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 모세오경[강해]

출 애 굽 기 13장: 하나님의 인도하심- 18장: 이드로의 방문

영국신사77 2020. 4. 14. 17:48


제목 차례

13장: 하나님의 인도하심

14장: 홍해의 기적

15장: 모세의 노래

16장: 만나와 메추라기

17장: 르비딤 사건들

18장: 이드로의 방문


13장: 하나님의 인도하심

[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7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7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연년이 기한에 이르러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본장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강조한다(3, 9, 14, 16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온갖 압제와 학대를 받았었다(3, 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손의 권능으로’(3, 14, 16절), ‘능하신 손으로’(9절) 그들을 인도하여 내셨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특히 마지막 장자 재앙이 아니었다면 애굽 왕 바로는 결코 그들이 떠나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해방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고 말씀하셨고, 애굽에서 나오던 그 날 밤에 행하게 하셨던 규례, 즉 누룩 넣은 떡을 먹지 말고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계속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맹세하셨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될 만한 아름다운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거기서 아빕월 즉 1월 14일의 절기인 유월절과, 또 1월 15일부터 7일 동안의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때 무교병 즉 누룩 넣지 않고 만든 떡을 먹어야 했고 제7일에 여호와께 성회로 지켜야 했다. 또 그들은 7일 동안 유교병[누룩 넣은 떡]을 그들의 처소에도 있지 않게 해야 했고 누룩도 그들의 경내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 했다. 또 그들은 이 절기의 뜻을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말해주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 규례를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9절의 ‘기호’라는 원어(오스)는 ‘표’(sign)라는 뜻이며, ‘표’라고 번역된 원어(직카론)는 ‘기념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사건과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그 은혜를 해마다 잊지 말고 기억하며 이 규례를 지켜야 했다.

[11-16절]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모세는 또,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을 얻게 되면 그들은 사람이나 가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반복하여 강조했다.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하고 그들의 모든 장자는 다 대속하라고 했다.

또 장차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묻거든,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첫새끼까지 다 죽이셨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며 이것을 너희의 손의 기호와 너희의 미간의 표로 삼으라고 하라고 하셨다. 16절의 ‘표’라는 원어(토타폿)는 ‘머리띠’라는 뜻이다.

[17-22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나온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 길은 몇 일이면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리라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한 몸과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적합한 다른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홍해의 광야 길이었다. 또한 그 길은 뒤쫓아올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실 길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단련하시는 첫 과정의 길이기도 했다. ‘항오를 지어’(카무쉬임)라는 원어는 ‘전투대형으로(in battle array)’라는 뜻이다(BDB).

야곱의 아들 요셉은 죽기 전에 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녕 돌아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리라고 말하며 그들이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맹세시켰었다(창 50:24-25). 모세는 조상들로부터 전달되어 내려온 요셉의 그 맹세를 기억하여 그의 해골을 취했다. 요셉의 유언도 놀랍지만, 그 유언을 지킨 모세는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다. 여호와께서는 그들 앞에 행하셔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어 밤낮으로 진행케 하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인도하심이었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노릇하던 상태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그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큰 구원을 체험한 그들은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람이나 가축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셨고 또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게 하셨다. 그들은 그 절기의 7일 동안 처소에서 누룩을 제거해야 하였다.

우리는 무지한 짐승같이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잘 잊어버린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 살면서도 창조주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돌릴 줄 모르고 산다. 특히, 신약 성도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그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자.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방법이 그가 명하시고 제정하신 성찬식이다. 그것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지켜야 할 의식이며(고전 11:23-26), 이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오늘날 우리는 초태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구속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어야 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죄 없는 삶을 추구하고 힘써야 한다. 주 예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이제 죄의 도구가 되지 말고, 오직 의와 거룩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길로가 아니고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고, 광야 40년 동안에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가 친히 은혜로 구원하신 신약 성도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다(롬 8:14).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신 모든 현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자. 우리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자(계 14:4).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밝히 약속하신 영광의 천국을 사모한다.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불탈 것이지만,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그 영광의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며 바라자(벧후 3:12-13).


14장: 홍해의 기적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네부킴)[방황하여](BDB, NASB)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할지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본절의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13:18; 15:4, 22).2) 본장에도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온다(4, 8절).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해 영광을 얻는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뒤따르는 애굽 사람들이 멸절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5-9절]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특별 병거 6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데리고 가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

애굽 왕 자신이 그 추격을 주도하였고 직접 참여하였던 것 같다.3)

[10-12절]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위기 상황에서 믿음 없음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였고 하나님과 모세를 대항하였다.

