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네가 훔친 것들
성경에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특히 신약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역사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파악하는 바울의 거시적인 안목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인생의 구원문제와 연결시켜서 해석한 그 놀라운 통찰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대로 인생의 문제에 대입시킴으로써
예수그리스도를 모든 인류의 구세주로 소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서도
분쟁과 혼란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미 건너온 홍해 저쪽으로 돌아가려 하지말고
끊임없이 전진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받자고 권면하면서 이렇게 썼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그것은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무서운 유월절의 밤에 양의 살을 먹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죄로 물든 세상을 벗어나 회개의 바다 속을 지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행적 사랑과 섭리가 아니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역시 갑작스럽게 닥쳐온 한 사건으로 인하여
당황한 나머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거꾸러졌던 바울처럼
참혹하게 무너져 내렸고 회개의 바다를 통과했다.
사내답지 못하게도 몹시 울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잘못을 낱낱이 하나님께 아뢰고 용서를 구했다.
술도 끊었고 담배도 끊었다.
거미줄처럼 나에게 엉켜붙어 있던 모든 정욕의 사슬도 깨끗이 다 끊어버렸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고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탕자처럼 편안했다.
겨자씨로 시작된 믿음이 산처럼 자라나던 때였고
그것은 참으로 감격과 감사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적인 성장과는 반대로
현실에서의 내 인생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선 술과 담배를 끊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락한 것이나,
전도와 신우회 활동에 열을 올리다가
직장에서의 신임을 잃은 것은 내 탓이라 하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만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화가 잘 안되는가 하면 변비와 설사가 계속되고 체중이 급격히 줄더니
불과 몇 달 사이에 10여 킬로그램이 줄었다.
얼굴은 헬쑥해지고 양복은 모두 헐렁해서 입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건강의 수난을 겪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번갈아 심한 병으로 입원을 하는가하면
심지어는 부모님들까지도 입원을 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아서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고 만사형통한다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내 경우에는 거꾸로 되어 가는가?
그런것들 때문에 당황하면서도
나는 저 죄악의 사슬로부터 나를 구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분의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내 모든 수난의 원인이 그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으로 믿고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나갔다.
마침내 이 모든 것에 관한 해답을 받는 날이 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가다가
마침내 레위기 6장에서 덜미를 잡혔던 것이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잡거나 강도질 하거나 늑봉(勒捧)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本物)에 5분의 1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도 그 속건제(贖愆祭)를 여호와께 가져 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레 6:2∼7).
물론 여기서 속건제물로 드려지는 '흠없는 수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보혈의 공로로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는다고 하였으며 나도 그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레위기는 죄 사함을 얻는데 필수적인 또 하나의 과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빼앗아오거나 훔쳐온 물건을 그 임자에게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황연히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던가를 깨달으며 등에 식은땀을 흘렸다.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는다고 해서
빚진 돈을 떼어 먹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6).
나는 그만 속죄의 길이 막혀버리고 만 것 같아서 낙심하며 고민에 빠져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여기까지 와서 나를 가두시는가?
더 이상의 통로는 없는 것인가?
나는 다시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외어보았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바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자 내게는 한가지 희미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관주(貫珠)를 부지런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민수기 5장에서 찾아냈다.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줄 것이요…"(민 5:7)
거기까지는 레위기의 내용과 같았다.
그러나 그 다음 절에는 또 한길이 열려 있었다.
"만일 죄 값을 받을만한 친족이 없거든
그 죄 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수양 외(外)에 돌릴 것이니라"
즉 죄의 값을 본인에게 갚을 수 없을 경우에는 그 친족에게 갚을 것이요,
그것을 받을 만한 친족도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갚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기쁨에 떨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갚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에 있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7∼40).
나는 즉시 이것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인천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거기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인천공장에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부속병원이 있었고
거기에는 늘 안전사고나 신병 등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매주 금요일이 되면 입원환자의 수를 체크한 다음
환자의 수만큼 성경과 과일 등을 준비하여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성경을 나눠주고 성경말씀을 들려주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 일을 계속하면서 나는
고난당하는 자들과 아픔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소외되어있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무심한 존재였던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쁨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내가 그런 시련 가운데서 무작정 건강과 승진만을 위하여 기도했다면
나는 아마도 저 시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히브리 사람들처럼
기복(祈福)적인 신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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