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차례
19장: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심
20장: 십계명
21장: 공의의 보응--종, 살인
22장: 도둑질, 음행
23장: 공정함, 절기 등의 법
24장: 언약서
25장: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
26장: 성막, 띠, 휘장
27장: 번제단, 성막뜰, 등불
28장: 대제사장의 옷
29장: 제사장의 임직
30장: 분향단, 물두멍
31장: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심
19장: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심
[1-6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3월 곧 그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3월, 약 두 달 후에, 시내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산4) 앞에 장막을 쳤고 하나님께서는 산에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 ‘소유’라는 원어(세굴라)는 ‘특별한 보화’라는 뜻이다(BDB, KJV).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을 보인다. 온 땅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며 그에게 속하였지만,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세상의 많은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하나님의 특별한 보화가 될 민족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될 자들이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셨다. 하나님께 순종함은 인생의 본분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보다 명령과 순종의 관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7-9절]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
모세는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원히 믿고 그의 음성을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10-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3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3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3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과 내일 자신을 성결케 하고 의복들을 빨아야 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선을 지키고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 경계선을 어기고 들어오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 지시는 죄 많은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가 백성에게 와 그들로 성결케 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빨았다. 이것은 오늘날도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태도이다.
[16-20절] 제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제3일 아침에 여호와께서는 천둥과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불 가운데서 시내산 위에 강림하셨다. 온 산은 크게 진동하였고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 모세는 말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그는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오셔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여호와께로 올라갔다.
[21-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申飭)하라[경계하라]. 백성이 돌파하고[어기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갑자기 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고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선을 어기고 들어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갑자기 치실 것이며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출애굽기 1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인격성을 바르게 알고 그를 섬기자. 자연만물도 하나님을 증거하지만,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생생히 증거하셨다. 시내산 위에는 천둥과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있었고 나팔 소리가 심히 컸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위엄과 영광을 보았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음성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 신이시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히 1:1-2).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과 성결함으로 그를 섬기자. 우리는 죄성을 가진, 죄악된 행위의 발자취를 가진, 누추한 존재들이며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지만,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며(히 10:19; 4:16),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함으로써 그를 섬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특권을 감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놀라운 특권이다.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보배로운 소유이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를 다하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언약을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물론 신약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얻었다(요 1:1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성도의 본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다(전 12:13).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며, 또 그의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이지만, 그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마 7:21, 24-26). 우리는 순종으로 성도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20장: 십계명
1-11절, 하나님께 대한 의무
[1-2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모든 말씀’은 이어 나오는 십계명을 가리킨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모든 도덕적 교훈들의 요약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과 학대로부터 그의 권능의 손으로 구원해주신 구주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다.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3~11절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너는 나 외에는(알파나이 י������������־ל������)[내 앞에](KJV, NASB, NIV)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 계명은 우리가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가져야 할 것과 다른 신들을 인정치 말아야 할 것을 명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 진리이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이사야 43:10,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5:5-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 . .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6:9,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예레미야 10:10-11,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4-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둘째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다. ‘새긴 우상’이라는 원어(페셀)는 ‘(나무나 돌에) 새긴 우상’이라는 뜻이다. 둘째 계명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 즉 해나 달이나 별을 비롯하여 각종 새들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 즉 나무나 짐승들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 즉 물고기들 등, 그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 그것들은 다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만 섬기고 그 어떤 피조물도 신(神)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할 이유로, 그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 우상숭배의 악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질투는 인간 관계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워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징벌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삼사 대까지 징벌하시면 그 가문은 다 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천대’라는 원어(알라핌)는 ‘수천’이라는 뜻이다(KJV, NASB, 'thousands'). 의인들의 자손들은 복될 것이다.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랏솨웨)[헛되이, 함부로]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셋째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이다. 이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나 그에게 기도하거나 맹세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하게, 진지하게, 두려움과 존숭함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농담할 때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8-11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7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넷째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이다. 7일 중 하루를 거룩히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니 만큼, 우리는 그 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또 이 계명은 엿새 동안 힘써 우리의 모든 일들을 행하는 것을 전제(前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 동안에 우리의 할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 한다. 또 이 계명은 온 가족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안식일은 집안의 한두 사람이 대표로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심지어 집에서 일하는 자들, 즉 본인이 거느리는 직원들이나 집에 방문한 손님들까지도 함께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그 날에 우리는 직업상의 일, 매매하는 일, 세상 공부, 오락(사 58:13) 등을 중단해야 한다. 출애굽기 34:21,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느헤미야는 이 날에 술틀을 밟거나 매매하는 일을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일로 정죄하며 경계하였다(느 13:15-22). 또 그 대신, 그 날은 ‘성회(聖會)’ 즉 공적 예배의 날로 지켜야 하였다(레 23:3).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심에 근거하였다. 그는 그 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안식일을 성취하셨다(골 2:16-17). 그러나 그 성취는 구약보다 더 풍성한 방향으로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라 토요일 대신에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온종일 거룩히 구별하여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기쁨과 자원함으로 지키며 주 안에서 쉰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십계명을 성실함으로 순종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한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따라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살아계신 여호와 참 하나님, 삼위일체 되신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게 절하지 말고 또 그것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아닌 것에게 하나님처럼 큰 가치를 두고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돈이 일종의 우상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찬송과 기도와 맹세를 할 때 하나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주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 신약 성도들은 토요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지 않고 주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즐겁고 복된 날로 지킨다. 우리는 이 날에 세속적인 일들을 중단하고 교회로 모여 찬송과 기도와 성경말씀의 교훈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은 그와 그 자녀들이 영육으로 복되다.
12-26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2~17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말씀하셨다. 다섯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다. 자녀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그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것이다. 이 계명에는 우리가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야메카)[네 날들]이 길리라”는 약속이 첨가되어 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장수(長壽)의 복을 누릴 것이다.
부모 공경은 가정 질서를 세우는 것이며 사람들 간의 윤리의 기본이다. ‘부모’는 넓게는 이웃 어른들, 학교 선생님들, 직장 상사들, 교회와 사회 지도자들을 대표한다. 레위기 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라.” 베드로전서 2:17, “왕을 공경하라.”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이웃 어른들을 공경하고 학교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직장 상사들을 존중하고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을 존중할 것이다.
[13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여섯째는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사형 외에 사적인 감정으로 남을 죽이는 것을 금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깨뜨리는 큰 악이며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창 9:6).
생명은 귀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불멸적인 영혼의 존재를 내포한다. 더욱이, 육신의 생명은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이다. 그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마 16:26). 살인은 욕심과 미움에서 나온다. 사람은 돈을 탐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목숨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또 미움은 살인으로 나타난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14절] 간음하지 말지니라.
일곱째는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이의 정조(貞操)와 순결성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남녀의 성관계는 결혼 관계에서만 허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질서가 깨어지고 문란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혼전 관계, 혼외 관계, 동성 관계, 짐승과의 관계 등은 다 음란한 일이며 매춘(賣春)도 그러하다. 또 이런 일을 조장하는 글, 그림, 동영상, 영화, 비디오, 인터넷 매체 등은 다 죄악되다. 그것을 만들거나 유포하거나 그런 일에 종사하거나 그런 일로 돈을 버는 모든 것이 다 죄악되며 그런 것을 보는 것도 죄악되다.
현대 사회는 도덕 수준이 낮아지고 해이해지고 음란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남녀관계가 문란하다. T.V.나 인터넷 등이 음란 풍조의 주된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이런 도구들을 엄격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의 음란 풍조에 물들고 포로가 되고 믿음을 잃고 결국 죄 가운데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
[15절]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여덟째는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침해하지 말라는 뜻을 포함한다. 남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는 강탈과 토색(討索)은 죄악이다. 강압적 방식으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생각도 악한 것이다. 자유 경쟁에 의한 이익의 추구는 기본적으로 성경적인 생각이다. 부(富)의 분배는 좋은 이상(理想)이지만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적 평등을 혁명을 통해 실현하려는 공산주의는 악마적 이념이며 성경은 결코 그런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부(富)의 분배는 단지 법 제정에 의한 세금 징수로써만 점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가난은 빈번히 게으름에서 온다. 성경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잠 10:4). 또 성경은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교훈한다(엡 4:28).
[16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아홉째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거짓말은 지옥 갈 죄악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악이다. 요한계시록 21: 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교훈한다(엡 4:25).