[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몇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섭리자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두려워 말아야 한다. 둘째는 가만히 서 있으라는 것이다. 믿음은 고요히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해 이끌어내신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위기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넷째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 대적자들과 싸우실 것이다.

[15-2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뜻은 앞에 가로놓인 홍해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 갈대 바다는 갈라지며 길을 낼 것이다. ‘바다 가운데 육지로’라는 이 특이한 표현은 본장에 세 번 나온다(16, 22, 29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실 것이며 그들을 인해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며, 그 결과,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는 옮겨 그 뒤로 행했고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서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다.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호하셨다.

[21-25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다. 하나님께서는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 그는 큰 동풍을 사용하여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했고 바닷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마병들은 다 그들을 따라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다. 새벽에 하나님께서는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것을 어지럽게 하셨고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심을 느끼며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치려 하였다.

[26-3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고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다 가운데서 엎으셨다. 바닷물은 다시 흘러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 그 병거들과 기병들을 다 덮었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다. 본장에는 이런 표현이 세 번 나온다(16, 22, 29절).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이같이 구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다. ‘큰 일’이라는 원어(하야드 학게돌라)는 ‘큰 손’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일’을 가리킨다. 홍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또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은혜로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1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성도에게 고난과 위기가 있음을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작정과 뜻 가운데서, 그의 인도하심 속에서 애굽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난과 위기를 직면하였었다. 그들은 광야에서 바로와 애굽 군대의 칼에 죽을 것 같은 큰 위기를 만났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당하고 위기를 만난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고난과 위기가 있음을 알자.

둘째로, 고난과 위기를 대처하는 바른 방법은 살아계신 섭리자, 구원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게 해야 했다.

오늘날도 우리는 고난 중에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체험치 못할 것이나, 기도하는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도우심과 구원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큰 손, 즉 큰 능력의 일을 볼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위기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고 또 해결하실 전능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며 그가 우리를 위해 어떻게 행하시는지,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아야 한다.

15장: 모세의 노래

[1절]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노래한 이유는 그가 심히 높으시고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기 때문이다. ‘높고 영화로우시다’(가오 가아)는 원어는 “심히 높으시다”는 뜻이다. ‘말과 그 탄 자’는 단수명사로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키는 것 같다. 물론, 그 외에 그의 장관들의 병거들도 있었고 그들도 다 바다에 삼키웠다.

[2절] 여호와(야흐)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안웨후)[내가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이길 힘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망과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노래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시고 최고의 가치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다. 즉 참된 신앙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로 계대된다.

[3절] 여호와는 용사(이쉬 밀카마)[전사(戰士)]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군대를 파하신 전사(戰士)이시다. 그의 이름인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이다(출 3:14).

[4-5절]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바로의 병거들(원문)과 장관들이 바다에서 죽은 것은, 우연이거나 재수가 없어서거나 이스라엘 자손과의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본문은 그 바다를 ‘홍해’라고 불렀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애굽 북동쪽 끝, 지중해의 한 해변이 아니고, ‘홍해’라고 불리는 애굽 동쪽의 큰 바다의 북단, 즉 수에즈만 북쪽의 어느 지점이었음이 확실하다.

[6-10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카쉬)[그루터기, 겨]같이 사르니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일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원수들을 부수셨다. 하나님은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들, 즉 그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엎으셨다. 그는 진노를 발하셨고 그의 진노는 그들을 그루터기나 겨같이 사르셨다.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었고 이스라엘은 무사히 건넜지만, 바다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 덮었고 그들은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다.

[11-12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펠레)[기적]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대적자들을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거룩하심과 영광이 밝히 증거되었다.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은 없다. 모세는 “주께서 오른손(능력의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고 말한다. ‘땅이 그들을 삼켰다’는 표현은 특이하다. 실제로는 땅이 아니고 바다가 그들을 삼켰지만, 바다가 땅 위에 물이 고인 곳이며 넓게는 땅에 포함된다는 뜻에서, 즉 하늘과 땅 곧 천지(天地)라는 말 속에 우주만물이 다 포함된다는 뜻에서, 표현된 것 같다.

