중에서 모든 기름들과 두 개의 콩팥을 화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 속의 교만과, 노폐물 같은 죄성을 깨끗케 해야 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화목제도 번제나 소제처럼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었다(레 3:5, 16).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은 번제와 소제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냄새’(soothing aroma)(NASB)라는 속죄적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화목제도 일차적으로는 속죄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것은 특히 하나님과의 화목 즉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본다. 모든 제사는 기본적으로 속죄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6-11절]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꼬리뼈]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火祭)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2-16절]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양이나 염소로 화목제를 드릴 때도 비슷하다. 양의 경우에, 화제의 내용물로 양의 미려골[꼬리뼈]에서 벤 기름진 꼬리를 언급했다. 또 화목제의 화제는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라고 표현되었다(11, 16절). 그것은 하나님과의 식탁 교제를 상징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들과 다른 이들도 그것의 나머지 부분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레 7:15-17).

[16-17절] . . .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모든 기름을 자기 것으로 구별하셨다. 기름은 가장 맛있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이 규정은 오늘날 의학적 지식으로는 건강상에도 매우 좋다. 동물성 기름이 사람의 혈관 내벽에 불순물을 끼게 만들며 혈압을 높이고 동맥경화나 뇌졸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늘날 많이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인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화목제도 일차적으로 속죄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죽이고 그 피를 제사장으로 하여금 번제단 사면에 뿌리게 하는 행위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속죄 사역은 ‘화목’이라는 뜻을 가졌다. 화목은 성경적 속죄 개념의 한 요소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儀文, 글자)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인들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씻음 받는 자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했다(고후 5:20).

둘째로,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한다.2) 바쳐진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이라고 불린다(11절). 또 화목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이다(레 7:15-18). 그것은 식탁 교제를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잃어버렸었고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 누리는 큰 특권의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전통본문)고 하였다(롬 5:1). 구원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삶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열리고 깨달아지는 것과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증거이다. 대화가 없는 교제는 없다. 우리가 에녹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며 사는 것은 땅 위에서 매우 큰 특권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고 교훈하였다(신 10:20). ‘친근히 하라’는 원어(팃바크)는 ‘꼭 붙들라’는 뜻이다. 그것은 친밀한 교제를 가리킨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는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

셋째로, 화목제는 감사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3) 레위기 7장에 보면, 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 등 세 가지가 있다. 하나님과 화목되고 교제의 회복을 얻은 자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시편 50편 저자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말했다(시 50:14-15, 23). 또 시편 116편 저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고백했다(12, 17절). 사도 바울도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교훈하였고(엡 5:20),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다(골 3:17).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곧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일을 묵상하며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4장: 속죄제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4)

레위기 4장은 속죄제(캇타스)에 대한 규정이다. ‘속죄제’라는 원어(캇타스)는 ‘죄’ 혹은 ‘속죄제’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말씀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모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또한 인류 전체에게 교훈으로 주신 말씀이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주셨는지를 보인다. 즉 사람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인다.

속죄제는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죄사함을 위해 드려야 했던 제사이었다. 십계명에 계시된 하나님의 법은 모든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죄는 그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릇’(비쉐가가) 범하였다는 말은 ‘실수로, 부지중에’ 범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고의적 범죄와 구별되었다.

민수기 15:30,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말씀에서 ‘짐짓’이라는 원어(베야드 라마)는 ‘높은 손으로, 건방지게, 도전적으로, 고의로’라는 의미이다. 출애굽기 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여기서 ‘짐짓’이라는 원어(지드)도 ‘주제넘게, 건방지게, 뻔뻔스럽게’라는 뜻이다. 고의적인 죄는 이처럼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실수로 범한 죄는 속죄제를 통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다.