[17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열째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집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나 그의 종이나 가축들이나 그의 모든 소유도 탐내지 말아야 한다. 탐심과 욕심은 모든 죄악들의 뿌리이다. 야고보서 1:15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말한다. 탐심은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의 원인이 된다. 또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했다(골 3:5). 사람이 돈을 탐하면 돈이 그에게 우상이며, 그가 몸의 쾌락을 탐하면 몸의 쾌락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러므로 탐심은 모든 죄악의 뿌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무서운 죄악, 곧 우상숭배의 악인 것이다.
[18-21절]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18-26절은 백성의 반응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백성은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고 그것을 볼 때 떨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 앞에 심히 두려워하였다. 모세는 백성을 안심시키며 그들에게 말했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엄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그들을 죽이려 하심이 아니고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 짓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다.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그는 그들의 중보자 역할을 하였다.
[22-2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나 외에]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서 행할 몇 가지 일을 지시하셨다. 우선, 그는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비겨서’라는 원어(잇티)는 ‘나 외에’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BDB, NASB, NIV).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순수한 경건성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만 순수하게 섬겨야 하고 우상들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토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이동하는 동안 쉽게 만들고 쉽게 부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단이다. 이 명령에서,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허식보다 내면적 거룩이 중요함을 보이셨다(Poole). 그들이 토단 위에 속죄와 헌신과 교제를 상징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또 이스라엘 자손들은 단을 돌로 쌓을 수 있지만, 그때는 다듬은 돌로 하지 않아야 했다. 다듬은 돌로 만드는 단은 많은 시간과 기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쓰지 않게 하셨다. 그러나 제사장은 층계로 단에 올라 하체가 드러나게 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단정함을 중시하셨다. 아직 제사장의 긴 의복은 계시되지 않았다.
십계명 후반부의 계명들과 그 뜻도 명료하다. 첫째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모님을 공경할 뿐 아니라, 또한 이웃의 어른들도 공경하고 학교의 선생님들도 존경하고 직장의 상급자들이나,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5계명에 내포된 하나님의 뜻이다.
둘째로, 우리는 살인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실제적 살인뿐 아니라, 마음의 미움과 적개심도 버려야 한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또 우리는 말로 악하고 거짓되게 남을 비방하여 그의 명예와 평판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도 삼가야 한다.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고 단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우리는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혼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행위가 죄임을 알아야 한다. 주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5:28). 음란 풍조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세상의 이런 음란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것에 손대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며 도리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돌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다섯째로, 우리는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진실해야 하고 진실한 말만을 해야 한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여섯째로, 우리는 탐내지 말아야 한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이며 그 자체가 죄악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우리는 물질적, 육신적 욕심을 버려야 한다.
21장: 공의의 보응--종, 살인
1-17절, 종, 살인, 납치, 부모 공경에 대한 규례들
[1-2절]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6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7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율례’라는 원어(미쉬파팀)는 ‘판단들’이라는 말로 ‘재판법’을 가리킨다. 2-11절은 종에 관한 규례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동족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사면 6년 동안만 자신을 섬기게 해야 하였다. 사람은 너무 가난할 때 남의 종이 된다(레 25:39). 그러나 히브리 종은 6년간만 일을 시키고 제7년에는 아무 조건 없이 자유케 해야 했다.
이것은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였다. 또 그는 그 종에게 너무 엄하게 하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대해야 했다. 레위기 25:43, 46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라,”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
[3-6절] 그가 단신(單身)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KJV, NIV)5)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영원한 종이라는 뜻이었다.
[7-8절]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 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贖身)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부모가 그 딸을 여종으로 파는 것은 가정이 극히 어려워서 부득이 이루어지는 경우이고 다음절에 비추어 볼 때 주인에게 첩으로 드리는 조건으로 행해지는 경우이다. 이런 여종은 6년 후에도 남종같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고 스스로 종이 된 경우에는 남종같이 6년 후에는 자유를 얻었다. 신명기 15: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6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7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만일 그 여자가 자기를 첩으로 정한 주인을 기쁘게 하지 못하면 주인은 그를 자유케 할 수 있었으나,6) 그를 속인 것이 되었으므로 타국인에게 팔 수는 없었다.
[9-11절]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접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贖錢)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이것은 첩으로 받은 여종에 대한 상당한 배려이었다. 또한 주인이 다른 아내를 취할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7)은 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배려하셨다. 만일 주인이 이 세 가지(의복, 음식, 동침하는 것)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 여종은 몸값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갈 수 있었다.
[12-14절]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12-17절은 살인, 부모 구타, 납치, 부모 저주 등의 죄에 대한 처벌에 관한 법이다. 여기에 지적된 죄는 중죄(重罪)로서 그 형벌은 사형이었다. 12-17절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는 구절이 네 번,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는 구절이 한번 나온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지만,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 손에 붙이신 경우, 즉 고의적이지 않고 실수로 남을 죽인 경우, 예를 들어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인 경우(민 35:22-23), 사람이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 함 같은 경우(신 19:5) 등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용도로 구별된 성, 곧 ‘도피성’이 요단강 동쪽에 세 곳과 요단강 서쪽에 세 곳, 모두 여섯 성이 있었다.
그러나 고의적인 살인의 경우는 달랐다. ‘짐짓 모살하였으면’이라는 원어는 ‘간교하고 뻔뻔스럽게 행하면’이라는 뜻으로 고의적 살인을 가리킨다.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예컨대,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거나 돌을 들고 사람을 쳐죽이거나 나무 연장을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민 35:16-18) 그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고의적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한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신 19:11-13).
[15절]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것은 제5계명을 직접 어기는 죄이며 하나님의 권위를 대항하는 일이며 참으로 배은망덕한 아주 악한 일이다. 그런 자는 반드시 죽여 인간 사회에서 제거해야 했다.
[16절]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후린다’는 원어(가나브)는 ‘도적질하다’(출 20:15)는 단어이다. 사람을 납치하는 일은 사람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적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도적질이다.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 폭행하고 매매하는 일은 엄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사람은 그 납치한 자를 팔았든지 그 손안에 있든지 간에 반드시 죽여야 하였다.
[17절]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제5계명을 어기는 배은망덕하고 악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의 뿌리가 되는 부모를 공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결코 그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종에 관한 교훈은 오늘날에 직장생활의 윤리를 보인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너무 엄하게 하지 말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순복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6:1-2,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주인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주인이 있는 자들은 그 주인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납치하는 것은 사형을 받을 큰 죄악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남의 인격과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부모의 인격과 권위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녀들은 결코 부모님을 치거나 부모님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형받을 큰 죄악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18-36절, 살인에 대한 추가적 규례들
[18-19절]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全治)되게 할지니라.
‘형벌을 면한다’는 말은 사형의 형벌을 면한다는 뜻이다. 싸우다가 친 상대가 죽으면 고의적 살인에 해당하므로 그를 반드시 죽여야 하지만, 그가 죽지 않고 얼마간 누웠다가 일어나 거동하면 사형은 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부상당한 자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全治)되게 해야 했다. ‘기간(其間) 손해’라는 말은 ‘그의 시간의 손실’이라는 뜻으로 그가 치료받는 기간 동안의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가리킨다. 또 ‘전치(全治)된다’는 말은 ‘다 낫기까지 치료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상대방에게 부상을 입히면 그가 낫기까지 치료하고 그 기간 동안의 피해를 보상해야 하였다. 이것은 싸움으로 인한 부상을 정당하게 처리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상대를 쳐죽이면 그를 사형시켜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공의이다. 그래야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살인의 악이 근절되거나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죽지 않고 거동하면 그의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고 그가 당한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법과 질서가 없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쇠파이프나 각목이 등장하고 경찰들을 구타하고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무질서한 폭력시위는 엄하게 제재되고 징벌되어야 한다.
[20-21절]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가 1일이나 2일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금전임이니라.
본문의 형벌은 사형을 가리킨다. 종의 생명도 인간 생명으로 존중되어야 했다. 종은 주인이 함부로 죽여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매를 맞은 종이 하루나 이틀 생명이 연장되면 주인은 사형을 면하게 하였다. 그것은 주인이 종을 죽이려는 의도로 매를 때린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이 종을 때릴 수는 있다. 본문은 “그는 상전의 금전(케셉 ף������������)[은, 돈]임이니라”고 말한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할 위치에 있고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22-25절]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낙태케 하였다’는 원어(웨야체우 옐라데하)는 ‘그의 아이가 나왔다’는 말로서(KJV) ‘그의 아이를 조산(早産)케 하였다’는 뜻이다(NIV). ‘다른 해가 없다’는 말은 ‘아이가 죽거나 상하거나 혹은 산모가 죽는 일이 없다’는 뜻이라고 본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그의 아이를 조산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반드시 벌금을 내어야 했다. 그것은 산모가 조산으로 인하여 받은 정신적 충격과 아기가 일찍 나옴으로 인한 특별한 보호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기나 산모가 죽으면 그 친 자를 죽일 것이며, 몸의 어느 부분이 다치거나 상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한다는 공의의 보응을 보인다. 특히 이 구절은 태아의 생명이 인간 생명이며 낙태가 살인죄임을 증거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낙태는 현대 사회의 매우 심각한 죄악이며 그리스도인이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26-27절]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며 그 남종의 한 이나 여종의 한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에 그를 놓을지니라.
