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4장에는 사탄 마귀를 상징하는 큰 용에게 권세를 물려받은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이 등장한다. 이들은 지상교회 성도를 핍박한다.
용과 첫째·둘째 짐승에 이어 사탄이 공격에 나선다. 삼위일체적 공격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는 666이 나온다. 짐승의 이름을 숫자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철자마다 음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름이든 숫자로 환원할 수 있었다. 이것을 ‘게마트리아’라고 하는데, 666은 네로 황제의 이름을 숫자로 표기한 것이다.
왜 사탄을 상징하는 짐승의 수를 네로 황제의 이름으로 환원했을까? 네로 황제가 가장 악독한 폭군으로 기독교를 박해한 상징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사탄을 상징하는 용으로부터 두 짐승은 능력과 보좌, 권세를 물려받는다는 점이다.(계 13:2)
하나는 바다에서 나왔고, 또 하나는 땅에서 나왔다. 그들은 지상교회를 공격하고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상징한다.
그들은 예수의 초림과 재림 기간 동안 지상교회 성도를 공격하고, 거짓과 신성모독을 행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자들을 비방한다.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굴복시키고 자신들을 경배하게 하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면서 혹세무민한다.
심지어 자신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죽였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표를 받게 했다.(계 13:16) 용과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이 같다.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의 입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공격하고 무너뜨린다.
하나님의 영은 정직하다. 사탄의 영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신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위에 세워졌다. 성서를 왜곡한 채 포교하며, 거짓으로 공동체를 세워나간다.
그들은 용과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을 가졌다. 짝퉁은 언제나 거짓을 말하고 진품은 진실만 말한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짐승의 공격 때문에 지상교회 성도들이 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계 13:7) 그렇지 않다. 주님의 핏값으로 산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지상교회 공동체는 이미 승리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단지 지상교회 공동체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 속에 있을 뿐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 지상교회 공동체를 상징했던 14만4000명이 요한계시록 14장에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장의 14만4000명은 용과 두 짐승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천상교회 성도를 상징한다.
그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표가 아니라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어린 양은 시온 산에서 14만4000명과 함께 있고 하늘 보좌 앞과 네 생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계 14:1~3)
신천지 이만희는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게 목사 안수받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짐승의 조직이 수여한 목사 자격증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왜곡된 해석이다.
새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교회를 상징하는 여자와 함께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순결함을 유지했던 사람들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랐던 자들이며,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은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었다.(계 14:4~5)
모략 교리를 앞세워 추수꾼들을 보내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의 삶과 가정을 무너뜨리는 신천지가 새 노래의 주인공일까? 아니다. 진품은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와 함께 끝까지 영적 순결함을 유지한다. 짝퉁은 교회를 미워하며 교회를 떠나 영적 간음을 한다.
진품은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지니고 살지만, 짝퉁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한다.
하늘로부터 등장한 세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과 지상교회 성도들의 승리를 전해준다. 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갖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선포한다.(계 14:6~7) 둘째 천사는 악을 상징하는 바빌론의 멸망을 선포한다.(계 14:8)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킨 신실한 성도들은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 8번에는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와 영생을 믿노라”라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두려움과 공포의 날이 아니다. 오직 악인에게는 그날이 죽음의 날이고 고통의 날이지만, 주님의 교회와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회복의 날이며 영광의 날이자 승리의 날이다.
김영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