[3-4절]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속죄제를 드려야 할 사람에 따라 속죄제는 네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제사장의 경우이다.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물은 수송아지이었다.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은 대제사장이 아니고 일반 제사장을 가리킨다고 본다.5) 기름 바른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집행하는 자로 구별된 자이기 때문에, 그의 범죄는 매우 큰 죄로 간주되었다. 제사 집례자가 범죄하면 그의 제사가 흠결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기름 부음[바름]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이라고 표현했다. ‘죄얼을 입게 하였다’는 말은 ‘죄책(罪責, 아쉬마)[죄의 책임]을 얻게 하였다’는 뜻이다.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백성이 죄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범죄는 매우 큰 죄이며 그는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야 했고 그것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흠 없는 수송아지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그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轉嫁)시키는 뜻이 있었다. 또 그는 그 제물을 여호와 앞에서 죽여야 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범죄한 사람 대신 제물이 죽임을 당했다. ‘여호와께 드리라’는 말씀은 제사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나타낸다. 성경적 속죄 개념은 죄인의 죄에 대한 대리적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5-12절]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또 그 속죄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지니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야 했다. 족장의 범죄나 평민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았지만(25, 30, 34절), 제사장의 범죄나 온 회중의 범죄에 대한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회막의 성소에 들어가야 했다. 그것은 그 죄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회막에 들어간 제사장은 그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지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다.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또 그는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 이것은 중보자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힘있게 올려진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였고 그의 중보 기도와 또 그 안에서 우리의 기도들이 하나님 앞에 올려지고 받아지게 하였다.

제사장은 회막에서 나와 그 제물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피를 다 쏟으셨다. 제사장은 또 그 속죄제물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화목제물의 소에게서 취함같이 해야 했고, 그는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그것은 그의 교만과 죄성을 회개함을 상징할 것이다.

또 그는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로 나무 위에 살라야 했다. 진 바깥 재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은 성소로부터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처소로부터 떨어진 형벌의 장소 곧 지옥을 예표했을 것이다(안드류 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히브리서 13:11-12,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21절]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 기름은 다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되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 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 밖으로 가져다가 첫번 수송아지를 사름같이 사를지니 이는 회중의 속죄제니라.

둘째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도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제사장의 속죄제와 동일했다. 20절은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贖罪)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죄사함을 얻는 방법이었다.

[22-26절]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소[숫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그 수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 이는 속죄제라. 제사장은 그 속죄 희생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같이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셋째로, 족장이 범죄했을 때는 흠 없는 숫염소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이 속죄제는, 앞의 두 경우와 달리,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지 않고 회막 밖에서 제사를 집행하는 속죄제이었다. 그러나 속죄의 효력은 동일하였다.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가 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27-31절]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燔祭所)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넷째로, 평민이 범죄했을 때는 흠 없는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 규례는 족장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

[32-35절] 그가 만일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양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가 만일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면 흠 없는 암컷을 드릴 수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속죄를 통해서만 사해질 수 있다. 죄의 대가는 크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 위에서 수치와 고통의 죽음을 죽으셨다. 죄는 개인과 인류 전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죄에는 경중(輕重)이 있다. 고의적인 죄와 ‘실수로’ 범한 죄는 구별된다. 또 제사장의 죄는 족장이나 평민의 죄보다 더 무겁다. 그러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서만 사해질 수 있다. 제사장이 속죄한즉 사함을 얻는다(20, 31, 35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의지하고 죄를 멀리해야 하고 직분자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완전하였다.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속죄제는 제사장이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다. 그것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예수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은 완전했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완료시제),”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완료시제).” 히브리서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중보사역은 효력이 있다. 속죄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간 제사장은 그 피를 분향단 뿔에 발랐고 또 성소에 들어가지 않는 속죄제물의 피는 번제단 뿔에 발랐다. 분향단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상징했고 그 뿔은 그 효력을 상징하였고 번제단의 뿔도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효력을 상징했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그의 중보사역은 택자들과 구원받은 자들에게 효력이 있다. 로마서 8: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5장: 속건제(贖愆祭)

레위기 5장의 13절까지를 속죄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Bonar, 카일-델리취, 영, 해리슨, 아처, 박윤선), 5:1-6: 7을 속건제에 대한 규정으로 보기도 한다(NASB, NKJV). 5:6과 7절은 속건제를 언급한다. ‘속건제’라는 원어(아솸 ם������אָ)는 ‘죄책’(guilt) 즉 죄에 대한 법적 책임 곧 죗값이라는 뜻이다. ‘건’(愆)이라는 한자는 ‘허물’이라는 뜻이다. 속건제는 속죄제처럼 속죄의 뜻을 나타내지만, 속죄제보다 죗값과 보상(報償)의 의미가 강조되는 것 같다.