눈을 ‘상하게 한다’는 원어(쉬케스)는 ‘못쓰게 만든다’(perish -KJV, destroy-NASB, NIV)는 뜻이다. 이 법은 종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법이다. 주인이 종을 책망할 수 있고 또 필요할 때 어느 정도 때릴 수도 있지만, 그의 몸에 치명적인 해, 예컨대 눈을 못쓰게 만든다든지 이를 빠지게 하는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직장에서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책망이 필요할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책망할 수 있겠으나, 그에게 심한 정신적 모욕이나 신체적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28-32절]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소는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인하여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남녀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30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은 짐승이므로 피 채 먹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또 그것은 주인에 대한 약간의 벌칙일지도 모른다(Poole). 하지만 소 주인은 사형의 형벌을 면한다. 그러나 받는 버릇으로 인해 경고를 받았으나 단속하지 않으므로 그 소가 남녀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주인도 죽여야 했다. 그것은 소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 때문에 주인에게 부과되는 벌이다.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전으로 내야 했다. 또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이면 주인은 은 30세겔을 그 종의 주인에게 주고 소는 돌로 쳐죽여야 했다. 이 경우, 소의 주인을 죽이지는 않으나 종의 주인에게 큰 손실을 입혔으므로 소의 주인은 종의 주인에게 종의 몸값을 주어야 하였다.
사람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고로 남을 죽인 것은 사형받을 만한 잘못이다. 예컨대, 자동차 운전자가 음주 운전에 대해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면, 그는 사형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 것이다. 그 벌이 매우 엄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 귀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항상 기도하며 또 제한속도와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운전해야 한다.
[33-36절]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함으로 소나 나귀가 거기 빠지면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분하려니와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이것은 소 주인의 책임 여부와 그 정도에 따른 하나님의 공의롭고 공정한 판결이며 처분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남을 해하지 말자. 남을 죽이는 것은 물론, 남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신체적 해를 끼쳤다면, 우리는 그것이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모든 비용을 담당해야 하고 그의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손실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한다. 매우 억울한 경우에라도, 우리는 교회 법정이나 세상 법정에 호소할 수 있을 뿐이고 그에게 물리적 보복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낙태가 살인죄임을 알고 시대적 풍조인 낙태를 경계해야 한다. 태아는 인간이며 그것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도 교통법규를 어기고 차를 운전하다가 남을 죽였다면 그는 큰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22장: 도둑질, 음행
1-20절, 도둑질, 음행, 무당에 대한 규례
[1-4절]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죽이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무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도둑질에 대한 벌은 엄하였다. 비싼 것을 도둑질한 것은 싼 것을 도둑질한 것보다 더 많이 보상을 해야 했다. 도둑질한 물건값이 클수록 그 도적질 행위가 더 악하다고 간주되었다. 도둑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인다는 말은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해 돋은 후에 도둑을 쳐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지만, 밤에 주인이 도둑을 막다가 그를 쳐죽이는 일은 허용되었다. 도둑을 막는 일은 정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도둑은 반드시 주인에게 배상하되 배상할 돈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배상해야 했다.
[5-6절]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미쳐 낟가리[곡식단]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전원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지니라.
사람이 자기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이나 포도원을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 했다. 주인은 자기의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했다.
[7-9절]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逢賊)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봉적(逢賊)하다’는 말은 ‘도둑을 맞다’는 뜻이다. ‘재판장’(8, 9, 9절)이라는 원어(엘로힘)는 ‘하나님’이라는 말로 재판장이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었다.
[10-15절]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자기에게서[그가 있을 때]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지니라. 만일 이웃에게 빌어온[빌려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하였으면 배상하지 않을지며 세 낸 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지니라.
맹세는 갈등의 최후의 해결책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거짓 맹세하는 자를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 낸 것도 세를 위하여 왔은즉 배상하지 않을지니라”는 원문은 그 손실이 그 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인 것 같다(NIV).
[16-17절]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지니라.
신명기 22:29에 보면, 그 빙폐는 은 50세겔이었다.
[18절]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무당의 활동은 잘못된 신비주의에 속하며 악령들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도 상당히 신비한 일들을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잘못된 신비주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오늘날 교회들도 거짓된 신비주의나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19절]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짐승과 교합하거나 교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문란한 일’이다. 레위기 18:23,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그런 행위는 사형에 해당하는 악한 행위이다.
[20절]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그런 자는 사형을 당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도둑질한 자는 엄격하게 배상해야 하였다. 성도는 오늘날에 책 도둑질이나 세금 도둑질이나 지적 재산권 도둑질, 논문표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등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도둑질을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적 탈선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정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하면 그를 아내로 삼아야 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느 때나 성적 문란이 있었겠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 같다. 사회에 부도덕하고 음란한 풍조가 점점 심해지는 때일수록 성도는 더욱 단정하고 성결해야 하고 또 우리의 자녀들도 단정한 복장과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거짓된 신비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무당은 악령들과 교제하는 자이다. 다른 신에게 제사드리는 자도 그러하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거짓된 신비주의가 많이 들어와 있다. 오늘날 은사주의 풍조가 그러하다. 이것은 성경에 예언된 말세의 한 징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한다(요일 4:1).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우리는 은사주의를 경계하고 교회들과 목사들을 분별하고 바른 목사와 바른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21-31절, 나그네,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에 대한 규례
[21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이방 나그네’라는 원어(게르)는 이방인을 포함하여 객과 나그네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다. 출애굽기 23:9도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고 말씀하였다. 레위기 19:33도 “타국인(게르)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였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신 24:17; 렘 7:6; 슥 7:10; 말 3:5).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음을 상기시키셨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그네로 압제와 학대를 당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동족이든 이방인이든 나그네에게 악하게 행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뜻이다. 더욱이,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말했고, 시편 146:9는 하나님께서 객(게르)[나그네]을 보호하신다고 말했다. 이방 나그네는 대체로 언어나 풍습이나 길에 서툴고 친한 사람도 없는 자이다. 그런 자를 압제하고 학대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그런 자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그들을 도와주고 필요하면 길도 안내해주어야 한다.
[22-24절]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과부는 그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남편을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가신 자요, 고아는 그를 보호하고 양육할 부모를 하나님께서 일찍 불러가신 미성년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의 기본적 생활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배려와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는 그런 자를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
신명기 24:17은 “너는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담보로 취하지] 말라”고 말했고, 또 신명기 27:19는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말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방백들이 “고아를 위해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않는다”고 지적하였다(사 1:23). 또 그는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말했다(사 10:2). 신명기 10:18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신다”고 말하였다. 시편 68:5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하였고, 시편 146:9는 여호와께서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과부와 고아에 대해 해를 끼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고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므로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듣고 그에게 노하셔서 그를 죽이시고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고 그의 자녀가 고아가 되게 하겠다는 무서운 저주의 경고도 하셨다. 그것은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를 잘 증거해준다.
[25절]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빌려주면] 너는 그에게 채주(債主)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변리’라는 원어(네쉐크)는 ‘이자’(interest)(NASB, NIV)라는 뜻도 있고 ‘고리’(高利, 높은 이자, usury)(KJV)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상호간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금하셨다. 레위기 25:35-37,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신명기 23:19-20,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 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시편 15:5는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만한 자를 여러 말로 표현하는 중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는” 자라는 말도 포함하였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악한 행위로 여겼다(겔 18:8, 13, 17; 22:12).
[26-27절]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신명기 24:12-13도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했다. 가난한 자의 옷이 담보물일 경우 해 질 때 그것을 돌려주어 잘 때 추위를 피하게 하라는 뜻이다. 신명기 24:6은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을 담보물로 받지 말라고도 하셨는데, 그것은 생활의 기본적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자비한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다(출 34:6; 시 86:15; 103:8).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본래의 모습은 선하고 자비로운 인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거나 학대하거나 해롭게 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지 않는 행위로 나타날 것이다.