[13절] 주께서 그 구속(救贖)하신 백성을 은혜로(베카스데카)[그의 자비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속(救贖)하셨고 그의 자비로 인도하시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가나안 땅이 목적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으로 그들을 그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신다.

[14-16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홍해 사건의 소문은 애굽 주위의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졌다.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듣고 떨었고 블레셋 거민들도, 에돔 방백들도, 모압의 영웅들도, 가나안 거민들도 다 두려워 떨었고 낙담하였다. 후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 ‘주의 사신 백성’이라고 표현하였다. 신약 성도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핏값으로 사신 자들이다.

[17-18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는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예비하신 처소,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는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19절]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바로의 말’이라는 원어는 단수명사이다. 바로 자신이 그때에 홍해에 빠져 죽었던 것 같다. 바로의 말과 애굽의 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했다.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라는 표현은 네 번째 나왔다(출 14:16, 22, 29; 15:19). 이렇게 반복해서 증거된 대로, 홍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놀랍고 은혜로운 기적의 사건이었다.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구약시대의 미리암이나 신약시대의 전도자 빌립의 네 딸과 같이 여자가 선지자인 경우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 신약시대에 사도나 장로와 집사는 남자들 중에서 택했다.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수르 광야는 시내 반도의 북서쪽, 홍해 건너편 애굽에 근접해 있는 광야이었다고 본다(창 20:1; 25:18; 삼상 15:7).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행하면서 물을 얻지 못하여 매우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고 물이 있는 한 곳에 이르렀지만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여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마르라는 말은 ‘쓰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3일 전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은 이제 물이 없거나 물이 써서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는 기쁨도, 물이 없거나 물이 쓴 고통도 주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신 일들이었다.

[24-25절]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했다. ‘원망하다’는 원어(룬 ןוּל)는 ‘투덜거리다, 웅성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13번 사용되었다(출 15:24; 16:2, 7, 8; 17:3; 민 14:2, 27, 27, 29, 36; 16:11, 41; 17:5). 고난 중에 원망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공통적 연약성이다. 원망과 불평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고난의 현실을 참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울 때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놀랍게도 물의 맛이 달아졌다. 그것은 나무 자체의 효능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기적이었다.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솨모아 티쉬마)[진심으로 듣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계명들과 율례들을 힘써 지키기를 원하셨다. 또 그런 순종의 삶에 대해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셨다. 이것은 잠언 3:7-8의 말씀과 동일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건강, 치료]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큰 의사이시다. 몸의 건강과 병의 치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70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엘림은 사막의 오아시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간 목마름도 주셨지만 시원한 물도 주셨고, 고난도 주셨지만 기쁨과 평안도 주셨다.

출애굽기 1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홍해 사건의 역사성을 믿자. 이 노래는 홍해 사건의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홍해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믿자. 우리는 성경의 진실한 증거를 다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온 세상을 섭리하시며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인도하심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부수셨고 이스라엘을 그의 기업의 산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과 교회와 국가와 세계 전체를 섭리하시고 통치하신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신약 성도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며 이 구원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자. 세상에는 고난이 많이 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섭리자 하나님을 잊지 말고 그의 능력을 잊지 말자. 불평과 원망이나 낙심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서 나온다. 무슨 문제이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그들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신 것이다. 계명 순종은 건강뿐 아니라, 모든 평안과 행복을 위한 길이다.

16장: 만나와 메추라기

[1-3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2월 15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애굽에서 나온 후 제2월 15일, 즉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온 회중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먹을 것이 부족함을 불평하였다. 한 달이 지나자 애굽에서 가져 나온 양식들이 다 떨어졌던 것 같다. 사람은 식량이 부족할 때 불평하기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하나님, 홍해를 기적으로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굶겨 죽이시겠는가?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원망하였다.

[4-5절]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6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려주실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이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제6일에는 그들이 다른 날의 두 배를 거두게 하셔서 그 다음날을 안식일로 지키게 하시며 이 일을 통해 그들이 율법을 준행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6-8절]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그들은 저녁에 메추라기를 얻을 것이며(8, 12, 13절) 아침에 만나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실상 하나님을 향해 한 것이었다.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에게 평안도 주시고 또 이런 저런 어려움도 주신다.

[9-12절]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아셨다. 그는 그들의 믿음 없이 내뱉는 불평과 원망의 말을 다 들으셨고 근심하셨고 불쾌히 여기셨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필요대로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그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다.