[1-6절]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에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다닥쳤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레위기 5장과 6:1-7에 의하면,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는 모두 여섯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증언을 회피한 경우이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고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에서는 묵비권이 통용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성도는 들은 것과 본 것과 아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둘째는, 부정한 것을 만졌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死體)나 부정한 가축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알지 못하고 했을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 허물이 있을 것이요 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접촉했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다.

셋째는, 헛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무심중에 즉 생각 없이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런 세 가지 경우에 범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제물은 어린 암양이나 암염소이었다. 6절에 이것을 ‘속죄제’라고도 말한 것을 보면 속건제나 속죄제는 그 의미상 큰 차이가 없었다. 이 경우는 평민의 속죄제와 비슷하였다(레 4:27-35).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해 속죄해야 했다.

[7-10절]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속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속건 제물로](원문, NASB)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그 속죄제물의 피를 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속하기 위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했다.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해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11-13절]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인해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을 예물로 가져와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었다. 에바 10분의 1은 약 2.2리터이다. 이것은 속죄제이기 때문에 그 위에 기름을 붓지 않고 유향도 놓지 말아야 했다. 속죄제는 소제와 달리 죄의 형벌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해 번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 것이다. 이것이 속죄제이었다.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소제물같이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숫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넷째 경우는, 성물에 대해 잘못을 범했을 때이다. 그것은 오늘날 각종 헌금이나 교회의 거룩한 물건들에 관계될 것이다. 누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실수로 범과하면 지정한 가치를 따라 몇 세겔 은에 해당하는 흠 없는 숫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려서 그 범과를 갚되 그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17-19절]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범한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실로 여호와 앞에 범과함이니라.

다섯째 경우는, 하나님의 금하신 계명을 범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전반에 관한 것일 것이다. 범죄한 자는 지정한 가치대로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실수로 범한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강탈]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레위기 6:1-7은 속건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한글성경 6:8부터가 6:1이다. 속건제의 여섯 번째 경우는, 거짓 증거나 거짓 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하거나 강탈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이며 그는 그 본래의 물건에 5분의 1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며,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즉 그가 ‘속건제를 드리는 날에’(KJV, NASB, NIV)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며 또 그는 지정된 가치대로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와야 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을 것이다.

속건제 규정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는 죄책이 있으며 속죄는 그 죄책의 보상임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우리의 죄책을 보상하신 것, 즉 죗값을 지불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20에서 말하기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우리의 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핏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와 선의 도구로 살아야 할 몸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6에서도 말하기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증거될 것이었느니라]”고 말했다. 우리의 죗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지불하셨다. 그가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다. 우리의 무거운 죗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었다. 우리는 죄로부터, 죄의 형벌과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만 굳게 믿고 의지하자.

또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을 순종하여 의와 선만 행하자. 우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의 증언이 필요할 때 증언을 회피하지 말고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본 것, 우리가 아는 것을 진실하게 증언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세례 서약이나 결혼 서약이나 임직 서약에 있어서 진실해야 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지켜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도적질해서는 안 되며 교회 물건을 자기 것처럼 사용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뿐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의와 선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6장: 번제, 소제, 속죄제의 규례

[8-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 갈 것이요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명할 제사의 추가적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번제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계속 붙도록 할 것이며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단 위에 불은 항상 붙어 있고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르며 불이 단 위에 붙어 있고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번제단의 불은 제물을 태우는 용도로 계속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불이 항상 붙어 있고 꺼지지 말게 하라고 명하셨다. 9절,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계속 붙게] 할 것이요.” 12절,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13절,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영원한 지옥의 불을 상징한다고 본다. 지옥은 불못이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우리는 그 지옥의 불을 두려워해야 한다.