[28절]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재판장’이라는 원어(엘로힘)는 ‘하나님’(God)(NASB, NIV) 혹은 ‘신들’(gods)(KJV) 즉 ‘재판장들’이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본장 8절과 9절에서는 ‘재판장들(judges)’이라고 번역되었다(KJV, NASB, NIV). 본문은 재판에서 진 사람이 인간적 감정으로 재판장을 향하여 욕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본다. 또 누구든지 백성의 유사(有司) 즉 관리들이 행하는 일들에 불만하여 그를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의 질서는 잘 지켜져야 한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사회의 평안은 질서에서부터 시작되며, 폭력과 보복은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오고 그러한 사회는 결국 쇠약해지고 패망할 것이다.
[29-30절]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7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8일만에 내게 줄지니라.
출애굽기 23:19는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고 말씀했다. 출애굽기 34:26도 같은 내용이다. 레위기 23:10은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돌려졌다(민 18:12-13; 신 26:2, 10; 느 10:35; 겔 44:30). 잠언 3:9-10도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 난 아들들도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소와 양도 그러했다. 출애굽기 13:2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의 경우는 그를 제물로 드리지 않고 속전(대신하는 금액)으로 드려야 했다. 신명기 15:19는 “너의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하였다.
단지, 소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 그것을 7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제8일에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일반 짐승 제물도 제8일 후에 드려야 했다. 레위기 22:27도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7일 동안 그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제8일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열납되리라”고 말씀하였다. 그것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모성적 본능을 배려하신 일일 것이다.
[31절]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2:8에서도 “절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그런 고기는 피 있는 고기이며 또 불결한 고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자. 우리는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고 가난한 형제에게 선을 베풀고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자들을 존중하자. 우리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고 백성의 관리를 저주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신약성경도 그것을 밝히 교훈한다(롬 13:1).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지성(至誠)으로 섬기자. 우리는 밭의 소산의 첫 열매와 첫 아들과 짐승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잠 3:9- 10). 즉 우리는 우리의 삶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23장: 공정함, 절기 등의 법
1-9절,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
[1절]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우리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 ‘허망한 풍설’이라는 원어는 ‘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19:16은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웃에게 돌아다니며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잠언 20:19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씀했다. 우리는 사실이라도 남의 말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사실이 아닌 것을 전하는 일은 거짓말을 전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제9계명을 어기는 큰 죄악이다.
우리는 또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무함하는’이라는 원어(카마스 ס������������)는 ‘악의(惡意)를 가진, 남을 해치는’이라는 뜻이다. ‘무함(誣陷)’이라는 우리 말은,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나쁜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악인과 연합하여 거짓된 말로 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참으로 악하고 죄악된 일이다.
[2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따라’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다수를 이용한 악을 경계하셨다. 좋은 일을 널리 전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쁜 것을 좋은 것처럼 포장하여 널리 퍼뜨리고 대중을 선동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다. 또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양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증거하는 일도 매우 나쁜 일이다.
[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15에서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한 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그가 행한 악이 정당화될 수 없다. 가난한 자의 편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모든 판단을 공정하게 하고 편벽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4-5절]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우리는 원수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고 그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을 볼 때 못 본 체하지 말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6절]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우리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아야 한다. 3절에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재판은 공정해야 한다. 재판에서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그에게 부당하고 억울한 판결을 내려서도 안 되지만, 가난한 자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 재판은 공의롭게,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7절]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우리는 거짓된 일을 멀리해야 하고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진실한 말을 권장하시고 거짓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는 거짓된 일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의로우시며 의를 권장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결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는 의는 의라고 판단하시며 불의는 불의라고 판단하신다. 또 그는 의인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주신다. 우리는 그의 성품을 본받아 선한 자를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악한 자를 칭찬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8절]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뇌물은 순수하지 못한 목적과 의도가 있는 선물을 가리킨다.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뇌물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한다.
[9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우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정경’이라는 원어(네페쉬)는 ‘영혼’이라는 말로 ‘심정’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하였을 때 나그네의 심정이 어떠함을 체험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방 나그네들의 어려운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을 압제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2:21에서도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여 이 법을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에 대해 선한 마음을 품고 살며 이방 나그네들에게도 선함과 긍휼함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기를 원하신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과 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려는 뜻이 없다면 그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헛된 소문은 남의 명예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친다. 요한계시록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가 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며(계 22:15)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경고했다(계 21:8). 또 사람이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큰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매우 미워하신다. 우리는 범사에 진실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하며 특히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 우리는 부자를 무조건 지지하고 가난한 자를 무조건 무시하고 해쳐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고 부자를 무조건 반대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범사에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잠언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했다(잠 17:15; 28:4).
셋째로, 우리는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탈북자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살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우리는 교회에서 친한 교우들과만 인사하지 말고 신입교인들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교회에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는 밝은 얼굴로 서로 인사하고 서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마음도 기쁘고 더욱 평안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10-19절, 절기에 대한 법
[10-11절]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7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이것은 논이나 밭, 포도원이나 감람원 등 땅의 안식년에 대한 법이다. 6년 동안만 파종하고 제7년에는 묵혀 두라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이 먹도록 배려하신 법이다. 또 그것은 땅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본받아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고 들짐승들에게도 그러해야 한다.
[12절]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 계명도 가축들과 종들을 배려하는 계명이다. 집에서 일하는 소와 나귀도 안식일에 쉴 것이며 여종의 자녀들과 나그네들도 숨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과 종들과 집에 거하는 나그네들까지도 배려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너그러우신 분이시다. 그는 피조물들의 수고로움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13절]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하나님의 법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 모든 법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그가 주신 법을 지키는 것이다. 온 우주에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우리는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우리의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14절] 너는 매년 3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모세의 율법은 열 가지 절기들을 규정한다. 안식일, 월삭, 유월절-무교절, 보리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 등이 그러하다. 그 중 연중 절기가 여섯이고, 또 그 여섯 중 세 가지가 대표적인데, 그 셋은 다음에 명령된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이다.
[15절]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첫 번째는 무교절이다. 무교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아빕월 즉 1월에 지키는 절기이다. 1월 14일 저녁은 유월절이며, 1월 15일부터 7일 동안이 무교절이다(레 23:5-6). 그것은 양력으로 3월 중순쯤 된다. 무교절은 7일 동안 누룩 없이 만든 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병[누룩 없이 만든 떡]의 절기 혹은 무교절이라고 불린다. 무교절의 첫날인 1월 15일과 제7일인 1월 21일은 안식일로서 성회(聖會)로 모였다(레 23:7-8). 유월절과 무교절은 시간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신약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였다(마 26:17; 막 14:1, 12; 눅 22:1, 7).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때 흠 없고 1년된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문틀 위와 좌우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 무교병은 옛날에 애굽에서 급하게 나온 사실과 흠 없는 제물을 상징했다. 쓴나물은 애굽에서의 고통스런 생활을 상징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고린도전서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라 하나님의 재앙을 피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연중 3대 절기 때에는 하나님께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정성의 예물을 드려야 했다. 신명기 16:16-17도,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하였다.
[16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두 번째는 맥추절이다. 맥추절은 ‘밀 초실절’(출 34:22)이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밀 추수를 시작할 때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다. 유대 땅에서 곡식 추수는 무교절 기간의 보리 추수로 시작하여 맥추절 기간의 밀 추수로 끝난다. 무교절의 7일 중에 보리 추수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절기가 있는데, 그것이 ‘보리 초실절’이다. 그날은 보리 추수의 첫 단을 안식일 다음날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날이며(레 23:10-11), 전통적으로 1월 16일이다. 보리 초실절로부터 일곱 안식일을 지난 그 다음날이 맥추절이다. 그래서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도 부른다(신 16:16).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예표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불리신다(고전 5:7). 무교절 기간에 있는 보리초실절(1월 16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했다고 본다. 주께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이것들과 비교하여, 맥추절은 성도들의 중생과 구원을 예표했다고 본다. 그 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4) 신약교회의 구원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날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행 2:41). 레위기 23:17에 보면,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것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롬 8:23) 즉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죄성이 남아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떡 두 덩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상징한 것일 것이다.