[13-16절]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 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였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었으며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었다. 만나이었다. 그것은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서로에게 말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원어(만 후 אוּה ן������)는 “그것이 만나이다”라고도 번역된다(KJV). 그러나 ‘만나’라는 원어(ן������)는 아람어로 ‘무엇’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우리말처럼 번역하기도 한다(NASB, NIV). 이와 같이, ‘만나’라는 말은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인다. ‘오멜’은 부피의 단위로 약 2.2리터(즉 한 되 한 홉)에 해당한다.

[17-20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항상 얻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침까지 남겨 둔 것에는 벌레가 생겼다.

[21-24절]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녹았더라]. 제6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두목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이스라엘 회중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만나를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녹았다. 제6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양식 곧 한 사람에 두 오멜씩 거두었다. 안식일은 사람이 모든 일상적 일을 쉬는 휴식의 날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신 날이다(막 2:27). 그 날 사람들은 육신의 일을 쉬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생각하고 그를 섬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날에 모세의 명대로 만나를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다.

[25-30절]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6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7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7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6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7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제7일에 안식하니라.

제6일에 갑절로 거둔 만나를 제7일까지 먹어야 했으나, 백성 중 어떤 이들은 제7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안식일 지킬 것을 명하셨다.

[31-36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오멜은 에바 10분의 1이더라.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하늘로부터 주신 그 양식의 이름을 ‘만나’라고 불렀다. 그것은 ‘깟’(coriander)이라는 일년생 풀의 씨와 같고 색깔은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대대로 간수하게 했다. 오멜은 에바의 10분의 1이었다. 오늘날 단위로 말하면, 오멜은 약 2.2리터이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 즉 법궤 안 십계명 두 돌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다.

출애굽기 1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점에서 부족하였다. 본장에는 ‘원망’ 혹은 ‘원망하다’는 말이 7번이나 나온다(2, 7, 7, 8, 8, 9, 12절). 본문은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이 여호와를 향해 한 것이라고 말한다(8절). 또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원망을 들으셨다고 네 번이나 말한다(7, 8, 9, 12절).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노하셨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불평 원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며 기다리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즉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자이셨다. 그는 그들에게 자비하셨고 은혜로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살아계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의 쓸 것을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고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일을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하여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안식일 준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천국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지켜야 하며 그 계명 안에 공적 예배의 날 즉 안식일을 지키는 의무도 포함된다. 신약 성도는 주일을 온종일 거룩히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지키며 또 육신의 휴식도 취해야 한다.

17장: 르비딤 사건들

[1-3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없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모세와 다투며 그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와 다투며 그를 원망한 것은 곧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과 경외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모세와 다투거나 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성찰하며 고요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4-7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상하여 모세에게 돌질할 정도까지 되었다. 한 때는 모세를 향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를 존중하며 따랐을 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자 돌변했다. 이것이 무지하고 믿음 없는 인생의 모습이다. 모세는 마음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기도는 성도의 최선의 대처 방법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백성들 앞을 지나가라고 하셨다. 그것은 백성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담대히 그의 직무를 수행하라는 뜻이라고 본다. 둘째는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장로들은 백성의 대표자들이었다. 그들이 친히 하나님의 일을 목격하는 것은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 유익할 것이다. 셋째는 “네 지팡이를 잡고 가라”고 하셨다.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지팡이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팡이보다 더 귀한 성경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믿고 실천하면서 담대히 살아야 한다.

넷째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에 관여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맞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대로 행하였다. 즉 그는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했고 모든 백성으로 그 물을 마시게 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런 기이한 능력의 일들을 많이 행하셨다. 모세는 그곳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불렀다. ‘맛사’는 히브리말로 ‘시험’이라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이다.

이 반석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고 거기서 나오는 물은 영생수를 예표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말하였다(고전 10: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시요 힘과 위로이시다.

[8-9절]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원망했던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아말렉 사람들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자손들이다(창 36:12, 16). 침략 전쟁은 악하지만, 방어 전쟁이나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전쟁은 정당성을 가진다. 아말렉은 악한 전쟁을 일으켰고 이스라엘은 방어적 전쟁을 치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실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도하겠다는 뜻이다.