[14-18절] 소제[곡물제사]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무릇 아론 자손의 남자는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소제[곡물제사]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사장은 소제를 번제단 앞 곧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해야 했다. 소제의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인 회막 뜰에서 먹어야 했다. 그들은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화제(火祭) 즉 불태워 드리는 제물 중에서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득이 되게 하신 것이다. 소제는 속죄제와 속건제같이 지극히 거룩하기 때문에 무릇 아론 자손의 남자들이 이것을 먹어야 하였다.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소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할 것이다.

소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표현된다(17절).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께서 받으신 거룩한 제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장들만 그것을 먹을 수 있다. 제사장들이 소제의 남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제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를 상징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온전한 순종과 의를 받으실 것이다.

[19-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여호와께 드릴 예물은 이러하니라.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항상 드리는 소제물로 삼아 그 절반은 아침에, 절반은 저녁에 드리되 그것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굽고 기름에 적시어다가 썰어서 소제로 여호와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이 소제는 아론의 자손 중 기름 부음을 받고 그를 이어 제사장된 자가 드릴 것이요 영원한 규례로 여호와께 온전히 불사를 것이니 무릇 제사장의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 자손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여호와께 드릴 소제, 즉 제사장 임직식 소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 즉 약 2.2리터를 항상 드리는 소제물로 삼아 그 절반은 아침에, 절반은 저녁에 드리되 그것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번철에 굽고 기름에 적시어 썰어서 소제로 여호와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는 것인데, 아론의 자손 중 기름 부음을 받고 그를 이어 제사장된 자가 드릴 것이며 영원한 규례로 여호와께 온전히 불살라 드려야 했다. 무릇 제사장의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아야 하였다. 백성이 드린 소제물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것을 받으시는 뜻으로 먹지만, 자신이 드리는 소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뜻으로 온전히 불사르는 것일 것이다.

[24-3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속죄제 제물의 규례에 대해 고하도록 말씀하셨다. 속죄제의 규례에 대해서는,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여호와 앞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죽일 것이며 죄를 위해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또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것의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놋그릇]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어야 했다.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므로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어야 했다.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즉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물이나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레 4:1-21)의 고기는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다.

제사장이 속죄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속죄제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 남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나 자신이 포함되는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는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다. 그것은 그때에는 그가 하나님의 입장에 서지 않고 사람들의 입장에만 서기 때문일 것이다.

레위기 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영원한 불못인 지옥을 두려워하자. 번제단의 꺼지지 않는 불은 지옥의 불을 상징할 것이다. 지옥은 사탄과 악령들과 악인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의 형벌의 장소이다. 마태복음 25:41,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 지옥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탄다.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전통본문)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의](전통본문)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전통본문은 44, 46절에도 있음).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는 영원한 지옥 불못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구약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상징한다. 번제는 그의 온전한 헌신과 속죄, 소제는 그의 온전한 순종과 의, 속죄제는 그의 대속사역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과 의를 받으셨다. 그를 믿는 우리는 그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살고 의와 선만 행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의 생명이다. 또 우리는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성경에 교훈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와 선만 힘써 실천해야 한다.

7장: 속건제와 화목제의 규례

본장은 속건제와 화목제의 추가적 규례이다.

[1-7절] 속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는 지극히 거룩하니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의 희생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 모든 기름을 드리되 곧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고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이는 속건제요 지극히 거룩하니 이것을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며 속건제나 속죄제는 일례니 그 제육은 속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첫째로, 속건제의 규례이다. 속건제는 지극히 거룩하므로 번제물을 죽이는 곳에서 제물을 죽이며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며 그 모든 기름을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불태워 드려야 했다. 거기 포함된 것은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 등이다.

