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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7> -<10> / “남편 돕는 사모 되려면 나도 똑같이 해보자”… 40일 금식 결행

영국신사77 2020. 1. 5. 23:24

“제 아내 치료해 주세요”… 남편 통해 하나님의 치유 역사 나타나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7>

입력 : 2019-12-11 00:03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지난 6월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개최된 제24회 전국초교파권사금식기도대성회에서 기도를 인도하고 있다.

열정과 사랑이 배여 있던 첫 사역지 경남 사천 두량삼오교회를 떠났다. 광야에 선 우리 부부는 다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1991년 10월 13일 진주에 있는 한 기도원에서 일단 발족식을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기도와 말씀 보는 일에만 전념하던 남편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사람들이 기도원으로 찾아왔다. 중년의 남성이었다. “제발 제 아내를 치료해 주십시오. 부적을 10개 넘게 가진 불교 신자인데, 신경쇠약으로 죽기 일보 직전입니다.” “일단 이곳으로 모시고 오세요.”

부인을 데려왔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어휴, 말도 마세요. 부적이 있는 곳에서 제 머리를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요.” 남편 전태식 목사는 그 부인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선포했다. 짧은 말씀을 선포했을 뿐인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나,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어둠이 물러갔어요. 마음이 평안해요.”

예수님을 영접한 그녀는 흑암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며 치유함을 받았다. “아내를 어둠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교회를 개척해야 하실 것 같은데, 감사의 뜻으로 예배 공간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교회로 쓰라며 경남 진주의 상가 2층을 임차해줬다.

갑작스레 우리는 그곳에서 교회 문을 열었다. 어떤 계획도 없었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남편과 나, 세 아이 외에는 성도가 한 명도 없었다. 당장 어떤 후원이나 보조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막막함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인도해가셨다.

일단 교회 이름부터 지었다. 기도 중 남편은 사도행전 2장의 마가 다락방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성령을 받고 변화된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됐다.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를 땅끝까지 전하는 교회, 우리는 그런 교회를 소망했다.

“여보, 마가 다락방에서 일어난 거대한 성령의 불길을 대한민국에 일으키자. 진주 같은 신앙으로 초대교회를 꿈꾸며 순복음진주초대교회로 하자.” “너무 좋아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도 12개의 문이 진주로 돼 있잖아요.” 92년 3월, 진주 신안동 작은 건물 2층에서 이렇게 교회가 설립됐다.

1995년 2월 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의 순복음영산신학원 졸업식에 함께한 이경은 목사.

초대교회 개척 멤버는 중학교 3학년 학생 2명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들을 어린 학생이 아니라 성도로 받들며 열심히 섬겼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한 명, 두 명 친구들을 전도해 오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면 교회에 와서 밥을 먹고, 저녁 기도회를 열었다. 데려온 친구들에게 성령세례를 받게 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할 상황이 됐다. 학생들이 언제든지 교회에 와서 밥도 먹고 기도회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해 5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로 예배당을 이전했다. 이전한 곳에서 본격적으로 전도를 시작하자 어린 학생들이 노숙자를 교회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개척 때부터 순복음진주초대교회는 새벽기도 대신 365일 저녁기도회를 하고 있다.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교회를 찾을 수 있도록 교회 문도 24시간 개방해 놓았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던 거리 노숙자들에게 우리 교회는 최적의 장소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람이 몇 있다. 한 사람은, 도대체 언제부터 깎지 않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손톱이 꼬불꼬불 기다랗게 자라나 말려있었는데, 대충 재어보니 15㎝가 넘었다. 옷도 사계절 단벌이었는데, 언제부터 입은 것인지 켜켜이 쌓인 때로 빳빳하게 굳어버린 상태였다. 저만치 있어도 악취가 심했다. 한 여성은 정신질환이 있어 떠도는 노숙자였다. 자기 말로는 영어 선생이었고 대학 시절 메이퀸까지 했다고 했다.

그 외에도 많은 노숙자가 교회를 찾았고 기꺼이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를 향해 더럽다며 싸우곤 했다. 더럽고 냄새가 나서 같이 잘 수 없다고 삿대질을 하며 싸웠다. 같은 죄인이면서 서로 죄가 무겁다며 삿대질하는 인간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말 없이 그들 사이에 들어가 누워 잠을 청했다. 한창 싸우다가도 내가 중간에 들어가 잠을 자면 싸움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그런 날이 수없이 반복됐다.

