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때는 마음에 상처와 한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이들은 교회에 와서 그 한을 풀려고 하거나 더 많은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담임목사를 독점하려 하거나 주목을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작은 개척교회에도 내부 파워게임이 있다. 그러다 결국 모든 화살이 담임목사에게 오곤 한다. 담임목사와 있지도 않은 관계를 과장되게 말하거나 담임목사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다. 성도 수 50명을 턱걸이하다 분란으로 성도들이 흩어져버리거나 100명에서 다시 내려가 버리고 만다.
처음엔 문제가 생기면 성도들을 당장 불러 대질 신문을 했다. 그러다 교인을 잃은 적도 있다. 교인 중에는 경계성 성격을 소유한 사람도 있다. 한때는 담임목사를 너무 좋아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갖고 담임목사를 실컷 욕하며 나가 버린다. 이런 사람은 혼자 조용히 나가지 않고 온 교회를 휘젓고 나가 버린다. 나간 후에도 교인들에게 전화해 나오라고 한다.
그때부터 목사가 먼저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인화 목회, 화목 목회를 추구했다. 교회에서 싸우고 다툰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그러니 서로 마음을 풀고 용서하고 화해하세요.” 그래도 마음을 잘 풀지 않으면 두 사람을 불러서 성경에 손을 얹게 하고 나도 그 위에 손을 얹고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다 제 탓입니다. 저의 죗값으로 사랑하는 성도가 다투고 싸웠습니다. 제가 기도가 부족하고 성도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제 부족함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위로해 주세요. 우리는 저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그 보혈의 강물을 먹고 마심으로 한 피 받아 한 몸 된 형제자매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사랑으로 모든 상처와 오해를 다 풀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내가 성경에 손을 얹고 울면서 기도하면 성도들도 어김없이 같이 울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상처가 치유됐다. 그런데 치유가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부부였는데 교회를 나간다고 선언을 했다. 나가려면 조용히 나갈 일이지 온 교인들에게 전화를 다 돌리며 소란을 일으켰다. 그때 집사람과 함께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이대로 영원토록 한 백 년 살고파요.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부부가 이 노래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면의 상처를 고백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상처받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에 쓴 뿌리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간에도 늘 싸웁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님의 사랑과 열정 앞에 백기를 듭니다. 안 나가겠습니다. 진짜 교회에서 소란 피우지 않고 브리스길라 아굴라 같은 부부가 되겠습니다.”
사실 그들은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건 후에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 목회자가 너무 결백해도 안 되겠구나. 때로는 모든 억울함을 뒤집어쓰고 그 아픈 마음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하겠구나. 그래, 눈물은 다른 것으로 닦을 수 없지. 눈물은 눈물로만 닦는 거야.”
그래서 성도의 아픔이 치유 받고 그 영혼이 산다고 하면 맷집이 좋은 목사가 되고 쓰레기통 같은 목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때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도 참고 인내하며 인화 목회, 화목 목회를 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 교회의 영원한 표어를 ‘사랑하며 섬기는 교회’로 정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도 누구 들으라고 작심하는 설교를 하거나 상처를 주는 ‘사나운’ 설교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와 우리를 향한 아픈 마음을 전달하는 광대가 됐다. 강단을 개그콘서트 같은 경박한 분위기로 만든 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나 자신을 비하하고 낮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픈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명력이 설교를 통해 성도들의 가슴을 압도하고 덮어버리도록 했다. 그때 그 사람의 모습을 보지 않고 20~30년 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꿈과 비전을 심어줬다.
“우리 교회는 20~30년 후가 되면 5만명, 10만명이 모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교회의 중직자가 돼 있을 것이고 사역 현장의 핵심 멤버가 돼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