그 피를 단에 뿌리는 것은 속죄의 의미가 있다. 속건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예표하였다. 또 그 모든 기름은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인데, 사람의 교만을 상징한 듯하다. 또 콩팥은 몸의 찌꺼기를 걸러내는 기관으로서 죄악된 요소를 상징한 것 같다. 우리의 교만과 죄악된 요소들은 다 태워져야 한다. 또 속건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제사장의 남자마다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그것은 속죄제의 규례와 동일했다. 제사장이 그 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속죄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8-10절] 사람의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얻을 것이며 무릇 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솥에나 번철에 만든 소제물은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무릇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아론의 모든 자손이 평균히 분배할 것이니라.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은 그 번제물의 가죽을 얻을 것이며 소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은 그 소제물을 얻어 모든 형제들과 함께 나누어야 했다.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게 이런 것들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을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대우하는 뜻도 있었다고 본다.

[11-14절]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 희생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누룩 없는 떡]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누룩 넣은 떡]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擧祭)[드는 제물]6)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둘째로, 화목제의 규례이다. 화목제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감사의 화목제이며, 둘째는 서원의 화목제이고, 셋째는 자원의 화목제이다. 화목제는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과의 화목과 그 결과로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됨을 상징하는 제사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의 요소들로서 감사와 서원과 자원을 말씀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감사의 화목제는 화목제물과 더불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도 함께 드려야 했다. 유교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대상인,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가 여전히 부족한 죄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도 여전히 부족과 연약이 많은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않고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화목제의 예물들은 그 전체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擧祭)로 드리고 그 드린 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주어야 했다.

[15-18절]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희생의 고기가 제3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제사 드린 그 날에 먹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아야 했다. 우리의 감사는 보통 하루에 제한되는 것 같다. 그러나 서원이나 자원의 화목제물은 제사 드린 날에도 먹지만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을 수 있었다. 단지 그 고기가 제3일까지 남았으면 불살라야 했다. 만일 그 고기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제사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가증한 것이 되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과 가지는 우리의 교제는 경건함과 두려움과 진지함을 가진 교제이어야 한다.

[19-21절]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 것이라.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을 것이니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또 화목제물이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살라야 했고 또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어야 했다.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몸이 부정하지 않고 깨끗한 자만 화목제물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은 죄사함 받은 성도들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상징한 것 같다.

[22-2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희생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너희의 모든 사는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중요한 명령을 추가하셨다. 첫째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먹는 것 외에는 쓸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의 기름을 생활의 여러 용도로 쓰는 것을 금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짐승의 기름을 먹지 말아야 했다. 특히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기름은 하나님께만 온전히 드려야 했다.

둘째는, 그들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였다. 그것은 오직 대속(代贖)의 상징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했다.

[28-3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화목제의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 희생 중에서 그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가져오되 여호와의 화제는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테누파)(wave- offering)[흔들어 드리는 제물]를 삼고 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릴 것이며 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쇼크)[앞넓적다리](KJV- 'shoulder'; 민 6:19, ‘어깨’; 신 18:3, ‘앞넓적다리’ KJV, NASB, NIV- 'shoulder')에서 사용된 제로아와 동의어라고 봄)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아론의 자손 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앞넓적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 자손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화목제물에서 제물의 가슴과 우편 앞 넓적다리를 하나님께 드린 후에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으로 주어야 할 것을 명하셨다. 화목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고 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그것은 번제단을 향하여 전후로 흔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다시 받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런 다음 그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주어졌다. 또 제사 드리는 자는 화목제물의 우편 앞넓적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KJV) 혹은 ‘헌물’ (NASB)로 삼게 했고 그 우편 앞넓적다리는 화목제의 피와 기름을 드린 제사장의 소득이 되었다. 이와 같이, 화목제물의 가슴과 우편 앞넓적다리는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 ‘여호와께서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 되었다.