당시 나는 무슨 일이든 순교한다는 각오로 사역에 임했다. ‘오늘 이 일도 감당 못 하면서 내일 순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일본 부흥 집회 중 야쿠자를 만난 적이 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였다.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보스가 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목을 내놓으면 됩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랬다. 나 역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 교회를 위해서라면, 주의 일을 위해서라면 죽을 각오로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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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순종하려면 자기 생각·경험 버려야


신앙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싸움에서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복 받을 뿐 아니라, 저 맹세한 땅에 들어가 영생의 복을 얻는 것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는 앞서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순종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자존심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은 큰 용사였으나 병이 있었다. 아람 왕은 나아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 왕에게 전갈을 보낸다. 그리고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엘리사는 어떻게 했는가.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왕하 5:10) 직접 나와 나아만 장군을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사자(使者)를 보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전한다. 당시 아람은 강대국이었고 나아만은 그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람 왕에게도 존귀한 자로 여김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름 없는 예언자가 홀대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나아만은 엘리사의 행동에 분하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려 한다.(왕하 5:11~12) 그러자 그 종들은 나아만에게 나아와 엘리사의 말대로 할 것을 간곡히 권한다. 이때 나아만 장군은 자존심을 버리고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근다. 그러자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됐다.(왕하 5:13~14) 나아만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함으로 병을 치료받는 복을 받은 것이다.

순종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생각과 경험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과 뜻을 내세워 힘든 세월을 산 인물이 바로 야곱이다. 하나님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큰 자’ 즉 에서가 ‘어린 자’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하셨다.(창 25:23) 그럼에도 야곱은 어떻게 했는가. 사냥에서 돌아와 심히 곤비한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산다.(창 25:29~34)

그뿐만이 아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듣고, 죽기 전 장자 에서를 축복하려는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의 축복까지 빼앗는다.(창 27장) 야곱은 자기 생각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순종하며 기다리지 않았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사랑하는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형과는 원수가 돼 그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해야 했고 그곳에서 양을 치며 20년 동안을 섬겨야 했다.

그의 나이 130세에 이방 나라 왕 바로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손을 어긋나게 얹는다. 이에 장자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으라는 요셉에게 야곱은 말한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 48:19)

그의 고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기다렸다면 그 역시 하나님께서 손을 어긋나게 얹게 하심으로 축복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 앞서 행했다가 기나긴 세월을 험악하게 보냈다는 깊은 회한과 깨달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순종함으로 기적을 본 사람이 있다. 바로 베드로이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말씀을 가르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명하신다. 베드로는 어부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밤이 맞도록 수고했어도 얻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같은 말씀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며 순종한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고 두 배에 채우매 배가 잠기기까지 했다. 만약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웠다면 이런 역사를 볼 수 있었을까.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경험을 버릴 때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 경험 생각을 내세우면 말씀에 순종하기 어렵다. 우리는 혹여 내 생각과 경험에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순종함으로 그 열매를 거둬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2005&code=23111211&cp=nv



“남편 돕는 사모 되려면 나도 똑같이 해보자”… 40일 금식 결행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8>

입력 : 2019-12-18 00:03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가 2010년 8월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성령치유 부산대성회’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1992년 3월 순복음진주초대교회를 개척했지만, 성도도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내 몫을 감당해보려 부단히 애를 썼다. 남편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 이 길에 발을 디뎠지만, 목회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남편이 아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결단했다.

1993년 2월에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장기 금식에 들어가는 이들의 이유는 모두 다를 것이다. 죄를 씻기 위해, 문제 해결을 위해 금식하는 이도 있고 능력 받기 위해 금식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금식에 들어갔다.

세상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때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드려야 할 때가 왔음을 말이다. 당시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러면 이제 영적인 복 받으소”라는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명의 길에 발을 내디뎠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지내며 그저 평온하게 신앙생활을 해왔던 내가 과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길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을까, 남편의 목회에 걸림돌이 되는 사모가 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결단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영광 가릴 것 같으면 왜 목회 길을 가겠습니까. 남편의 목회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저를 살리시고, 도움은커녕 영광을 가릴 것 같으면 금식 중에 그냥 저를 데려가세요.’

금식하다 죽으면 지옥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저 죽을 각오로 40일 금식에 들어섰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이런 마음도 들었다. ‘남편이 했던 40일 금식기도, 나도 꼭 해보리라.’