연중 3대 절기 중, 세 번째는 수장절(收藏節)이다. 수장절은 연말에 밭에서 거둔 것들, 곡식들을 비롯하여 각종 열매들, 기름, 포도주 등을 저장하는 절기이다. 수장(收藏)이라는 말은 ‘거두어 저장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데(레 23:34; 신 16:13),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 동안 초막에 거하였던 것을 기억케 하는 뜻이 있었다. 초막절 혹은 수장절은 연중 3대 절기 중 가장 기쁜 절기이다(레 23:39-40; 신 16:13-15). 이 세상은 광야와 같고 성도의 삶은 순례자의 삶과 같다. 또 우리의 육신은 영구적인 집이 아니고, 임시적인 초막과 같다.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장차 올 천국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 .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했다.
[17절]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다함께 모여야 했다. 구약의 절기들은 출애굽과 추수와 관계된 뜻이 있었고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했다. 또 절기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우리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육의 공급하심을 항상 감사하며 힘써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할 것이다.
[18절]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지니라.
누룩 없는 떡은 죄 없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 그것은 예배하는 자의 거룩한 마음가짐을 내포한다. 우리가 마음에 죄를 품고 회개치 않은 채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또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말씀은 유월절 제물을 가리킨 것 같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 날 불에 구워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다(출 12:9-10). 출애굽기 34:25,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19절]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첫 것’은 ‘가장 좋은 것’(NASB)을 뜻한다. 민수기 18:12-1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우리는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또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이스마엘 사람의 풍습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금하신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짐승의 어미와 새끼 간에 세우신 관계를 멸시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카일-델리취).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가난한 자나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자. 안식년과 안식일 계명도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자가 되고 특히 가난한 자와 짐승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결코 무심한 자나 잔인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자.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뜻이 있다. 특히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며, 초막절은 광야 40년의 생활을 상기시킨다. 연중 삼대절기는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와 추수감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셋째로, 우리는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자. 우리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고(신 6:5)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의 전에 드려야 한다(잠 3:9-10).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0-33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리라
[20-21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세상에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다(골 1:16). 본문의 사자는 23절에서 ‘나의 사자’라고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서 보내실 것이다. 그는 길에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보내실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해야 했다. 그들은 그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고 만일 그들이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사자는 그들의 허물을 사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자가 단지 한 천사가 아니고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본문의 하나님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렀는데 그는 하나님이셨다(창 22:11-12). 야곱은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였다(창 31:11, 13).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소서”라고 말하였다(창 48:16). 이런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었는데, 그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
[22절]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약속된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며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왕이시다. 그는 천둥과 벼락, 태풍과 지진을 주장하신다. 이 세상에는 그와 다투어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는 우리편이시며 우리를 위하신다. 단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지키자.
[23-26절]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하나님의 사자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앞서 가서 그들을 가나안 족속들에게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끊으실 것이다. 그의 사자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행하시면 그들의 대적들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 ‘. . . 말며 . . . 말며 . . . 말고’라는 말은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8) 또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라’는 원어는 ‘그것들을 완전히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완전히 타파하라’는 강한 뜻을 가진다.9)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자, 섭리하시는 자, 심판하시는 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자이시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면, 즉 그들이 참된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면, 그들의 양식과 물의 복이 약속되었다. 양식과 물, 즉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요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수 요건인 양식과 물을 보장하셨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약속하셨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또 자녀 출산과 인구 증가는 가정과 사회의 복이다.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는 말씀은 ‘충분하게 살게 하겠다, 장수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지만(시 55:23), 의인들은 장수할 것이다.
[27-28절]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내 위엄’이라는 원어(에마시)는 ‘내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려움을 앞서 보내셔서 가나안 땅의 모든 백성을 두렵게 하시고 그들을 파하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로 그들을 등지게 하실 것이다. 원수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고 다 도망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왕벌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신 7:20; 수 24:12). 왕벌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을 가리킨다. 고대 이방인들의 글에는 가나안 거주자들이 개구리나 이나 벌 등 때문에 그 거주지를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Poole). 그러나 성경에서 여호수아나 사사기에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벌은 그가 가나안 족속들에게 내리실 여러 재앙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29-33절]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1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 하여 1년 안에는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교제의 문제로서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의 신들과 언약하고 그들을 허용한다면 그들은 범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잘못된 교제는 신앙생활에 큰 시험거리이다. 그것은 그 자체도 잘못일 뿐 아니라, 더 큰 실패의 첫걸음이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 앞에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와 왕벌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과 함께하심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신약 성도들에게도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20). 또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항상, 영원히 거하신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해야 한다. 성경 교훈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것을 깨닫고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하나님의 뜻을 요약하여 말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약 성도인 우리는 오직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우리는 평안과 승리를 누릴 것이다. 22절,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5-26절,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이것은 율법의 약속이요 합당한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 48:18).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말했다(빌 4:9). 하나님의 평안과 승리를 원하는 자마다, 성경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24장: 언약서
[1-3절]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미슈파팀)[판단들]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아론과 그의 두 아들과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올라와 아마 산 중턱에 멀리서 하나님께 경배해야 했고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백성은 산밑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판단들]를 백성에게 고하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들’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의와 불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대답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부패성과 무능력함 때문에 그 대답대로 실천치 못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지 못한다. 성도는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신의 죄악된 욕구와 행실을 죽일 수 있다(롬 8:13; 갈 5:16).
[4-8절]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12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오늘날 고고학은 모세 시대 이전에 문자가 있었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모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했다. 번제는 속죄와 헌신의 뜻이 있고, 화목제는 속죄와 교제의 뜻이 있다고 본다. 모세는 피를 취해 반은 여러 그릇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었다. 그 언약서는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했다. 모세는 그 피를 취해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하였다.
[9-11절]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내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았고 그 앞에서 음식을 먹고 마셨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얻었을 것이다.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18절]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6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7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40일(日) 40야(夜)를 산에 있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구름과 함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출애굽기 16:10, “아론이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출애굽기 40:34, “[성막 건립 후]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민수기 16:42,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산 위에 구름 속으로 올라갔고 40일을 밤낮 거기에 있었다.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과 대화했다고 보인다.
출애굽기 2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참 가치를 알자.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례[판단들]를 백성에게 고하였고 그것들을 책에 기록하였다. 그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천천금은보다 가치가 있다(시 119:72). 우리는 성경의 참된 가치를 알고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밤낮 묵상하자.
둘째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힘써 행하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4:1-2,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셋째로, 우리는 언약의 피를 의지하자.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의 피의 절반을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낭독하고 피의 나머지 절반을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의 피라고 불렀다. 언약의 피는 속죄의 뜻이 있다. 사람은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만 의지하자.
25장: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
25-40장은 성막 건립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기록한다.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자원하는 예물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의 자원하는 봉사와 헌신과 헌금으로 세워진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움으로 봉사하며 헌신하며 헌금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7).
[3-7절]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해달의 가죽’이라는 원어(타카쉬)는 ‘돌고래 가죽’(NASB)을 가리킬 것이라고 하며(KB), ‘조각목’은 우리나라의 ‘아카시’ 나무와는 다른 ‘아카시아’ 나무라고 한다(NASB, NIV).
[8-9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모세의 성막과 후에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실 성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다(출 29:45-46; 레 26:11-12; 왕상 6:11-13). 구약 시대의 성막은 신약교회의 모형일 뿐 아니라, 또한 천국의 모형이라고 보인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요한계시록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10-16절]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2규빗 반, 광이 1규빗 반, 고가 1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하나님께서는 먼저 궤, 즉 법궤를 짓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모세는 법궤를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짓되, 길이가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 높이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지으며, 금으로 그것의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러야 했다. 또 그는 금고리 넷을 부어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와 저편에 두 고리를 달며, 또 조각목으로 채, 곧 장대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장대를 법궤의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고 그 장대는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아야 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거판, 즉 십계명의 돌판을 그 궤 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율법을 ‘증거’(하에둣)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17-21절]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2규빗 반, 광이 1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속죄소’라는 원어(캎포렛)는 ‘덮개’와 ‘속죄소’라는 뜻을 가진다. 영어성경들은 ‘자비의 좌석’(시은좌 施恩座, mercy seat)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KJV, NASB). 그것은 길이가 2규빗 반, 즉 약 115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하고, ‘그룹’이라는 천사의 모양 둘을 속죄소 두 끝에 금으로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붙여서 만들고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어야 했다.
[22절]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증거궤, 곧 법궤와 그 덮개인 속죄소는 성막 제도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암시하는 중요한 뜻이 있었다. 율법과 속죄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의 핵심이다. 사람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그의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롬 3:19-24).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되었고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23-30절]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2규빗, 광이 1규빗, 고가 1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상, 즉 떡상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가 2규빗, 즉 약 92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 즉 약 46센티미터, 높이가 1규빗 반, 즉 약 69센티미터가 되게 하고, 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아야 했다. 이것은 떡상을 멜 채, 곧 장대를 꿸 곳이며 또 그는 조각목으로 그 장대를 만들고 금으로 싸야 했다. 그것은 떡상을 멜 장대이다. 또 모세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금으로 만들어야 했고, 떡상 위에 ‘진설병’(陳設餠, 레켐 파님), 즉 ‘하나님 앞에 차려놓은 떡’을 두어 하나님 앞에 항상 있게 해야 했다.
