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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으로 보는 진품 신앙과 짝퉁 신앙 <11> 하나님의 진노와 금대접 재앙/공의의 하나님, 신실한 성도들 앞에서 악인 정죄

영국신사77 2020. 4. 10. 00:29

공의의 하나님, 신실한 성도들 앞에서 악인 정죄

요한계시록으로 보는 진품 신앙과 짝퉁 신앙 <11> 하나님의 진노와 금대접 재앙

입력 : 2020-03-17 00:05

독일 바이에른 주립도서관에 있는 오트하인리히 성경의 삽화. 일곱 천사들이 진노의 일곱 대접을 붓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김영복 박사 제공

요한계시록 15~16장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일곱 금 대접 재앙이 기록돼 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마지막 재앙이다.

하나님은 왜 진노하실까? 하나님의 진노는 신실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대변되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다. 불의를 무조건 품는 게 사랑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곳에 적용하면 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불의에 대해 반드시 진노하신다. 그래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5장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일곱 금 대접에 가득 담긴 채 일곱 천사에게 전달된다. 요한계시록에서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담는 상징적인 그릇이다. 그런데 그 금 대접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겼다. 하나님의 진노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고 공의로우신 응답을 의미한다.

악인에 의해 핍박당하고 찢긴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뒤 악인을 치고 의인을 구원하는 역사가 ‘하나님의 진노와 금 대접 재앙’에 담겨있다. 악인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을 숭배하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한다.(계 16:2~11)

금 대접 재앙의 목적은 악인들의 회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데 있다.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자 사람들이 불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계 16:8~9)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았을 때도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고통스러워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았다.(계 16:10~11)

이것은 진노의 정당성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만약 하나님의 재앙이 악인을 구원하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금 대접 재앙의 목적은 신실한 성도들 앞에서 악인을 정죄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려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라고 고백했던 감동적인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자 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오는 길을 만들었다. 바로 그때 사탄을 상징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더러운 세 영이 나온다.(계 16:12~13) 그들은 전쟁하기 위해 아마겟돈으로 천하의 왕을 모은다.

아마겟돈은 ‘아르’와 ‘메깃돈’의 합성어다. 아르는 산이나 성을 의미한다. 메깃돈은 ‘므깃도’에서 파생됐다. 바락과 드보라가 시스라의 철병거를 물리친 곳이 므깃도였다.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를 살해하고 혁명에 성공한 곳도 므깃도였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마겟돈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뤄지는 최후의 격전지를 상징하는 장소다.

금 대접 심판은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계시다. 그래서 첫 번째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은 악인을 향해 내려지고 다섯 번째 재앙은 짐승의 보좌를 향한다. 일곱 번째 재앙은 사탄의 권세를 나타내는 공중을 향해 쏟아진다. 그 결과 요한계시록에서 용, 두 짐승과 함께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마시고 멸망한다.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천국의 비밀: 계시록의 실상’이란 책에서 이 땅의 목자들은 하나님이 세운 적이 없다고 단정했다. 또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을 각종 이설과 인위적인 것들로 오염시켜 기형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사단의 교리로 바벨 신학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바벨 신학의 갑옷을 입은 세상의 목자들이 아마겟돈에 모여 새 실상을 증거하는 자신들을 타도하려고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목자와 신학자를 바벨 신학의 악한 세력으로 정죄한다. 이만희는 과대망상증 환자다.

요한계시록 16장의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님의 재림 때 있을 영적 전쟁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도 깨어 있는 자는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신천지 같은 거짓 선지자를 향하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그날은 기쁨의 날이 된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 16:15) 깨어 있는 자가 진품이다. 진품은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


김영복 박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7975&code=231114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