나는 사모로서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려면 한 걸음이라도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남편의 가는 길 앞에 놓인 돌부리도 치우고 장애물도 치워가며 조심해서 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편을 의존하고 뒤따라가며 목회를 힘들게 하는 사모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처지를 이해하려면 남편이 하는 것은 무조건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남편이 산(山)기도를 하면 나도 산기도를 했고 사명을 감당하려고 신학교에 가니 나도 신학을 했다. 남편이 40일 금식을 했으니 이것도 따라 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1993년 2월 40일 금식기도 마지막 날 감사의 고백을 하는 이경은 목사.

남편은 평신도 시절인 1989년 40일 금식을 마쳤다. 금식 이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남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남편이 만난 하나님을 나도 만나고 싶었다. 그런 각오를 기뻐 받으셨는지, 하나님께서는 금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순두부 하나 살 수 없어 된장만 넣어 끓인 된장국으로 보호식을 했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사모로서 기도의 불씨를 지키는 역할을 내게 맡기셨다. 개척 당시, 남편은 아직 신학교에 다니던 전도사였다. 주일예배를 모두 마치면 저녁 늦게 서울에 올라가고 금요일에 수업을 마치면 곧장 진주로 내려와 저녁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어있는 남편의 자리를 사모인 내가 채워야 했다. 주말 목회는 남편이, 주중 목회는 사모인 내가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남편을 대신해 저녁기도회를 인도했다. 적은 숫자이지만 성도들과 둥그렇게 마주 보고 앉아 손뼉 치며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강대상 삼아 펴놓은 낮은 책상을 두드리며 찬양 인도를 했다. 물 한 사발 떠놓고 목을 축여가며, 책상을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손바닥이 갈라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저녁부터 시작된 기도회는 새벽녘이 되도록 계속됐다.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하나님께 매달렸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로 기도 자리에는 늘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었다. “1년을 울어보자. 2년을 울어보자. 10년을 울어보자. 그렇게 울다 보면 날이 새겠지. 울다 보면 꽃이 피겠지.…” 그런 마음으로 울고 또 울었다. 하룻밤을 꼬박 눈물로 기도하며 지새웠던 적도 있었다.

남편이 서울에 간 일주일 동안, 기도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은 사모인 내 몫이었다. ‘하나님, 제가 한 알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제가 성전의 파수꾼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매일 나의 기도였다. 그렇게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새댁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그런 마음을 기뻐하신 것일까. 하나님은 교회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저녁 기도회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인도해주셨다. 그리고 그 불길은 활활 타 올라 성도들의 심령에 불을 일으켰고 목회 현장에도 성령의 불이 타오르게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불길은 진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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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순종에 두려움·자존심 앞세우면 안돼


신앙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순종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며, 자존심과 자기 생각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우리가 순종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을 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때에 이미 약속된 것이다.(창 15:13~21) 하나님은 애굽의 압제 아래 있던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셨고(출 6:2~5)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출 6:6~8)

400년을 이방 나라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통받던 그들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인가.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으로 인해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다.(출 6:9) 이처럼 축복을 받기 전에는 꼭 마음을 상할 일이 있다.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후,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얻은 생명보다 귀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을 하나님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창 22:2)

그때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하나님, 주실 때는 언제고….’ 아들을 제물로 내어놓아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떠난다. 그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이삭을 결박해 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잡고 그를 잡으려 한다.(창 22:9~10)

바로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2) 하나님은 독자도 아끼지 않은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약속하신다.(창 22:16~18) 그렇다. 복을 받기 전에는 분명 마음 상할 일이 있다.

은혜를 받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 그의 평생소원이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눈을 뜨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는다.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소리를 질렀다.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막 10:47~48)

앞을 보지 못하는 그는 예수님께로 갈 수도 없었다. 아무도 그를 예수님께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저 꾸짖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바디매오는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했는가.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고 예수님은 이런 그를 부르신다. “내가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52)

마음을 상하지 않고 은혜의 자리에 더 가까이 나아옴으로 바디매오는 소원대로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복을 받으려 할 때,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려 할 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축복과 기적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순간적으로 상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은혜의 자리를 놓치지는 않았는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순종하자.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 은혜의 기회를 확실히 붙잡는 축복자가 돼보자.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경찰에 신고할 거야” 민원 … 상가·기도원 전전하다 공동묘지서 기도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9>

입력 : 2019-12-25 00:06
순복음진주초대교회는 1999년 예배당을 경남 진주 상대동 공단지역으로 옮기고 부흥의 기초를 다졌다. 사진은 이전한 예배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뒤 교회 앞마당에 모인 성도들.