[37-38절]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하신 날에 시내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하셨더라.

레위기의 이 제사 규정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이었다. 성경은 인간 역사의 구체적 시점에 구체적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이다. 우리는 이 책을 두려움과 감사함의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며 깨닫고 믿고 하나님의 뜻을 힘써 실천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또 우리의 교만과 죄성을 버리자. 제사장은 속건제물과 화목제물의 모든 기름과 두 콩팥을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렸다. 제물의 기름은 가장 좋은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민 18:29) 또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콩팥은 사람의 더러운 죄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동시에 우리 속에 있는 교만과 죄성의 찌꺼기들을 다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거룩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화목제는 속죄의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하는 뜻도 있었다고 본다. 화목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었다.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본다. 물론 화목제물은 깨끗한 자만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먼저 죄씻음을 받고 평소에 성결한 생활을 힘써야 함을 보인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사람의 매우 큰 특권이며 행복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귀히 여기자.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의 가죽, 소제물,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의 고기, 감사의 화목제물 중 무교병, 무교전병, 구운 과자, 및 유교병의 각각 한 개씩, 또 화목제물 짐승의 가슴, 우편 앞넓적다리 등을 제사장들에게 주게 하셨다. 그것들은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들을 받으셨다는 것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일꾼들을 대우하시는 뜻이 있어 보인다. 성도들은 주의 종들을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살전 5:12-13).

8장: 제사장 임직식

[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수양[숫양] 둘과 무교병 한 광주리를 이끌고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으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라. 모세가 회중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본장은 제사장 임직식의 내용이다. 모세는 회중을 모으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속옷(쿳토넷)7)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또 겉옷(메일)8)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또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9)을 넣고 또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앞면에 금패를 붙였다. 그 관은 거룩한 관이다.

[10-13절] 모세가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모세는 관유를 취해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단에 일곱 번 뿌리고 단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했고,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으며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붓는다’(pour)는 말(야차크)은 아론에게만 사용되었다.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관유를 머리에 붓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상징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神性)의 충만함을 가지셨다.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한 대제사장이시다. 관유와 피로 그에게 뿌리고 그의 옷에도 뿌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위들이 거룩하심을 상징한다. 히브리서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14-17절] 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속죄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아 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또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송아지 곧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 불살랐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모세는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왔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속죄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15절에 “그는 그것을 죽이고 모세는 그 피를 취하여”라고 되어 있다(KJV). ‘그’는 아론을 가리켰다고 본다. 모세는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아 단을 속(贖)하여 거룩하게 했다. 또 그는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송아지 곧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서 불살랐다.

[18-21절] 또 번제의 수양[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아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그 수양[숫양]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각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물로 내장과 정갱이들을 씻고 그 수양[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 때,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19-21절에서 매 절마다 앞부분은 ‘그가’라고 시작되고 뒷부분은 ‘모세가’라고 시작된다(KJV). ‘그가’는 아론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론은 그 숫양을 죽였고 모세는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렸으며, 아론은 그 숫양을 토막으로 잘랐고 모세는 그 머리와 토막들과 기름을 불살랐고, 또 아론은 물로 그 내장과 정갱이들을 씻었고 모세는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살랐다. 이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이었다.

[22-29절] 또 다른 수양[숫양] 곧 위임식의 수양[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귓불]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귓불]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그가 또 그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과 우편 뒷다리(쇼크)[앞 넓적다리](레 7:32 참조)를 취하고 여호와 앞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병 한 개와 기름 섞은 떡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취하여 그 기름 위에와 우편 뒷다리 위에 놓아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두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게 하고 모세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위임식 제사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 수양[숫양]의 모세의 응식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다른 숫양 곧 임직식 숫양을 드릴 때에도,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원문에는 23절도 앞절들과 같은 구조이다. 아론은 그 숫양을 죽였고 모세는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랐다. 모세는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발랐으며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렸다. 또 그는 그 기름과 두 콩팥과 우편 앞 넓적다리를 취하고 여호와 앞의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병 한 개와 기름 섞은 떡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취하여 그 기름 위에와 우편 앞넓적다리 위에 놓아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두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게 하고 모세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살랐다. 이것은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임직식 제사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火祭)이었다. 또 모세는 임직식 숫양의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搖祭)를 삼았다. 이것은 모세의 응식(應食)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30-36절]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하시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곳에서 먹고 고기와 떡의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위임식은 7일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마치는 날까지 7일 동안은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 오늘날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하게 하시려고 명하신 것이니 너희는 7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