[10-11절]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사람들을 모아 아말렉과 싸우려고 나갔다.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원문에 ‘손’이라는 말이 단수인 것을 보면, 모세가 양손을 든 것이 아니고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들었던 것 같다.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능력과 도우심을 간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모세의 믿음의 표시이며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며 그 승리와 실패는 단순히 칼과 창 같은 전쟁 무기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12-13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모세의 팔이 피곤하였다. ‘팔’이라는 원어는 ‘손들’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들었던 것 같고, 그는 그의 두 손이 다 피곤하였다. 그때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좌우에 서서 그의 피곤한 손들을 붙들어 주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은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으나,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계속 높이 들렸다. 주의 일에 있어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서로의 믿음과 기도를 돕는 것은 복되다. 마침내 그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쳐서 파하였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자신에게서나 모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 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계시 사건이었다. 이것은 책에 기록되어 후대에 교훈이 될 것이고, 우리는 지금 그 내용을 읽고 교훈을 받고 있다. 모세는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다. ‘여호와 닛시’라는 원어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장이셨고 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하시며 그들을 승리케 하신다.

출애굽기 1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문은 성도가 고난 중에서 사람과 다투고 사람에게 불평하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함을 교훈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맛사와 므리바에서 마실 물이 없었을 때 믿음 없이 모세와 다투며 그를 원망했으나, 모세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셔서 모세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셨다. 그것은 모든 백성이 마실 풍성한 물이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를 시험하는 죄가 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심치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도해야 한다. 혹시 생각나는 죄가 있으면,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둘째로,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군대의 힘이나 지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에 있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사무엘상 17:47,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써 싸워야 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게 하였고 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어 기도했다. 땅 위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자들이다. 우리의 원수들은 마귀와 악령들이다(엡 6:10-20). 우리는 마귀와 악령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에게 기도하면서 이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깃발이시며 친히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투에서 또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합력해야 한다.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와 그의 피곤한 손을 붙들어 주었다. 그들의 협력은 그 전쟁의 승리에 있어서 필요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뜻과 힘을 같이할 동역자들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런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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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이드로의 방문

[1-4절]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칩포라]와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5-8절]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들들과 그 아내로 더불어 광야에 들어와 모세에게 이르니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 그가 모세에게 전언하되 그대의 장인 나 이드로가 그대의 아내와 그와 함께한 그 두 아들로 더불어 그대에게 왔노라.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장인 이드로는 애굽에서의 열 가지 재앙들이나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일이나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일이나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온 일이나 아말렉 전쟁을 승리한 일 등 출애굽기 앞부분에 기록된 내용들을 소문으로 들어 대략 알고 있었던 것 같으나(1절) 이제 모세를 통하여 자세히 듣게 되었다.

[9-12절]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핫토바)[모든 좋은 것]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한 자들을 징벌하셨음을 듣고 번제물과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

[13-16절] 이튿날에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섰는지라.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가로되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 모세가 그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편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바른 재판을 위해 많이 수고함을 보았다.

[17-23절]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지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才德)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利)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이드로의 평가는 적절하였다. 재판하는 모세 자신뿐 아니라, 재판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종일 재판의 일로 피곤했고 지치고 있었다. 이드로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5심제 재판제도와 같았다. 그의 제안은 좋았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인가하시면”이라는 말을 보면, 그는 경건하였다. ‘재덕(才德)이 겸전한 자’라는 원어(안쉐 카일)는 ‘능력 있는 자’라는 말로 지혜와 덕을 겸비하여 맡겨진 일을 잘 처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돈에 깨끗한 자가 재판관의 자격이 있다는 말은 옳다.

[24-27절]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베풀고 쉬운 일은 자단(自斷)하더라. 모세가 그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니라.

천부장, 백부장 등은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왔고 쉬운 일은 스스로 판결하였다. 이런 제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유익했던 것 같다.

출애굽기 18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증거성을 믿자. 출애굽기의 내용들은 여러 나라들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드로는 그 내용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으나 모세는 그에게 직접 자세히 증거했고, 그 증거를 들은 장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에서 또 광야에서 역사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섭리자, 곧 통치자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history)는 바로 ‘그 분의 이야기’(his story)이다.

셋째로, 본문은 지도자들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 성장의 본이 된다. 첫째, 재덕이 겸전한 자이어야 한다. 그것은 지혜와 덕이 있어서 무슨 일을 맡기든지 해내는 자를 가리킨다. 둘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어야 한다. 셋째, 진실한 자이어야 한다. 넷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이어야 한다. 사람의 도덕성은 돈 거래에서 잘 나타난다. 돈 셈이 흐린 사람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