1992년 3월 경남 진주 신안동 작은 상가 2층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성도는 우리 가족과 중학교 3학년 학생 두 명이었다. 점차 성도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로 교회를 옮겼다. 도로변 건물 지하였다. 비만 오면 천정에서 빗물이 샜고 곰팡이도 문제였다. 6개월 만에 같은 건물 4층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마다 찬양과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갔다. 교회는 94년 시장통의 상가 건물 2층으로 다시 이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도 숫자가 늘어나 더 넓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95년 10월, 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으로 이전했다. 역시나 기도 소리에 민원이 들어왔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이야. 제발 조용히 좀 합시다.” 큰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해도 방해받지 않을 예배당이 필요했다. 드디어 그런 조건에 딱 맞는 곳을 찾았다. 야산 아래 위치한 기도원이었다. 96년 6월 기도원 자리로 예배당을 옮겼다.

기도원 자리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성도들은 장소를 옮기며 밤마다 부르짖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특별한 찬양 은사를 허락하셨다. 남편의 인도로 찬양을 하다 보면 모두가 일어나 뛰며 기쁨으로 찬양을 했다. 그렇게 방언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성령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강하게 나타났다.

“여보시오, 잠 좀 잡시다.” “당신들,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교회의 큰소리에 주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공원 누각을 찾았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늦은 밤, 성도들과 함께 누각 아래에 자리를 잡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한동안 그렇게 기도했더니 경찰이 찾아왔다. “수고하십니다. 뭐 하시는 분들입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십시오.” 누군가 또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근 비봉산에 올라 기도했다. 또다시 경찰이 찾아왔다. “아, 저번에 누각에 계시던 분들이군요.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기도는 꼭 해야겠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했다. 그때 누가 말했다. “전도사님, 걱정 마이소. 경찰도 못 잡으러 오는 데가 있습니더.” “거기가 어딥니까?” “공동묘지 아입니꺼. 아무리 경찰이라도 거기까지는 절대 못 옵니더.”

정말 공동묘지까지는 경찰이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성도들을 이끌고 인근 산에 있는 공동묘지에 올라가 밤마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 때면 으스스한 기운을 떨쳐내려 크게 찬양했다. 그렇게 한 사람씩 공동묘지에 자리를 잡고 무릎 꿇고 크게 부르짖었다.

호기롭게 공동묘지를 찾았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그러기에 더욱 크게 부르짖었다. 기도하다 보면 두려운 마음은 간데없고 기쁨이 충만했다. 성도들은 공동묘지 기도회 후 무용담을 나눴다.

“아이고, 아까는 진짜 무섭더라. 기도하는데 허연 것이 지나가대. 귀신 나타난 줄 알고 얼마나 크게 기도했는지 모른다. 나중에 보니까 내 앞사람이 입은 옷이 흰색이더라.” “내도 그랬다. 한참 기도하는데, 귀에 부스럭 소리가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옆 사람 일어나는 소린데 그게 그리 크게 들리더라고.”

주택가와 한참 떨어진 기도원 자리로 교회를 이전한 다음부턴 기도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97년 5월, 남편은 드디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같은 해 나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편은 매일 밤 말씀을 선포하며 기도회를 인도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특별히 홍보하지 않아도 기도하러 왔다가 은혜받고, 성령 체험을 한 사람이 교회에 대한 입소문을 냈다.

성도들의 숫자는 계속 늘었다. 또다시 성전 이전을 고민해야 했다.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겨우 안착했는데, 이 많은 성도를 데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막막했다.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상대동 공단지역에 있는 한 건물을 발견했다. IMF 구제금융 사건의 여파로 공단지역에 폐업하는 공장이 속출하면서 경매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중 한 공장을 6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공단이었지만 지역이 거의 폐허가 될 지경이라 교회 사용 허가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어서 공장 내부의 기계와 고철을 매각했더니 적잖은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에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내부 수리와 이전까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전세를 전전하다 처음 마련한 성전이다 보니 온 성도가 2809㎡(850평) 성전 안팎을 쓸고 닦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외관으로는 그 지역 다른 공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높이 세운 십자가는 이곳이 교회임을 알려줬다.

