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작은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빚만 잔뜩 남긴 채 서울로 도망을 가 버렸다. 장남인 아버지는 좋은 전답을 팔아 동생이 구속되지 않도록 급한 불을 꺼줬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한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느 해는 비가 안 와서 어머니가 천수답을 호미로 파 모를 심었다. 그러다 울면서 “썩을 놈의 형제간을 잘못 만나 이 고생을 한다”며 넋두리를 했다. 아버지는 기가 팍 죽어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논에다 부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순한 아버지도 어디서 공술만 드셨다 하면 괜히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이, 대산댁은 대감 딸, 정승 딸이냐.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여자 한번 나와 봐.” 아버지가 술기운에 하시는 말이니까 어머니가 빨리 피해버리거나 살살 달래면 좋은데 오히려 더 큰소리를 쳤다. “그려 나는 대감 딸, 정승 딸이여, 도도한 여자여, 어쩔 것이여!”
그러면 아버지는 차마 어머니를 때리지는 못하고 절구 대를 가지고는 장독대로 가서 “이놈의 집구석 다 부서뜨려 버린다”면서 장 단지를 깨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더 드센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된장 간장 단지까지 다 깨라.” 그러면 아버지는 더 분을 못 참고 장 단지를 깨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는 진짜 우리 집이 망하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이러시면 우리가 부모님께 뭘 배우겠어요.”
그제야 아버지는 막내 때문에 참는다며 장독 깨는 것을 멈추셨다. 그러면 나는 울면서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셔가 주무시게 했다. 아버지는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노래로 외쳐 부르다가 잠이 들곤 하셨다.
그무렵 어머니는 개나리 보따리 짐을 하나 싸놓고 마루에 앉아서 둥근 달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 “이놈의 집구석, 도대체 살 마음이 없어서 그냥 도망가 버리고 싶은데 저놈의 자식들 때문에 어쩐다냐.”
그러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런 말을 했다. “어머이, 어머이 우리가 있잖아요.… 내가 꼭 훌륭한 자식이 될 거예요. 내가 앞으로 잘 자라서 엄마한테 효도하면 될 것 아니요. 그러니까 어머이가 나를 봐서라도 참으세요. 어머이가 집을 나가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요.”
사실 어머니가 자식을 두고 어디를 가겠는가. 어쨌거나 어머니 손을 잡고 막았다. 그러면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이고, 이놈의 자식은 누구를 닮아 이렇게 언사가 좋은고….”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어머니가 잠이 오시겠는가. 나는 행여나 또 두 분이 싸우실까 봐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에 가서 아버지를 지켰다. 그런데 새벽이 되면 아버지가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때 안 따라가야 하는데 졸졸 따라갔다.
가서 보면 아버지가 물고 가신 담배를 한 모금 하라고 어머니에게 내미셨다. “어이 임자, 담배 한 번 빨아보고 마음 풀어. 내가 술만 먹으면 이런다고….” 그러면 어머니가 손으로 담배를 탁 쳐 버렸다. “그 염병할 놈의 원수 같은 술을 왜 쳐 마셔?”
아버지가 얼마나 무안하시겠는가. 담배가 이불로 떨어져서 구멍이 나 버린다. 그러면 내가 그 담배를 들어서 호소했다. “어머니, 한 번만 빨아 보씨요. 아버지가 이렇게 주시면 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한 번이라도 빨아야 할 것이 아니요.”
그러면 어머니가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에미, 애비가 싸우는 데 참견을 하느냐”고 하시면서 또 담배를 쳐 버렸다. 그러면 또 담배가 이불 위로 떨어져 구멍이 나 버렸다. 우리 집 이불은 구멍이 안 난 게 없었다.
그때 내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술을 드시고 다니세요. 앞으로 술 마시지 마세요.” 아버지에게 정략적으로 야단 아닌 야단을 친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화해를 시킨 것이다. 그때 어머니, 아버지의 싸움을 말리고 화해시키는 일들을 통해 지금도 언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중재한다.
다윗이 어린 시절 조그마한 목장을 관리하면서 쌓았던 경험은 훗날 한 국가를 통치하는 데 쓰임받는다. 나는 부모님의 다툼을 중재하며 화해의 성품 훈련, 사역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자식이면서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화해의 중재자가 된 것이다. 그랬던 내가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소명까지 받았다. 이 일로 우리 집에는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