모세는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임직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곳에서 먹고 고기와 떡의 나머지를 불사를 것이며 임직식이 마치는 날까지 7일 동안은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고 말하였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였다.

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 본장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순종하였음을 강조한다(4, 9, 13, 17, 21, 29, 36절). 모세와 아론의 순종은 오늘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순종의 본이 된다. 주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고(마 28:20), 바울은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살후 2:15).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을 다 믿고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귀와 손과 발을 거룩하게 하자. 모세가 임직식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른 것은 그들의 몸의 각 기관들을 거룩하게 하는 뜻이 있었다. 제사장들의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손과 발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신약 성도들의 모형도 된다. 신약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9).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범사에 듣는 것과 말하고 행하는 바를 조심해야 하고 하나님께 거룩하게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문에서 임직식 제물인 숫양의 고기를 삶아서 광주리의 떡과 함께 먹어야 했다. 임직식 숫양은 일종의 화목제이었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가 제물을 먹는 제사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상징하였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한(롬 5:1)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다.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놀라운 특권이며 복이다.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자.

9장: 제사장 직무를 시작함

본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한 일을 증거한다.

[1-4절] 제8일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아론에게 이르되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 없는 수양[숫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소[숫염소]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송아지와 어린양의 1년 되고 흠 없는 것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수양[숫양]을 취하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매.

7일간 임직식을 한 후 제8일에, 모세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렀고 아론에게 속죄제의 송아지와 번제의 숫양을 드리라고 말했고, 또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속죄제의 숫염소와 번제의 송아지와 어린양과 화목제의 수소와 숫양과 소제를 가져오게 하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했다.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와 소제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가리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했다(벧전 1:18-19).

번제와 화목제와 소제는 부차적으로 온전한 헌신과 교제와 감사 그리고 온전한 순종을 교훈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온전한 순종을 바쳐야 한다.

[5-7절]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왔고 온 회중은 여호와 앞에 섰다. 모세는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은 아론이 처음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이었고 그가 모세의 명 곧 여호와의 명대로 그 일을 다 수행했다고 말한다. 모세의 명은 여호와의 명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져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진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날 신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성도들의 생활 규칙은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분명한 뜻이다.

[8-14절] 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 그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니라. 아론이 또 번제 희생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그들이 또 번제의 희생 곧 그 각과 머리를 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내장과 정갱이는 씻어서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라.

아론은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다.

[15-21절] 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취하여 잡아 전과 같이 죄를 위하여 드리고 또 번제 희생을 드리되 규례대로 드리고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 희생의 수소와 수양[숫양]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단 주위에 뿌리고 그들이 또 수소와 수양[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단 위에 불사르고 가슴들과 우편 뒷다리(쇼크)[앞넓적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더라.

아론은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22-24절]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모세의 말대로(4, 6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는 불의 응답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다. 그는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다. 그는 때때로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의 경험 속에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러한 나타나심들을 증거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타나심들을 특별계시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기록이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방법은 바뀌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고 말씀하셨고 기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다 기록된 사도 시대 이후 그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통해 또 그것과 함께 활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활동하시지만, 주로 성경을 통해 일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또 그 말씀과 더불어 활동하시는 성령의 불같은 사역을 사모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불같은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소멸하시고 우리의 인격을 새롭게 하시고 무능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사모한다.