교회 개척 때부터 줄곧 우리 부부는 예배당에 장의자를 들이지 않았다. 방석 위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넓은 예배당 바닥에 고무 매트를 깔았다. 강대상과 십자가가 없었다면 체육관과 다를 바 없었다.

99년 1월 24일, 여섯 번째로 옮겨간 그곳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아무리 늦은 시간 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도, 아무리 큰 소리로 찬양하고 부르짖어도 걱정 없는 곳이었다.

아바드리더 시스템이란
순종과 불순종의 싸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을 극복하고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성경말씀처럼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지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 8:11)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이 뿌려지는 ‘하나님의 밭’이다.(고전 3:9)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신다. 마귀는 3번이나 예수님을 시험한다. 그때 예수님은 마귀를 어떻게 대적했는가.

“기록되었으되…” “또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모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마 4:4,7,10) 다윗을 보자. 그는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그런 다윗에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다.(삼상 24,26) 자기 사람들의 말대로 사울을 죽이면 그는 더 이상 그 오래고 힘든 도망자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 다윗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부하들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데…’ 하는 생각에 얼마나 번민했을까.

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삼상 24:6~7)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시 105:15)는 이 말씀대로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일 3:9)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있으면 어떤 마귀의 미혹도 물리치고 순종하며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기도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지고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지만 그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크셨던지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하시며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처럼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말씀한다.(눅 22:44)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으면 흘러내리는 땀이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졌으랴. 이처럼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예수님은 두려웠던 그 마음을, 심히 고민해 죽게 됐다고 고백하셨던 그 마음을 지키시고 십자가 고난의 잔을 받으실 수 있었다.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우리 주님께서도 마음을 지켜달라고 이처럼 기도하셨다면, 하물며 육신을 가진 우리는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 않으랴.

셋째,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 13:22) 인정받은 인물이다. 이런 그가 어느 저녁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여인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고도 그를 범했고 결국 신하 우리아를 죽이는 큰 죄까지 범하게 된다.(삼하 11) 하나님의 말씀에 지극히 순종하던 다윗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봄으로 말씀에 순종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의인 롯은 어떠한가. 음란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살면서 날마다 저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고 말씀한다.(벧후 2:7~8)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 2:15~16)

그렇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 마음이 빼앗겨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결국 범죄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또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한다.(행 2:46) 예수님은 성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이라고 말씀한다.(마 16:18) 성전에 모이면 세상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4664&code=23111211&cp=nv



충북 청원에 제 2성전… 진주 성도들 “배신하고 떠납니까?”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0>

입력 : 2020-01-01 00:07
충북 청주 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 2008년 6월 열린 ‘아바드 리더 콘퍼런스 2차 세미나’ 참석자들이 교회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교회의 대지면적은 2만4462㎡(7400평), 연건평은 8585㎡(2600평)이다.

남편 전태식 목사는 전도사 시절부터 자주 부흥집회 강사로 초청받았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의 은사를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턴 더욱 자주 집회를 다녔다.

점점 소문이 나서 남편의 설교를 듣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1999년 6월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불어나자 2001년 7월 ‘국제오순절 목회자 성경연구원’을 설립하고 1기생을 모집했다.

말씀을 듣고자 전국 각지의 목회자들이 매월 성전이 있던 경남 진주 공단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 갔다. 매달 1회 모이는 참석자 수가 많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화장실이 부족해 참석자들을 인근 시청 화장실까지 버스로 수송했다. 물 부족으로 소방서에 요청했더니 소방차가 달려와 물을 공급해 줬던 적도 있다. 숙소를 해결할 수 없어 진주 시내 찜질방 3곳을 통째로 빌린 일도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세미나 장소를 빌렸다. 참석하시는 분들도 그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건물을 두고 기도에 집중했다. 어느 날이었다. “목사님, 충북 청원에 새천년민주당 연수원 건물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단숨에 달려갔다. 마치 우리를 위해 지은 듯한 최적의 장소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국회의원 연수원이었기에 숟가락부터 침구까지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지금껏 겪은 물 부족, 화장실 부족, 숙소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다. 청소만 하고 들어가면 당장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대형 건물을 매입할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희는 계약금도 없고 이자밖에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필요한 건물입니다. 청소만 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그대로 응답해주셨다. 48억원에 달하는 건물이었지만 이자만 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주신 것이다.