떡상과 진설병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또 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4: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며 또 성경말씀도 우리에게 날마다 영혼의 양식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도 성경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묵상하고 받고 실천하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31-40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등대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령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그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12). 또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105의 말씀대로,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시다. 또 성경은 성령께서 온 땅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시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출애굽기 2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자.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예물들로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2절).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어간다고 표현했다(엡 2:21-22). 우리는 참 교회의 건립을 위해 즐거이 봉사하며 헌신하며 헌금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기뻐하시고 받으신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속죄의 의만 굳게 붙잡자. 하나님께서는 속죄소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실 것을 약속하셨다(22절).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자. 날마다 육신의 양식을 먹듯이, 우리는 날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하고 또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26장: 성막, 띠, 휘장
본장은 성막과 그 덮개들과 널판과 띠와, 또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과 성막문 휘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지시하신 말씀이다.
[1-6절]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휘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매 폭의 장은 28규빗, 광은 4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하고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고리]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앙장 말폭 가에 고 50을 달며 다른 앙장 말폭 가에도 고 50을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대하게 하고 금 갈고리 50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성막을 휘장(예리아)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 천사들의 모양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보라색’(vio- let)(BDB) 혹은 ‘자주색’(purple)(KB, Langenscheidt)을 가리킨다고 한다. 또 ‘홍색’이라는 원어(톨라앗 솨니)는 주홍색(scarlet) 혹은 진홍색(crimson)을 가리킨다. 그러면 ‘청색 자색 홍색실’이라는 말은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이라는 뜻으로 피의 색깔을 상징할 것이다. 휘장은 매 폭의 길이가 28규빗 즉 약 12.9미터, 너비는 4규빗 즉 약 1.8미터로 하고 그와 똑같은 휘장 다섯을 서로 잇고 다른 휘장 다섯을 또 서로 잇는다. 그러면 길이는 28규빗이며 너비는 20규빗인 큰 휘장이 두 개가 된다. 각 휘장의 끝에 청색 즉 보라색 고리 50개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여 한 성막을 이루게 한다. 그러면 성막은 길이가 40규빗 즉 약 18미터이며, 너비가 28규빗 즉 약 12.9미터가 된다.
[7-14절]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 한 폭을 만들지며 각 폭의 장은 30규빗, 광은 4규빗으로 열 한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 앙장을 연락할 말폭 가에 고 50을 달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고 50을 달고 놋 갈고리 50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그 막 곧 앙장의 나머지 그 반 폭은 성막 뒤에 드리우고 막 곧 앙장의 길이의 남은 것은 이편에 한 규빗, 저편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편에 덮어 드리우고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을 덮는 막들에 대해 지시하셨다. 먼저 성막을 덮는 막은 염소털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각 폭의 길이가 30규빗 즉 13.8미터이며 너비가 4규빗 즉 약 1.8미터인 열한 개의 휘장을 염소털로 만들어, 다섯 폭을 서로 잇고 또 여섯 폭을 서로 이으라고 하셨다. 여섯째 폭의 절반은 성막 앞면에 접어 내리고 나머지 절반은 성막 뒷면에 내리게 하였다. 또 그는 연결할 휘장 끝에 고리 50개를 만들고 놋 갈고리 50개를 만들어 서로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면 염소털로 만든 덮는 막은 길이가 44규빗 즉 약 20미터이며, 너비가 30규빗 즉 약 13.8미터가 된다. 덮는 막의 좌우의 남는 것(성막에 비하여)은 이편에 한 규빗, 저편에 한 규빗씩 성막 좌우 양편에 덮어 내리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그 염소털 막의 덮개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고, 마지막으로 해달(테카쉼), 아마 돌고래(porpoise)(KB, NASB)의, 가죽으로 맨 위에 덮을 윗덮개를 만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성막의 덮개는 삼중이었다. 첫째는 염소털로 만든 막이며, 둘째는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이며, 셋째는 돌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윗덮개이었다.
[15-25절]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각 판의 장은 10규빗, 광은 1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편을 위하여 널판 스물을 만들고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지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성막 다른 편 곧 그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스물로 하고 은받침 마흔을 이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성막 뒤 곧 그 서편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성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둘을 만들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그 여덟 널판에는 은받침이 열 여섯이니 이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벽이 될 널판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널판을 만들되, 각 판의 길이는 10규빗 즉 약 4.6미터, 너비는 1규빗 반 즉 약 70센티미터로 하고 각 판에 두 촉(tenon, 장부)씩 내어 서로 연결하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는 남쪽과 북쪽을 위해 각각 널판 20개를 만들고, 각 널판에 은받침 2개씩, 도합 40개를 만들게 하셨다. 성막 뒤 곧 서쪽을 위해서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양쪽 모퉁이를 위해 또 널판 둘을 더 만들어 두 겹 두께로 하게 하셨고 또 그 널판 여덟을 위해 은받침 열 여섯을 만들게 하셨다.
[26-30절]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며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널판을 연결할 띠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로 띠를 만들되, 성막의 북쪽과 남쪽의 널판들을 위해 각각 다섯 개씩을 만들고 성막의 뒷쪽 즉 서쪽의 널판들을 위해 역시 다섯 개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또 중간의 띠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미치게 하라고 하셨다. 이 중간띠는 성막 전체를 하나로 묶게 된다. 또 그는 그 모든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모세에게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고 말씀하셨다.
[31-33절] 너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장[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아서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드리우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둘지며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휘장(파로켓)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의 모양을 공교히 수놓고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내리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 네 기둥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 내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 놓으라. 이 휘장은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고 말씀하셨다.
[34-37절]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장 바깥 북편에 상을 놓고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할지며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을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휘장 바깥 북쪽에 떡상을 놓고 남쪽에 등대를 놓아 떡상과 마주 대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또 성막문을 위한 휘장을 역시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라고 지시하셨다. 또 그 휘장을 위해 기둥 다섯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게 하셨다.
출애굽기 2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속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자.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구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성막 중심의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함을 보인다. 구약의 성막은 가늘게 꼰 베실과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로 만들어졌다. 또 그 덮개도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이었고,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휘장과 성막문 휘장도 가늘게 꼰 베실과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구주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자.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막는 천이다. 그것은 속죄의 피가 없이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께서 그 휘장을 여셨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 27:51). 히브리서 10:19-20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의 매는 띠로 단합하자. 성막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덮는 덮개들도. 성막의 널판들도 한 띠로 연결되었다. 온 세계 교회는 하나다.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골로새서 3:12-14,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우리는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항상 단합하자.
27장: 번제단, 성막뜰, 등불
[1-8절]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5규빗, 광이 5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3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지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번제단을 만들라고 명하셨다. 번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5규빗 즉 약 2.3미터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며, 높이는 3규빗 즉 약 1.4미터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어 붙이고 그 단을 놋으로 싸야 했다. 번제단은 놋단이다. 뿔은 하나님께 드려짐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놋으로 만들고, 또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어 그물을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단 절반에 오르게 해야 했다.
[9-19절]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100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그 북편에도 광이 100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뜰의 옆 곧 서편에 광 50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50규빗이 될지며 문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15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15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20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뜰 사면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뜰의 장은 100규빗이요 광은 50규빗이요 세마포장의 고는 5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성막뜰을 만들라고 명하셨다. 성막뜰은 남쪽과 북쪽에 동일하게 길이 100규빗, 즉 약 46미터의 세마포 천을 쳐서 만들되, 기둥이 20개, 놋받침이 20개이며, 또 그 기둥 갈고리와 끈을 은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름대’(10, 11절)라고 번역한 말은 ‘끈’을 가리킨다. 서쪽 즉 성막의 뒷쪽은 길이가 50규빗, 즉 약 23미터의 세마포 천을 쳐서 만들되, 기둥이 10개, 놋받침이 10개이어야 했다.
