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는 “그동안 경험한 감독들한테서 배우고 싶은 게 뭐였나”라는 질문에 “축구를 시작한 뒤 거쳤던 감독이 160~170명쯤 되는데, 많은 감독을 겪다 보니까 사흘 정도 같이 지내면 ‘이 감독 레벨이 뭐다’라는 게 느껴진다. 감독한테 중요한 건 전술도 아니고,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 바로 어떻게 하면 선수의 마음을 얻는가, 그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대답했다.
이영표는 이어 경험 한 토막을 소개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박지성과 함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으로 이적했다. 당시 팀 동료 중에 마티아 케즈만(세르비아)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실력은 좋지만, 악동 같은 선수였다. 이영표 얘기를 옮기면 이렇다. “하루는 경기 도중 케즈만이 상대 선수를 때려 퇴장당했다. 추가로 3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다들 ‘감독이 세게 징계하겠구나’ 예상했는데, 히딩크 감독은 오히려 케즈만에게 2주간 휴가를 줬다. 모두 놀랐다. 그런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케즈만은 영혼을 담아서 훈련에 임했다.” 케즈만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 했던 2002~03, 03~04시즌 네덜란드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부임 후 첫 대회였던 이듬해(2018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선수권에서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8년 8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4위), 같은 해 12월 동남아시아 축구선수권(스즈키컵) 우승, 2019년 1월 아시안컵 8강, 지난달 동남아시안(SEA)게임 남자축구 우승의 성과를 냈다.
박항서 감독 성공 비결에 대한 분석은 차고 넘친다. 다들 일 리 있다. 개인적으로 이 비결을 하나로 꿰는 건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시안게임 당시, 발을 다친 베트남 수비수의 부상 부위를 박 감독이 직접 마사지하는 짧은 영상이 화제가 됐다.
박 감독은 후에 “현지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기 때문에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스즈키컵 때는 감독에게 배정된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부상 선수에게 내줬다. 이처럼 알려진 것 외의 많은 것들이 쌓여 박 감독은 선수들 마음을 얻었을 테고, 성과의 밑거름이 됐을 거다.
‘있는 것도 없다고/네가 말하면/없는 것이고//없는 것도 있다고/네가 말하면/있는 것이다//후회하지 않겠다’
2014년 나태주 시인이 펴낸 시집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에 수록된〈마음을 얻다〉라는 시다. 마음을 얻으면 있는 것을 없게,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다. 새해 벽두의 클리셰 같아 썩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마음을 얻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된다.
장혜수 스포츠팀장