레위기 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율법의 제사 제도를 통한 교훈을 기억하자. 구약의 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죄 중에 살던 우리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또 구약의 제사들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께 감사함과 온전한 순종을 교훈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속죄 신앙을 가지고, 온전한 헌신과 교제와 감사와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자. 그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교훈하기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벧후 3:11-13, 14).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경의 교훈대로 행하자. 아론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야 하며, 교회의 봉사의 일도 성경대로 해야 한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감치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지키라고 교훈하였고(신 4:1-2; 5:32-33), 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신 10:12-13). 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교훈의 책이며(딤후 3:16), 또 우리는 주 예수의 말씀을 다 지켜야 하며(마 28:20), 또 굳게 서서 사도들의 교훈도 지켜야 한다(살후 2:15).

셋째로, 우리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불같은 사역을 사모하자.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또 성경과 더불어 활동하신다. 우리는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단에 내면적 불로 응답하시기를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 교회에게 내면적 불로 응답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시고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태우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을 확신하고 사랑하고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하자.


10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5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 하매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

레위기 10장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사건을 기록한다. 이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생긴 일인 것 같다. 제사장들은 저녁과 아침에 회막의 등불을 켤 때와 정리할 때 향로에 불을 담아(민 16:18) 향단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향기로운 향을 살라야 했다(출 30:7-9). 그 불은, 꺼지지 않게 항상 간수되었던(레 6:9, 12, 13) 번제단의 불을 사용했을 것이다(레 16:12; 민 16:46). 그 불은 영원한 지옥 불을 상징하는 속죄의 불이었다고 본다. 그 불 외에 다른 불로 향을 살라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였다. ‘다른 불’이라는 원어(에쉬 자라)는 ‘이상한 불’(KJV, NASB, BDB)이라는 뜻이다. 그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켰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즉시 죽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회막 혹은 성소 앞에서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은 잠잠했다.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죽은 자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나가게 하였다.

[6-11절]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하니라.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들의 죽음을 일반 사람들처럼 애도해서는 안 되었다. 거룩한 제사장 직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론의 아들 네 명 중 두 명이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스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 그와 그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들은 포도주나 독주에 취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어그러뜨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는 술 취함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12-15절]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네 응식(應食)[마땅히 받을 것]과 네 아들의 응식[마땅히 받을 것]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쇼크)[앞넓적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마땅히 받을 것]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든 뒷다리[앞넓적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소제의 남은 것들과 화목제물 중 든 앞넓적다리와 흔든 가슴을 그들의 마땅히 받을 것으로 주셨음을 다시 강조하셨다.

[16-20절]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모세가 속죄제로 드린 염소를 힘써 찾았으나(원문) 그것은 이미 불살라졌었다. 모세는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라고 말했다. 모세가 노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모세의 말대로 그들은 그 고기는 성소 뜰에서 먹어야 했었다. 그러나 아론은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속죄제물의 고기를 먹는 상징을 행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

레위기 1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하신 대로 행하자. 본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런 저런 일들을 명하셨다고 증거한다.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어떤 불로 하나님 앞에 분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명령하셨음을 보인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잘못을 범했다. 또 5절,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의 뜻을 나타내셨다. 7절,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하니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모세의 명대로 행하였다. 모세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고 제사장들은 그 규례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하였다(11절). 우리는 성경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다 믿고 가르치고 행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에 담았던 ‘다른 불’은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불이었다. 그들의 문제점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과 그의 거룩한 규례를 따라 섬기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방법대로 섬기려 한 데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행위를 용납지 않으셨고 노하셨고 그들을 분향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죽게 하셨다. 다윗 왕 때에도 법궤를 다윗 성으로 실어오는 수레를 몰고 오던 중에 소들이 뛴다고 법궤를 손으로 붙들었던 웃사는 즉사하였다(삼하 6:6-7).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또 참된 믿음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성경에 분명하게, 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교훈에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신 4:2; 계 22:18-19).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즉 성경을 거슬러 혹은 성경과 상관없이 우리의 주관적 생각과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불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바른 사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