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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허락하신 것을 이루기까지-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김성일 장로

영국신사77 2020. 1. 3. 22:23

16.허락하신 것을 이루기까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다고 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같다. 야곱과 같은 사람은 그 형인 에서를 제치고 장자권을 획득하였으나 그의 인생은 따지고 보면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는 형 에서를 피하기 위하여 살던 곳을 떠나 밧단 아람으로 도망쳐야 했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이나 종살이를 해야 했다. 결국 그는 교묘한 계략을 써서 상당한 재산을 거머쥔 다음 가족들을 이끌고 외삼촌의 집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늘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고 세겜에서는 딸 디나가 욕을 당하는가하면 아들들의 난동 때문에 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는 또 에브랏으로 옮겨가던 도중에 사랑하던 아내 라헬을 잃었고 그녀가 낳은 아들 요셉을 편애하다가 그 요셉마저 실종되어 다시 슬픔 속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또 말년에는 기근 때문에 노구를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이 너무나 험난했기 때문에 애굽의 바로가 그의 나이를 묻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 참으로 하나님은 야곱을 참혹하게 누르고 밟으시었다.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마구 후려치고 두들겨 패고 거꾸러뜨리신 것이다. 이쯤되면 과연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다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야곱의 수난은 그를 '택함 받은 백성'의 위대한 조상으로 길러내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하여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는 것을 분명히 하셨으며 야곱을 으뜸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토록 혹독한 고생을 시키셨던 것이다. 결국 야곱은 그가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라헬에 대한 자기의 집념을 꺾고 자기가 죽으면 라헬의 무덤이 아닌 그의 열조(列組)와 레아가 잠들어 있는 막벨라 굴에 자신의 시신을 장사하라고 명한다 (창 49:29). 그는 끝없는 고난 속에서 낮아지고 또 낮아져서 마침내 죽음직전에 이르러서야 인간적 사랑의 포로가 되었던 고집스러운 개인을 버리고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공인(公人)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 자매를 아내로 두었고 그녀들의 여종 실바와 빌하에게서도 아들을 낳아 네명의 아내와 열 두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가 애굽에 이주할 때에는 그일족이 70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의 재산도 엄청난 것이어서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심히 많았으며 (창 30:43) 그 재산이 너무나 많은 것에 팔려서 세겜성의 족장과 백성들이 야곱의 집안과 교류하기 위해 모두 할례를 받았을 정도였다(창 34:23).
그러나 그토록 큰 재산을 모으기가 결코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치 않았을 라반은 저절로 굴러들어온 야곱에게 대뜸 자기 집에서 일할 것을 제의하며 얼마의 보수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라반이 가지고 있던 북안은 아주 인색한 보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요구는 엉뚱하게도 그의 작은 딸 라헬이었다. 당시의 딸은 재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야곱은 그 대가로 7년 봉사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라반의 계산은 빠르게 돌아갔다. 용모와 지능이 아우보다 약간 미흡하여 제값 받기가 어려운 큰 딸 레아를 얹어서 7년을 14년으로 늘려잡은 것이다. 엄청난 장사속이고 '불공정거래'였다.
그러나 14년의 고생속에서 단련된 야곱도 이제는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야곱이 반격할 차례였던 것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功力)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 30:30).
여기에 바로 야곱의 믿음이 나타난다. 자신이 비록 열심히 일했어도 잘 되게 하신 분은 여호와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 형 에서를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 광야에서 노숙할 때 만났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흔히 어떤 사람은 성공이 자기의 노력탓인 줄로만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는 도무지 애쓰지 않고 하나님께만 의뢰하기만 한다. 그러나 야곱은 '나의 공력'과 '여호와의 주심'을 동시에 말했다.
야곱은 라반에게 기이한 제안을 내놓는다.
그는 양떼 중에서 검은 것, 얼룩무늬인 것, 점있는 것을 다 가려내어 외삼촌 라반이 가져가고 자기에게는 흰 양들만 맞겨달라고 말했다. 그런 후에 그의 양떼들 가운데서 혹시 검은 것이나 얼룩 무늬의 것이나 점 있는 것이 생기면 그것들을 자기의 몫으로 달라고 야곱은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이상한 짓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잘라 그 껍질을 벗겨서 얼룩무늬를 만들고, 그것을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서 양떼가 그 앞에서 물을 먹게 하였다. 그결과 흰 양들은 많은 수의 검고 점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새끼들을 낳게 되었다. 야곱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하여 그가 6년을 더 일했을 때에는 마침내 거부가 되어 있었다.(창 31:1)
도대체 이게 무슨 요술 같은 이야기인가? 물 속에 얼룩무늬의 막대기를 꽂아 놓는다고해서 흰 양들이 얼룩무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것일까? 
멘델이 완두콩에서 선택한 대립형질중의 하나는 씨의 모양이 둥근것과 주름진 것이었다. 이 두 가지의 씨를 교배시킨 결과 제1세대에서는 둥근 것만 나타났다. 완두콩에서는 둥근 것이 우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제1세대끼리 교배를 시키자 둥근 것 3개, 주름진 것 1개가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2가지의 대립형질로 유전 실험을 했을 때에는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즉 그는 둥글고 노란 씨와 주름지고 초록색인 씨를 교배시켜 보았는데 1세대에는 둥글고 노란씨가 나타났다. 둥글고 노란 것이 우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세대에서 나타난 것은 16개 중에 둥글고 노란 것이 9개, 둥글고 초록색인 것이 3개, 주름지고 노란 것이 3개, 주름지고 초록색인 것이 1개로 나타났다. 즉 16개중 7개의 잡종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이 잡종의 비율은 다음 세대로 갈수록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양의 경우에는 대체로 흰 털이 우성이다. 그러므로 라반이 검은 것, 얼룩진 것, 점 있는 것을 가려내어 다 가져갔을 때 야곱에게는 흰 양만 남았으나 그들 중의 대부분은 털이 희더라도 검은털의 열성인자를 지닌 제1세대들이었고 그들에게서 다시 검은 것, 얼룩진 것, 점있는 것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야곱은 어떻게 하여 1865년에 발표된 멘델의 유전 법칙을 그보다 거의 4천년 전에 알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야곱의 경험에서 얻어진 계산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목하셨던 야곱의 기질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야곱은 나무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물구유에 꽂아 놓는 것 같은 짓을 했던 것일까?
그러나 아직도 야곱에게는 한가지 켕기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레아와 라헬의 수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한에 대한 외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좀더 레아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야곱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못하셨다. 오직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권한에 속해 있는 수태의 복이었다. 그래서 레아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는 동안 라헬의 태는 열어 주시지를 않은 것이었다.
이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야곱은 나중에 레아와 라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창 31:9).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일을 분명히 알았던 야곱, 자신의 노력과 끈질긴 기도를 잊지 않았던 야곱은 마침내 자신의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이제 오랜 모멸 속에서 몸을 일으켜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한국도 야곱의 열심과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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