동쪽 즉 성막의 앞쪽도 너비가 50규빗, 즉 약 23미터이다. 가운데 20규빗 즉 약 9.2미터 너비의 출입문이 있고, 문 좌우로 15규빗 즉 약 6.9미터씩 천을 치되 각각 기둥 셋과 받침 셋이 있어야 했다. 출입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 즉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을 치고 기둥 넷과 받침 넷을 세워야 했다. 뜰 사면 모든 기둥의 갈고리와 끈은 은으로 만들고 받침은 놋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성막뜰은 폭이 50규빗 즉 약 23미터, 길이가 100규빗 즉 약 46미터이며,10) 세마포 천의 높이는 5규빗 즉 약 2.3미터이다. 성막뜰의 기둥 받침은 놋이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휘장(천) 말뚝은 다 놋으로 만들어야 했다.
[20-21절]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올리브 열매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가져와야 했고 그것으로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야 했다. 대제사장 아론과 그 아들들은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관리해야 했다. 이것은 영원한 규례이었다.
출애굽기 2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번제단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번제단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는 우리에게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과, 둘째는 제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사장이 필요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알려준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하였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 제도는 이 사실을 계시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신 이가 오셨다.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딤전 2:4; 히 4:14; 10:15). 또 모든 사람에게 제사가 필요했다. 제사의 근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죄인은 속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셨다(히 10: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영원한 속죄제물로 드리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또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알고 속죄 신앙을 굳게 지키자.
둘째로, 성막뜰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성막뜰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공적인 예배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시때때로 성막뜰에 나아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다. 성막뜰은 우리에게 공적 예배의 필요성을 교훈한다. 성막뜰은 교회의 공적 집회 장소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적 경건 시간과 더불어 공예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모임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신약 성도들이 공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유익하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하였다(히 10:24-25). 또한 성경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고, 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증거한다(행 2:42, 46).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 곧 하나님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받고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과 영생을 얻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교훈대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들은 일주일에 교회에 한두 번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 모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더욱 많이 모여 말씀을 배우고 복습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야 한다.
셋째로, 본장 마지막에 기록된 등불의 관리에 대한 명령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막의 등불을 잘 관리하여 끊임없이 켜야 했다. 등대와 그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 되심과, 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빛 되심을 상징한다. 주 예수께서는 그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12:46).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다(시 119:105). 또 요한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리켰다고 말하였다(계 4:5). 이와 같이,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과 성령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구약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등불을 끊임없이 켜고 지켰듯이, 항상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오직 성경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감동으로 섬겨야 한다.
28장: 대제사장의 옷
[1-5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겉옷(메일)은 ‘(소매 없는) 두루마기 겉옷’(robe)을 가리키고(BDB, KJV, NASB, NIV), 반포(斑布) 속옷(케도넷)은 ‘(체크무늬의) 속옷(tunic)’(NASB)이라는 뜻 같다(BDB). 앞장들에서와 같이 본장에서도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보라색’ 혹은 ‘자주색’이라는 뜻이라고 본다(BDB, KB, Langenscheidt). 옷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의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은 그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과 그의 완전한 인성(人性)의 영광을 상징한다고 본다. 제사장의 옷들을 만드는 금실은 그의 신성을 나타내고 보라색, 자주색, 주홍색은 그의 대속 사역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신 대속(代贖)의 구주이시다.
[6-14절]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지며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에봇을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에봇은 조끼 같은 것이다. 에봇의 특이한 점은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에봇에 붙이고 거기에 호마노라는 보석 두 개를 금테에 물려 붙이는 것이다. 그 두 보석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새겨지는데, 한 보석에 여섯 명씩 도장을 새기듯이 새겨진다. 아론은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 기념이 되게 해야 했다. 에봇과 견대의 규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석같이 여기시는 것과 대제사장이 그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15-21절]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장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 둘이라. 매 보석에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판결 흉패를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판결 흉패는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며 거기에 네 줄로, 한 줄에 세 개씩 열두 개의 보석을 물리며, 그 보석들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새겨진다.
[22-29절]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흉패의 위의 두 끝에는 금고리 둘을 만들어 두 견대의 금테와 연결되게 하였다.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아야 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석같이 귀히 여기심을 보이며 또 보석의 다양한 색깔과 같이 그들이 각각 받은 은사와 재능이 다양함을 보인다. 또 그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그들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도 예표한다.
[30절]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판결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게 하셨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함’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된, 아마 제비 같은 어떤 물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론은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 우림과 둠밈을 그의 가슴에 두어야 했다. 그것은 그가 항상 하나님의 빛과 완전함을 사모해야 함을 보일 것이다. 아론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과 분별력으로 이스라엘의 소송 사건들을 판결해야 했다.
[31-35절]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깃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하여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봇 받침 두루마기를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글성경에 ‘겉옷’이라는 원어(메일 לי������������)는 ‘두루마기 겉옷’ (robe)을 가리키는 것 같다.
[36-39절]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죄]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그 다음, 하나님께서는 패를 만드는 법을 말씀하셨다. 모세는 정금으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기는 방식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를 새겨야 했다. 한글성경에 ‘반포 속옷’이라는 원어(케소넷)는 ‘(체크무늬의) 속옷(tunic)’이라는 뜻 같다(BDB, NASB).
[40-43절]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袴衣)[반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론의 아들들을 위해서도 ‘속옷’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속옷’이라는 원어는 ‘반포 속옷’이라는 말과 같고, 그것은 ‘(체크무늬의) 속옷’이라는 뜻이라고 본다(BDB, NASB).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베로 고의[반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아론과 그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이었다.
출애굽기 2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자. 대제사장의 옷은 영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했다. 옷은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의 옷이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했다고 본다. 그의 영광은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이며 또 그의 완전한 인성의 영광이다. 우리는 그의 신성의 영광을 찬송한다. 또 천국에서 우리는 그의 인성의 영광을 닮을 것이다. 빌립보서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롭고 아름다우심을 알고 찬송하자.
둘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본받자. 대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옷’이라고 불렸다. 또 대제사장의 관 전면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패가 매여 있었다. 또 제사장들은 다 기름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된다. 이 모든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시고 거룩하신 인격과 사역을 나타낸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들도 제사장들(벧전 2:9)로서 거룩해야 한다(벧전 1:15).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본받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를 보석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에게 보답하자. 대제사장의 견대에 있는 두 개의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한쪽에 여섯 씩 새겨 넣었다. 또 에봇 위에 걸치는 판결 흉패에는 한 줄에 세 개씩 네 줄, 즉 열두 개의 각종 보석이 있었고 거기에도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석같이 여기시고 어깨에 메시고 가슴에 품으신다. 우리는 우리를 보석같이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자.
29장: 제사장의 임직
[1-9절]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취하고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고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제사장 임직에 대해 명령하셨다. 무교병(無酵餠)은 누룩 넣지 않은 떡이며 전병은 부꾸미(부침개)이다. ‘속옷’이라는 원어(쿳토넷)는 ‘일상적으로 주로 입는 옷’을 가리키며(BDB), 또 에봇 받침 ‘겉옷’이라는 원어(메일)는 ‘(소매 없는) 두루마기(robe) 겉옷’을 가리킨다고 한다(KB).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바르는 관유(灌油)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요 3:34).
[10-14절]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너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을지며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제사하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그것에게 그의 죄를 전가(轉嫁)시킨다는 뜻이 있다. 속죄제 의식은 죄씻음을 상징한 제사 의식으로서 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중요한 제사이었다.
[15-18절] 너는 또 숫양 하나를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그 숫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레아크 니코아크)[유화(속죄)의 향기]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각을 뜨는 것은 토막을 내는 것이다. 제물을 온전하게 불태워 드리는 번제는 속죄와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뜻이 있었다고 본다.
[19-21절] 너는 다른 숫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단 위의 피와 관유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위임식 숫양의 피를 아론의 오른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불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는 것은 그들이 듣는 것과 만지는 것과 행하는 것에서 거룩해야 하며 그의 온 몸이 거룩해야 함을 보인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을 거룩케 해야 한다. 아무도 죄로 더러워진 채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22-25절] 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우편 넓적다리를 취하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며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덩이와 기름 바른 과자 하나와 전병 하나를 취하고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유화의 향기]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요제(搖祭)는 ‘흔드는 제물’(wave offering)이다.
[26-28절] 너는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는 너의 분깃이니라.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
거제물(擧祭物)은 하나님께 ‘드는 제물’(heave offering)이다.
[29-30절] 아론의 성의(聖衣)는 아론의 후에 그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7일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
아론의 거룩한 옷은 아론 후에 그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며 그들은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섬길 때 7일 동안 그것을 입어야 했다. 아론의 거룩한 옷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상징한다고 본다.