2004년 9월, 그렇게 제2성전인 청원진주초대교회가 설립됐다. 놀라운 사실은 건물을 매입한 그다음이었다. “목사님, 놀라지 마십시오. 연수원 앞으로 청주와 상주를 잇는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뚫린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연수원 부지가 도로에 편입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적잖은 보상금으로 보수와 이전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여건상 제1성전인 진주초대교회는 부목사에게 맡기고, 남편과 나는 제2성전인 청원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성도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목사님, 어떻게 저희를 두고 가실 수 있습니꺼. 제발 가지 마이소.” “목사님, 마 우리를 배신하고 가시겠다는 겁니꺼.”

성도들은 울먹이는 소리로 우리를 막았다. ‘배신’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엄마에게 막무가내 떼쓰는 아이처럼 우릴 붙들고 싶은 성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나님,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할 주의 종이 배신자 소리를 듣고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남편이 떠난 자리를 내가 메우기로 했다. 하소연했던 성도들의 손을 다시 잡았다. “닭 대신 병아리라고… 저라도 남으면 되겠습니까.” “거참, 하는 수 없지예.”

성도들은 마지못해 허락을 해줬다. 개척 때부터 신학 공부로, 외부집회로 바빴던 남편 때문에 사실 주일 강단을 제외한 교회 행정, 상담, 심방은 모두 내 몫이었다. 주위에서는 종종 이런 우스개를 했다.

“사모님, 사모님은 4박 5일 목회를 하고, 전도사님은 2박 3일 목회를 하시네요.” 그처럼 훈련을 받았지만,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군다나 나는 여성 목회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진주가 어떤 곳인가. 불교와 유교 색채가 가득한 곳, 기독교 인구가 3%도 채 되지 않는 곳, 남존여비 관습이 강한 곳이었다. 그런 지역에서 여성 목회자란 어떤 존재이겠는가.

막막한 마음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선 여호수아 1장 5~9절 말씀을 주셨다. 모세의 수종을 들던 몸종 여호수아. 그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남편 목사님의 몸종 같은 존재였던 나였다. 영적 지도자의 뒤를 잇게 이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같은 말씀을 주셨다. 이에 힘입어, 취임식 때 여호수아 1장 16~18절 말씀을 두고 성도들과 서로 선서를 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남편 목사님과 함께하심을 보이신 것처럼, 나와도 함께하심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나도 그날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남편 목사님과 함께하셨던 것과 같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분명히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반드시 제 말에 순종해 주십시오.” 2004년 10월 8일, 남편의 뒤를 이어 순복음진주초대교회 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주님께서 보내 주신다는 보혜사는 바로 ‘성령’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을 듣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3년이라는 세월을 주님과 함께하며 그가 행하시는 수많은 이적을 보았다. 이를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고 이를 증거하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한다. ‘주님이 떠나가시는 게 무슨 유익이라는 말인가.’

그 뜻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깨달음을 주신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하나님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율법을 반포하신다.(출 19) 우뢰와 번개와 큰 나팔 소리와 산에 연기가 자욱할 때, 그들은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두려워 떨며 모세에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죽을 것 같으니 모세가 듣고 대신 전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다 듣고 행하겠다고 말한다.(신 5:27)

백성들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그 말이 옳다 하시고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다. ‘모세가 전하여도 하나님이 전하시는 것처럼 항상 떨며 두려움으로 말씀을 받고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신 5:28~29) 그 후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그뿐만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인도해 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됐는가. 20세 미만 외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뿐이었다.

주님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라는 시간을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보았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도 받았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돌아섰다.

예수님은 잡히기 전,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다.(요 14:16)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다. 이는 변호인, 증인, 곁에 서서 격려하고 돕는 자를 뜻한다. 주님께서 가시면 이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보내주신다는 ‘또 다른 보혜사’는 누구인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주님께서 보내주신다는 보혜사는 바로 ‘성령’을 말한다. 베드로를 보자. 죽을지언정 자신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다. 그럼에도 한낱 대제사장의 여종 앞에서 두려움에 예수님을 부인했다.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는 어떻게 변화됐는가. 부인하기는커녕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행 4:19~20) 그 외 많은 제자가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행 12:2)

예수님과 같이 있어도, 직접 가르침을 받아도 부인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고 그들에게 보혜사 곧 성령을 보내주시는 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성령을 마태복음 7장 7~11절에서는 ‘좋은 것’이라 말씀한다. 이 ‘좋은 것’을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는 ‘성령’이라 말한다.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령을 가리켜 좋은 것이라 말씀하셨을까.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5755&code=231112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