[31-34절] 너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데 쓰는 것은 그들은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이는 성물이 됨이며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았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
위임식 숫양의 고기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삶아서 광주리의 떡과 함께 먹어야 했다.
[35-37절] 너는 내가 무릇 네게 명한 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그같이 하여 7일 동안 위임식을 행하되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케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네가 7일 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리니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
모세는 그들과 함께 7일 동안 위임식을 행하고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고, 또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케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게 해야 하였다.
[38-46절]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1년된 어린양 두 마리니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한 어린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10분 1과 찧은 기름 힌의 4분 1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4분 1을 더할지며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유화의]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지니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는 번제로 매일 1년된 어린양 두 마리를 아침에 하나, 저녁에 하나, 소제와 전제와 함께 드려야 했다. 전제(奠祭)는 ‘붓는 제물’이다. 에바는 약 22리터이며 힌은 약 4리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회막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과, 또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복되고 은혜로운 약속을 하셨다.
출애굽기 2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듣고 만지고 행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위임식 숫양의 피를 오른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야 했다. 신약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듣는 것, 만지는 것, 행하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번제를 드려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를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기대하자.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고 그들 중에 거하시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믿는 신약 성도들을 만나셨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
30장: 분향단, 물두멍, 관유, 향
[1-5절]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1규빗, 광이 1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2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지며 금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편에 만들지니 이는 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의 기구들에 대해 계속 지시하셨다. 그는 분향할 단(분향단)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모세는 그것을 조각목 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되 길이가 1규빗(약 46센티미터), 너비가 1규빗(약 46센티미터), 높이가 2규빗(약 92센티미터)이 되게 하며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어 붙이고 다 금으로 싸야 했다.
[6-10절]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유화의]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아론이 1년 1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1년 1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모세는 그 분향단을 증거궤 뚜껑인 속죄소의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어야 했다.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과 만나실 곳이다. 아론은 아침마다 그 위에 유화(속죄)의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 사르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 살라야 했다. 등불은 저녁에 어두워지면 켜고 아침에 해가 밝으면 껐던 것 같다(출 27:21; 레 24:3; 삼상 3:3; 대하 13:11).
[11-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20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20세 이상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여호와께서는 생명의 속전(贖錢)에 대한 규정을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인구 조사를 할 때 조사받은 각 사람이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되 계수 중에 드는 20세 이상된 모든 사람이 성소의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내야 했다. 성소의 세겔로 1세겔은 약 10그램이다.11)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아야 했다. 그 생명의 속전은 회막 즉 성막의 봉사를 위해 사용되어야 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자이므로 그 생명을 위해 죄를 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의 연장이나 수적 증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17-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물두멍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물두멍’은 ‘큰 물통 혹은 물대야’를 가리킨다. 모세는 그것을 놋으로 만들고 그것을 성막과 번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아야 했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막에 들어갈 때에나 화제(火祭)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 먼저 그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22-2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500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250세겔과 계피 500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그 다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관유를 만드는 법을 지시하셨다. 모세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액체(流質--국한문성경) 몰약(myrrh) 500세겔 즉 약 5킬로그램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cinnamon) 250세겔 즉 약 2.5킬로그램과 향기로운 창포(cane 혹은 calamus) 250세겔 즉 약 2.5킬로그램과 계피(cassia) 500세겔 즉 약 5킬로그램과 감람(olive) 기름 한 힌 즉 약 4킬로그램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만들어야 했다.
[26-33절]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구별하라. 무릇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그 관유를 성막과 그 기구들에게 바르라고 지시하셨다. 모세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그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하나님께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해야 했다. ‘끊어진다’는 말은 출교나 사형 또는 하나님께서 직접 징벌하여 죽이심(레 20:3) 등을 가리킨다고 본다.
[34-3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重數)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향을 만드는 법을 지시하셨다. 모세는 소합향(stacte)과 나감향(onycha)과 풍자향(galbanum)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frankincense)에 섞되 각기 동일한 무게로 섞고 그것으로 향 만드는 법대로 향을 만들어야 했다.
출애굽기 3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성도들의 기도 생활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위해 중보 사역을 하신다(롬 8:34; 히 7:25). 또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시 141:2; 계 5:8; 8:3-4).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죄의 고백, 선한 소원의 간구를 아뢰자.
둘째로, 생명의 속전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20세 이상된 자들은 다 생명의 속전으로 반 세겔씩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그것은 회막 봉사에 사용되었다. 우리는 죽어 지옥에 던지워야 마땅한 죄인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자(고전 6:19-20).
셋째로, 물두멍, 즉 큰 물통 혹은 큰 물대야는 제사장들에게 성결함이 필요함을 보인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며 지극히 성결하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의 특권과 존귀를 가진 신약 성도들은 손과 발을 항상 물로 씻어 깨끗케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31장: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심
[1-1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그 기구와 정금 등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공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그의 거룩한 일을 위해 일할 자들로 지명하여 세우셨다. 그는 또 모든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에게 돕는 자로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특히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주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 구약의 성막을 만드는 일에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했다. 거대한 세계적 성전인 신약교회의 건립과 봉사의 일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약교회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건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헌신한 신약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봉사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봉사해야 한다.
[12-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7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께서는 특히 안식일을 지킬 것을 강조하셨다. ‘나의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베소사이 י������������������������)는 ‘나의 안식일들’인데, 그것은 주간 안식일뿐 아니라, 절기들의 안식일들을 포함하는 것 같다. ‘나의 안식일들’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안식일들이 다 하나님의 날들임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도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로 반복하여 강조하셨다(겔 20:12, 13, 16, 20, 21, 24). 사실상 우리의 모든 날들과 시간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가 지정하신 절기들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안식일은 단수명사로서 주간 안식일을 가리킨다. ‘성일이 됨’이라는 원어는 단순히 ‘거룩하다’는 뜻이다. 주간마다 오는 제7일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날이었다. 그 날은 한 주간의 다른 여섯 날들과 구별되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할 수 있는 여섯 날을 주셨고 그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7일은 ‘큰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셨다. ‘큰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밧 솹바손)는 ‘쉬는 안식일’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또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고 부언(附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에 대해 무서운 벌칙을 선언하셨다. 그는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을 더럽힌다’는 말은 그 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경건하게 예배하며 보내지 않고 일상적인 날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끊어지리라’는 말도 사형을 가리킨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부언하셨다. ‘반드시’라는 말로 사형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안식일을 범하는 자에게는 사형이 선언되었다. 안식일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들만큼 중요한 계명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을 보고 그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회중 앞으로 끌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고 회중은 그를 진 밖에 데려가 돌로 쳐죽였다(민 15:32-36).
하나님께서는 또 구약의 안식일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영속적인 표시(옷 תוֹא; sign)이며 영원한 언약이며 표라고 강조하셨다. 십계명이 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지만, 그 중에도 안식일 계명이 그러했다. 이 안식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표시되었다. 그 날에 온 가족들은 세속적인 일들을 쉬며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다(레 23:3). 이방인들은 안식일 없이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며 살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 지킴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이 증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안식일 계명의 이유와 근거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이는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7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평안하다’는 원어(나파쉬)는 ‘새 힘을 얻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새 힘을 얻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7일에 쉬셨고(창 2:2),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출 20:11). 하나님께 무슨 피곤함이 있으셨겠는가? ‘새 힘을 얻었다’는 표현은 순전히 우리를 위한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제도이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성막 제정에 대한 이 모든 말씀을 다 이르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셨다. 이것은 돌판들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십계명이었다(신 4:13). 그 두 돌판의 양면에 십계명이 쓰여 있었다고 보인다. 그 판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께서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출 32:15-16).
출애굽기 3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일하자.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립을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지혜 있는 자들을 세워 일하게 하셨다. 영혼 구원과 교회 건립은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일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신실한 종들을 세우시며 일하신다. 영적 성전 건립의 일, 즉 영혼 구원과 개인의 성화, 지교회의 건립과 성장, 전체 교회의 건립과 성장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와 능력을 받은 종들과 성도들의 충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그의 일을 위해 충성된 종들을 많이 세우시고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일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자. 구약시대에 안식일은 매우 중요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의 표이었다. 안식일을 어기며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신약 성도는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킨다. 신약 성도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의 명령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주일을 범하면 큰 죄를 짓고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토요일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자원적으로 즐거이 지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을 온종일 거룩하게 구별하며 온 가족이 세속적인 일을 쉬고 몸도 쉬고 공예배의 날로 지킨다. 신약 성도는 구약 성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들로 구약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이상으로 거룩함과 즐거움으로 주일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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